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 뇌공학의 현재와 미래, 개정판
임창환 지음 / Mid(엠아이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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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를 묻는 뇌공학자의 공학이야기


-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 뇌공학의 현재와 미래


임창환 지음 | [MID] | (2023, 개정판)



 

최근 뇌과학, 인공지능, GPT 등에 관한 소식이 큰 화두다. 생명활동을 하는 존재가 스스로 살아가는 데에는 다양한 수준의 지능이 관여한다. 우리가 의식이라는 명칭을 붙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특히 인간의 뇌는 체내의 신체적·정신적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의 20%가량을 소모하는 기관이라고 한다. 단 몇 분이라도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곧바로 뇌사에 이르기도 한다. 보다 복잡하게 발달한 생명체들에게는 뇌가 있음으로 해서 움직임을 조절하고 존재가 관여한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간다. 뇌는 생명체에 필수불가결한 기관인 것이다. 이제 연구자들이 뇌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이를 이용하고 있는 시대다. 여기에 뇌공학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눈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 마비를 겪는다고 상상해보자. 나는 상상만 해도 숨이 차고 갑갑한 기분이 든다. 잠수종과 나비의 저자 장 도미니크 보비가 겪은 일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그가 남긴 기록은 바로 당사자의 입장에서 힘겹게 써낸 글이기에 전 세계의 많은 독자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보비는 세계적인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다. 멋지게 옷을 차려 입을 줄 알고, 문학과 스포츠카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닥친 불운은 그가 뇌일혈로 쓰러진 후 3주가 지나 의식을 회복했을 때, 전신이 마비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몸은 예기치 않게 감옥이 되었다. 그의 정신은 말을 듣지 않는 육체 속에 영원히 유폐되어 버렸다. 그가 자신의 투병 기간인 15개월 동안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책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한쪽 눈을 깜빡거려 문자를 하나하나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비의 입장을 상상만 해도 아득하고 절망스러운 느낌이 밀려온다. 내가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를 읽으면서 뇌공학이라는 분야를 다시 보게 되었던 것은, 보비와 같은 입장에서 환자가 가족 혹은 다른 사람들과 보다 자유롭게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뇌의 활동 혹은 뇌파를 이용하여 뇌와 기계, 혹은 뇌와 컴퓨터 사이의 접속 시스템을 개발하면,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의도를 지닌 생각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뇌가 활동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뇌파를 감지하여 활용하여 정신적 타자기와 같은 접속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현실적인 제약은 아직 너무나 많다. 여기서 제약이라 하면 인간을 대상으로 검증을 해야 하는 상황과 이에 따른 윤리적 문제들, 접속 시스템을 거치면서 의사 전달의 속도와 정확도가 떨어지는 문제, 나아가 실수요를 고려한 경제적 타당성의 문제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여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아보고자 시도하는 생생한 연구현장의 이야기들을 이야기해준다.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도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선천적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장애는 불시에 찾아오기도 한다. 저자가 직접 만나본 루게릭 환자들의 꿈이 환자 스스로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글을 남겨보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공감하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저자의 연구실에서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주고자 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다만 모든 과학기술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런 특수한 지식체계가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해서이다. 예컨대 뇌파를 이용한 뇌 접속 인터페이스는 점차 발달하면서 점점 더 많은 개인의 내밀한 생각들과 상호작용을 매개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는 개개인의 고유한 상황을 담은, 혹은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정보일 것이다. 이때 한 개인을 규정할 수 있는 이런 개인정보의 유출 가능성 같은 문제는 기계와 인간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지 싶다.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사례는 저자가 소개하는 거짓말탐지 기술이다. 저자는 책에서 거짓말탐기기가 개인의 사생활 침해 도구로 쓰일 가능성’(153)도 지적하고 있다. 나의 가족이나 애인이 매번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진실이 언제나 좋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경우에 따라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언제나 진실을 모두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해질까? 이런 상상을 해보면 나는 아직 이런 기술에 대해 저항감을 먼저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또 만약 거짓말탐지 기술이 99%의 정확도를 가지고 개개인의 거짓말을 정확히 탐지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이 기술이 하나의 권위로 작용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예를 들어 범죄에 연루된 누군가의 운명이 이 거짓말탐기기의 판독 결과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 99%의 진실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해도, 그 또한 1%의 오류로 인해 무고한 누군가의 삶이 파괴될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이 주목하고 고민해야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안심인 것은 연구 현장에서 저자와 같은 뇌공학자들은 기술과 더불어 윤리적인 검토와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철학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인식하며 이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저자의 연구 사례를 보면, 저자가 이끄는 연구팀은 뇌-컴퓨터 접속 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그룹임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특히 기억나는 점은 저자가 고민하는 기술이 경제성이 적어보이는 기술임에도 이 기술이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질문은 뇌공학자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을 다루는 모든 이의 가슴 속에 우선 필요한 요건이 아닌가 싶다. 저자가 소개하는 신기하고 놀라운 첨단 기술과 더불어 그가 고민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 애정이 함께 갖추어진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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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우주로 흐른다 - 문명을 이끈 수학과 과학에 관한 21가지 이야기
송용진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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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수학의 대가가 말하는 인류 문명의 정수, 수학의 역할

