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도경 - 중국 송나라 사신의 눈에 비친 고려
서긍 지음, 조동원.김대식.이경록.이상국.홍기표 옮김 / 황소자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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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고려'! 고려 인종 시기, 송나라 사신 서긍은 정해현 심가문을 출발해 고려로 향한다. 바닷길을 이용해서 고려를 다녀오는 사실길은 목숨을 건 긴 행해였다.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를 견제하기 위해서 고려의 힘이 필요했던 송나라로서는 고려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서긍은 탁월한 눈썰미를 발휘했다. 고려에 머문기간이 1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려도경의 내용은 자세했다. 고려의 민낯을 보고 싶었던 나는 고려도경을 펼쳐들었다. 중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고려는 어떤 모습일까?

 

1.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는 사실을 요나라의 장수 소손령도 인정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져있다. 또한 쿠빌라이가 원종을 만났을 때, "고려는 만리나되는 나라이다. 당태종도 몸소 쳐들아가 이기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쿠빌라이도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제 여기에 한가지 사례를 더해야한다. 서긍도 고려가 고구렬르 계승한 국가임을 인정하고 있다.

 

  "후위에서 당에 이르는 동안은 모두 평양에서 살았다. 이적이 그 땅을 평정하여 도호부를 세우자 도망하여 동쪽으로 조금씩 옮겨가 살았는데,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잘 모른다. 당말에 국가를 수복하였을 때 도읍지를 개주라하였으며 현재도 여전히 개성부를 두고 있다."(75쪽)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왕씨가 세운 고려는 고씨가 세운 고구려와 전혀 별개의 나라이며,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인의 조상인,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 곳곳에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며, 고구려인이 나라를 수복하여 고려를 세웠다고 일관되게 적고 있다.

 

2, 공자는 '동이'에 살고 싶어했을까?

  '논어' 자한편에 "공자가 구이에 살고자하였다. 어떤이가 물었다. "누추하지 않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사는데 어찌 누추하겠는가?(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라는 내용이 있다. 이를 근거로 한국의 일부 사람들은 공자가 동이족이라고 주장한다. 황당하기 그지 없는 주장이라 일축했으나, 놀랍게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서긍은 어떠게 생각했을까?

 

  "예법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 다른 오랑캐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볼만하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동방에) 거처하고자 하면서 누추하다고 여기지 않은 까닭이다."-(146쪽)

 

  서긍은 공자가 동이족출신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논어'에 나오는 '구이'를 우리민족을 뜻하는 '동이'로 해석했다. 과연 '구이'는 '동이족'을 뜻하는 것일까? 역사를 공부하면서 주의해야할 것이있다. 단어나 지명은 고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단어도 시대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가 있다. 세종시대에는 '어린'이 '어리석다'라는 뜻이었다면, 지금은 '어리다'라는 뜻으로 변화한 것은 다들아는 사실이다. '동이'라는 말 자체도 중국의 입장에서 동쪽의 오랑캐를 뜻하는 용어일뿐이다. '동이'에는 우리 '한민족' 뿐만 아니라, 중국의 동쪽에 있는 '일본'도 포함되는 용어이다. 선진시기에는 황하문명을 중심으로한 지역 밖의 '산동지방'도 동이의 범주에 들어있었다. 중국이 팽창하면서 동이의 범위는 중국대륙 밖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읽는다면 커다란 오류에 빠지게 된다. "얕은 지식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포프)"라는 말이 있다. 얕은 지식이 모래성 처럼 쌓여 엄청난 오류를 범한다. 공자가 가고 싶었던 곳은 동쪽 바다건너 '조선'이라기 보다는 산동성 지역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3. 중화사상의 그늘

  "고려인의 경우에 중국 밖에서 나고 자라므로 움직이러면 큰 물결을 건너게 되니, 본래 배를 앞세우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이제 그제도를 살펴보니 간략하고 그리 정교하지 않다. 이것은 그들이 본래부터 물을 편안하게 여기기 때문인가? 아니면 누추한대로 간략함을 추구하면서 졸렬해도 고치지 않기 때문인가?"-(393쪽)

 

  서긍의 눈에 비친 고려의 문물은 중국의 것을 따른 것은 기특해보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졸렬'해보인다. 거란족에 의해서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일 수록 송나라 사람들의 중화사상은 더욱 강해진다. 일종의 '정신승리'이다. 각지역은 그 지역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다. 그러하기에 중국의 것을 따른다고 우수하고 따르지 않는다고 졸렬하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배에 관해서도 고려가 중국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하여 졸렬하다는 표현은 정당한 평가라 할 수 없다. 특히 우리는 중국과 치른 해전에서 대부분 승리했다. 임진왜란 시기에도 일본과의 전투에서 육지에서는 패배했으나, 바다에서는 대부분 승리했다. 그만큰 우리의 배가 주변국의 배보다 우리 지형에 알맞은 배였기 때문이다.

