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에 들쑥날쑥한 독서가 이어지고 있기에, 별로 리뷰라고 쓸만한 것도 없고, 글발도 영 아니어서, 간단하게 정리만 하였다. 아직도 본인의 멘붕상태가 이어지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정말이지, 책읽기를 권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정치계몽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언제가 되면, 인물보다는, 정당보다는, 계파보다는, 정책에, 그리고 그 사람의 살아온 삶과 기록에 비중을 둔 선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제대로 읽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다. 줄거리야 익히 알려진 만큼,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으련다. 단, 이번에 보니, 선악의 구도가 캐릭터로 분명하게 보였다는 것이 좀 다른 점? 타락으로 이끄는 사람과 선으로 이끄는 화가, 그리고 도리언 그레이의 행동, 각 분기점마다의 행동에서 그가 어떻게 점점 탐미주의를 가장한 악의 행각으로 빠져드는지를 볼 수 있다. 악행의 끝은 결국 자기의 파멸인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악한 영향을 주는, 악 그자체인 장군의 최후는 언급되지 않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장군은 악마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읽어보면 어떤 느낌일지 벌써 궁금하다. 적당한 때에 재독할 것이다.
연초에 제법 서점가를 달구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정작 나는 유행이 지난 최근에야 일독할 기회가 있었다. 내용은 볼만하다고 생각되는데, 제목이 그리 잘 지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 사회현상과 부조리를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설명하면서 풀어내는 것은 좋으나, 과연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는지를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글쎄~ 라는 대답을 할 것 같다.
보통 제목은 작가와 출판사가 협의하여 결정하는데, 특히 출판사에서 마케팅 차원의 강한 결정권이 있는 것으로 안다. 원제가 혹 다르지 않았을까?
내가 읽은 발자크의 네 번째 작품이 되겠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젊은이와 귀족 부인의 사랑.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사교계에 입문하고,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나부다. 즉 젊은이가 상대적으로 나이가 더 든 귀족부인에게 사랑을 약속하며 일종의 patron-client관계를 맺고, 이 부인의 추천과 도움으로 사교계에 소개되며, 신분과 배움이 있다면, 이후 다시 정계나 재계에 입문하게 되는 과정이다.
물론, 너무도 당연하게, 젊은이의 욕구적인 사랑은 다른 상대 - 그것도 또다른 귀족부인 - 에게 채워지고, 주인공 귀족부인과의 사랑은 플라토닉과 에로스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발자크는 평생 돈 많은 과부를 좋아했고, 실제로 몇 번인가 관계가 이루어져 큰 도움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런가? 작품마다 상당부분 그런 그의 경험이 엿보인다.
다른 책들도 슬슬 읽고는 있는데, 진도가 영 별로다. '마의 산'은 끝내 이번해를 넘길 것 같고. 금년에는 좀 slow down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