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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우화 - 4천년 전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우화
얄와츠 우랄 지음, 에르도안 오울테킨 그림, 이희수 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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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메르 우화라는 제목에 끌렸다. 이솝우화를 읽으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이솝우화만이 우화의 전부인줄 알았다. 그러나, 장자라는 책에도 우화는 등장하고, 수메르 점토판에도 우화는 존재했다. 단지 우리가 이를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가 모른다고해서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메르 우화'라는 책을 꺼내들면서 오랫만에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수메르 우화에서 두가지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는다. '오록스뿔을 가진 여우'이야기가 첫번째 우화이다. 오록스뿔을 가진다면 자신을 보다 잘 보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여우는 오록스뿔을 갖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한다. 마침내 신은 여우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오록스뿔은 여우에게는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학의 다리를 잘라 참새의 다리에 붙인다고 참새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부족해서 못한다.'라는 말보다는 '~임에도 불구하고 해내겠다.'는 투지가 필요하다. 물론,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이 우화가 더욱 기억에 남는다. 

  두번째 '민물거북이와 고원'이라는 우화가 기억에 남는다. 새를 부러워한 민물거북이야기의 내러티브는 날기를 바란 뽀로로가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칠수있다는 사실을 깨다든다는 이야기와 상통했다. 솔새가 말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해,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 재능, 능력을 말야"-67 그렇다. 타인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자신이 빛날 수 있는 곳 에 가야한다. 낯의 촛불이 빛나보이지 않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머리를 식히며 책장을 덮었다. 서구중심의 문화관에서 벗어나, 비서구권의 우화를 읽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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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이란의 역사 - 신비한 천일야화의 탄생지 생각하는 힘 : 세계사컬렉션 6
최승아 지음 / 살림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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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중에 아랍에 대한 책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란의 역사에 대한 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설령 이란에 대한 책을 구해서 읽는다하더라도, 특정 인물이나, 현대 이란에 대한 서술만 자세히 설명할뿐이다. 페르시아 제국에서부터 현대 이란의 역사를 쉬우면서도 체계 적으로 서술해 주는 책을 찾았다. '페르시아 이란의 역사'를 꺼내들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책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쉬우면서도 엘람왕국에서 부터, 메디나를 거쳐서 페르시아제국에서부터 현대 이란의 역사를 쉽게 쉬우면서도 체계적으로 서술해주었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았던 이란의 역사가 하나의 씨줄과 날줄로 연결되었다. 저자 최승아의 쉬운 설명에 더하여 좋은 사진자료와 친절한 지도가 곁들여져 독자의 이해를 더욱 쉽게해주었다. 

  유대인들이 2천년 동안 나라없는 민족으로 세계를 유랑했음을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이란인들도 800여년 동안 타국의 지배를 받으며 민족성을 지켰다. 보통 800년 이라면 타민족에 동화되어 민족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란인들은 민족성을 잃지않았다. 페르시아 문화의 자부심을 가지고 그 기나을 버티었다. 아니, 아라비아인들과 튀르크인들이 세운 나라의 행정을 도맡아하면서, 페르시아문화를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페르시아는 부활하였다. 

 그 이란이 이슬람 공화국을 만들어 이슬람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려한다. 이스라엘,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쟁쟁한 나라들이 이란의 용트림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란은 그들을 어떠한 역사를 써나아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800년을 인내한 민족이다. 현재의 고통도 그들은 인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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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티무르 - 닫힌 중아아시아를 열고 세계를 소통시키다
성동기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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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제국이 무너지고 나서 먼지처럼 그 흔적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몽골제국의 후예들은 그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분투했다. 그 한사람이 바로 티무르 제국을 건설한 아미르 티무르와 무굴제국을 건설한 바부르이다. 무굴 제국에 대해서는 인도관련 서적을 통해서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역사에 관한 책들이 너무도 적기에 아미르 티무르에 대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성동기 교수의 '아미르 티무르'라는 책을 본 순간 너무도 반가웠다. 

  이 책은 얇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절름발이 티무르의 출생부터 시작해서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들이 술술 읽혔다. 아미르 티무르 정도라면 600쪽 정도의 벽돌책을 써야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성동기 교수는 300쪽도 되지 않는 얇은 책을 펴냈다. 