  주변 '오랑캐'의 유연하고 탁월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수록 송나라는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은 '진'나라는 유목민족의 기마술과 말타기에 적당한 그들의 의복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유념하자. 외부의 강력한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장점을 받아들여 우리것화할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고려도경'이 완성된지 2년 후, 1126년 송나라는 '정강의 변'을 겪게 된다. 송나라의 황제 2명이 금나라에게 끌려가는 치욕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포용력을 잃은 자가 겪어야하는 치욕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흥미로운 기사들이 넘쳐난다. "고려의 과일중에 밤은 크기가 복숭아만하며 맛이 달고 좋다."고 한다. 이당시에 밤이 과연 복숭아만했는지, 아니면, 복숭아가 밤만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밖에도 고려의 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고려에 머문 기간이 1달여밖에 되지 않으며, 사신이 머무는 숙소 주변을 위병이 지키고 있었고, 객관 밖을 나간 것이 대여섯번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의 탁월한 관찰력 세밀한 묘사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고려에 관한 글에 더하여 자신이 직접 그림까지 그려 완성한 40권의 '고려도경'은 고려와 송이 손을 잡고 거란을 공격하는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송나라는 수도 개봉을 여진족에게 내어주고 남쪽으로 쫓겨 내려가야했으며, 고려는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그뒤를 이어 1170년 무신정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고려도경'의 그림도 사라졌고, 서긍은 사라진 그림을 다시 그릴 열정도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남긴 '고려도경'은 우리가 고려와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안내서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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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풀어낸 고려 왕 34인의 이야기
석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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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학에도 심리학을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고려시대사 강의를 듣던중, 문철영 교수가 던졌던 화두였다. 역사학은 딱딱하고, 대중의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고민이 깊어가던 시기였다.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라 생각했던 역사가, 재미없고 딱딱한 학자들만의 이야기 남아 있는 현실은 너무도 안타깝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심리학과 역사학을 접목시킨다면, 역사속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그러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고, 역사학의 재미는 배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감돌았다. 드디어 심리학의 눈으로 역사적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본 책을 만났다. '심리학으로 풀어낸 고려왕34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문종을 재발견하다.

  고려시대,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장수왕시기, 백제는 근초고왕시기, 신라는 진흥왕 시기, 발해는 선왕시기, 조선은 세종대왕 혹은 영정조시기를 전성기로 생각한다. 그러나, 고려의 전성기는 언제였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한국사 교과서를 펼쳐보자. 태조왕건이 나라를 세우고 광종과 성종 치세에 국가 기틀을 잡다가, 거란과 여진의 침략을 물리치지만, 몽골의 오랜 침략 속에서 결국 굴복한다. 그 굴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공민왕이 노력했지만, 결국 고려의 혼란은 수습되지 않고 조선왕조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고려는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혼란기에 접어들었다는 인상을 주는 서술이다.

  사실 고려왕조의 전성기는 문종시기였다. 조선 세종이 셋째이듯이, 문종도 셋째로서 왕위를 계승했다. 문종시기 학문은 발전했고, 여진족은 고려에 복속되었다. 고려의 기미주로 편성된 여진족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백성들의 삶도 편안해졌다. 학문이 발전하고, 정치가 밝아졌으며, 국제 정세도 고려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종시기 역사에 대해서 교과서에서는 서술이 안되고 있다. 조선에 비해서 너무도 홀대받는 고려의 모습을 바라보며, 혹시! 식민사학의 그늘이 고려에 드리워졌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유독 고려에 대한 차별 대우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망상일까?

