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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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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헌터'!! 참 매력적인 제목이다. 학자의 길에 들어서면서 박선주 교수는 뼈를 찾아 다니고 뼈와 대화하며 진실을 밝히려했다. 그의 뼈사냥은 구석기 시대부터 현대 세월호 까지 시기를 구분하지 않는다. 또한 우로는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에서 부터 좌로는 6.25 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터 발굴에 이르기까지 좌와 우를 넘나든다. 그가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을 했다는 사실을 보며 혹시 우익인사는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가 민간인 학살터를 발굴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며, 학문적 탐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좌우익의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다보니, 모든 사람들을 좌와 우로 나누어 살펴보려는 얄팍한 생각에 젖어 있었다. 

  한국 체질인류학 분야에 독보적인 존재가 바로 박선주 교수이다. 뼈르보며 동물뼈인지 사람뼈인지도 구분 못하던 우리 학계의 현실에서 미국 유학을 통해서 쌓은 체질인류학에 대한 그의 지식은 우리 인류학 발전 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진실을 밝히는 작업에도 사용되었다. 이책을 읽으며 놀랐다. 아산 출신의 친구를 만나면서도 그 친구가 살았던 아산지역에 6.25 전쟁을 전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천안 아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도 빠르게 발전하는 아산의 모습에 감탄을 하면서도 그곳에 서려있는 고통의 역사를 물랐다. 

  이는 아산뿐만이 아니다.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서, 대전 교도소에서도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 시에서 만든 상소동 수영장을 가족과 가면서도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학살터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역사는 기억하는자의 것이고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했던가! 망각속에 잊혀진 역사는 반복될 우려가 크다. 아직도 극우 파쇼적 발언을 하는 정치인들과 유튜버를 보면서 민간인 학살은 사라진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다시 반복될 수 있는 역사임을 깨닫는다. 

  76세를 넘긴 박선주 교수는 이제 대학에서 정년퇴직했다. 그 나이라면 후학들에게 모든 일을 넘기고 편히 쉬어도 되지만, 그는 더 진실을 밝히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이상 발굴에 참여할 수 없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발굴단의 중요 직책은 문화재 관련 학과 출신이어야한다는 조항이 그와 그의 친구들이 더 이상 발굴 작업에 참여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만든 법이 진실을 밝려는 이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이 부분은 법의 개정을 통해서 반드시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박선주 교수는 본 헌터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어한다. 그가 진실을 마주하는 본 헌터로 계속 남길 우리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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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역사 2 - 주체사상과 유일체제 1960~1994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6
이종석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역사비평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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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북한은 김일성 권력을 공고히하고 주체노선을 고창한다. 그리고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은 이동한다. 1980년대 김일성과 김정일 공동통치시기를 지나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 시대가 개막된다. 김일성 없는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 시작한다. 

  북한의 역사2를 읽으며 희망차기 보다는 착잡한 생각이 밀려온다. 한때 대동강의 기적을 운운하며 남한보다 잘 살았던 북한이, 먹을 것을 찾아서 시골과 중국땅을 헤매는 비참한 동포의 모습으로 변했을까? '주체'를 앞세우며 희망을 부르짖지만, 현실은 곤궁함의 극치로 내몰린 북한! 

  김일성 가문의 입장에서 북한 현대사는 성공의 역사로 포장할 수 있다. 강력한 남로당, 옌안파, 소련파, 갑산파를 물리치고,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김일성이 권력을 독점했고, 3대 세습에 성공하여 김일성 왕조 성립에 성공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는 패배의 역사이다. 소위 '민주개혁'으로 시작하여 자기 땅을 갖게 되었지만, 6.25 전쟁을 거치면서 집단농장화를 했다. 물질보다는 사상이 우선시되는 시대에서, 김씨 왕조를 위한 충성 맹세를 해야했다. 김일성 유일사상체계 속에서 자유로운 사고는 이뤄질 수 없었다. 급기야 배급이 끊기고 식량을 찾아서 지방과 중국땅을 헤매야했다. 

