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능력주의와 관련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능력주의는 요즘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그 역사적 기원은 상당히 길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기여하는 것이 많으니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그에 따라 더 많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누려야한다는 것. 이는 매우 합당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족이나 왕족 등 사회적 계급이 있어 모든 것이 세습되는 사회에서도 제한적인 범위내에서의 능력주의는 통용되었다. 실무능력이 있는 관료는 계급사회에서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무 관료 선발하는 동아시아의 과거 시험 같은 것이 그 예다.

 이렇게 면면을 유지해오던 능력주의는 세습귀족 사회가 붕괴하면서 그 전기를 맞는다. 민주주의 사회가 열렸고, 산업화를 기반으로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해지면서 모든 사람에게 교육기회가 열렸다. 세습귀족 사회 붕괴의 초창기라 교육에 의한 사회적 이동성은 매우 활발했고, 어리석은 귀족에 의한 지배에서 자신들의 대표, 그리고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여 그 대표로 선출된 자들에 대한 신뢰와 선망은 하나의 신화를 낳았다. 이는 비교적 세습귀족 사회가 최근에 붕괴하고 고속성장한 한국에서 매우 극적으로 작용했지만 사실 좀 덜할 뿐 다른 서구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극심해지면서 능력주의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소위 능력을 가졌다고 판정된 소수에게 더욱 많은 부와 사회적 명성이 몰렸기 때문이다. 책 '당선합격계급'은 시험의 신뢰성과 공정성에만 집착하여 정작 제대로된 능력을 살피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종합적 비판이었다. '시험능력주의'에서는 교육 제대로 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시험을 통과하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과도한 특권을 주는 것을 비판했다. 그리고 사회와 교육 양자가 같이 변해야 진정한 교육개혁과 사회변화가 가능함을 역설했다. 

 센델의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작년 EBS 위대한 수업에서 처음 봤었다. 코로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센델은 위대한 수업에 등장하는 학자들 중 원격으로 연결해 청중들을 상대로 직접 강의를 펼쳤다. 당시 많은 방청객이 있었는데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은 교사들이 많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교육의 목적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교사는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자신이 각고의 노력 끝에 능력이란 걸 입증받아 한국에서 되기 어려운 교사가 될 수 있었고, 역시 자신처럼 능력을 입증받아야 좁은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 그 능력을 획득하도록 가르치고 노력하도록 격려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센델의 능력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과 문제점 지적은 당시 한국 방청객들에게 제법 큰 각성과 충격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능력주의는 이토록 세계적으로 강고하면서도 의외로 20세기와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는 두 자유주의에서 모두 부정한다. 두 자유주의는 시장주의 자유주의와 평등주의 자유주의다. 시장주의 자유주의의 선두주자는 하이에크로 그는 능력주의와 부의 상관성을 부정한다. 하이에크가 보기에 시장에서 가치는 단지 소비자가 상품에 얼마만큼의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와 관련한다. 그래서 시장주의 자유주의에서 개인의 소득과 부는 그 개인이 제공할 수 있는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반영한다. 그리고 그 재화와 용역의 가치는 수요와 공급의 우연한 일치에 좌우된다. 때문에 개인이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인 재화와 용역은 미덕이나 도덕과는 완전히 무관하다.

 복지국가 자본주의는 롤스의 철학에 기반한다. 정의론에서 그는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여 계층 차이에 따른 불이익을 완전히 보상해주는 체제를 주장했으며 설사 그런 사회가 가능하다 해도 정의로운 사회라고 부르기엔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롤스는 재능있는 자에게 핸디캡을 주기보다는 그가 얻는 승리의 과실을 불운한 다른 이들과 나누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차등의 원칙이다. 롤스에게 자연적 재능의 분배상태는 공동자산에 가깝다. 때문에 그 분배에서 비롯한 편익은 무엇이든 공동체에 향유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개인의 노력 역시 그것을 뒷받침 하는 가정, 사회적 환경에 의해 좌우되기에 그것에 의한 과실 역시 나눠져야한다고 보았다.

