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역사 - 지식을 향한 욕망의 문화사 Philos 시리즈 36
앤드루 페티그리.아르트휘르 데르베뒤언 지음, 배동근.장은수 옮김, 장은수 해제 / arte(아르테)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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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은 동네의 공공도서관이었다."라는 빌 게이츠의 글을 읽으면서, 어린시절 우리집 옆에 도서관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책으로 집벽을 장식한 방통을 부러워했다. 어린시절, 나에게 책은 언제나 부족한 존재였다. 그래서 대학 도서관을 둘러보며 가슴이 설래였던 추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대학도서관 서가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책속의 지식이 나의 머릿속에 담겨지는 듯했다. 지금도 도서관 서가를 거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도서관의 역사'를 읽게된 것도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책의 원제는 'The LIBRARY A Fragile History"이다. 도서관 서적들의 파괴의 역사를 담았다. 도서관 서적들은 정치적 이유에서, 혹은 전쟁에 의해서 파괴될 수있다. 그러나, 전쟁과 정치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도서관은 파괴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도서관을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도서관은 존속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을 때만이 도서관은 존속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모두가 아는 것은 아니다. 

  튀빙겐 대학교 도서관은 도서관을 찾아오는 학생들보다 장서 자체를 더 중요시했다. 


  "역저기 널린 무수한 제약은 대학이 도서관은 학생을 위한 필수 자료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오히려 학생을 장서를 훼손할지도 모르는 근거로 보았던 것 같다." -216쪽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돈을 만들었으나, 돈을 위해서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키기도하는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와 비슷한 모습을 튀빙겐 대학교 도서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인간을 지식을 키위기 위해서 책을 한곳에 모아 도서관을 만들었으나, 그 책을 보존하기 위해서 학생의 접근을 싫어한 도서관측의 모습은 주객이 전도된 슬픈 우리 주변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책을 읽다가, 도서관 업무를 했던 기억이 슬며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기적으로 도서를 폐기해야할때, 자식을 버리는 듯한 쓰라림을 느꼈다. 어떤 책을 버리고, 어떤 책을 남길 것인지를 고민했다. 이런 고민은 과거 도서관 사서들도 했던 고민이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 과거의 기록으로 물려주어야할 것인가. 아니면 새책을 들여놓기 위해 처분해야할 것인가?"- 38쪽


  파괴와 생성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근육이 미세 균열이 되어야 이를 회복하면서 근육이 성장하듯이, 도서관의 의미없는 책들을 폐기해야, 새책을 도서관에 들여 놓을 수 있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책 없이도 독서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만을 빌려주는 곳이라면 도서관은 사라질 것이다. 1473년 베네치아 총독에게 필경사인 자신은 "외양간의 짐승 처럼 살고"있다며 인쇄업을 금지해달라는 청원한 것 처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서관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들려 사서들은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정작 도서관에는 책이 없을 수도 있다. 책이 없는 도서관을 도서관이라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종이책이 가지는 물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점토판에서 파피루스, 양피지로 종이의 물성이 바뀌었듯이, 책의 물성을 바뀔 수 있다. 인간이 책을 읽지 않고, 인공지능이 학습을 위해서 모든 기록을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읽으려하고 있다. 인간은 책을 읽으려하지 않는데 인공지능은 책을 읽는 아이러니한 현실은 인간의 파멸을 뜻할까? 문자 매체가 아닌, 영상매체를 읽기의 대체방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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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된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보급에 대한 고찰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서지원 옮김 / 길(도서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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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과 독서모임을 하다가 민족주의에 대한 논쟁을 한적이있다. 어느 선생님이 민족주의는 극복의 대상이라 주장했다. 나의 주장은 한국의 민족주의는 유효하며,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야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은 결론을 내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다. 토론을 마무리하며 한 선생님이 열린 민족주의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고 했다. 그날!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미니홈피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유효한가'라는 글을 작성했다. 그리고 이 글은 지금의 아내를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당시 민족주의를 비판하며 이를 '상상의 공동체'라고 말하면 지식인으로 뽐낼 수 있었다. 반면 민족주의를 이야기하면, 구시대의 인물로 평가되었다. 민족주의자하면 히틀러를 떠올리며 배타적 민족주의자로 공격받았다. 그러면서, 의문이 들었다. 독일의 히틀러나 일본의 메이지, 쇼와는 타국을 침략하고 지배하며 자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반면, 우리의 민족주의자를 비롯한 제3세계 민족주의자들은 억압의 사슬을 끊고 자유를 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했다. 서로 다른 궤적을 그렸던 민족주의를 같은 민족주의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인용하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를 읽었다.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부터 잘못되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가 아니라, 상상된 공동체라 주장한다. 상상에 촛점을 맞추느냐, 민족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상상되고 구성된 것이냐는 해석상의 차이가 번역상의 차이로 이어졌다. 그리고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족은 허구이며 조작된 것이고, 때로는 그 허구와 조작된 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타민족을 죽인다고 공격한다. 이러한 주장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혐오하고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보았을까?

