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을 참을 수가 없었던 얼마전, 알라딘의 적립금을 탈탈 털어서 산 세 권의 책들 중 하나였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드디어 읽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서야 내 손에 들어온 것.

 

 

 

 

 

 

 

 

 

 

요녀석들 중 하나.  읽으면서.  참으로 간단하고 직설적인 화법이라고 느끼면서 읽어내려갔는데, 읽는 내내 이것은 헤밍웨이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미국의 근현대문학이라고 하면 스타인벡 정도를 알고 있기에 헤밍웨이의 몇 작품들은 알았어도 정확한 시기를 알길은 없었다.  그런데, 책 후기에 보니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써, 마지막으로 문학적인 명예를 안겨준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냥 헤밍웨이의 비극적인 최후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고 하면 과장일까?  지친, 자연에 순응하는, 그러나 허공을 잡는듯한 노인의 고기잡이에서 나는 문득 말년의 피로를 느낀 것 같다.

 

어떻게 해석을 하더라도 비평가들의 관점과 비슷할 수도 없겠지만, 내가 처음으로 완독한 '노인과 바다'는 심하게 이야기하면, '죽음'과 '허무', 그리고 '고독'의 냄새가 너무 강했다.  그래서 헤밍웨이의 마지막 작품 - 그리고 그의 최후 - 가 읽는 내내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헤밍웨이의 다른 작품들은 좀더 힘이 넘치는데, 이는 젊은 시절 그의 기개, 무모함, 열정,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젊은 헤밍웨이는 그의 친구 - 이자 선배였던, 그 시절 이미 퇴락해가던 - 피츠제럴드를 혹평한 적이 있다는데, '노인과 바다'를 쓰던 무렵의 그는, 피츠제럴드를 떠올렸을까?

 

헤밍웨이의 다른 책들도 모두 읽어볼 것이라 결심하니, 전작대상의 작가는 또 하나가 늘었다.  그래도 김영하, 로맹 가리, 발자크는 이번에 조금 시작을 할 수 있으니 한 권씩, 하나씩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외상장부를 갚으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외상장부를 긋는 그야말로 단골술집에서 술에 취한 모주꾼같은 기분이 난다. 

 

헤밍웨이의 다른 책들은 좀더 힘이 넘치는데, 이것은 그의 질풍노도의 시기와도 관련이 있다.

 

 

 

 

 

 

 

 

 

 

 

 

 

 

 

 

 

 

 

 

 

 

 

 

 

 

 

 

 

 

'많이도 쓰셨구랴. 언젠가는 한 권, 한 권씩 읽어내려가면서 젊고 거침없던, 정열적이던 당신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내 당신을, 아니 세계대전 전의 황금시대를 생각하면서 사놓은 압생트로 리큐르를 한 잔 만들어 놓고 당신을 만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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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09-0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막 느낀건데 이 작가 책제목을 참 근사하게 짓네요. 생긴 외모도 '작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제일 걸맞고.

transient-guest 2012-09-06 01:15   좋아요 0 | URL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는 매우 정열적인 삶을 살았지요. 세계대전에도 참전하고,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산에 오르고, 여자관계도 화려하고, 술과 파티를 즐긴 전형적인 그 시대의 문인이었다고 할까요? 그 덕에 말년에는 병도 생기고 몸이 많이 안 좋았더랬어요. 완전연소같은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우연한 기회에 한 podcast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구본형 스타일의 강의를 하는 '행복한 거북이' 이희석의 블로그에 간만에 들렸다가, 김영하라는 작가의 podcast가 책을 읽어주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reference를 본 것이다. 나중에 보니, 김영하 작가는 꽤 유명한 사람이고, 한예종에서 가르치기도 했으며, 수 년전 한 방송작가의 요절 때의 발언으로 살짝 논쟁의 중심에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소설과 산문집 등으로 9권 이상의 책이 그의 이름으로 나왔는데, 이 podcast는 꽤 훌륭하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유명 작가의 입을 빌어서 듣는 것도 즐겁지만, 그 이상으로 좋은 것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책이나 작가에 대한 소개를 받게 되는 부분인데, 역시 독서라는 것, 탐서라는 행위, 이런 것들은 모두 무궁무진한 깊이와 넓이가 있어서 한 개인이 그 세계를 전부 돌아다닐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이렇데 타인의 관점을 통해서 새로운 미지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독서지평을 넓혀가는데 있어 필수가 아닌가 싶다. 내친김에 김영하 작가의 책을 보관함에 담아두었다. 기회가 되면 (이라 쓰고, 수입이 늘어나면 이라고 읽는다) 모두 구해서 보려고 한다. 좋은 podcast에 대한 보답도 보답이려니와, 지금 뉴욕에 있는 것 같은데, 이쪽에 오면 좋은 서점들로 안내하여 드리고 싶어졌기에, 그리고 아직은 비교적 젊은 편이고, 책도 많이 나오지 않은 편이기에 전작을 비교적 쉽게 시도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했기 때문이다.