- 수학은 우주로 흐른다》(2021)

 


송용진 지음 | [브라이트] | (2021)



 

말들에 누구나 수학이 중요한 분야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은 학창시절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우선 수학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필요하다. 진학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니까. 상급 학교로 진학한 이후에 전공과목이 아닌 이상 수학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좀 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학의 혜택을 단 한 순간도 받지 않는 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손에서 놓지 않는 휴대폰만 해도 수학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사용되는 물리적인 디스플레이나 소자뿐만 아니라, 운영체제와 알고리즘이 수학의 도움 없이 그 기본적인 지식체계가 정리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편리하게 사용하는 GPS같은 기능을 구현하는 데에도 수학은 핵심적인 연장통이 된다.


 

수학은 우주로 흐른다의 저자 송용진은 위상수학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재를 책임져온 교육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그는 수학과 과학이 우리 문명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폭넓게 고찰한다. 수학의 역사적 측면만이 아니라 수학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성찰이 책의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중심 화두가 되어버린 인공지능분야는 특히 수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다. 저자가 주목하는 수리 자본주의 시대의 핵심이기도 하다.


 

수많은 수학 영재들을 가르쳤던 교육자로서 저자가 제자들에게 수학의 필요성과 수학자의 역할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변이 인상적이다. 제자들은 어떤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적용할 것인지, 혹은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수학자의 역할이 점점 더 크게 기대된다는 언급도 덧붙인다. 단순히 모델을 기계적으로 실행시키는 작업에서 벗어나 문제점을 파악하고 평가하는 것은 결국 사람, 특히 수학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결론이었다.


 

이 책은 그 동안 많이 보아온 외국 수학자의 저술이 아니라, 국내 수학자의 저술이기에 우리의 당면 과제와 이슈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의 기초과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견주어볼만한 일본의 근대는 이미 이 시기에 상당한 수학 및 과학의 기반을 갖춘 상태였다는 사실을 지적한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일본은 외국의 지식을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일본은 이미 세계적인 수학자 과학자들을 배출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세계 기초과학을 리드하던 유럽 학계에 발을 담고 근대를 준비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안타까운 시간들을 크게 놓친 셈이다. 다행히 수많은 인재들의 노력으로 한국의 수학이 이제는 세계적인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수학자인 저자로부터 직접 듣게 되니 비로소 실감이 날 정도다. 나아가 최근 나로호와 누리호의 발사 경험까지 갖추게 된 우리가 아닌가.


