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짜장면을 맛보지 못한지 오래다.  여기야 뭐 워낙 좀 그렇지만, 교민으로 미어 터진다는 Los Angeles일대 (뭉뜽그려서 남가주 = 남켈리포니아)에서도 특별히 내 입맛을 자극할만한 곳은 못 봤다.  아니, LA나 NY일대는 교민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맛도 방식도 한국의 유행이 그대로 수입된다고 보면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맛없는 짜장면은 요즘 한국의 동네 중화요리 식당만큼이나 널렸다.  즉 예전의 맛을 그대로 내는 곳은 여기도 없다는 것.  아마도 한국의 지방 어디, 아니면 제주도라도 가야 옛날식의 맛있는 짜장면을 먹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혹자는 화상이 물러난 자리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화요리집이 늘어나면서부터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볼땐 전반적으로 낮아진 음식재료의 질과 이에 비례한 주방장 또는 주인의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대륙의 일반적인 위생이나 음식에 대한, 아니 사회적인 인식을 보면, 화상이 주인이라고 해서 예전처럼 정성스러운 맛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듯.  역시 시대가, 세태가, 사회가 변한 탓일까?  자본주의의 극을 달리는 21세기 초엽, 짜장면 하나 제대로 먹을 곳이 없다니. 

 

7월은 언제가 한가했다.  예전에 다니던 사무실이 오너의 골프행각으로 downsize되기 전, 무척 바쁘던 때에도 7월은 한가했다.  나에게 사무실을 맡겨놓고 오너가 한 달씩 휴가를 가도 될 정도로 말이다.  즉 하던 케이스를 이어서 maintain하고 update하는 정도의 일이 7월의 주 업무가 된 적이 많았는데, 신생인 나의 사무실은 maintain하거나 update할만큼 많은 케이스가 없다.  아직은. 

 

한가한 덕에, 벼르던 방정리와 책정리를 시작하여 IKEA에서 bookcase로 쓸 장식장 두 개를 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조립을 마친 후 한쪽 벽에 세워놓았다.  요녀석들이다.

 

 

출처: http://www.ikea.com/us/en/catalog/products/80071319/

 

이거 두 개면 2-3겹으로 책을 넣을 수 있는데, 보다시피 각 칸이 좁아서 파티클임에도 불구하고 잘 휘지 않는다.  수많은 책장들을 섭렵한 끝에 pine나무나 oak로 만든 책장 다음으로 꽤 쓸만한 제품이다.  물론 가정집에다 들여놓으면 모양이 좀 별로인데 - 경험상 안다 - 사무실의 한쪽 벽에 두 개를 나란히 세워놓으니 그럭저럭 공간도 채워지고 보기에도 괜찮다.  무엇보다 앞으로 사무실을 옮겨도 - 지금의 executive suite (전화, 비서, 인터넷 등의 기본 서비스가 포함된 방 rent)을 벗어나야지 - 회의실 한켠에 세워두고 장식용 책들 - 두꺼운, 예전에 쓰던 법률서적 (지금은 필요없는) - 을 잔뜩 채울 수 있기에 두고두고 활용도가 높다고 하겠다.

 

아무튼, 이 녀석들 두 개면 두꺼운 책은 20-25권, 일반 두께의 책은 35-40권은 들어가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거의 꽉 차버렸다.  계획은 한국어 책을 모두 가져다 놓는 것이었는데, 딱 하나 정도가 모자란 분량이 아직 집에 남아있다.  그리고도 모자라서 일부 처세나 자기계발에 관한 책들은 다른 책장에 두겹으로 꽂아 놓았다. 

 

그러고 남은 집의 책장의 자리는 게임과 animation DVD로 좀 채웠는데, 사실 박스에 담아 보관중인 만화책이 무척 많이 있기에 이들도 조금씩 열어서 꺼내어 놓았다.  덕분에 밤에 잠이 안올땐 정말이지 오랜만에 만화책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 꺼낼 수 있는건 대략

 

 

 

 

 

 

 

 

 

 

 

 

 

 

이들이다.  모두 전권을 가지고 있는데, 중고책, 그것도 도서대여점의 땡처리 출신이라서 모두 보관상태가 험하다.  '수라문'이나 '짜장면'의 경우 종이질이 조악해서 벌써 테두리가 누렇게 뜨고 있다는. 