 즉, 하이에크나 롤스 모두 정의의 기반으로 능력이나 자격을 옹호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능력주의적 직관은 정치적 성향을 불문하고 널리 퍼져있다. 특히, 1970-80년대에 시작된 신자유주의 시대는 이후 수십년간 능력주의 가치와 행동방식이 부흥하도록 길을 열었다. 그 결과 지금의 능력주의는 큰 부작용들을 많이 낳았는데 센델은 3가지를 지적한다. 우선, 사회적 연대외 약화다. 능력이 부족해 세계화에 뒤쳐진 이들은 사기가 꺾인다. 둘째는 학력주의 편견의 조성, 그리고 마지막은 사회정치적 문제를 고도의 교육을 받고 가치중립적인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되어 능력주의의 승자들만이 정치경제권력을 차지하고 이들이 이를 당연시하고 자신들만의 위한 정책을 펼쳐 민주주의가 타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능력주의 패배자들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몰락으로 정치집단에 분노하였고 이는 외부 집단에 대한 배척과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서국각국에서 권력을 차지하는 모습으로 귀결되고 있다(영국의 브렉세트, 미국의 트럼프,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

 이렇게 된 데는 복지국가 자유주의 진영, 즉 좌파진영이 능력주의로 기운 경향이 크다. 원래 우파는 고학력자들의 지지를 좌파는 저학력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서구의 좌파정당들은 어느새 고학력자들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합리적 고학력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성차별, 인종차별, 종교차별을 주장한다. 이는 극히 옳은 일이나 문제는 이런 차별이 전체의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없애 기회의 균등을 추구한다는 점에 있다. 이는 능력주의와 이어지는 지점으로 이로 인해 그런 차별폐지로 인해 세계화의 물결속에 자신들의 일자리를 잃어버린 저학력 노동자들은 이런 차별을 지지하는 우파로, 반대로 이런 차별폐지에 찬성하는 고학력자들이 좌파로 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좌파의 시도는 결국 능력주의만을 강화시킨 결과를 낳았다. 능력주의를 통해 선택된 부유한 유력자들은 이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들의 트구건을 영구화하고 전문직업인 계급은 자신들의 유리함을 이용해 이를 자녀에게 물려줄 방법을 찾아내며 이는 매우 성공적이다. 실제로 한국을 포함한 서구 전체사회에서 부와 지위, 학력의 대물림은 세습귀족 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세습되고 있다. 결국 능력주의가 세습귀족제로 탈바꿈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능력주의는 매우 옳지 못하다. 우선 내가 가진 재능은 사실 나 자신의 노력보다는 행운의 결과에 가깝다. 내가 가진 재능은 유전, 그것도 우연한 행운에 의한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선수는 매우 열심히 노력하겠지만 반드시 그가 세계에서 최고로 노력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수많은 선수들이 타고난 재능이 부족해 그를 이길수 없다. 또한 재능이라는 것은 사실 매우 측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능력주의는 타당성이 높은 방법이건 한국처럼 타당성이 매우 낮은 방법이건 일종의 허들을 넘어서서 인정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완벽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세계최고 프로구단의 스카우터들도 잘못된 영입을 매우 많이 하며, 유수의 기업이나 대학 역시 잘못된 인재를 많이 뽑으며 뛰어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대단한 아이유가 한국의 한 대형기획사에 뽑히지 못한 것은 유명한 예다. 

 그리고 재능은 그 재능을 후하게 보상하는 사회에 철저히 의존한다. 최고의 축구 재능을 가진 천재는 지금의 시대에선 엄청난 부와 명예를 쌓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프로축구와 월드컵이 존재하진 않는 시대에 살았다면 그저 발힘과 달리기가 빠른 사람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또한 동시대에 살았더라도 그의 축구재능을 이끌어줄만한 스포츠 체계가 잡히지 않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역시 빛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천부적 행운과 사회적 배경이라는 우연에 의존하는 재능에 의한 능력주의는 쌍방향적 폭력을 낳기도 한다. 우선 능력주의는 금과옥조인 우리는 개인으로서 우리 운명의 책임자다라는 도덕률을 낳는다. 때문에 패배자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며 극심한 사기저하와 더불어 굴욕감을 갖게 된다. 반면 승자는 자신의 가치를 계속해서 입증해야 하기에 불안증, 완벽 강박주의 ,능력주의적 오만을 갖게 된다. 