 

문명이란 단어는 중립적인 인상을 준다. 인간만이 이룰 수 있었던 성취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인류의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되기도 한다. 인류의 운명과 관련지어 저자는 과학이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며, 인류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낼 것이다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개인적으로 이 견해에 대해서는 수학과 과학에 대한 저자의 긍정론을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명 세계는 현재 수학과 과학에서 필수적인 이성과 합리성을 갖춘 이들이 제시해 놓은 방향을,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인류의 생존을 위해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 계층을 위한 자본 논리가 인류 문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쓸모없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여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수학 및 과학의 지속적인 발전에 대한 믿음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학자, 과학자들의 냉철하고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문명의 지속성이 수학자, 과학자들이 마련해 놓은 도구들에 대한 정치적인 활용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더욱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구체적인 수학을 현장에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수학적 사고나 판단력과 분별력은 문명인의 기본적인 소양이 되어야 할 것 이다.


 

결국 저자는 수학의 쓸모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의 수학적 소양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 문명의 생존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훈련된 수학적 사고로 합리적이고 올바른 분별과 판단을 내리게 되면, 우리의 운명을 숙고하고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하여 생존가능성이 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교육자로서 저자의 가르침을 받은 우리나라 수학 영재들이 수학 연구자체뿐 아니라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에도 관심을 가지는 인간적인영재들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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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치유, 인간 - 삶이 흔들릴 때 신화가 건네는 치유의 말들
신동흔 지음 / 아카넷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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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알’, 신화가 지니는 힘

- 신화, 치유, 인간


: 삶이 흔들릴 때 신화가 건네는 치유의 말들

 

신동흔 지음 | [아카넷] | (2023)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신화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지역과 무관하게 이야기의 보편성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구비설화 탐색자 겸 연구자로 소개하고 있는 신동흔의 신화, 치유, 인간을 읽으면서 품었던 의문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호모 사피엔스의 주목할 만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언급한 바 있다. ‘허구’, 곧 만들어진 하나의 서사는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힘이 있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신화야말로 인간의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서사다. ‘최초의 인간들을 이어준 보이지 않는 끈이었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양과 서양의 신화를 아우르며 광대한 인류의 정신세계를 촘촘한 사유로 풀어내었다.


 

저자는 신화가 인간의 실존을 보여준다고 언급한다.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미력한 자기를 부여안고 한없이 흔들리는 일”(113)이기도 하다는 것. 바로 나와 세계가 관계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이는 괴테가 일생동안 수정한 역작 파우스트가운데 한 마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파우스트, 전영애 옮김, (도서출판), 2019)란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노년의 대문호가 애정과 연민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았을 법한 구절이라 생각했는데, 신화를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에서도 우리 인간의 모습을 비춰주는 표현을 만났다.


 

신화 속에서 인간의 모습, 나아가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은 세계가 나와 만나는 일이다. 이는 자연 만물과 인간이 연결되는 순간이다. (개인)와 사회(집단)서사적 연대를 이루는 접점이 신화라 할 수 있다. 개개인은 신화에서 수많은 를 발견할 수 있다. 신화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저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안에 비슈누와 브라흐마와 시바가 있는 것처럼 티탄족과 외눈박이 거인과 백수 거인과 제우스가 우리 안에 있다.”(42)

 


따라서 저자는 세계의 신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과 인간의 생명적 연결성’(72)을 말한다. 지금 전 세계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기능적으로 지구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조직체나 다름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개개인 점점 더 고립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어쩌면 신화를 잃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끊은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다.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는 우리 안의 자기서사에 주목하는 일을 언젠가부터 소홀히 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저자는 우리가 세계와 다시금 이어나갈 수 있는 해법이 신화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저자는 나를 세계와 연결해주는 신화가 치유의 힘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신화와 만남으로써 신화를 되새기고 나를 발견함으로써 진정한 변혁의 길, 거듭남을 꾀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변혁, 거듭남을 거쳐 결국 나 자신을 확장할 수 있게 한다. 신화는 이 과정에 필요한 역치를 넘어갈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신화는 자기 재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신화적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기 전에는 신화가 단순하고 원초적인 이야기의 모음인 줄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 신화, 치유, 인간에서 저자는 신화의 서사가 지닌 강렬한 생명력, 치유의 힘과 자기 변혁의 힘을 독자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저자는 신화의 사례를 들어 노아의 방주어머니의 자궁태초의 알이라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보니 신화야말로 인류에게 삶을 견디게 해주고 치유의 힘을 건네는 태초의 알이 아닌가 싶다.    



