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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쏘다 - 김상옥 이야기 역사인물도서관 3
이성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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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잠자는 것을 잊고 책을 읽었다. 의열단의 뜨거운 피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일제에게 통쾌하게 총을 쏘는 장면에서는, 마치 내가 총을 잡고 방아쇠를 당기는 느낌이었다. 이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아갈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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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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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자’를 위한 노래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읽고-

님웨일즈의 아리랑은 상당히 유명한 책이다. 일제시기 항일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았을 책을 나는 아직껏 읽지 못했다. 이번에야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리영희 교수가 이 책을 국내에 들여와 처음으로 국내에 알려진 이 책에는 치열하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다 쓰러진 혁명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져있다. 패배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승리를 꿈꾸며 패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내일로 돌진해간 혁명가들의 삶을 뒤따라가 보자.

1. 실패한 자에 대한 기록

조선의 혁명가 김산! 그는 책의 마지막장에서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나 자신에 대하여-승리했을 뿐이다.”라고 썼다. 김원봉이나 김구 처럼 항일 투쟁에 확실한 성공의 족적을 남기지 못한 그를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좋아하는지 이해 못할 수도 있다. 모든 역사를 성공한 자들을 찬양하기 위하여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끊임 없는 실패를 밑거름 삼아 찬란한 성공이 가능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수 많은 사람들이 피흘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이름 석자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갔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없었다면 광복의 기쁨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렇게 쓰러져간 많은 사람 중에 김산(본명 장지락)이라는 한 사람에 관한 기록이다. 님 웨일즈와 연안에서 만남이 없었던들, 김산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2. 실패가 그를 강하게 만들다.

님 웨일즈는 김산과 대화를 하면서 그에게 점점 깊게 빠져들었다. 무엇이 님 웨일즈가 김산에게 빠져들게 했을까? 그것은 그의 불꽃 같은 ‘열정’ 때문일 것이다. 조선인 교사가 그에게 불어 넣었던 조국 독립에 대한 열정, 그리고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그는 도쿄로, 상하이로 긴 투쟁의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톨스토이에서 공산주의자로 자신의 사상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의 심연에는 톨스토이의 사상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혁명이 시작되자, 혁명 속으로 뛰어든다. ‘광둥코뮌’, ‘하이루펑 전투’에서 패배의 쓴맛을 맛본다. 이러한 실패는 시작에 불과했다. 뒤이은 두 번의 체포로 그의 몸을 병들게 되었으며, 일제에게서 풀려난 후에는 동지들의 의심 때문에 괴로워하며 ‘자살’과 ‘살인’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을 그는 이겨냈다. 그가 말하듯이, 그는 실패했지만, 그는 실패를 딛고 더욱 강해졌다. 중국혁명의 여세를 몰아, 조국을 자기 손으로 해방시키겠다는 불굴의 신념에 가득찬 김산! 그는 일제의 고문, 동지들의 모함을 이겨냈다. 아니,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하였다. 모든 혁명운동이 실패하였고, 자신의 몸은 결핵으로 망가졌지만, 그는 자신에게 승리함으로써 더 강해졌다.