재미있는 것은 베네딕트 앤더슨이 인류학자가 아니라, 정치학자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재미있는 것은 그는 영국인이었지만, 아일랜드 국적을 취득하고 아일랜드인으로 죽었다. 30대 중반에 친구 족보 연구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아일랜드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증명해가며 아일랜드 국적을 취득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부정하기보다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반식민주의 민족주의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가 죽었을 때, 인도네시아인들이 깊이 슬퍼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상상된 것을 허구이며, 타파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벌이는 오류이다.

 

"사실 대면 접촉으로 이루어진 원초적인 촌락보다 큰 공동체는 전부 상상된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가짜냐 진짜냐가 아니라, 어떠한 스타일로 상상되었는가를 기준으로 구별해야한다." -26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주의를 허구나 날조로 보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공동체는 모두 상상된 것이다. 심지어 대면 접촉을 통해서 이루어진 원초적 촌락 공동체도 상상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했듯이, 사피엔스가 자신보다 신체적으로 탄탄한 호모 에렉투스를 박멸하고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의 힘이었다. 거짓말을 하고 이를 믿고 심지어는 목숨을 바치기도했다. 수많은 인류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힘은 상상된 이야기의 힘이었다. 이러한 힘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에 대해서 반식민지 민중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거룩한 투쟁의 대열에 동참해서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다. 어머니의 요리용칼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만, 살인자의 칼은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다. 같은 칼일지라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칼의 용도와 의미는 달라진다. 민족주의는 도구이다. 그 도구를 누가, ?,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그 의미는 달라진다.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족주의의 어두운면을 보고 탈민족주의를 주장하지만, 3세계 약소민족은 거룩하고 장엄한 독립투쟁을 떠올리며 민족주의는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민족주의를 허구로 비난하기 보다는 어떠한 민족주의의를 상상할 것인지를 우리는 고민해야할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근대적 민족주의를 동시성에서 찾는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며, 인쇄물은 국가내의 사람들에게 동시성을 갖도록 하였다. 중세에는 종교적 소속감, 혹은 지역적 소속감이 민족을 압도했다 주장한다. 그러나, 나의 머릿속에서는 계속된 질문이 맴돈다. 상상된 공동체가 고대에는 불가능했을까? 서양의 중세에는 종교적 소속감이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소속감보다 더 컸을 것이다. 그러나, 동양도 그러했는가? 그리고 꼭 동시성이 있어야 민족주의라는 의식이 싹틀 수 있는가?

고구려는 700년을, 백제도 700년을, 신라는 천년, 고려와 조선은 500년을 발전했다. 우리 역사속에서 등장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가가 창건되고 500년을 넘겼다. 이렇게 장기간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탄탄한 시스템뿐만 아니라, 국가 구성원을 정신적으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상상된 공동체가 필요하다. 단군신화를 비롯해서, 삼국의 건국영웅의 신화가 상상된 공동체를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신화와 역사를 옛날 이야기로 전해들으면서 비동시적으로 상상된 공동체를 형성하지 않았을까? 서구의 학자들이 문헌기록에 강한 신뢰를 두고 역사를 연구하지만, 인도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구전기록과 구전문학이 민중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서양의 역사에 근거해서 민족주의를 근대의 산물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도 서구 중심적 사고가 아닐까?

 

베네딕트 앤더슨은 인텔리들은 인쇄물을 우회하여 단지 문맹인 대중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를 읽는 비문맹 대중에게조차 상상된 공동체를 퍼뜨릴 방법을 찾아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유튜버들은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로 독서에 관심이 없는 철없는 1020대 남성들을 왜곡된 상상된 공동체로 만들고 있다. 가짜뉴스와 극우적 밈과 노래로 젊은 남성들을 우민화 시키고 있다. 갈수록 견고화하는 어리석은 극우의 상상된 공동체를 허물어뜨릴 방법은 무엇일까? 베네딕트 앤더슨이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를 외친 민족주의를 사랑하며, 상상된 공동체를 연구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는 반민족주의 친일 친독재로 점철되는 극우의 상상된 공동체를 타파를 외쳐야만하는 시대가 되었다. 시대를 희망차게 만드는 상상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이 땅의 모든 시민들이 고민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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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07 1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 이 책이 재간행됐나 봅니다. 계속 절판 상태라 구할 수 없었는데...얼른 구매해야 겠으요~~ 리뷰 감사합니다!
 