[1] "우리 안에 비슈누와 브라흐마와 시바가 있는 것처럼 티탄족과 외눈박이 거인과 백수 거인과 제우스가 우리 안에 있다."(43)

[2] "그 홍수는 태초의 물이며, 방주는 태초의 알이라고 할 수 있다."(55)

[3] "결국 신화를 완성해가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58)

[4] "신화는 자연 만물과 인간의 생명적 연결성을 말한다. 무엇하나 귀하지 않는 것들의 신령한 연결이다."(72)

[5] "마음 깊은 곳의 신명을 이끌어내서 사람들과의 서사적 연대를 더욱 강화해 가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오래 흘러온 신화가 전해주는 본원적 해법이다."(107)

[6] "관계는 존재의 분리로부터 시작된다."(177)
- 사랑의 원형에 대한 언급

"존재하는 일이란 관계하는 일이다."(178)
-끝없는 부딪침과 밀어냄의 역학을 신화는 이야기한다.

[7] "시바의 파괴는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다. 창조를 향한, 새 생명을 향한 파괴다. (...) 지금의 나를 죽임으로써 시바의 서사로 나아가는 것이 내가 찾아가야 할 서사적 길이었다. 달리 말하면,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변증법적 초극이다."(234)

[8] "현실 부정을 통해 스스로를 깊은 동굴에 가둘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의 신화로 읽는다. 그러면서 문득 자신을 돌아본다. 지금 스스로 동굴에 들어와 웅크리고 있지 않은지를."(251)

[9] "덧붙여 깨닫는 것은 그러한 살아냄이 제대로 된 죽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다시 나를 죽여야 할 때다. 일어서서 거듭나기 위하여."(257)

[10] "그 우주적 연결의 중심점이 어디인가 하면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이다. 그 연결성을 오롯이 인지하고 구현해낼 때 우리의 삶은 하나의 신화가 될 수 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나 자신의 존재성은 세상 그 누구도 지울 수 없다. 설령 그가 신이라 하더라도!"(270)
-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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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일기
정정화 지음 / 학민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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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건너 거대한 부조리에 맞섰던 여인

- 독립운동가 정정화 여사의 회고록 장강일기 長江日記를 읽고

 



몇 년 전 정동의 한 극장에서 본 연극 한 편이 기억에 생생하다. 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모노드라마였다. 그녀의 이름은 정묘희. 20세기가 시작할 무렵 태어난 그녀는 열 살이던 1910, 동년배인 김의한과 결혼했다.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사람들처럼 나라를 잃었다. 독립운동을 하러 먼저 떠난 가족을 만나기 위해 상해로 건너간 후에는 정정화로 개명했다. 나는 여사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전하는 연극을 통해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녀가 남긴 회고록 녹두꽃(후에 장강일기로 바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정정화 여사는 처음부터 빼앗긴 조국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집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집안의 며느리로서 시댁 어른을 모시고자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의 나이에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압록강을 건넜을 때, 26년 간 이어진 그녀의 독립운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내에 잠입했으며, 시댁 식구와 임시정부의 어른들을 모시고 임정의 안살림을 맡았던 여사의 삶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이기도 했다. 장강일기에는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임시정부의 속내뿐만 아니라, 이런 여건에도 항일 저항 활동을 이어간 임정 요인들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곳곳에 담겨있다. 저자의 기억에는 무장활동을 지휘하던 꿋꿋한 모습의 백범과 후동 어머니, 나 밥 좀 해줄라우?”, 라며 아이와 놀아주던 백범의 격의 없는 모습까지 선명히 각인되어 있었다.