  문종치세를 재발견하고, 교과서 서술의 문제점가지 생각한 것은 이 책에서 문종의 심리를 분석하며 문종치세의 업적을 제시한 부분을 읽으면서부터이다. 다른 고려사 관련 책들에서 발견하지 못한 보석을 '심리학으로 풀어낸 고려왕 34인의 이야기'에서 발견했다.

 

2. 마음속에 어린 아이가 울고 있는 궁예

  드라마 '태조왕건'이 한창 방영되던 시기!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태조 왕건'인지, '궁예'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왕건보다 궁예라는 캐릭터가 주는 강렬함은 많은 시청자들을 텔레비젼앞으로 모이게 했다. 마치, 중국의 초패왕 항우와 한고조 유방의 싸움을 보면서, 승리한 한고조 유방보다, 패배한 초패왕 항우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언더도그 효과(underdog effect)' 즉, 어려운 환경에서 악전 고투를 하거나, 게임에서 지고 있는 자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기대심리가 작동했을 것이다. 궁예는 왕족이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한쪽 눈까지 잃었다. 반면, 왕건은 송악의 호족 출신이다. 아버지에게 살해라는 위기에 빠져 악전고투하는 궁예를 자신에게 투영하며 사회적 밑바닥에 있는 인물이 승리하길 바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건의 승리로 결말이 지어질 것을 알고 있다. 결말을 알면서도 궁예를 마음속에서 버리지 못한 것은 궁예에 대한 미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궁예가 승리하기를 바랐지만, 궁예는 왕건을 넘어서기에는 너무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 러레노어 테어는 '유아시절의 외상은 잊히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런 경험을 지닌 사람들의 일상은 단조롭고 냉혹한 면이 있으므로 잘 관찰하면 외상의 유무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궁예의 가슴속에서 커다란 상처가 있다. 그 내면에는 '버림받은 아이' 궁예가 울고 있었다. 결국,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지 못한 궁예는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간다. 관심법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부인과 자식도 죽인다. 

  주디스 루이스 허먼은 "자신에게 일어난 상처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으나, 회복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한쪽 눈을 잃고, 힘든 삶을 살아야했던 것은 궁예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 아이'를 달래고, 스스로를 치유할 의무는 궁예 자신에게 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궁예는 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도 수많은 궁예가 있다. '울고있는 내면아이'를 달래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아이를 달랠 줄도 모른다. 그렇다면, '울고 있는 내면아이'를 달래고 치유하는 의무를 사회가 나눠 수행할 수는 없을까? 생애전환기 검사를 하듯, 정신과 진료를 받고, 내면 아이를 치유하는 시스템을 우리도 갖길 바란다.

 

3. 절대지존! 그러나 나약한 인간! 

  전통시대! 제왕은 절대지존이다. 그 누구도 감히 그를 무시할 수 없다. 한생명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해서일까? 고려의 왕들중에는 자신의 막강한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많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이들 왕의 묘호앞에는 '왕'자가 붙는다. 원나라 황제에게 충성하라는 의미이다. 고려의 왕은  고려에서는 절대지존의 자리에 있지만, 원나라 황제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들이다.  자신의 부인 제국대장공주에게 매까지 맞은 나약한 충렬왕! 아버지와 아들이 왕위를 두고 경쟁했던, 충렬왕과 충선왕! 자신의 아들까지 죽이고,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도 조카를 세자로 삼아 아들을 견제했던 충선왕!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체장애자로 모함받은 충숙왕! 부왕의 첩과 외숙모를 겁탈하며 향락에 빠져 살다가 타국에서 죽은 충혜왕! 어린나이에 죽은 충목왕과 충정왕! 이들의 삶은 애잔한 느낌까지 든다. 그들은 몽골과 몽골출신 부인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야했다. 그리고 고려 백성에게는 한없이 강한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얼마나 한심했으면, 제국대장공주가 사냥을 즐기는 충렬왕에게 사냥을 하지 말고 백성을 돌보라했겠는가?

