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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한국 현대사 - 피와 순수의 시대를 살아간 항일독립운동가 19인 이야기
안재성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11월
평점 :
"영웅은 비극적인 죽음으로부터 탄생한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월등한 인간이 행복까지 누리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5쪽
저자 안재성이 머리말 "비극의 아름다움"에서 내뱉은 첫문장이다.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영웅을 좋아하는 이유를 저자 안재성은 냉철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 노무현 대통령에서 시작하여 넬슨 제독에 이르기 까지 영웅의 비극적 죽음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우리 가슴속에 오랫 동안 기억하게한다. 그 이유가 저자의 말대로 자기보다 월등한 인간이 행복까지 누리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이웃이 나보다 잘살기를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가 죽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저자의 분석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던진 화두에 답해보자.
저자가 제1장에 배치한 인물은 박헌영이다.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을 만들어 항일투쟁을 하다가 광복된 후에는 북한의 부수상까지된 인물이다. 그러나 6.25 전쟁을 획책하여 민족의 비극을 일으킨다. 그 댓가였을까?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 겸 평양시다 위원장이었던 고봉기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일제, 미제가 못 다 죽인 조선공산주의자들을 김일성이 이어받아 하나씩 다 죽여버렸다." -37쪽
섬뜩한 문장이다. 그래, 김일성이 항일 투쟁을 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구도 부인 못한다. 그러나, 광복 이후, 가장 큰 친일파는 김일성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했던 그가, 광복 후에는 대단한 친일파가 되었다니? 무슨 뜻일까? 김일성이 6.25를 일으켜 일본이 전쟁 특수를 누릴 수 있게 했다. 패망한 일본은 김일성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일제가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을 김일성이 죽여주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김일성과 스탈린이 그들을 죽였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대의명분도, 신념도, 도덕도 져버리는 것이 독재자들이다. 독재자들은 비극의 시대를 살다가 영웅을 죽음을 선물하여 아름답게 만들었다.
저자 안재성은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다. 다음 문장에서 그가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 공산주의자들에 연민을 갖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박헌영이 이 시대에도 가치를 갖는다면, 전 생애를 바쳐 민족의 자유와 민중의 평등을 위해 싸웠다는 점일 것이다."-15쪽
모든 독립운동가가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일제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광복 이후에 어떠한 나라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갈라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박헌영에게는 그런 연민이 들지 않는다. 6.25를 일으켰다는 것 이외에 외눈박이 국제 정세 인식이 거슬린다.
경성제대 국문과 교수 김태준이 소련이 폴란드를 합병하고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했으며, 1930년대 중후반 대숙청을 한 것에 대해서 질문했다. 박헌영은 언제나 소련의 입장에서 대답했다. 이것이 그의 한계였다. 소련이한 모든 일이 옳다고 복 자녀와 부인의 이름도 소련식으로 지었다. 박헌영은 소련의 폴란드 합병을 "제국주의적 합병은 아니고 공산주의적인 것이며 일 보 일 보 세계 혁명을 진행하는 일환"으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소련이 북한을 합병해도 박헌영은 이를 "세계 혁명을 진행하는 일환"이라 말할 수 있을까? 스탈린은 김단야를 포함한 수많은 조선인 공산주의자를 간첩혐으로 처형했다. 그가 믿은 소련, 그가 만든 북한은 결국 그를 배신했다. 그리고 그는 미제의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박헌영이 6.25 이전에 죽었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죽은 영웅은 김일성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가족도 무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찍 죽지도 못했으며, 김일성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댓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그와 그의 가족에게는....
박헌영과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 중에 수많은 항일 투사가 죽었다. 이 책에 소개된 이관술과 이주하만이 아니다.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투사들은 남쪽에서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했고,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투사들의 보도연맹원으로 학살당했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박헌영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저자 안재성이 그토록 연민을 느끼는 박헌영이건만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 그가 김일성에게 전쟁을 종용했다. 그 결과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다. 그의 항일 투쟁이 과연 그의 6.25 전쟁 발발의 책임과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것에 면죄부가 될 수있을까?
박헌영의 죽음은 그와 인연을 맺고 있는 남로당계 인사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승엽과 이강국은 미군정 짹에 포섭된 간첩이다. 박헌영이 미군정의 간첩이 아닌 것에는 동의하지만, 미군정 문서에 의해 밝혀진 사실을 저자 안재성은 반박하지 않고 이승엽이 인천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을 근거로 이승엽 간첩설을 반박한다.
"현실 공산국의 역사에서 이른바 '간첩' 또는 '밀정'의 생산 작업은 거의 필연적인 것처럼 보인다." -106쪽
남한의 독재정권도 반대파를 "빨갱이"라고 몰아 붙여 죽였다. 그런데, 북한은 남한보다 더욱 철저하게 김일성 반대파를 숙청했다. 유독 북한에서 남한보다 철저한 숙청이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체주의 속성이 공산주의에 더 강하기 때문일까?
철저한 숙청의 칼바람을 피해간 사람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홍덕유이다. 그는 일찍죽는 행운을 얻었기에 미제의 간첩이라는 누명도 쓰지 않았다. 그는 행복하게 두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가 진정 행운이었던 것은 저 끔찍한 한국전쟁과 조선공산당 주류에 대한 숙청을 보지 않은 채 죽었다는 것, 남한에서도 아직 좌익의 기세가 드세던 1947년에 죽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244쪽
일찍죽는 것이 행운이라니... 이것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더러운 꼴 보기 전에 저 세상에 먼저가는 행운을 누리지 못한자들은 살아남은 댓가를 가혹하게 치뤄야했다. 반면 일찍 죽은 행운을 누린자는 그 가족들도 행복했다. 박진홍의 두자녀가 '혁명 유가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김태준과 어머니 박진홍이 일직 죽어서이다. 부모의 죽음은 어린 자녀에게는 불행일 텐데, 이 시대에는 행운이었다. 만약 김태준과 박진홍이 일찍 죽지 않았다면 그들의 자녀는 노동교화소에서 일찍 세상을 등졌을 것이다.
영웅은 비극적인 죽음으로부터 탄생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들이 자기보다 월등한 인간이 행복까지 누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까? 이 책에 소개된 19명의 항일투사들의 죽음은 안타까움만을 더할 뿐 그들에 대한 질투심이나 안도감은 느끼게하지 못했다. '독립운동 열전 2'를 읽었을 때의 기억이 다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 공산주의자들의 피난처 소련으로 갔지만 많은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스탈린의 숙청의 칼날 앞에 목숨을 잃었다. 그때 "이러려고 일제에 목숨을 걸고 싸웠는가?"라는 질문이 연이어서 들었다. '잃어버린 한국현대사'를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려고 목숨걸고 항일투쟁을 했는가?" 일제가 죽이지 못한 그들을 김일성이 대신 죽였다. 그들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자기보다 월등한 인간이 행복까지 누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영웅이 실현하고자 했던 웅대한 이상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한놈의 왜놈도 살려보내지 않겠다는 결의를 실천 못했으며, 임난 이후의 조선을 이순신이 개혁하지도 못했다. 노무현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힘을 구축하기 전에 죽었다. 그들이 그 이상을 실현했다면 우리의 삶도 변했을 것이다. 그들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영웅을 그리워하며 그들을 우리 가슴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이유이다.
ps. 옥의티
"공산주의와 동거하느니 영구분단을 하거나 아니면 북진 통일을 하겠다는 이승만과 김구 세력들을 상대" -317쪽
=> 김구는 분단을 막기 위해서 남북협상을 했다. 사실을 왜곡하고 백범을 모욕하는 표현을 수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