 

어제는 이들 중 '짜장면'을 오래 잡고 있었다.  은근히 쓸만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자기일에 대한 자부심, 일에 연연하지 않는, 정확하게는 돈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가짐, 그리고 독서의 중요성 등이 그들이다.  고수와의 대결에서 마음의 평정을 잃고 패한 주인공은 삼천포의 짜장면 고수인 백기명인을 찾아가 사사를 받게 되는데, 하루에 딱 백그릇만 팔아서 백기명인이란다.  이는 돈에 연연하지 않기 위한 마음가짐이라고 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즉,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만족하고, 나머지의 시간은 자신에게 투자하고, 또 남을 위해 일할 수 있었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의 경우 주말이나 금요일을 활용한 pro bono work로 가능할 것 같다 (이미 시작은 했고 한 케이스를 맡았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백기명인이 엄청난 장서가라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삼천포는 경상남도 사천시에 위치한 남해지방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백기명인은 하루에 백 그릇까지의 짜장면을 팔고, 남은 시간에는 낚시와 독서로 소일한다.  현실성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좋은 짜장면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하니, 역시 일에 대입하여 본다면, 나의 독서는 내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idea하나는 꽤 창의적이라고 자부하는 편이긴 하다.  희안한 케이스를 맡아 성공시킨 사례가 몇 번 있는데, 아마도 무의식중에 녹아있는 어느 누군가의 글 덕분일지도 모르겠으니까.

 

짜장면.  갑자기 정말로 잘 만든 짜장면을 먹고 싶어졌다.  그런데, 중국산 재료도 못 믿겠고, 이를 갖다 쓰는 중화요리 식당도 못 믿겠으니 culinary school이라도 가서 배워서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하나?  아니 어쩌면 중요한 회귀인지도.  산업혁명 전까지는 one person - one product의 시대였으니까.  이제 우리는 무엇인가 좋은 것을 먹고 쓰려면 직접 만드는 수 밖에 없는 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나른한 오후에 낮잠을 쫓는 구실로 이런 이상한 글을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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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7-20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천포 우리 옆 동네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주만큼이나 남해사람들이 자주가는 지방입니다. 삼천포는... 우리 옆 동네!

139달러면 대체 얼마죠? 진짜 이쁘다... ㅠㅠ

2012-07-20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1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2 0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맘에 드는 짜장면집 하나 찾기가 힘든 시대. 정 아쉬우면 자기가 배워 만들어 먹어야 하는 시대..
제천역 앞에 진짜 맛있는 짜장면집 있다고 제부가 갈춰줬는데 함 먹어보고 알려드릴게요. 시대를 거스르는 명인의 집인지, 그냥 제부의 입맛이 관대한 건지... 오실 순 없겠지만 일종의 증거는 되는 정보로다가...ㅎ
그나저나 백기명인 이야기 정말 맘에 드는 지난 시대풍의 만화인걸요?! 돈에 초연하고 책을 좋아하는 게 명인의 비결이라니...
삼천포,, 좋은 곳이에요. 숨은 명인이 낚시를 즐기며 살 법한 동네죠~.^^

transient-guest 2012-07-20 16:22   좋아요 0 | URL
가끔 그럴때가 있어요. 바로는 어럽지만, 조금 모아서 그냥 어디 들어갈까. 콜로라도 같은 곳 생각했는데. 삼천포 한번 고려해 봐야겠네요. 한 10년? ㅋㅋ 백기명인이 될수는 없겠지만, 낚시와 책은 저도 자신 있숨다...ㅎ

