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이올린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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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꿈꾸며 생()의 관성 넘어서기

- 검은 바이올린




 

검은색은 흔히 죽음과 애도의 색으로 여겨진다. 문명의 관습으로 장례식 때 검은 옷을 입기도 한다. 이에 검은색은 필멸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여 존재의 부재혹은 결핍의 의미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자연에서 모든 빛을 흡수해버리는 블랙홀처럼, 검은색은 색채의 무, 나아가 대상의 식별불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의 결여와 무지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로 검은색은 신비스러움과 매혹을 품고 있기도 하다.


 

색채를 키워드로 하여 전개되는 막상스 페르민의 소설 검은 바이올린에는 이야기 곳곳에 검은색이 등장한다. 검은 머리와 눈동자, 검은망토나 검은 흙, 검은 암말과 검은 여왕, 그리고 검은 바이올린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주로 18세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파리 출신의 천재 바이올린 연주자 요하네스 카렐스키와 크레모나 출신의 바이올린 제작 명인 에라스무스는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운명적으로 만난다. 요하네스가 군대에 징집되어 이탈리아 원정에 참전했기 때문이다. 전투 중 큰 부상을 입은 요하네스는 몇 달간 회복기간을 거친 후, 마침내 베네치아에 입성한다. 이 때 어느 민가에 6개월 간 머물게 되는데, 이 집의 주인이 바로 에라스무스였다.


 

소설은 총3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1부와 3부는 요하네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반면, 2부에서는 주로 에라스무스가 자신의 과거사를 들려준다. 에라스무스는 세 가지 열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우선 바이올린 제작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어린 시절 음악과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고 결국 베네치아 최고의 바이올린 장인이 되었다. 두 번째 열정은 증류주 제조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독특한 증류주를 제조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번도 장기에서 진 적이 없을 정도로 장기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이 가운데 요하네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에라스무스의 집 벽에 걸려 있던 검은 바이올린뿐이었다.


 

에라스무스가 검은 바이올린을 만들게 된 것, 크레모나 출신의 바이올린 제작 장인이 베네치아에 살게 된 이유, 또 평생 장기두기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 까닭은 모두 한 여인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베네치아에 있는 페렌치 공작의 딸 카를라였다. 젊은 시절 신분 차이 때문에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눈이 먼 에라스무스는 무모한 내기를 하기에 이른다. 카를라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바이올린을 제작하겠노라 맹세했던 것이다. 검은 바이올린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신비함과 매혹을 지닌 이 악기는 불행도 가져왔다. 악기가 카를라의 목소리를 소유하게 되자, 에라스무스가 사랑한 여인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게 되었던 것이다.



 

검은색은 언제든 돌아온다


 

소설 중반에 이르면 30대의 청년 요하네스가 에라스무스에게 고민을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밤에 작곡한 노트가 다음 날이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삶을 경험하고 노년에 이른 에라스무스는 청년의 고뇌를 알아차리고는 삶을 재미있게 만드는 법이라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영혼은 자신의 꿈을 갖고 있기에 네 안에서 꿈을 찾아보라고 말이다. ‘청년의 열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에라스무스가 이렇게 화답한 것이다. 이때 요하네스의 눈에 들어온 검은 바이올린은 여전히 자신의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검은색은 곧 인식의 구멍, 미지의 영역이었다. 청년은 꿈이 현실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물었을 때, 노인의 대답은 간결했다. “꿈을 부숴야겠지.”(75)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고자 했던 한 사람과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고자 했던 사람. 두 사람이 검은바이올린을 두고 나누던 대화는 어떤 의미였을까? 내게 검은 바이올린은 열망이 지나쳐 집착하게 된 꿈처럼 여겨진다. 나는 이를 검은 욕망이라 이름 붙였다. ‘검은 바이올린은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끊임없이 존재를 소모해버리는 욕망을 표상한다. 대상 혹은 대상에 대한 지배권을 소유하길 바라는 욕망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꿈이 현실이 되거나, 이루지 못할 꿈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은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급속히 늙어가기도 할 것이다. 베네치아의 페렌치 공작처럼 말이다. 그는 말년에 딸 카를라와 좋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 같다. 공작이 순식간에 늙고 병들어 보였던이유도 그가 끊임없이 일에 매몰되어 스스로 소진된 삶을 살아갔기 때문일 테다. 그는 언제나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했다. 에라스무스는 이 때가 바로 꿈을 부술 때라고 내게 말해주는 듯싶었다.

 


그렇다면 꿈을 부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소설은 내게 두 가지를 일러준다. 하나는 검은 욕망이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이를 부순 이들이라면 또다시 꿈을 꾸라는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꿈이 현실이 되거나 꿈을 부술 때 존재가 해방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때 해방의 과정은 존재에게 절망과 허무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에라스무스의 스승 프란체스코처럼 말이다. 프란체스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전설적인 명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아들이었다. 이미 최고 수준의 바이올린 제작 기술을 지녔지만, 아버지의 명성에 가려 슬픔과 고통으로 생의 나날을 보냈다. 정작 바이올린 제작은 도제들에게 맡기고 말이다. 이 때가 바로 프란체스코가 아버지의 바이올린을 부수고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할 때였다.


 

인간의 삶은 존재가 품은 열정만으로 완성되긴 어렵다. 열정은 외부에서 주어진 자극에 대한 수동적인 반응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꿈에 이르는 길이 고통스러워도 집착으로 변질된 열정 때문에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매우 어렵기도 하다. ‘검은 욕망은 삶의 과정에서 언제든 돌아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꿈을 부수고 또다시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일이다. 끊임없이 꿈을 꾸며 생()의 관성을 극복해나가는 것. 이것이 에라스무스가 내게 귀띔해준 지혜다.



 

삶의 정수는 사랑과 밤의 시간을 필요로한다

 


바이올린 장인 에라스무스의 집은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불편한 곳이었지만, 가장 잘 단련된 영혼의 집이기도 했다(54). 집주인은 이 영혼의 집에서 오래도록 자신의 세 가지 열정, 곧 바이올린 제작, 증류주 제조, 장기 두기에 취한 듯 살았다. 요하네스는 이 영혼의 집에서 검은 바이올린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증류주 만드는 일이 재미있는지 물었다. 집 주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요하네스의 질문에 무심한 듯 화답하는 장인의 말이었다.


