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가 있었다 - 사라지고 살아남고 살아가는 생명 이야기 푸릇푸릇 지식 1
이자벨 핀 지음, 전진만 옮김 / 시금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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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시각과 인간에 의한 과잉살육의 폐해를 모든 세대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 눈에 잘 보이는 큰 동물들뿐만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에게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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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시간 - 길 잃은 물고기와 지구, 인간에 관하여
마크 쿨란스키 지음, 안기순 옮김 / 디플롯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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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는 인간의 운명을 알려주는 지표다

- 연어의 시간를 읽고

 


마크 쿨란스키(Mark Kurlansky) 지음 | 안기순 옮김 | [디플롯] | (2023)

 




연어의 조상은 약 1억 년 전, 공룡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인간의 조상은 현생 인류를 넘어 유인원까지 포함하더라도 200-300백만 년에 불과하다. 인류는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공룡들을 본 적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까마득한 후배인 인간이 불과 몇 세기만에 선배인 연어의 생존마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환경 및 역사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해온 작가 마크 쿨란스키는 연어의 시간에서 민물과 바다를 오가는 대표적인 소하성 어류인 연어를 고찰하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


 

현생 인류가 출현했을 때 이들은 자연의 두려움뿐만 아니라 풍요로움도 만끽했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지식과 상상력으로 도달하기 힘든,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켈트족의 전설에 나오는 연어를 이야기해준 대목이 인상적이다. 켈트족에 따르면, 연어는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마다 더 많은 지식을 얻는다. 연어는 이미강과 바다를 모두 정복한 존재였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지니는 존재였다는 믿음이었다. 내게 이러한 믿음은 자연의 존재에 대한 신뢰와 경이, 존중이 담긴 상호관계성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모든 환경·생태 문제들은 인간의 그릇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이 오만해지면서 자연에 대한 경이감과 존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고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은 이제 자연이 내어주는 풍요로움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연어의 시간에서 저자는 유럽의 백인들로 대표되는 인간이 유럽 본토를 포함, 신대륙(특히 북아메리카 대륙)을 어떻게 유린하고 황폐하게 만들어갔는지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백인은 물고기를 식량과 거름으로 사용하다가 급기야 (강에) 댐을 세우고, 나중에는 빌레리카 운하를 건설하고, 로웰에 공장을 세우면서 물고기 이동(연어/섀드/에일와이프 등)에 종지부를 찍었다.”(139)


 

이 대목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39년 메리맥강에서 형과 함께 카누를 타면서 연어의 회유 경로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고 적은 기록이다. 이 기록만 보더라도 인간이 연어의 생존에 위협을 가한 시기는 적어도 200년은 족히 된 셈이다. 미국 역사에서 1848년은 세계사적인 시점이자 하나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바로 캘리포니아주에서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 세계에서 약 30만 명이 사금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해는 연어에게 암울한 미래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강에서 사금을 채취하고, 광산을 개발하면서 연어 서식지가 급속하게 파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크라멘토강에서는 사금찾기가 시작된 지 5년이 지나자 연어 떼가 사라지기도 했다. 소로가 살던 시기에 그가 보았던 문제들은 어쩌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안고 있는 보다 큰 문제는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행보에 머뭇거림 없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운명은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의 풍요로운 자연을 목격한 15세기 말 이후, 자연에서 나오는 산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유럽으로 가져가기 시작하면서 이미 암울한 전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북미 지역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연어 회유장소나 다름없던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템스강도 연어가 회유하던 곳이었으나 이곳에서 연어가 잡혔다는 기록은 1833년 이후 남아 있지 않다. 책에서 저자는 자기고백적인 태도로 다음과 같이 고찰한다.


