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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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트럼프의 등장" 어느 외국 기자는 그의 등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k로 시작하는 다양한 우리 문화 상품에 한껏 국뽕이 차오르지만 그를 "k-트럼프"라고 표현한 것을 직면하고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당선되는 날, 나는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보다 더 심하게 좌절했다.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가? 심각한 우울감에 TV뉴스를 보지 않았다. 박근혜 때보다 충격은 너무컸다. 한번은 모르고 그럴수 있다. 그러나 2번은 어리석은 것이다. 난 국민이 현명하다고 믿지 않는다. 박근혜를 뽑은 노인들을 보며, 인생의 지혜를 가진 노인분이라는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달았다. 그를 뽑은 국민을 보면서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땅의 민주화 운동을 하고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 정치에도 뛰어들었던 유시민은 어떠한 만감이 교차할까? "매불쑈", "다스베이다"에 출현하여 쏟아내는 그의 정치 평론은 때로는 너무도 통쾌했고, 때로는 너무도 탁월했다. 그리고 둘다일 경우가 더 많았다. 그의 비꼬는 형식의 논평은 그에 대한 분노를 삭이며 최대한 냉정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그러한 몸부림은 이책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극단적 무능", "독재자 행태", "학습능력 결여", "비굴한 사대주의", "권력 사유화"라는 그가 인기 없는 이유에 격한 공감이 갔다. 이러한 자가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권좌가 되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겨지지 않다. 아니 그러한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어리석음이 이해되지 않는다. 집값이 더 오르길 바라며 그를 뽑은 사람, 집값이 올라서 심판하기 위해서 그를 뽑은 사람, 검찰총장이고 서울대를 나왔으니 잘할 것 같아서 뽑았다는 사람, 그냥 예전대로 뽑던대로 뽑았다는 노인들.... 그들의 어리석은 선택 후에 한국 경제 지표의 추락으로, 한반도 전쟁 위기로 이어졌다. 최고 통치권자는 위기를 예방하고 조정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능력도, 의지도 가지고 있는가?

  그를 탄생시키는데 한국 언론의 역할이 컸다. 박근혜의 진면목을 목도했을때, 언론이 박근혜에 대한 마사지를 얼마나 잘 해주었으면 국민이 박근혜의 정신상태를 알지 못했는지 한탄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보수권력 앞에서는 작아지는 한국의 언론은 박근혜의 탄생을 도왔다. 그리고 그의 탄생도 도왔다. 진보 후보에 대해서는 메서운 언론의 칼날을 들이대는데 왜? 보수 후보에 대해서는 그 언론의 칼날을 휘두르지 못할까? 유시민은 한국 언론이 기득권의 일부가 되었다고 단언한다. 그렇다. 그들도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사는 회사원일 뿐이다. 그들에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사회 정의를 위해서,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정론을 펼것을 기대한 우리가 죄인이다. 사주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눈치를 보며 그들도 하루를 숨가쁘게 살 뿐이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전통언론이 기득권의 일부가 되었다면, 김어준과 "뉴스타파"로 대표되는 유튜브 기반의 언론인들이 진실의 파수꾼역할을 하고 있다. 기성언론은 김어준과 뉴스타파를 유튜버라고 부를뿐 언론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희망이다. 