 

한 방울 증류주를 얻으려면 사랑과 시간이 필요하다네.”(57)

 

그러자 요하네스가 다시 물었다. “많이 필요한가요, 사랑과 시간이?”(58)


 

사랑과 시간이 꿈을 부순 사람에게 필요한 두 번째 요소일 것이다. 삶은 욕망과 결핍그리고 때론 욕망이 지나쳐 광기의 형태로 이들이 혼재한 모양새를 띠곤 한다. 비단 소설에 등장하는 두 천재를 떠올리지 않아도 말이다.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던 검은 욕망은 불현 듯 삶에 뛰어들어 우리를 유혹한다. 에라스무스가 자신의 세 가지 열정을 제대로실현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어느 정도 미쳐야 했다. 그는 54년 동안 매일 저녁 상상의 맞수와 장기를 두었다. 삶의 굴곡을 지나 온 장인에게 한 방울의 증류주란 삶이 일구어낸 정수에 다름 아니었다. 여기에는 젊은 날의 검은 욕망과 광기, 고통과 절망, 허무도 한 방울씩 들었을 테다. 그러니 에라스무스가 한 방울의 증류주를 얻기 까지는 그만큼의 사랑과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젊은 바이올린 연주자가 그럼 도대체 얼마만큼의 사랑과 시간이 필요한지묻자, 바이올린 장인은 이렇게 응답했다.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안 되지. 해마다 다르다네.”(58) 에라스무스는 대상에 대한 사랑과 시간에는 적절한 거리감 혹은 균형감도 필요함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 삶이 지닌 모습도 그렇다. 결핍을 전제한 욕망과 이것이 넘쳐난 광기가 이루는 긴장은 언젠가 해소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꿈들을 꾸고 살아가는데, 으레 꿈에는 한계가 없고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 꿈이 현실이 되면 존재가 해방될 것이라고 말한 이는 에라스무스였다.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이 때는 우리 안의 검은 욕망과 광기가 만들어낸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일 것이다. 해방과 허용의 시간은 모든 이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 할 수 있는 밤의 시간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 시간은 꿈이 현실이 되어 돌아오는 허무감이나 꿈이 부서질 때 찾아오는 절망감, 그리고 이 때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시간일 것이다. ‘한 방울의 증류주를 얻는 데 오랜 시간의 인내와 정성이 필요하듯, 우리는 욕망으로 인한 영혼의 긴장이 해소되고 해방이 되는 밤의 시간도 필요하다.


 

모든 이가 해방감을 공유할 수 있는 밤의 시간은 베네치아의 사육제에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 기간에 가면과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참여한다. 축제의 기간 동안은 신분과 계급이 식별불가능하게 무화된다. 삶에서 생겨난 꿈 또는 검은 욕망이 광기와 뒤섞이는, 거대한 밤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 시간은 견고하고 모든 것이 드러난 에 입은 상처와 고통을 보듬고 견디는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베네치아의 사육제는 공동체의 긴장을 완화하고 경직된 욕망을 해방시키는 시공간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저자는 검은색이 부재와 결핍, 불확실성과 식별불가능성, 불길함과 두려움을 가져다주면서 신비함과 매혹의 힘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처럼 검은색은 이야기 전반에 등장하며 소설의 지배적인 정서와 주제에 스며들어 있다. 에라스무스가 전하는 그의 인생 이야기는, 진정한 삶이란 눈에 보이는 꿈 혹은 목표의 성취나 대상의 소유에 있기보다 이 꿈들 사이에 머물 때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구멍처럼인식되지 않는 이 사이의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꿈을 꿀 수 있는 밤의 시간일 테다. 나아가 사이의 시간은 나와 대상을 진심으로 긍정하고 바라보며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이 때 우리는 삶의 슬픔이나 고통도 견뎌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이의 시간, 모든 존재가 생의 관성을 극복하고 살아가고자 지속할 수 있는 힘, 사랑의 시간이 되어 준다. 우리가 삶에서 꿈꾸기를 멈추지 말아야할 이유다




[1] "꼬마야, 너의 열중하던 눈빛이 내게 가장 많은 것을 주었단다."(15)

"매일 조금씩 더 바다로 가라앉는 베네치아. 그 고요한 뗏목에는 음악적 영혼들이 많았다."(49)

[2] "한 방울 좋은 증류주를 얻으려면 사랑과 시간이 필요하다네."(57)

"많이 필요한가요, 사랑과 시간이?"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안 되지. 해마다 다르다네. 자, 장군일세!"(58)

[3] "맛보게, 요하네스! 첫 모금은 불이지! 두 번째는 비로드같네! 세 번째 모금은 꿈이라네!"(58)

[4] "장기를 제대로 두려면 약간 미쳐야 하네. (...) 광기를 요구하는 유일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지."(59)

"자네가 나처럼 54년 동안 매일 밤 상상의 맞수와 장기를 둔다면 그렇게 되겠지."(59)

[5] "너의 오페라 말이야, 쓰기 전에, 살아야해."(73)

[6] "꿈에서 아름다운 것들이 현실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꿈을 부숴야겠지."(74)

[7] "알다시피, 천재들의 그 영혼과 광인들의 그 영혼은 거의 같은 것이지."(86)

"매일 밤 같은 꿈이 잠 속으로 돌아오곤 했어."(99)

[8] "한 마디로 베네치아는 꿈과 광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벌이는 거대한 무대였지."(112)

"인생은 연극이야. 단 한 번 공연하는."(127)

[9] "카를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만들겠어요. 오직 당신만을 위해. 내가 당신 목소리를 소유하겠어요."(138)

[10] "자신의 일생의 작품이 불길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됐어. (...) 이제 이야기와 결별했다."(159)

[11]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천재나 광인에게만 더해지는 영혼을, 자신의 오페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그날 밤, 요하네스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죽었다."(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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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2-20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축하합니다.^^

초란공 2023-02-20 20:19   좋아요 1 | URL
저보다 먼저 아셨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인섹타겟돈 - 곤충이 사라진 세계, 지구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까
올리버 밀먼 지음, 황선영 옮김 / 블랙피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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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마저 사라진 실낙원을 상상하며

- 인섹타겟돈(The Insect Crisis)


올리버 밀먼(Oliver Milman) 지음 | [블랙피쉬] | (2022)

 



많은 사람들처럼 봄에 연초록 잎과 함께 피어나는 꽃을 좋아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각별한 기억이 있는 꽃은 아카시아 꽃이다. 입영 통지서를 받고 훈련소에 갔던 때가 5월이었다. 부대 담장을 둘러싸고 흐드러지게 피어 흩날리던 아카시아 꽃과 진한 향기를 아직도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의 사랑과 아카시아 향기는 멋모르고 시작했던 훈련소 생활을 견디게 하고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기억과 함께 맡던 아카시아 향기의 기억이 한낱 과거 속 사건으로 영원히 끝나게 된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일까? 당장 변해버린 현실을 상상해내기란 어렵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이 상상이, 정말로 현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 두렵다. 언젠가부터 규모는 작지만 양봉을 하시던 친척의 벌집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꿀벌의 군집이 겨우내 모두 죽어버리거나 벌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꿀벌의 이상 행동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피부로 실감한 것은 바로 친척이 관리하던 벌집 소식이었다. 그러던 중에 지난 달 신문기사를 보고 그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짐작할 수 있었다.


(기사 관련 주소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212270936001#)


 

이 기사는 지방의 한 지역에서 꿀벌 대량 폐사 및 실종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꿀벌에게 먹이를 공급할 수 있는 숲을 축구장 4700개 면적에 조성한다는 계획을 소개하고 있었다. 물론 꿀벌이 대량으로 죽거나 사라지는 사례는 최근 1-2년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카시아 향기와 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카시아 꿀을 구하는 일이 예전만큼 쉽지 않게 되어버린 변화를 조심스럽게 감지하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걸까? 미디어에서는 전자파의 피해라고 하기도 했다. 또 어느 곳에서는 기후 온난화를 주범으로 들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너무나 흔해보였던 꿀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유가 정말로 궁금했다. 특히 최근에 환경과 인간의 운명에 관한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책 여섯 번째 대멸종을 읽은 후여서 그런지 이 현상은 내게 더욱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다.