 센델은 이런 능력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책 말미에 제시한다.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이후 세계는 시민에 대한 생산자 복지보다는 소비자 복지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소비자 복지에서  공동선은 소비자 부의 극대화로 즉 경제성장이다. 때문에 보다 싸게 생산할 수 있는 곳으로 마구잡이로 외주화가 이뤄지며 경제는 개방되고, 이로 인해 저학력층 위주로 실직과 임금정체가 이어졌다. 실제 저학력 계층은 이 기간 중 구매력의 저하도 겪었지만 생산자로서의 지위 상실이 그들의 가장 큰 시련이었다. 시민적 개념의 관점에서 인간이 경제적으로 수행하는 가장 큰 역할은 소비자보다는 생산자 역할이므로 센델은 경제규모의 극대화에서 일의 존엄과 사회적 응집에 친화적인 노동시장 중심으로의 관점 이동을 촉진한다. 

 또 다른 해결책은 사회지도층, 즉 정치부분 대표의 선발 방식 변화다. 지금은 투표에 의해 대표를 선출하고 있으나 말이 선출이지 한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 선출가능성이 있는 계층은 능력주의의 관문을 통과한 승리자들 뿐이다. 실제 2차대전 기간 중 영국이나 미국의 선출직이나 정치인들은 비대졸자 및 저학력 계층들이 과반수 이상이었다. 하지만 현재 선출직 중 저학력 계층 출신은 매우 극소수에 불과하다. 때문에 지금의 선출직들은 대다수 능력주의 소외자들의 정치적 문제나 욕구에 무관심하며 이를 해결할 의지가 부족하다. 이는 민주주의의 파괴로 이어졌으며 정치적 무관심 및 세계각국에서 극우정치가 다시 들어서는 계기를 주고 말았다. 때문에 센델은 추첨에 의한 선발을 주장한다. 정치에 있어 필요한 것은 확실하지도 않은 재능에 의한 능력이 아닌 도덕적 인성과 통찰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표준화된 시험이나 명문대 출신이라고 해서 보장받는 것이 아니다. 센델은 오히려 과거 정치계층의 학력이 낮았을 때 정치적으로 옳은 선택이 이뤄졌으며 갈수록 고학력층으로 이뤄진 지금의 선출직들이 점점 무능한 결정을 내리는 사례를 들고 있다. 

 센델은 능력주의가 천부적 행운과 사회적 우연,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성공이 다른 사람에 의해 철저히 빚지고 있다는 것을 능력주의의 통과자들이 깨달을 때 겸손함과 부끄러움 공동선에 대한 의식을 가질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렇다. 내가 성공적인 앱을 개발해 부를 갖게 된다면 그것은 스마트폰을 사서 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한 것이며, 그전에 스마트폰을 개발한 사람, 이 인터넷망을 가능하게 하며, 나라의 경제규모등 많은 사회적 요소에 의존하는 것이다. 또한 앱을 개발한 나의 재능은 천부적 우연에 의한 것이며, 노력과 학력을 쌓는데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다. 능력주의의 승리자들이 인식해야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승자도 패자도 이런 것을 자각해야 센델의 말처럼 새로운 공동선을 향한 노력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11-09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이달상 이관왕 추카합니다
11월 건강 잘 챙기세요 ^^

닷슈 2022-11-10 21:23   좋아요 0 | URL
스콧님은 늘 항상 이관왕이신 것 같습니다. 부럽고 축하드립니다.

서니데이 2022-11-09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닷슈 2022-11-10 21: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글 써주셔서 좋습니다.

thkang1001 2022-11-09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이관왕에 선정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닷슈 2022-11-10 21: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알라딘 활동량이 정말 많으십니다.
 