  이 책은 1960년대 이후 북한의 몰락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김일성 유일 사상체계 속에서 생각이 마비된 북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이나 착잡한 일이다. 북한 주민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동력을 김일성 유일 사상체계가 억압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쯤 북한 주민은 스스로의 힘으로 희망찬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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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쟁점으로 읽는 20세기 한일관계사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8
정재정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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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지만 먼 이웃 일본! 지구상에 있는 나라들 대부분이 이웃나라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중국과 베트남 사이, 영국과 프랑스 사이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이웃나라끼리는 사이가 좋지않다. 그 중에서 한국과 일본 만큼 상대국을 싫어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특히 광복 이후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더 없이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갈등의 뿌리를 알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일관계는 언제부터 이렇게 뿌리 깊게 불신의 늪을 헤메고 있었을까?

  20세기 한일관계의 실타래가 본격적으로 뒤엉퀴기 시작한 것은 식민지배였다. 일본인은 한국인을얕잡아 보게 되었으며,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깊은 원한을 갖게 되었다. 일본이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과 식민지 노예교육은 한국인들에게 식민지 노예 근성을 만들어 놓았다.


 "한국이 일본과 공식적으로 교전한 적이 없고, 독립 운동세력이 국제 사회의 정식 승인을 받으납도 없기 때문에 ... 일본은 배상할 의무가 없다."(60쪽)


  이말은 보수당 국회의원 정00이 한 말이 아니다. 일본의 보수파들이 한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수당 국회의원이 한 말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은가? 공주의 친일파 집안에서 자라난 정00의원은 식민사관의 세례를 충실하게 받았다. 식민지에서 벗어난지가 80여년이 되어가는데 우리는 식민지 노예 근성을 버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이념과 체제면에서 남한은 일제시기와 단절적인 혁명을 거쳤다면, 북한은 정치, 경제의 근본에 관련된 이념이나 가치등에서 일제와 연속된 측면이 많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친일 청산을 했는데, 남한은 하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인데 '20세기 한일 관계사'의 저자 정재정은 인적 청산보다는 이념과 체제, 정치, 경제적 관점에서 신선한 지적을 한다. 남한과 일본은 일제 말기의 대척점에 있는 미군의 통치를 받은 반면, 북한은 일제 말기와 친연성이 강한 소련군의 통치를 받았다. 일제의 전체주의적 통치는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서 전체주의 공산국가 시스템으로 이어졌다. 

  참으로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6.25 전쟁 중에 일명 '모셔가기' 계획에 따라서 남한의 지식인들을 북으로 끌고갔다. 민족주의 역사학자를 끌고갔고, 그들의 학설이 북한의 정설이 된 경우가 많다. 악질 친일파를 청산하고 항일의 역사를 가진 그들이지만, 그들은 모든 역량을 전쟁에 쏟아 붓는 일제 말기의 통치 시스템을 지금도 구사하고 있다. 그들은 일본을 싫어하지만, 6.25전쟁을 일으켜 기아에 허덕이는 일본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가장 반일적인 정권인 가장 친일적인 행동을 했다. 조선민족을 강조하는 그들이, 민족의 가슴에 총뿌리를 겨누며 증오의 마음을 불타게했다. 

  6.25 전쟁은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조련계통은 일본전쟁 개입 반대, 군수물자 생산 및 수송 협력 반대 투쟁을 하며 화염병을 투척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서 민단은 700명의 의용병을 모집하였다. 그들은 한국군에 편입되어 전투에 참가했다. 이러한 역사가 있었는지 우리는 몰랐다. 외국 군대가 공산주의 침략에 대항해서 군대를 파병했다는 사실은 알았을지라도, 재일동포가 의용병을 모집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6.25전쟁으로 재일동포 사회가 다시한번 분열되었고, 그들이 의용병으로 참전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므로서 재일동포에게 2번의 상처를 주었다. 