 

이런 위기감 속에서 손에 쥐게 된 책이 바로 인섹타겟돈이다. 이 책은 환경 전문 기자 올리버 밀먼이 곤충이 사라지는 현장과 관련 연구자들을 만나 기록한 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인섹타겟돈이란 용어는 곤충을 가리키는 인섹트insect'대량 멸종을 시사하는 아마겟돈amageddon’이 더해진 표현이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곤충의 집단 폐사 혹은 소멸 현상을 가리킨다. 과연 곤충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인류가 유입되기만 하면 대형 동물이 사라져버린 사실을 떠올려보면 짐작이 가는 원인 제공자는 있다. 바로 인간 자신이다.


 

그동안 곤충은 작고 미약하면서도 너무나 개체수가 많기에 큰 우려를 자아내지 못했다. 이에 비해 환경 위기를 알리는 대표적 동물인 고래, 북극곰과 같이 카리스마 있는 대형 동물은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적으로 언급되던 존재였다. 수십 억 마리로 추정될 정도로 많았던 북아메리카의 나그네 비둘기가 수십 년 만에 멸종했던 역사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이 땅에서 사라지는 데에는 인간의 수명으로 한 두세대면 가능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까지 이야기하던 파리나 모기마저도 지구 위의 생태계에서 각자 나름의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저자는 여러 연구자들과 그 결과물을 빌어 일깨워 준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관심사였던 꿀벌의 운명에 대한 정보도 더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현재 전 세계에서 대규모로 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미 미국 전역에서는 4종의 호박벌(bumblebee) 96%가 감소했다고 한다(57). 그럼 과학자들은 꿀벌들의 대량 폐사 원인이 무엇이라고 지목하고 있을까. 자연 생태계는 그 구성원들의 선형적 관계망이 결코 아니다.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는 결코 파악할 수 없을 만큼의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유지되는 영역이다. 그 원인을 한 가지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기후 변화와 서식지 파괴, 그리고 무분별한 살충제의 사용을 들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거대 제약회사 바이엘이 인수한 몬산토는 라운드업 RoundUp'이라는 제초제로 유명한 기업인데, 전 세계에 이 화학약품을 공급했다. 이 약품의 주요 성분은 글리포세이트인데, 연구에 의하면 벌의 장내 박테리아를 방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꿀벌이 걸릴 수 있는 노제마(장내 기생충)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벌을 비롯한 곤충을 집적 겨냥한 살충제 역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현재 가장 효과가 좋은 살충제 성분은 니코틴과 유사한 새로운 살충제’(168)라는 의미를 지닌 네오니코노이드. 이 약품은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이 만든 제품으로, 지난 30여 년 간 전 세계에 뿌려졌다고 한다. 이 약품의 위험성은 레이철 카슨의 저서 침묵의 봄으로 사용 금지된 살충제 DDT보다 7000배 더 해롭다.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것도 큰 문제다. 유충일 때 이 약품에 노출된 벌은 학습과 기억을 관장하는 뇌 영역이 비정상적으로 쪼그라든 벌이 된다고 한다. 화학물질 때문에 영구적인 뇌손상을 입었다는 말이다. 그 결과는 꿀벌의 먹이 활동에 실패하고, 그 결과 꿀벌 집단은 치명적인 운명 앞에 놓이게 된다.


 

물론 이런 상황은 꿀벌에게만 해당하는 현상은 아니다. 이처럼 우리가 해충이라고 분류한 곤충뿐만 아니라 꿀벌, 그리고 나비, 딱정벌레를 비롯하여 결국 우리 인간에게로 돌아와 그 영향이 미치게 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나비가 대량으로 사라졌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쇠똥구리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생명력 강하다고 알려진 잠자리마저 핀란드에서는 사라졌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대형동물뿐만 아니라 이 작고 미약한 곤충들에게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걸까? 이 와중에도 살충제를 제조하여 판매하는 회사들은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 약품을 꼭 사용해야 한다고 홍보한다.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의 위험한 이기심이 인류의 운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들은 정치권에 로비를 벌이고, 제초제와 암과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려는 과학자들을 비난하며 이들의 결과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심지어 직장에서 쫓아내며 방해하기도 한다. 생물학 교수 데이브 굴슨이 이런 인간의 모습을 보고 인간이 같은 실수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187)라고 말하지만, 이는 분명히 실수가 아니다. 이들의 위험한 행보와 일반인들의 무지는 결코 실수가 아닌 것이다. 앞으로 더 이상의 실수가 반복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 인류에게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있을까. 이제는 우리가 생태계에 저지른 잘못을 만회할 기회가 남아있기나 한지조차 의문스럽다.


 

이 책은 곤충이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곤충은 작고 미약해보여도 우리 생태계를 지탱하는 먹이그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주요 구성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곤충은 우리 생태계의 근본을 이룬다.’(211) 이 책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곤충들이 사라졌을 때 인류를 기다리게 될 것은 재앙뿐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기후변화나 동물 서식지의 파괴, 살충제와 같은 독성 물질의 사용으로 꿀벌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세상을 맞게 될까. 그때야말로 모든 이들 앞에는 모든 생태계의 구성원들이 생존을 위한 무분별한 투쟁 앞에 놓이게 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정말로 이런 상황 속에 놓이게 된다면, 타락한 인간 세계에 남은 최후의 인간, 5월의 아카시아 향기가 어땠는지 기억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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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온 - 살인 단백질의 네 가지 얼굴
D. T. 맥스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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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주는 프리온 질환

- 프리온를 읽고



 

D.T. 맥스 지음 |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2)



 

2000년대 후반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제기된 미국산 수입 소고기의 위험성 문제는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당시에 나는 논란의 핵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뉴스를 통해 9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소들이 주저앉고,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정도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질병의 원인이나 위험성은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프리온을 만나고 나서야 이 질환에 담겨 있는 배경과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편집자를 거쳐 작가로 활동하는 D.T. 맥스가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관련 질병을 포괄적으로 조사·정리한 결과물이다. 책이 지닌 특별한 점은 저자 자신이 프리온 질환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단백질 구조 이상에서 비롯된 신경근육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프리온이란 단어는 199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스탠리 프루시너가 처음 제안한 용어다. 그는 우형 해면상 뇌병증(광우병, BSE),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 양의 스크래피(scrapie) 등을 일으키는 감염성 병원체가 무생물 단백질임을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 감염성 병원체를 통칭하여 '프리온(prion)'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 병원체는 일반 세균(박테리아)이나 그보다 작다고 알려진 바이러스보다도 더 작은 단백질 알갱이다. 프리온은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인간에게 병을 일으킨다. 우선 이탈리아 베니스 근교에 기반을 둔 어느 가문의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FFI)처럼, 대물림(유전)되는 경우가 있다. 희생자 모두 프리온이 갉아 먹은 뇌로 숙면을 취할 능력을 상실하고 기진맥진해서 죽음에 이르렀다. 이 가문이 겪은 역사와 고통은 저자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과 마찬가지로 병을 이해해보고자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원서의 제목(The Family that couldn't sleep)이 암시하듯, 이 책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또 다른 발병 경로는 우연히 발생하는 경우로,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이 그 예다. 책에서는 이 경우를 산발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프리온 질환은 잠복기가 대체로 길기 때문에(수년에서 수십 년), 세 번째 발병 경로인 외부 감염의 사례와 구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1990년대에 세계를 흔들어 놓은 광우병이 대표적인 감염사례다. 여기에는 50년대에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이족에게 들이닥친 쿠루(kuru)병도 포함된다. 포레이족이 겪은 재앙은 이들이 50년대에 시작한 식인풍습에 기인한다. 포레이족에 관한 이야기는 신경정신과 의사 올리버 색스의 책 모든 것은 그 자리에나 저널리스트 작가 리처드 로즈의 죽음의 향연에도 자세히 소개가 되어 있을 만큼 유명하다.