달사르 2012-07-2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천포. ㅎㅎ
얼마 전, 삼천포에 가서 회를 먹었네요. 마산에서 열리는 연수회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단체로 들렀더랬죠. 정작 바다는 버스 안에서만 봤는데요. 그래도 그 아련한 느낌은, 좋던데요. 삼천포가 괜히 삼천포가 아니구나. 그랬어요.
그런 전통 짜장면 집도 삼천포엔 있겠다, 싶어집니다!

transient-guest 2012-07-24 00:42   좋아요 0 | URL
저는 하도 코미디나 농담으로 '삼천포' 운운하니까, 꽤 최근까지는 그게 진짜 동네인지 몰랐었어요.ㅋㅋ 왜, 하도 삼천포로 빠진다 어쩌고 하잖아요. 그런데서 은퇴하면 좋겠어요 이담에. ㅋ

달사르 2012-07-2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앞뒤로 틔어져 있는 책장 류를 모두 expedit라고 하는 건가요? 아님 이케아의 저 제품 이름을 그냥 그렇게 부르는 건가요? 암튼, 탐이 무척 나는 책장입니다. 막 인터넷 바다를 뒤지면서 구경하고 있어요. ㅎㅎ

transient-guest 2012-07-24 00:44   좋아요 0 | URL
네 4x4, 5x5, 2x2 이 정도로 나오는데 모두 expedit이네요. 일반 책장은 거의 모두 Billy라고 되어있고. expedit이 잘 놓으면 비교적 좋은 값에 책을 많이 넣을 수 있어요. 특히 한쪽 벽을 채우기 좋겠네요.
 

즐겨보는 몇 개의 드라마가 있다.  언제나 심심할 때 틀면 좋은 Band of Brothers.

 

 

 

 

 

 

 

 

 

 

 

 

 

 

책 한 권 펼쳐놓고 맥주 한잔하면서 보면 좋은 고독한 미식가, 그리고 역시 같은 분위기로 보면 좋은 심야식당.  이 심야식당은 만화가 원작인데, 드라마로만 접한 작품이다.  현재 시즌 1 까지 DVD로 나와있고, 시즌 2는 기다리고 있는 상태 - 라고 썼는데, 방금 검색하니 이번 달에 나왔다.  이건 기회가 되면 구해야한다.

 

 

 

 

 

 

 

 

 

 

 

 

 

 

심야식당 시즌 1의 에피소드 1을 보면 식당 일대를 '지역기반'으로하는 야쿠자 '류'라는 케릭터가 있다.  맨 처음 식당을 찾은 날부터 줄창 칼집을 내어 문어모양으로 볶아낸 빨간 비엔나 소세지만 시켜 먹는데, 이는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음식이기 때문.  이 사연은 시즌 2의 에피소드 1에서 '다시 빨간 비엔나 소세지'라는 제목으로 밝혀진다. 

 

주구장창 쓸데없는 사설을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 나도 왠지 모르게 이번 글의 제목을 '다시 하루키'라고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고, 무엇인가 거창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루키를 접한 것도 남들보다 늦은 주제에, 그의 주요작품 뿐만 아니라 전작을 결심한 것도 겨우 한 두어달 전이니까, '다시 하루키'에는 '다시 빨간 비엔나 소세지'와 같은 심오한(?), 그리고 가슴아픈 사연도 없다.  그냥 제목만 차용했을 뿐이다. 

 

최근에 붙잡은 하루키의 작품들은 비교적 초기의 작품군인데, 모두 하나의 배경으로 이어져 있다.  물론 중간중간 다른 장-단편과 에세이를 기웃거렸지만, 무엇인가 이어진 하나의 세계, 나아가서 추후 그의 유명작품들의 테마와 셋팅이 습작되었음을 볼 수 있는 건 이들이다.

 

전에도 한번 다루었지만, 이 작품은 하루키의 처녀작이면서, 재즈카페사장이던 그를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어느 날, 무엇인가 갑자기 자신을 위해 쓰고 싶어진 그는 이 글을 썼고, 군조신인상을 받았다.  시대적 배경은 1970 7월부터 8월까지.  내가 태어나기 전.  그리고 현 대선후보로서 대통령 당선이 유력하다고 하는 공주의 아버지가 한국을 10년째 '다스리던' 때.  

