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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 만주국의 초상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윤대석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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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국에는 박정희와 김일성 그리고 기시노부스케가 있었다. 그들은 만주에서 만주군으로 항일빨치산으로 만주경영의 실질적 책임자로 살았다. 광복후에는 남한과 북한, 일본의 최고 지위에 까지 올랐다. 만주국은 동아시아 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만 만주국에 대해서 우리는 잘알지 못한다. 이 책은 그 만주국을 키메라에 비유하며 우리에게 그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만주국은 오족협화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다섯민족인 화합하며 공존하는 이상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상은 일본의 새로운 식민지일 뿐이었다. 중국인 관료와 일본인 관료의 급료차이는 물론이고, 생도들의 생활 차별도 심각했다. 


  "군관학교 생도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각각 절반씩 차지하고 있었다. 커리큘럼, 교재 등은 똑같았지만 생활에 대한 대우에는 하늘과 땅 차이가있었다. 복장에 대해서 말하자면 일본인 생도는 위에서 아래까지 전부•신품이었지만 중국인 생도는 외출복 외에는 대부분이 낡은 것이었다.
침구와 그 외 생활용품도 복장과 마찬가지로 일본인 생도는 새것, 중국인 생도는 낡은 것이었다.
식사에도 차별이 있었다. 일본인 생도는 주식으로 쌀밥, 반찬은 영양이풍부한 것을 먹었다. 중국인 생도의 식사는 고량뿐으로, 그것도 말과 소에게 먹이는 사료용의 붉은 고량이었다. 그때 위병이나 위궤양에 걸린생도들은 사십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것이 ‘민족적 억압‘이 드러난 한 사례임은 명백하다 - P310

  

 오족협화는 허상이었고, 실제 생활에서는 야마토인의 우월성과 타민족에 대한 차별과 무시가 일상화되었다. 땅을 일본인에게 헐값에 강제 매각당하는 중국인과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겨울에 일본인에게 집을 빼앗기는 조선인들의 모습에서 오족협화라는 슬로건은 타민족 압살로 바뀌어야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 모든 것을 빼앗겨서 한겨울에 알몸으로 살아가는 중국인 아이! 아버지는 강제 노동에 끌려가서 생사를 모른다! 저자는 아마도 군사 진지 구축에 동원되어 비밀유지를 이유로 학살당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것이 오족협화의 진실이었다. 

  오족협화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만주국 황제의 자리에 오른 푸이는 그 자리에 만족했을까? 비루한 푸이! 일본의 침략주의에 기대어 청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야심도 있었겠지만, 그는 꼭두각시 제국의 꼭두각시 황제였다. 만주국의 관료는 일본인들이 장악했다. 국방은 일본제국에 의탁했다. 만주국에는 헌법조차 없었다. 푸이의 비루함의 극치는 일본천황과 같은 지위를 획득하려 청나라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를 포기하고 일본의 아메타라스오오카미를 제사지내는 것으로 정점을 찍는다. 신토를 국교로 삼으며 일본천황에 기대어 강력한 지위를 얻어려했던 푸이는 꼭두각시에서 벗어나 꼭두각시 공연자가 되려했다. 그러나, 그는 꼭두각시를 벗어날 수없었다. 청조를 부흥시키겠다는 그가 청조를 부정하고 일본인이 되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느 학자는 만주국을 동아시아의 인큐베이터라 말했다고한다. 만주국은 일본제국의 각종 정책 실험장으로 활용되었으며, 일본 관리는 만주국 관리로 파견되었고 일본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실험을 일본에 다시 펼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만주국의 경제 정책을 비롯한 각종 정책은 1945년 이후에도 시행된다. 

  저자는 "평화주의를 이념으로 내걸고 국방을 타국에 위임하고 자신의 국토를 전략 기지로 제공한다"는 전략이 "전후 일본이 선택한 방향과 어딘가 상통하는 점이 있지 않은가?(106쪽)"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식민지 혹은 그에 상응하는 국가를 가진 국가의 국민은 식민지를 지배하는 원리에 의해 아무래도 스스로가 지배를 받게 된다.(300쪽)"라고 지적한다. 괴물과 싸우며 괴물과 닮아가듯이, 꼭두각시 만주국을 지배하며 일본은 만주국을 닮아갔다. 일본제국 없이는 스스로 서지 못하는 만주국이 일본제국이 멸망하면서 사라졌듯이, 미국 없이는 스스로 서지 못하는 일본이 미국의 하수인이되어 꼬리를 흔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일본의 다리밑을 기며 배를 드러내고 아양을 떠는 친일주구가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일본이 무너지면 생존할 수 있으까? 

