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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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이다. 그의 작품을 몇개 보진 않았지만 그 중에 이번에 본 백조와 박쥐가 단연 가장 재미있었다. 추리소설이 늘 그렇듯 살인이 일어난다. 장소는 일본 도쿄 인근. 시라이시 겐스케란 변호사가 피해자이며 구라키 다쓰오란 66세 인물이 가해자다. 초반 경찰은 시라이시 겐스케 주변을 뒤지고 탐문하여 구라키 다쓰오에 접근한데 의외로 구라키는 경찰 고다마의 심문에 순순히 범행을 자백한다.

 여기까지가 책의 4분의 1지점이다. 뒤에 남은 삼백여쪽은 이후에 이어질 사건이다. 그런데 이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시라이시 겐스케의 딸 미레이와, 구라키 다쓰오의 아들 구라키 가즈마다. 이유는 살해자 구라키 다쓰오가 시라이시 겐스케를 죽인 이유다.

 구라키는 1984년 금융사기를 치던 하이타니라는 자를 살해한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다른 이가 누명을 쓰게되는데 바로 인근에서 전자상가를 운영하던 후쿠마 준지다. 구라키는 자수하려 했으나 심문을 이기지 못한 후쿠마가 자살해버리면서 사건이 묻히게 된다. 여기에 막 태어난 큰 아들 가즈마로 인해 구라키는 도무지 인생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구라키는 이로 인해 오랜 시간 가슴아파하며 후쿠마의 유족을 찾아내어 지원하고 그들의 식당을 자주 찾으며 친분을 쌓는다. 그리고 속죄의 마음으로 자신의 유산을 그들에게 주고자 우연히 만난 변호사인 시라이스 겐스케를 찾아간다. 겐스케와 친분이 쌓여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데 겐스케는 이에 대해 구라키에게 빨리 그들에게 자신의 죄를 말할 것을 종용한다. 이에 압박을 느낀 구라키가 겐스케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이 진술은 그럴듯하나. 살해자의 아들인 가쓰마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책임감 있게 살아온 자신의 아버지가 이렇게 마음대로 사람을 살해하고, 죄를 고하기를 기대하는 변호사마져 죽였다는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피해자의 딸은 미레이도 마찬가지다. 인자하고 피고인의 마음까지 잘 살피던 아버지가 그런 압박을 주어 살해의 빌미를 제공했다는게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

 이에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서로의 아버지들의 과거를 밟는다. 서로 있기 힘든 이런 묘한 협력 관계로 인해 책 제목인 백조와 박쥐다. 우리나라에선 잘 모르겠지만 이런 대조적인 협력과 어울림에 대한 비유적 방법으로 일본에선 이런 표현을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작가가 만들어낸 걸지도, 하여튼 책은 이후에 재밌게 흘러가며 안타까운 장면도 많이 만들어낸다. 그래서 가슴 아픈 살인의 과거가 밝혀진다. 무척 재밌는 책이며 두껍지만 이틀 정도만 시간을 내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책장이 넘어간다. 휴일이면 오전부터 공을 들인다면 저녁이면 다 볼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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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지대 - 매킨더의 지정학과 지리의 결정력 현대의 고전 15
해퍼드 존 매킨더 지음, 임정관.최용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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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영국인 존 매킨더가 쓴 책으로 1차 대전이 막 끝난 1919년에 나왔다. 1919년은 한국에도 의미가 있는 해인데 암울한 일제강점기의 상황에서 3.1운동이 있었던 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앨프리더 머핸의 해양세력, 니컬러스 스파이크먼의 림랜드 이론과 더불어 대표적인 고전 지정학 이론으로 꼽힌다. 매킨더는 이 책에서 심장지대의 중요성을 지적했는데 19세기 대륙을 지배한 러시아와 해양을 지배한 영국이 그레이트 게임을 벌인 것을 생각하면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매킨더가 말하는 심장지대는 유라시아 대륙의 한복판으로 북쪽으로는 북극해, 매킨더가 레나랜드라고 명명한 예니셰이강 뒤편의 광활한 황야, 고비, 티베트, 이란사막과 알타이 산맥에서 힌두쿠시 산맥으로 이루어지는 자연방벽으로 둘러싸인 지대다. 이 지역은 인구는 희박하나 드넓고, 자원이 풍부하며 무엇보다도 상당히 넓음에도 자연방벽으로 둘러싸여 방어가 용이하다. 다만 열린 부분이 한 곳 있는데 바로 동유럽으로의 통로다. 오랫동안 아시아의 유목민족은 이 방면을 통해 유럽을 침공하여 그들의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으며 반대로 유럽쪽에서 이 방면으로의 진출도 이뤄졌다. 통로는 무척 넓고 저지대라 역사적으로 방어가 불가능했는데 세계 1차 2차대전에서 러시아가 처음으로 방어에 성공하며 그 의미를 뒤집어 놓았다. 