대한민국의 시험 - 대한민국을 바꾸는 교육 혁명의 시작
이혜정 지음 / 다산4.0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적어도 중고교까지 한국 학생들의 학업수준이 높다는 건 사실이다. 단순암기 뿐만 아니라 창의력등 고등 사고력도 높게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그런 자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행학습과 지식암기위주의 교육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선행은 그런 고급사고력도 높아 보이게 만든다. 상황은 고등교육, 즉 대학에서 부터 역전된다. 

 대학부터 학생은 사실상 지식 생산자가 된다. 논문을 쓰기 때문이다.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사안을 창의적으로 바라보고 재조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즉, 문제를 창출하고 그 해결과정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인데 고교까지 꺼내는 교육이 아닌 집어 넣는 교육만 가능한 한국학생은 여기서부터 뒤쳐지게 된다. 때문에 한국 학생들의 서구권 대학에서의 중도탈락율은 높다. 

 저자는 오래전 회자되었던 서울대에서 에이플러스를 받는 것에 대한 다큐의 관련자다. 나도 대학에서 느낀 것이지만 고등교육에서도 한국의 수업과 교육은 비슷하다. 교수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그 관점과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다. 토론은 사실상 거의 없으며 그나마저의 토론도 학생들끼리다. 교수와 대담하며 진행되는 수업은 사실상 없다. 설령 공부하며 교수와 다른 가치와 지식을 갖게 되어도 이를 답안에 쓰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교수의 그것을 따르는 것에 비해 낮은 학점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이런 경우 사실 자신에게 대드는 듯한 기분과, 자신의 수업을 성실히 수강하지 않았다는 편견을 갖는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설득력이 낮기에 평점을 낮게 주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서구의 교육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주어진 답변만을 충실히 써내려는 답안을 가장 낮게 평가한다. 

 하여튼 저자는 한국의 교육의 문제를 이런 평가에 있다고 지적한다. 주어진 답안을 써내는 교육만을 하니 교육수준이 높을 수 없다는 것이며 IB처럼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가는 교육과정과 수업, 그리고 평가를 해야만 교육이 바뀔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지극히 옳은 말이다. 초중고, 특히 입시와 직결되는 고교 및 대학입시의 평가가 이렇게 바뀐다면 한국 교육은 상당히 바뀔 수 밖에 없다. 혁신교육의 실패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결국 입시가 이것에 맞추어 바뀌지 않았던 탓이 크다. 그렇기에 혁신 교육은 초등에서 중학교, 고교로 갈수록 그 위세가 약하며 반발도 심했다. 

 하지만 평가만 바뀐다고 해서 모든 게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사회도 같이 바뀌어야 이런 교육도 더욱 빛을 발하고 부정적인 요소를 줄여 진정성 있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서열화와 능력주의에 빠진 상태에서 이렇게 평가만 아름다워진다면 그 아름다워진 평가에서 능력주의로 무장한 인재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물론 이번엔 다소 진정한 능력을 갖춘 자들이 배출된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긴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존케이지의 4분 33초란 음악이 있다. 피아니스트가 무대 가운데의 피아노를 향하여 그 앞에 앉고 악보를 보고 마치 연주할 것만 같다. 청중은 일상적인 연주회처럼 뭔가 기대를 하고 기다리다 곧 이상함을 느낀다. 작은 웅성거림도, 투덜거림도 있었을 것이지만, 무척이나 이상스러운 길고도 짧은 4분 33초를 어떻게든 참아냈을 것이다. 시계를 보던 연주자는 4분 33초가 지나자 인사를 하고 나가버린다. 이 이상스런 상황에서 청중이 만들어낸 모든 소리와 반응, 이게 존케이지가 만들어낸 4분 33초란 음악이다. 

 이건 음악사에 있었던 일인데 그걸 책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아마 이 책 관객모독이 그 자릴 차지할 듯 하다. 책은 무척 얇지만 상당히 이상하다. 책 설정상으로는 독자는 연극을 보러온 관객이다. 그리고 화자는 무대에 선 단 한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주구장창 설명만을 해댄다. 관객들에게 인내심과 교양을 요구하든, 말이 되면서도 안되는 소릴 하면서도 꾸준히 여러분이란 존칭을 한다. 이게 아마 관객이 참아내게 하는 장치일 듯 하다. 