  

ps. 번역가가 일본신 한자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여 책읽기가 무척 힘들었다. 주석이라도 제대로 달아주었다면 조금 나았으리라,...

  예를 들어 "대어심"이라는 단어는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없다. 큰 물고기의 마음이라는 설명을 빙이 할뿐이다.  또한 "착종" 처럼 잘 사용하지 않는 일본식 한자는 '혼종'으로 순화하여 번역하는 친절함을 발휘할 수는 없는지 저자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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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일본 - 일본에 대한 편견이 아닌 편견 같은 진실
김교수 지음 / 그린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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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얽혀버린 한일관계를 풀 수 없다! 그래서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은 책은 호사카 유지 교수의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의 책은 학자가 쓴 책답게 조선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하며 조선과 일본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여져있다. 그후, 심리학을 전공한 유영수의 '일본인 심리상자'를 읽었다. 일본에 살기도했던 작가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분석했다.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일본은 거대한 정신병원이라는 것이다. 사무라이의 칼이 지배하는 극도의 공포사회를 천년이상 지내오다보니 그들의 정신세계는 역사적 집단 트라우마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염종순의 '일본관찰 30년'을 읽었다. 일본에서 30여년을 살면서 깨달은 일본인의 심리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그리고 이제, 롯본기 김교수의 '굿바이 일본'을 읽었다. 이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작성해보자.


1. 같기도하고 아니 같기도하고...

  사람은 보이는데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을 본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에 따라서 다른 해석을 한다. 같은 일본에 관한 책이지만 다른 견해들이 있다. 

  '일본인 심리 상자'라는 책에서 일본인은 지하철에서 유모차를 끌고오는 엄마들을 민폐라고 생각한다. 아이에 대한 따뜻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사적공간을 침해했음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일본인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오직 자신의 일에만 관심이 있는 일본인의 모습을 롯본기 김교수도 언급한다. 

  롯본기 김교수는 일본에서 무거운 물건을 가지고가는 노인분들의 물건을 들어 드린단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서 이러한 선행은 보기 힘들다. 심리학적 접근보다는 일본인들의 국민성에 촛점을 맞추어 자신의 경험을 해석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타인의 은혜는 같은 크기로 갚아야한다는 부담감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우리의 노인공경 문화를 기대하는 것은 돌맹이 갖다 놓고 닭알 되기를 바라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약자에 대해서 배려를 하는 따뜻한 나라라고 서술한 책도 있다.  '일본관찰 30년'이라는 책의 저자 염종순은 일본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중증 지체장애자인 염종순의 아들은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장애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한국을 떠나 일본에 갔다. 그곳에서 외국인인 자신의 아들에게도 전동 휠체어를 무료로 나눠주는 일본의 따뜻한 행정 시스템을 만났다. 이에 감동한 염종순은 일본의 중고 휠체어를 한국의 장애자에게 기증하는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일본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체험담이다. 

  반면, 롯본기 김교수는 일본은 한국보다 장애자의 수가 두배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장애인을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지 싫어하는 일본인의 종특(종족 특성)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과연 일본인은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하지 못하는 종특을 가진 사람들일까? 아니면 롯본기 김교수가 편견을 가지고 일본인을 보았기에 벌어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까? 타인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에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도 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따른다면, 일본인은 시스템으로 약자를 배려할지는 모르지만, 개개인이 서로에게 배려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태려하기 싫어하는 일본인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시스템으로 배려하는 일본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참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일본인 같기도하고 아니 같기도하다.


2. 일본은 침몰하고 있는가?

  롯본기 김교수는 갖가지 수치를 증거로 일본 사회가 침몰하고 있다고 말한다. 초고령 사회, 높은 자살률, 심각한 저출산 문제, 심각한 국가 부채, 수습되지 않고 있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등등.... 롯본기 김교수의 일본에 망조가 들었으며, 아베 노믹스는 타는 불에 기름을 붓듯이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어다고 지적한다. 특히, 반도체 핵심 소재 3가지를 수출금지를 한 것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기술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며, 일본 중소기업으로서는 수출길이 막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웃을 수 없었다. 초고령화와 높은 자살률, 심각한 저출산 문제는 우리 대한민국에도 해당되지 않는가! 더욱이 저출산 문제는 일본보다 우리가 더 심각하다. 그러니, 초고령화의 속도도 우리가 빠를 수밖에 없다. 이러다가 우리 대한민국인이 멸종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 의식이 든다.