3. 강한자를 녹이는 사랑

김산은 아나키스트들과 어울리면서, 사랑에 대한 논쟁을 하게 된다. 조국 독립을 위해서 보다 철저한 투쟁을 위해서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한 김산! 이러한 김산의 모습은 대학시절 역사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나를 떠올리게 했다. “연애는 나에게는 사치”라고 생각했으며 “역사책을 끌어 안고 지금 죽는다 해도 나는 행복하다.”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나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열정으로 가득한 혁명가 김산의 무쇠 같은 마음도 여성의 부드러운 손길에 봄눈 녹듯이 녹아 내렸다. 궁핀촌에서 한 여성을 잃고, 일제에 잡혀 사랑하는 류링과 연락이 끊겼다. 수많은 사랑이 스쳐 지나갔지만, 진정한 인연은 따로 있었다. 김산 그의 여자는 고문 후유증으로 결핵을 앓고 있는 그를 돌봐주었으며, 그를 만나러 왔다가 같이 체포되었으며, 김산이 풀려나자 그녀는 그에게로 다시 와서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그의 곁에 있게해달라고 하였다. 사랑은 위대하다. 김산은 위대한 사랑으로 지금까지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연안으로 갔다. 그리고 님 웨일즈를 만나 자신의 삶과 조국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래서 우리는 님 웨일즈의 글을 통해서 김산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후 김산은 어떻게 되었을까? 김산이 만주로가 항일 무장 투쟁을 하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나는 상상했다. 그러나 김산은 캉성의 모함으로 ‘트로츠키주의자’, ‘일제의 밀정’이라는 죄목으로 비밀 처형된다. 그리고 그의 아들의 노력으로 1983년에 누명을 벗는다. 그는 그가 말했듯이, 실패했다. 그가 가고 싶어 했던 만주에도 가지 못하고 억울하게 연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신념을 굽히지 않은 그는 그 자신에게 승리하였고, 영원한 승리자로 우리가슴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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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평전 -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김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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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사람들이 좋아할 책을 한겨레 출판부에서 쓰셨네요. 한겨레 출판부여 이책을 보고 한겨레21은 다시는 읽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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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깽이 2012-11-1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탈근대론적 좌파의 시각에서 이완용을 비판한 책인데... 서평을 보니 완전히 반대로 이해하셨더군요... 민족주의적 시각으로는 얼마든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은 합니다만... 이 책을 마치 뉴라이트 서적처럼 완전히 오해하신건 큰 실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강나루 2014-01-1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오해 아닙니다. 다시 읽어 보세요.
 
이완용 평전 -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김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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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칙한’ 평전을 쓰려다 ‘망칙한’ 평전을 쓰다.
-이완용 평전’을 읽고-

몇 년전에 교사 모임에서 한선생님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이○○ 교수가 대학원 수업에서 “내가 보기에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완용이야! 이완용이 3․1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을 미리 알고서도 이를 일제에 알리지 않았으니까 3․1운동이 일어나는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한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순간! ‘아, 저런 괘변을 늘어 놓는 사람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니...’하는 탄식이 나의 가슴 속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모든 대학교수들이 지성인이고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나보다 나을 수 있다는 환상은 사라졌다. 이때부터 매국노 이완용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었다. 진정 나는 그의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이완용 평전’을 보았다. 부재가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이라 적혀있었다. 이 부재 또한 이 책을 읽고 싶게 했다. 저자는 왜 이런 부재를 달았을까?

1. 분노하지 않고 이완용을 살피다.
저자 김윤희는 분노하지 않고 찬찬히 이완용의 삶을 서술해갔다. 대표적 매국노 이완용을 이렇게 분노하지 않고 살펴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들 정도로 김윤희는 천천히 이완용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뜻밖에 사실들도 전해 주었다. 이완용이 탐욕스러운 관리라고 알고 있었는데, 김윤희는 이완용이 전라북도 관찰사로 부임하고 벌어진 여러 비리 사건들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당시 신문에서는 그를 탐관오리로 비판하였으나, 당시의 만연한 부정부패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이완용이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려했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여자관계도 문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이완용하면 떠오르는 것은 『매천야록』에 며느리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고 이 때문에 아들이 자살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당시 민중들의 이완용에 대한 시선이 투영되어 만들어진 이야기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이완용의 삶은 정말 뜻밖이었다.