 트럼프의 당선을 놀라는 언론 기사를 보았다. 트럼프의 당선을 이변이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면서, 당신들은 미국 주류언론의 기사를 통역했을 뿐, 진정한 분석을 할 줄몰랐고 하지도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미국 주류 언론은 헤리스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헤리스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문항을 만들었다. 고졸이하의 노동자들을 여론조사에 포함시킬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다. 그러니 헤리스와 트럼프가 박빙이라는 어리석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미국은 친민주당 언론이, 한국은 친 보수언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 유튜브를 기반으로한 진정한 언론인들은 반기를 들고 있다. 나는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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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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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고 경축하고 있을 때, 서울 중구에 있는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는 한무리의 노인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그들이든 현수막에는 "대한민국 역사 왜곡 작가 노벨상, 대한민국 적화 부역 스웨덴 한림원 규탄한다"라고 씌여있었다. 친일 반공에 뿌리를 둔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4.3과 5.18을 공산주의자에 의해서 벌어진 사건이라 폄하한다. 그 사진을 보며 저 늙은 보수꾼들은 한강작가의 책에 담긴 어떠한 내용이 무서워 저리도 몸부림치는지 궁금했다. 때마침 큰딸이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에게 책을 넘겨 주었다. 200여 쪽의 얇은 책을 펼쳤다.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낯선 것은 2인칭 시점의 서술이었다. 도청에서 군인들의 총에 희생된 시민들의 시신을 관리하는 주인공 동허를 '너'라고 작가는 불렀다. 낯설었다. 중학교에서 1인칭 시점과 인칭 시점의 소설에 대해서 배웠지만, 2인칭 시점에 관해서는 배운 기억이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2인칭 시점은 강한 흡입력을 갖는다고 한다. 독자가 주인공을 자신이라고 감정이입하며 읽기에 흡입력이 강하다는 장점이 있단다. 그러나, 낯선 2인칭 시점에 나는 당황했고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다.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 내려가는 속도는 상당히 느렸다.

  2장 검은 숨에서는 시점이 갑자기 1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 군인 트력에 실린 시민들의 시체는 군부대에서 태워지고 있었다. 순간 주인공 동호가 죽었고, 동호의 영혼이 화자로 나왔다고 생각했다. 영혼은 '나'이고 동호의 육체는 '너'로 작가가 설정한 것인가? 순간 나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몸이 타들어가는 영혼은 동호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의 친구였다. 작가는 특유의 시적 언어로 타들어가는 시신과 이를 바라보는 영혼을 잔잔하게 묘사했다.

 3장에 들어서자 시점은 3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 익숙한 시점이라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게다가 이책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시기 도청에 남았던 동호라는 15살 소년을 주인공으로,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각장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겪은 5.18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 5.18의 주인공은 동호 한사람일 수 없었다. 그 때 그 현장에 있었던 모두가 5.18 민주화 운동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기에 각장마다 주인공이 달랐다. 그에 따라 시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작가 한강의 탁월한 구성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3장은 이책의 하일라이트였다. 3장은 살아남은자의 슬픔을 말하고 있다. 3장의 화자는 5.18 당시 도청에서 벗어나 병원에서 밤을 세웠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5월의 학살자가 권력을 장악하고 깊은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며 그녀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겪어야만했다. 이러한 그녀의 심정을 연극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루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99쪽)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루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100쪽)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노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101쪽)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102~103쪽)


  이후 4장부터 6장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겪는 자들이었다. 그 고통을 참아내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우리가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고인에 대한 애도를 통해서 그들을 편히 보내고 남은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의례이다. 5월 광주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 그 지인들은 고인을 애도할 수 있는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5월이 슬플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리라...


  저자 한강은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에서 자신이 '소년이 온다'를 쓰게된 동기와 그 과정을 적었다. 여린 감성의 한강은 5.18관련 자료를 읽으며 악몽에 휩싸인다. 저자 스스로 여러번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 '전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고통을 옆에서 보거나 듣다보면 그의 고통을 상담자도 그 고통을 함께 느낀다. 5.18의 기록을 읽으며 그녀는 그 때의 고통에 전이되었다.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은 많은 독자도 그 고통이 전이되었다고 토로한다. 그 고통을 함께 느낄때, 우리 모두는 5.18의 장례식을 치룰 수 있다. 그럴때 살아남은자의 고통을 겪는 이들도 인생의 장례식을 마칠 수 있다. 스웨덴 대사관에서 어리석은 시위를 하는 이들도 함께 이 책을 읽고 5.18의 장례식에 함께하길 바란다. 우리 모두의 슬픔은 모두가 애도해야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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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양장)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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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사는 방식과 태도를 말하는 '아비투스'라는 단어를 알기 전까지 그러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단지 고루한 상류층의 문화가 있을 뿐이고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라는 책을 읽자, 기존에는 보이지 않았던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자본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존재하지만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던 아비투스!! 