 

  "자신이 기대는 대상에게 비굴해질수록 자신에게 기대는 사람의 단점을 들춰내고 더 모멸하는 것이다. 이는 의존할수밖에 없는 자신의 객관적이고 명시적인 열등 상태를 극단의 주관적 우월감으로 표출하면서 억압 에너지를 해소하려는 행동이다."(261쪽)

 

  강자에게 비굴한 사람은 자신보다 약한자에게 강해진다. 자신의 삶에 당당한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강한자에게 기대어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고려왕들의 모습은 백성들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백성들이 고통을 받더라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도! 힘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권력을 지키는 것도 버거웠을 테니까...... 타인의 힘에 의지한 정치는 충혜왕의 폐륜적인 모습으로 극에 달한다. 당당한 주인으로 살지 못하면, 그 고통은 대를 이어 유전된다.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 자녀들도 주인으로 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타인에 의존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왕은 비단, 원간섭기에만 있지 않았다. 수동의존형 왕 '인종'도 그러했다. 처음에는 이자겸에 의존해서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했고, 이자겸을 제거하고 나서는 묘청에 기대어 정치를 하려했다. 결국에는 김부식을 비롯한 문벌귀족에게 기대어 권력을 유지하게 되었고, 경계선 성격을 지닌 의종 시기에 무신정변이 발발하여 고려왕의 권력은 무너진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정치를 하지 못하는 왕은 그 권력을 쥘 자격이 없다. 절대자를 추종하는 맹목적 신도처럼 그들은 나약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권력은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게 된다. 인종의 나약한 자아는 경계선 성격을 지닌 인종으로 이어졌고, 자신이 관심의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마치 트럼프처럼! 

  권력을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없는 왕들에게 통치를 받고 있는 백성들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왕조시대! 제왕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어떠한 제왕을 만났는가에 따라서 백성의 삶이 많이 달라진다. 무당에게 의사결정을 맡기며 푸른집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두었기에 우리가 겪어야했던 고통을 생각한다면, 고려시대 백성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4. 상처받은 자들! 상처를 치유할 방법은 없는가?

  제왕에서 평민까지, 아니 노비까지! 사람은 나약한 존재이다. 사랑을 갈구하며 부모라는 존재의 그늘 속에서 살아야한다. 어른이 되면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다시 자신의 삶을 옥죄게 된다. 하인츠 코헛은 "전능한 줄 알았던 부모가 능력의 한계가 있고 자신의 이상과 기대에도 못미치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고 했다. 그리고 이것을 건강한 자아상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최적의 좌절"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제왕의 아들에게는 "최적의 좌절"을 해줄 아버지가 부재한 경우가 많다. 아버지의 한마디에 만백성의 생명이 달렸기에 그들의 도덕성 발달은 좌절될 위험이 상존한다.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을 비롯한  대기업 자녀들의 갑질은 "최적의 좌절"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제왕들의 자녀와 비슷한 모습일 것이다. 그나마, 제왕의 자녀들은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많은 스승과 신하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기업에는 제왕의 자녀를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스승과 신하들'이 있는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부모라는 존재에 의해서! 강한 힘을 가진 어른이라는 존재에 의해서! 불의의 사고에 의해서! 힘쎈 친구에 의해서 겪게된 고통을 치유할 방법은 없을까?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치유의 방법을 살펴보자.

 

  "트라우마를 말살하기 보다 그것과 더불어 살며 그 트라우마를 발전과 성숙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방법까지 익혔을 때 마침내 내면의 상처가 완치된다."

 

  '상처를 받은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지만, 상처를 치유할 의무는 나에게 있다'는 말처럼, 트라우마를 겪은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지만, 그 트라우마를 치유할 의무는 나에게 있다. 트라우마를 없애려하기 보다는 트라우마와 더불어 살며 그 트라우마를 발전의 발판으로 삼으라! 성숙된 인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 또한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했다. 그리고 그 왕따의 그늘은 나의 삶을 그늘지게했다. 나는 과연 트라우마와 더불어 살며, 그 트라우마를 발전과 성숙의 원천으로 사용했는지 자문해본다. 내가 고등학교 교사로 살고 있는 것도 그 트라우마를 성숙의 원천으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때론 초등학교 시절의 일들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미병의 상태'! 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병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우리 조상들은 강조했다. '위생가설'에 따라서 병균을 없애면 인간이 건강해질 것이라고 서양의학자들은 말했다. 그리고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항생제 남발은 우리에게 유익한 유산균들도 죽였다. 무균실에서 자란 아이는 오히려 면역력이 낮아져 질병에 시달리기 쉬워진다. 병을 없애기 보다는 병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 즉 미병의 지혜를 터득할 시간이 왔다.