 

주인공과 친구 '쥐'는 해변의 bar - J라는 사람이 경영하는 - 에서 술을 마시고, 낮에는 해변에서 논다.  그러면서 두서없이 인생과 기타 등등을 논하고, 기회가 되면, 여자와 잔다.  

 

복잡한 문학이론적인 의미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그냥 젊은 시절, 모든 것을 다 알 것 같던, 그리고 모든 것이 심드렁하던 20대 중반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은 그 거리를 떠난다.  70년대를 reference하기에 음악은 역시 pop이고, 가장 흔한 기기는 phono record player다.  미국에서는 vinyle (비닐) record로 흔히 부르는데, 나도 중학교때까지 모은 걸로 한 30-40장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물론 CD세대지만, LP판이 훨씬 좋다.  치직거리는 아날로그 사운드와 한 면이 다 돌아가면 바꾸어 주어야하는 불편함까지도.  무엇인가 낭만적이랄까.  예를 들면 - '비오는 이른 아침, 판을 올려놓고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와 '비오는 이른 아침, CD Player를 켜고 커피를 내린다'의 차이?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1970년의 어느 해변, 그리고 bar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제목처럼 1973년의 어느 시점이 시간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노르웨이늬 숲 ('상실의 시대')의 '나오코'가 처음, 도입부에 나온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내용인지, background가 같은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녀는 '그녀'가 맞는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는 주인공과 '쥐'가 찾아다닌 핀볼머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핀볼은 흔히 외국의 전자오락실, 볼링장, 또는 bar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아날로그 오락기계라고 보면 되는데, PC로 하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하면 마치 slot machine을 PC로 돌리는 것처럼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 없는 특이한 게임이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  원 코인으로 오래 살아남아 점수를 높여 가는 것이다.  전자오락처럼 기승전결이 있거나, 스테이지가 지날수록 어려워지거나, boss character가 매 스테이지마다 나온다거나 하는 것도 없이, 그저 쇠구슬을 튕겨 점수를 내는 것, 그리고 공이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이 게임의 거의 모든 것이다.  

 

주인공이 자신이 가지고 놀던 어느 특정 핀볼 기계를 찾아 헤메인다.  이 핀볼 기계는 그의 과거이며, 현재를 이어주는 소중한 그 무엇이다.  노르웨이의 숲의 나오코 같은 존재일까?  

 

우리는 때때로 과거를 회상하고, 그리워한다.  첫 사랑처럼.  김제동이 그랬던가?  첫 사랑이 그리운 것은 그녀가 그리운게 아니라, 그 시절의 '우리'가 그리운 거라고.  그래서 그랬는지, 옛날에 또 누구는 '사람은 추억에서 만날 때 아름다워야 한다'라는, 읽을 당시에는 꽤 멋지다고 느껴지는 말을 남기기도 했나부다 (르네상스라는 순정만화 잡지의 단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결론적으로 과거를 현재에 다시 마주치는 것은 어느 정도는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허탈하고 허무할 수 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역시 추억은 추억속에 남겨두는게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facebook이나 cyworld는 가끔 너무도 먹고싶게 포장된, 그러나 결과가 두려운, 변비약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쥐'는 멀리 떠났다.

 

자.  여기서부터 조금씩 난해해진다.  굳이 문학적인 고찰이 궁금하다면 역자 후기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는 아직도 곰곰히 생각하는 중이니까.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이 역시 수십 년 후 1Q84를 출산하기 위한 시작이었을까? 

 

도대체 '양'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리고 마지막.

 

역시 좀더 발전된 형태의 1Q84 prototype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꼬마 여자애, 겹쳐진, 그리고 굴절되고 왜곡된 시공간.  이루카 호텔이라는 겹치고 닫힌, 그리고 연결된 공간.  주인공을 중심으로 연결된 사람들.  누군가를 찾아가는 여정.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호한 케릭터들.  그리고 아버지-후견인.  이 아버지-후견인의 gay서생 Friday.  정리가 덜 된 1Q84의 모티브를 볼 수 있다. 