2. 그러나 저자가 놓친 사실들....
이완용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분노하지 않고 천천히 들여다 보는 것은 나름의 의의가 있다. 그러나 진정 분노해야할 때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은 없다. 저자 김윤희는 너무도 냉정하게 이완용의 입장에서 그의 삶을 살펴보고 있었다.
‘차별, 불평등, 억압에 분노하기 보다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이라고 이완용을 평가하는 김윤희는 을사늑약 체결과정을 서술하면서 그를 합리적인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김윤희의 침착함은 ‘을사조약은 고종과 9명의 대신들 누구도 찬성하지 않고 결정하지도 않은 채,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되었다.’라는 결론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을사오적으로 지목된 이들이 을사 늑약에 찬성을 했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발칙’하게도 김윤희는 이것을 정면으로 부인한다. 김윤희는 ‘이완용의 상소’를 근거로 하여 을사늑약의 자구 수정은 이미 고종과 함께 사전에 이루어졌으며, 이완용은 을사늑약에 찬성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토는 고종의 명령을 따른다면, 동양의 대세를 알고 있다면, 조약 문구를 수정한다면, 그것은 찬성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5명의 대신이 찬성한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때 이완용은 “신이 속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성상의 하교를 이미 참정이 성명하였으니, 그렇다면 이 안건의 귀결은 이미 판가름 난 것”이라고 하면서 “나는 조금 전에 연석에서 주달(奏達)하는 일이 있게 되어 이러이러하게 아뢰었을 뿐이다. 그러나 끝까지 찬성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라고 밝혔다. …… 이완용은 고종과 합의된 대책이 이미 깨졌음을 알았고, 그다음으로 조약문을 개정하는 협상의 수순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김윤희에게 묻고 싶다. ‘조약 문구를 수정한다면, 그것은 찬성이나 마찬가지’라는 이토의 주장이 잘못되었는가? 그리고 이완용의 논리대로 고종이 ‘하교’를 했다고 자구를 수정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조약 문구를 수정한다는 것은 조약을 찬성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단호한 부정이 아니면 온건한 찬성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을사늑약 체결은 대한제국의 운명이 걸린 일이다. 그런데 단호한 반대를 국가 대신으로서 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찬성으로 해석된다. 설사 이완용의 논리대로 고종의 ‘하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나라의 대신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대를 했어야 한다. 그것이 나라의 대신으로서 ‘합리적’인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 김윤희의 ‘발칙’함은 사료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왜? 수많은 사료들 중에서 이완용이 자신의 죄가 없음을 항변하기 위해서 올린 상소문을 선택했을까? 이완용에게 유리한 사료를 선택하고 그 위에서 당시 사건을 살펴보았으니 이완용에게 유리하게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김윤희는 역사학자이다. 김윤희가 이것을 몰랐을까? 더욱이 “일본의 요구는 대세상 부득이한 것이다. 국력이 약한 우리가 원만히 타협하여 한국의 지위를 보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라는 이완용의 말은 그의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대세상 부득이한 것”이라는 이완용의 말은 그가 을사늑약에 찬성했다고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김윤희는 이 사료를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김윤희는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가 망국의 책임을 고종에게 돌린다. “여론은 지배 엘리트들이 원하던 방향대로 흘러갔고, 을사5적은 고종이 져야 할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했다.”라는 지적에 대해서 나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전제군주제 국가에서 나라가 망한 책임에서 고종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려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에도 헤이그에 특사를 보내며 빼앗긴 주권을 되찾으려 노력한 사람과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서며 이후의 대한제국 병합에 앞장서고 친일의 댓가로 풍족한 여생을 보낸 매국노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설정이다. 누가 더 잘못했는가를 비교하면서 고종보다 이완용이 덜 잘못했으니, 이완용은 잘못이 없다는 그릇된 논리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고종이 망국의 책임이 있다면, 국가의 대신으로서 이완용에게도 책임이 있다. 