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 : 성전 탈환의 시나리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88
조르주 타트 지음 / 시공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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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군은 다양하게 번역된다. ‘십자군 운동이라고 부르면, 11세기 말부터 13세기까지 서유럽 전역을 들끓게 했던 종교적, 정치적 이상을 좇는 움직임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고, ‘십자군 전쟁이라고 하면 서유럽 국가들이 근동 지역에서 벌인 다양한 군사적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십자군 전쟁이니 후자 쪽에 가까워 보이고, 실제 내용도 그렇다.

 

 

     서장 부분에서는 십자군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 덧붙여 있다. 서아시아는 물론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에까지 뻗어나갔던 이슬람 세력은 분열되어 있었고, 그들의 진출을 일선에서 막고 있던 동로마제국(이 책에서는 비잔틴으로 부른다)도 그 힘이 다해가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서유럽은 오랜 빈곤상태를 벗어나 잉여농산물이 축적되면서 기사계급이 출현하기 시작했는데, 교황 우르바누스 2세를 비롯한 성직자들은 그들의 공격성을 이슬람 세력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다

 

     다만 이런 설명은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십자군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동로마 제국 황제 알렉시오스의 역할은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워낙에 작고 개론적인 책인지라 좀 더 깊은 연구까지 다 담아낼 수는 없었겠다 싶기는 하다. 사실 시공사에서 낸 이 시리즈의 책들은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데 더 집중하고 있으니까.

 

 

      첫 번째 십자군이 성지에 도착했을 때부터, 살라딘에 의해 사실상 쫓겨날 때까지의 역사는 마치 신문의 타임라인을 보는 것처럼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 사실 서유럽에서 출발해 근동지방에서 군사원정을 벌인다는 일 자체가 당시로서는 거의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그 첫 번째 원정에서 이들은 지중해 동부 해안지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이슬람 세계의 분열 때문이었다. 아바스 왕조의 힘은 진작 쇠퇴하고 있었고,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는 시아파로 아바스 왕조의 곤경을 도울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아바스 왕조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서아시아 곳곳은 위임통치를 받은 총독들이 사실상 독립왕조를 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역으로 십자군은 이슬람 세력이 통합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 통합이 꼭 평화로운 방식일 필요는 없었는데, 실제 역사도 장기나 누르 앗딘(누레딘), 살라흐 앗딘(살라딘) 등과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힘을 결집하게 된 이슬람 세력은 점점 십자군을 밀어내게 된다.

 

 

     역시나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수많은 컬러 도판들이다. 책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도판들은 모든 페이지에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또 본문의 설명과는 별개로 박스형으로 삽입되어 있는 주석들도 꼭 읽어볼 만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책 후반에는 십자군과 관련되 동시대인들과 현대의 연구자들의 기록을 일부 인용해두었는데, 당시의 전술과 성채건축 기술에 관한 내용들은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이 책은 특히나 더 어느 정도 사전지식을 갖고 본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등장하는 인물이나, 그들의 행동에 대한 설명들, 그리고 지중해 동부 해안지역에 세워졌던 라틴 국가들 사이의 관계들, 유럽인들과 이집트, 시리아를 지배하던 무슬림들과의 상호작용, 관계들에 관한 좀 더 깊은 이해는 이 책을 더 즐겁게 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이 작은 책이 그런 추가적인 독서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면 저자 역시 충분히 만족스러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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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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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시작하며 등장하는 주제는 (세포)의 가소성이다. 가소성이란 일정한 힘으로 형태를 바꾼 대상이 일단 힘이 사라진 후에도 변형된 그 대로를 유지하는 성질이다. 찰흙으로 이런저런 모양을 만든 후에도 그 모양이 그대로 굳어지는 걸 생각하면 쉽다. 저자는 우리의 뇌도 그와 같은 성질이 있어서, 한 번 어떤 형태로 길이 나버리면 계속 그 길을 따라서 가게 된다고, 다른 길로 가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읽기는 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말은 좀 더 기본적인 기능에 해당하기에 최소한의 도움만으로도 말하고 이야기하며 생각할 수 있지만, 무엇인가를 읽기 위해서는 배워서 자신만의 읽기 회로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읽기 회로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책을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다. 평소 주변 사람들과 만나면 대개 책 얘기를 한다. 사실 대화라는 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주제가 될 수밖에 없지 않던가.(소개팅 자리에서도 자꾸 그래서 문제긴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건 나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딜 갈 때 손에 책을 들고 있지 않으면 살짝 불안해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냥 책이라는 이야기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습관이 안 되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누구나 연습하면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 건 내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책 읽기 회로가 만들어지지 않은 거라면.(이제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저자는 종이책과 디지털 기반의 읽기 사이의 차이를디지털 방식이 얼마나 우리의 주의를 흐트러뜨리고, 깊은 통찰을 얻는 것을 방해하며, 공감능력을 퇴화시키는지길게 설명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책읽기를 권장하기 위한 책이다.