 매킨더는 제2의 심장지대를 책에서 지목했는데 이는 바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다. 이 지역은 드넓고 역시 자원이 많으며 양 대양과 사하라 사막이라는 자연방벽에 둘러싸였고, 인구가 광대하다. 때문에 매킨더는 여기가 잘만하면 제2의 심장지대로 세계 역사를 뒤흔들만한 세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물론 이는 아직까지도 좀 요원한 이야기다. 

 세계 1차 대전은 유럽에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오래도록 전략적 관점에서 힘을 키운 프로이센과 이들의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이를 방치한 유럽 국가들을 비판한다. 유럽은 1차대전에서 간신히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데 매킨더는 이를 3가지 요인으로 파악한다. 우선 대영제국의 함대가 실제로 움직이고 해안을 장악하여 병력과 물자를 수송한 것, 둘째는 마른 전투에서 보여준 한 프랑스 전략가의 전술적 성공, 마지막은 영국 직업 군인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이다. 매킨더는 끔찍한 전쟁에 젊은이들을 휘말리게 한 정치가들을 비난한다. 그들은 책임이 있다.

 매킨더가 보기에 1차 대전은 동유럽을 향한 게르만 민족의 욕심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슬라브 민족간의 갈등의 표출이다. 즉, 심장지대를 장악할 수 있는 그 입구를 향한 게르만 민족과 슬라브 민족의 대결이 표면화 한 것이다. 동유럽은 서유럽과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다. 서유럽은 한 쪽이 대양에 막혀있고 주요 민족국가를 형성한 영국,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자신들을 고립시킬만한 상당한 자연방벽을 갖고 있다. 또한 이들은 심장지대와 자신들 사이에 동유럽이라는 완충망을 갖고 있다. 때문에 오랜 기간 고립되어 지리적 방벽을 방패삼아 세력을 키워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반면 동유럽은 심장지대쪽으로 뚫려있고 서유럽, 아시아 유목민 세력, 해양세력까지 진출하여 오랜 기간 혼란을 겪었다. 때문에 강한 민족국가가 성립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매킨더가 보기에 유럽의 역사는 심장지대에서 발원한 이민족에 대한 반응에 가깝다. 훈족의 침입에 앵글로 색슨 족은 브리튼 섬으로 피신해 영국을, 프랑크와 고트족은 로마속주와 협력하여 약탈에 대항해 연합하여 프랑스를, 베네치아는 아킬데이아와 파도바 사람들이 수상으로 도망쳐 세웠다. 로마교황 역시 훈족 이후 침입한 아틸라와의 협상이 잘 진행되어 권위를 되찾았고, 아바르인이 침입하자 샤를마뉴가 이를 막아내어 오스트리아가 기틀을 잡고, 빈의 요새가 강화되었다. 

 하여튼 심장지대를 유럽으로 향하는 입구이자 그 자체가 방대한 자급적인 곳이기에 공략이 어렵다. 때문에 심장지대를 차지하는 세력을 어떻게든 막아내는 것이 매킨더가 보기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번엔 독일의 시도가 있었으며 현재를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는 이시기만 해도 강국이라기 보다는 약했기에 매킨더는 러시아에 대한 경계는 많이 드러내지 않았다. 

 매킨더는 전쟁은 결국 국가간 불균형 성장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보았다. 나라간 자원과 인적 자원이 불균등하고 이로 인한 갈등이 세계대전으로 벌어진 것이다. 실제 독일은 전쟁전까지 매년 인구가 100만명씩 증가하며 폭발했고, 꾸준히 생산력은 증가하는 반면 식민지의 부족으로 시장이 부족했다. 이를 타계하기 위한 공간확보를 위해 동유럽으로 뻗어나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서유럽이 아닌 동유럽을 먼저 공략하고 이후 서유럽을 공략했다면 영국과 미국은 유럽으로의 진출로인 프랑스를 상실해 큰 곤경에 처했을 것이란게 그의 생각이다. 