 

영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산업 강대국이 되었고, 뉴잉글랜드는 영국에 버금갔다. 오염되고, 숲은 벌거벗고, 강에 유독물이 흐르고, 물고기는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 목표는 달성했다. 유럽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과정을 되풀이할 작정이었다. 유럽인은 식민주의자들이었다. 심지어 반식민주의 미국인들도 제국주의 정복자들이었다.”(164)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성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점이 내가 발견한 이 책의 진가이기도 하다. 저자의 관점은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연어가 살아남지 못하면 지구도 생존할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연어가 강과 호수, 바다 모두를 정복한존재이기에, 연어가 지구의 건강을 가늠하는 지표라고 하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 연어를 살리고 되돌아오게 하려면 강을 깨끗하게 하면 되는 걸까?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다. 연어는 무엇보다 우거진 숲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은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야 한다. 저자가 연어와 강 그리고 숲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73)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 책은 연어의 경이로움에 관한 책이면서 인간과 연어의 관계에 관한 역사, 특히 인간에 의한 연어 수난사를 이야기한다. 인간이 연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연어를 바라보는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비판적인 안목으로 재검토한다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신념은 연어의 남획과 환경파괴로 인한 연어 개체수의 감소를 초래했다. 이러한 신념이 이제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마저 위협하고 있다. 인간은 종족의 생존이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지혜를 모아, 난국을 극복해왔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념도 이제는 다시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활동에 의해 야생 연어의 개체수가 감소했지만, 양어장을 구축하면 줄어든 개체수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기만이다. 뿐만 아니라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서로 의존하며 존재하는 생태계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다.


 

현재 연어의 개체수는 19세기 초반의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북반구에는 수많은 연어 어장이 있었다고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여파, 벌목과 관개 등의 개발활동과 산업 활동 등으로 숲과 강이 훼손되어 이제는 수많은 강에서 연어가 사라져버렸다. 러시아, 일본, 미국의 원주민이 식민주의 정치 세력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어업권을 박탈당하는 동안 연어도 고향을 잃어간 셈이다. 이 책은 연어를 통해 이들이 자연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생명체이며,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위협적이거나 자극적인 자료를 통해서가 아니라 단호하지만 차분히 우리가 선택하여 나아가야할 방향을 일러주는 책이다



[1]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연어가 살아남지 못하면 지구 또한 생존할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37)

[2] "연어는 북반구에만 서식하지만 늘 지구의 건강을 가늠하는 일종의 지표였다. (...) 연어를 통해 인간이 환경에 가한 폭력의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37)


[3] "어째서 연어는 이토록 많은 종으로 진화했을까? 끊임없이 적응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연어는 환경 변화에 맞춰 유전적 특성을 조정한다."(60)

"같은 종이면서 다른 강에서 태어난 두 연어의 DNA차이는 두 사람의 DNA 차이보다 훨씬 크다."(61)

"갈 곳을 잃고 표류하던 연어가 새로운 강에 들어가면 그곳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62)

[4] "연어와 강 그리고 숲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73)

[5] "네덜란드는 남획뿐 아니라 수력발전 댐을 건설해 강을 오염시켰다. 네덜란드가 유럽 최대 어획량을 달성한지 100년이 지나자 라인강에는 연어가 귀해졌다."(119)

[6] "바다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풍부한 광산보다 낫다."(131)
- 뉴잉글랜드 정착을 추진했던 존 스미스 선장의 말.

[7] "벌목꾼, 소몰이꾼, 나라를 쥐고 흔들었던 석유업자를 비롯해 환경을 파괴하는 거칠고 용감한 남성을 미화한 이야기는 미국 문화에서 흔하다."(141)

[8] "16세기까지 (일본의) 아이누족은 연어를 낚으며 전통적인 삶을 고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낚시에 대한 권리와 접근성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1872년 아이누족의 소유지는 없다는 법이 공표되었다. 1899년 교묘하게 말을 꾸며 완곡하게 표현한 ‘홋카이도구 원주민 보호법’은 아이누족이 일본에 완전히 동화되어 비민족(nonpeople)이 되었으므로 땅에 대해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158)

[9] "영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산업 강대국이 되었고, 뉴잉글랜드는 영국에 버금갔다. 오염되고, 숲은 벌거벗고, 강에 유독물이 흐르고, 물고기는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 목표는 달성했다. 유럽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과정을 되풀이할 작정이었다. 유럽인은 식민주의자들이었다. 심지어 반식민주의 미국인들도 제국주의 정복자들이었다."(164)