더욱이 이후 친일의 죄를 논한다면 이완용 같은 매국노는 고종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조선의 지배층을 무능하고 나약하게 그림으로써 일제의 침략을 합리화하려했던 식민사학자들의 관점을 김윤희가 답습하지 않기를 바란다. 조선 멸망의 책임을 일제에 돌리지 않고 내부로 돌림으로써 일제가 얻으려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저자 김윤희는 이완용을 ‘충성스러운 신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충성’은 병합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이어진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을사조약 체결 때 보여준 고종의 태도로 미루어보면, 완강한 반대만을 지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 철저히 현실에 순응하는 인물이었던 이완용은 병합을 피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대세를 인정하는 가운데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것을 고민했을 것이다. 또한 왕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그로서는 고종과 순종의 부탁을 저벌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병합을 하더라도 지켜내야할 것을 지키기 위한 방법과 조약 체결을 무리 없이 진행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짤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김윤희의 글을 읽다보면, 고종과 순종이 나라를 일본에 넘기기로 결정했고 이 악역을 이완용이 했으며, 이완용은 고종과 순종에 대한 충성심에서 이러한 악역을 대행한 것처럼 읽혀진다. 이것이 나만의 오독일까? 고종이 내린 병합조약에 대한 지침과 관련된 사료를 제시하지도 않고 저자 김윤희의 추측에 의해서 사건을 서술하고 있으며, 이완용의 입장에서 천천히 당시를 들여다 보고 있다. 나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더욱이 이완용을 ‘충성심이 남달랐’다고 서술한 부분에서는 무척이나 불쾌한 감정이 복받쳤다.
나는 이완용은 고종에 대한 충성심이 별로 없다고 알고 있다. 『매천야록』에는 고종을 강제퇴위 시키기 위해서 이완용이 고종에게 칼을 겨누며 “폐하는 오늘날이 어떤 세상인지 아십니까?” 라는 말을 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종에 입장에서는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는 역할을 하기 보다는 민영환 처럼 자결을 하는 것이 더 충성스러운 신하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3. 친일파에게는 ‘입장 바꿔 생각해 봐!’가 통하지 않는다.
인생사를 살다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너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니?’라는 말이다. 타인을 이해할 때 가장 좋은 이 방법은 매국노를 이해할 때는 예외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역사적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인물의 입장에서 당시를 생각하면 당시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일이 당시로서는 ‘합리적’이었으며, ‘이해’가 된다. 그리고 불행한 것은 당시의 인물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인물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완용이 만약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매국노가 아니었을 거야.”라며 이완용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일제시대를 네가 살았다면 너는 친일파가 안되었어. 당시를 살았다고 모두 친일파라고 하면 안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너무도 친일파 매국노의 입장에서 역사를 이해하고, 그들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측은한 마음이 든다.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려면 당시의 인물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아야하지만, 다른 선택을 한 인물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역사적 정의’에 과연 부합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어떤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에는 그것이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를 따지기 보다는 먼저 그 일이 바른길이냐 어긋난 일이냐를 따져서 결정하라”라는 백범 김구의 말씀처럼 한 인물의 선택을 평가할 때도 그 인물의 선택이 과연 ‘합리적’이었느냐보다는 ‘정당’하였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단순히 ‘합리성’만을 따질 때는 친일파도 미화되기 십상이다. 김윤희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는 현대인의 태도를 발견’한다며 이완용의 ‘합리성’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주장하며 그에 대한 평가에 물타기를 한다. 김윤희여! 제발, 그러지 말아 주시오.

