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캐릭터를 통틀어서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일단 '빨강머리 앤'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본능적으로 눈길이 간다. 『빨강머리 앤 나의 딸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러한
마음이 컸을 것이다.
특히나 자전적 이야기이면서 빨강머리 앤의 슈퍼 팬북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더 궁금하게
만들었던게 사실인데 이 책은 로릴리 크레이커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두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둔 로릴리에게 있어 딸은 가슴으로 낳은
입양아이다.
어느 날 딸 피비는 그녀에게 '고아'가 뭐냐고 묻는다. 그 계기는 『빨강머리 앤』이라는 책을
읽던 중이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고아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에는 그닥 좋게 느껴지는 이미지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체적으로 비슷한가 보다.
이에 대해 로릴리는 다양한 고아 캐릭터에 대해, 고아라는 단어가 가진 이미지에 대해 열거해놓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편견과도 같은 이야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태어날 때부터 고아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살아가다보니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고아가
될 뿐이다. 그리고 혈연으로 맺어지지는 않았더라도 새롭게 가족이 된 사람들에 대한 주변의 따까운 눈초리는 어쩌면 지나친 간섭일지도 모르겠다.
피비가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들었던 『빨강머리 앤』은 저자에게 있어서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앤은 내가 열심히 만화를 보던 시기에도 보기 드문 캐릭터였다. 고아에다 생김새는 어딜봐도 호감형이
아니다. 삐적 마른 몸에 얼굴은 온통 주근깨 투성이에 머리카락은 보기 드물게 빨간색이였으니 말이다.
공주님처럼 예쁘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여자아이의 캐릭터가 그러하듯 여성스럽지도 않았고
비현실적이라 할만큼 지나치게 공상적이였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앤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할 줄 알았고 또
그 노력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한발 한발 정진해나가는 사람이었다.
앤이 좋았던 이유는 누군가의 도움 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의 꿈을 당당히 쟁취해나간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백마 탄 왕자님 덕분에 '이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이 아니였으니 말이다.
남자아이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담력이 있었고 또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먼 독립적인 행보를 보였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 보아도 앤의 모습은 참 멋있었나 보다.
책에서는 이런 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었고 저자인 로릴리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지금의 딸인 피비와의 만남 등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져 있다. 얼마 전 아이들이 보는 채널에서 내가 그 나이 쯤에 보았던 <빨강머리
앤>을 다시 방송하는 걸 본 후에 만나서인지 왠지 더욱 반갑고 감회가 남달라서 인상적으로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