[10] "명확하고 단순하게 자연을 다루면 거의 틀림없이 실패한다. 자연법칙은 언뜻보면 단순하지만, 항상 결과를 추측하기조차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226)

[11] "양어장 운영 방향은 잘못됐다. 야생 물고기를 잃은 만큼 양어장 개체가 그 부족분을 항상 상쇄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258)

[12] "우리는 경제를 번영시킬 때 자연에 더 많은 손해를 가한다."(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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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 - 판사들의 판사에서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거장의 시선 1
제프리 로즌 지음, 용석남 옮김 / 이온서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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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erg, 1933.03.15 - 2020.09.18)





평등의 원칙 아래 세상을 포용하고자 했던 법조인

- 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


: 판사들의 판사에서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원제: Conversations with RBG)


제프리 로즌(Jeffrey Rosen) 지음 | 용석남 옮김 | [이온서가] | (2023)

 



서로가 잘 모르지만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공동 관심사로 시작된 인연이 평생 이어진다면 정말 멋진 일일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이 많은 이들의 롤모델로 삼고자 하는 인물이라면? 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는 미국의 법조인이자 국립헌법센터의 수장인 제프리 로즌이 20대 청년일 때 우연히 만난 이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과 나눈 대화들을 기록한 책이다. 두 사람은 음악, 특히 오페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라는 공통점으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친구로서 존중하는 관계를 긴즈버그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 유지했다. 이 책은 단순히 한 법조인의 업적을 일별하거나 긴즈버그의 일에 대한 철학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성평등,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 음악, 삶과 사랑 등의 주제를 아우른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무엇보다 성평등과 관련하여 헌법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킨인물로 꼽힌다. 그가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평등 구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성별에 근거한 법으로 차별당하는 남성과 여성들을 모두를 위해 변호하고자 했다. 억압받거나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이 남성들과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지려면, 여성들을 고려하고자 마련된 사회적 장치가 어떤 경우에는 여성 혹은 남성마저 가두는 기능도 한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길은 여성만을 고려하는 것에서 나아가 대등한 존재로서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긴즈버그가 변호사가 되고자 했던 1950년대의 사회는 지금과 많은 점에서 달랐다. 우선 그녀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이었음에도 로펌에서 변호사가 되지 못했던 3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긴즈버그가 유대인이었다는 점. 둘째, 여성이었다는 점. 셋째, 결혼한 여성이었다는 점. 특히 그녀가 로스쿨을 졸업했을 때, 자녀까지 있었다는 점 때문에 로펌에 취직하지 못했다고 한다. 긴즈버그는 당시에 자신에게 해당한 이 세 가지 조건을 삼진아웃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당시에 이런 불리한여건 속에서도 그녀는 변호사가 되고, 럿거스 대학의 법대 교수로 임용되어 당당히 자신의 꿈을 이루어나가기 시작했다. 이후의 행보는 부분적이나마 이 책에 담긴 대로다.


 

성평등의 관점에서 기존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판했던 긴즈버그는 자신의 삶에서 이 신념을 구현하고 실천해왔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한 대목은 긴즈버그가 평생의 동반자인 남편 마티와 함께 했던 56년의 결혼생활에 대한 언급이었다. 두 사람은 1950년에 코넬 대학에서 만나 음악에 대한 사랑이라는 공통점에서 시작하여 서로의 지성을 존중하며 친해졌다고 한다. 부부가 평생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긴즈버그는 이러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그가 써둔 결혼식 주례사 초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서로의 재능과 경험에 진실로 감사합시다. 그 감사함에 뿌리를 두고 서로 헌신하십시오. 인내, 좋은 유머, 상대방에게 주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여지껏 배워왔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은, 마치 마법과 같이, 혼자일 때보다 두 사람을 더욱 지혜롭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경험으로 영원히 이끌어줄 터입니다.”(48)


 

미국의 전통적인 모토 중에 다음과 같이 라틴어로 된 말이 있다고 한다. “에 플루리부스 우눔 E pluribus unum”. 긴즈버그의 말에 따르면, 이 말은 여럿이 모여 하나(one out of many)’란 의미라고 한다. 미국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이룬 한 국가다. 미국이 물질적인 풍요 말고도 정신적인 풍요를 성취한 이유를 꼽으라면, 한 때 이러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겠다. 지금은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청과 존중이 사라진 것만 같아 안타깝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언젠가 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포용에 관한 저자 제프리 로즌과 긴즈버그와의 대화였다.