정정화 여사의 발걸음을 머나먼 타향으로 향하게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릴 때 어른들은 우리가 미국의 도움으로’, 혹은 일본이 원자폭탄에 항복하여해방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 곁에는 국내 및 해외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일 활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이 개인의 안위에 앞서 무엇이 옳고 그른 길인지 먼저 헤아릴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옳은 길로 향하고자 했던 여사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어디나 저항의 장이자 삶의 장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세계사 속의 거대한 부조리에 맞서 치열하게 저항했던 이들을 증언하고 있다.


회고록에서 특히 기억나는 부분은, 저자가 이름 없는 영웅들을 기억한 대목이다.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의 장으로 뛰어들었던 이들이다. 양복점을 하며 독립 운동가들의 비밀 연락을 맡은 이세창, 한인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다 전장으로 나간 김철,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탈출하여 임정을 찾아온 박재희나 고구마라는 별명을 가졌던 윤씨 같은 이들이었다. 저자는 임시정부의 어머니들과 아내들의 이름도 호명했다. 이들은 쫒기는 길 위에서도 임정의 살림을 돕고 서로를 보살폈으며 자녀들을 가르쳤다.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문제와 싸우며 가족과 임시정부를 지켜낸 이들 역시 독립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장강일기는 우리의 독립이 결코 외세에 의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저자는 독립은 독립하고자 하는 자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223)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일제에 부역하며 변절해갈 때, 어떤 이들은 승산 없어 보이던 거대한 부조리에 맞서 분연히 저항했다. 후자의 존재야말로 우리가 당당히 독립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제 나는 안다.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는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묵묵히 나아갔던 이름 없는 영웅들에 빚지고 있음을 말이다.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고 되찾아주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




[1] "첫 아이를 잃은 갓 스물 아낙네의 말 못할 심정, 남편없는 시댁에서의 고달픈 시집살이, 며느리를 늘 친딸처럼 감싸주시고 귀여워해 주시던 시아버님의 구국이라는 대의를 위한 망명. 이 모든 조건이나 상황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판단을 흐리게 하는 안개였다. 도무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방으로 둘러쳐진 장막이었다."(45)

[2] "이 길은 한 여인의 길이다. 열 한 살에 시집와 세상 문을 닫고 규방에 갇히고, 열 아홉에 첫아이를 낳아 잃고, 남편을 떠나보낸, 가슴 얼어 오는 그 모든 사연을 십대의 나이에 모두 치른 한 여인의 길이다."(49)

"이 길은 모진 풍파로부터의 도피도 아니며, 안주도 아니다. 또다른 비바람을 이번에는 스스로 맞기 위해 떠나는 길이다."(49)

[3] "상해에 발을 붙인지 달포 남짓 지났을 때였다. 좋게 말하면 대담하고, 아무리 잘 봐준다 해도 당돌하기 그지없는 내 기질이 또 한번 살아나기 시작했다. (...) 국내에 들어가서 돈을 구해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55)

[4] "열차에 오르기 직전 친오라버니같은 그분이 미소를 띠며 거센 평안도 사투리로 내게 한 말을 되씹어 볼수록 독립운동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나라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가를 되뇌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60)

[5] "밤의 강 소리는 사람을 위협한다. (...) 전혀 으르렁거리지 않으면서도 사방에서 사람을 옥죄고 들었다. (...) 방향을 알 수 없는 이 곳 저 곳에서 불쑥불쑥 일어나는 물소리는 좌우편에서 속삭이듯 달려들어 양어깨를 짓누르다가도 어느새 뒷덜미를 파고들곤 했다. 목청높은 협박이 아니라 사람을 은근히 겁에 질리게 하는 고요한 위협이었다."(64)
- 처음 어두운 밤에 압록강을 건넌 여사의 소회

[6] "1924년 12월에 나는 다섯번째로 본국에 들어오게 됐는데, 이 다섯번째의 본국행에서는 임정의 공적인 임무는 띠지 않았다. (...) 이 기간 중에도 나는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문학과 역사에 관심을 기울여 책을 늘 손에 잡고 있었는데, 학교 교육의 부족을 메우느라 내 나름대로 무진 애를 썼다."(89)

