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정학 - 5000년 문명사를 통해 보는 세계질서의 대전환 그레이트 하모니 3
아미타브 아차리아 지음, 최준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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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는 'The Once and Future World Order'이다. '세계질서의 어제와 오늘'로 번역할 수 있다. 화이트의 소설 'The Once and Furure King'에서 패러디한 제목이다. 인도계 미국인이자 캐나다인인 아마티브 아차리아는 5000년 세계 역사를 서구중심 역사관에서 탈피해서 세계질서의 변화를 조망하였다. '21세기 지정학'이라는 의역이 나에게는 왠지 어색했다. 지정학(地政學, Geopolitics)이란 지리적 위치, 영토, 자원 등의 지리적 조건이 국가의 정치, 외교,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마치 21세기 지정학에 대해서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서 미국의 쇠퇴와 세로운 세계 질서의 형성을 지정학적 관점에서 설명해줄 것 같은 의역에 기대를 갖고 이책을 읽는다면 실망감이 많을 것이다. 이 책에는 지리적 위치나 영토, 자원 등의 지리적 조건이 국가의 정치, 외교,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심도 깊은 분석을 해주지도 않는다. 서구중심의 세계질서가 끝나고 새로운 세계 질서가 성립되겠지만, 이러한 대전환은 과거에도 있었왔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라는 원제의 탁월한 함축적 의미를 '21세기 지정학'이라는 제목은 살리지 못했다. 오히려, 지정학 책이라기 보다는 역사책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탐구해보자.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서구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서 그동안 무시되거나 무관심했던 나머지 문명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기존의 서구중심 역사관은 지금의 세계질서는 유럽을 중심으로한 서구문명이 낳고 길렀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도 서구와 앞서거나 혹은 서구와 비슷한 시기에 그러한 질서와 문화를 만들었다고 실증적으로 증명한다. 

  영화 300에 그리스를 침략한 페르시아는 어둡고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야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로 서구인들은 페르시아를 그렇게 보고 있다. 키루스 대왕의 자비와 관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최초의 인권선언이라 불리는 키루스 실린더의 복제본이 뉴욕 국제연합 본부에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떠올려야한다. 반면 그리스는 평화를 사랑하고 용감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아테네가 멜로스에서 저지른 대량학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세계는 그리스 문명의 유산을 인정해야한다. 그러나 서구와 전 세계는 또한 페르시아의 유산인 종교적, 민족적 관용, 타문화 수용능력, 광대한 영토 관리 능력을 배울 수 있다."-86쪽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인도화(Indianization)과 헬레니즘화를 비교한다. 헬레니즘이 전쟁에 의해서 시작된 반면에 인도 사상이 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확산에 강압이나 정복은 없었다. 현지 사회의, 현지 사회에 의한, 현지 사회를 위한 인도화가 이루어졌다. 그 영향력도 헬레니즘보다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현지 통치자들의 정치적 권위를 확장하도록 힘을 실어주어 큰국가, 제국 건설을 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세계사를 배우며 한번도 인도화와 헬레니즘화를 비교한적이 없었다. 기존 역사적 서사를 당연시하며 받아들였다. 아미타브 아차리아의 문제제기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역사적 서사사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서구중심의 서사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우리의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서구중심의 서사는 비서구문명의 업적과 가치에 무관심과 무시로 이어진다. 

  서구의 국제관계는 평등을 기반으로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의 국제질서이다. 물론, 저자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베스트팔렌조약의 한계점을 지적한다. 그렇다하더라도 베스트팔렌조약 이전 서구의 국제관계는 국가간 주권을 인정하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의 국제질서를 확대해석하여 중국의 조공책봉체제를 굴욕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서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다른 평가를 내린다. 


  "강압보다 의례에 더 많이 의존했던 중국의 조공체제는 식민지화 없이도 다른 국가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외교적 혜택을 부여했다. 이 체제가 거의 2천년 동안 지속되고 중국의 이웃 국가들에게 지지받았다는 사실은 그 효과와 정당성을 증명한다."-142쪽


  한국 사람들은 조공 책봉 체제를 치욕스런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비해서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세계 역사를 조망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서구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에나 주권을 존중하는 평등한 국제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국가를 평등한 주권국가로 대우한 것도 아니다. 서구의 약탈적 식민지화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조공책봉체제이다. 오히려, 지금의 무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중국의 조공책봉 체제보다 더 나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평등한 주권국가와의 합의를 무시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괄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여했다. 그리고 이를 무기삼아 각국에게 많은 투자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라는 주권국가를 침략하여 마두르 대통령을 납치했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가 평등한 주권국가로 대우받고 교류하는 것은 하나의 이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이상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문제는 그 이상에 현실을 얼마나 가까워지게 만드는가이다. 