 

로즌: "포용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긴즈버그: "포용이란 것은, 소외된 사람들을,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두 팔을 벌려 공공체의 일부로 껴안는 것입니다."(268)


 

우리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긴즈버그야말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9명으로 이루어진 연방 대법관으로 일할 때, 자신과 자주 의견을 달리하는 스캘리아 대법관과의 오랜 우정과 존중의 관계가 한 가지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의견이 그렇게 다른 사람과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 저자가 묻자, 긴즈버그는 스캘리아 대법관의 좋은 점으로 답을 대신했다. 스캘리아는 누구보다 멋진 유머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말이다. 긴즈버그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장점을 찾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상대방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경청할 줄 아는 태도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사실 이건 당사자 혼자만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다고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 역시 훌륭한 인격을 가진 인물이어야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이 사례 역시 긴즈버그가 평생 삶 속에서 보여준 포용의 정신을 발 보여준다는 점이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연방 대법원에서 소수의견을 가장 많이 낸 법조인에 속했다는 사실도 그녀의 포용 정신을 고려하면 이해가 잘 된다. 그녀는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들이 모인 대법원이라도 실수를 할 수 있으며, 나쁜 결정을 하기도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녀가 지지한 소수의견의 핵심 개념은 상식의 정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이 때 긴즈버그는 우리가 끊임없이 비기득권에 속한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살아가는 한, 우리는 한없이 배울 수 있습니다.”(151) 이는 불완전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피고,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 일에서 출발할 것이다. 특히 법조인은 법의 적용에 있어 누가 더 큰 고통을 받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그의 눈길이 언제나 가난하고 기득권에 속하지 못한 이들, 특히 여성들에 좀 더 머물게 되었을 것이다.


 

긴즈버그가 공부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마주한 불평등한 현실을 회피하거나 불평만 하지 않고 직접 변화시켜 가는 일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후손들은 행운아들인지도 모른다. 그가 없었다면 여전히 사회에 불평등의 잔재가 남아있긴 하지만, 지금의 정도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녀는 2020년에 병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을 지냈다. 책의 저자와 긴즈버그가 나눈 대화를 따라가 보면, 두 사람이 반평생 나눈 우정의 대화가 얼마나 풍요로운 시간이었을지 상상해본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두 사람만의 사적인 대화를 넘어 한 시대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기도 할 것이다.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혹은 한 사회에 커다란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실제로 그의 존재가 사회를 조금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긴즈버그 대법관이 자신의 꿈을 말한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인용해본다. 상식적인 말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한 꿈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부모 역할과 직장 생활을 꾸려가는 삶의 방식을 만드는 것, 그 방식으로 사회가 굴러가도록 남녀가 같이 노력하는 것입니다.”(1984년에 언급






[참고 - 오탈자]

[1] 34면, '우리임을 것을 밝히는'  ==>> '우리임을 밝히는'


[2] 87면, '1984년, 페미티스트'  ==>> '페미니스트'





 


[1] "긴즈버그는 추상적인 원칙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개인들, 성별에 근거한 법으로 차별당하는 남성과 여성 개인들을 위해 변호하며 정의를 구현해나갔다."(33)

[2] "제 목표는 여성들을 떠받치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 받침대가 실은, 모두를 가두는 우리임을 밝히는 것이었죠. 한 번에 한 걸음씩 법원이 깨닫게끔 하고 전진시키는 일이 그 당시 제 목표였습니다."(34)

[3] "궁극적으로는, 시민들 스스로가 조직해야 합니다. (...) 사람들에서부타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종류의 추진 없이, 입법부는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74)