[7] "여기저기 다니다가 배가 출출하면 서너 시쯤 백범이 우리집으로 온다.
‘후동 어머니, 나 밥 좀 해줄라우?‘
‘암요. 해드려야죠. 아직 점심 안 하셨어요? 애 좀 봐주세요. 제가 얼른 점심 지어드릴께요.‘"(96)
- 임정의 어른 백범을 가까이 모신 여사가 기억하는 백범의 소탈한 모습

[8] "강소성에서 출발하여 안휘, 강서, 호남, 광동, 귀주성을 거쳐 사천성에 이른 장장 5천 킬로미터의 피난길은 중공군이 강서성에서 섬서성까지 쫓겨난 만리장정과 견주어질 만한 것이었고, 사실 우리끼리도 이 피난 행각을 만리장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168)

[9] "상해에서 시아버님을 모시던 일, 독립운동자금을 품에 감추고 가슴조이며 거룻배로 압록강을 건너던 일, 일본군에 쫓겨 아슬아슬하게 상해를 빠져나와 기강까지 허겁지겁 도망왔던 일. 그 20년은 숨어 산 20년이었고 쫓겨다닌 20년이었다."(173)

[10] "우리의 독립이 세계질서와는 전혀 무관하게 전적으로 우리들의 의지에만 달려 있지는 않다는 것이 냉엄하고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열강들에게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결국 독립은 독립하고자 하는 자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223)

[11] "조국의 독립이라는 절대 절명의 대명제 아래 항일투쟁에 뜨거운 피를 뿌려 식혀 가며 몸을 불사른 혁혁한 이름의 투사들에서부터 성명 삼자도 알려지지 않은 채 어느 이름모를 낯선 골짜기에서 항일이라는 돌덩이 하나만을 머리에 베고 숨을 거둔 무명열사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장하고 엄숙한 숨은 뜻이 없었더라면 과연 오늘의 이 순간이 있었을까? 이름이 났건 이름이 없건간에 그들의 의기와 그들의 피가 없었더라면 결코 8월 15일은 오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233)

[12] "토교로 돌아온 후 중경으로부터 전해 듣는 소식들은 하나같이 안타깝고 가슴 답답한 이야기들이었다. 남쪽에 진주한 미군이 일본의 앞잡이들을 그대로 관리로 임용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울분이 복받쳐 올랐다."(236)

[13] "불혹이라는 사십의 나이에 비로소 조국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조국의 이름으로 이역에서 산화한 이들을 동정호 물에 흘려보내면서 조국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깨달았다. 나는 아들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말해 주었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고.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255)

[14] "간다. 돌아간다. 이제야 나 살던 산천에 간다. 전쟁난민이라고 미군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면 어떠랴. 돼지우리같은 엘에스티 난민선을 타면 어떠랴. 거룻배라도 좋다. 주낙배라도 좋다. 고향으로 가는 것이라면 일엽편주인들 어떠랴. 우리는 난민이었고 거지떼였다. 그렇게 추방당했다."(265)

"바라지도 않았던 일이지만, 우리를 마중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쓸쓸한 귀국이었고, 참담한 귀향이었다."(269)

[15] "인간만사 새옹지마. 이 한마디는 아흔 살 가까이 살아온 내가 지금 늘 가슴 한켠에 품고 있는 말이다. 사람의 일이란 잘 되고 잘못되고를 따질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를 먼저 헤아려야 되지 않을까."(287)

[16] "백범은 갔다.
‘무릇 난 자는 다 죽는 것이니 할 수 없는 일이어니와, 개인이 나고 죽는 중에도 민족의 생명은 늘 있고 늘 젊은 것‘이라고 말했던 백범은 갔다."(294)

[17] "6.25라는 거목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회한의 잔뿌리를 내려 박았다. 그리고 이 나라의 땅덩어리뿐만 아니라 사람과 정신마저도 두 동강 내버렸다. 그런 6.25는 내게 처참하거나 극악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슬그머니 성엄(남편)을 빼앗아 갔고, 맹랑하게 나를 한 달 동안 감옥에 집어 넣었었다. 그리고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315)