   정신분석학자 로버트 존슨은 그림자를 대하는 원칙을 "우선 직면해서 수용하고, 그다음으로 함께 가볍게 춤을 추는 것이다."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이때 "내가 주체가 되어 그림자와 춤을 춰야지 그림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로버트 존슨도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려하기 보다는 아픔을 직면하고 주인이되어 아픔과 가볍게 춤을 추라했다. 어린시절, 나를 괴롭혔던 '친구'라는 괴물들을 직면하고 그들이준 상처와 가볍게 춤을 추어야겠다. 나의 내면에서 울고있는 아이를 달래며 내면아이와도 함께 춤을 추어야겠다. 그리고 나의 내면아이를 끌어 안겠다. 눈물을 흘리며.....

 

  "(윌리엄 제임스) 삶이 변화되기를 원하면 이유나 변명을 달지 말고 열정적으로 살라.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

 

  그래, 나의 내면아이를 끌어안고 이제 열정적으로 살아가자! 지금 당장! 행동이 변해야 삶이 변하고 인생이 변한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쉬운 '이유나 변명을 달지 말고 열정적으로 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열정적으로 살자!!

 

5. '옥의 티'를 찾아서

  이 책의 저자 '석산'은 자신의 본명을 밝히지 않고 있다. 자신의 전공도, 자신의 출신 대학도 책에는 적혀있지 않다. 아마도 경제분야를 전공한 다방면에 박식한 사람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심리학과 고려사에 대한 상당한 실력이 있음을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그러나 '석산'의 책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몇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첫째, 동북9성의 위치능 어디일까? 어린시절, 동북구성의 위치를 천리장성밖의 함경도 지역으로 배웠다. 그러나 이 설은 일본인 학자의 주장이며, 우리학자들은 길주설과 두만강 유역설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 영토를 축소시키려는 일본인 학자의 설을 궂이 적었어야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길주설과 두만강 유역설을 소개해주었다면 이 책이 더욱 빛났을 것이다.

  둘째, 광종은 숭유억불책을 썼는가? 이 책에는 "신정왕후 황보씨의 딸이 노골적으로 숭유억불 정책을 편 광종의 아내였다."라고 적고 있다. 광종은 최승로의 시무28조에도 나오듯이 말년에 불사를 많이 일으킨 왕이다. 광종이 숭유억불책을 썼다는 말은 수정해야한다.

  셋째, 충선왕은 원나라가 좋아서 고려에 안왔을까? 이 책에서는 "충선왕은 어릴때 부터 원나라생활에 젖어 있던 터라 고려보다 원을 더 가깝게 여겼다."라고 적고 있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다. 그러나 충선왕이 연경에서 전지정치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원나라 생활에 젖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의 정치변동에 따라서 왕권의 향배가 달라지는 고려의 뼈아픈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부분까지 지적해주었다면, 이 책이 더 빛났을 것이다.

  작지만, 아쉬운 '옥의 티'를 잘 닦아 준다면, 이 책은 더없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세상이 혼란스러울 수록 절대적 카리스마로 혼돈을 잠재울 영웅을 기대린다." 바로 '알파형 리더'를 기대한다. 전통시대! 그러한 알파형 리더가 나타나길 바라며 '제왕'이라는 존재를 만백성들은 우러러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왕'들도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알파형 리더'가 나타나기를 바라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어 삶을 개척해나갈 때만이, 참다운 주인으로 살수있다.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들은 신화를 만들어 낸다. "집단 무의식에서는 신화의 진위가 중요하지 않다. 그 의미와 지향하는 바가 중요한 것이다." 신념은 집단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다. '알파형 리더'를 바라는 잘못된 심리는 잘못된 집단 무의식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잘못된 집단 무의식은 '제2의 박정희'와 '제2의 히틀러'를 만들어 낸다. 우리사회는 과연 그러하지 않는지, 우리는 스스로 주인으로 살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이 책은 묻고 있다. 34명의 고려왕의 심리를 해부함으로써 그들을 저 높은 좌대에서 끌어 내어 우리 곁에 다가서게 했다. 그리고 묻는다. 민주주의 시대! 우리는 주인으로서 살고 있으며, 주인으로 살 준비개 되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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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 몽골 제국과 고려 3
이승한 지음 / 푸른역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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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화려한 역사를 읽기를 꿈꾼다. 나 자신의 화려한 20대를 그리워하듯이, 우리역사의 활기차고 진취적인 시대를 탐닉한다. 화려한 우리의 역사를 읽는 것은 고려시대사에도 적용된다. 화려한 후삼국의 주인공들이 새시대의 주인공이 되려 칼과 지략을 겨루던 시대를 지나서, 거란과 여진의 침략을 물리치고 몽골에 저항하며 자주성을 지키려 했던 역사를 기억하려한다. 그러나 공민왕이 반원자주개혁을 추진하기 직전까지의 고려역사는 우리 기억속에 없다. 어두운 고려의 역사를 우리는 모르고 있다. 아니, 외면하고 있다. 프로이드를 중심으로한 정신분석학에서는 나 자신의 아픔을 직면하는 것이 그 아픔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라 말한다. 고려의 아픈역사! 그 역사를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서가에서 뽑은 책이 '고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라는 이승한 작가의 책이다.