 그의 설명은 연극을 보러온 나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연극이나 영화같은 것을 보면 우린 편한 자리에 앉아 어느샌가 나를 읽고 가상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공감하며 희노애락을 느낀다. 하지만 서서 본다면, 또는 무대의 경계를 의식한다면, 뭔가 달라질 것이다. 하여튼 그는 이런 식의 설명을 장황하게 한다. 집중하기 힘들다. 하지만 곧 뭔가 시작되겠지란 기대감으로 인내하며 버틴다. 좀 독특한 연극인것 같다란 느낌으로

 그런데 갑자기 무대의 그가 돌변한다. 갑자기 너란 반말을 시작하며 모욕적 언사를 쏟아 붇기까지 한다. 당황스럽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이상했는데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그리고 결국 연극은 애초에 없었음을 선언하고 급기야 무대에서 나가버린다. 아마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연극을 연출 한 것 같다. 이상한 말을 하면서 짧은 시간동안 정상적인 연극을 기대한 사람들의 또 다른 반응을 보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본색을 드러내며 그것을 절정으로 이끄는 것, 그런 관객을 무대이자 연기자로 관객으로 만들어버리는 연극 말이다.  

 이런 걸 직접 괜찮은 극장 공연에서 당한다면 어떨지 상상해봤다. 독특하고 괜찮은 경험일 것이다. 물론 결국엔 제대로 된 연극을 보여주긴 해야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10-19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7분 23초. 뭐 이런거 하면 잡혀가겠지요 ㅎㅎ 저는 백남준 악기 부수는거 보고도 아… 예술은 참 어렵구나 했어요. 관객모독이 이런 내용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닷슈님 *^^*

닷슈 2022-10-20 13:00   좋아요 1 | URL
백남준은 소싯적엔 동물 모가지를 전시장 앞에 걸어 놓았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미니님 연주를 하시나 보군요. 부럽습니다.

mini74 2022-10-20 13:03   좋아요 1 | URL
헉. 동물모가지 정말 현대예술은 어려워요 ㅠㅠ 저 연주 못해요 닷슈님 ㅋㅋ 존 케이지처럼 가만 있음 어떨까 욕먹겠지 하면서 상상해봤어요 *^^*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
 
IB를 말한다 - 대한민국 미래 교육을 위한 제안
이혜정 외 지음 / 창비교육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통령이 바뀌고 두 달 후 지방선거에서 교육감들도 많이 바뀌었다. 지난 지선에선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반면 지금은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룰 정도로 지형이 달라졌다. 특히, 3선을 했던 경기와 강원은 보수교육감으로 바뀌어 기존 혁신교육의 대대적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IB가 많이 회자된다. IB는 국제 바깔로레아로 프랑스의 바깔로레아 체제를 국제표준화한 것이다. IB는 196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등 국제기구 주재원, 외교관, 해외주재 상사의 자녀들을 위해 개발된 것이다. 이 자녀들은 이동이 많았기에 특정국가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기는 무리였고 때문에 국경을 넘나드는 교육과정이 필요했다. 한국에서는 대구와 제주가 IB를 하고 있으며 경기도는 대대적 도입을, 서울은 부분적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IB는 4개의 프로그램을 갖는다. 초등, 중등, 고등 디플로마 프로그램, 직업교육 프로그램이다. 이중 고등 디플로마 프로그램이 1968년부터 가장 밀도 있게 운영되고 있다. 초중등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무교육과정이기에 IB는 교육과정의 골조만 제공하여 각 국가의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끼워넣을 수 있게 구성되었다. 

 IB의 교육목표는 다음과 같다.

1. IB는 다른 생각들 간의 이해와 존중을 통해 좀 더 평화롭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탐구심있고 박식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을 양성한다.