  식민지배로 시작한 20세기 한일관계는 광복후에 일본을 배워 일본을 따라잡으려는 피나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적대 추월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본은 추월하기 시작한다. 삼성전자는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소니를 추월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웨이퍼 밑으로 파고도는 트랜치 방식을 구사하는 일본과는 달리, 쌓는 스택방식을 개발함으로써 일본 반도체를 추월해다. 식민지배를 받으며 일본보다 열등하다는 자괴감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가, 이제는 일본을 추월하며 그들을 애처럽게 바라보고 있다. 이제 20세기 초엽의 한일관계는 역전되고 있다. 이후의 역사는 과거의 역사와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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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역사 1 - 건국과 인민주주의의 경험 1945~1960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5
김성보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역사비평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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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민족으로 같은 한반도에 살지만,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가는 북한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지 않다보니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기에 무리가 많다. 단편적인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북한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역사문제 연구소에서 기획한 북한의 역사를 선택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북한의 역사1은 해방부터 1950년대 까지 북한의 역사를 정리한책이다. 책의 두께가 얇다보니, 내용도 풍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본의 책들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그중에서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남한에 이승만이 있다면, 북한에는 김일성이 있었다. 즉, 이승만이 정읍발언을 하면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수립을 외쳤다면, 북한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한 세력들이 분단의 길을 걷고 있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일신의 안일에 취하여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하지는 않겠다며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갔다. 조국 분단은 내전으로 이어질 것을 직감한 백범의 마지막 도전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백범의 도전을 받아줄 그릇이 되지 않았다.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연석회의가 종료된 뒤인 1948년 4월 29일 북조선 인민회의특별회의는 헌법 초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129쪽


  백범에게 통일 정부 수립을 논의하자며 손을 뻗은 김일성은 분단을 준비하며 북한 헌법 초안을 채택했다. 그리고 남북 제정당 사회 단체지도자협의회가 열리는 토론중도, 남북 협성이 열리는 그 순간에도 북한은 북한 정권 수립과 분단을 위한 길을 멈추지 않았다. 기만적인 북한의 행태 속에서 백범의 몸부림을 너무도 애처러웠다. 

  북한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니, 남한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외친 이승만의 모습만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를 소리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기만적인 인간들이 있었다. 

 둘째, 급속한 사회주의 경제로 이행으로 상당한 부작용이 있었다. 북한이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세력의 도움을 받아 6.25전쟁의 폐허를 빠른 시일내에 극복하고, 사회주의 경제를 구축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한 성과 때문에 1956년 8월 종파 사건이 일어났을때, 김일성을 끌어내리려는 소련파와 연안파의 계획은 실패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6.25 전쟁으로 생산시설이 파괴된 상황에서 서로 도우며 농사지어야하는 상황이 펼쳐졌다하더라도 협동농장으로의 이행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개인 상공업을 비롯한 자본조의적 색채를 없애고 사회주의 경제로의 이행은 불만과 부작용을 낳았고 이것이 연안파와 소련파가 반김일성 운동을 계획한 배경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다. 

  상대를 알지 못할 경우, 상대를 실체보다 과정되게 미화하거나, 반대로 과장되게 비하하는 경우가 있다. 북한은 그러한 존재이다. 너무도 아는 것이 없고, 알려진 것이 없다보니 북한은 때로는 과대평가되거나, 과소평가되었다. 이 책을 읽었다고 북한에 대해서 잘알게 된 것은 아니다. 단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오해 몇가지를 해소한 것 뿐이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이책은 그 첫걸음에 확실한 도움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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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택의 심리학 - 싸우는 심리학자 김태형의
김태형 지음 / 원더박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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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면 네 이웃의 눈동자에 비친 모습을 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한다.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통해서 대통령 후보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들의 심리를 살펴보면서 그들의 모습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의 모습에 비친 어린 나는 울고 있었다. 어린 자아를 보듬으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면서 이제는 부모가 되어버린 현실의 나를 돌아보았다. 나 자신과 대면한다는 것은 고통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불편을 견디지 못하고 외면한다면 나의 내면아이는 계속 울며 고통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래, 대통령 후보들의 내면 심리를 통해서 어린 나의 자아와 대면해보자. 


1. 심리적 고아

  지금은 대통령이 된 문재인 후보의 심리분석을 읽으며 인간 문재인의 아픔을 보았다. 어린 문재인은 "병원에 가서 여러바늘 꿰매야할 상처였는데도 야단안 맞으려고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서 상처를 싸매고 버텼"단다. 대학생이 되어 학생운동을 하다가 구속되어서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 저자 김태형은 이를 통해서 어린 문재인이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음을 알아낸다.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때문에 자신이 위기에 처했다하더라도 부모가 자신을 지지해주리라 믿지 않는 것이다. 어린 문재인은 심리적 고아였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픈 손을 감싸고 쓸쓸히 고통을 삼켜키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린 문재인을 만나면서 나는 내면의 어린 나를 만났다. 어린 문재인이 아픈 손을 잡고 외로워했듯이, 어린 나의 내면아이도 쓸쓸하게 울고 있었다. 어릴적 나도 다치거나 몸이 아파도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서 감내하려했다. 나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김태형이 지적하였듯이, "부모는 다소 엄격한 분"이거나, "최소한 지지적인 부모가 아니었던 것"이 아파도 부모에게 말을 못하는 아이를 만들었다. 

