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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 - 심리학자가 만난 조선의 문제적 인물들
김태형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역사를 공부하면서 인간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고 심리학을 공부했다. 어찌보면, 역사와 철학, 심리학을 구분한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편의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구분한 것이 아닐까? 역사를 만드는 인간의 철학과 심리를 보다 잘 이해한다면 이해되지 않던 역사의 퍼즐들이 잘 맞춰지리라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김태형의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라는 책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정조의 심리만을 분석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융의 심리유형이론을 계승 발전시킨 성격이론으로 조선시대의 문제적 인물인, 이이와 허균, 연산군의 심리를 분석했다. 흥미로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심리학, 나의 마음을 보다.
심리학 서적을 읽으면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는 희열보다는 나 자신을 이해했다는 기쁨이 크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 소개된 정조와 이이는 전략가(INTJ) 유형이다. 전략가 유형은 강인한 의지와 전략 수립 능력이 탁월한 것이 특징이다. 이 유형에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이 속한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다. 책을 읽으며 정조와 이이의 삶이 마치 나 자신의 일인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고형(T)의 특성 중에 하나가 놀라운 비판 정신이다. 타인에게 직설적으로 비판의 말을 스스럼 없이 하는 것이 사고형의 특성이라니... 이러한 특성은 정조와 이이에게서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정조는 호학형의 군주이지만, 타인의 감정과 처지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다. 이 책에서 예로 든 사례를 살펴보자. 무더운 여름날 좁은 방에서 업무를 보는 정조에게 신하들이 시원하고 넓은 방으로 옮기자고 건의하자, 정조는 논리적인 말로 이를 물리쳤다. '나는 괜찮다.'라는 정조는 말에는 무덥고 좁은 방에서 고생하는 신하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나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것에 치중하여 감정형(F)과의 대화가 상당히 힘든 경우가 많았다. 교무회의 혹은 학년회의에서 나의 주장을 제시했다. 그에 반하여, 회의 시간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면서, 회의가 끝나고 꿍시렁 거리는 동료 교사를 보면서, 속으로 좀비라고 비난했다. 앞에서 말할 용기가 없으면서, 뒤에서 꿍시렁 거리는 것이 좀비와 무엇이 다른가!
한편, 정조는 실천형(J)으로 강한 신념과 추진력으로 자신의 개혁을 이끌어갔다. 율곡 이이도 자신에 제시한 바른삶을 스스로 실천하면서 학문적 위업을 달성했다. 이러한 특성은 나에게서도 나타난다. 물론, 정조와 이이의 실천력에 비한다면 초라하지만 말이다. 생활기록부 작성을 비롯해서 업무를 틈틈히 계획을 스스로 세워서 추진했다. 그러니, 타 교사들이 나의 속도에 혀를 내두른다. 반면, 나는 겨울방학에 미뤄두었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동료교사가 이해되지 않는다.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둔다면, 생활기록부 작성이 보다 수월한데도 이를 하지 않는 그들이 답답할 뿐이다.
9도 장원공 이이, 그를 떠올리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남들은 평생에 걸쳐 도전했지만, 합격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9번이나 장원을 했다. 이에 대해서 김태형은 "그에게 과거 시험은 사회 불안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편"(163쪽)이었다고 진단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4차례나 과거시험에 도전하여 장원을 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부모가 떠난 후에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 그는 과거시험을 보았다. 마치, 대학시절, 혹은 사회에 나와서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고, 자격증을 받고 나서는 즐거워한 나의 경험과 정확히 일치했다. 용기가 필요할 때, 나 자신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격증에 도전했다. 그리고 성취감을 느끼며 나자신에게 말했다. '너는 괜찬은 놈이야, 할 수 있어.'라고...
전략가(INTJ) 유형은 인구의 2%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한 성격이다. 정조와 율곡 이이의 심리분석은 곧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했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나를 반성해본다. 그리고 나를 다독이며 한마디 한다. '강나루! 넌 괜찬은 놈이야, 그런데, 사고(T)만 할 것이 아니라, 감정(F)도 느껴봐.'
2. 심리학, 역사의 진실을 보다.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으며, '과연 사도세자가 미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을 믿을 수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이라는 책을 읽으며, 혜경궁이 남편보다는 당파를 선택했다는 설명을 읽고서는 이덕일의 주장이 믿어지지 않았다. 남편이 없으면 평생 혼자 살아야하는 조선시대에, 남편을 버리고 당파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퍼즐 조각을 김태형이 제시했다.
우선, 사도세자는 미쳤는가?라는 질문을 풀어보자, 김태형은 사도세자가 미치지 않았다는 근거로, 공적인 자리에서 사도세자의 정신병적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며, 15세(조선왕조 실록), 혹은 18, 19세(한중록)에 갑자기 정신병이 발병했다는 기록 자체가 임상 심리학이나 정신병리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이덕일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덕일은 한중록을 사료 비판하면서, 한중록은 사도세자를 죽인 자신의 가문을 변명하기 위해서 저술되었음을 강조한다. 가문을 위해서 영조와 사도세자를 정신병자로 몰아버림으로서, 자신의 아버지가 사도세자 죽음에 관여한 범죄를 합리화하려했다는 것이다. 이덕일이 동북항일연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며, 조선시대 비전공자라며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말을 떠올리며 이덕일의 놀라운 통찰력에 감탄한다. 그렇다면, 사도세자가 미쳤다는 기록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영조실록'이 1757~1758년에 사도세자의 정신병증세가 부쩍 심해졌다고 기록한 것은 아마도 사도세자에게 너무나 불리하게 조성된 인적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다."-29쪽
김태형과 이덕일의 주장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가문과 당파를 위해서 남편을 버린 혜경궁 홍씨의 심리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김태형은 혜경궁을 파파걸이라고 말한다. 건강한 단독자로 세상을 살아가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존재가 혜경궁 홍씨였다. 그러한 그녀가 결혼하고 남편과 아버지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할 때, 그녀는 남편을 버리고 아버지를 선택했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 여성에게 약한 영조 앞에서 어린 정조를 부둥켜 않고 눈물로 호소했다면, 남편은 살아날 수도 있었다. 그녀는 매정했다. 심지어 왕위에 즉위한 정조를 암살하려한 자들을 조사해서 처벌하려할 때, 혜경궁 홍씨는 단식투쟁까지 하며 이를 막아섰다. 역모에 연루된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아들을 지지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자기 가문에 타격이 올 것만을 걱정'한 사람이 바로 혜경궁 홍씨였다.