저자 김윤희는 기존의 이완용 평전과 다르게 그를 서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색다른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지나치게 이완용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 우(愚)를 범하게 한 것 같다. 다르게 서술하려는 고민보다는 책한권을 내기 위해서 많은 나무를 베어야하는데 이 책이 그러한 가치가 있는지를 먼저 고민한다는 어느 학자의 말을 저자가 되새기길 바란다. 그리고 라면 냄비 받침으로 쓰기에도 부끄러운 이 책을 많은 나무를 희생하면서 까지 발간한 이유를 한겨레 출판부에게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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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조국의 노래
조문기 지음 / 민족문제연구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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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열정적인 한 인간의 고뇌

-'슬픈 조국의 노래'를 읽고-

  슬픈 조국의 노래라는 제목은 보통의 역사책에 비해 상당히 문학적인 제목이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모순을 상당히 잘 지적한 제목이라 생각한다. 책의 첫장을 펴든 순간! 난 지금 행복해 보이는 우리 조국의 현실이 얼마나 슬픈지를.. 그리고 왜? 이리 슬플 수 밖에 없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서문에서 독립운동가 조문기선생은 이렇게 쓰고 있다. 
 " 엄밀히 말하면 8.15는 민족이 해방된 날이 아니라 친일파가 해방된 날이다. 일제를 주인으로 떠받들던 친일파 주구들이 제 주인을 벗어나 이 땅의 주인으로 우뚝 선 날이다."

  우리는 8.15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날! 독립을 쟁취한 날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은 오히려 친일파가 해방된 날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날은 펄럭이는 태극기를 안보려고, 경축의 냄새가 나지 않은 곳을 찾아 피신한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유별나 보이지만 유별나지 않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의 서문은 그가 겪어 왔던 한국 현대사의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시작이었다.

  어린 시절 조문기선생의 가정은 부유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아버지 때문에 집안은 기울어져 갔다. 그리고 외할아버지 집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다. 외할아버지는 그에게 '독립'과 '민족'이라는 두 단어를 가슴속으로 깊게 뿌리박게 만든 사람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일제에 친일을 하는 송병준 일가는 그에게 반면교사였으며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제와 친일파에 대한 분노를 참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할아버지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바로보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려주었다. 이 두사람이 조문기 선생을 숙명적으로 독립의 길을 걷도록 만들었다.

  보통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아주 특별한,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독립운동가가 되는 것은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남들도 갖고 있는 시대에 대한 고민을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다. 조문기 선생은 경성 사범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선생님들 조차도 그가 당연히 합격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가 일본인이 아니기에 합격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부유해질 수 없는 세상! 자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쳐야하는 세상! 능력이 있다해도 일본인이 아니기에 차별받아야하는 세상! 일본인에게 멸시와 수탈을 받으며 고통받아야하는 세상!.... 이러한 세상 속에서 조선의 민초들이 어찌 독립운동을 꿈꾸지 않았겠는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 시대를 살았다면 친일파가 되어서 일제에 협력하면서 성공하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았겠는가?’ 라고.. 참으로 어이없는 말에 대해서 그 시대를 겪은 조문기 선생이 쓴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집안이 잘사는 집안의 사람이었던가? 일제는 아무나 친일파로 포섭하지 않았다. 이용의 가치가 있는자를 친일파로 적극 포섭했다. 이광수와 같은 지식인이나, 자본가 지주와 같은 재력가들이다. 과연 그는 그들과 같이 일본으로 부터 간택(?) 받았겠는가? 아니면 민족의 차별속에서 수탈받았겠는가? 설령 그가, 친일파가 되어서 민족의 피를 빨아먹으며 잘산다고 과연 행복할까? 물질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세상, 그러한 물질만능의 사고가 시대를 어떻게하면 올바르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본원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흐리게하고 있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불퇴’라 했다. 조문기는 우리민족을 억압하는 일제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일본행을 결심한다. 일본강관회사에 취직한 그는 그곳에서 평생의 동지인 유만수를 만난다. 평생의 동지인 유만수! 그도 일제로부터 차별과 박해를 받으며 독립운동의 꿈을 꾸었다. 그의 첫번째 독립운동은 일본 강관파업사건이다. 너무 어리기에, 너무 열정이 넘치기에 행동이 앞서는 조문기에 비해서 유만수는 침착하게 강관파업을 주도했다. 그리고는 더 많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강관회사를 빠져나온다. 같은 방에 있던 강윤국 동지 또한 후에 ‘대한 애국 청년당’의 주역이니 그들의 인연은 일본의 강관회사에서 맺어진 것이다.