 

문학적인 후기가 궁금하다면 또 다시 역자 후기를 추천할 수 밖에 없다.

 

하루키의, 그리고 주인공의 13년간의 삶을 본다.  1970년 부터 1983년까지.  호오.  그 다음은 1Q84가 아닌가?  1984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리고 그 중간중간에 놓여있는 카프카와 노르웨이의 숲.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재미있지만, 무엇인가 의미를 찾아내려면, 나 같은 둔재는 전작을 한 열 번 정도는 하고, 나이도 한 열 살은 더 먹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잘 읽었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흐리게나마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오늘 저녁에는 빨간 비엔나 소세지를 사다가 칼집을 내고, 문어모양으로 볶아서 양배추를 곁들여 아사히 맥주와 먹을지도 모르겠다.  '류'짱의 그 대사가 떠오른다.  '늘 하던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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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매일 하는 대로 이런 저런 책들을 (1) 사무실에서, (2) 집에서, (3) 운동하면서, (4) 기타등등 읽고 있다.  개중에 우연하게 구매해서 보관하다가 읽게 된 책도 있는데, 무지하게 재미있다.  역시 마음에 드는 책은 일단 가능하면 사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나의 지론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건 헌책박에서 3불에 구입한 'The Mammoth Book of Classic Science Fiction - Short Novels of the 1930s'라는 이름으로 나온 1988년도 버전인데, 2007년의 판에는 golden age SF라는 말이 따로 붙어있다.  10명의,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작가들의 단편을 모아놓았는데, 지금까지 3편을 읽었다.  3번째로 리스트 된 작품이 특이하다면 특이한데, The Thing이라는 영화 - 커트레셀이 주연한 - 의, 혹은 최근에 나온 The Thing이라는 영화 - 전편의 prequel에 해당하는 - 의 원작같다.  내가 두 영화를 모두 보지않아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영화들의 원작임은 확실하다.  구입한 동기는 아시모프가 Charles G. Waugh와 Martin H. Greenberg라는 두 작가들과 edit했다는 표지의 선전구 때문인데, 오래 책장 한 구석에 들어가 있다가 최근에 읽히기 시작했다.  매우 재미있는 책이고, 1930-40년대의 classic들을 모아놓았기에 그 시절에 미국의 SF작가들이 생각하던 미래의 세계관이나 현실의 모험의 이미지가 잘 나타나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사료로써의 가치도 있다고 본다.  일종의 1차 자료로써 말이다.  다 읽이면 각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expand해보아야겠다.

 

한 150페이지 정도를 읽었는데, 이제 50을 바라보는 저자가 젊은 세대에게 존재에 대한 것, 장기적인 비전, 지혜롭게 단련된 마인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 테마를 한 장으로 꾸며서 에세이 모음집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구구절절히 옳은 말로 가득차있는데, 다른 성공학/자기계발류의 책들과는 달리 저자의 깊은 성찰과 고민이 배여있다.  즉 책을 쓰고 팔기 위해 쓰여진 책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전에 주식투자에 대한 저자의 책을 읽은적이 있는데, 그 후로 저자의 독서관도 조금은 변한것 같다.  여전히 독서에 대한 그의 견해에는 약간의 disagreement가 있지만, 우리 시대에 흔하지 않은 - 굳이 국민멘토라는 다소 낯간지러운 별명을 붙이지 않더라도 - 멘토들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안경환 교수님은 이런 책 안쓰시나?  이분도 대단한 학자이고 인격자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의 다 읽어가고 있다.  몽상, 환상, 추리, 공포 등의 장으로 나누어 수록한 포의 소설 전집이다 (시는 빠져있다).  알면 알수록 작가의 삶도 꽤나 미스테리어스한 것 같아 소설과 잘 overlap이 된다.  어디까지 소설의 구상이고 어디까지 작가의 몽상인지 헷갈린다.

