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호메로스 지음, 이준석 옮김 / 아카넷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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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새로 나온 <일리아스>와 함께 보내게 되었네요. <오딧세이아>도 새로 만나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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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원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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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이 추적하는 타자화의 과정

- 타인의 기원를 읽고

 


토니 모리슨을 소개하는 데 공통적으로 제시되는 경력은 언론 최고의 상인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이다. 여기에 한 가지 정보를 덧붙인다면, 그가 평생 성차별인종차별의 문제와 마주하고 탐구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경력에서 놀랐던 부분은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1993년에 흑인 여성 작가 최초로 수상했다는 사실이었다. ‘인종에 따라 다르게 흘러갔던 시간을 감지할 수 있었던 기록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으며, 소설가와 학자로 존재감을 분명히 남겼던 인물이다. 오늘 읽은 에세이 타인의 기원은 작가가 평생 추구해온 작업과 관심을 간결하게 정리한 글이었다.


 

저자는 무엇보다 와 다른 존재를 만들어 내는 일이 왜 필요했던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우선 저자는 한 집단이 강한 결속을 바탕으로 타 집단을 만들어내고, 이 구도를 유지한 채 이 집단을 지배 내지는 통제하는 데서 오는 이득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짐작하겠지만, 타자화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종 차별이다. 작가 토니 모리슨이 평생 관심을 갖고 허물고자 했던 공고한 성이었다. ‘인종이라는 개념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지적한 바 있는, 현생 인류의 허구 지어내기 본능에 딱 들어맞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는 토니 모리슨이 자신의 글에서 인용하는 역사가 넬 페인터의 말 인종은 관념이지 실재가 아니다.”(15)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렇게 허구적인 인종 개념에 근거한 타자화 과정은 타자화된 집단에 대한 지배권(통제권)을 장악하고자 한 집단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상황 역시 역사가 브루스 바움의 한 마디, “인종은 권력의 결과물이다”(57)라는 말로 표현된다.


 

세계사에서 대표적인 인종차별 사례는 미국의 노예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인종차별은 비단 미국인들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모든 인종을 포함하는 인간 집단에서 타자화의 과정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집단은, 권력이 있든 없든, 자기 집단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타자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비슷한 방식으로 타 집단을 통렬히 비난해왔다.”(29)

 


이 메커니즘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은가? 이 타자화 메커니즘은 인간의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전쟁과 애국심, 당파간의 대결, 계급 간의 투쟁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토니 모리슨은 흑인-여성으로서 주로 백인에 의한 인종 및 남녀 차별의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고민해왔다. 이는 그가 이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와 같은 작업을 평생 멈추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다만 타인의 기원에서는 주로 인종차별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서구 백인 사회에서 이 인종이라는 개념이 권력과 통제의 필요에 의해 발명되어진 관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다. 나아가 이 관념에 공고히 뿌리내린 인종적 우월감이 이들 집단의 결속 도구, 접착제가 되어 주었음을 거듭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타자화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저자에 따르면, “타자화는 강의나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배우게 된다.”(30) 이 대목을 읽고 곧바로 떠오른 기억이 있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 한 아이(아이는 자신이 국내 모 재벌 기업의 손녀라고 말하곤 했다)가 수업 중에 나를 보고 아파트 경비원 같아요라고 한 적이 있었다. 아이는 나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어보였다. 그저 해맑게 내가 입은 검은색 바지와 남색 폴로 티셔츠를 보고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모리슨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아이의 부모가 나와 같은 차림을 한(또는 지위에 있는) 사람을 타자화하는 모습을 바로 아이가 습득하고 내면화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토니 모리슨이 인종차별과 관련하여 언급한 타자화 과정 역시 남이 하는 것을 따라 배운다는 점에서 내가 겪은 경험과 다를 바 없을 것이었다.


 

다만 이 경험에서 내가 안타깝고 두려웠던 것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아직 들여다보고 성찰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성장 후에도 지닐 수 있는 무지의 선량함이었다.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습관적으로 말하거나, 상대방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성인이 되지 않길 바랄뿐이었다. 무지의 선량함이야말로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개념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따져보게 된다. 물론 나 역시 무지의 선량함을 가진 자의 범주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의도적이지 않고, 인지하지 못하는 나의 선한말과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될 수 있지는 않은지, 나아가 사회에 존재하는 부조리와 악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무심코 참여하는 것은 아닌지 거듭 질문해볼 일이다.