 

 

 

 

 

 

 

 

 

 

 

 

 

 

고전과 문학은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를 넘어 살아남은 책으로써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현대문학을 등한시 하는 것, 또 소설로 치부해서 가리는 것은 좋은 독서행위가 아니라고 본다. 인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배우지만, 과거에서 살 수 없고, 미래를 보면서 현재를 본다지만, 미래만을 바라보며 살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사는 곳은 바로 이 현재이기 때문에, 지금을 보여주는, 지금 우리 시대에 produce되는 글 또한 읽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현대문학과 소설에서 자꾸만 멀어지게 되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이런 podcast를 통해서 김영하라는 작가 자신과 김영하가 언급하는 정이현 작가에 대한 소개를 받은 것은 매우 중요한 하나의 사.건.이 된다.  이 podcast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그 둘, 아니 그 이상의 많은 책과 작가들은 나라는, 적어도 내 세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앞으로 나의 의식세계와 무의식이 mold되는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씩 하나씩. 성공학에 대한, 투자에 대한 책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런 한국의 현대소설과 세계의 책들 - 나의 attention을 지나쳐가는 수많은 그들 - 에 대한 intro가 필요하다.  하물며, 그 길잡이가 김영하 작가같은 사람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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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08-24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는 저도 참 좋아하는 작가랍니다. 소설 말고 '굴비낚시'같은 책도 재미있어요.

transient-guest 2012-08-24 13:1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다 읽어보고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의 현대문학 작가들, 아니 '현재'문학작가들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네요. 또 하나의 좋은 starting point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댈러웨이 2012-08-2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란님, 제가 쓰고 싶었던 말이 이 페이퍼 안에 다 있어서 정말 반갑네요. 저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집 한 권만 읽어 보고는 '속단'을 내린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팟캐스트 듣기 시작하면서 이 분 팬이 됐다는. <희박한 공기 속으로>도 어찌나 소개가 좋던지 바로 책 구입해서 읽었을 정도에요.

여름 괴담 이후 또 뭘 올리실까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 바쁘신 것 같기도 해요. 혹시 서점 안내하시게 되면(정말 그러실 수 있는 거에요? 와!), 제 사인본도 어떻게 한 권... =333

transient-guest 2012-08-25 01:04   좋아요 0 | URL
great한 mind는 통하는 것인가 싶네요..ㅋㅋ 고전을 읽다가 현대소설을 읽으면 그야말로 '속단'하게 되는 경우가 있죠, 개인적인 경험입니다만. 저는 이분의 독서론도 좋고, 이렇게 한권 한권 책을 소개해주는 것도 좋네요.
podcast듣고 너무 좋아서 이분께 팬멜을 보냈는데, 답이 없네요 0-0ㅋ 만약 이쪽으로 오시면서 연락 주시면 얼마나 좋겠어요. 사인본 여러 개 받아놀께요.ㅋ
 

네 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어제까지해서 약 4-5일간에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내 평소의 속도보다는 좀 늦은 편이었지만, 최근에는 또 책읽기가 힘든 때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용을 좀더 집중해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읽고 난 지금에도 역시 무엇인가의 의미를 찾기에는 너무 버겁다.  하루키의 소설 전반에서 보여지는 왜곡, 뒤틀림, 섹스 이런 주제들은 이제 익숙하지만서도, 평론가나 역자들이 주렁주렁 달아놓은 후기에서 언급되는 그 수많은 의미들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그래서 한번 생각을 했다.  혹시 정작 하루키는 말 그대로, 표현 그대로의 판타지를 썼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단계에서 reader와 평론가들에 의해 '왜곡'되어, 무엇인가 깊고 큰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만약에라도 그렇다면, 그는 큰 웃음을 감추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 있을때마다 ㅋㅋ 거리면서 주체되지 않는 웃음을 한껏 터뜨리면서 입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 없을 것이고, 그때마다 또 다른 작품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또 하나의 책이 발표되면 문단에서는 또다시 오! 무라카미 사마! 하며 찬사를 이어가고, 또다시 잃어버린 시대니, 자아니, 아버지상이니, 상실이니 하면서 써내려가는 것이다. 