  어린 문재인은 부모에게 중, 고등학교 6년 내내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거나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문이과를 선택해야할 때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그때 아버지는 "내가 뭘 아니, 네가 알아서 선택해"라는 말을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하숙을 했다. 하숙집은 절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숙집을 바꿔달라고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그때도 아버지는 "그럼, 네가 알아봐"라는 말을 했다. 집안에서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밖에서는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용감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나도 '심리적 고아'였다. 아들이라며 금지옥엽 아끼는 말을 하기도 했으나, 부모의 행동은 그러하지 않았다. 바쁜 농촌일을 하시느라 해가 지고 나서야 부모는 집에 왔다. 쓸쓸히 집을 지키고 있어야했던 나에게는 부모는 너무도 먼 곳에 있었던 존재였다. 

  부모의 사랑은 부담없이 그냥 받아도 된다는 사실을 어린 문재인은 알지 못했다. 부모의 사랑도 보답하지 않으면 사랑을 잃을 수 있다고 불안해했고,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 습성화되었다. 일명 '착한 아이 콤플랙스'가 어린 문재인의 가슴에 내면화되었다. 

  어린 문재인과 대면하면서 나의 어린 내면아이와 너무도 흡사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문재인이 '착한 아이 콤플랙스'에 휩싸여 살았듯이, 나 또한 착한아이 콤플랙스에 휩싸여 살았다. 문재인이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법대에 진학했듯이, 역사 학자가 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나이든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를 포기했다. 어머니가 나를 키웠으니, 당연히 부모에게 그 은혜를 갚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가 힘들기에 이제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전근 갈 방법을 모색하는 나를 보며 슬픈 모습의 어린 내면아이를 다시한번 발견한다. 

  부모에게 참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문재인은 "항상 선을 그어 놓고 운동에 참여"했다. 정치에 참여한 것도 본인의 뜻이라기 보다는 국민의 사랑에 의해서 강제로 내몰린 것이다. 인권변호사라는 자신의 길을 가고 싶었고 책을 읽으며 조용히 삶을 살고 싶어하는 지금의 문재인을 보며, 현재의 나와 대면한다. 교사가 된 나는 타교사들이 되려고 노력하는 관리자의 길을 외면한다. 교장 교감이 되려고 노력하는 주변 교사의 눈에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 눈치이다. 그러나 교장 교감은 커녕 부장 교사가 되는 것도 나는 부담스러워한다. 조용히 책을 읽으며 수업시간에 열정을 불사르며 살고 싶다. 열정적 수업을 할 수 없는 시기가 다가오면 조용히 명예퇴직을 하여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에 집을 마련하여 독서 삼매경에 빠지고 싶다. 

  문재인과 내가 같은 내면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명박이 고 노무현 대통령 연결식에서 헌화하려하자, 백원우 의원이 "보복정치 사죄하라!"라고 외쳤다. 문재인은 상주를 맡은 국민장의 위원회 운영위원으로 이명박에게 사과했다. 나로서는 문재인의 행동에 공감할 수 없다. 문재인이 아직도 착한아이 콤플랙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나는 착한 아이이기보다는 때로는 나쁜 아이가 되려 노력한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강한 교장 교감들을 보면서, 절대 저들에게 빌붙어 아부하는 존재가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공자께서도 "마을 사람중에 선한 사람이 그를 좋은 사람이라 하고, 마을 사람중에 나쁜 사람이 나쁘다고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不如鄕人之善者好之其不善者惡之.)" 라고 하셨지 않는가! 이제는 더 이상 '착한 아이'이고 싶지 않다. 