 

1. 역설의 시대! '세계화 시대'는 '고려왕조의 위기의 시대'였다.

  '세계화 시대'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우리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시대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책에서 고려의 '세계화 시대'는 곧 '고려왕조의 위기의 시대'였다. 고려의 위기!와 세계화 시대! 이 두단어의 양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그것은 우리가 주인공인 세계화인가? 와 타국의 종으로서의 세계화인가?의 차이일 것이다. 고려의 국제적인 나라였다. 이슬람 상인이 벽란도를 드나들었으며, 거란의 포로중에서도 기술이 좋은 사람은 장인으로 발탁했다. 중국인들 조차도 고려에 와서 높은 벼슬살이를 했다. 이렇게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나라 고려! 그 고려가 몽골에 굴종하고 몽골의 부마국으로서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남의 종으로서 맞이한 세계화 시대는 고려로서는 너무도 불행한 시대였다.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에게 '주인장 계신가?'를 외친 노스님의 말은 원간섭기를 살았던 고려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법어이다.

 

2. 왕이기를 포기한 왕들! -충숙왕, 충혜왕, 충정왕

  학생들 중에서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고 사고를 치는 학생들이 있다. 그 학생과 대화를 하면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것은 방황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간은 시련을 겪어도 어떠한 학생은 가정의 경제적 불운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어느 학생은 인생의 막다른 길로 걸어간다. 고려의 왕들은 스스로 패배자의 길을 걸어갔다. 누가 자신을 패배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기자신이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든다. 충숙왕은 충선왕의 견제속에서, 심양왕의 입성책동과 왕위를 위협하는 상황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치를 멀리하고, 심지어는 충혜왕에게 양위하고는 자기 아버지 충선왕이 했던 것처럼 아들과 권력투쟁을 한다.

  이러한 비극은 충혜왕에 이르러 비극으로 치닫는다. 비정상적인 아버지를 둔 아들의 반항이었을까? 아니면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원나라에서 숙위를 해야만했던 자신의 비운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였을까? 신하들의 부인을 겁탈하고, 욕정을 참지 못해서 아버지의 여자까지도 범하는 패륜을 저지른다. 그리고 원나라의 신하들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원나라에 끌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어린 충목왕에 이어, 충정왕이 왕이 되지만, 충정왕 또한 멀쩡한 백성들에게 달려가서 행패를 부린다. 너무도 억눌린 숙위생활에서 온 스트래스를 애꿋은 고려의 백성에게 푸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들은 스스로의 명을 재촉한다. 충정왕도 왕위에서 끌려내려오고, 원나라는 공민왕을 왕위에 앉힌다.

 

  비극의 시대! 고려의 왕이 원나라의 말한마디에 의해서 왕위에서 쫒겨나는 시대! 왕에게 배신하고도 원나라를 등에 엎고서 다시 화려하게 복귀하는 부원배들의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고려의 왕에게도 고려의 백성들에게도 치욕이었다. 원나라의 천호 벼슬을 하던 사람의 후손이 조선을 건국한다.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진리를 믿고 싶은 나에게는 많은 질문을 던져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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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협상을 말하다 - 개정판
김기홍 지음 / 새로운제안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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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우리의 머릿속에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는 인물이다. 세치의 혀로 위기에 빠진 자신의 조국을 구해낸, 명 협상가, 외교가, 서희!