 

이제 저자는 인종차별의 정체성 정치에 관한 논의를 좀 더 정교하게 문학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간다. 그는 노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백인 집단이 동원한 방법 두 가지를 언급한다. 하나는 이미 익숙하게 보아온 폭력이라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파악하기 힘든 방법으로, 제도 자체를 낭만화하는 일이다. 제도 유지를 위해 폭력에 호소하는 방식은 이미 많은 문학에서 제시되고 있다. 당장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가 떠오른다. 이 소설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신체적·심리적 폭력은 타자화된 대상을 통제하는 가장 우선적인 방법이다. 작가의 분노는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보다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그들(백인 노예 주인들)이 채찍질을 하다가 지쳐 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가하는 처벌은 교정을 위한 행위라기보다 엄연히 사디즘 행위다.”(62)라고 말이다.


 

한편 토니 모리슨은 어렸을 때 집을 방문한 증조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증조할머니는 방에 들어와서 바닥에서 놀고 있던 모리슨 자매를 보고 한 마디 내뱉었다. 얼굴을 찡그리며 지팡이로 자신을 가리키며 섞였구만, 이 애들.”(24)이라고 했던 것이다. 흑인에게 섞였다는 말은 단순히 혼혈임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는 말이 아니었다. 이 말은 조상 중에 누군가가 백인 노예 주인에게 강간당했다는 표현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섞였다라는 표현은 흑인 가족에 대물림되어 상처를 주는 폭력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역시 인종이라는 허구적 개념이 흑인들에게 (후손의 자기혐오와 같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나아가 저자는 영국 귀족 토마스 티슬우드의 일기를 통해, 노예에 대한 강간을 엄연한 주인의 권리로 여기고 있었던 정황을 고발하고 있기도 한다.


 

하지만 노예 제도 유지에 동원되는 보다 정교한 방법은, 이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을 무화시키고, 나아가 이를 선호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토니 모리슨은 문학에서 그 예를 찾는다. 하나는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노예 제도의 낭만화 장치를 언급한다. 백인으로서 스토 여사의 작품은 결국 백인 독자를 위해 쓴 소설이라고 지적한다. 백인과 흑인 아이의 순수함과 같은 장치를 통해 노예 제도의 성과 낭만을 무균 상태로 만들었으며, 여기에 향수를 뿌리기도 했다’(41)고도 말한다. 토니 모리슨의 비판적인 시각은 우리가 단순히 노예제도에 대한 묘사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정밀하게 대상을 들여다보도록 주문한다.

 


저자의 민감한 눈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밍웨이도 비켜가지 않았다. 그는 헤밍웨이의 소설에서도 피부색에 따른 차별을 낭만화하는 방식을 찾아내었다. 이를 테면 가진 자와 못가진 자 To Have and Have Not에서 럼 밀수업자 백인과 배에 탑승한 흑인이 쿠바 관리들과 충돌하여 총을 맞은 상황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다. 두 사람이 모두 다친 상황에서 흑인은 더 심하게 다친 백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나약한 흑인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에덴 동산 The Garden of Eden에서는 헤밍웨이가 검은 육체는 매우 아름답다는 주제로 판에 박힌 인종적 관념을 에로틱하고 매혹적인 느낌으로 교묘히 바꿔버렸다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남성의 시각에 이미 길들여지고 익숙해져 있는 독자(나를 포함하여)가 놓칠 수밖에 없는 지점을, 토니 모리슨은 정밀하고 능숙하게 짚어 독자를 일깨워준다.

 


평생 여러 방식의 차별문제에 주목하여 탐구했던 작가의 에세이 타인의 기원은 얇은 책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그는 20세기 흑인들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닌 상황인데도, 여전히 실제적인 위험을 마주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과 맞서 싸우며 흑인성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저자가 제기한 문제들은 지금 우리 사회를 보더라도, 여전히 매우 유효하다고 믿는다. 이미 익숙한 성차별뿐만 아니라, 여전히 생산되고 있는 난민들에 관한 문제,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 문제, ‘성소수자와 퀴어 축제와 관련한 문제 등에서 이 타자화의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는, 아마도 타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타인에 대해 상상해보는 일은, 나 역시 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타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울러 어느새 타인이 될 수 있는존재의 연약함까지도 끌어안는 일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 타자화과정에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허구적 관념에 기반한 권력과 통제의 욕망이 숨어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대작가가 타계한 지 4주기가 되어간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책에 소개된 그의 말 한마디를 인용하기로 한다. 어쩌면 이 두 문장에 책의 주제가 다 담겨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종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극화하기 위해 시종일관 애썼다. 그렇게 해서라도 인종이라는 구성물이 얼마나 유동적이고 철저히 무의미한 개념인지 알리고 싶었다.”(112)