패권의 비밀
김태유.김대륜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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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원대학교 연수를 갔을 때, 옆에 앉아 계셨던 선생님이 '패권의 비밀'을 읽고 있었다.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었다. 그러나, 북플에 읽고 싶은 책으로 올려 놓고는 이내 이 책을 머릿속에서 잊어 버렸다. 그리고 유튜브 3%TV에서 김태유 교수의 특강을 듣는 행운을 얻었다. 김태유 교수는 위기에 빠진 한국을 다시 도약시킬 수 있는지 열강을 토해냈다. 그의 강의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그의 혼이 녹아있는 '그의 책을 읽고 싶었다. 

  저자 김태유는 스페인 제국에서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의 미국에 이르는 시기를 살펴보며 불황과 저성장의 늪을 벗어나, 선진국과 후발국들의 동반 성장과 번영을 담보할만한 건강한 국가발전이론을 만들기 위해서 연구를 시작했고, '패권의 비밀'을 저술함으로써 그 원대한 목표를 책에 담았다. '패권의 비밀'을 읽으면서 내가 들었던 생각은 한국판 '대국굴기'를 보는듯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대국으로 우뚝 일어서고 싶은 욕망에서 CCTV가 제작한 다큐가 '대국굴기'이다. 강대국들이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지를 다큐와 책에 담았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필독서로 꼽을 만큼 '대국굴기'라는 다큐와 책은 한국인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김태유도 바다위의 농업제국 스페인에서 부터 시작하여 초강대국 미국에 이르는 역사를 살펴보며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할 방안을 제시했다. 감속하는 농업사회에서 가속확대 성장하는 산업사회로의 성장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김태유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이 책에 담았다. 그리고 책장 곳곳에서 그 사랑이 묻어난다. 

  '패권의 비밀'을 읽으며 떠오른 또한가지는 미국의 붕괴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이다. 바다위의 농업제국 스페인은 늘어나는 전비의 부담, 상공업이 경쟁국에 밀려나는 현실과 재정위기로 붕괴의 조짐이 보였다. 결국 무적함대의 패배는 스페인 몰락의 움직일 수 없는 신호탄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볼 수 있다. 다른점이 있다면 미국은 경제적 패권을 아직도 쥐고 이다는 점이다. 점비를 줄이려는 트럼프는 세계의 전쟁에 개입하려하지 않고 있다. 늘어나는 적자를 메우려 관세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미국의 쇠퇴는 예전된 미래이다. 스스로 자국의 배도 수리하지 못하는 발톱빠진 호랑이 미국!! 이제 미국이라는 패권국가가 절대패권을 내려 놓고, 지역 패권국가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책장을 덮었다. 경제학자가 풀어낸 '패권의 비밀'을 이제는 대한민국이 공부해야한다. 가속하는 확대 재생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대한민국호는 출발해야한다. 12.3 비상계엄으로 추락할뻔한 대한민국호가 시원한 뱃고동을 울리며 쾌속 순항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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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13 0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패권의 비밀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느껴집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리커버)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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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거창한 제목이 나의 심장을 고동치게했다. 더욱이  KDI '거시경재' 연수에서 한 연구원분이 강력하게 일독을 추천하였기에 빠른시일 내에 읽어보고 싶었다. 경제학 연구원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책이라하니, 각종 수치가 난무하는 어려운 경제학 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경제 수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사를 서술하며 풍부한 사례들 깊이있게 제시하며 성공하는 국가와 실패하는 국가의 차이를 서술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한국의 역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박정희의 경제개발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할지 이 책의 통찰을 빌리고 싶었다.


 성공한 국가의 비결은 무엇일까?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포용적인 경제제도는 명예혁명이 가져다준 포용적 정치제도의 기반위에 마련된 것이다."(302쪽)라고 단언한다. 정치적 발전 즉, 포용적 정치제도가 선행되어야 포용적 경제제도가 안착한다. 이것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탄생할 수 있게 했다. 

  한국사를 가르치며 조선 후기 경제, 사회, 문화, 사상면에서 근대화의 싹이 트고 있었지만, 정치가 발목을 잡았다고 가르쳤다. 세도정치 60년 동안 조선 사회는 근대화의 기초체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이렇게 수업을 하면서도 조선후기에 조선은 이미 쇄락해가고 있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다른 부분은 모두 발전했는데, 정치부분이 말목을 잡았다는 설명이 깨림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의 주장은 나의 설명이 맞았음을 뒷받침해주었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포용적 정치제도를 낳고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 내면서 성공하는 국가가 탄생한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는 우리가 근대화를 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형성할 기회를 없애버렸다. 흥선 대원군이 내정개혁을 했으나, 시기를 놓친 개혁이었다. 조선은 일본과 청나라의 간섭속에서 패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한다. 우리의 소중한 민주주의를 지켜야하는 이유는 우리경제, 더 나아가서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이다. 