[4] "여성과 남성이 존재하는 방식을 일반화시키면, 고유한 각 개인에 대한 결정을 바르게 내릴 수 없다."(106)

[5] "그게 바로 릴리가 한 행동이죠. 소수의견의 핵심 개념은 상식의 정신입니다."(177)

"전통적으로 소수의견이 장차 이 나라의 법이 되어왔습니다. (...) 법원이 잘못했다는 걸 인식한 소수의견이 있었습니다. (...) 법원이 틀린 판단을 내렸음을 인식하고 옳은 판결을 써내려간 사람들을 한번 돌아보세요. 처음에는 소수의견으로 출발하지만, 그 다음 세대에서는, 법원을 대표하는 의견이 되었다는 것을."(178)

[6] "의료보험 또한 사회안전망의 결함을 보완한다고 봅니다. 사람은 늙거나 파트너가 사망했을 때 사회보장 혜택을 받습니다. 의료보험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필요 사항이 채워지고 있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습니다."(187)

[7] "법원은 일이 일어난 뒤에, 사후에 대응하는 기관입니다."(195)

"법원이 사회적 변화를 선두에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방향으로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했다."(198)
: 법원의 역할에 대해

[8] "평등이란 개념은 처음부터 존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회에서 실현되어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투표권을 가지기까지, 우리 여성은 1868년부터 지금까지 참으로 긴 시간을 걸어왔습니다."(206)

[9] "‘넌 안돼’라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마세요. 꿈이 있고, 추구하고 싶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을 기꺼이 할 의지가 있으면, 누군가 ‘넌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게끔 내버려두지 마세요."(235)

"진짜로 실현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기꺼이 그걸 이루는 데 필요한 노력을 하세요."(272)


[10] "좋은 시민이라면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가 있다는 조언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의무란, 우리 민주주의가 적절히 작동하도록 돕는 것이겠지요."(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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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2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3-03-22 11:24   좋아요 1 | URL
앗~!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즈버그와 저자가 든 판례 관련 배경을 잘 몰라서 헌법에 대한 긴즈버그 대법관의 존중과 여기에 담긴 깊은 의미까지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대화 속에 저도 함께한 것처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기득권에 속하여 안락한 삶을 누릴수도 있는 위치에서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이들을 진심으로 ‘포용’하는 일이 사회를 얼마나 더 좋게 바꿀 수 있는지....대화 속에서 작은 희망도 보았습니다.
 


과학자들의 상상력, 자유로움에 대하여

:파인먼 평전중에서





 

 


















올해 제임스 글릭의 작품들을 역주행해보기로 했는데, 

아직 <파인먼 평전>에서 머물러 있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 인상적인 문장들. 파인먼이 예술과 다르게 과학에서 과학자들의 창조성과 상상력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다.

 



파인먼은 과학적인 창조성이라는 것은 구속복 속의 상상력이라고 말했다.”(533)


 

혁신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자유롭게 떠올린 만족스러운 생각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학 법칙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발상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알려진 자연의 법칙과 명백히 모순되는 대상을 우리가 진지하게 상상하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물리학자가 떠올리는 상상력이란 꽤나 어려운 게임입니다.”(533)


 

파인먼이 말했다.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소설에서처럼 거기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상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단지 이해하기 위해 생각을 가능한 한 최대로 펼치는 것입니다.’”(534)

 



현대 예술가들에게 참신함, 자유로움은 무엇을 의미할까. 비예술가의 입장에서 예술가들에게 요구 혹은 기대되는 자유로움, 참신함은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자유로움보다 훨씬 모호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자유로움과 참신함에는 파인먼이 구속복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보다 분명한 제약이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학자는 자연을 관찰하고 설명해내기 위해 자연에서 보다 보편적인 어떤 원리를 찾아낸다. 바로 여기에 과학자들의 상상력이 요구된다. 다만 상상된 결과는 과학자들의 지식과 이해의 범주에 적합해야 한다. 곧 자연 현상과 일치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구속복처럼 과학자의 상상력 주위로 상당한 제약이 가해지게 되는 셈이다.  