 아울러, 롯본기 김교수는 일본인은 건강수명과 수명과의 차이가 10년이라며 이로인해서 요양원에서 보내는 일본인이 많으며 이로인한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운동하지 않고 약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노인분들이 우리나라에도 많다. 급속한 초고령화 속에서 우리도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야한다. 

  일본이 침몰할 것이라면, 대한민국도 침몰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일본호와 대한민국호가 서로를 바라보며 '네가 먼저 침몰할 거야!'라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 같아 무척 침울하다. 더욱 침울한 것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위기 경보를 울려야하는 언론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일본의 방송과 언론 현실은 보도하지 못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이다."-310쪽


  롯본기 김교수는 방사능의 영향으로 심각한 질병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가 한달 후에 폐간된 '타카라지마'라는 잡지를 예로들며 일본의 언론을 매섭게 질타한다. 일뽕 방송을 만들고, 한국인에 대한 모멸적 방송을 송출하는 일본방송을 질타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수구 신문과 기레기들이 한국의 심각한 경제 현실을 보도하지 않는다. 권력을 견제하는 감시병이 되기 보다는 권력의 나팔수가 되려한다. 일본의 핵폐수가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과연 일본과 무엇이 다른가? 침몰하는 일본보다 더 늦게 침몰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인가? 긴 한숨이 나온다. 


  책을 덮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인간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일본인을 대하면 반대로 무시당하고 엄격한 규율과 경직된 조직문화를 만들어줘야 순종하는 일본인이 된다."-47쪽


  자율보다 통제에 중점을 두어 교육한 결과 일본은 갑질을 하는 사람에게 순종한다. 인간적으로 대해주면 자신이 갑인줄알고 갑질을 한다. 칼의 문화와 붓의 문화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하며 롯본기 김교수의 말을 받아들이려하면서도 '과연 그런가?'라는 반문이 밀려온다. 우리 사회에도 만만치 않은 갑질이 있지 않은가? 서이초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생님은 왜? 자살했는가? 자신의 많이 배우고 변호사라며 갑질해서는 안되는 선생님에게 갑질을 하지 않았는가? 무엇이 일본보다 낫다는 말인가? 나쁜 정치인과 블랙기업이 일본에 많다고 지적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나쁜 정치인과 블랙기업이 없는가? 

  롯본기 김교수의 지적이 일면 타당하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일본보다는 덜하지만 우리도 만만치 않은 결점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친구는 바꿀 수 있어도 이웃나라는 못바꾸는 법이다. 못된 일본을 교화시켜 좋은 이웃으로 만드는 법은 없을까? 롯본기 김교수는 일본이 미국에 절대 복종하는 모습을 예로들며 일본의 갑이 되라 말할 것이다. 과연 그길밖에 없을까? 긴 한숨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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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찰 30년 - 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18가지 이유
염종순 지음 / 토네이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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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일 교수가 학생들에게 한모둠은 강아지와 고양이의 차이점을 쓰라고 했고, 다른 한모둠에게는 테블릿과 고양이의 차이점을 쓰라고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너무도 다른 테블릿과 고양이의 차이점은 한가지도 쓰지 못했는데, 비슷해 보이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차이점은 너무도 잘 써내려갔다. 김경일 교수는 말했다. 다른점은 비슷한 사이에서 발견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점이 많기에 다른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다른점이 편견을 만들어내고 아픈 역사를 만들어냈다. 

  저자 염종순은 일본의 후진적인 정보화 현실과 우리의 앞선 정보화 시스템을 거론하며 일본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다. 유튜브 '선대인 TV'에서 '디지털 조선통신사' 코너에서 일본의 현주소를 낱낱히 소개해주었다. 난 그것을 너무도 재미있게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산업화 시대에는 장인정신이 살아있는 일본이 앞서지만,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는 한국이 앞설 수밖에없다는 지적에 희망을 갖았다. 그 내용을 제1장에 정리해 놓았다. 