  

  이 책은 아비투스를 설명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순간 미래가 결정되는 점박이 하이에나를 예로든다. 왕자와 공주로 태어나는 세끼는 안전하게 보호받고 더 좋은 먹이를 안전하게 많이 먹고, 상류층의 전형적인 행동방식을 배운다. 아들들은 우두머리 암컷을 유혹하는 방법을 일찍이 터특하기에 경쟁자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번식한다.

  우리 인간의 세계도 점박이 하이에나와 같다. 상류층 부모로부터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물려받은 자녀는 보다 쉽게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흡수하여 상류층의 삶을 누리며 여유롭게 살아간다. 하류층의 아비투스를 물려받은 자녀는 치열하게 노력하여 계층 상승을 노리지만 상류층 자녀보다 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며, 때로는 상류층 아비투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것에 익숙해져라(Life is no fair, Get used to it)" 빌게이츠의 말이다. 그렇다!! 세상은 불공평했다. 어느 아비투스를 체득하느냐가 우리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 물론, 이 책에서는 상류층 아비투스를 소개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책은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자본을 소개한다. 이러한 자본에 따라서 하류층 아비투스에서부터 상류층 아비투스가 결정된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문화자본이다. 

  교사 발령을 받고 많은 소개팅을 했다. 그때 가장 당황스러운 장소는 햄버거 가게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주문을 받고 햄버거를 쟁반에 담아 소개팅녀와 식사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식사 후 쟁반과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와 대화에 집중하기 보다는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이 공간을 떠날때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탐색했다. 물론, 소개팅이 잘 진행될리는 없었다. 

  시골에서 자라서 햄버거를 먹을 기회도 없었으며, 햄버거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서민의 문화자본조차 없었다. 평범한 중류층 여성과의 데이트 조차도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나의 문화자본은 너무도 심각하게 부족했다!! 이러한 내가 임용고사를 통과해서 교사가 되었더라도 쉽게 중류층 사회에 편입될 수 없었던 이유는 나의 문화자본이 너무도 터무니 없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반면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이라는 책에 소개된 청조의 마지막 황제 푸이는 풍부한 문화자본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서민의 문화자본이 없기에 퇴위 이후의 삶이 쉽지는 않았지만, 푸이가 만주국 강덕제로 즉위하는 것을 지켜본 외국인은 푸이에게서 기픔있는 모습을 보앗다고 전한다. 찌질해 보였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푸이는 청나라 최상위츠의 문화 자본을 풍족하게 갖고 있었다. 그것이 못난 푸이를 기픔엤게 보이게했다. 아비투스의 힘은 정말 강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니체가 말한 '아모르파티'를 달리 해석하게 되었다. 부르디외는 "주어진 상황과 계급에 순응하는 태도"를 아모르파티라고 말했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아름다운 말은 곧 네 운명에 순응하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아비투스에 순응하며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도전을 멈춰야할까? 운명에 순응한다면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 처럼 계층 상승을 위해서 과잉교육열에 학생들이 혹사당하지 않아도 된다.


  "위로 올라가는 문을 열려면 최소한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한다." (128쪽)


  학벌 사회, 입시문제를 지적하며 외국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외국의 최상류층은 자녀에게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자녀의 생존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세련된 아비투스를 얻기 위해서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고 세계관을 확장하기 위해서 최상류층들은 자녀 교육에 올인한다. 

 피터지게 7가지 자본을 획득하여 1퍼센트의 상류층 사회에 진입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일까? 차라리 그러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며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각자의 삶의 의미에 따라서 선택하면 될 일이지만, 나에게는 상류층 사회에 진입하는 도전이 더 가치있어보이는 것은 왜일까?