[18] "올해 들어서 갑자기 몸이고 정신이고 예전같지가 않으니 나이는 속일 수가 없는가 보다. 그래도 그나마 머리 속에 박혀 있고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길래 없는 글 재주며 부족한 소견으로 원고지를 메웠다."(323)

[19] "아범이 성엄의 일지와 사진들, 내가 즐겨 읽는 책들을 따로 정성들여 싸놓았다. 내가 내 손으로 들고 갈 것들이다. 성엄의 일지 안에는 시아버님을 비롯해서 임정에 몸 담았던 혁명투사들의 이름이 낱낱이 적혀 있다. 내가 본국을 드나들던 때의 기록도 빼놓지 않았다. 그 일지만큼은 내가 내 손으로 들고 갈 것이다."(325)

[20] "비록 셋방이었지만 집안의 흔적이 묻어나는 짐들을 차곡차곡 꾸리는 게 참 보기좋다. 나도 거들어야겠다. 이 아침에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싸는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와 손녀에게 내 손길을 주어야겠다.

조국의 타오르는 아침을 맞게 될 그들에게."(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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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1-30 1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말들입니다!
 





파인먼 평전과 제임스 글릭의 교양과학서 4부작




 

어렸을 때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간 시간이 무척 아쉬운 일이다. 학창 시절에 읽은 책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성인이 되어 블로그와 온라인 서재를 통해 읽고 쓰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싶다. 책을 읽지 않은 아이였기에, 위인전 역시 좋아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그림이 들어간 장영실 위인전은 좋아했던 기억이 얼핏 나긴 한다. 하지만 이것도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위인전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위인전을 읽을수록 이들이 나와는 동떨어진,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만 굳어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한 사람의 일생을 제3자가 갈무리한 평전 류의 도서들을 읽게 되었다. 평전이라면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작가의 숭배비판 혹은 평가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작가 연보가 아닌 이상 사실만 나열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평전들은 상당수가 숭배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다. 우리나라의 위인들만 완전무결한 존재일 리 없는 것이다. 반면 외국 인물에 대한 평전은 꽤나 솔직하다. 개인적인 치부도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건 무엇보다 인물에 대한 개인사가 출간물에서 허용되는, 혹은 터부시되는 영역이 문화권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다. 위인의 모습과 성격이 어떠했는지 간에 그건 그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일 뿐이다. 평전에서는 인물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예를 들면, 수전 손택에 대한 평전 수전 손택(다니엘 슈라이버, 글항아리, 2020)이 바로 떠오른다. 이 책에는 제3자가 바라본 손택의 면모가 다층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손택의 천재적인 능력과 활동가적 지성인의 면모 등이 다루어져 있으면서도, 그녀의 인간적인 미숙함과 단점들(거짓말 잘하기 등), 심지어 찌질해 보이는 면모까지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문화계의 정서로는 익숙하지 않은 글쓰기 방식이다. 손택 개인의 치부가 평전에 담겨있다고 여길지도 모르나, 독자로서 나는 그녀를 함부로 폄하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그녀의 삶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그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까닭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상처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의 사회 질서에서 겪고 느꼈을 고통들에 맞선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위인에 대한 평전이라면 어땠을까? 기술되는 위인의 치부까지 노출되어 있는 평전이라면, 아마 그 저자는 후손들의 줄이은 소송제기로 곤란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문화권의 차이로 볼 수도 있고, 혹은 삶의 이해에 관한 관용도의 차이, 문화권마다의 정처 차이로 볼 수도 있겠다. 물론 정답이란 없는 문제다. 하지만 숭배로만 일관된 평전보다 독자에게 인물에 대해 보다 입체적으로 인물의 면모를 제시해주는 것이 평전의 역할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새해가 시작되고 첫 평전을 만나게 되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삶을 다룬 평전이다. 사실 절판되었던 천재가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파인먼 평전제목으로 새로 나오게 되었다. 십 수년 전에 나오고 절판되었는데, 다시 출간된다는 문구를 어느 책의 소개란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이제야 나오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주에 파인먼의 강연 몇 가지를 모은 책 과학이란 무엇인가?(승산, 2008)를 읽었는데, 마침 파인먼의 평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새로 출간된 평전의 저자는 제임스 글릭이다.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된 교양과학서의 전설 카오스를 쓴 저자이다. 나에게도 그랬지만, 전 세계에 카오스’, ‘나비 효과라는 용어를 각인시킨 인물이 바로 제임스 글릭이지 싶다. 



