  제2장과 제3장에서는 한국인이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두어야할 것들에 대해서 서술했다.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같은 한자 문화권이기에 발생하는 오해였다. 한국에서 친일파 재산 환수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일본인이 염종순의 걱정을 했다. 염종순이 친일파이기에 그의 재산이 몰수될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친일파'는 한자를 풀이하면, 일본과 친한 사람무리이다. 염종순이 일본과 친하기에 그의 재산이 몰수될 수도 있다고 일본인은 판단한 것이다. '친일파'라는 단어 대신 '민족 반역자'라는 용어를 나부터 사용해야겠다. 같은 한자이지만 너무도 다른 의미로 한국인과 일본인이 사용하는 단어는 많다. 정말 말 같은 한자문화권이기에 같은 한자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차이점이 발생한 것이다. 

  저자 염종순은 민간 외교관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의 다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는 믿음으로 통교하는 사신이라는 뜻의 민간 통신사이다. 그러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따끔한 일침도 서슴치 않는다. 


  "우리는 자국민들에게는 사과와 반성을 할 줄 모르는 '일본정부'와 자국정부에게 전쟁에 대한 책임과 사과를 요구할 줄 모르는 '일본국민들'과 과거사를 논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154쪽


  가해자이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몇몇 정치인이 사과를 하고서는 그 이후 다른 정치인이 이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 '일본 정부'는 자국민에게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다. 언제나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갖기 마련이다. 일본 국민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정치인을 갖은 이유는 그들이 정치인들에게 반성을 요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반면 교사로 삼아야한다. 우리도 우리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두고 있는지... 그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긴 한숨이 나온다. 

  역사를 가르치는 내가 일본사에 대해서 나름 잘알고 있다고 생각한 부분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고 1868년 도쿄로 천도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이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천도를 단행했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한다. 공식적으로 교토에서 도쿄로 천도한다고 정치인들이 선포하지 않았다. "한번 천황을 도쿄로 출장" 보냈고, 천황은 도쿄에 눌러 앉아 버렸다. 천도 반대론자는 천도를 했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천도론자는 실질적 천도를 이루었으니 불필요한 논쟁을 피할 수 있었다. 이것이 일본인들의 일처리 방식이다. 문제를 정면으로 직면하기 보다는 슬그머니 처리를하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이해해야만 일본을 이해할 수 있다. 

  염종순은 마지막 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공존을 말한다. 그에게는 중증 신체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이 휠체어를 자비로 구입해야한다. 허기사, 나랏돈이 복지비로 쓰이는 것을 자기돈 나가는 것보다 더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내주변에 많으니....... 한국은 그의 아들이 살기에는 힘든 나라였다. 그런데, 일본에 이주하자, 외국인인 그의 아들에게도 전동 휠체어를 일본이 무상 지급했다. 염종순은 비틀어진 한일간의 역사문제로 고민하면서도 자신의 아들에게 전동 휠체어를 선물해준 일본이라는 나라의 따뜻함에 감사하고 있다.  "한나라의 문명 수준은 노인과 약자를 어떻게 대하느냐로 측정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양면적인 일본은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징용 피해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사과요구는 묵살하면서도 중증 장애자인 염종순의 아들에게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친절하지만 잔인하고 대단한 보수적이면서도 유연한 모순된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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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 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
노나카 이쿠지로 외 지음, 박철현 옮김, 이승빈 감수 / 주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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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전략이 없다.' 역사학자 이덕일이 대중강연에서 한 말이다. 나는 이덕일에 놀랐다. 일본이 장기적 전략이 없이 잰장을 했다니, 이것을 믿을 수있을까? 청일 전쟁,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만주를 집어 삼키고 중일전쟁에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키며 승승장구했던 것이 일본이 아니었던가! 진주만 기습을 하면서 보여준 탁월한 기습능력을 떠올리며 이덕일의 설명에 의문을 품었다. 이덕일이 던진 화두에 답할 수 있는 책을 찾아 나섰다. 그래서 '왜 일본 제국은 실패하였는가?'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제 그 화두에 답해보자.