  세계사에서 가장 무시되고 무지한 대륙은 아프리카이다. 저자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아프리카 역사 중에서 '만뎅헌장'에 주목한다. 만리제국을 세운 순디아타가 쿠루탄 푸가에서 귀족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그는 1235년 '만뎅헌장'을 선포한다. '만뎅헌장'에는 "다양성 속의 사회평화, 인간의 불가침성, 교육, 조국의 통합, 식량안보, 약탈을 통한 노예제도 폐지, 표현 및 무역의 자유"(266쪽)가 천명되어 있다. 그뿐만아니다. 여성이 모든 통치에 참여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1215년 만들어진 마그나 카르타와 비슷한 시기에, 마그나 카르타보다도 더 앞선 진보적인 인권이 천명되어있는 것이 '만뎅헌장'이다. 우리는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는 알아도 '만뎅헌장'은 모른다. 서구 중심의 역사교육의 한계의 슬픈 결과이다. 

  물론, 공자가 위대한 사상가로 인정받는 것은 그의 탁월한 제자덕분이듯이, 서구문명이 세계사의 주류가 된 것은 최근 500여전 동안 서구가 비서구를 폭력적으로 지배통치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찬란한 역사가 있었다한들 이를 기억해줄 사람이 없었다.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구문명이 쇠퇴하는 지금, 세계 무형유산에 선정된 '만뎅헌장' 헌장을 이제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가르쳐야하지 않을까? 그것은 서구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세계를 우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온전한 역사관의 시작일 것이다. 

  서구중심 역사관의 가장큰 폐해는 서구중심 세계질서를 합리화하고 그 질서가 흔들리면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과연 서구중심의 국제질서가 비서구에게 축복이었을까?


 "나머지 세게의 관점에서 볼때 미국과 서구의 지배는 축복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안녕과 독립뿐 아니라 자존심까지 미치는 위협이었다."-13쪽

  "여러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인종차별주의, 노예제도, 아메리카 원주민 토지의 식민지화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는다."-253쪽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미국과 서구의 지배를 위협으로 보고 있다. 사실 그러했다. 서구문명의 확장 역사는 비서구 문명의 파괴와 약탈의 역사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던 그땅의 주인들이 총과 균에 의해서 학살당했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고 그 이익으로 서구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듯이, 미국도 노예제와 아메리카 원주민 토지의 식민지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서구가 되고 싶었던 일본은 이웃국가인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고 아시아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일본 근대화는 대한제국을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피눈물 위에 가능했다. 서구와 서구가 되고 싶었던 일본의 발전은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과 같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희생이라는 진흙탕을 자양분으로 아름다운 서구중심의 근대문명을 꽃피웠다. 그러나 연꽃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구와 일본은 그러하지 않았다.  

  서구중심의 세계질서가 흔들리는 지금 우리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기존 서구중심의 질서에 적응했는데,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세계질서에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불안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힌트는 팍스 로마에서 찾을 수 있다. 


  "팍스 로마나의 개념은 어느정도는 로마인들의 자화자찬적 서서의 산물이다."-154쪽

  "제국 통치하에서 로마는 안정적 평화를 위해서는 지배적 세력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근대적 사상을 낳았다."-168쪽


  팍스 로마시기에 세계에 분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서구 문명은 팍스 로마 시기를 로마에 의한 대평화시기로 기억한다. 이러한 서구중심의 역사관은 헤게모니 안정이론을 탄생시킨다. 로마에서 19세기 후반 영국으로, 그리고 2차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으로 초강대국이 패권을 장악하고 있어야 세계는 안정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갖게 되었다. 

  로마의 유산이라고할 수 있는 헤게모니안정론! 과연 세계의 지배세력이 하나만 존재해야할까? 투키디데스트랩과 함께 미국의 패권을 합리화하고 중국 견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이론은 아닌가? 세계 패권국가가 꼭 미국일 필요가 있는가? 지역 패권국가 여럿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서로를 인정하는 국제 질서는 불가능한가? 물밀려 오듯이 여러가지 질문이 샘솟는다. 