 

만약, 정말이지 만약에 그런 것이라면, 작품 전반에서 보여지는 지난 작품이나 주제의 expansion이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나의 망상에 의한 것이겠고, 하루키의 작품에는 실제로 작가가 경험하고 생각한 그 무엇들이 시공간의 왜곡, 인간관계, 내면, 대화 이런 것들을 통해 우러나오고 있다.  그러니 웃고 말자, 내가 한 말은.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한 중년 남자, 그의 아내, 그리고 옆집 십대소녀, 시공간의 굴절과 왜곡, 꿈의 세계와 현실세계의 mixing, 그리고 내면과 외면의 mix-up이 스토리를 끌어가고 있다.  물론 실상은 그런 것들보다 더 깊고 심오하겠지만, 나의 원시적인 두뇌는 그런 것들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인가 감은 잡고 있지만, 한번에 그런 것들을 짚어낸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훗날 또 읽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때에는 좀더 다른 리뷰를 쓸 수 있을 것 또한 분명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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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08-17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하루키의 소설은 여전히 잘 안친해져요. 에세이는 늘 잘 읽히는데. 소설을 억지로 지루해하며 끝까지 읽다가도 과연 작가가 하루키 아니라 무명 작가였어도 내가 이렇게 마지막까지 들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하죠.

transient-guest 2012-08-18 06:17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특히 비슷한 테마가 repeat될때는 더욱요. 하루키라는게 중요한거죠. 피카소나 칸딘스키, 달리같은 화가의 그림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네요.ㅋ

글샘 2012-08-1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년 남자가 걸어가서 늘 판타지와 만나는... 그런 골목을 쓰고 싶었겠죠.
거기는 고양이도 있을 테고... 어쩌다보면 학교 안 가는 소녀도 만날 수 있을 테고...
맨날 출근하는 사람이 돌아다니고 싶은 한가한 햇살밝은 골목 말이죠.

transient-guest 2012-08-18 06:18   좋아요 0 | URL
오! 멋진말씀. 저도 그런 골목이 하나 있었으면 합니다.ㅋㅋ
 

조용헌이라는 에세이스트 또는 generalist의 저작들을 여러 개 읽어 보았다.  최초의 인연은 '조용헌의 고수기행'이라는 책이었는데, 당시 무술계나 도판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 그리고 태동하던 종합격투기에 대한 책들을 두루 섭렵하던 나는 '고수기행'이라는 제목 - 사실 조용헌은 그전부터 원래 유명한 저술가였지만 - 만 보고 덜컥 사들였던 물건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후로, 조용헌의 특이한 주제와 사상, 세계관, 특히 동양, 아니 한국적인 것을 찾는 그의 글에서 매력을 느끼고 닥치는대로 그가 쓴 책을 긁어 모아 읽어나갔다.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는 주제에 대한 글을 그야말로 '강호'스럽게, 그러나 불교학 박사이면서 대학교 훈장이라는 신분답게 학술적으로도 빠지지 않는 그의 글은 언제 읽어도 즐겁다.  많은 분들이 이미 그를 접한 바 있겠지만, 나름대로 좋은 글선생이라 여겨 그의 책을 소개하고 싶다.

 한병철 박사의 '고수를 찾아서'와 혼동하여 그와 같은 내용일 것이라 생각하고 산, 첫 조용헌의 책이다.  다양한 분야의, 그러나 제도권을 벗어난, 여러 고수들의 인생을 소개한 글이다.  이런 우연이 있기에 책을 읽는것은 언제나 즐다.

 

책을 사들이는 행위역시 기연을 만날 확률을 높여준다.  요즘같은 세상에 스승이나 동류, 또는 이런 저런 강호의 인사들을 나같은 범인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이런 기연밖에는 없는것 같다.

 

 

 

 

 

 

 

 

 

 

 

 

 

 

 

 

 

 

 

 

 

 

 

 

 

 

 

 

 

 

 

 

 

 

 

 

 

 

 

 

 

 

페이퍼를 위해 그의 책을 찾던 중 더 많은 책이 나와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 이 페이퍼도 어떻게 보면 현재진행형인 셈.