  일본군이 일본사에서 자주 인용하는 전술이 있다. 가와나카지마(오랜 기간 준비한 전략 전술을 강조), 히요도리고에(우회 기습전), 오케하자마(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병력을 굴복시키는 전략)가 그것이다. 여기에 근대 서구의 전술을 받아들이고 중일 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육군은 백병총검주의를, 해군은 거함거포주의를 추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전술은 중일전쟁과 러일전쟁, 심지어는 아시아태평양 전쟁 초기에 빛나는 승리를 안겨주었다. 빠른 속도로 진격하는 일본군의 백병총검주의에, 방심하던 대영제국의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러일전쟁에서는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발틱함대를 탁월한 명중률과 빠른 포격으로 괴멸시켰다. 이 얼마나 엄청난 승리인가!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일본군의 혁신과 성공은 거기까지였다. 일본은 과거 승리의 족쇄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소련의 명장 주코프 장군은 노몬한 전투 후에 족쇄에 얽매인 일본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군 부사관과 병은 용감무쌍하고, 초급 장교는 마치 광신도 처럼 용맹스럽지만, 고급 장교는 무능한 자들뿐"-65쪽


  빠른 속도로 백병총검돌격을 감행해서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고서도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1차세계 대전 이후에 무기가 혁신되면서 전술의 혁신도 이루어졌지만, 갈라파고스섬과 같은 일본군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백병총검돌격만을 고집했다. 노몬한 전투의 실패에서도 그들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않았다. 이책의 저자들도 이러한 일본군의 행태를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통탄한다. 


  "보충해야할 것은 장비인데도 일본군은 병력을 늘리고 정신력의 우의를 강조하면 다 해결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332쪽


  우리가 일본군의 어리석음을 풍자할 때 한장의 그림을 떠올린다. 노몬한 전투 당시, 러시아군의 탱크에 맞서서 일본군이 탱크를 향해서 총검 돌격을 감행하는 '대전차총검술'이라는 그림을 떠올린다. 일본군은 기술보다 정신력을 강조한다. 1대의 전차를 잡는데 10명의 일본군 희생은 감당할 수 있다는 인명경시 풍조 또한 만연해있었다. 화력을 강화하기 보다는 백병총검돌격으로 승리할 수있다는 착각은 중국을 상대로한 전투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이나 미국처럼 초강대국을 상대로한 전투에서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해군에서도 일본군의 어리석음은 극명히 나타났다. 


  "제국해군 역시 미드웨이 패전 이후 항공모함의 증강을 꾀하면서도, 대함거포주의를 구현한 야마토와 무사시의 46센티미터 대표가 위력을 발휘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끝까지 믿고 있었다."-375쪽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일전쟁시기 대함거포가 안겨주었던 승리의 짜릿함을 일본해군은 잊지 못했다. 진주만 기습에 호되게 당한 미국은 이제 전함의 시대는 갔고 새로이 항공모함의 시대가 등장했음을 알았다. 미국은 실패를 통해서 배웠고 일본은 성공을 통해서도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해다. 이러한 일본이 어떻게 메이지 유신을 추진하며 근대화에 성공했는지 의문이들었다. 이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의미 심장한 말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완전한 균형 상태란 적응의 마지막 상태이므로 이는 곧 조직의 죽음을 의미한다. 역설적이게도 적응은 적응 능력을 저해한다."-382쪽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근대화를 이루며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리고 일본은 일본 전통 위에 서양의 근대를 접목시켜 고도로 안정된 일본제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정된 일본제국은 커다란 성공을 일본인들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일본인들의 성공은 일본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있는 능력을 저해했다. 고도화된 백병총검돌격만으로도 싱가포르에서 대영제국의 군대를 무릎꿇리지 않았던가! 결국, 일본은 화력의 증강보다는 백병총검돌격이라는 과거의 성공한 전술을 고집했다. 이러한 일본군의 어리석음이 가장 극적으로 표출된 전투가 임팔전투이다. 

  '일본인은 초식을 하기에 보급을 필요없다. 필요하면 풀을 뜯어 먹으면 된다.'라는 믿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영국군을 무찌르기 위해서 밀림을 뚫고 진격하겠다는 무타구치 랜야의 작전계획을 대본영이 승인했다. 온정주의와 일본육군대학 출신이라는 학연에 얽매여 엉터리 작전계획도 대본영은 승인한 것이다. 그리고 '멍청한 지휘관 밑에 용맹한 부하'라는 모순된 일본군의 모습이 유감없이 임팔전투에 표출된다. 일본군은 용감하게 돌격했고, 영국군은 현명하게 후퇴하면서 일본군을 함정에 빠뜨렸다. 그리고 일본군은 기아로 쓰러졌으며 인도로 진격하기는 커녕 버마마져도 연합군에게 넘겨주었다. 