  서구중심의 세계질서에 적응하고 서구의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는 미국과 서구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질서가 정립되지 않은 지금이 불안의 시기일 수 있다. 그러나, 달리본다면 변화속에 기회가 있다. 서구 중심의 세계질서를 비서구국가들이 새롭게 만들수도있다. 그 작업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변화를 주도하여 보다 인간적인 질서를 만들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미타브 아차리아가 그리고 있는 앞으로의 세계는 어떠한 모습일까? 글로벌 멀티 플랙스이다. 다극(multripolar)이 아니라 멀티플랙스(multiplex)화이다. 기업, 재단, 비정부기구,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훨씬더 많은 행위자들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관리되며, 사상과 문화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강대국 수가 증가하고,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과 협력이 나타나는 멸티플랙스화가 이뤄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대부분의 서구인들이 불안감 속에서 미래를 어둡게 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래를 밝게 보고 있다. 서구 중심의 국제 질서에서 벗어나서 보다 다차원적인 세계질서를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미타브 아차리아의 밝은 미래상에 나는 동의하지는 못한다. 새로운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국지전이 일상화되는 전쟁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예상한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극우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에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모습과 현재에서 유사성을 찾는 사람도 있다.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 문제는 비관적 예상을 깨고 어떻게 하면 아미타브 아차리아가 예상하는 밝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느냐이다.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그 방법을 제시해주지는 않늗다. 다만 이븐 할둔의 말을 남기며 이책의 끝을 맺는다. 


  "마치 온 창조물이 변하고 온 세상이 바뀐 것 같으며, 마치 새로운 창조가 반복되어 새로운 세상이 존재하게된 것 같다."-435쪽


  우주적 관점에서 세상을 조망하는 인도문명의 유산을 품고있는 인도계 미국인이자 캐나다인 다운 끝맺음이다. 파괴는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 제국주의, 문화적 오만, 인종적 배제가 깔린 서구문명의 몰락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국제질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아미타브 아차리아가 남겨준 우리의 과제가 되었다. 




ps. 옥의 티

  71쪽에 "조로아스터교는 아케메네스 왕조 아래에서 부활하여 국교가 되었는데, 창시자의 시대와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라고 서술했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가 국교화한 것은 사산왕조 페르시아에서이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장려했지만, 국교로 삼지는 않았다. 특히, 키루스왕은 유대인들에게 조로아스터교를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의 고향으로 갈 수 있게 했으며, 그들의 성전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세계 역사에 대해서 날카로운 지적 모습을 보인저자의 실수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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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정학 - 5000년 문명사를 통해 보는 세계질서의 대전환 그레이트 하모니 3
아미타브 아차리아 지음, 최준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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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를 야만인에게 내던지고, 기이한 방식으로 승리자가 굴욕을 당하게 했습니다. (...)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페르시아인들의 복장과 습성입니다. (...) 당신은 고향의 관습을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 당신은 마케도니아인이 당신에게 무릎 꿇고 당신을 신처럼 숭배하기를 바랐고, 필리포스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으며, 만약 주피터(로마인들이 그리스 신 제우스를 일컫는 이름)보다 더 위대한 신이 있다면, 당신은 주피터마저 경멸했을 것입니다. 자유인인 우리가 당신의 오만함을 견뎌낼 것인지가 의문인가요? 
-알렉산드로스의 보좌관 헤르몰라우스의 말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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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화 속 세계사 -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사물들
태지원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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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물화 속 세계사'라는 제목을 보고 관련 전문가의 책으로 알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일반사회 교사가 쓴 책이었다. 교사가 쓴 책이라 정물화를 매개로 역사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일반인으로서는 어렵지 않은 단어에도 친절히 주석을 달아 놓았다. 지나친 친절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이책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저술되었기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하다.

  15개의 주제로 바니타스에서부터 시작해서 엔디 워홀의 수프캔까지 정물화를 매개로 세계사를 설명했다. 고등학교 통합사회를 이해할 정도의 깊이와 정물화에 대한 나름의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서술한 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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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전략 - 외교 역사와 이론으로 살펴보는 국제정치 속 오판의 메커니즘 그레이트 하모니 4
비어트리스 호이저 지음, 이혜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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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정보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것이 진실된 정보이고, 어느 것이 거짓정보인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잘못된 전략을 수립하기 쉽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잘못된 전략은 정보의 부재나 정보의 오류만으로 빗어지지 않는다. 이책은 근현대 국제정치 속에서 벌어진 잘못된 전략의 근본원인을 탐구한책이다.

이책에서 제시한 확증편향을 비롯한 많은 잘못된 전략을 수립하는 원인들은 심리학에서 제시한 이론들이다. 학문의 벽이 허물어지고 심리학의 이론들이 뇌과학과 경제학을 넘어서 이제는 정치외교분야에도 활용되고있다. 통섭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다. 