 

조희봉님이 이윤기선생을 전작하고 모신 것처럼, 나는 조용헌선생을 전작하고 모시고 싶어진다.  강단의 학자이면서, 강호의 학문을 논하고, 기인을 만나는 그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역시 앞서 말한 기연.  나름대로 유명한 그의 책들을 거의 다 읽었노라고 생각했건만, 더 많은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이다.  해서, 나는 오늘도 책을 사들이고, 쟁여 놓는다.

 

행여 인류의 종말이 온다면, 아니 북두신권 같은 세상이 온다면, 나의 의무는 나의 책들을 무사히 후대로 넘기는 일이 될게다.  지식과 지혜를 온전히 후세에 넘겨주는 그런 일 말이다.  조용헌.  참으로 담백하고 재미있는 책을 많이도 써왔음에 감사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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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6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조용헌이란 사람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고수기행'은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고수'라는 주제에 관심..) 아직 한 번 들춰보지도 못했거든요. 기회되면 어느 책이든 읽어봐야겠습니다. (오, 사주명리학까지 있네요.^^)

transient-guest 2012-08-07 01:18   좋아요 0 | URL
조용헌님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쓰는데,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라면 '우리'것, '전통'적인 것, 그리고 '비주류'로서, 강호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나 분야의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흥미가는 책이 참 많아요.

안시 2012-08-1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를 계기로 올 여름 조용헌 선생님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본 사람중 한명입니다. 너무 마음에 진실되게 와닿고 때론 웃고 때론 마음 찡하면서, 다른 점 있다면 저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서 봤다는 것 이네요. 위책 중에 거의 다 본것 같고 이것 외에 동양학강의, 조용헌의 소설 각각 1, 2로 나와 있어요. 저도 이제 이사 하면 책을 슬슬 직접 사서 장만을 할가 봅니다. 그리고 사찰기행을 들고 사찰 순례도 하고 싶구요. ^^ 동지를 만난 느낌? 이어서 한자 남깁니다.

transient-guest 2012-08-15 01:1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조용헌님의 책은 일반인이 접근하기에 난해할 수도 있는, 또는 쉽게 깊이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 같아요. 그런것을 보면서 이분은 내공이 대단한 분이구나 싶구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짚어 따라나가는 것만큼 좋은건 없다고 하는데, 부럽습니다. 사찰기행 잘 하시기를.
 

리뷰라고 감히 쓸 수 있을까? 조희봉님은 나에게 '전작주의'라는 것을,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또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었을) 특정 작가읽기를 '전작주의'라는 표현으로 define한 사람이다. 이전까지 이런 말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나의 행위에 대한 defining 또한 할 수 없었었다.

 

 

내 전작주의의 시작은 누구부터였나 돌이켜보니 - 중간 중간에 다른 답을 쓴 기억도 있지만 - 중국의 무협소설작가인 김용이 아니었던가 싶다.

 

지금도 고이 간직한 김용의 모든 작품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데, 벽혈검만 빼놓고 다 가지고 있는것으로 안다.

 

 

 

 

1. 소설 영웅문 1부 - 대막영웅전 (원제: 사조영웅전)

2. 소설 영웅문 2부 - 신조협려 (원제: 신조협려)

3. 소설 영웅문 3부 - 의천도룡기 (원제: 의천도룡기)

4. 대륙의 별 (원제: 천룡팔부)

5. 아! 만리성 (원제: 소호강호)

6. 협객행

7. 비호외전

8. 소설 청향비 (원제: 서검은구록)

9. 설산객 (원제: 설산비호)

10. 연성결

11. 소설 녹정기

12. 벡마소서풍

13. 원앙도

 

 

 

 

 

 

 

 

 

 

 

이들은 모두 중학생 시절에 사 모은 것인데, 밥값을 꼬박 아껴 일주일에 한 권씩 힘겹게 사들이기도 했었고, 어쩔 때에는 토요일 반수업 후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나면, 버스표가 없어, 2-3 km정도의 길을 집까지 걸어올때도 많았었다. 그렇게 모은 작품들이니만큼, 나는 이 책들의 내용뿐만 아니라, 책 상태도 속속들이 다 알고있다.

 

 

조희봉님의 책을 읽으니 이런 행위가 전작주의였고, 책수집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니, 나는 대략 중학교때부터 이 방면으로는 될성싶은 놈이었던 것 같다.