2. 이를 위해 IB는 학교, 정부, 국제기구들과 협업하여 국제적인 교육과 엄정한 평가의 도전적 프로그램을 발전시킨다.


3.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 학생들이 좀 더 적극적이고 공감력 있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도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평생 학습자로 성장하게 한다.


이런 목표로 인해 IB는 교과서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을 넘어서 학생 각자의 생각을 개발하게 끔 하는 교육구조를 형성한다. 그리고 시험보다는 과정중심평가를 하며 평가성적을 누적시키기보다는 과정을 통해 노력으로 드러난 최종 성적을 반영한다. IB의 인재상은 탐구적 질문을 하는 자로 탐구적 질문이란 세상에 대해 자신만의 의문과 호기심, 궁금증을 발굴하는 것이다.


 다음은 IB의 학습자상이다.

1. 탐구적 질문 2. 지식 3. 생각 4. 소통 5. 원칙과 소신 6. 열린 마음 7. 타인을 배려

8.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 9. 균형 10. 성찰


 IB학교에서는 이런 학습자상의 달성을 위해 개발할 지식, 역량, 기능, 태도를 명시한다. 그리고 학생에게 유의미한 학습 활동을 허용한다. 학생이 자신이 사는 개인, 지역, 국가, 세계의 이슈에 대해 자각하게 하며, 교육과정은 학생의 경험과 연관되게 구성한다. 

 IB에서 가르침과 배움은 구성주의적 접근이다. 탐구적 질문하기-수행하기-성찰적 생각하기-다시 탐구적 질문하기-수행하기-성찰적 생각하기-다시 탐구적 질문하기의 순이다. 즉, 탐구적 질문하기와 수행하기, 성찰적 생각하기가 계속 맞물리며 학습과 질문을 심화해나가는 것이다. 

 IB는 탐구적 질문에 기반하는데 이는 학생이 스스로 정보를 찾고 이해한 바를 구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IB는 개념 이해를 강조하는데 개념 이해를 심화하고 연계성을 찾아내어 학생들에게 새로운 맥락으로의 전이학습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IB는 지역적이고 구체적인 맥락이해와 연결을 하는데 실제 삶의 맥락과 실례를 가르침으로써 학생들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그들을 둘러싼 세계를 연결해서 새로운 정보처리, 지역적 정체성과 확장된 시야를 갖추게 하는 것이다. IB는 효과적인 팀워크와 협력에 집중하며 학습의 장벽이 되는 국가, 지역, 계층간 경계를 제거하여 개별화한다. IB는 평가정보를 잘 활용하는데 평가를 형성평가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IB 디플로마는 취득을 위해 고급수준 3과목, 표준수준 3과목 이수가 필요하다. 과목당 최고 7점이다. 표준수준 과목은 2년간 150시간, 고급수준 과목은 2년간 240시간이 필요하다. 이외 소논문, 지식론, 창의봉사체험활동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평가는 전 과목 논술, 수행평가이며 최종 점수에 내신이 포함되고 모두 절대평가다. IB 디플로마는 총 45점 만점으로 과목 6개*7점, 그리고 소논문이 3점이다. IB 디플로마는 지식론이 의무교과다. 지식론은 우리가 배우는 지식이 무엇이고, 이것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배우는지를 아는 것으로 즉, 학습에 대한 메타인지 교과다. IB 디플로마의 소논문은 대학수준 쓰기는 아니다. 영어4000자 이하의 글쓰기로 실제 어떤 문제를 발굴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연구절차를 경험하는 것이다. 창의체험봉사활동은 주3-4시간 씩 18개원간 150시간을 하는 것이다. 학생이 그 과정을 온라인에 스스로 입력한다. 

 중학교 프로그램은 5년 과정이다. 각 나라의 학제에 따라 2,3,4년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중학교 프로그램도 10가지 학습자상이 같이 제시된다. 8개의 과목군이 있으며 매년 각 최소 50시간의 교과별 수업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8개 과목군은 모국어, 외국어, 사회, 수학, 과학, 체육, 보건, 예술, 디자인이다. 교사는 좋은 탐구형 질문을 설계할 수 있도록 수업설계도구를 제공하는데 주요 콘셉트, 교과별 관련 콘셉트, 글로벌 맥락이 그것이다.