 

     책 읽기를 멀리하고 디지털 매체를 통해 단편적인 지식만을 편파적으로 접한 이들이 어떻게 괴물처럼 변하는지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곤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빠져 사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통해 실감나게 목격된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구하며 단식하는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이거나, 보모로 돌보던 남자 아이를 강간했다고 자랑스럽게 글을 올리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도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독서를 통해 공감하는 능력을 만들지 못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책 속에는 지난 20년 동안 젊은이들의 공감능력(이런 건 어떻게 측정하지?)40% 가량 줄었다는 연구 자료가 실려 있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지만, 그 현실에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접하고 있다고 여기는 듯도 하다. 책 속에는 사람이 하루 동안 다양한 기기를 통해 접하는 정보의 양이 약 34기가바이트에 달한다는 내용이 있다. 엄청난 양이다. 이미 충분히 사는 데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얻고 있으니 책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주의를 쪼개가며, 발작적으로, 단속적인 정보들을 접함으로써 우리의 읽기 능력은 향상되기는커녕 쇠퇴하고 있다. 저자는 상호교류식 전자기기들도 더 깊은 읽기능력을 기르는 것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위해 최신의 전자기기 사주거나 종일 유튜브를 틀어주는 부모들은 기대했던 유익은 쉽게 거두기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언제든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매체를 통한 지식의 습득은, 진짜 나의 지식으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애초에 기술에 접속되어 있는 상태와 지식을 가진 상태는 다른 법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영화 마션의 주인공이 화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의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책 후반부로 가면서 초반의 논지가 살짝 흐트러지는 느낌이다. 종이책 읽기에 비해 문제가 많은 디지털 읽기방식에 관해 한참을 이야기해 놓고는, 어쩌면 다가오는 미래에는 두 가지 읽기의 길을 발달시키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깊은 읽기도 하면서 때에 따라 가벼운 접속도 해 낼 수 있는 세대들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그런 경우에라도 디지털 기기가 제1의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고 있기는 하지만, 앞서 구축해 놓은 논리의 나사들이 꽤나 헐거워지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 물론 저자가 교육 쪽에 몸을 담고 있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한동안 우석훈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의 책은 대체로 장차 다가올 경제 위기에 대한 우울한 전망으로 채워져 있지만, 저자 자신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우석훈이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미래에는 저축하는 사람이 능력이라는 말. 조금씩이라도 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라는 말이 아니라, 현재의 지출을 조정해 지속적으로 저축을 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귀하게 사용될 거라는 의미다.

 

     이 문장을 조금 바꿔서 주변 사람들에게 해주곤 한다. 미래에는 책을 읽어갈 수 있는 것이 큰 능력이 될 거라는 말. 책을 한 달에 몇 권씩 읽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고, 좀 수준 있는 어렵고 두꺼운 책들을 봐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저 능력에 맞게 꾸준히 읽어나가는 게 능력이라는 뜻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그 위에 얹힌 문자들을 인식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을 쓴 사람과 교감을 하고, 그 안에 묘사된 세상을 체험해 보고, 나름의 반응을 보이는 작업이 책을 읽을 때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뭔가 특별한 변화와 성장이 이루어진다. 당연히 이 작업은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고, 간략한 요약본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무슨 큰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는 분명 유익을 줄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AI가 인간이 하는 많은 일들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미래에, 이 사랍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이란 얼마나 중요해질까. 때문에 어찌되었든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물론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듣는 사람은 안 듣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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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 로마 - 로마의 50개 도로로 읽는 3천 년 로마 이야기
빌레메인 판 데이크 지음, 별보배 옮김 / 마인드큐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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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역사나 서양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도시가 몇 군데 있다. 그리고 로마는 그 도시의 목록 중에 빠질 수 없는 곳임에 분명하다. 고대 로마제국의 수도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쌓인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자산들은 물론, 사실상 정치적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던 중세에도 여전한 문화적(그리고 종교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도시니까. 하나의 도시가 이렇게 오랫동안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면 어느 쪽에서 출발하더라도 결국 도착점은 로마 어딘가가 될 수밖에...