 매킨더는 평화를 위해선 국제 연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세계 정치는 결국 힘의 싸움이기에 어떤 한 나라가 강대한 힘을 가져 국제 연맹의 힘을 넘어선다면 이는 국제 연맹이 무력화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국가 간 균형 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고 견제를 통해 강력한 나라가 등장하는 것, 특히 심장지대를 차지하는 국가의 발원을 막고자했다. 그는 전후처리도 중시했다. 현재 전후의 처리가 독일에 지나치게 가혹한 방향으로 간다면 다시금 곤란한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았다. 이점은 매우 탁월했다. 실제 역사는 독일에 가혹했고 그 가혹함이 더한 전쟁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매킨더는 국가 간 계급간의 연대 등도 이야기 했지만 지금이나 그 때나 어려운 이야기이고, 자신이 영국이라는 해양 세력 출신임에도 역사적 근거를 들어 결국 육지의 패권 세력이 해양 세력을 제압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해양 세력은 영원히 바다를 떠도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지원할 육상세력과 기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상세력을 막아내지 못하면 해양 세력은 힘을 다할 것이란게 그의 생각이었다. 실제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세력을 유지한 것도 진주성과 이치, 웅치에서 일본의 육상 세력이 패배하여 전라도 지역이 수호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의견은 그럴듯하지만 해양 세력의 발전 상을 내려본 듯한 느낌이 있고 지금도 역시 해상세력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견해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 책은 100년 전에 나온 책으로 지금 보면 많은 부분에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당대에 세계를 지배한 세력의 시각을 엿볼 수 있고, 전쟁 후 세계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그간의 문제점과 과오를 짚어내고 이를 반복하지 않고자 하는 시각이 재밌다. 당대만 해도 그에게 아시아는 중국과 인도, 일본 뿐이었지만 강력한 세력으로 떠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자원으로 무장한 중동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도 궁금하다. 또한 그는 공군 세력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는데 현재 전쟁을 지배하는 공군력에 대해서도 색다르게 느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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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관점을 배우다
강은주 지음 / 이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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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 책은 언제 보아도 흥미롭다. 미술 사조의 변화에 따른 흐름으로 서술하기도 하고, 사회적 변화를 따르거나 또는 선도하는 예술의 흐름에 주목하기도 하고, 혹은 단순히 시대 순으로 연대기적으로 가기도 하며, 관심 있는 예술가에 따라 서술하기도 한다. 이는 모두 미술사를 바라보는 전문가의 관점에 따름이다. 책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은 독특하게도 여성의 관점에서 미술사를 바라봤다. 이는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시도인데 책을 읽기 전부터 과연 미술사로 다룰 만큼 여성 예술가가 많았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물론 책은 이런 관념부터 비판한다. 미술 사조를 충분히 잘 따르고 대표할 만한 여성 예술가도 적잖이 있으며 이들은 그간 주류 미술계로부터 실력과는 무관하게 주목받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미국의 미술 사학자 린다 노클린은 1971년 처음으로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 라는 에세이로 이 문제를 처음 거론했다. 그는 미술사 책들이 계보 서술적 방식을 취하면서 주류 화가만을 설명하고 나머지, 특히 여성 미술가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여성을 미술계에서 지웠다고 지적한다. 여성이 미술사 계보에서 제외된 건 이런 편견 외에도 시대적 한계도 있는데 소위 주류에 들기 위해서는 중요 미술 학교 졸업이나 작품 거래, 미술관 전시 등 과거 남성에게만 주어졌던 권리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성 미술가에게 불리했던 또 하나의 조건은 미술계가 천장화나 조각상 처럼 상당한 육체적 노동과 정신 노동이 동원된 대작에만 주요 위치를 부여하고 장식이나 수공예 등 여성이 강하고 주로 천착했던 분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양식은 육체적 힘이 강한 남성이 더 유리하고 애초에 이런 대작의 의뢰는 남성주류 예술가에게만 의뢰되었으며, 이런 작품의 제작을 위해 필요한 기술 역시 남성에게만 전수되었다. 