 

지금 다시 보니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제임스 글릭의 저서 4권을 출간한 셈이다. 카오스를 비롯하여 인포메이션,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파인먼 평전이렇게 제임스 글릭 4부작이 완성되었다. 이번에 평전이 나온 김에 이 4부작을 다시 역주행을 해볼까 한다. 파인먼 평전을 시작으로, 학창시절에 읽고 나서 기억도 안 나던 카오스, 그리고 읽다가 멈추었던 인포메이션를 이어서 읽어봐야지 싶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일 텐데, 저자가 역사적으로 시간을 이해하려던 인물들의 이야기 조사를 엄청나게 했다는 인상만 남아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파인먼 평전은 번역자도 바뀌었다. 내가 믿고 구매하는 양병찬 번역가가 참여한 결과물이다. 올 초에는 파인먼 평전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제임스 글릭은 기본적으로 저널리스트다. 영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문학을 전공한 기자이자 작가가 과학 분야에 대한 방대한 교양과학서를 쓰고, 과학자에 대한 평전을 써낸 셈이다. 파인먼 평전의 구판인 천재를 읽어보았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대강의 흐름만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과학 분야를 아우르는 저자의 폭넓은 자료조사와 글쓰기를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것은 나뿐일까 싶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고등학교 때 동네 서점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후 파인먼의 교양서 몇 권을 읽어보았기에 파인먼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 파인먼에 대한 애정을 듬뿍 이야기하는 김상욱 교수도 학창 시절에 파인먼을 만난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학창 시절의 나는 처음에 그의 엉뚱하고 특이한 행동들에 흥미를 느꼈을 테지만, 이런 점들은 파인먼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어쩌면 방송이나 기타 매체에서 파인먼이란 상품을 팔기 위한 표제로 파인먼의 기이한 행동들을 언급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일생 전체를 따라가는 일이다. 그 인물의 장점과 단점, 업적과 치부까지 모두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파인먼은, 어느 누구의 삶도 마찬가지이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기이한 행동들로 단정하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그러한 특이한(?) 방식으로 물리학에 진정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평전은 인물의 천재성을 충분히 보여주겠지만, 이와 더불어 실수투성이의 인간관계와 인간으로서의 불완전함도 아울러 보여준다.


 

나에게 한 인물의 평전을 읽는 일이란 묘사되는 인물에 대한 작가의 숭배비판모두를 접하는 일이다. 평전을 썼던 제임스 글릭의 입장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물에 대해 글을 쓰는 이는 대상에 대한 비판 이전에 대상에 대한 애정, 숭배가 전제된다. 내가 평전을 읽는 이유는 세계에 의도치 않게 내던져진,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의 살아감그 자체가 내게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때론 기술되는 인물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도,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에 공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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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1-29 2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만이라고 했었는데 뭐가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어요.
평전을 거의 못 읽고 있긴 합니다만 울나라에선 그런 경향이 있긴하죠.
성인용 위인전기. ㅋ 소송 골치 아프죠.
읽어보고 싶긴하네요.
김상욱 교수도 파인먼을 그렇게 좋아하던데..ㅋ

초란공 2023-01-29 20:57   좋아요 2 | URL
아 김상욱 교수도 있었네요. 저도 ‘파인만’이 익숙한데 언제부터 ’파인먼‘이 되었을까요^^;;

고양이라디오 2023-02-10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언제부터 파인먼이 된거죠?
파인먼씨 좋아하는데 이 책 꼭 읽어봐야겠네요ㅎ

제임스글릭의 책들도 기대가 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