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 2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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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에서 율리우스 가문과의 혼인을 통해 지방민 출신이라는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디딤돌을 놓았던 마리우스는 마침내 집정관으로 선출된다. 벌써 오랫동안 질질 끌고 있는 유구르타와의 전쟁에 나서기 위해 무산계급의 징병이라는 초유의 방식을 선택한 그는 마침내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다시 로마는 북부의 게르만족과의 싸움에서 고전을 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마리우스를 집정관으로 선출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마리우스의 곁에서 차근차근 자신의 때를 준비하고 있었던 술라의 이야기가 이번 책의 주요 내용이다. , 그리고 우리에게도 좀 더 익숙한 바로 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아버지가 결혼 이야기 살짝 선을 뵌다. 이제 슬슬 그가 나올 때가 된 건가.

 

 

     ​이번 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이런 식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이 갖는 의의와 그 파장에 관한 설명이다. 전편에서부터 일관되게 저자가 그리고 있는 것은, 이 당시 로마 사회의 양극화, 즉 명문 귀족가문인 파트리키들에 의해 지배당하면서 일어나는 문제였다. 무산계급을 로마군으로 선발하고 여기에 필요한 재정을 국가에서 조달하도록 조치하는 마리우스의 조치는 단순히 병력자원의 부족을 충당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책에는 카이피오라는 인물이 집정관이 되어 병력을 충당할 때 벌였던 만행을 묘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에는 공화정 초기의 아름다운 선출방식(선택된 지역구민들 모두가 일렬로 서서 몇 명을 뽑고, 다시 다음 줄이 나오고 하는)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강제 징집과 납치, 징집연령에 해당하지 않는 어린 아이나 노인들까지 끌려나오는 식의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이 있었다. 게다가 군장을 준비할 돈이 없는 이들에게는 재산()을 몰수하는 짓까지 저지른다. 이를 통해 집정관들은 엄청난 재산을 모으는 식.

 

     ​마리우스의 군제개혁은 이런 만행으로부터 로마의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숫자를 늘어놓고 표를 만드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생함이 전달되는 부분이다. (확실히 소설은 이런 데서 힘을 발휘한다.)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에 반대하는 원로원 연설 가운데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늘 그래왔듯, 최하층민은 더 많은 특권을 지닌 우리가 돌보고 먹이고 감내하는 대신에 그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쓸모없고 배고픈 입들로 머물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하층민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 대신 아무런 발언권도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고가 충격적이다. 이쯤 되면 그건 그냥 사육이라고 해야 할 텐데, 문득 국민들이 개나 돼지와 같다는 식의 발언을 부끄럽지도 않게 내뱉는 특권의식에 쩌들었던 어떤 인간도 오버랩 되고

 

     ​누군가 망상에 가까운 특권 의식 속에서 살든 말든 알 바는 아니다. 다만 그런 모자란 인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자리에 오르지는 않길 바랄 뿐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적어도 최소한 제도적으로 그걸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몇 년에 한 번씩을 돌아오니 다행이지만, 또 한 편으로 정말로 그런 사육되는 삶에 만족하는 이들이 많아지지는 않을까, 그러면 또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싶은 걱정도 살짝 든다.(이게 기우일까?)

 

 

     ​195쪽에 실린, 길 모퉁이에 있었던 카이사르의 신혼집 구조를 그린 그림이 너무 감사하다. 주요 전투에서 병력의 배치와 전술을 시각화 해 주었던 로마인 이야기도 감사했지만, 카이사르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수부라의 집 구조를 이렇게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기회였다.

 

     ​시리즈가 점점 더 기대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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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의 배신 - 길들이기, 정착생활, 국가의 기원에 관한 대항서사
제임스 C. 스콧 지음, 전경훈 옮김 / 책과함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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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경의 배신이라는 책 제목을 들으면 어떤 게 떠오를까? 당연히 농사나 농업과 관련된 비판적 고찰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이 책의 주요한 소재는 농업이다. 그러나 농사에 관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정치학과 농업을 기반으로 한 경제학 연구자이고, 이 책은 굳이 따지면 농업에 대한 문명사적 고찰을 담고 있다.(말만 해도 어렵다.)