 이 얇은 책에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대륙을 공포에 떨도록 만든 아무르 티무르가 절름발이라는 사실이다. 보통의 영웅이 자신의 약점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아미르 티무르는 자신이 절름발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칭기스칸의 후예 답게 고난에 굴하지 않고 사막을 달리며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한 대제국을 건설했다. 한편의 장엄한 인간 승리 드라마였다. 

  아미르 티무르는 잔인한 학살자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성기동 교수는 그가 실크로드를 재건하고 올로제니아라는 아미르 티무르법전을 편찬하의 통치의 기초를 만들었으며, 오아시스 크레센트라 불리는 중세 최대의 메트로폴리탄을 건설하고, 아름다운 사마르칸트를 건설했다고 칭송한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그는 두려운 학살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몽골인이나 우즈베키스탄인으로서는 위대한 정복군주일 것이다. 우리가 너무도 서구의 시각에 익숙해져있기에 외눈박이 역사인식을 갖을 수밖에 없었다. 아미르 티무르의 또다른면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한다. 

  이책에 아쉬운 점도 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아미르 티무르의 전략을 계승하여 영국을 경영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미르 티무르의 전략을 여왕은 다른 무엇보다 사랑하였던 것이다."(32쪽)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러나, 아미르 티무르의 전략을 어떻게 여왕이 계승하고 영국을 경영했는지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개정판을 낼때 반드시 보강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미르 티무르는 33세에 처음 원정을 떠나기 시작하여 67세에 떠난 원정길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초라하게 죽는 것 보다 전사는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 칭기스칸의 위업을 다시 재현하기 위해서 명나라 원정을 떠났으나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아미르 티무르를 떠나 보내면서 책장을 덮는다.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공부할 때, 그를 다시 만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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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의 교육 - 키로파에디아 현대지성 클래식 51
크세노폰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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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로파에디아' , 키루스의 교육이라는 제목은 참으로 낯설다. 교육관련 서가에 꽃혀 있어야할 책이 최고의 리더십 서적으로 소개되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책의 목차를 보고서 이 책의 제목이 적절한지에 관한 의문은 더 깊어졌다. 키루스 대왕의 일대기를 서술한 평전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렇다면, 크세노폰은 왜? '키루스 대왕의 일대기'라는 제목을 쓰지 않고, '키루스의 교육'이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아마도, 키루스 대왕의 일대기를 통해서 그의 리더십을 배우라는 의도에서 이러한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키루스 대왕의 리더십은 무엇일까?

 

1. 베풀어라! 그러면 더 차오를 것이다!

키루스는 12살까지 페르시아의 강건한 교육 속에서 자랐다. 그는 어머니 만다네를 따라 메디아의 왕 아스티아게스의 궁전에 간다. 탁월한 말솜씨로 키루스는 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의 마음을 훔친다. 아스티아게스가 키루스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은 키루스의 행동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게 상으로 받은 음식을 키루스는 할아버지를 모시는 시종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 이를 통해서 할아버지의 마음뿐만 아니라 메디아의 궁전을 돌보는 시종들의 마음까지 얻는다. 이것은 키루스가 서아시아를 통일하는 기본바탕이 되었다.

많은 수확물을 얻고 싶다면 봄철, 밭에 많은 씨앗을 뿌려야한다. 어린 키루스는 이를 알았다. 그래서 정복전쟁을 수행하면서 얻은 수많은 전리품을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에게 나눠주었다. 황금을 창고에 넣고 도둑으로부터 자신의 보물을 지키려 고뇌하기보다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그들의 마음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물을 그들이 잘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었다. 키루스는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베풀고 사랑을 나눠주면 상대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며 은혜를 갚기도한다. 그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아브라다타스와 판테에아의 사랑 이야기이다. 정복지에서 키루스의 군대에 짓밟히지 않으려 노력한 판테이야는 키루스의 배려로 사랑하는 아브라다타스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당신이 키루스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녀의 남편 아브라다타스는 자신이 키루스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전차를 몰고 이집트 병사의 팔랑크스 대형에 돌진했다가 장렬히 전사한다. 그리고 그녀도 남편과 한벌의 외투로 덮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한다. 키루스의 베품에 아브라다타스와 판테이야는 둘의 목숨으로 보답했다.

항우가 유방과의 대결에서 실패한 것도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나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방보다 지략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사람이 없었던 이유도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주먹세계를 주름잡았던 김두한도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을 따르는 어깨들에게 아낌 없이 나눠주었다. 어느 세계에서나 리더는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눌줄 알아야한다. 그것이 황금일 수도 있고 마음 일수도 있다.