 책은 이런 구조적 요인 이외에도 각 시대 예술 작품에 반영된 젠더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첫 번째는 누드화다. 서양 예술에서 누드는 빌렌드로프의 비너스를 시초로 본다. 하지만 서양 예술에서 누드는 그리스 로마 시대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여성에 집중한다. 이는 여성을 성적으로 탐닉하고 대상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대부분으로 그래서 작품의 누드 여성들은 대부분 전면보다는 등을 보이는 수동적 자세가 많으며, 신체 역시 미적으로 이상화하기 위해 목이나 허리가 과도하기 길어지는 등 왜곡된 모습을 보인다. 그리스 로마시대엔 남성 누드화가 많았는데 이는 당대에 여성보다는 젊고 아름다운 남성의 모습을 성적으로 탐닉하는 것이 대세였고 그 외엔 영웅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런 누드화에 변화를 보인 것은 마네의 올랭피아다. 여기서 여성의 누드는 당당히 전면을 향하고 있고 관객을 응시한다. 마네는 실제 활동하는 매춘부를 그렸는데 그렇기에 이를 바라보는 남성관람객들은 더욱 불편했을 것이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몸도 실제적이고 피부 역시 핏기가 없고 얼록이 있는등 이상화한 기존 누드와는 매우 차별적이다. 구스타프 쿠르베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세상의 기원이란 작품에서 여성의 체모가 그대로 드러난 생식기를 그렸다. 그는 하층민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드러냈는데 그런 양식이 여기에도 반영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젠틸레스키란 여성 화가가 등장한다. 그는 자화상을 그렸는데 대부분의 남성은 물론 여성화가들도 자신의 자화상을 매우 전형적으로 미화해 그린 것과는 정반대의 시도를 했다. 당시의 자화상은 남성의 경우 정면의 모습에서 몸을 옆으로 틀어 위풍당당하고 이상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여성의 자화상도 비슷했으며 화가 자신이 높은 지위가 아님에도 마치 귀족여성처럼 그리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젠틸레스키의 자화상은 소매를 걷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관람객을 의식하지 않고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다. 

 젠틸레스키는 유딧과 하녀에서도 여성의 주도적 모습을 그린다. 기존의 유딧과 하녀는 사람의 목을 베는 장면임에도 매우 수동적이고 부자연스럽게 살해하는 장면이 많았다면 젠틸레스키의 작품은 하녀와의 공조, 그리고 적극성이 눈에 띈다. 그는 유딧과 하녀를 3부작으로 그렸는데 관람객을 의식하지 않고 살해를 위한 협력에만 집중하는 하녀와 유딧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젠틸레스키는 '수잔나와 장로들' 작품에서도 여성의 주도성을 표현한다. 수잔나와 장로들은 고대 로마의 이야기로 아름다운 수잔나의 모습을 늙은 장로들이 염탐하는 장면이다. 다른 작가들은 수잔나는 염탐당하는 위기의 수잔나를 오히려 관능적으로 그리거나 수동적으로 그린 반면 젠틸레스키는 염탐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18세기 들어 여성화가 중에서도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당시는 로코코 시대로 귀족들은 초상화와 실내장식을 위한 정물화를 소비했다. 여기에 부를 쌓은 평민계층도 예술품의 소비자로 등장하여 후원계층이 많아졌고 시장도 커져 여성 예술가의 공간이 넓어졌다. 특히 인기가 많았던 풍속화와 정물화는 여성이 강점을 보이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예술은 아카데미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여성은 사실상 여기에 발을 들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카데미에선 주류 미술은 역사와 신화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고 이에 필수적인 인체드로잉을 가르쳤기에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힘든 여성들은 이 분야에서 활약할 수 없었다. 

 18세기엔 행복한 어머니 상이 예술에 자주 등장한다. 이는 계몽주의 사조와 여성의 사회 진출 때문이다. 전통적 귀족은 혈통계승에만 집중하여 자녀를 출생만 하고 자신들은 인생을 즐기며 쾌락에 빠져사는 경우가 많았다. 자녀는 출생과 동시에 유모에 양육하고 학령기가 되면 기숙학교에 진학하고 정략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러기에 부모와 자녀간 애정을 없었다. 계몽주의는 이 부분을 비판하고 부모가 직접 자녀는 양육해야함을 강조했기에 행복한 어머니 상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자 이에 불안함을 느낀 남성들이 여전히 여성들을 가정과 육아에 붙잡기 위해 이에 편승한 것도 이에 한몫했다. 이런 예술적 흐름은 평민을 넘어서 귀족과 왕족의 그림에까지 나타났으며 심지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리앙트와네트란 그림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19세기엔 여성의 사회진출이 더욱 활발해지고 활동하는 공간도 넓어진다. 직업군도 다양해져 기존의 유모와 가정교사외에도 카페 여급이나 무희, 발레리나, 술집 종업원 등으로 확장한다. 하지만 한계가 뚜렸하였고 매춘부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여성의 사회진출을 성적 타락과연결시키는 예술적 시도가 많아졌으며 이에 타락한 여성상이 등장한다. 