 

읽으면서 확연히 느꼈는데, 에도가와 란포 선생의 상당작품들이 포의 작품에 대한 노작이라는 것이다.  기본 테마와 설정, 느낌까지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역시 창작의 시작은 노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좋아하는, 또는 작가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다른 작품들의 테마와 구성을 가져다 노작을 하는 것으로 일종의 사숙행위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뒤팽처럼 가끔은 낮을 밤으로 바꾸어 살아보는 것도 재미는 있겠지싶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번역에 이슈가 좀 있다는 것.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를 풍자한 케릭터가 있는데, 아리스 토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문표기를 읽으면 아리스토틀이 되는 것은 나누어 놓은 것인데, 역자주에 '아리스토틀 - 그리의 철학자'라고 되어 있다.  완전 코미디 같다.

 

그.리.고.  여전히 아주 천천히 진도를 나가고 있는 두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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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하 2012-06-2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작품성이 기대되긴 하지만 그림에 떡인 책입니다.ㅠ.ㅠ
옛날엔 추리, 스릴러, 미스테리에 강했는데 점점 심장이 작아지네요.^^
그래도 너무 많은 분들께서 극찬하시는 것을 들어 온 터라
나중에 마음잡고 읽어봐야 겠다(특히 백주 대낮에) 벼르고만 있습니다.

transient-guest 2012-06-27 00:35   좋아요 0 | URL
ㅎㅎ 깊이 빠져 읽으면 좀 무섭습니다. 소위 하드고어한 그런게 아니라 머릿속을 휘저어 놓는 듯한 좀더 원초적이고 깊은 공포라고 할까요? 그래도 꼭 한 권 소장하고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네요..ㅋㅋ 뒤팽처럼 낮에 두껍고 까만 커튼으로 모든 빛을 차단하고 촛불에 의지해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12-06-30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포의 작품 중에서는 '어셔가의 몰락'을 제일 좋아합니다.어떤 작품을 좋아하시는지요?

transient-guest 2012-07-01 10:36   좋아요 0 | URL
저는 '모르그가의 살인'입니다. 스토리 구성보다도 작가가 작품을 통해 쓴 이야기들 - 예를 들면 도입부 같은 - 도 좋고 주인공-화자와 뒤팽의 밤의 찬미같은 특이한 생활도 무엇인가 끌리고요. '어셔가의 몰락'도 굉장히 인상이 깊죠. 마지막에 집이 땅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부분이 그야말로 'fall' 그 자체인거죠.
 

이 책은 마쓰모토 세이초 컬렉션 3부작을 읽은 후에 잡은 그의 장편소설인데, 과연 추리소설이라고 할만한 요소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추리소설의 구도는 사건에 대한 '추리'가 있어야하고, 셜록홈즈처럼 선/악을 대비한 케릭터의 존재와 특정범죄가 필요한데, 여기에는 그 모든 것들이 흑백으로 갈라져 존재하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 있는것이다. 

 

평론에 의하면 '사회파'추리소설로써의 feature를 나타내는 부분이라고 하는데, 나의 공감 유무를 떠나서, 굳이 말하자면 추리소설에서 detective계열보다는 일반적인 미스테리 계열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사회파의 거장답게, 이 책의 내용 역시 실제로 2차대전 후 막후에서 일본 정재계를 좌지우지했던 - 흑막 - 속의 한 인물을 모델로 하고있고, 그를 중심으로 각자의 욕망에 충실하게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인물들이 때로는 독립적으로, 또한 때로는 유기적으로 스토리를 움직여나간다.  절대적인 선도 없고 악도 없는,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를 벗어날 힘도 없고, 그저 그 사회속에서 시류에 편승하여 한몫을 잡아보려는, 또는 petty한 욕망을 실현시키려는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책의 주인공은 전후의 일본사회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장르의 특성상 많은 내용을 쓰면 스포일러가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독후감스러운 이야기를 쓰는 것은 내 취미가 아니다.  그저 불로 시작해서 불로 끝나는 한 인생이 좀 불쌍할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정판으로 세이초의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하니, 기대하면서 한 권씩 읽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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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6-20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독후감스러운 이야기.. 맞아요. 그런건 취미가 아니다, 에 공감.