  가미카제 특공대 이야기를 들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본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그러나, '왜 일본 제국은 실패하였는가?'라는 책을 읽고 나자, 그것은 용맹한 모습이 아니라 어리석은 모습이었음을 깨달았다. 화력을 증강시키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적에 대응하기 보다는 사람을 도구화하고, 정신력으로 적을 무찌르라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동정심마져들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일본군의 어리석음을 비웃음으로 넘길수는 없다. 서점가에는 제도와 과학기술의 혁신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신력만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가 넘처난다. 무능한 지도자를 선거로 뽑고 오염수도 마실 수 있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일본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본군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를 혁신하지 않는다면, 우리고 일본군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 없이 '불균형을 창조'하며 혁신하는자만이 승리할 수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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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SAMURAI KODEF 안보총서 35
스티븐 턴불 지음, 남정우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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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삼국시대를 살펴보면, 수많은 전쟁이 난무했다. 삼국간의 치열한 전쟁과 국가 내부에서 전개된 귀족들 간의 무력대결의 역사를 살펴보면, 삼국시대는 문보다는 무가 앞선 사회로 보인다. 후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도 수많은 외침에 대항하며 무신들이 성장했고, 1170년 무신정권의 시대가 열린다. 우리 역사에서 무의 위치는 문에 뒤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이 개국되고 나서 문중심의 사회가 활짝 열린다. 반면 일본이라는 섬나라는 외부의 침략에 대해서는 비교적 안전했으나, 내부의 권력 투쟁은 그 어느 나라 보다도 치열했다. 다이카 개신을 통해서 천황중심의 지배체제가 성립하였으나, 헤이안 시대의 혼란을 거쳐서 쇼군이 통치하는 막부 시대가 도래한다. 문과 무가 조화를 이룬 사회라기 보다는 무 위주의 사회가 오랫 동안 존속했다. 여기에서 우리와 일본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문 중심의 사회로 발전한 한국과 무 위주의 문화가 발달한 일본의 차이는 거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문화적으로는 너무도 먼 두나라가 되었다.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사무라이'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외국인의 시각에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사무라이에 대해 서술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스티븐 턴불의 '사무라이'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1. 비슷한 이웃의 모습

  일본과 한국은 가까운 이웃나라이다. 고대에는 중국의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우리가 일본에 많은 문화를 전해주지 않았던가! 그래서 일본의 모습에서 친근한 우리의 모습을 만나기도한다. 

  사무라이는 권력을 쟁취하려 칼을 휘둘렀지만, 일본 천황을 없애고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려하지 않았다. 임금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유사하다. 특히 우리에게 단군신화 속의 천부인이 있다면, 일본에는 삼종신기가 있다. 일본 천황이 하늘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증표가 바로 삼종신기이다. 우리의 천부인은 신화속에 존재할 뿐, 현재 우리에게 실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반면 일본의 삼종신기는 원본이 있지만 수 많은 복제품이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복제품이 원본과 같은 취급을 받기도했다. 삼종시기를 쟁취하기 위해서 일본의 남북조시대에 전투까지 벌이지 않았던가! 

  사무라이에게서 우리와 유사한 모습을 조상 숭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지배층들에게는 조상은 현재의 권력을 갖게해준 은인이자, 현재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족보를 그리도 열심히 편찬하고, 위조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일본 사무라이에게도 조상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있게해준 존재이자, 현재 지위의 정당성을 부여해준 신적인 존재이다. 

  이렇게 다른듯 비슷한 한국과 일본의 모습은 막부가 개창되면서 본격적인 다른 면모를 보인다. 쌍둥이라도 어떠한 환경에서 자랐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성장하지 않던가!


2. 사무라이 중심의 군사문화

  문을 중시한 문화 속에서는 붓의 문화가 발달하고, 무의 문화를 중시한 문화 속에서는 칼의 문화가 번성한다. 일본의 문화속에서는 칼의 문화가 서려있다. 