  

  책장을 덮고 7가지 자본 중에서 한국 사회에서 중시여기는 자본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단연 경제자본이다. 경제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 지식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입시과열이 발생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진 것도 상류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왜곡된 지식자본 축적과 물질만능에 빠져 경제자본 축적을 위해서 영끌해서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를 하기 때문이 아닌가? 나의 자녀에게 7가지 자본을 골고루 축적하도록 하여 최상위 계층으로 상승시키고자하는 열망이 책을 읽는 불타올랐다. 그러나, 책장을 덮자, 그것이 자녀를 행복하게 하는 일일지에는 의문이들었다. 자녀를 위한다는 미명아래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려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 본다. 7가지 자본을 획득하는 이유가 최상위 계층으로 계층 상승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라야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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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 만주국의 초상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윤대석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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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월 9일, 5월 9일, 오호 우리나라의 치욕21개조를 승인하라고 무리하게 요구하네 - P34

2.5월 9일, 5월 9일, 국욕(國)의 고통이 얼마나 큰고한(조선)을 멸망시킨 수단을 우리에게도 사용하니우리는 결코 그처럼 되지 않으리
3.5월 9일, 5월 9일, 국욕은 반드시 씻어야 하리‘
-국치가

군관학교 생도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각각 절반씩 차지하고 있었다. 커리큘럼, 교재 등은 똑같았지만 생활에 대한 대우에는 하늘과 땅 차이가있었다. 복장에 대해서 말하자면 일본인 생도는 위에서 아래까지 전부•신품이었지만 중국인 생도는 외출복 외에는 대부분이 낡은 것이었다.
침구와 그 외 생활용품도 복장과 마찬가지로 일본인 생도는 새것, 중국인 생도는 낡은 것이었다.
식사에도 차별이 있었다. 일본인 생도는 주식으로 쌀밥, 반찬은 영양이풍부한 것을 먹었다. 중국인 생도의 식사는 고량뿐으로, 그것도 말과 소에게 먹이는 사료용의 붉은 고량이었다. 그때 위병이나 위궤양에 걸린생도들은 사십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것이 ‘민족적 억압‘이 드러난 한 사례임은 명백하다 - P310

국무총리대신비서를 지낸 왕쯔형이 같은 방에서 근무했던 마쓰모토 마스오의 《복무수지(服務須知)》를 보고 적어두었다는 메모를 통해 그 내용을 엿볼수밖에 없다. 이 사료에는 모순도 있고 해서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는없으나, 어쨌든 거기에는 "조선민족과 한(漢)민족 사이는 소원하게 해야하지 친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양민족이 충돌했을 경우 그 시 - P311

비가 동등하다면 조선민족 편을 들고 한민족을 억누른다. 조선민족에게 잘못이 있으면 한민족과 동등하게 다루어야 한다"라는 말목 외에 각 민족의 민족성과 그에 대한 대응책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는 만계 관리에 대해 "친일파이건 반일파이건 그들의 언론, 행동, 공적·사적 생활에는 모두 주의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 아니면 그 마음은 반드시 다르다‘라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적혀 있었으며, 또한 "일본인을 제외한 타민족의 재산은 오로지 축소감소시켜야 할 뿐 이것을 증가시켜서는 안 된다"라고도 적혀 있었다고 한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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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세계 (양장) -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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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이상의 남성들이 많이 보는 다큐가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속의 생존경쟁에 지치고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고픈 존재들을 위한 다큐다. 내가 살고 싶은 대자연 속에 집을 짓고 자연으로부터 먹을 것을 구하면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나날들을 상상한다. "나는 자연인이다" 속의 자연과 자연인은 천국에 살고 있다. 그들을 괴롭히는 생존투쟁도 없고, 자본의 구속도 없다. 여유와 행복만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어제까지의 세계'는 "나는 자연인이다" 속의 자연인들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전통사회를 소개했다. 이 책의 '전통사회'는 무리사회 혹은 부족사회를 뜻한다. 국가 성립 이전의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는 원시 부족사회를 낭만적으로 생각한다. 공동 생산 공동 분배하는 평등한 사회이며, 일정시간 사냥을 하고 여유롭게 나머지 시간을 즐기는 낭만의 시대로 생각한다.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원시 사회를 이상적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재레드 다이아몬든 교수는 낭만적 원시 부족사회는 없다고 말한다. 