 

2. 타인의 말을 맹신하지 말라! 자신이 직접 진실을 듣고 해석하라!

영화 '파묘'에서 신세대 무녀가 등장한다. 과학문명의 시대에 살면서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속인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명문대학을 나온 지식이들이 점술사의 말을 믿고 손에 왕자를 세겨 넣는다던지, 점술사가 하는 말을 그대로 실행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곤한다. 우리 사회에 속물들의 행태를 미리 알았는지 키루스의 아버지 캄비세스는 출정하는 키루스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

 

"반드시 네 자신이 신들이 보여주는 것들을 직접 보고 신들이 들려주는 것을 직접들어서 신들의 뜻을 알아야한다. (중략) 예언자들이 신들의 징조가 보여주는 의미와 다른 것을 말해 너를 속이려할 때는 흔들려서는 안된다." -50

 

자신의 지혜를 믿고 자신의 눈과 귀로 진실을 보고 들어서 자신의 판단력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한다. 신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시대! 신의 뜻을 전달하는 제사장의 권위가 막강했던 그 시대에 이미 캄비세스는 아들에게 타인의 눈으로 진실을 보려하지 말고 자신의 지혜와 판단력을 믿고 진실을 직접 보고 들으라 말하고 있다. 이는 무속에 메달리는 일부 정치인들과 일부 연예계 인사, 그리고 무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무지목매한 시민들에게 들려주는 따뜻한 경종이다.

 

3. 천하를 먼저 근심하고 앞장서라!

북송의 명재상 범중엄은 '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나중에 즐기리라.(先憂後樂)'라고 하였다. 리더는 만민 위에 군림하며 편안함에 취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미리 다가올 환란에 대비하는 존재이다.

 

"통치자는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점에서 신민들과 달라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미리 내다보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에 누구보다 앞장선다는 점에서 달라야한다."-32

 

키루스는 노빌레스 오빌리쥐를 실천하는 자가 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 처럼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국민의 안전과 나라 경제의 건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몇수 앞을 내다보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한다.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특권의식을 집어 던지고 솔선수범하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한다. 이러한 모습은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어 위기를 모두가 함께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는 과연 그런 리더가 있는가? 벤츠나 50억 퇴직금, 명품백을 강한자가 받으면 무죄이고, 약한자가 받으면 강력범죄인 세상이 아닌지 묻고 싶다.

 

4. 현명해져라!

리더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한다. 최고 의사결정자의 경우,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한다. 특히 훌륭한 참모진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에는 리더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한다. 아시리아 정복 전쟁에 나서면서 키루스는 병사들에게 세세하게 지시한다. 책을 읽는 동안 키루스 대왕이 이 모든 것을 다 섭렵하고 세세하게 지시한 것이 실제로 가능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키루스 대왕은 전쟁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통치 제도를 만들어 제국의 기초를 닦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는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탁월한 리더이다.

 

"통치자가 신민들보다 더 현명해 보이는 것보다 그들을 복종시키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60

 

그렇다! 현명한 키루스 대왕의 명령에 누가 불복종하겠는가! 백성들이 키루스를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추대를 받아 메디아인의 지도자, 히르카니아인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서아시아를 통일했다. 사보이아 공국의 철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모든 국가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Every nation gets the government it deserves)”라고 말했다. 페르시아인들은 강건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페르시아인은 소변보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남몰래 소변을 본다. 그것은 운동을 열심히하여 땀으로 수분을 배출해야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소변을 본다는 것은 운동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증거라 생각한다. 이럴 정도로 강건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에 페르시아인은 키루스 대왕을 지도자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키루스와 같은 리더를 가지고 있는가? 대통령이 경제를 잘 안다고 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있다. 유시민 작가는 A급 밑에는 A급 혹은 B이 모이지만, C급 밑에는 절대 A급 인물이 모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탐욕에 눈이 멀어 현명한 리더를 뽑을 눈을 갖지 못한 우리는 현명함을 먼저 갖추려 노력해야한다. 국민이 현명해질때만이 현명한 리더를 볼 수 있고, 리더를 현명하게 만들 수 있다.