 타락한 여성상의 대표적 시도는 팜므파탈이다. 팜므파탈은 관능성과 이를 바탕으로 남성을 파괴하는 파멸성을 가진다. 팜므파탈의 주요 소재는 이브와 샬로메, 유딧, 데릴라다. 이브는 남성에게서 태어나 인류에 선악과 수치심을 가져온 원죄의 상징이다. 샬로메는 헤롯왕의 의붓딸로 관능적인 춤의 대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 인물이다. 유딧은 원래 유대민족의 영웅이지만 적장의 목을 베는 팜므파탈로 변형된다. 데릴라는 삼손을 유혹해 그를 파멸로 이끄는 인물이다. 이 같은 팜므파탈은 산업혁명으로 여성의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고 피임률이 올라가며 전통적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자 위협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이처럼 미술 작품 속 여성의 이미지에는 시대 흐름에 따라 중시되는 사회적 가치관이 투영된다. 책에서 강조하는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책은 산업혁명 초기까지를 다루며 후속 권을 예고한다. 아마도 현대 예술에서 여성의 약진과 여전한 한계 및 제약에 대해서 다룰 듯 하다. 다음 권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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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중 추리 소설과 과학 소설을 조금 보는 편이다. 그 중 재밌고 읽기도 상대적으로 쉬우며 과학이 관심이 좀 있어서 SF 소설은 상대적으로 더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얼마 전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새로 나와 보게 되었다. 테드 창은 유명한 작가인데 그 전에 읽었던 '숨'은 생각만 큼 인상적이진 않았다.

 읽은 과학소설 중 최고봉은 단연 '삼체'다. 중국 작가 류츠신의 책으로 제목이 삼체라 그런지 총 3권인데다가 1에서 3권으로 갈수록 더욱 두꺼워진다. 각 권은 이어지는 내용이지만 중심인물이 마치 세대교체하듯 모두 다르며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펼쳐진다. 지구에서 비교적 가까운 삼체행성이 지구 문명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지구를 차지하기 위해 오는 이야기로 그들이 오게된 경위와 오는 과정에서 자신들보다 잠재력이 높은 지구 문명의 발전을 저해하기 위한 공작 등이 매우 재밌게 펼쳐진다. 결국 지구는 이들에게 당하게 되는데 그 가정도 자못 흥미롭다.

 '멀리가는 이야기'는 한국 작가의 책으로 과학소설을 읽기 시작한 무렵 막 읽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광속으로 여행하며 어떤 문명엔 유전자 단계부터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기제를 넣어놓기도 하며 몸에 나노머신이 있어 웬만한 치명상엔 죽지도 않는 사람의 이야기, 인간의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 인간의 육신을 초월해 인공지능과 결합해 영생을 누릴 단계에서 자녀는 그러한 삶은 선택하고 부모는 인간으로써 죽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자녀는 받아드리지 못하는 이야기 등이 기억에 남는다. 

 역시 한국 작품으로 김초월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과 '지구 끝의 온실'도 좋았다. 사실 장편인 지구온실 보단 빛의 속도가 더 좋았는데 단편집이어서 그런지 기발한 이야기들의 엮임과 과학소설이지만 그걸 소재로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부분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쿼런틴'은 최근 읽은 것으로 나온지 오래되었지만 역시 소재는 매우 창의적이다. 양자역학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인간이 관측하기 시작하면 확률이 무너지고 대상이 고정되는 매우 당연하면서도 이상한 사실이 오직 인간에게만 가능한 것이란 생각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때문에 인간의 과학기술이 발전해 우주의 관측 범위가 넓어질 수록 우주는 다양하고 혼재된 세계에서 하나의 고정된 대상만 남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한 외계문명이 태양계를 둘러싼 거대한 막을 쳐서 제목처럼 인간을 '격리'시켜 버린다.