 

쿠루병을 통해 인류가 새롭게 얻은 통찰은 무엇보다 인류가 인간 존재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는 점이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에세이집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에서도 지적하듯, 인류는 모두 한때 식인종이었다. 식인 풍습은 초기 인류사의 어느 시기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었다. 저자의 말대로 인류가 서로를 먹었다는 증거는 넘쳐난다. 물론 인류는 그 대가를 만만치 않게 치러야 했다. 식인풍습에 의한 프리온 질환이 인간 사회에 유행하여 높은 사망률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류가 식인풍습을 버리게 한 어떤 계기나 행위로 80만 년 후 우리의 생명을 구했다는 점이 경이롭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프리온 질환은 여러 발병 경로를 거칠 수 있다. 그 원인이 무생물 단백질인 만큼 일반적인 발병의 특징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신체는 외부의 침입자에 의해 감염되었을 때 면역반응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는 생명체의 신비하고 놀라운 기능이지만, 생명체는 프리온을 감지하지 못한다. 어떤 원인(유전자의 변형에 영향을 주는 원인)에 의해 변형된 프리온 단백질이 몸에서 만들어지고 나면, 이 단백질이 신체 내부의 다른 정상 단백질을 변형시키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변형된 단백질로 사멸한 세포의 뒤엔 텅 빈 공간을 남기게 된다. 프리온 질환에 걸린 양이나 소, 고양이, 인간의 뇌에 구멍이 숭숭 남아 있는 이유다. 결국 면역 체계가 작동하지도 않는 상태(발열이 없다)에서 감염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적은 바로 생명체 내부에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정상적인 유전자 발현에 의해 프리온 단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변형되는 경우 단백질은 생명체 자체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프리온은 생명체의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치명적인 단백질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산업 혁명의 기운과 인구 급증으로 생존의 압박이 사회 전반에 가해졌다. 농업생산성 향상도 빠른 시일 내에 요구되었다. 18세기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인간의 지식과 이성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로 충만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한 축산업자가 적은 사료로 더 많은 양고기와 양모를 얻기 위해 동종교배 기법을 도입했다. 인간의 눈에 유리한 특징을 지닌 양은 끊임없이 자손을 낳아야 했다. 그 결과 발생한 프리온 질병이 바로 스크래피. 양뿐만 아니라 영국의 소에도 인간의 손길이 닿았다. 광우병은 인간이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소를 비롯한 다른 동물을 갈아 넣은 동물 사료를 소들에게 먹였기 때문이다. 우유를 생산하려면 소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단백질보다 더 많이 필요했다. 이처럼 18세기 영국에서 양이나 소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위험한 육종 방식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도입되었다. 그 결과는 21세기인 지금, 한국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걸쳐 인간은 프리온 질병에 대해 그동안 쌓은 지식을 통합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어느 이탈리아 가문의 유전병, 포레이족이 겪은 쿠루병, 알츠하이머와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등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90년대 광우병 문제는 거대축산업의 발달과 생산성 향상에 대한 산업 사회의 무리한 요구로 다시 드러나게 되었다.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하자 정부는 사태를 감추는 데만 급급했다. 자국의 쇠고기와 우유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고, 수많은 소가 살처분 되었다. 미국에서 광우병 증세가 보고되었을 때도 정부, 특히 미국 농무부(USDA)는 영국 정부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모든 소에 대한 검사 요구를 중단시키고, 태만과 비밀주의로 문제를 더 키웠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부와 미국정부가 보여준 대응 방식은 많은 시민과 산업뿐만 아니라 결국 국가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었으며,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불신을 주었다. 어느 경우든 커다란 이해가 달린 시장을 지키기 위해 취한 조치가 자국민들과 세계를 위험에 몰아넣었다. 이는 예고된 인재였다. 이런 과정을 반복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3년이 넘도록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 감염증의 특징은 원래 다른 종의 동물로부터 왔다는 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종간 경계를 넘어 형태와 독성이 변해온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프리온 질환 단백질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기능상 자기 복제를 한다는 점에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유사성을 갖는다. 저자는 프리온 단백질의 경우, ‘종의 장벽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283)고 언급하지만, 이 또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프리온도 종간 경계를 뛰어넘으면서 형태와 독성이 변할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광우병(우형 해면상 뇌병증, BSE)이 염소에게도 전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BSE는 음식을 통해 고양이도 감염시키기도 했다. 물론 인간에게도 영향을 준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프리온이 드물더라도 양이나 소, 고양이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인간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다.

 

프리온 질환을 일으키는 잠재적 감염원을 살펴보면 채식주의자가 프리온 질환, 특히 광우병에 걸릴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저자가 언급하는 감염원은 프리온 질환에 걸린 사람이 모르고 한 혈액을 수혈 받는 경우, 단백질 보충제나 의약품에 사용되는 소 단백질, 소 부산물로 만든 화장품 등이 있다. 인간광우병(CJD)은 사람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한 성장호르몬을 맞고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의료 치료 가정에서 채식주의자가 고대 인류의 식인풍습으로 영향을 받았던 프리온 질환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긴 해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권위도 확고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크로이츠펠트 자코뱅당원)의 슬로건처럼,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317).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문명이 고도화·산업화되면서 인간은 그로부터 혜택을 누리게 되었지만, 프리온 질환에도 걸릴 수 있는 여지는 여러 방식으로 남아있다. 우리 문명은 여전히 초기 인류의 식인풍습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앞서 언급한 올리버 색스나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라고까지 언급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처럼 말이다. 인류는 이제 첨단과학기술의 발달로 스스로의 편의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프리온 질환을 끊임없이 초대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저자 역시 프리온 질환과 유사하게 단백질 구조 이상에서 비롯된 질병을 앓고 있다. 다만 그의 증세는 이탈리아 가족이 겪고 있는 급성 신경변성질환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하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신경근육질환이다. 유전자 가운데 어느 한 부분에 변이가 일어나 신경에서 근육으로 전기 신호를 보내는 데 필요한 단백질 구조나 양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자신의 병과 마주하여 이를 이해하고자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아울러 200년 넘게 가문의 저주라고 불리는 불면증으로 기진맥진한 상태로 사망에 이르는 질병을 프리온 질환의 큰 범주에서 이해해보고자 한 시도이기도 하다. 분명 자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이탈리아 가문에 대한 사명감도 저자의 절실한 글쓰기를 해나가게 해준 원동력일 듯싶다. 프리온 질병을 이해하고자 한 글쓰기는 호모 사피엔스의 민낯을 그대로 비추어 준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 무제한적인 경제 성장에 대한 요구라고 하면 우리와는 무관한 거창한 명분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르게 말해 우리에게 편한 삶을 누리고자 추구하는 모든 행위는 분명 프리온 질환의 원인이 된 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며 프리온 질병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고 자신의 병도 언젠가는 치료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기도 한다. 당장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 책은 우리 인류가 어떤 모습을 지닌 존재인지 보여주는 거울처럼 다가왔다.