 

5. 나의 사랑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고 행동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라는 속담이 있다. 선의에서 한 일이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키루스는 메디아아의 왕 키악사레스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여 페르시아군을 이끌고 아시리아군을 패퇴시켰다. 많은 연합군을 이끌고 수많은 성채를 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디아의 왕 키악사레스는 키루스를 외면하며 눈물을 흘렸다. 당황한 키루스는 야자나무 밑으로 가서 키악사레스의 진심을 들었다.

 

"누군가가 너의 아내에게 잘해주어서 너의 아내가 너보다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너는 그 사람이 네 아내에게 잘해준 것을 기뻐하겠느냐?"-246

 

메디아의 왕 키악사레스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아시리아를 격파하고 적의 성채와 보물을 빼앗아 키악사레스에게 주었지만, 이것이 키악사레스에게는 '왕이 될 자격도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조가 이순신 장군을 미워한 것도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두어 백성들이 이순신 장군을 찬양할수록, 선조에게는 자신이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행위로 느꼈을 것이다. 선의로한 일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를 현명한 리더라면 예측해야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도 대비해야한다.

 

키루스와 같은 훌륭한 리더가 세운 페르시아 제국도 초기의 강건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제국의 풍부한 자원과 안락함에 취해서 사치와 향락, 권력 암투 속에서 서서히 병들고 있었다. 크세노폰이 이 책을 쓰고 있던 시기의 페르시아 제국은 키루스 대제 시기의 페르시아가 아니었다. 결국, 100여년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공격에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외부의 충격이 있기 전에 내부가 썩어들어가고 있었으니 페르시아 제국은 알렉산드로스가 몰고온 충격을 버텨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외부의 충격이 언제 불어닥쳐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의 내부는 키루스 대왕의 페르시아의 상황인가? 아니면, 크세노폰이 본 곪아가고 있는 페르시아인가?

 

 

ps. 이 책에는 "제우스신에게 맹세하건데', '헤스티아신에게 맹세하건데' 등의 관용구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제우스나 헤스티아는 그리스의 신이아닌가? 서아시아 지역에서 과연 이러한 표현이 사용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크세노폰의 각색일까? 아니면 그리스의 12신이 서아시아에서도 널리 믿어진 것일까? 아시는 분이 조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ps. 이 책에는 "제우스신에게 맹세하건데', '헤스티아신에게 맹세하건데' 등의 관용구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제우스나 헤스티아는 그리스의 신이아닌가? 서아시아 지역에서 과연 이러한 표현이 사용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크세노폰의 각색일까? 아니면 그리스의 12신이 서아시아에서도 널리 믿어진 것일까? 아시는 분이 조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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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 70여 년 동안 이어진 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왜 끝나지 않는가
김재명 지음 / 미지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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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이 있다.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핍박을 받았으나,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드디어 신께서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했다!!' 소년 시절, 탈무드를 읽으며 이스라엘인들을 응원했다. "땅 없는 민족에게 주인 없는 땅을"이라는 테오도르 헤르츨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 땅에는 주인이 있었다. 성경을 보더라도 출애굽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 불렛셋이라는 팔레스타인 선주민이 있었다. 2천년 후, 유대인들이 다시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에도 그 땅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땅의 주인을 몰아내고 학살했다. 그러면서 성서에 기록된 약속의 땅이라는 점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고 인종 청소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인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바라본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담은 책이다. 


1. 악마와 싸운 그들이 악마가 되었다!!

  니체는 '선악을 넘어서'라는 저서에서 "악마와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악마가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악마의 심연을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히틀러라는 악마와 싸운 유대인들은 히틀러와 싸우며 그의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히틀러도 유대인의 심연을 들여다 보았다. 결국, 유대인들은 히틀러를 닮아가지는 않았을까? 이 책에서 이 물움에 대답을 찾아보자.

  1948년 5월 14일 나크바라는 대재앙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이르군, 하가나 같은 이스라엘 민병대가 팔레스타인을 학살했다. 그들을 패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피난을 떠나야했다. 그들의 손에는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열쇠와 집문서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중동전쟁에서 아랍국가들은 패배했고 이스라엘은 승리했다. 아랍국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만들어 독립전쟁을 했다. 마치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와 연해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 수시로 강을 건너 국내 진공 작전을 수행한 것과 비슷한 활동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도 전개했다. 