 

 '전작주의자의 꿈'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다소 건성으로 넘긴 기억이 난다. 한국의 책쟁이들이라는 글 - 나중에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 에서 소개된 그의 일화 - 특히 이윤기라는 유명 작가/번역가를 전작하여 주례로 모시고 (일면식도 없던 주제에), 제자 1호가 된 - 에 반해 사들였었는데, 그 때의 나에게는 다소 dry하게 느껴지는 글이었다.  (사실 돌아가신 이윤기 선생의 책도 아직 나에게는 좀 낯설다.  물론 그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재미있게 보았지만서도).

 

 

우연히 2-3일전엔가, 이 책, 저 책 사이를 기웃거리다가, 집어든 이 책의 내용은, 세월이 지나서일까, 다르게 다가왔다. 조희봉님의 말마따나 "그건 아마도 책은 늘 자리에 있지만 책을 읽는 사람의 내면이 변해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책의 특성 때문일게다.

 

 

이 책에는 한 탐서주의자, 책수집가, 헌책방 마니아, 그리고 전작주의자가 책을 통해서 살아온 지난 이야기들이 하나씩 둘씩 담겨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기에, 수줍지만, 가식없는 그야말로 당당하고 떳떳한 책이라고 느낀다. 저자가 말하는 헌책방의 법칙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졸속한 리뷰를 마친다. ()속의 글은 내 말이다.

 

 

1. 한번 헌책방에 나온 책은 반드시 다시 나온다 (그러니 조급해 하지 말자).

2. 아무리 작고 초라해 보이는 동네 헌책방이라도 자기만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 (국민대에서 교환학생으로 여름 연수를 하던 2002년, 근처 먹자골목 한켠의 초라한 문방구 겸 참고서 서점에서 의외의 보물을 건졌으니, 어릴 때 읽었던 에릭 시걸의 닥터스 1과 2였다)

 

여담이지만 이 책에 대한 추억은 라디오 - 당시만해도 매우 활발하였던 수많은 밤의 라디오 방송들 - 에 있다.  정체모를 가슴설렘으로 가득하던 그 시절 이문세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리고 진행자가 생각나지 않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 그리고 12시에 하던 다른 방송을 듣고 있으면 어김없이 책광고가 나왔었다 (그렇다! 책을 라디오로 광고할만큼 출판업과 서점이 잘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서점이 잘 운영되어 건물을 올리던 분도 계셨던 정도로 말이다).  그때 기억나는 책은 '빠빠라기' '배꼽', 그리고 문제의 '닥터스'인데, '닥터스'는 특히 '러브스토리의 작가 에릭 시걸의 닥터스! 하버드 의대생들의 우정과 사랑! 포르말린은 그들의 향수! 수술실은 그들의 xxx (생각이 나지 않는다)'의 선전문구가 이 책에 얽힌 추억담이다.  지금은 다시 나오는 것 같은데, 당시 절판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 열심히 찾아다닐 때는 귀하기만해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책이 마침내 그 책을 찾아내거나 포기하고 새책을 사고 난 후부터는 발에 채일 것처럼 많이 보인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옛말은 진리인거시다).

4. 늘 살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두고 갔던 책은 사기로 마음먹고 다시 찾아가면 그 자리에 없다 (logos에서 실제로 경험했다.  2차대전 기간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시기의 토마스 만의 대독일 라디오 방송을 모아놓은 책인데, 망설이다가 다음에 사야지하고 내려놓은 뒤, 2-3일 후 왔더니 누군가 사갔다.  이런 책을 나 아니면 누가 사겠어 하는 방심은 금물이다).

5. 좋은 책은 늘 비싸고 불친절한 책방에 있다 (이건 아직 모르겠다. 책을 살때 값 흥정을 하지 않기에 특별한 불친절을 경험한 적이 없다.  이건 정가제에 익숙한 탓이기도 할게다).

 

이로써, 전작주의뿐 아니라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탐서행각에 대한 변명, 아니 나아가서는 이 행위에 대한 당위성과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열독가가 실용주의자라면 수집가는 낭만주의자이다...수집가는 책의 다양한 효용가치를 좋아하고 책 그 자체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책에서 얻은 지식이나 문자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삶 그 자체로서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책은 그들에게 읽어야 할 대상일 뿐만 아니라 늘 곁에 두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친구인 셈이다."

 

PS 옥의 매우 작은 티.  Harry Potter의 작가인 JK Rowling을 Rolling으로 써놨는데, 저자의 오류라면 excusable하지만, 편집시 이를 발견하지 못한 출판사의 negligence라면 봐주고 싶지 않다.  Rolling?  굴리긴 뭘 굴린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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