어디 심리학 뿐이랴, 논어에 위정편에 있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하고, 아는 것을 안다고하는것 그것이 참된앎이다.'라는 말이 정치외교학에서도 중요시될 줄은 몰랐다. 저자 비어트리스 호이저가 말했듯이 가장 위험한 것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안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할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모르는 것 자체를 모른다면 제대로된 전략자체를 수립할 가능성이 없어진다. 논어 위정편에서 말한 공자의 말씀을 비어트리스 호이저가 정치 외교학분야에 맞도록 풀어 써놓은 듯한 서술이 인상적이다. 

  한가지 동의할 수 없는 저자의 의견도 있다. "너무적은 혹은 너무많은 지식"이 좋은 정책 판단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너무 많은 지식이 현명한 전략 수립에 걸림돌이 되는 시기는 지났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정보는 많을 수록 좋으며, 정보에 대한 분석과 판단옵션도 단시간에 제시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르대통령 납치, 현재 이란-이스라엘, 미국전도 인공지능을 도입해서 수많은 정보를 단시간 내에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지 않는가?


  정치외교학분야에서 현명한 전략 수립에 방해가 되는 요인들을 정리했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러한 잘못된 전략을 수정할 수 있는 힌트를 주는 책이다. 나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확실한 교훈이 남았다. 지식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으며, 지식은 융합되고 통섭되어야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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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3-25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보의 오류는 전쟁도 일으키지요. 현재의 이란전쟁이 아닐까요.

2026-03-30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서관의 역사 - 지식을 향한 욕망의 문화사 Philos 시리즈 36
앤드루 페티그리.아르트휘르 데르베뒤언 지음, 배동근.장은수 옮김, 장은수 해제 / arte(아르테)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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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은 동네의 공공도서관이었다."라는 빌 게이츠의 글을 읽으면서, 어린시절 우리집 옆에 도서관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책으로 집벽을 장식한 방통을 부러워했다. 어린시절, 나에게 책은 언제나 부족한 존재였다. 그래서 대학 도서관을 둘러보며 가슴이 설래였던 추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대학도서관 서가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책속의 지식이 나의 머릿속에 담겨지는 듯했다. 지금도 도서관 서가를 거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도서관의 역사'를 읽게된 것도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책의 원제는 'The LIBRARY A Fragile History"이다. 도서관 서적들의 파괴의 역사를 담았다. 도서관 서적들은 정치적 이유에서, 혹은 전쟁에 의해서 파괴될 수있다. 그러나, 전쟁과 정치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도서관은 파괴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도서관을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도서관은 존속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을 때만이 도서관은 존속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모두가 아는 것은 아니다. 

  튀빙겐 대학교 도서관은 도서관을 찾아오는 학생들보다 장서 자체를 더 중요시했다. 


  "역저기 널린 무수한 제약은 대학이 도서관은 학생을 위한 필수 자료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오히려 학생을 장서를 훼손할지도 모르는 근거로 보았던 것 같다." -216쪽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돈을 만들었으나, 돈을 위해서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키기도하는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와 비슷한 모습을 튀빙겐 대학교 도서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인간을 지식을 키위기 위해서 책을 한곳에 모아 도서관을 만들었으나, 그 책을 보존하기 위해서 학생의 접근을 싫어한 도서관측의 모습은 주객이 전도된 슬픈 우리 주변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책을 읽다가, 도서관 업무를 했던 기억이 슬며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기적으로 도서를 폐기해야할때, 자식을 버리는 듯한 쓰라림을 느꼈다. 어떤 책을 버리고, 어떤 책을 남길 것인지를 고민했다. 이런 고민은 과거 도서관 사서들도 했던 고민이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 과거의 기록으로 물려주어야할 것인가. 아니면 새책을 들여놓기 위해 처분해야할 것인가?"- 38쪽


  파괴와 생성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근육이 미세 균열이 되어야 이를 회복하면서 근육이 성장하듯이, 도서관의 의미없는 책들을 폐기해야, 새책을 도서관에 들여 놓을 수 있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책 없이도 독서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만을 빌려주는 곳이라면 도서관은 사라질 것이다. 1473년 베네치아 총독에게 필경사인 자신은 "외양간의 짐승 처럼 살고"있다며 인쇄업을 금지해달라는 청원한 것 처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서관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들려 사서들은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정작 도서관에는 책이 없을 수도 있다. 책이 없는 도서관을 도서관이라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종이책이 가지는 물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점토판에서 파피루스, 양피지로 종이의 물성이 바뀌었듯이, 책의 물성을 바뀔 수 있다. 인간이 책을 읽지 않고, 인공지능이 학습을 위해서 모든 기록을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읽으려하고 있다. 인간은 책을 읽으려하지 않는데 인공지능은 책을 읽는 아이러니한 현실은 인간의 파멸을 뜻할까? 문자 매체가 아닌, 영상매체를 읽기의 대체방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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