  그런데, 1982년 9월,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공격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믿고 철수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브라, 사틸라 난민촌을 에워싸고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할 수 있도록 아리엘 샤론의 명령에 따라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았다. 마치 청산리 대첩에서 패배한 일본군이 그 분풀이로 간도의 조선인 동포를 학살한 간도참변 처럼 말이다. 전시라 할지라도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며 전쟁 범죄이다. 그런데, 아리엘 사론은 "나를 괴물이나 학살자로 불러도 좋습니다. 이스라엘을 유대인 나치 국가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죽은 성자보다는 그게 낫습니다."(121쪽)라고 말했다. 그렇다. 아리엘 샤론의 말처럼 그들은 유대인 나치국가가되어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했었던 만행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하고 있었다. 악마와 싸우며 악마가 되어 약자를 지옥으로 내몰고 있는 그들의 섬뜩한 모습에 히틀러는 지옥에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에 이스라엘군이 주둔하면서 식민지배를 한다. 이에 대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제1차 인티파다 시기에 그들이 가진 것은 돌밖에 없었다. 일제의 무단 통치에 대항해서 우리가 3.1 운동을 했듯이, 그들은 인티파다를 전개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에 아리엘 샤론은 2005년 가자지구에서 유대인 불법 정착촌을 철수시킨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필요시마다 가자지구를 F16 전투기로 폭격했다. 

  2009년 저자 김재명은 가지구를 방문했다. 그 때 팔레스타인 주민은 "우리가 하마스를 지지했다 하더라도 총을 들고 싸운 전투원이 아닌데, 왜 마구잡이로 폭격해 집을 부수고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가느냐?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76쪽)며 울분을 토했다. 탁트인 시야를 확보하겠다며 불도저로 올리브 농장을 밀어붙이고, 응급차의 마을 진입을 막고, 부모의 주검 옆에서 굶주리는 아이 4명을 나흘이나 내버려둔 이스라엘군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은 존재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는 인간이 아니라 제거해야할 블렛셋인들로 보였던 것인가?

  이스라엘군의 정신상태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이스라엘 군인이 단체로 티셔츠를 맞추었다. 그런데 그 티셔처에 인간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팔레스타인 임산부 배에 총으로 조준을 을 해 놓고는 "1 shot 2 kills"라 적어 놓은 것이다. 1발로 2명을 죽인다는 섬뜩한 글귀를 적은 티셔츠를 단체로 맞춰입고 sns에 자랑하며 올린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다. 

  이러한 사실을 유엔도 알고 있다. 2009년 3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특사 라디카 쿠마라와미는 제10차 유엔 인권 이사회에서 "이스라엘군이 가지지구 침공 당시 11세의 팔레스타인 소년을 '인간방패'로 활용하는등 많은 인권 유린을 저질렀다."(101쪽)는 내용의 43쪽 보고서를 제출했다. 임산부와 배속의 태아에게도 총을 조준하며 "1 shot 2 kills"을 외쳤을 그들에게 팔레스타인 소년들은 인간 방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분노에도 거칠 것이 없다. "UN 마크가 뚜렷이 달려 있는데도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소속 직원의 차량이 부서졌고, 난민촌은 파괴되고, 점령지역 민간인은 강제로 이동당했다. 이는 제네바 조약 규정 위반이며 명백한 전쟁범죄이다. 이스라엘이 전쟁 범죄를 저질러도 그들에게는 미국이 있다. UN에서 미국은 거부권이라는 무기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눈감아 주었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외교정책'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국익보다 이스라엘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외교를 지적했다. 유대인은 유대인 로비단체를 이용해서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을 움직이고 있다. 어쩌면 반유대 정서를 확산시키는 일등 공신은 이스라엘일지도 모른다. 


2.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이슬람 지식인은 저자 김재명에게 "이스라엘은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내 민족만 잘났다고 타민족을 압살해선 안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배우기는 커녕, 나치의 악랄한 수법을 그대로 배워 중동땅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211쪽)고 토로했다. 히틀러의 수제자가 이스라엘이라는 그의 지적에 의문이 들었다. 과연 구약에 의해서 모든 것을 약속 받았으며, 고통이 끝나고 약속의 땅으로 그들이 귀환하여 이스라엘을 건국했다는 그들의 신화는 진실일까?

  저자 김재명은 아서 쾨스틀러의 '열세번째 지파'라는 책을 인용해서 이스라엘의 신화를 걷어낸다. 현대 유대인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아쉬케나짐 유대인은 740년 무렵 카자르 왕국의 불란왕이 유대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탄생했다. 아쉬케나짐 유대인은 독일 히틀러에 의해서 희생당했다. 아쉬케나짐 유대인은 로마에 의해서 나라를 잃고 2천년 동안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겪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고,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신화를 기억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인을 박해하고 학살하고 있다. 