     이 책은 그런 로마의 역사 중 몇 개의 장면들을 골라, 그와 관련된 건축물들과 엮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책 제목의 비아(via)’는 라틴어로 이라는 의미이기에 비아 로마로마의 길(혹은 가도)’ 정도로 이해될 수 있다. 처음에 책 제목을 봤을 때는 그 유명한 로마 가도돌을 따라가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이 경우 서술의 배경은 로마를 넘어 고대 제국의 곳곳을 향하게 될 것이다), 사실 그런 내용은 아니고 로마에 있는 여러 길들(여기엔 가도 같은 큰 길들만이 아니라 샛길들도 포함된다)과 광장들을 재료 삼아 풀어내는 이야기다.(개인적으로는 로마 가도들을 따라가며 고대의 문화와 역사를 훑어가는 식의 책이 나온다면 무조건 살 것 같다.)

     책은 실제로 로마의 거리를 걷는다면 어떤 것들을 알고 보면 좋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책 뒷부분에는 로마여행 때 선택할 수 있는 도보 여행 코스가 몇 개 실려 있기도 하다. 우선 그 압도적인 역사의 무게감에 눌려 있는 상태라면, 길을 걷는 동안 이런 설명들 몇 개를 곁들이기만 해도 충분히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을 듯.

     다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로마의 역사는 길다. 교대와 중세를 넘어, 근대 이후로도 주요한 사건들이 그곳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니까. 저자는 그 이야기들을 모두 다 담으려고 애썼던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때문에 각 사건에 관한 설명이 좀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여기에 단편적인 에피소드 중심으로 내용이 진행되다보니 애초에 큰 맥락을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해하는 데 제한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뭔가를 제대로알고 싶은 사람이 늘 부딪힐 수밖에 없는 문제. 처음부터, 기초부터 시작하려고 하니..)

     아마도 저자는 대체적으로 연대기 순서를 따라 각 꼭지들을 배치하면서 이런 부분을 조금 보완하려고 애쓴 듯하다. 뭐 대중 교양서적으로는 이 정도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로마 역사를 좀 더 공부하고 본다면 더 좋을 것 같은 책. 로마 여행 계획이 있다면 미리 보고 가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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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부름 - 십자군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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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최근 다양성을 중시하고, 문화적 상대성을 강조하는 진영에서 십자군은 그리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다. 강력한 힘으로 양민을 학살한 비난받을 만한 사건 정도로 치부하는 식. 하지만 당시 이슬람 세력이 분열되어 있었다고는 하나(시아파인 파티마 왕조와 수니파인 아바스 왕조. 그리고 아바스 왕조의 약화를 틈타 서아시아에 진출한 투르크족), 그들은 결코 약자가 아니었고 서양이 동원한 힘이라는 것도 그리 엄청난 물량도 아니었다. 그건 치고받는 일이 일상적이었던 중세에, 늘 어딘가에서 일어났던 전쟁이었다.

 

     그런데 (1) 십자군에 관한 또 한 가지 오해가 있다. 이 전쟁이 전적으로 교황인 우르바누스 2세의 선동과 신앙심과 영웅심이 섞인 복잡한 기사들이 벌인 모험적 사건이었다고만 보는 시선이다. 이 책의 저자는 사실 이 복잡한 사건을 배후에서 발생시킨 인물은 당시 동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알렉시오스였다고 말한다.

 

     쿠데타로 제위에 오른 알렉시오스는 투르크족 지도자들과의 협상으로 소아시아 지역에서의 제국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동맹을 맺었던 투르크족 지도자가 사망하면서 이 지역이 혼란스러워졌고, 제국은 급격히 위축된다. 이 때 서방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교황 우르바누스와 접촉하는데, 이건 상당히 전략적인 판단이었다. 당시 서방에는 우르바누스 외에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지지를 받는 대립교황이 있어 일종의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르바누스는 십자군을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고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 나선다.

 

     그렇게 모인 서방의 군대가 투르크족 지배 하에 있는 소아시아로 넘어가는 과정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출신과 배경이 서로 다른 무력집단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질서정연하게 나아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까. 게다가 이들을 위한 보급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을 조율해 결국 성공(소아시아의 탈환)시킨 것은 알렉시오스의 치밀함 때문이었다는 게 이 책의 주요 주장이다.