 

"파인먼은 과학적인 창조성이라는 것은 구속복 속의 상상력이라고 말했다."(533)

"혁신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자유롭게 떠올린 만족스러운 생각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학 법칙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발상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알려진 자연의 법칙과 명백히 모순되는 대상을 우리가 진지하게 상상하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물리학자가 떠올리는 상상력이란 꽤나 어려운 게임입니다."(533)

"파인먼이 말했다.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소설에서처럼 거기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상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단지 이해하기 위해 생각을 가능한 한 최대로 펼치는 것입니다.’"(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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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 동아시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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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그려준 파인먼 초상




천재 물리학자 파인먼의 35주기,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시 만나다

- 파인먼 평전을 읽으며

 

제임스 글릭(James Gleick) 지음 

양병찬·김민수 옮김 | [동아시아] | (2023)

 



 

Of all its many values, the greatest must be the freedom to doubt.

Richard Phillips Feynman(1918.05.11-1988.02.15)

 


이 문장은 고등학교 때 동네 서점에서 파인먼을 발견한 이후, 대학 시절 내 책상 앞에 줄곧 붙여두었던 문구다. 처음에는 알 듯 모를 듯 했던 표현이었으나, 삶의 경험치가 쌓이고 여러 상황에서 이 문구를 떠올리곤 했다. 내겐 괴짜 과학자 같았던 그의 이미지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의혹을 제기하는 인물의 전형으로 나의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셈이다. 최근 파인먼 평전을 읽고 있는데, 마침 오늘(215)이 파인먼의 35주기이기에 간단한 독서 기록을 남겨본다.


 

우선 파인먼은 동유럽 유대인 이민자의 후손이다. 따라서 위에 인용한 문구는 유대인의 후츠파(chutzpah)’ 정신을 우선 떠올리게 한다. ‘후츠파는 히브리어에서 온 말로, 문자 그대로는 무례함, 뻔뻔함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도전하는 정신, 용기, 배포 등의 맥락을 포함한다. 정통 유대교를 신봉하지 않았던 파인먼의 집안 분위기에서 그가 평생 가식과 권위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이에 도전했던 모습과 연결 지을 수 있겠다. 이 평전에 언급된 것처럼 그는 세상 사람들의 가식과 권위를 그토록 경멸하던 홀든 콜필드’(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였던 셈이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두고 우리는 어떤 표현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까. 우선 파인만은 많은 이들에게 괴짜이자 천재 과학자로서 알려져 있을 테다. 이미 20대일 때 핵폭탄 개발 연구 작업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촉망받는 과학자로 참여한 인물, 국가 기밀문서를 보관한 금고를 모두 열어버린 인물, 양자전기역학을 포함한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노벨상 수상자 등의 사례에서 파인먼이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말해주는 수많은 지표를 보여준다. 또 다른 한 면으로는 사랑하는 첫 부인과의 사별 후 보인 여성편력과 세 번째 부인을 만난 이후 가정적인 삶으로 돌아간 이후의 모습들, 봉고 드럼과 같은 리듬악기를 연주하거나 그림 그리기를 배우는 등 아이와 같은 호기심을 지니고 삶을 누리는 데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된다.


 

파인먼의 다양한 모습들 가운데 내게는 그가 가식을 싫어하고 권위에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보였던 모습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학창시절에 처음 알게 된 파인먼을 이제는 제임스 글릭의 파인먼 평전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미국이 세계초강대국이 되어가던 시기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던 시대를 가로질러 살았던 한 미국인 과학자의 삶을 재구성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미국이 몰락하기 시작하는 상징적인 사건가운데 하나가 바로 챌린저호 폭발사건이라고 본다. 거대한 관료집단이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비효율적인 상태가 되어버린 상황, 냉전 시기 이데올로기의 대결 구도 속에서 성공에 대한 압박으로 과정 그 자체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면서 재난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된 것. 나는 이 증상이 바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보았다. 파인만은 이러한 삶의 한가운데에 서서 역사의 현장들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었다.