  그뿐아니다. 유대인은 동유럽에 분포한 아슈케나짐, 스페인을 중심으로 분포한 세파르딤, 이슬람인들과 조화롭게 지낸 미즈라힘으로 나뉜다.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은 미즈라힘의 역사를 지워버렸다. 박노자 교수의 '하얀 가면의 제국'이라는 책에 의하면, 이스라엘인들은 로마에 의해서 디아스포라의 고통, 히틀러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고통을 거쳐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이슬람인들과 이웃하며 조화롭게 살았던 미즈라힘을 역사에서 지워버렸다고한다. 조화롭게 더불어 살았던 역사를 버리고 박해받았던 고통의 역사를 모든 유대인의 기억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피의 복수가 벌어질 수밖에.....

  이러한 이스라엘의 박해의 기억은 이스라엘을 제대로된 민주국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시민권을 갖은 21%는 아랍인이다. 그들은 병역을 면제 당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 어렵다. 취업해도 똑같은 일을 하는 유대인 입사 동기와 임금 및 승진에 차별을 받는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고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또한 유대인 사회 내에서도 피부색에 따라서 차별이 존재한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1등 시민 유대인과, 2등 시민 아랍인, 그리고 죽여도 비난받지 않는 호모사케르보다 못한 팔레스타인인으로 구성된 비민주적인 국가이다.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의 의해서 강제 점령당하고 있다. 곳곳에 검문소가 있고, 서안지구 내에 분리장벽이 존재한다. 땅의 주인이 자신의 땅에서 죄수 취급을 당하고 있다. 불법 정착촌 사람들이 달리는 차에 돌을 던져 팔레스타인인을 위험을 빠뜨리고, 이스라엘군이 난민촌에 총을 쏘아 댄다. 팔레스타인인이 저항하면 그들을 테러리스트라며 감금한다. 랄프 쇤만은 '시오니즘의 숨은 역사'라는 책에서 일제 강점기 일본인 순사가 독립운동가에게 했던 '성폭행과 전기고문'을 비롯한 악랄한 고문을 소개했다.(169쪽) 열악한 감옥에 인권을 유린하면서 감금당하는 팔레스타인이들에게서 우리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국가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만행이 이스라엘에서는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저자 김재명은 이스라엘을 민주국가라기 보다는 "군사 파시스트에 가깝다."라고 단언한다. 그 근거로 "이스라엘은 21세기에 식민지를 두고 있는 유일한 국가"(331쪽)임을 지적한다.김재명의 날카로운 지적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스라엘은 아테나 보다는 스파르타에 가까운 나라이다. 스파르타도 그들 내에서는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그리고 소수의 스파르타인이 반자유민인 페리오코이와 예속농민인 헬일로타이를 지배했다. 그리고 반란의 기미가 있는 건장한 청년들을 주기적으로 살해했다. 이는 이스라엘을 '군사 파시스트에 가깝다'고 지적한 김재명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이후 지금까지 '국가 비상 사태'아래 있지 않은가!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2년 동안 팔레스타인 희생자는 최소 1만 2600명이고 이스라엘 희생자는 1700명 가량이다. 사망자 비율로 따지면 유대인(이스라엘) 1명당 아랍인(팔레스타인) 7.4명 꼴이다."(33쪽) 이러한 사상자 비율은 일제의 의병 학살에 맞먹는 교환비율이다. 이는 전쟁이 아닌 학살이라고 볼 수 있다. 2024년 현재에도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한 유엔 차량을 폭격하고 난민촌을 폭격하고 있다. 전기가 끊겨 인큐베이터에 있던 아이들이 침대에 눞혀져야만 했다. 2014년 프란시스코 교황이 세월호 가족을 만났을 때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15쪽)이라는 말을 했다. 저자 김재명은 기계적 중립을 거부한다. 악과 선 사이에서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중립이 정의가 될 수 없다. 일제에 대항한 우리의 의병투쟁과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가 오버랩되기에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우슈비츠의 피해자였기에 가해자가 되어 버린 그들은 용서 받는 것인가? 히틀러의 뒤에 서서 팔레스타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동을 이제는 그만두어야한다. 그들이 인간적 양심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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