2, 참된 부모되기

  심리학자 김태형은 문재인 이외에도 이재명과 안철수, 유승민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 김태형의 입장에서 가장 안정되고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을 갖춘 심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재명이다. 어떻게 해서 이재명이 안철수와 유승민 보다도 안정된 심리를 가지고 있을까? 이재명은 안철수와 유승민에 비교한다면 무수저 출신에다가 학벌도 그들보다 좋지 않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에 취직해야했다. 맞기 싫어서 공부를 했다.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장학금을 받으며 법대에 진학했다. 장학금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재명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수저 이재명이 안철수와 유승민 보다 안정된 심리를 갖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혹시 아버지의 사랑 때문일까?

  이재명과 안철수, 유승민의 아버지는 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 이중에서 이재명의 아버지가 특히 심했다. 이재명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을 뿐만 아니라, 도박에 중독되어 그나마 있었던 가산을 탕진했다. 이재명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와 유사했다. 나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하지는 않았지만, 술을 너무도 좋아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면, 온 가족은 조용히해야했다. 아버지가 깨어나면 그때부터는 잠을 못잔다. 했던 말을 반복하며 가족을 고문했고, 빚을 갚겠다며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울면서 나에게 아버지를 붙잡으라고 했다.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잔치날이었다. 이웃주민과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소리를 지르며 잔치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자랑스럽게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린 나의 눈에 아버지가 한심해보였다. 쓸개가 없는데도 어머니 몰래 술을 숨기고 다니며 술을 마시다가 간경화로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가야했다. 나는 지금도 술을 끊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때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면 나의 어린 내면아이는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였을까? 둘째딸이 "아빠 술마시는 거 싫어"라고 말을하자, 그때부터 나는 술을 끊었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명감 혹은 책임감 때문에 정치에 입문한 안철수도 김태형의 분석에 따르면 아버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도 착한 아이 콤플랙스가 있다. 성인이 되고나서 그가 의사의 길 보다는 백신을 만드는 일에 뛰어든 것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에서 시작되었다. '권력 실세 밑의 저격수' 유승민 또한 아버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가출과 반항은 아버지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심리에 의해서 표출된 행동이었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아버지의 인정과 상관 없이 반항아로서의 자기 인생을 자랑스러워하고 그런 인생을 살면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안철수와 유승민이 아버지에 대한 인정욕구에서 탈피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한다면 그들은 탁월한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아니, 정치를 떠나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찾아 떠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안철수와 유승민 보다도 더 바람직하지 않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이재명이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정치인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바로 어머니의 깊은 사랑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공장에 취직해야했던 이재명을 그의 어머니는 혼자 보내지 않았다. 이재명의 손을 잡고 공장에 갔다. 가난했지만, 이재명의 어머니는 어린 이재명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었다. 팔을 다쳐 장애를 얻은 아들을 눈물로 맞이하며 남다른 애정을 주었다. 그것이 지금의 이재명을 만들었다. 그리고 공장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는 말한다. 

  "나는 권력이 필요한게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한 사람이다."

  "자리나 지위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사람이다."-116쪽

 

  자리와 권력을 탐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해서 뛰어드는 사람과 비교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그에게 자리와 권력은 자신이 만들고 싶어하는 세상으로가는 도구일 뿐이다. 타 후보가 질 가능성이 높은 일, 정의로운 일이라도 수구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일은 하지 않는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그의 모습이다. 이재명은 욕을 먹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싸움닭이라는 별명도 그는 자랑스러워한다. 싸워도 지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가 닮고 싶어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으로부터 가장 비난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보수세력이 얼마나 이재명을 두려워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이재명이 만들고자 하는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심리학 책을 읽거나, 심리학 연수를 수강하는 목적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하지만, 책을 덮고 연수를 마치고 나서는 나 자신을 알고 치유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심리학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을 읽기 전에는 대통령 후보의 마음을 알고 싶었지만, 읽고 나서는 나의 내면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김태형의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은 나에게 천금같은 값어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깨달은 진리는 부모의 중요성이다. 경제적인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참된 사랑이다. '나는 나의 자녀에게 이재명의 어머니가 해주었던 사랑을 해주고 있는가?' 나는 여러차례 이 질문을 나 자신에게 했다. 낳기는 쉬워도 키우기는 힘든 법이다. 더욱이 나 자신 또한 참된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은 아니기에, 나 자신을 치유하며 참된 부모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다. 멀고 힘들지만 가야할 길이기에 오늘도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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