[책속으로]


[1] "인종은 관념이지 실재가 아니다."(15)
- 역사가 넬 페인터의 말

[2]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집단은, 권력이 있든 없든, 자기 집단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타자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비슷한 방식으로 타 집단을 통렬히 비난해왔다."(29)

[3] "타자화는 강의나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배우게 된다."(30)

[4] "(해리엇 비처) 스토는 노예제도의 성과 낭만을 무균 상태로 만들었으며, 게다가 그것에 향수를 뿌리기도 했다."(41)

[5] "미국으로 온 이민자들은 ‘진짜’ 미국인이 되려면 태어난 나라와의 연을 끊거나 그 연을 아주 경시함으로써(자기 부정) 백인성을 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국성’이 무엇인가 하는 정의는 (애석하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곧 ‘피부색’과 동일한 의미가 되었다."(44-45)

[6] "인종은 권력의 결과물이다."(62)
- 역사가 브루스 바움의 말

[7] "노예를 굳이 전혀 다른 종으로 취급해야 하는 필요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자기 자아가 지극히 정상임을 확인하려는 그들(백인들)의 절박한 시도가 아닐까 싶다."(62)

[8] "헤밍웨이는 이런 판에 박힌 인종적 관념을 에로틱하고 매혹적인 느낌으로 교묘히 바꿔버리기도 한다."(84)

[9] "이탈리아나 러시아 인이 미국으로 이민 오면 ‘고향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무언가가 되어야만 한다. 즉 백인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 (이것은) 어쨌거나 항구적인 정체성을 갖게 되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여러 장점과 특정한 자유도 따라온다. 반면 아프리카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한 번도 그런 선택권을 가져보지 못했다."(89)

[10] "오직 이타적으로 남을 돌보는 일만이 진정한 성숙에 이르게 한다."(92)

[11] "나는 기필코 값싼 인종주의를 무력하게 만들 것이며, 피부색에 대한 쉽고 간단하며 일상적인 집착을, 노예제도 그 자체를 상기시키는 이 집착을 절멸시킬 것이다. 그 신빙성조차 떨어뜨릴 것이다."(95)

[12] "나는 인종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극화하기 위해 시종일관 애썼다. 그렇게 해서라도 인종이라는 구성물이 얼마나 유동적이고 철저히 무의미한 개념인지 알리고 싶었다."(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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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20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와 다름을 통해 이루어지는
타자화를 극복하고, 상대방을
포용하기가 쉽지 않음을 다시
한 법 깨닫게 됩니다.
 
정보의 지배 - 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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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신세계의 모습

- 정보의 지배를 읽으며

 


출근하기 전에 잠시 집어 들었던 한병철의 정보의 지배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읽고 글을 남겨본다.


사회비평가이자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닐 포스트먼은 죽도록 즐기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더스) 헉슬리는 이렇게 말을 잇는다. ‘1984에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사람들을 통제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줌으로써 사람들을 통제한다. 요컨대 오웰은 우리가 몹시 싫어하는 것이 우리를 몰락시킬 것을 두려워했고, 헉슬리는 우리가 몹시 좋아하는 것이 우리를 몰락시킬 것을 두려워했다.” (한병철, 정보의 지배, 33면에서 재인용)


 

철학자 한병철은 헉슬리가 구축한 신세계가 오웰의 감시국가보다 여러 면에서 우리의 현재 모습에 더 가깝다고 진단한다. 저자가 말한 대목을 좀 더 들어보자.