 콘셉트는 학습의 기반을 형성하는 거시적 아이디어 렌즈다. 중학IB는 16개 주요콘셉트, 그리고 교과별 12개 콘셉트를 제공한다. 심미, 변화, 의사소통, 공동체, 연결, 창의성, 문화, 발달, 형태, 글로벌 상호작용, 정체성, 논리, 관점, 관계, 시간장소공간, 체제다. 중학 IB에서 교사는 주요 콘셉트, 교과별콘셉트, 글로벌 맥락을 도구로 하여 각 국가의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탐구할 질문과 수행과제를 설계하고 평가를 진행한다. 중학교 IB의 글로벌 맥락은 정체성과 관계, 시간과 공간의 방향성, 개인적 문화적 표현, 과학기술혁신, 세계화와 지속가능성, 공정성과 개발이다.

 초등 IB는 학생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하여 배운 내용을 이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존 지식을 새롭게 경험하는 것과 연계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교사의 역할은 학생의 과거인식과 현재인식을 제대로 관련 짓게 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아동이 지역 사회에서 경험한 사례를 세계적 맥락에서 볼 수 있게 협력과 소통을 강조한다. 초등에서는 8개의 콘셉트가 제시된다. 형태, 기능, 인과관계, 변화, 연결, 관점, 책임, 성장이다. 이들 콘셉트는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것이며 일반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고차원적 사고를 하는 추상적인 것이다. 초등에선 태도가 제시되는데 감사, 노력, 자신감, 호기심, 공감력, 열정, 독립성, 진실성, 존중, 인내다. 초등 IB 에는 중학교의 글로벌 맥락에 연계되는 융합교과적 주제가 제시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있는 시간과 공간은 어디인가, 어떻게 우리 자신을 표현하나,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나, 어떻게 우리를 조직하나, 지구를 공유하기이다.

 책에는 구체적 수업 사례는 등장하지 않지만 국어과를 예로 IB수업과 일반 수업의 차별점을 든다. IB는 작품을 통으로 보고, 학생과 교사가 학습할 작품을 선택하고, 대화와 토론을 진행하며, 자신의 생각을 길게쓰고, 수업중 협력한다. 하지만 일반 국어수업은 작품의 일부분만을 다루고, 작품 선택권이 없으며, 설명과 강의가 이뤄지고, 주어진 문항 중 하나를 답으로 골라야하며, 협력보단 경쟁이 일어난다. 

 IB 는 연간 비용이 든다. 디플로마는 1만 1560달러, 중학교는 1만 50달러, 초등은 8520달러, 직어학교 프로그램은 1480달러다. 이는 학교크기와 무관하게 학교당 산정되는 비용이다. 초중학교는 IB학교 인증신청을 하면 관리자가 3일 연수를 받아야 하고, 신청과 동시에 IB수업이 가능하다. IB본부가 인증한 IB학교가 되는 과정은 관심학교-후보학교-인증학교의 과정으로 1.5년에서 2.5년이 소요된다. 

 IB에 대한 이 책을 읽고 난 생각은 이미 회자되는 것처럼 IB와 기존 혁신교육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이다. 초중등 프로그램엔 공통적으로 콘셉트와 교과 콘셉트가 나오는데 이는 2015개정교육과정의 총론에 제시된 역량, 그리고 각 교과역량과 매우 유사하다. IB의 콘셉트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변하지 않는 전이력이 높은 지식이라는 점에서 혁신교육에서 강조하는 이해중심교육과정의 영속적 이해 개념과도 상당히 비슷하다. 전체적 콘셉트와 각 교과 콘셉트의 달성과 이들을 연결하는 주제인 중등의 글로벌 맥락이나 초등의 융합교과적 주제는 역시 이해중심교육과정의 주제통합과 유사하다. 다만 이해중심교육과정에선 이 주제를 교사와 학생이 찾아야하지만 IB에서는 주어진다는게 차이겠다. 