 

이 책을 읽기가 만만치 않지만, 책을 읽을 때 몇 가지 방식을 염두에 두면서 시도해볼만 하다. 우선 파인먼을 둘러싼 인물들에 주목해보는 것이다. 파인먼과 다른 인물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주목해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예를 들면, 파인먼과 줄리언 슈윙어를 견주어보는 것. 두 인물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1918년 생으로 동갑인 물리학자들이었다. 다만 각자의 캐릭터는 너무나 뚜렷하면서 스타일도 확연히 달랐다. 두 사람은 모두 유대인이었고, 196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함께 받았지만, 강의 스타일이나 말투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슈윙어가 좀 더 화려하고 격식을 갖춘 완벽함을 지향했다면, 파인먼은 우아함보다는 솔직하고 격의 없으며 빠른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두 사람의 오랜 라이벌 구도를 통해 두 동갑내기 물리학자가 어떻게 서로 경쟁하고 발전해나가는지 따라가 보는 일은 흥미롭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파인먼과 같은 직장의 동료 물리학자 머리 겔만과의 관계, 파인먼과 프리먼 다이슨 사이의 일화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제임스 글릭은 파인먼과 겔만을 유명한 미국 배우들을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다. 옷을 잘 차려 입는 신사 같은 이미지로 영화에 등장하곤 했던 아돌프 멘주는 겔만에, 그리고 코미디언으로 희극적인 배역을 많이 맡아 등장했던 미국의 배우 월터 매사우는 파인먼에 비유하는 식이다(635). 겔만도 파인먼처럼 유대인이었으며, 과학뿐만 아니라 폭넓은 교양을 갖춘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다. 이와 달리 파인먼은 문학, 특히 시 같은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자연과학에 관해 외곬수적인 관심사를 보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미국은 여전히 귀족이 사회의 지도층을 점유하고 있는 영국처럼 정도가 심하지는 않으나 서양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말투는 그 사람의 배경을 규정지어주는 인덱스로서 기능하는 것 같다. 파인먼의 경우, 그가 명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빠르게 말하는 방식이 노동계급의 특징으로 먼저 인식되었던 것 같다. 젊은 시절 파인먼은 노대가 닐스 보어와의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는데, 귀족 가문인 보어는 파인먼의 노동자 계급을 떠올리게 하는 언어와 말하는 방식에 호감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파인먼을 둘러싼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평전이 두껍긴 해도 보다 더 입체적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파인먼 평전의 원제는 Genius. 이 제목을 염두에 두면, 천재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글에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저자가 천재()란 과연 무언인가?’하는 물음을 쫓아 과거 여러 지식인들이 고민했던 행적을 따라가며 천재의 정체성을 탐구해나간다. 인류 역사상 많은 천재들이 나타났지만, 천재란 어떤 면모를 지닌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 것인지 저자는 궁금해 했을 법하다. 참고로 파인먼의 아이큐는 125였다. 낮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마술사 천재라고 불린 파인먼에게 기대된 아이큐에는 훨씬 못 미치는 값이다. 이걸 보면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천재라고 불릴 수 있는 보편타당한 특질이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과연 그런 특질이 존재하는 것일까? 저자는 결국 과학적 업적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말과 함께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파인먼의 한 마디를 덧붙인다. 결국 우린 모두 고만고만한 존재라고 말이다.

 


사람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올랐던 높이만 보고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하진 않는다. 사람은 무엇보다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길을 가는 가운데 그 사람의 마지막을 보고서야 그의 삶이 어떠했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파인먼도 두 번째 암이 재발하여 몸 속에 큰 혹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챌린저호 폭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작업에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참여했다. 내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파인먼의 모습은 다른 이들의 판단을 스스로 검토하지 않고 조금의 의혹도 지나치지 않았던 지적 성실함이었다. 여기엔 어떤 형태의 권위에 대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후츠파정신이 엿보인다. 파인먼 평전을 읽으며 느끼는 점은 파인먼의 구체적인 업적 이전에, 기존의 것에 스스로 합리적인 의문을 제시하고 자연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끊임없이 호기심을 지녔던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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