   조문기선생의 자서전에는 이해못할 사람이 나온다. 조문기선생 자신의 아버지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했는지 조문기 자신도 모르다. 또한 일본에서 그에게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지도해 주었던 서상한이라는 사람 또한 이해못할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위험을 무릎서고 조문기선생을 도왔던 서상한! 그러나 그는 좌익계의 자료에는 독립운동가를 전향시킨 민족 반역자로 기록되어있다. 과연 그랬을까? 하는 의문부터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보험을 들어 놓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일제시대 일본에 협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독립운동 자금을 내 놓는 기행을 한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독립운동가의 제거 대상 명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상한! 그도 그러한 보험을 들어 놓은 이중간첩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평생의 독립운동 동지를 만나게 했고, 민족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 박춘금이라는 친일파를 제거의 대상으로 지목하게된 시기였다. 바로 그것이 그 유명한 '부민관 폭파사건'이다.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리마와 TV다큐멘터리에서는 치밀한 계획 속에서 신속하게 이루어진 의거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조문기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대한 애국청년단을 만든 조문기선생과 유만수 동지는 폭파 작업장에서 다이나마이트를 빼내어 시한폭탄을 만들었다. 그것도 갖가지 실험을 거쳐 '아시아격분대회'에 아슬아슬에게 맞추어 갔다. 폭탄을 어디에 설치해야 될지도 일본 헌병들 앞에서 동지들과 실랑이하며 간신히 결정했다. 정말 천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성공하기 힘든 일이었다. 보통 독립운동은 성공한 것보다 상당수의 거사가 모의 단계에서 발각되거나 실행했어도 폭탄이 터지지 않아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서 조문기 선생의 '부민관 폭파사건'은 젊은이들의 의기와 하늘이 도운와 성공한 의거였다.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랑은 과장해서 말하지만 조문기 선생은 진솔하게 자신의 독립운동을 서술했다.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이 나와는 멀기만한 사람이기보다는 이웃집 할아버지와 같은 친근함을 느끼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열정이 앞서서 실수도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면서 자신의 양심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행동할 수있는 당당한 독립투사 조문기! 그의 웃음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더 많은 의거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조국은 그의 생각보다 빨리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어린 독립운동가 조문기는 열정은 하늘을 찔렀을지라도 세상은 그러한 열정만으로 살기에는 너무 야속해졌다. 강대국이 자신의 입맞데로 우리의 운명을 저울질하고 있을 때, 이에 편승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민족을 두동강이내는 민족의 반역자들과 친일파들... 이에 대항해서 민족이 두동강이 나는 것만은 막으려는 조문기의 의거... 그러나 동지의 배신을 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된다.

