마음의 땅, 보이지 않는 자들 - 알려지지 않은 쿠르드족 이야기
힐미 압바스 지음, 조경수 옮김 / 이매진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이 자기 자신으로서 더 많이 보고 전체로서는 그만큼 조금 보는 한,

결코 하나의 본질, 하나의 뜻을 갖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자기 자신 안에서만 사는 자들 역시,

설령 무한성이란 선물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전체를 보지 못하리라.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쿠르드 족에 관한 책이다. 쿠르드 족, 최근 이라크 전쟁으로 그 이름이 알려진 종족이다. 사실 나도 쿠르드 족은 터키, 이라크, 이란 등의 국경지방에서 사는 민족이라는 점만 알 뿐, 더 이상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도 쿠르드 족이 어떤 종족인가를 알게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쿠르드 족을 설명하기 위한 소개서가 아니라, 그들의 신화(그들의 신앙이 담겨져 있다는 데서 이 책을 경전적인 내용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듯 하다)를 적어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신화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나, 우리나라의 건국신화 등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알고 있었던 나였다. 그 이름부터 생소한 쿠르드 족, 게다가 그들의 신화를 읽어보게 된다는 것은 기대감 반, 걱정 반이었다. 아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는 건 매우 흥분되는 일이지만, 경험상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이해도도 떨어질 뿐더러,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모두 읽고 난 뒤 느껴지는 감정 역시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쿠르드 족의 신화는 근본적으로 윤회론을 전제한다. ‘완성된 자’, ‘비 완성된 자’라는 구분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식의 해탈의 개념도 엿보인다. 또, 여느 종교의 창세처럼, 여기에도 ‘아주 늙은 성스러운 아버지’라는 창조신이 존재한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대홍수의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쿠르드족의 홍수는 조물주의 사자인 키르드탐이 한 마을 사람들에게 조선술을 가르쳐 주어 마을 사람 전체가 구원을 얻게 된다는 스토리를 가진다. 성경의 무지개의 역할은 달(月)이 대신한다.

        한편 읽던 중 흥미로운 내용은 인간의 일반적인 구분이다. 우리는 흔히 백인, 황인, 흑인으로 사람들을 나누곤 하지만, 쿠르드족의 신화에 나오는 인간은 황색인, 흑색인, 갈색인, 백색인, 창백한 사람 등 5가지로 나눈다. 무의식적으로 참 재미있게 구분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사실 내가 그만큼 서구의 3색 구분법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독한 편견이 아니었을까.




        가장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부분은 제 4부였다. 다른 부분은 상당히 지루한 맛이 있었는데, 4부 만큼은 전혀 지루한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 내용은 신앙을 한낱 어리석고 무지몽매한 사람들이나 믿는 것으로 치부하고, 이성의 힘을 숭상하도록 사람들을 종용한 토룹에 의해 사람들이 신앙심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자, 결국 토룹의 지배에 빠지게 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그 시작이다. 사람들을 완전히 지배한 토룹은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두 부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75개의 부족 연합군을 결성해 토벌에 나선다. 하지만 자만할 대로 자만한 토룹은 결국 전투에서 패배하고, 죽음을 맞게 된다.

        내용만 보자면 단순한 권선징악적인 내용처럼 보이지만, 인간성에 관한 매우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신앙을 버리고, 스스로가 신의 자리에 올라 자율에 따른 생활을 하면 행복할 것만 같지만, 결국 폭군인 토룹의 지배를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내용 등이 그렇다. 기회가 된다면 이 모티브를 소재로 짧은 단편소설이라고 써 보고 싶은 마음이다.




        여러 가지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이름들 때문에 읽느라 고생 꽤나 했지만, 신화 안에 담긴 인간에 관한 여러 깊은 통찰들은 그러한 어려움을 깨끗이 씻어줄 수 있을 정도였다. 역시 신화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재미있게 지어낸 이야기여서는 안 되는 것인가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웅숭배론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11
토머스 칼라일 지음, 박상익 옮김 / 한길사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역경은 종종 사람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것입니다.
그러나 역경을 이기는 사람이 백이라면
번영에 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입니다.

 



        
영웅숭배론이라.. 제목부터 뭔가 고전적인 저작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도록 만드는 책이다. 하지만 저자는 19세기에 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사실 채 200년도 되지 않는 책인 것이다.