 

     하지만 이 어려운 분류를 넘어서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 있는 바는 선명하다. 우리는 흔히 수렵과 채집을 하던 고대인들이 농업을 통해 엄청난 생산력의 향상을 이루어냈고, 이를 위해 대규모의 관개공사가 필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국가라는 기구가 만들어졌다는 서술을 믿고 있지만, 이런 표준적인 설명이 틀렸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농업혁명이 일어난 후에도 국가가 탄생하기까지 무려 4천 년 가까이 필요했으므로 둘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 투입된 노동력 대비 생산량이라는 효율성만 따지면, 초기 농업은 대단히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했고 생산물도 보잘 것 없었다. 반면 적은 노동력만 투입해도 다양한 산물을 얻을 수 있었던 수렵, 채집은 효율성 면에서도 훨씬 뛰어났다. 굳이 넘어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국가를 형성하고 대규모 관개를 통한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데에는 오히려 불편한 점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전염병 문제다. 특히 최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은 초기 국가들을 완전히 파괴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또 곡물중심의 식생활을 통해 섭취할 수 있는 제한된 영양소도 사람들을 약하게 만드는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렵과 채집, 그리고 유목을 주업으로 하는 이들은 국가로의 종속을 거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 중 하나였다. 국가에 속하게 된다는 것은 무거운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가를 형성하고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강제력이 필요했다. 국가와 그 지배층은 세금을 거두기 쉽도록 사람들을 모아 정착시키고 농업에 종사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다. 결국 수렵에서 농경문화로, 부족에서 국가로 자연스럽게 발전했다는 모델이 틀렸으며, 오히려 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내부의 통제와 외부의 적들을 관리하기 위해) 국가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꽤나 충격적인 주장이지만,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수긍이 되는 면이 있다. 사실 우리는 오랫동안 인류의 역사가 매끄럽게 진화의 과정을 걸어왔다는 신화를 별다른 근거 없이 신봉해왔다. 이 과정에서 C. S. 루이스가 연대기적 속물주의라고 불렀던, 뭐든지 최근의 것이 좀 더 낫다는 식의 건방진 태도로 일관해 왔었고.

 

     사실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학과 인문학 전반에 걸쳐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면서 이런 경향은 거의 일반화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무조건 시간이 지나면 매끄러워질 것이라는 추측을 기정사실화 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실제는 좀 더 복잡하다는 상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사회계약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국가의 해체를 보는 관점도 좀 다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파괴가 수반되기도 하지만, 좀 더 큰 문명사적 관점으로 보면 그건 한계에 부딪힌 중앙집권적 국가가 상당히 느슨한 분권적 상황으로 변화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사람들은 오히려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조금 더 나은 영양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물론 새로운 억압자가 나타날 가능성도 적지 않았지만)

 

 

     발전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나오미 클라인이 쓴 쇼크 독트린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소개된다. 거대한 지진해일로 초토화가 된 동남아시아의 한 해안마을에서 원주민들은 일제히 내륙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고 그 자리에 현대식 리조트가 들어선 일이 있었다고 한다. 깨끗하고 현대적인 건물들을 보며 누군가는 지역이 발전했다고 좋아했지만, 조상 대대로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왔던 원주민들은 내륙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던 발전이라는 것도 어쩌면 이런 식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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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진로인문학 - 나를 찾고 꿈을 찾는 인문학 강의
김경집 외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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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대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인문학 강좌를 책으로 엮었다. 여덟 명의 강연자가 나섰는데, 각각 자신의 전문분야를 바탕으로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강연을 녹취한 듯한 느낌으로, 강연자들의 말투까지 대체로 살려낸지라, 강연자마다 그 내용만이 아니라 말투와 진행 방식도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냉혹한 현실을 부드럽게 비춰주면서 독서를 통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것을 권유하는 김경집의 이야기는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통해 꿈을 가질 것을 제안하는 이남석의 접근방식은 생각한 만큼 잘 진행되지는 않은 듯했지만(살짝 웃음) 나쁘지 않은 강의였다.