  한예로,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에게 머슼켓총과 군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감자가 전해지자 대규모 머스켓 전쟁이 발발했다. 피지섬에도 머스켓 총이 전해지자 폭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평화로운 원시 부족사회는 환상이다. 그들 사회는 절대! 평화롭지 않았다. 부족간의 전쟁이 빈발했다.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은 한정된 식량을 두고 더욱 치열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작은 전투에 총이 전래되자 대규모 전쟁으로 발전했다. 평화로운 무리사회 혹은 부족사회는 없었다.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향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직접 가보지도 않은 원시시대를 원시 공산사회로 미화했고, 루소는 평화로운 원시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자유를 확실히 확보하기 위해서 사회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원시 부족사회에서 생활하던 사람이 현대인에 의해서 발견되어지자, 그들은 원시 부족사회의 삶을 청산하고 문명사회에 적응하려했다. 왜일까?

  부족전쟁이 식민 정부의 강압적인 개입으로 종식되자 부족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부족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를 인구비율로 비교해보면, 현대 전쟁의 사망자 비율보다 부족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비율이 많다. 잦은 부족전쟁은 부족사회보다 현대 문명사회를 더 행복하게 여기게하는 주된 이유이다. 그래서, 뉴기니 고원지대의 아위야나족 남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삶이 더 나아졌다. .... 아침에 일어나 화살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없이 집에서 나와 소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20쪽


  국가가 없다면 개인은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국가를 탄생시켰다는 홉스의 지적은 자연상태를 평화로운 상태로 가정한 로크나 루소보다 더 현실적이고 타당했다. 폭력의 독점은 개인간의 폭력을 줄였다. 그러하기에 혼란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제3세계 민중들은 독재자에게도 복종했던 것이다.

  원시 부족사회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번째로 관계 획복에 촛점을 맞춘 사법체계를 들 수있다. 학교 현장에서 학폭이 법정에 까지 가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교사에게 민원을 제기하고 고말을 남발하는 학부모도 있다. 모든 것을 '법대로 처리'하려는 얄팍한 생각은 우리의 현실을 팍팍하게 말들고 있다. 학교폭력이 벌어지면 해당 사안을 처벌에 촛점을 맞춰 진행하다보니,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관계회복은 이뤄지지 않는 비극이 발생한다. 

  부족사회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뉴기니에서는 사법적 처리도 이뤄지지만, 관계 회복을 위한 가해자의 노력과 피해자의 용서가 선행된다.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지적했듯이, 관계회복에 촛점을 맞춘 부족사회의 전통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사법적 처리와 함께 피해자가 원한다면 관계회복을 위한 절차를 사법부가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 특히, 학교 현장에서 학폭사안에 대해서는 상담교사의 도움아래 관계회복절차라 이뤄지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둘째, 전통적인 뉴기니 사회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멀리한다. 마푸크는 재봉틀을 사서 부족민의 찢어진 옷을 수선해서 돈을 벌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친척들이 마푸크의 이기심을 나무랐다. 옷은 무료수선하고, 마푸크의 결혼식때 신부값을 지원하는 다른 방식으로 댓가를 지불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사례를 한가지 더 들자면, 뉴브리튼 섬의 카울룽족 아이들은 바나나 먹여주기 놀이를 한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놀이를 하며자란 카울룽족 아이들은 이기심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더 중요시한다. 

  우리의 교육현장에서는 친구를 이겨야 내가 1등급을 맞을 수 있는 경쟁구조가 확고히 자리잡았다. 한학년에 2명 이상의 교사가 수업을 할 경우, 학생들은 타반 선생님은 힌트를 주었는데 우리는 왜? 주자 않느냐며 항의한다. 물론, 확인 결과 타반 선생님은 힌트를 제공한 적이 없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친구를 딛고 일어서야한다는 경쟁심을 가르치는 우리 교육 현실이 개탄스럽다. 함께사는 세상을 만들기 보다는 타인을 딛고 내가 일어서는 삶을 살려하지 않을지 무척이나 염려스럽다. 