        작품의 원 제목은 ‘영웅, 영웅숭배, 영웅적인 역사’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책의 내용은 바로 그 제목에 모두 나와 있다. 저자인 칼라일은 영웅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영웅을 숭배해 왔는가를 돌아본 뒤, 역사 가운데 나타난 여러 유형의 영웅들과 그들의 역사적 위치들을 이 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보는 영웅이란 흔히 생각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나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영웅의 특징이란, 성실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단순히 타고난 특출한 재능이 그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자신의 사명을 실현해 나가느냐에 따라 영웅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실제 저자는 녹스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런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인 녹스는 그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성실성은 그를 영웅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영웅숭배라는 개념 역시, 맹목적이고 종교적이고 영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영웅숭배는, 자신의 사명에 그토록 뛰어난 성실성을 보여준 인간에게 인간일반이 자발적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행위를 말한다. 즉, 칼라일의 영웅숭배는, 성실한 인간에 대한 존경의 의미와 다르지 않다.

        저자가 보는 역사는 이러한 영웅들이 주도해가는 세상이다. 각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영웅들이 있고, 그들은 어느 한 가지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고대 북구 유럽의 주신(主神)인 오딘, 선지자로 나타난 마호메트, 시인인 단테, 개혁가인 루터, 문인인 루소, 군사적 영웅인 나폴레옹과 크롬웰 등, 영웅은 어느 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그를 영웅으로 알아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대중이 그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이런 면에서 칼라일을 영웅사관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책의 전체적인 문제는 영웅들을 다루고 있는 만큼, 찬탄과 경의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칼라일은 자신이 영웅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강한 경의를 표하는 글이 그렇듯, 이 책도 상당히 많은 수사적 어구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약간 지루한 맛이 있었다.

        
또 강연의 내용을 책으로 펴내었기 때문에, 다분히 선동적이며 듣는(읽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어구들도 많이 보였다. 그와는 반대급부로 자연히 치밀한 논리적 추론이나 연구의 구체적인 증거 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읽고자 하는 의식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뭔가를 던져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오늘날의 영웅은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아니 오늘날에도 영웅들의 계보는 계속이어지고 있는가, 오늘날의 세상 사람들은 영웅에 대한 존경심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사는 ‘멍청한 종’들은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사들의 제국 - 상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비너스를 복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복수란 자기의 온 시간을 바쳐서 해야 하는 일인데,
그녀는 지금 남에게 해를 끼치느라고 시간을 낭비할 겨를이 없다.


        전작인 『타나토노트』의 후속작의 형태로 쓰인 책이다. 전작에서 사후세계를 탐험했던 주인공들은, 이 작품에서 천사가 되어 다시 한 번 더 높고 깊은 세계를 탐험하러 나간다.




        언제나 좀 더 새롭고 높은 세계를 향해 탐구하고자 하는 욕구로 가득 찬 라울 라조르박, 그리고 그의 말에 혹해서 함께 탐험을 펼쳐나가는 미카엘 팽숑, 전작에서는 꽤 뛰어난 판단력을 보여줬으나 이번에는 매우 염세적으로 변해서 보조인물에 불과하게 된 랍비 프레디, 그리고 그의 애인 마릴린 먼로(?).

        전작에서 이들은 영계탐사를 위해 함께 애썼던 타나토노트였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결국 천계의 존재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고, 결국 그들의 탐사를 막기 위해 죽음을 맞도록 만든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그토록 탐사하고자 했던 영계에 도착한 그들. 하지만 그들이 마주친 것은 더 높은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영계묘사는 현실세계를 묘사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저자의 현실인식인 인과응보적인 순환론적 인생관이 그대로 투영되어서, 천국에서 조차 천사가 된 주인공들은 세 명의 인간영혼을 맡아 그들의 업보점수를 높이는 공을 세움으로 더 높은 세계로 갈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인 팽숑이 맡은 세 사람의 인간들의 삶을 서술하면서 적당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저자의 솜씨는 훌륭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스토리가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서 느낀 점은, 좀 가볍다 라는 느낌이다. 우선 전작인 타나토노트의 등장인물이 등장하기에, 등장인물의 특별한 성격의 변화가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인물들이 맞닥뜨리는 갈등상황이나, 인물들 간의 갈등조차 전작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은 약간 지루한 맛을 느끼게 했다.

        또, 자연스런 스토리 전개보다는 지나치게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요소가 많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아마도 그 이유로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하고 싶었던 주제를 제시하는데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작품이 스스로 흘러가게 만드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즉, 책이 저자의 생각에 살짝 스토리라는 껍질을 덮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




        내가 꽤 좋아하는 작가지만, 이번 작품은 저자 특유의 풍부한 상상력과 관찰력을 집필하는 동안 모두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방대수 옮김 / 책만드는집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오직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인간들의 착각일 뿐이고

실제로는 인간은 사랑의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줄거리 。。。。。。。                      

 

     세계적인 대 문호(참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톨스토이가 쓴 세 개의 우화를 모은 책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들어오게 된 한 청년의 눈을 통해 인간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의 욕심과 허영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약사 빠른 형들과는 달리 우직하지만 진실한 삶의 태도를 보이는 동생의 모습을 통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바보 이반’.