 

     반면 힘든 일이 있어도 웃으며 지내라는 김종휘의 말은 살짝 막연했고, 시종일관 깐족대는 느낌으로 학생들의 대답을 비웃는 강신주의 글은 불편했다. 즐겁게 놀다보면 좋은 것이 떠오를 수 있다는 이명석의 말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게 학생들에게 잘 와닿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또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탐색하는 게 중요하다는 박승오의 말이나, 꿈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작은 행동이라도 시작하라는 김영광의 조언은 실천적인 면에서 귀담아 들을 만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큰 깨달음까지 준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리고 마지막 강연은 지나치게 막연한 느낌이랄까...

 

 

     책 제목만 보고 조금은 딱딱한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훨씬 더 수월하게 읽히는 내용이었다. 다만 강연자들 사이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강신주의 깐족거림과 나머지 강연자들의 격려 사이에) 조금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건 공저자들이 각각 내용을 쓴 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약점이다. 물론 개중에 마음에 드는 내용을 찾아낼 수도 있다는 점은 장점일 수도 있지만.

 

     ​그 경험의 양 때문에, 혹은 처해 있는 상황 때문에 청소년 시기에는 확실히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내 경우에도 그랬다) 인문학은 그렇게 좁아진 시야를 넓혀주고, 구부정하게 굳어진 자세를 한 번 크게 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런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이런 강좌를 준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직접 그 자리에 참여하지 못했더라도 이렇게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어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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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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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서두에 실려 있는 추천사를 보고 조금 낯간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추천사를 쓴 교수는 이 책을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와 대조하면서, 이 책이 얼마나 뛰어난 저작인지를 칭찬하는 내용으로 지면을 채웠다. “다이제스트에서 문학으로와 같은 표현까지 등장하니..

 

     그런데 한 30여 페이지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아 이 책은 지하철 안에서 읽으면 안 되겠구나. 자칫 내릴 역을 놓치겠구나’. 실제로도 종종 그런 일이 있었던 상황에서, 이 책을 몇 줄 읽고 내릴 역을 확인하고를 반복했다. 그만큼 소설의 문장들은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고, 소설답게 인물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배경이 되는 BC 2세기 말의 분위기도 정교하게 묘사되고 있어서 빠져들게 된다. 좋은 문학이다.

 

 

     ​책은 로마 공화정 후기의 군인이자, 군제 개혁(이건 단지 군사적 측면에서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구조와 구성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으로 새로운 시대로 가는 디딤돌을 놓았던 마리우스와 우리가 잘 아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할아버지인 또 다른 카이사르를 중심으로 (그리고 잔혹한 독재자 술라가 더해진다) 펼쳐진다

 

     명문 귀족(파트리키)이었지만 부유하지 못했던 카이사르는 지방의 여유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마리우스를 자신의 큰 딸인 율리아와 혼인을 시켜 동맹을 맺으려 한다. 여기에 몰락한 파트리키 출신으로 비루한 삶을 살다가 때를 보고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제거하고 카이사르의 둘째 딸인 율릴라와 결혼을 앞둔 술라의 이야기가 또 더해지고.

 

     그런데 이 책에서 좀 더 비중을 두는 부분은 이런 인물들 이야기의 배경에 깔려 있는, 공화정 말기 로마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반복해서 묘사하는 데 있다. 이 시기 로마는 금권만능주의가 온 사회에 퍼져 있었고, 돈이 아니면 높은 관직에 올라 성공할 수도 없고, 그런 성공도 돈을 벌기 위해서인 악순환... 이 과정에서 힘이 없는 소농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었다.

 

     율리우스 가문과 마리우스의 결합이 처음부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이후의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이 결합은 결국 문제를 근원부터 깨뜨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근본적인 개혁은 체제의 파괴와 재구성이었다. 이미 재물의 보유수준에 따른 계급제도가 다시 한 번 그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지난 세기부터 수많은 사람이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해왔지만, 세상(그리고 기득권층)은 당연하게도 그런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 결과는 또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시오노 나나미가 소위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하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는가를 그렸다면,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를 좀 더 생각해 보게 만든다. 어서 다음 권을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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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인간인가? - 잃어버린 인간의 형상, 여성에 관하여
도로시 세이어즈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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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시 세이어즈라는 이름이 어딘가 익숙했다. 물론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단 한 권도 그가 쓴 책을 보지 못했지만. 리뷰를 쓰려고 저자에 대해 살펴보던 중, 내가 언제 이 이름을 들었었는지 깨달았다. C. S. 루이스다. 저자인 도로시 세이어스는 옥스퍼드 최초의 여성학위를 받았던 인물이고, 루이스와 지속적인 편지를 주고받았던 당대의 이름 있는 작가였다. , 후에는 루이스와 톨킨 등이 주축이 되었던 옥스퍼드의 문인모임인 잉클링즈에서 냈던 한 에세이집에 필진으로 참여하기까지 했다.