  스티븐 턴불은 다양한 도판을 곁들이며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를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일봉의 깃발인 사시모노를 등에 꼽고 붉은 갑옷을 입은 사무라이의 모습을 보면, 마치 일본 사무라이가 그림 속에서 뛰어나올 것만 같다. 일본도로 대표되는 사무라이의 무기는 정교하게 발달되었다. 전쟁이 많다보니 정교한 칼이 만들어졌다. 적에게서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견고하고 방어력이 탁월한 일본식 축성술이 발달했다. 저자 스티븐 턴불이 설명하는 것 처럼 중국과 조선의 성에 비해서 일본의 성 방어력은 탁월했다. 일본의 축성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만큼 탁월한 방어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자신의 부와 권력,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어력이 우수한 일본의 성을 바라보며 전쟁 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수많은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드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칼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사무라이의 전쟁방식도 화약무기가 등장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칼을 잘 쓰는 사무라이라도 총 앞에서는 청명한 가을날의 낙옆에 불과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사무라이의 시기도 사라졌다. 물론, 칼을 사용하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자의 회안 일지도 모른다. 

  사무라이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머릿속에 육군을 떠올린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배를 타기도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왜구'가 되어 동아시아의 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부녀자를 능욕하고 죄없는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때로는 용병이 되기도했다. 중국과 한국의 해안가만 약탈한줄 알았던 나는 그들이 용병이 되어 타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바다에 출몰했다는 사실이 꾀나 놀라웠다. 

  그렇게 사무라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고 타인의 생명을 빼앗기 위한 군사문화를 발달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 무대는 육지에 국한되지 않고 바다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사무라이의 문화는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3. 죽음의 미학

  칼의 문화는 죽음과 대면해야하는 문화이다. 항상 언제라도 죽음을 목도할 수 있는 그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떨치는 것은 커다란 과제였을 것이다. 이것이 만들어낸 것이 일본의 독특한 죽음의 미학이다. 

  스티븐 턴불의 '사무리이'에는 셋풋쿠라고 불리우는 '할복'으로 생을 마감하는 수많은 사무라이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그중, 한가지를 살펴보자.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던 날, 승병이 할복을 하고, 아들이 아버지의 머리를 베고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부하들이 그 칼에 '꼬치가 가지런히 꿴 생선 처럼 일렬로 머리를 포개고' 죽었다. 

  조선시대 매천 황현 선생께서 병합조약이 체결되던 해에 스스로 자결을 하셨다. 나라에게서 받은 것은 없지만, 나라가 방했는데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비가 없어서야 되겠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모습은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죽음보다 삶이 값지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에게는 주군을 위해서 따라죽는 것이 아름다운 일로 미화된다. 이러한 죽음의 미학은 너무도 여린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기도한다. 

  백호부대를 아는가? 아이즈와카마쓰 지역에 백호부대가 있었다. 아이즈 전쟁시기 16세에서 17세의 소년병들로 구성된 부대가 바로 백호부대이다. 이들은 전쟁이 패배로 이어지자 백호부대원들은 할복을 준비한다. 그들 중에서 11명은 17살이었고, 9명은 16살에 불과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이 함락되자 여성을 비롯한 민간인들도 자살을 감행한다. 살복이라는 문화가 여성과 서민들에게 까지 확대된듯하다. 중국의 전족과 일본의 할복문화, 조선의 교조적 성리학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낡은 봉건적 폐습이다. 봉건적 폐습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본을 전쟁의 광풍으로 몰아 넣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최고의 파일럿들은 소모품처럼 전쟁에서 사라졌다. 조종사를 길러낼 시간이 부족했던 일제는 단순 조종 교육만 시키고서는 수많은 꽃다운 젊은이들을 자살특공대로 전재터로 보냈다. 저자 스티븐 턴불은 가미카제 특공대를 소개하면서 '사무라이'의 대단원을 마무리했다. 소모품처럼 전쟁터에서 소모되기를 강요받은 그들은 결국 일본의 군국주의와 함께 생을 마감해야했다. 그리고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도 함께 사라졌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는 가미카제 특공대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칼을 중심으로한 문화는 아직도 일본사회에 남아 있다. 무사도를 적어 놓은 '하가쿠레'에 "무사도란 죽음을 깨닫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미화하고, '아름답게' 할복으로 죽는 것을 희망하는 그들의 모습을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순신 장군은 살기 위해서 싸웠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아름답게' 죽기 위해서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 죽음이라는 공포를 떨치기 위해서 죽음을 미화시키는 그들의 문화를 그들이 벗어던지지 않는다면 군국주의의 망령은 언제나도 되살아날 것이다. 일본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그들이 칼을 던지고 붓을 드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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