  이제 ‘민족’과 ‘조국’이라는 단어를 그의 머리 속에서 떨쳐버리고 싶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밑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시대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민족상잔의 비극 6.25에서 그는 북조선노동당 농림성 간부가 된다. 그는 ‘좌’냐 ‘우’냐하는 이념보다는 민족이 우선이었다. 민족을 떠나서는 좌도 우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남한은 친일파와 우익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문기는 해방된 공간에서 친일 경찰 출신의 경찰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6.25를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좌도 경험했지만 그의 길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좌익은 그를 포섭하려했으나 그는 이를 뿌리쳤다. 그에게 민족 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이념이라는 허울의 노예가 되어 우리민족을 두동강이 내는 것도 모자라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싸우고 그것도 모자라 우리쪽이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로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현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그의 길이 아니었다. 이러한 조문기 선생의 고통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만약 나라면 어느 길을 선택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마도 조문기 선생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았을까? 좌와 우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지식인! 이념보다는 민족을 사랑하지만 순수한 민족주의자가 설자리가 없는 극단의 시대에서 갈길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이제 그는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지배해온 ‘민족’과 ‘조국’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싶었다. 10년여의 배우생활을 한것도 바로 그러한 의도에서였으리라.. 그러나 조국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배우생활을 청산한 그를 냉엄한 조국은 대통령 암살, 정부전복음모사건으로 현실에 내동댕이쳤다. 어제의 독립동지들을 해방된 조국의 유치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자신의 입신출세에 눈이먼 경찰들에게 고문을 당하면서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허위자백을 하지 않았다. 친일경찰이 우리 경찰계를 장악하면서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던 기술이 그대로 민주투사들을 고문하는데 이어졌다. 조문기선생은 일제시대 일본헌병에게 고문당하고 해방된 조국에서 다시 친일파 출신 경찰들에 의해서 혹독한 고문을 여러차례 당한다. 해방된 공간에서 친일파에게 독립운동가가 고문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 어찌 조문기선생에게는 조국이 슬퍼보이지 않았겠는가! 친일파의 나라가 되어버린 현실속에서 조용히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에게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유만수 동지 덕택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아내와 결혼한다. 서로의 지향점이 같았기에 결혼을 할 수 있었으나 조문기선생의 아내는 집안 일에는 관심없는 남편 덕택에 모진 고생을 한다. 뿐만 아니라 딸 정화 또한 친척집에서 자라며 설움을 당해야 했다. 독립운동가들의 특징! 자신의 가정보다는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을 조문기선생에게서도 그대로 보였다.

  조문기 선생의 평생동지 유만수의 죽음은 나의 가슴을 아프게했다. 유만수 동지가 어떻게 죽었는지가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책장을 두세장 넘겼다. 조문기 선생은 ‘유-만-수-동-지-는-굶-어-죽-었-다.’라고 써 놓았다. 순간 머릿속이 멍했다. 어찌 독립운동가가 굶어 죽을 수 있는가! 그것도 독립이된 조국에서!!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유만수 동지의 죽음을 읽어 내려갔다. 유만수 동지는 과거 사설군단 조직등의 사건에 연루된 경력으로 인해서 제데로된 직업을 갖을 수 없었다. 가족을 위해서 변변치 않은 직업이지만 고된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결과 결핵을 앓게된다. 유만수 동지를 살리기 위해서 조문기 선생은 혼신의 노력을 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병이 나아갈 즈음 다시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해야만했고 유만수 동지는 병이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하게된다. 조문기 선생이 굶어 죽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독립운동가 유만수 동지의 죽음은 너무도 슬펐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세간의 씁쓸한 말들이 빈말이 아닌, 바로 우리의 슬픈 현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슬픈 현실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과연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조문기! 그는 제2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광복회에서 느꼈던 실망을 민족문제 연구소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희망으로 바꾸고 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그는 그의 여생을 보내고 있다. '방관자는 방조자와 같다. 방조자는 바로 공범자와 다르지 않다.'라는 조문기 선생의 글귀가 나의 가슴을 찔렀다. 친일파가 영웅으로 대접받는 세상! 독립운동가가 설움을 당해야하는 세상! 이러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그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친일 청산에 임하고 있다. 과연 역사교사인 나는 시대적 과제인 친일 청산을 위해서 무엇을 해왔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닌 것을 알기에 나 자신을 다시한번 반성해본다.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의 자서전 '슬픈 조국의 노래'는 우리 근현대사의 모순을 아주 솔찍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고 있었다. 그가 겪어야했던 이시대의 모순들! 친일파는 죽었는데 친일 청산은 해서 뭣하느냐는 사람에게 이책을 권하고 싶다.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는 뉴라이트에게 과연 이시대 우리 조선인의 삶이 어떠했는지 확인하라며 이책을 드리밀고 싶다. '식민지 수탈론'이니 '식민지 근대화론'이니하는 거대 담론을 말하기 보다는 과연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책을 통해서 잔잔하게 보여 준다면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그들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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