서희가 살았던 고려의 상황처럼, 지금의 한국의 상황도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 서 있다. 전통적인 초강대국 미국과 새롭게 초 강대국으로 굴기하고 있는 저 중국,  그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야하는 오늘의 한국은, 전통적인 우호국가인 송나라와, 새롭게 일어서고 있는 거란족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야하는 고려와 너무도 흡사하다. 그런데, 그때는 서희가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서희가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러한 답답함이 이 책을 읽도록 나를 이끌었다.

 

서희! 그가 되고싶다! 서희를 길러내고 싶다!

언제나 협상에서 지는 우리 한국의 협상팀들을 보면서, 언제나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왜? 우리는 협상에서 패배하는가? 서희와 같은 명 협상가가 있었던 나라인데.....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명확한 몇가지 대답을 해준다.

첫째, 명협상가는 길러지는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있고, 빨리 빨리라는 조급증에 몸살을 알고,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대화를 불가능하게하는 사회분위기는 명협상가를 길러내는 토양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결국, 명협상가를 길러 낼수있는 사회적 토양을 만들어내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시급한 일임을 이책을 읽으며 뼈져리게 느꼈다.

둘째, 뜨거운 가슴은 있으되, 차가운 머리가 없는 국민들! 쌀시장 개방을 슬퍼하되, 이를 협상을 통해서 차갑게 해결할 수 있는 일에는 한없시 답답함을 느끼게 만드는 국민정서가 문제다. 치밀하게 사전협상과 본협상 그리고 사후협상을 이끌어가고, 내부협상과 외부협상에 대한 노련함을 발휘하는 국민이어야 제대로된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

셋째, 사람부터 되어야한다. 에필로그에 적혀있는 이 말은 나의 뇌리를 관통했다. 협상전문가가 협상의 기본을 '사람부터 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서희라는 사람이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적진에 가서 당당하게 협상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서희라는 인물됨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적장도 감탄할 정도의 사람됨을 갖추었기에 그가하는 말이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왕에게도 직언을 서슴치 않았던 서희의 인품은 거란과의 협상이후에도 고려 성종의 마음을 여러번 움직였다. 힘으로, 세치의 혀로 적을 굴복시키기 보다는, 인품으로 적을 감복하게 하는 것이 바로 가장 높은 수준의 협상이 아닐까? 손자가 말했던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하는 말인것 같다.

 

서희를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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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읽는 고려사 - 용의 후손 왕건에서부터 이성계까지
정성희 지음 / 청아출판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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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미있는 고려의 역사 다시보기1

고려사에 관한 책들을 꾀읽었다. 각각 확실한 색깔이 있는 책들이었는데, 이번 책도 나름의 빛깔이 확실했다. 우선, 누가사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체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읽는 내내 정말 재미있었다. 살아있는 고려의 인물들을 재미있는 일화와 함께 읽을 수있었고, 그들과 동행하여 고려시대의 굵직한 사건드을 취재하는 기자의 기분을 많이 느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읽으면서 많다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2. 고려사의 빈공간을 채우다.

고려사에 대한 책들이 전시대를 관통하는 글쓰기기 안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연구가 잘된 분야는 자세히 서술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는 제대로 서술하지 않아서, 고려사 책을 읽으면서도 역사의 빈공간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에 비해 이책은 촘촘히 고려의 역사를 서술하여, 그 빈공간을 채워주었다. 고려사에 대한 전체적인 줄거리를 완성할 수 있는 책이었다.

 

3. 아쉬움.

상당히 재미있고 좋은 책이다. 그러나, 바다 많은 사진자료를 넣어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덕일의 책을 읽으면, 사진자료가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시각적 효과의 중요성을 이덕일은 알고 있다. 이책을 쓴 정성희도 이점에 유념해주었으면 좋겠다. 좋은 책을 더 좋게 만들수있는 방법은 시각적 자료를 더욱 첨부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것이다.

  조선시대사가 전공이라, 고려시대의 연구결과를 반영하기에 한계가 많아 보인다. 특히 참고문헌이 대부분 90년대 이전의 책들있다. 물론 이 책이 오래전에 쓰여졌기에 시기적 한계가 분명히 있다. 개정판을 내서 이부분을 보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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