[1]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존재다."(46)

[2]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을 비롯한 많은 신경병증 및 신경근육질환은 전통적인 의미의 감염이나 면역반응이 아니라, 프리온 질환처럼 단백질 구조 이상에 의한 질병이다."(47)

[3] "프리온은 정확히 인간의 야망과 자연의 예측 불가능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 구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48)

[4] "우리는 지식이 완벽함을 향해 빠르게 진보하는 분주한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자연과학은 모든 분야가 새로운 발견과 진보로 충만하다."(72)
-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의 말

[5] "포레이족의 식인풍습에 관해 꼭 기억할 것은 인육을 맛있는 음식으로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즐겼던 거죠."(인류학자 셜리 글래스의 말)

"이들은 죽은 이들을 사랑했고, 먼저 애도 기간을 가졌다. 하지만 애도 기간이 지나면 먹는 일로 돌아갔다."(146)

"쿠루는 유전병이 아니라 감염병이었다."(157)

"초기 인류가 죽은 이를 매장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서로를 먹었다는 증거는 넘쳐난다."(288)

[6] "(프리온은) 외부에서 희생자를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의 몸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194)

"(프리온은) 희생자의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치명적 단백질이었다."(195)

[7] "원래 초식동물인 가축에게 억지로 다른 가축의 고기를 먹인 행위는 결과적으로 이들을 동종포식 동물로 만든 셈이었다."(248)

[8] "프리온 질환에서는 결정화crystallization 비슷한 과정, 즉 하나의 변형된 단백질이 다른 단백질과 접촉해 변형을 일으키는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건강한 프리온 단백질이 병원성 단백질로 전환된다. 알츠하이머 단백질도 역시 이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269)

[9] "단일한 질병이 아니라 단일한 발병 원리를 보았던 것이다."(270)
- 연구자들의 연구를 통해 프리온 유전자와 알츠하이머 단백질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에서 발견되었으며, 두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 순서도 달랐음을 밝히며 정리한 말.두 질병은 별개의 것이지만 같은 발병 원리를 보인다는 의미.

[10] "생명이란 핵형성이며, 형태 변화이며, 복제다."(275)
- 1976년 쿠루병 관련한 연구로 19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가이듀섹의 말

[11] "광우병이 이윤추구에서 비롯되었다면, CWD는 명예욕이 문제였다. 이 병은 사슴과 엘크를 침범하며, 현재 미국 내 대여섯 주와 캐나다 및 한국의 동물 집단에서 발견된다."(307)

[12] "하필 내가 변형된 신경근육질환에 걸려야 할 이유는 없지만, 걸리지 않을 이유도 없다."(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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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대멸종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김보영 옮김, 최재천 감수 / 쌤앤파커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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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의한 과잉 살육과 멸종의 연대기

그리고 오래된 인류의 미래 - 여섯 번째 대멸종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 지음 | 김보영 옮김

최재천 감수 [쌤앤파커스] | (2022)

 

 


우리가 바로 그들에게 닥친 불운이었다.

 

이 말은 독일 쾰른의 어느 박물관 연구원이 여섯 번째 대멸종의 저자 엘리자베스 콜버트에게 건넨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를 가리키고,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을 가리킨다. 인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에 등장하면 으레 네안데르탈인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현대 연구자들의 지배적인 견해는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절시켰다는 것이다.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고유전학의 창시자 스반테 페보도 인류의 DNA가운데 몇%정도는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들이 함께 자손을 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우리의 DNA 안에 그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인간은 존재만으로도 참으로 놀라운 면모를 지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행위로 사라져간 존재는 네안데르탈인만이 아닌 듯하다. 인류가 존재한 흔적이 있는 곳에서는 으레 대형 동물이 비슷한 시기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 주목하기 전에는 생물 종의 멸종이라는 생각이 인류의 지성사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시기에 지식인들이 생물의 멸종에 대해 가정하고 있는 지배적인 관점은 종교적인 영향을 받아 멸종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나마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멸종은 매우 느린 속도로 일어난다는 점진적인 멸종개념이었다.

 

한 가지 예로, 찰스 다윈과 공동으로 진화 개념을 정립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당시의 많은 지식인들처럼 생물의 멸종이 기후 변동에 따른 결과로 해석했다. 기후 변동설을 지지한 인물에는 다윈에게 큰 영향을 미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도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월리스는 자신의 마지막 저서에서 생물(특히 고대 생물)의 멸종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바꾸게 된다.

 

이 주제를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때, (...) 나는 그렇게 많은 대형 포유동물이 급격히 절멸한 것이 사실 인간이라는 행위자 때문이었다고 확신한다.”(322)

 

점점 드러나는 화석의 증거들로 생물이 멸종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힘을 잃게 되었지만, 이후 멸종에 관한 개념은 고대 생물이 점진적으로 멸종했다는 견해와 급격한 절멸로 대립하게 되었다. 여기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이 해부학자로 알려진 조르주 퀴비에다. 그는 탁월한 해부학적 지식으로 마스토돈이라고 부른 동물이 다른 대륙에서 발견된 전혀 다른 종의 코끼리였음을, 그리고 이 오래 전의 생물이 빠른 시기에 멸종했음을 주장했다. 조르주 퀴비에는 (급격한) 멸종이 사실임을 입증했던 셈이다. 반면 라마르크는 대격변 이론으로 불리던 퀴비에의 멸종 개념에 단호히 반대했다고 한다. 다윈 역시 점진적인 진화와 멸종을 지지한 덕에 퀴비에의 멸종 개념을 비판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종의 기원에서 종의 멸절이라는 주제는 불필요한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었다.라고 써두었겠는가. 여기에는 퀴비에에 대한 다윈의 암묵적인 조롱이 섞여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퀴비에의 급격한 멸종 개념은 당시에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후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증거가 쌓이면서, 연구자들은 수많은 동물, 특히 거대 동물이 절멸한 까닭이 바로 인류의 도래 때문이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이 주장에 대한 반대자가 많이 있던 시기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대형 동물의 급격한 절멸의 이유가 인간 때문이라는 결론이 다시 힘을 얻은 셈이다. , , 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도 같은 맥락에서 언급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왜 수천만 년 동안의 숱한 가뭄에도 살아남았던 호주의 거대 동물이 공교롭게도 정확히 최초의 인류가 도착하자 거의 동시-수백만 년을 단위로 하는 지질사적 의미에서-에 죽음을 선택했는지를 가늠할 수 없다.”(324) (, , 에서 재인용)