 '멸망' 3부작 시리즈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불에 타고 모든 것이 크리스털로 결정화되고, 모든 것이 물에 잠겨 세계가 각각 멸망으로 향하는 3가지 책이다. 제목은 시리즈 느낌이 드나 사실 전혀 연결되지 않고 각각의 책이 모두 독립적이다. 이 중 가장 재미난 것은 물 시리즈로 오래전 나온 책임에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가 상당 부문 수몰되고 기온이 크게 올라 극지방에서 밖에는 살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낮이 너무 뜨거워 기온이 겨우 30도 정도인 새벽이나 아침에만 일하는데 한 낮엔 온도가 거의 50-60도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그 지역이 런던이란게 기막힌 설정이다.  

 사람들은 뭔가가 현격히 다른 수준을 보이면 흔히 차원이 다르단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게 소설 '플랫 랜드'다. 제목처럼 이차원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3차원이 얼마나 대단한 존쟁임을 보여준다. 이차원 세계가 있는데 한 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면 모든 것들이 그 쪽으로 쏠리는 힘을 받게 된다. 이들은 이걸 중력처럼 받아들인다. 이차원엔 오각형도 삼각형도 원도, 사각형도 있다. 사람들은 정면만을 볼 수 있기에 이들을 모두 비슷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이차원에서도 이들의 다른 모습을 어렴풋이 여긴다. 3차원에선 이차원 도화지의 어느 곳이나 순식간에 갈 수 있다. 또한 이차원을 구부려 서로 만나게 할 수도 있다. 이들에게 이것은 마치 웜홀 같은 일이다. 하여튼 오래되었음에도 정말 재미난 설정의 책이었다. 4차원 세계의 외계인이 있다면 우리 인간은 플랫랜드 사람들 같은 것이다.

 '더 로드'는 크리스천 베일 주연으로 영화화 된적도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핵전쟁이나 소행성 충돌 혹은 거대 화산 분출 같은 거대한 불로 인해 세계는 망해버린다. 인간들은 초기 잘 모이기도 했지만 결국 야만화한다. 약탈자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이 와중에 주인공 부부는 아이를 낳는다. 엄마는 견딜 수 없는 현실에 세상을 등져 버리고 아버지 홀로 이 아이를 키워 나간다. 영화에선 벙커, 소설에선 한 주택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모처럼 괜찮은 비상식량을 얻어 만찬을 즐기며 잠시만의 평안을 누리고 그 와중에 이들을 노리는 약탈자들의 모습이 긴장감이 넘친다. 

 '숨'은 마치 증기기관 처럼 인간의 뇌와 인지가 기압에 의해 유지되는 세계를 묘사한다. 그런데 인지능력이 저하되는 사람이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조사 결과 이는 대기압이 점차 변화하기 때문으로 밝혀진다. 인간 내외부의 기압차가 사라지면 공기의 흐름은 멈추고 인간의 뇌도 멈춰 결국 세계는 지적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이고 만 것이다. 

 '종이 동물원'은 여러 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야기들이 전체적으로 기발하고 매우 재밌으며 과학소설로의 장점도 놓치지 않으면서 인간적인 부분을 잘 후벼판다. 최근 시류와 맞물려 기억에 남는 부분은 먼 미래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해지며 인류 역사상 일어났던 잔혹한 학살이나 전쟁범죄등에 대한 확인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역사를 부정하던 가해국가들은 초기 충격을 받지만 곧 이조차도 부인하는 놀라운 정신승리를 보여준다. 일본과 한국 보수층의 만행을 보고 있으면 가끔 그들의 머리에 그들 조상이 친일했거나 조선인을 학살하고 괴롭히는 모습을 재생시켜 주고 싶다는 충동에 빠지는데 소설을 보다보니 어쩌면 이조차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sf의 힘'은 과학소설 자체는 아니지만 인공지능, 외계인등 과학기술에 대한 인간의 논의를 전개시키며 이들을 다룬 과학소설을 소개하고 등장시키며 인간의 생각을 조망한다. 한국 작가가 쓴 책인데 많은 과학소설을 추천 받을 수 있고 이런 시도 자체가 독특하고 인상깊었다.

 마지막은 이번에 본 책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다. 역시 과학소설 단편 모음집으로 바벨탑을 다룬 이야기, 강화 인간 이야기 등이 있다. 인상 깊은 에피소드는 칼리란 도구에 관한 책이다. 이는 인간 뇌 신경 일부를 마비시켜 상대방의 외모에 대한 성적 반응을 사실상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리를 장착한 인간은 어떤 외모를 보아도 어떤 감흥이 없고 철저히 상대방의 내적인 면에 의해 이끌리게 된다. 그래서 외모가 출중한 영화배우, 탤런트, 모델등을 보아도 감흥이 없다. 일부는 칼리를 중단하고 이런 것을 느끼며 처음으로 자신의 외모가 어떤지에 대해 신경쓰게 된다. 