 

     루이스와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교류를 했다면 도로시 세이어즈 역시 평범한 수준 이상의 지적 사고와 신앙적 논리전개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음에 분명하다. 이건 이 작은 책(116페이지 중 절반은 영어 원문이 실려 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겨우 50여 페이지가 넘는 수준)의 초반 몇 장을 읽어가는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10장 쯤 읽었을 때, 나는 도로시 세이어즈가 쓴 책들 중 우리말로 번역된 나머지 책들도 모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간의 상황을 알기 전에도, 마치 루이스의 글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으니까.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을 담고 있다. 옥스퍼드의 최초의 여성학위자들 중 하나이자, 꽤나 유명한 연작 추리소설의 작가였던 저자에게 이런 식의 질문은 자주 접하는 것이었나 보다.(책 속에도 여성의 관점으로 탐정 소설을 쓰는 것에 관한 질문이 언급된다)

 

     저자는 여성을 하나의 그룹으로 만들고 던지는 이런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그는 오늘날 판을 치고 있는 포스트모던적 정체성 정치에 단호하게 반대했을 것이 분명하다. ‘여성은 하나의 동질적인 그룹이 아니다. 어떤 여성은 아리스토텔레스에 관심이 있지만, 또 다른 여성은 그렇지 않다. 물론 이건 남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남성이 어떻고 여성이 어떻고 하는 식의 논의에는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지식과 능력 사이의 혼동이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예컨대 실내 인테리어와 관련해서 현재 상황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여성이 남성보다 관련된 능력이 더 많기 때문(능력의 문제)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가정 내에서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면서 무엇이 더 적절한지 알고 있기 때문(지식의 문제)이라는 것이다.

 

     결국 여성적 관점은 존재하지 않으며 차라리 여성의 지식에 집중하는 것이 적절하다. 정확히 반대를 선호하는(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여성적 관점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현대의 극단적 페미니즘이 종종 너무나 비상식적인 주장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구름으로 기둥을 만들어 의지하려고 하고 있다.

 

 

     ​사실 책 말미에 저자는 모든 것에 페미니스트적 관점이 있다고 주장하지 말자고 이야기 한다. 세상에는 성별 못지않게 훨씬 더 눈에 띄는 차이점들이 존재하고, 이것들이 각각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진지를 구축하며 대결하다보면 세상은 뿔뿔이 찢겨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혼란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그렇게 정체성 정치를 주장함으로써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소수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여성을 남성과 대립하는 하나의 진영으로 구분하는 대신, 여성과 남성이 모두 인간이라는 좀 더 큰 범주 안에 있으며, 이들 사이에는 단지 성별의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생각보다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이전 시대에서는 대부분 여성들이 가정에서 하던 일들을 이제 공장에서 남성들이 전유하며 재미없는 일들만 집에 남겨두고는 여성들에게 떠맡기려 한다는 부분에서는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루이스의 글에서 느껴지는 유머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여성들도 사업이라든지, 경영, 관리 등을 오랜 시간 동안 잘 해내왔다. 그건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여성은 이런 일들에 익숙지 않고, 흥미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동일하게 남성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이다.(대표적으로 나 같은 인물은, 사업과 경영, 관리에 젬병이다) 성에 따른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지식(과 아마도 호불호와 능숙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속한 범주를 하나의 정체성화해서 적과 나로 갈라치기를 함으로써 뭔가 얻으려고 하는 행태는 정치인들이 잘 하는 꼼수다. 대표적으로 지역감정 조장이 있고, 극단적 페미니즘이 보여주는 정체성 정치도 그 중 하나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섹터를 강화함으로써 문제에 대처하려는 태도는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말이다.

 

     최근 연속으로 읽기 시작한 여성에 관한 책들 중 단연 돋보이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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