 

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저자가 보다 문제시한 사항은, 지구 역사상 지금까지 발생했던 다섯 번의 대멸종이 아니다. 이런 대멸종은 우연에 의해, 혹은 불가피한 우주의 현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이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절멸의 위기에 놓였다는 경고가 이 책의 강력한 메시지다. 여기에 더하여 전 지구적인 멸절 문제가 제기하는 우려 사항의 핵심은 멸종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변화의 속도. 여기에 인간이 주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백악기 말에 소행성 충돌로 공룡을 비롯한 생물종의 대량 멸종을 처음 설명한 월터 앨버레즈의 말처럼, 우리는 바로 인간이 대량 멸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있다”(369)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날지 않는 새모아의 멸종을 한 사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모아는 단테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까지 살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뉴질랜드에 상륙한 마오리족이 모아 사냥을 시작한 이후 몇 세기가 채 지나지 않아 멸종했다. 1800년대 초에 뉴질랜드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거대한 모아 뼈가 쌓여 있는 무덤만 보았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약 10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에 100만 마리 가까이 있던 검은코뿔소는 이제 약 5000마리 남짓 남아있다. 이마저도 고가에 팔리는 뿔 때문에 다시 밀렵꾼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모두 인간의 손이 닿은 곳에서 어김없이 거대 동물이 멸종한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는 사례다.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도 고래는 멸종할 것인가?’라는 장을 통해 동물의 멸종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거대 포유류의 멸종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40(인간에게 반평생의 시간)전만 해도, 일리노이주에서 버팔로의 개체 수는 현재 런던의 인구수를 앞섰으나, 지금 그 지역에서는 버팔로의 뿔이나 발굽을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충격적인 멸종의 원인은 인간의 창이었다.”(561, 모비 딕,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22)

 

이 소설이 다윈의 종의 기원보다 8년 앞서 출간된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인상적이다. 연구자는 아니지만 지식인으로서 멜빌은 실제 자신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과잉 살육행위를 면밀히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어느 생물 종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멸종현실에 위기감을 느낀다면, 이제는 무엇보다 인간의 활동 때문이다. 이 상황을 우려하는 많은 연구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생물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침입종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생 인류가 침입종이 된 시기는 우리의 조상이 약 12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벗어나 이주한 시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이 설명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고 하는 단일기원설’(343)에 근거한 추정이다.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고유전학의 창시자 스반테 페보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생 인류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작은 인구집단의 후손이라고 보는 단일 기원설에 배치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가설이건,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교잡하여 아이들을 낳고, 유럽, 아시아, 신대륙의 인구를 구성하는데 기여했지만, 결국 네안데르탈인을 멸절시킨 장본인으로 여겨진다.

 

정리해보면 침입종으로서의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거대 포유류의 멸종을 초래했다. 다만 이 경향을 더욱 가속한 계기가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사건이다. 이로부터 아프리카인의 노예 매매를 비롯하여 각종 동물의 대륙 간 이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저자 콜버트는 콜럼버스 시기 이후 초래된 방대한 생물학적 스와핑을 콜럼버스 교환(Columbus Exchange)'라고 부른다. 콜럼버스의 시대에 지구 반대편으로 항해하려면 1-2년이 걸리던 것이 이제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치명적인 감염병 보균자가 하루 만에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적인 콜럼버스 교환은 더욱 큰 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많아졌다.

 

저자가 언급하는 최근의 사례를 살펴보면 특히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파나마에서 희귀종인 황금개구리와 청독화살개구리가 항아리 곰팡이 때문에 사라지고, 이 곰팡이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또 저자의 책 출간(2014) 직전인 2013년에 호낭성 균류(곰팡이)가 박쥐에게 일으키는 흰코증후군으로 몇 년 사이 북미 대륙에서만 박쥐 600만 마리가 사라져버린 일은 연구자들에게 심각한 위기의식을 주었다. 이 모든 결과가 인간의 부단한 이동 때문에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외래종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여 침입종이 되는 사례가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이는 즉각적으로는 지역의 종 다양성에 기여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침입종이 고유종을 멸절시키는 사례도 많다. 결국 전 지구적인 다양성은 결국 감소하게 된다는 점이 큰 문제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멸종의 쓰나미사례는 큰 포유동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곰팡이, 바이러스에 이르는 침입종의 유입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299). 여기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는 주체가 바로 인간이다. 이제 지구상에는 야생이라는 것이 남아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인간은 지리적인 경계를 허물고 이를 넘어버렸다. 저자는 이 현상을 신판게아라고 부른다. 판게아는 33500만 년 전 즈음에 지구상에 존재했던 하나의 거대한 초대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초대륙은 부단한 지구의 움직임 때문에 갈라지고 이동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지질학적으로 오랜 시간 분리된 대륙이 이제는 인간의 행위로 지질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판게아는 지구의 생태환경을 극적인 속도로 재편하고 있기 때문에 우려스럽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제는 이 변화의 속도. 한 침입종은 생태계에 유입되어도 대개는 살아남지 못하거나 지배종으로 될 수 있는 적절한 시간과 조건이 주어질 때, 지역에 적응하여 하나의 고유종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 상징적인 초대륙 환경을 급속히 재편하며 지구를 혹사시키고 있다.

 

책을 통해 저자는 수많은 멸종 사례 및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언급하며 인간이 야기하는 여섯 번째의 대멸종을 경고한다. 이 메시지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 역시 생태계에서 홀로 생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생물들과 부단히 연결된 상태로 살아나갈 수밖에 없기에, 사람이 야기한 파괴의 끝은 결국 우리 인간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수많은 다른 생태계 구성원들을 멸종에 몰아넣고도 아무런 영향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답은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지구 생명체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강인한 생명력과 회복력을 발휘했지만, 저자는 이들의 회복력이 무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페이지마다 일러주는 듯하다. 그리하여 인류는 이제 대답해야 한다. 글 앞에서 독일의 어느 연구원이 저자에게 했던 말을 조금 바꾸어보면 우리가 대답해야하는 질문은 이거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닥친 불운이 될 것인가?” 




[1] "모든 개구리의 가치가 저에게는 코끼리만하게 다가옵니다."(35)
- 백악기 대멸종에도 살아남은 양서류가 사라지는 상황을 보고 한 양서류보전센터 책임자가 한 말

[2] "종들이 사라지는 데는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지만, 그 과정을 끝까지 추적하다 보면 늘 동일한 범인인 ‘일개의 나약한 종(인간)‘을 만나게 된다."(45)

[3] "18세기 말까지는 멸종이라는 범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146)
- 멸종은 해부학자 조르주 퀴비에에 의해 입증되었다.