 이런 상당한 유사성 때문에 혁신교육에 익숙한 교육계에서 IB를 소화하고 받아들이는데는 문화적 거부감이나 역량부족 문제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제는 비용인데 한 학교당 연간 1만달러 즉, 지금 환율로 1400만원 가량의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경기도내 초등학교는 1320개이므로 이를 곱한다면 184억 가량의 예산이 필요한 셈이된다. 책의 저자들은 이 예산을 기존의 혁신학교 운영비나, 연구학교 운영비로 충당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혁신학교나 연구학교 프로그램 개발비가 아니라 이미 그 철학으로 개발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즉, 비슷한 수준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IB는 프로그램비와 운영비를 해서 두배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셈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IB는 이름 처럼 선진적이고 외국 것이기에 오히려 혁신교육보다 한국의 일반 학부모에게 좀더 접근하기 수월할수 있다. 또한 입시까지 변화시키며 같이 나아갈수 있다면 매우 성공적일 수 있다. 혁신교육이 초중에만 그친 것은 입시가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곧, 실행할 고교학점제와 더불어 잘 연도되어 한국교육을 혁신시킬수만 있다면 사실 위 비용은 문제가 아닐 수 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몇몇의 한국 작가를 기억한다. 고래를 쓴 천명관, 디디의 우산의 황정은, 7년의 밤의 정유정, 당선합격계급의 장강명 그리고 김초엽이다. 난 과학을 좋아하는 편이라 과학을 소설의 세계관이나 배경, 이야기를 엮는 소재로 쓰는 SF 장르는 좀 더 즐겨보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주는 독특한 재미가 있고 특히나 삼체는 정말 벌벌 떨면서 추석 연휴 기간에 독파했던 기억이 있다. 

 책과 우연들은 작가 김초엽의 일상이 드러난 책이다. 김초엽 작가는 원래 과학자가 되려고 했었다고 한다. 화학이 전공인데 완벽을 기해야 하는 실험, 그리고 계속되는 오류를 잡아내면서 매우 작은 성과를 얻어가며 나아가야하는 그 연구자라는 것이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는 자각을 하고 글쓰기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런데 원래 글은 잘 쓰셨던듯 하다. 학창시절, 실용글쓰기라고 자신을 포장하고, 남을 위한 글을 써주는 지도를 했다는 것을 보면 그렇다.

 소설가들이 보여주는 소설의 세계가 하나의 매우 설득력 있는 세계이기에 독자인 우리는 왠지 작가 자신도 대단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 때 책을 쓰기 위해 자신안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책들속의 장치나, 논점들, 인물들을 보면서 자신안에 무언가가 생겨나고 그것으로 책을 쓰게된다고 한다.

 김초엽 작가는 그렇게 단서를 잡으면 무의식의 세계에서 상당히 글을 마구잡이로 쓴다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렇게 책을 채워넣지 않으면 도무지 쓸수 없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렇게 쓴 책이 완성도가 높을리 없어 다 쓰고 보면 이 책은 절대 세상에 나오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친구나 작가, 편집자들에게 보여주며 생각을 듣고 교정에 교정을 거듭해 처음 쓴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제대로 된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고 한다.

 이 책을 보면 김초엽 작가가 자신이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공부하고 책을 읽어나가며 책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나오는데 그러면서 자신이 본 여러 책을 추천해준다. 뒷 부분에는 각 장마다 김초엽 작가가 언급하는 책들이 나오는데 이런 재미난 목록을 알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은 좋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작가와 내가 상당히 독서 취향이 다르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정도 책을 본 나도, 그리고 나보다 많이 보았을 작가도 이상스럽게 같이 읽은 책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하여튼 소설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그리고 그 중에서도 조금 더 독특한 SF 소설을 어떻게 완성해나가고, 그것을 해내는 작가의 삶과 세계, 생각을 어떠한지 엿볼 수 있는 재미난 책이었다. 이것도 편집자가 권해서 나온 책인지, 아니면 작가 본인이 펴낼 생각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