 

멋진 신세계는 진통사회다. 거기에서 고통은 기피된다. 강렬한 감정들도 억압된다. 모든 바람, 모든 욕구는 곧바로 충족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재미, 소비, 즐거움에 휩싸여 몽롱해진다. 행복을 향한 강박이 삶을 지배한다. 국가는 주민들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소마soma'라는 약을 나눠준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텔레스크린 대신에 감각영화관이 있다. 그 영화관은 향기 오르간등을 써서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마비시킨다.”(같은 책, 33)


 

이런 대목을 읽으면 한병철의 언급대로 우리는 지금 헉슬리의 신세계한 복판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름이 돋는다. 이 세계에서 국가가 주민들에게 나눠준다는 약(소마soma)은 그리스어로 영혼과 대비되는 육체’, ‘육신을 가리키는 단어에서 온 것일 테다. 우리 몸, 신체의 욕망을 곧바로 충족시켜주는 쾌락의 영약이라는 의미에서 그럴듯한 이름이다. 몇 년 전 자동차 업계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감정 반응 자동차를 선보였던 기사가 기억난다. 이 자동차에서는 운전자 및 탑승자의 신체, 심리 상태 등을 감지하여 이들의 감정을 돌봐주는 역할을 하는 기능인 것이다. 기분이 좋으면 즐거운 음악이나 기분이 좋아지는 향을 내뿜고, 우울하거나 슬퍼 보이는 표정이라면 이 또한 감지하여 기분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끊임없이, 잠시도 자신만의 사적 공간이 소멸된 환경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한병철의 언급대로 우리의 생활에 이미 행복을 강요하는 강박이 자리 잡은 듯하다.


 

특히 오늘 짬을 내어 읽은 대목에서는 텔레비전이 담론을 파편화한다.’(31)란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대통령 후보의 토론회를 비롯하여 사회의 문제들을 다루는 프로는 점차 단축되고 오락화된다. 나아가 일종의 쇼, 공연이 되어 가면서 이미지 정치가 되어 간다는 의미였다. 대신 시청자들은 오락프로그램이 주는 행복에 중독되어간다는 것이다. 결국 속이 빈 이미지들, 이러한 쇼들은 헉슬리의 소설에서 국가가 주민들에게 내어주는 약 소마에 다름 아닐지도. 공포의 지배 방식에서 한 층 업그레이드되어 이제 이미지 소비자들은 스스로, 능동적으로 이 약에 중독되어 간다는 진단을 저자는 내놓는다. 자가당착적이지만 매우 중독적인 도취의 형태다. 현대 SF의 거장인 필립 K. 딕이 언급한 바대로, 현대사회의 특징 하나는 공적 공간의 소멸인 것이다. 이제 공론장은 사적 공간들로 파열해버리고 있다.


 

오늘 독서는 여기까지. 저자는 자신의 진단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기대해본다.   


[1]
"(올더스) 헉슬리는 이렇게 말을 잇는다. ‘《1984》에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사람들을 통제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줌으로써 사람들을 통제한다. 요컨대 오웰은 우리가 몹시 싫어하는 것이 우리를 몰락시킬 것을 두려워했고, 헉슬리는 우리가 몹시 좋아하는 것이 우리를 몰락시킬 것을 두려워했다." (한병철, 《정보의 지배》, 33면에서 재인용)

[2]
"멋진 신세계는 진통사회다. 거기에서 고통은 기피된다. 강렬한 감정들도 억압된다. 모든 바람, 모든 욕구는 곧바로 충족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재미, 소비, 즐거움에 휩싸여 몽롱해진다. 행복을 향한 강박이 삶을 지배한다. 국가는 주민들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소마soma‘라는 약을 나눠준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텔레스크린 대신에 ’감각영화관‘이 있다. 그 영화관은 ‘향기 오르간’ 등을 써서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마비시킨다."(같은 책,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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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의 말 - 광기와 지성의 SF 대가, 불온한 목소리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필립 K. 딕 지음, 데이비드 스트레이트펠드 엮음, 김상훈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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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1960년대 초 모습 / 오른쪽: 1970년대 모습)





인간의 조건을 집요하게 탐구했던 작가의 인터뷰

- 필립 K. 딕의 말


필립 K. (Philip K. Dick,1928.12.16 1982.03.02데이비드 스트레이트펠드 지음

김상훈 옮김 | [마음산책] | (2023)

 



나는 글 쓰는 게 좋네. 정말로 좋아하지. 난 내가 창조한 등장인물들을 사랑하거든. (...) 책을 탈고하면 상실감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정도라네. (...) 소설을 탈고한다는 건 친구들을 영영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야.”(38)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의 원작자이자 SF 대가 필립 K. 딕의 인터뷰집 필립 K. 딕의 말을 읽었다. 딕은 캘리포니아의 명문 대학에 들어갔지만, 쓸모없는 지식을 배운다는 실망감과 불안증, ROTC 교련에 대한 거부감으로 대학을 중퇴했고, 곧이어 레코드 판매점 알바생이 되었다. 미래의 위대한 SF 작가에게 청년 시절은 대학을 관두고 나온 이후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십여 편의 소설을 광적으로 써댔지만 대부분 출간되지 못했던 암울한 시기였다.