건강한 단독자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와 결혼한다면 그 비극은 이러한 결말을 맺게 된다. 사실, 극단적 마마걸과 사귀어 보았던 나로서는, 그 사귐이 결혼에 이르지 않은 것에 안도감이 든다. 요즘, 파파걸, 마마보이가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판 사도세자가 탄생할 수 있지는 않을까? 건강한 자녀 양육이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3. 심리학, 인간의 마음을 보다.
어느 교육청에서 유대인 밥상머리 교육을 예로 제시하며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학부모교육을 했다. 이를 본 어느 기자는 교육청을 비난하는 기사를 썼다.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육청이 반성과 대책을 내놓기 보다는 가정탓을 한다는 요지의 기사였다. 그런데, 교육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다보면, 학교에서의 교육보다 생애 초기의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이것은 영조와 연산군, 허난설헌, 폐비 윤씨 등의 역사적 인물의 사례에서도 증명된다.
영조와 연산군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병든 자아를 가졌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괴팍한 성격의 영조는 어머니의 출신이 낮다는 열등감에 휩싸였으며, 형을 독살했다는 협의를 받고 있다. 그의 이러한 병든 자아는 결국 자신의 아들을 뒤주 속에 넣어 죽였다. 이러한 사실은 비단 이덕일의 책에서만 서술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학자들의 책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의 폭주를 막는다.
"그의 죽음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폭주하던 영조를 멈춰세웠다. (중략) 영조의 무의식은 극도로 증오하던 아들이 죽고 나자 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중오한 대상은 아들이 아니라 죄의식과 열등감으로 일그러진 바로 자기 자신임을"-56쪽
가장 소중한 아들의 생명을 거두고 나서야 영조는 폭주를 멈추고 개혁의 길을 본격적으로 가게 된다. 영조의 경우는 너무도 큰 희생을 치루긴 했어도,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연산군의 사례는 그러하지 않다. 연산군의 비극의 시작은 계유 정난에서 부터 시작된 죄과의 결과였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과부트리오(정희왕후, 소혜왕후(인수대비), 안순왕후)와 마마보이 성종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다. 안순왕후는 아들 제안대군의 부인을 두번씩이나 내쫓았고, 소혜왕후는 아랫사람에게 살벌하게 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법을 어긴 수하를 비호하고, 정당하게 법집행을 한 수령을 벌주었다. 저자 김태형은 이들 과부 트리오의 심리를 '병든자아'라고 규정한다. 결국, 병든 자아를 가진 과부 트리오는 집안이 한미한 폐비 윤씨를 내쫓으려 성종을 부채질한다. 마마보이 성종은 과부 트리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폐비 윤씨를 내쫓고 그녀에게 사약까지 내린다.
단독자로 홀로 서지 못하는 마마보이 성종은 자신의 아들을 조선 최고의 폭군으로 만들었다. 어린아이(ENFP) 성격유형을 가진 연산군은 마마보이로 자라난다. 죽음의 공포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과부 트리오에게 의존하고, 훈구파의 눈치를 본다. 그러나 인수대비가 죽자, 그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2번의 사화를 거치면서 그는 무절제한 삶을 살아간다. 어린아이 유형의 성격을 가진 연산군은 연예인이 되었다면 탁월한 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대로 된 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성격에 맞지 않는 왕이 되어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왕비가 칠거지악을 지었으면 버리면 그만이지 왜 꼭 죽여야했는가?"(357쪽)라는 연산군의 절규는 건강한 가정만이 행복한 인간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게해 준다.
비단, 영조와 연산군의 사례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허균과 허난설헌이 비극적 삶을 살아야했던 것도 행복한 가정 환경이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허난설헌과 허균이 어머니의 품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신선세계를 동경하거나, 율도국 건설을 꿈꾼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판타지와 SF 영화 속 히어로 물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를 보면서, 어쩌면 허난설헌과 허균의 가정에서 벌어졌던 비극이 우리사회에도 만연하지 않는지 우려해본다.
"어머니 관계가 나쁜이는 혁명의 낙오자가 되지만, 아버지 관계가 나쁜 이는 혁명의 배신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269쪽)라고 김태형은 말한다. 행복한 가정, 사랑스럽고 따뜻한 부모가 되지 않는다면, 이 사회를 행복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없다. 무기력한 아버지 이원수 밑에서 자라난, 율곡 이이는 집요하게 선조를 설득해서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 가정의 행복은 이뤘지만, 국가의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고 그는 죽었다. 그 댓가는 참혹했다. 누나 매창과 부인은 왜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국토는 황폐화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화목한 대가정을 건설하는데 실패한다면, 개인 차원의 화목한 대가정도 마을 차원의 이상촌도 실현이 불가능"(200쪽)하다는 진리를 율곡 이이의 사례는 보여준다.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 행복한 가정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한국 사회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개개인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의 관심과 조력이 필요하다. 이번 대선 후보들은 이에 대한 관심과 정책을 마련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