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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평점 :
『종이약국』은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 이야기다.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파리 센 강 위에 있는 수상 서점인 종이약국의 주인인 페르뒤 씨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쉰 살의 키큰 이 남자는 원래 룰루라는 이름의 화물선을 한 척 사서 직접 개조해 설명하기도
어렵고 규정하기도 어렵지만 실재로 존해하는 고통을 덜어주고 무수히 많은 영혼의 병을 치유하고자 그가 생각하기에 유일한 약인 '책'으로 배를
채운다.
사실 서점의 이름이 '종이약국'이라고 하면 언뜻 서점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뒤 씨가 이 서점을 종이약국이라고 이름 짓게 된 이유는 1936, 에리히 캐스트너가 자신이 그동안 집필한 작품들의 시적인 표현들을
마치 약장처럼 모아서 《서정적 가정약방》이라는 책을 내게 되는데 서문에서 캐스트너는 이 책의 효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던 것이다.
“개인의 생활을 치유하는 데 이 책을 바친다. 이 책은 존재의 크고 작은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도록 대부분 동종요법으로 조제되었으며, 평범한 생활의 내면 치유에 도움이 될 것이다.” _(p.32)
결국 평범한 감정들에 대한 백과사전을 쓰고 싶었던 페르뒤 씨는 의사들이 결코 진단하지 못하고
차마 고통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감정들을 치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캐스트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서점 이름을 '종이약국'이라 지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마치 독심술을 사용하는 것처럼 종이약국을 찾는 사람들에게 현재 필요한 책을
처방해준다. 그들이 사고자 하는 책이 아니라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이나 감정적 고통을 읽어내고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책을 사라고 하는데
이러한 페르뒤 씨의 행동은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아예 그의 조언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는 등 손님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그런 페르뒤 씨가 유일하게 치유하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다.
이야기의 초반 그의 집에 있는 방 하나가 오랜 세월 동안 책장에 막혀 있었는데 이 공간은 그에게 있어서 금단의 영역이기도 하고 결코 열어서는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했던 연인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버리고 그는 마치 그 공간을 그녀와의 추억을 박제시키듯 영원힌
봉해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어떤 책이 어울리는지 단번에 알아내 그 책을 처방해주지만 정작
자신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상처를 봉인한 채 살아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 지난 20년 동안 버려져 있던 봉투를 발견하게 되고 봉인해 두었던 순간을 더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정박해 있던 종이약국을 출항시키고 이 여행에서 페르뒤 씨는 자신처럼 사랑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 둘 종이약국에 태우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의 모습을 간직한 인물들을 배에 태울 수는 없겠지만 이들은 결국
페르뒤 씨가 그런것처럼 한명 한명이 사랑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점차 자신의 상처난 채 20년을 머물러 있던 사랑에
정면으로 마주보게 되면서 그동안 자신이 많은 사람들을 치유해줬던 것처럼 페르뒤 씨는 자신도 치유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약간의 미스터리와 함께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그 분위기가 좋고, 만약 종이약국이 센 강은 물론
세상 어느 곳에서든 존재한다면 그곳을 지키는 페르뒤 씨는 '나에겐 어떤 책을 처방해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