 

2. 감상평 。。。。。。。                    

 

     세 이야기 모두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어렸을 때 ‘세계명작동화집’의 어디에선가 봤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설교나 강연에서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잘 알려졌다는 뜻도 있지만, 그 내용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잘 짜여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짧은 세 개의 동화 같은 이야기들의 주제는 공통적으로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작가는 이 철학적인 질문을 참 쉽게 이야기로 풀어낸다. 아마도 ‘탁월함’이라는 단어는 이런 데에 사용하는 것일까.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물질주의와 황금만능주의라는 단어가 익숙해져버린 이 시간 한국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들이다.

     내용은 참 쉽다. 비단 성인들만이 아니라 좀 더 어린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에게도 충분히 읽힐 만한 책이다. 물론 사전 지식에 따라 책을 읽고 깨닫는 정도도 달라지겠지만, 뭐 어떤가. 어린 아이들에게 성인에 해당하는 기대를 하는 것도 지나친 욕심이니까.

     한 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충분히 생각하면서도 모두 읽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졸업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그것이 달콤한 그리움일지 쌉쌀한 그리움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리워할 수 있기에 행복할 것이다. ‘졸업’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1. 줄거리 。。。。。。。                      

 

     서로 독립적인 네 개의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이다.

     학창시절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자살을 하고 난 뒤 십 수 년 만에 찾아 온 그의 딸을 만나게 된 남자(졸업), 어머니의 죽음을 얼마 앞두고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과의 대화를 시작한 또 다른 남자(행진곡), 학생들에게 매우 엄한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역시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아들의 이야기(아버지의 마지막 수업), 그리고 새어머니에게 닫힌 마음을 가지고 수 십 년을 살아온 아들의 이야기(추신)가 깔끔한 필치로 풀어 나온다.

 


2. 감상평 。。。。。。。                    

 

     타이틀인 ‘졸업’은 이 책 전체의 주제를 한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서로 다른 네 개의 이야기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은 한 가지의 주제로 묶인다. 바로 ‘졸업’이다.

     졸업이란 무엇일까? 졸업은 무엇인가를 ‘끝맺음’, ‘완성’을 가리킨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졸업을 하지 못하면 그저 ‘거쳐 간 것’에 불과하다. 졸업과 거쳐 간 것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후자는 학력위조의 주요 유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졸업에는 또한 ‘시작’의 의미도 있다. 한 단계를 잘 마쳤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졸업하지 못한 사람은 보다 상위의 것으로 넘어갈 수 없다. 언제까지나 ‘미완성’을 안고 있고,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의 장애물로 작용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졸업’을 하지 못한 인물들이다.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관문에서 그들은 ‘그냥 지나쳐’버렸고, 그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들의 삶에 문제를 일으킨다.(거짓말을 쓰는 작가,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아들, 죽음에 민감한 관심을 가진 제자,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 등) 시간이 흘렀지만, 시간 자체가 그들을 치유해주지는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졸업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문제들을 ‘직면’해야 했으며, 그들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넘어가야만 했다.

 

     한편 주인공들이 그러한 ‘직면’을 하게 된 동기가 ‘죽음’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키에르케고르 식의 ‘실존에의 직면’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확실히 죽음이란 사람을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올해 초 오랫동안 입원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보는 가족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두 달에 가까운 중환자실의 생활, 그리고 다시 일반병실에서의 몇 개월 동안. 온 팔과 손에 주사 바늘을 찔러대 더 이상 바늘을 꽂을 혈관을 찾기가 어려워 목과 가슴을 통해 직접 혈관을 빼 내야 했던 시술. 두 차례에 걸친 심장 수술과 그 때문에 망가져 버린 신장. 쇼크 상태에 빠져 새벽에 전화를 받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달려갔던 일. 비쩍 마른 아버지의 발을 붙잡고 기도했던 일. 병원에서 로비 의자에서 잤던 밤들까지. 소설에 나온 주인공들처럼, 죽음에 가까워진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온 가족이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사람은 죽음과 같은 큰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야 자신의 실존을 보게 되나보다.

 

     지금 우리가 확신하는 것이 사실은 오해나 억지일 수도 있다는 것, 또, 삶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좀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 등, 바쁜 일상 때문에 흘려보낼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삶을 보는 방식에 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좋은 책이다. 오랜만에 참 많은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