[4] "생물다양성 감소가 일어날 것이라는 증거는 확실하다."
"해양 산성화라는 거대하고 끔찍한 놈이 곧 다가올 겁니다."(181)
- 환경연구가들의 경고

[5] "인류는 땅속의 석탄과 석유를 꺼내 태움으로써 수천만 년 이상 - 대개는 수억 년 동안 - 격리되어 있던 탄소를 대기 중에 되돌려 놓고 있다. 그것은 지질사를 거꾸로, 그것도 초고속으로 되돌리는 일이다."(186)

[6] "여러 세대에 걸친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산호의 방식은 인간이 해온 방식과도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그 과정에서 다른 생물들을 쫓아내지만, 산호는 다른 생물들을 돕는다."(193)

"산호는 생태계의 건축가입니다. 그러니 산호가 사라지면 그 생태계 전체가 사라지는 건 자명한 일이지요."(207)

[7] "관건은 속도다. 오늘날의 온난화는 마지막 빙기를 비롯하여 이전의 모든 빙기말에 일어났던 것보다 최소 10배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235)

[8] "무척추동물은 윌슨이 말한 대로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일 수 있지만, 작다는 이유로 간과되기 쉽다."(269)

[9] "인간 활동은 기후 변화 - 자연적인 기후 변화를 포함하여 - 에 따라 생물다양성이 확산할 수 있는 길에 장애물을 만들어 왔다. (이 결과는) 역사상 생물에게 닥친 그 어떤 위기보다 심각한 위기가 될 수 있다."(271)
- 환경운동가 톰 러브조이의 말

[10] "먼 미래를 내다보자면, 생물계는 궁극적으로 더 복잡해지기보다는 더 단순하고 빈곤한 상태가 될 것이다."(300)

[11] "나는 그렇게 많은 대형 포유동물이 급격히 절멸한 것이 사실 인간이라는 행위자 때문이었다고 확신한다."(322)
- 진화론의 창시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마지막 저서에 언급한 말

[12] "유전체적으로 말하자면, 네안데르탈인에게는 미학적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358)

"기호와 상징으로 세계를 재현하는 능력은 세계를 변화시킬 능력을 수반하며, 그것은 곧 세계를 파괴할 능력이 된다."(359)

"인류는 기호와 상징을 사용하여 자연 세계를 표상하기 시작하자마자 자연의 한계를 뛰어넘었다."(370)

[13] "멸종 현상의 문제는 멸종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속도다."(369)

[14]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인간이 쓰고, 그리고 건설한 모든 것이 먼지가 되고, 초대형 쥐 혹은 다른 어떤 생물이 지구를 물려받은 후에도 오랫도안 생명이 가는 길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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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야만을 발견하는 과정

- 모비 딕의 여러 번역본 비교와 감상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22)

 




모비 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주목을 받는 소설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은 고전이라고 여겨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작품에서 새로운 깨달음과 영감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의 미국을 형성한 소설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도 붙어 있는 이 소설은 작품의 길이 때문에, 심지어 영문학과에서도 수업 교재로 채택하지 않는다고 한다. 본격적인 연구의 대상이 아닌 이상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과 이야기꺼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성인이 되어 처음 읽어 본 모비 딕은 단순한 고래사냥이야기가 아니었다. 긴장감이 느껴지는 고래사냥은 사실 마지막 삼일 간의 모비 딕추적 대결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나머지 132장에 걸친 이야기는 주인공 이슈메일이 바다로 나가기까지의 과정과 일상적인 선원의 업무, 그리고 고래에 대한 잡다한 지식과 고래 해체 등에 관한 정보로 가득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번역한 작품까지 이제는 작품에 대한 번역서가 최소한 세 권 이상이 되고 있다. 고전이라고 불릴만한 책의 번역 작업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는 독자, 그리고 모비 딕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번역서가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이 무척 반갑다. 번역서 모비 딕의 풍년인 시대다. 독자로서는 어떤 번역서를 읽을까 고민이 되긴 하지만, 실력 있는 번역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더 크다.


 

그동안 타 출판사의 모비 딕몇 종을 흥미롭게 읽었다. 최종적으로 내가 소장하는 도서는 모두 일러스트가 포함되어 있는 버전이다. 작가정신에서 출간한 아셰트클래식시리즈의 모비 딕은 일러스트가 책 내용에 충실하면서도 추가적으로 배의 구조와 고래사냥과 관련한 지식, 고래 해체작업과 고래에 따른 분수공과 분수모습의 차이 등을 설명해주는 삽화가 백과사전처럼 가득하다. 여기에 수록된 그림들은 수채화 만의 부드럽고 서정적인 느낌의 매력을 뽐내고 있기도 하다.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소설 구석구석의 장면을 궁금해하고 상상해볼만한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결과물이다. 게다가 김석희 번역가가 아닌가! 믿고 읽을 수 있는 버전이다.


 

한편 문학동네에서 나온 일러스트 모비 딕은 목판화가 록웰 켄트의 그림이 들어간 버전이다. 록웰 켄트의 그림은 매우 강렬하여 인상적이다. 한 장으로 승부를 걸어 독자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신문 삽화 같은 그림들이 화가의 해석을 통해 재탄생했다. 여기에 젊고 패기 있는 황유원 번역가의 세심한 번역과 꼼꼼한 주석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정신과 문학동네 버전은 각각 두 번씩은 읽었는데, 이번에 내가 선택하여 읽게 된 현대지성의 모비 딕도 목판화가 레이먼드 비숍의 그림들이 수록되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여기에 내가 믿고 읽는이종인 번역가가 참여하여 더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번역가가 작업에 참여했는지도 관심사항이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면, 레이먼드 비숍의 목판화는 록웰 켄트의 그림처럼 강렬한 삽화의 느낌을 주지만, 조금 다른 점은 비숍의 그림이 좀 더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긴 하지만 이렇게 미묘한 느낌의 차이가 어디서 온 것일까. 우선 그림에 사용된 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록웰 켄트의 그림에는 굵고 곧게 뻗은 선이 많은 편이며, 인물의 자세가 직선적이고 정적이다. 반면 레이먼드 비숍의 그림에는 곧게 뻗은 선이라도 가늘고 단선적이지만 방향성이 강하게 느껴지며, 선이 긴 경우는 곡선을 많이 활용한다. 여기에 등장인물의 동작은 정적인 자세가 아니라 움직이는 어느 순간을 포착한 듯한 장면이 많다. 여기에 극적인 명암대비를 잘 활용한다는 점도 켄트의 그림보다 더 역동적이고 입체감을 더 주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다양한 개성을 가진 모비 딕을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독자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수록된 그림의 여러 특징을 고려해볼 때, 현대지성 번역본은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를 많이 지닌 번역서다.


 

우선 내가 현대지성 번역본이 마음에 든 점은 번역가의 역할에 있다. 특히 번역가가 직접 작성한 해제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많이 제공되는 작가에 대한 배경이나 작품 배경에 대한 설명 외에, 소설을 읽으며 궁금해 하던 사항들을 많이 제공하고 있다. 특히 모비 딕은 나타니엘 호손과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번역가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상세한 도움 설명을 해준다. 뿐만 아니라 서양 사상의 원류가 되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곧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성경)와의 연관성도 놓치지 않고 주목한다. 이 점은 본문을 읽어 가다보면 어렵지 않게 서구의 두 가지 문화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의 1장부터 등장하는 기독교 비판적인 시각은 육지와 바다를 넘나드는 경계인의 시각으로 우리 사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가능성을 마련해 놓는다. 개인적으로는 흰 고래 모비 딕의 상징성이 소설을 읽는 동안 줄곧 궁금했더랬는데, 번역자는 이 점에도 주목하고 이 부분 역시 상세히 다룬다. 정리하면 이 책의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인 번역가의 해제에서 번역가는 독자가 이 소설을 단순히 고래잡이를 소재로 한 해양소설로 이해하는 한계를 넘어 설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시해준다.