  반면, "착취적 정치제도는 착취적 경제제도로 이어져 다수를 희생시키면서 소수의 배만 불려준다."(48쪽)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이 실패의 늪을 헤매고 있는 것은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착취적 정치제도와 착취적 경제제도가 새로운 옷을 입고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에 "식민통치의 뼈대는 식민지 시절 초기보다 1960년대에 훨씬 더 복잡하고 해로운 제도적 유산을 남겼다."(174쪽) "산업혁명이 아프리카에 확산되지 못한 것도 착취적인 정치경제제도가 끈질기게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기나긴 악순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175쪽)

  식민지 모국은 떠났지만, 새롭게 지배층을 형성한 엘리트들은 식민지의 착취적 통치제도를 없애지 않고 나라를 통치했다. 주인만 바뀌었을뿐, 착취적 통치제도는 변화하지 않고 아프리카를 괴롭혔다. 아프리카인이 열등해서라기보다는 식민지배의 착취적 통치제도라는 유산이 아프리카를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식민지배를 받았으나, 38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은 극명한 대비를 보이고 있다. 식민지시기 일제에 의해서 형성된 권위주의적 통치제제가 남쪽에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냈다. 그리고 후진국에서 선진국에 들어서는 기적을 성취해냈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말할때, 박정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박정희와 대비되는 정권이 콩고의 지배층이다. 콩고의 정체제도는 뿌리까지 철저히 절대주의적이었다. 지배 엘리트들은 국민의 생활을 향상시키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산업발전을 꾀하기 보다는 그들의 부를 확대시키기 위해서 국민들을 수탈했다. 박정희 정권과 콩고 지배층의 차이는 유능과 무능의 차이가 아니다. 경제개발의 의지가 있었는냐, 없었느냐의 차이이다. 자신과 소수 권력층만의 배를 불리는데만 혈안이 된 정권이었느냐,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대의를 수행하는 능력과 의지가 있었느냐의 차이였다. 콩고의 지배층에 비한다면, 박정희 정권은 무책임한 정권은 아니었다. 

  수탈적이고 착취적인 정치체제는 수탈적이고 착취적인 경제체제를 만들어 내어 국가의 실패로 이어진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의 설명에 따른다면 박정희 정권은 실패해야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이에 대해서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이 권위주의 정권인 소련의 스탈린 정권의 경제성장을 서술한 부분을 참고해볼만하다. "소련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권력을 사용해 효율성이 대단히 떨어지던 농업에서 공업으로 자원의 재분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141쪽)라고 설명한다.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경제는 발전할 수 있다.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박정희도 농업에서 공업으로 자원 재분배를 강력한 권력으로 추진했다. 강력한 박정희식의 경제개발 정책은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과 국민의 자유를 억압한 댓가를 치루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소련과 다른점이 있다면, 소련은 권위주의 정권의 경제개발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에도 포용적 정치제도로 변화하지 못했기에 국가의 실패로 이어졌지만, 한국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통해서 포용적 정치제도로의 변화를 이어갔고, 이것은 포용적 경제제도로 이어져 한국의 경제 성장을 지속시켰다. 이러한 설명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없었다면 박정희 정권이 제2차 석유파동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졌던 그 시점에 한국은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민주화 운동을 지속했으며, 결국 6월 민주항쟁으로 포용적 정치제도로 성큰 다가갔다. 1987년 외환위기 이후에 박정희 향수에 취해 있던 노인세대들이 박정희를 그리워하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켰지만, 박정희 시대의 놀라운 경제 성장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한국은 더 이상 권위주의적 경제성장을 이룰수 있는 후진국이 아니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강조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은 경제학 서적이기 보다는 역사학책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제시하며 포용적 제도가 국가의 성공과 실패의 핵심 비결이라 강조한다. 그러나, 역사의 우연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 우연은 역사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역사의 구성원의 능력과 열망에 의해서 상당부분 좌우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식민지배를 당한 보츠와나는 성공한 국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역사에서 인간의 능력과 결정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는 소수 엘리트들만을 위한 착취적 정치제도와 착취적 경제제도는 없는지 생각해본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이 요란히 울려퍼지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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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가 기승을 부리면서 특히 근로자와 하인 등 인구의 상당수가 죽어없어지자 주인의 고난과 하인의 부족 현상을 기회 삼아 과도한 임금을요구하며 의무를 다하길 거부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특히 쟁기꾼과 같은노동력의 부족에서 초래되는 심각한 불편을 우려하는 바 잉글랜드 왕국의 모든 남녀에게 명하노니 자신의 봉사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야 할 것이며, 자신이 봉사하는 현장에서 지급하는 제복과 보상, 임금만 받을지어다. 국왕 폐하 통치 20년(에드워드 3세는 1327년 1월25일 즉위했으므로 1347년을 가리킨다) 혹은 이후 5년에서 6년은 평균적으로 받던 수준으로 임금을 제한하는 바다.
국가는 왜실패하는가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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