  셋째, 원시 부족사회의 노인 우대문화가 부럽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노인을 우대하는 유교문화가 뿌리 깊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사라진감이 든다. 물론, 원시 부족사회라고해서 무조건 노인을 우대했던 것은 아니다. 한정된 식량자원을 아끼기 위해서 노인을 유기하거나 죽이는 원시 부족사회도 있다. 그러나, 노인의 지식이 생존에 유용했던 원시 부족사회에서 노인은 존중받을 수밖에 없다. 

  친가에 나이드신 어머니가 있고, 처가에 연로한 장인어른이 있다. 노부모를 봉양해야하는 상황에서 여러 생각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난다. 나의 어머니에 대해서 효를 행하라고 아내에게 강요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인 효를 강요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모를 봉양해야한다. 날로 노쇠해지며 치매 증세를 보이는 어머니를 어찌 모셔야할지 눈물만이 흐른다. 

  넷째, 이중언어의 중요성이다. 원주민들은 보통 4~7개의 언어를 한다. 혹은 10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원주민들도 있다. 좁은 지역에 다양한 언어가 있는 뉴기니에서 이중언어 생활은 당연한 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원주민 언어를 보호하고 이중언어 생활을 하는 것이 치매를 예방할 뿐만니라 원주민집단의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오해는 말자. 자신의 뿌리가 되는 언어를 무시하고 타언어를 열심히 배우자는 주장은 아니다. 


  "원주민 소수집단 중에서도 문화와 언어를 원형대로 유지한 집단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사회복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적다."-596쪽


  오스트리일리아 원주민 중에서 전통적인 부족언어를 배운 원주민은 문화적으로 단절된 원주민보다 약물을 멀리하는 경향을 띤다.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영재교육 연수를 갔을 때, 뇌과학자분이 유대인의 예를 들면서 역사를 배우는 것은 정체성을 세울 뿐만 아니라 뇌발달에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나라없는 유대인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계 금융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저력은 역사와 언어를 잃지 않으므로서 뿌리뽑힌 민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원주민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면서 또다른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 뇌발달을 위해서, 타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하다. 


  재레드 다이야몬드 교수의 책은 언제나 우리에게 통찰력을 준다. 그래서 한국어로 번역된 재레드 다이야몬드 교수의 벽돌책을 열심히 읽는지도 모른다. 재레드 다이야몬드 교수는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서도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냐 협조적이냐를 따지는 건 헛수고일뿐이다. 어떤 인간 사회에나 폭력과 협조는 동시에 존재하며, 환경에 따라 하나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듯하다."-233쪽


  그렇다. 성선설과 성악설 논쟁은 무의미한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교육되었고 어떤 환경이 생애 초기에 제공되었느냐에 따라서, 자원의 희소성과 위협적인 국가가 이웃하느냐 등에 따라서 폭력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고 협조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의 세계 질서는 폭력적인 인간을 만들고 있을까? 협조적인 사람을 만드록 있을까? 재레드 다이야몬드 교수는 나의 마음에 심오한 화두를 던진다.







ps.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책에도 아쉽지만, 옥의 티가 있다. 


  "히틀러와 일본 조차 소련과 미국에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그와 동시에 소련과 미국을 공격했다." -205쪽


  "일본 조차" 미국에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공격했다는 재레드 다이아몬든 교수의 지적을 잘못된 것이다. 일본은 진주만 공습 때 미국에 기습 후에 선전포고를 했다. 일본의 전형적인 전쟁 수법이 이른바 '선빵필승'이다. 선전포고 없이 먼저 공격한 후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전후포고라고 해야하까?

  근데, 251쪽에는 진주만 기습을 "선전포고 전에 행해졌기 때문에 미국인들에게는 기만적인 잔혹행위로 여겨졌다."고 섰다. 205쪽의 서술과 배치된다. 물론, 205쪽 서술이 잘못된 것이다.


'어제까지의 세계'에는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문장도 소개되있다. 


  "종교는 억압 받는 사람들의 한숨이고, 비참한 세계의 심장이며, 영혼없는 상황의 상황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482쪽


  종교가 구원의 사다리이기보다 민중을 착취하는 지배자의 도구 혹은 그 지배자 자체일 때 마르크스의 종교에 대한 정의는 유효하다. 현재의 한국 종교에 이 정의가 유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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