저는 요즘 이상하게 일본작가들 책을 자꾸 읽고 있는데요. 마쓰모토 세이초 작가의 책이 기존의 추리소설 류와 다르다고 하시니 눈길이 자꾸 가네요. 실제 2차대전 후의 정치적 배경이 깔리는 것도 마음에 들구요. 사회파의 거장이라..이거, 트란님 덕분에 일본 작가 한 분 더 알게 될 것 같습니다.

transient-guest 2012-06-21 00:53   좋아요 0 | URL
저도 마쓰모토 세이초를 요꼬미조 세이시와 혼동하다가 관심을 갖게 된건데, 그야말로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으로...달사르님은 그 소에 올라타셨다능..-_-: (이게 뭔소리??)
읽다보면 추리소설보다도 전후 일본의 사회상을 볼 수 있는 1-2차 사료로써의 역할이 더 강조되네요..
 

주말에 연달아 하루키의 예전 작품들을 읽었다.  두 작품 모두 그의 소품집이나 창작에세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초기의 글들인데, 특히 이 둘은 훗날의 거작이 되는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1Q84등의 밑그림이 되는 일종의 습작과도 같은 작품들이기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실제로 작가도 그렇게 언급했지만, 후기의 걸작들은 이 둘에서 다루어진, 그리고 연습되었던 이야기들이 좀더 다듬어지고, 구체화되었으며, 정립된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둘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사정상 먼저 읽어버린 해변의 카프카, 노르웨이의 숲, 그리고 1Q84의 내용과 케릭터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오야마에서는 아오마메를, 사라진 스미레를 보면서 다른 세상으로, 그러나 겹쳐진 세상으로 이동한 아오마메가 떠올랐고, 스미레와 뮤, 그리고 주인공의 삼각관계에서는 역시 상실의 시대의 관계들이 떠올랐다.  그 밖에서도 다른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하루키 특유의 고독, 허무, 왜곡된 시공간의 굴절 같은 것들이 습작된 흔적을 보았다. 

 

핀볼기계를 찾아 헤메는 주인공을 보면,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소중했던 그 무엇을 한번은 찾아보게 되는 우리를 보았고, 끝내 찾은 핀볼기계와의 짧은 조우 다음에 돌아서는 주인공을 보면서 역시 추억은 추억속에 간직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하면서 겉도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볼 때, 스푸트니크 - 인공위성 - 을 이 책을 제목에 넣은 것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같다.  이 밖에도 무엇인가 더 쓸 이야기가 있는데, 요즘은 slow한 사무실에 혼자 몇 일 앉아있다 보니 머리가 굳어버려 정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쓰여질 이야기라면 이 책들을 다시 읽을때 또 떠오를 테니 조급해 하지 않기로 했다.

 

어제 서점에서 구입한 Invisible Man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옛날에 나온 책 답게 책 주머니도 따로 있고, 종이 재질도 맘에 든다.  역시 모든 것인 마구 나오는 요즘보다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만들었던 예전의 것들이 더 오래 가는 것 같다.  책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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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6-20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작주의를 하다보면 등장인물이나 배경, 생각 등이 겹치는 걸 발견하게 되나봐요. 그럴 때 느껴지는 그 기분, 저는 좀 좋던데 트란님은 어떠셨어요?

사라진 스미레가 1Q34의 두 개의 달이 뜨는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 아오마메하고 비슷하군요.
스미레와 아오야마는 위 소설들 중 어디에서 나올지 궁금하네요. ㅎ 저도 빨랑 읽어봐야겠어요.

transient-guest 2012-06-21 00:5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30년 가까이 다른 시간대에 다르게 쓴 작품들을 한꺼번에 읽다보면, 작가도 모를 연속성이나 그 밖의 다른 흔적을 발견하게 되나봐요. 전작만하면 좀 지치니까, 다른 책들도 섞어서 읽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