번역가의 선정 외에 책의 구성에 있어 다른 번역서와 달리 눈에 띄는 점은, 번역가의 주석이 각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많은 번역서의 역주가 책의 마지막에 정리되곤 한다. 하지만 모비 딕처럼 두꺼운 서적의 경우, 독자가 주석을 읽지 않고 건너뛰며 읽는다면 큰 상관은 없다. 반면 나는 책을 천천히 읽는 편이다. 이왕 천천히 즐기면서 읽는다면 주석까지 꼼꼼히 읽곤 하는데, 역자의 주석 수백 개가 책 뒤에 있을 때, 매번 두꺼운 책장을 넘기면서 주석을 확인하기에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분명히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문제일 수 있겠지만, 주석이 제공된다면 나는 각주로 정리되어 있어 해당 내용을 같은 페이지 내에서 해결하며 읽기를 선호한다. 현대지성의 번역서는 천천히 읽는 독자의 독서 흐름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반대로 현대지성 번역서가 아쉬운 점은, 작품의 무게감과 물성을 고려할 때 하드커버로 나오면 좋겠다는 점이다. 책이 무겁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지성 시리즈의 공통점으로 종이가 얇아서 반대쪽 그림이나 글이 비친다는 점이 아쉽다. 소설에서 선원들이 고래 해체작업을 할 때, ‘고래 지방을 성경처럼 얇게 썬다고 표현하는데, 뒷면이 비칠 정도로 얇은 지면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소설을 읽으며 떠올린 흰 고래 모비 딕의 의미


 

서 번역가의 해제에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는 자세한 설명이 있음을 이야기 했다. 우선 향유고래의 거대한 흰 색이 주는 인상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일반적인 향유고래가 흰 색이 아니라면, 정상성에서 벗어난 흰 색 고래가 무엇보다 대자연의 존재가 지닌 성스러움불길함을 동시에 표상할 것이다. 또 흰 색은 검은 색과 더불어 모든 색을 덮고 무화할 수도 있는 극단의 색으로도 볼 수 있다. 검은 색과 함께 흰 색은 그 색을 지닌 존재 자체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대상을 알지 못한다는, 무지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여기에 이슈메일이 설명해주고 있듯이 고래의 얼굴 없는특성에 이르면 거대한 흰 색 생명체에 대한 공포감 배가 된다.


 

한편 이 소설이 탄생한 이후 모비 딕이 표상할 수 있는 대상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이러한 특징은 인간 사회가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특질 무언가에 대응될 수 있기에 시대를 지나오면서도 여전히 살아남게 된 것이 아닐까싶다. 일단 소설 작가의 손을 떠나 세상에 나오면, 작품에 대한 해석은 독자들에게 주어지기 마련이다. 다만 여기에서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살펴볼 수 있는 단서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연대기-역사적인 관점인데, 이 소설이 1851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미국 전역과 서구 유럽을 들썩이게 했던 사건 하나가 바로 1849년의 캘리포니아 금광 발견이다. 소설에서도 잠시 언급되는바, ‘골드 러시시대의 막이 오르게 된 직후였던 것이다. 이 때는 많은 사람들이 벼락부자의 꿈을 안고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하던 시기다. 그러니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모비 딕으로 대표되는 황금만능주의의 표상일 수도 있고, 고래를 쫓는 에이해브는 금을 찾아 달려드는 광기어릴 정도의 욕망에 굶주린 사람들로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날 물신주의에 물든 정도가 지나쳐 인간성을 상실하고 메말라가는 사람들을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


 

내게 모비 딕이 상징할 수 있는 대상은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바 있는 허구적인 존재일 수도 있겠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허상을 만들어 내고 이를 믿게 만드는 존재다. 특히 모비 딕을 서구 백인 문명이 만들어 낸 모든 불합리한 기준과 규범으로 볼 수는 없을까. 그렇다면 모디 딕에게 복수하겠다고, 자신의 다리 한 쪽을 앗아간 고래에게 응징을 다짐하는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해브는 편집증에 붙들린 인간 사회에 대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에이해브의 편집증은 특히 서구 기독교의 일신교적인 독단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때 작품을 관통하는 또 다른 맥과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에이해브의 일신교적인 광기가 서구 사회에만 존재할 리 없다. 어쩌면 우리의 근현대사를 뒤흔든 이데올로기 역시 바로 이런 맥락과 연결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모비 딕과 이를 집요하게 쫓는 에이해브의 광기는 보다 보편적인 표상을 얻을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지 인간이 이루는 집단 내에서 부조리함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면, 사상적인 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이 만들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모순은 문명의 야만성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한다. 멜빌이 모비 딕 1장에서부터 언급하는 노예제도가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겠다. 인간의 문명은 계급을 구분하고, 노예를 만들어 사회를 통제해왔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1장에서 이슈메일이 세상에서 노예가 아닌 자가 어디 있는가?”(40)라고, 세네카가 한 말을 굳이 재인용하면서 외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고전은 인간 사회에서 부조리한 모순이 암묵적으로는 상식이 되고 합리성이 되어 버렸음을 간파하고 독자가 상기하게 해준다.


 

고전은 시대를 거쳐도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하며 문화와 지역을 떠나 인간 사회의 공통적인 특질을 대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고전의 생명력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읽은 모비 딕은 인간의 문명이 부조리함을 만들어 내고, 이 부조리함을 유지하도록 문명을 통제하고 만들어왔음을 새삼 일깨워 준다. 이러한 진실을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모비 딕의 카발라적인 순환구조다. 육지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자 한 이슈메일은 오랜 모험과 항해 끝에 홀로 생존하여 다른 포경선에 의해 구출된다. 다시 육지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유대교 신비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이 순환 구조는 더 나아가면 서양 사상의 원류가 되는 플라톤의 영혼회귀와도 연결지을 수 있다. 이는 이 소설에서 서양 사상의 지혜와 원류를 재확인하는 발견을 독자에게 주기도 한다. 소설은 이슈메일의 구출과 회상에서 끝나지만 언젠가 이슈메일은 또다시 바다로 나갈 것 같지 않은가. 소설에 언급된 것과 같은 이유로 말이다. 그러므로 멜빌의 모비 딕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내는 문명의 야만성이 역사는 되풀이 되듯어떤 형태로든 되풀이 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소름 돋는 우화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속성이자 우리를 매어 놓는 속박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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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1-18 14: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민되는군요. 저도 두꺼워 가지고 각주는 맨뒤에
나와있는 책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장 맨밑에 나와 있어야 하는데...
그러고 보면 책 만드는 사람들은 읽는 사람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보기 좋은 것이 제일인가 봅니다.

근데 초란공님 모비 딕 마니아시군요!^^

초란공 2022-11-19 08:49   좋아요 2 | URL
저 생각해보니까 집에서 사용하는 머그컵, 티셔츠, 책베개, 에코백도 다 모비딕이내요 마니아보다는 굿즈 중독인가요 허헛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