 과학소설을 늘 읽어도 어려지만 재밌고 술술 읽힌다. 소설에 따라 과학적인 부분에 더욱 신경을 써서 그것 자체가 주제인 경우도 있으며 과학은 그저 외피이고 인간적인 이야기에 치중하는 것들도 있다. 모두 재밌고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더 많은 양질의 과학 소설이 한국에서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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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디드 수업 디자인 - 다양한 수업 경험을 설계하는 디지털 도구 활용과 사례
박영민 외 5명 지음 / 프리렉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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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의 긴 그림자가 마침내 사라져간다. 학교는 작년부터 전면 등교를 시작했고, 올해 초부터는 실내 마스크가 해제 된 데 이어 곧 대중 교통 내에서의 마스크 착용도 해제될 듯 하다. 코로나로 원격 수업을 하면서 그간 교육 현장에선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블렌디드 수업이 한창 진행되었다. 블렌디드 수업은 글자 그대로 가상 공간과 실제 세계에서의 수업을 혼합하는 것이다. 코로나 2년 차인 2021년부터는 학교에서 등교와 원격이 병행되었기에 이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면 등교가 시작된 작년부터 학교 현장은 다시 디지털 도구들과 급격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직 학교 교육에 디지털은 어렵고 일선 교사들에게 멀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녹록지 않다. 세계는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향하고 있으며 이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교육 현장은 디지털 전환을 한 번 놓친 적이 있다. 2015년 당시도 지금도 교육부 장관인 이주호 장관은 그 당시에 모든 학교 현장에 테블릿 기기를 학생 일인당 한 개 씩 모두 지급하고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려고 했었다.(물론 잘 되지 않았을 것 같지만) 거기에 당시 불던 코딩 교육 열풍에 2015 개정 교육 과정에도 이게 반영되었다.(하지만 초등과정 전체에 고작 17시간, 중학교는 34시간 고등학교 68시간에 불과했다.)

 이처럼 당시 시기를 놓치다보니 한국 교육 현장은 디지털 전환에 선도적으로 진입할 시기를 크게 뒤로 미루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혁신 교육에 갖고 있는 일부 불만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이번 지선에서 보수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데는 미래교육을 강조한 점도 작용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때문에 어렵지만 공교육 차원에서 디지털 세계에서 살아갈 학생들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해줘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곧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도입될 학교자율시간 등을 이용해 학교교육과정 내에 디지털 교육 시간을 배정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코딩, 3D프린팅, 메타버스 교육 등에 대한 개념 이해와 활용, 창작 등이다. 그리고 더 좋은 방법은 일반 교과교육과정 내에서 이 도구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MS팀즈나 구글클래스룸 같은 도구들은 학생들의 협업이나 글쓰기, 프로젝트 수업 등에 매우 유용한 도구들이다. 

 그리고 메타버스나 코딩, 3D 프린팅, 인공지능 교육 등도 일반 교과에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좋은 말과 나쁜 말을 구분하는 인공지능, 서양화나 동양화의 화풍을 구분하는 인공지능, 간단한 스케치를 괜찮은 그림으로 바꿔주는 인공지능은 각 교과의 여러 성취기준에 어울린다. 또한 3D 프린팅은 수학과나 미술과에서 많이 활용이 가능하다. 다양한 디자인으로 작품을 만들고 도형을 이용해 여러 이동이나 조형물을 만들 수 있으며 입체도형 자체의 회전 및 관찰에도 좋다. 메타버스는 학생들의 여러 산출물을 전시하여 공유하거나 혹은 메타버스 자체를 구축하여 여러 성취기준을 달성하는데 유용하다. 

 이처럼 교사의 노력으로 학교 현장에서의 디지털 전환은 충분히 가능하다. 남은 건 생각과 노력 뿐이란 생각이다. 책에는 이런 수업을 위한 다양한 도구들이 나와 있다. 도구는 생각보다 무척 많으며 한국에도 쓸만한 것들이 더러 있다. 이런 것에 모두 통달할 필요는 없다. 한 두 개만 잘 활용해도 성공적으로 디지털 전환한 교육을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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