 

  

2. 감상평 。。。。。。。

     역사를 연구하면서 숨겨졌던 인물과 사건들을 발견해 내는 일은 가장 흥미로운 작업 중 하나일 것이다. 마치 고고학에서 새롭게 발견된 유물을 근거로 이제까지의 역사기록을 수정하도록 만드는 일처럼, 역사서에 실린 행간을 읽어내며 실제 있었던 일을 발견해냄으로써, 기존의 해석과 설명을 바꿔버리는 일은 꽤나 통쾌한 일일 것이다.

 

     이 책은 알렉시오스의 발견이라고 부를 만 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기존에도 알렉시오스는 망해가는 동로마제국의 수명을 늘려놓은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그가 1차 십자군을 기획하고, 조율하며, 나아가 일종의 조종까지 (제한적으로나마) 해 낸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위에도 설명했지만, 그렇게 많은, 제각각의 무장세력들이 행로 주변에 큰 해를 주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해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어지간한 후방지원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 그리고 서방세력에게 1차 십자군의 가장 큰 성과는 예루살렘 정복이었을지 모르나, 여튼 이 전쟁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건 소아시아를 다시 손에 넣은 동로마제국의 알렉시오스였다.

 

     하지만 당대는 물론 후대의 십자군에 관한 기록에서 알렉시오스는 비겁하고 음흉한 인물로 그려지곤 했다. 이는 실제 전투에 나선 서방의 군사지도자들과 후방에서 전체 판도를 살펴야 하는 알렉시오스 사이의 입장차에서 기인한 것이었는데, 동방에 관한 경쟁의식이 있었던 서방인들은 그 기록을 그대로 믿고 기정사실화해버렸던 것. 물론 이런 반대 기록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행간을 살피는 것 이외에 저자는 알렉시오스의 딸이 쓴 알렉시오스라는 작품을 제시한다.(이 책을 번역한 인물이 저자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을 100%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고 (저자는 아버지를 위한 윤색이 첨가되었다고 평가한다) 비판적인 수용을 통해 개연성 있는 역사를 재구성 해낸다.

 

     1차 십자군에 관한 상당히 자세한 설명과 치우치지 않은 평가를 담고 있는 좋은 책이다. 관련된 시대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한 번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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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3-26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는 십자군 전쟁이 예수님이 태어난 성지를 탈환하겠다는 순수한 신앙심의 발로인 1차 참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당시 중세유럽의 경제적문제(인구증가,가난등)을 해결하기 위한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당시 비잔티제국이 어려웠다고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동로마제국의 황제가 참전을 유도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네요.

노란가방 2019-03-26 11:44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은 1차 십자군에 집중하고 있구요,
일반적으로 조연 정도로만 묘사되는 동로마제국이 사실은 치밀한 주도자였다는 걸 보여주는 데 집필 목적이 있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대로 나머지 십자군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또 있었겠죠. ^^
그 쪽에 관해 괜찮은 책들도 좀 나왔으면 하네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자크 보세 지음, 기욤 드 로비에 사진, 이섬민 옮김 / 다빈치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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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 제목을 잘 봐야 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건 아름다운 도서관이다. 장서량이 많거나 이용자의 편의를 극대화 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고, 말 그대로 보기에 좋은 도서관. 실제로 책에 소개되고 있는 도서관들은 멀리는 중세까지, 가까이는 근대의 귀족이나 왕족들에 의해 설립되었고, 수많은 작품들로 장식되어 그 자체가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대부분 유럽에 있는 도서관이고, 미국에 소재한 건물도 세 개 소개된다. 전문 작가가 찍은 컬러 도판이 잔뜩 실려 있어서 그림책 같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 책은 각각의 도서관에 관한 간략한 역사와 주요 공간들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2. 감상평 。。。。。。。

     흔히 도서관 하면 공공 도서관을 떠올린다. 하지만 최초의 도서관들은 일반 대중이 아닌 엘리트들을 위한 것이었다. 사실 대중들은 글을 읽을 수조차 없었으니까.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책이란 필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그 값도 대단히 비쌌다. 당연히 도서관은 고귀한 사람들의 지적 만족(종종 허영심)을 위한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초기의 몇몇 주요 도서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적이었다.(물론 여기에도 도서관 소유자의 허영이 살짝 들어가기도) 책은 책장에 꽂혀 있을 때가 아니라, 사람에게 읽힐 때에야 그 가치를 발휘하는 거니까.

     직접 가볼 수 없는 수많은 장서관들을 구경하고 나온 기분. 저런 아름다운 곳에서 날마다 책만 보며 산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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