 

이런 시절, 그에게 글쓰기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끝없는 자기 의심과 불안증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안식처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쓰는 행위만으로도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그런 청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소설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소설을 쓰며 우정을 나누었던소설 속 등장인물과 영영 헤어지는 일과 같다, 라고 했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가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친구들의 수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에서 작가 이전에 고독한 한 인간의 모습을 대면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잃어버린다고 상실감을 느끼는 남자. 나는 이걸 애착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가상의 인물과 형성한 긴밀한 유대감이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진다.


 

광기와 지성의 SF대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작가에게 글쓰기의 기능은 글쓰기 자체였다. 그는 글쓰기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목표라고 했다.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써야 했던 그는 많이 쓰던 시절에, 5년 동안 장편 소설 열여섯 편을 썼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광기나 다름없는 작업 속도다.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던 딕의 글쓰기 생활을 엿보건데, 글쓰기(또는 그 행위)에 대한 그의 집착을 견딜 수 있는 부인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하다. 훌륭한 작가와 훌륭한 남편이 양립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테다. 평생 그를 따라다닌 일종의 불안증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글쓰기는 그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글을 써댄 작가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난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던 게 아니라, 에너지가 고갈되었던 거야.”(91) 어쩌면 이 위대한 작가에게 편집증은 그를 작가로 만든 원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인공지능이 큰 화두다. 하지만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로봇 R.U.R.(1921)에서 로봇이란 용어를 처음 쓴 이후, 그리고 아이작 아시모프가 아이, 로봇(1950)에서 로봇 공학의 3원칙을 천명한 이래로 과학자들이 뛰어난 성능의 로봇과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사람들이 줄곧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 질문들을 간단히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딕이 인터뷰 곳곳에서 강연이나 작품을 통해 하려던 작업이 곧 진정한 인간을 정의하는 일이었다고 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필립 K. 딕의 작품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딕은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의 주제 두 가지 가운데 첫 번째 주제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첫 번째 주제는 본질적인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이고, 진정한 인간을 단지 인간인 척하는 존재와 어떻게 구별하는지에 관한 질문이라네.”(152)


 

생물학적으로 인간일지라도 우리 가운데에는 안드로이드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었다. 작가에게 진정한 인간이란 어떤 존재였던 것일까. “예를 들자면, 그릇된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걸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 ‘아니, 나는 죽이지 않을 거야.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존재.”(54)가 딕에게는 진정한 인간의 전형이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둘러싼 부조리에 맞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존재다. 그럼 작가가 집요하게 써나갔던 미래사회의 모습과 안드로이들에 대한 고민은 결국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던 노력으로 수렴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인 인상으로 판단하자면, 작가 필립 K. 딕은 지독히도 고독했던 인물이었으리라. 물론 스스로 자처한 면이 있긴 했지만 어떤 이유가 되었건 그에게 글쓰기란, 자신을 고립시키는 보이지 않는 망토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안증과 우울감, 그리고 인터뷰어가 끊임없이 제기하는 일종의 피해망상이라는 증세와 마주할 수 있게 해준 삶의 조건이 아니었던가 싶다. 따라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에 대해 성찰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작가는 자신이 기득권이 아니며, 강자가 아니었기에 약자에게 공감한다고 했다. 또한 이것이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영웅이 아니라 오히려 루저에 가까운 존재로 그려졌던 이유로 볼 수도 있겠다.


 

필립 K. 딕의 말에서는 작가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와 더불어 말년의 생각들이 부분적으로 담겨있는데, 그 중에서 작가에 관해 한 언론(<악튀엘 Actuel>)이 발표한 기사 내용 중에서 인상 깊은 부분이 있어서, 이 글을 인용하며 마무리해본다.

 


놀라움은 피해망상의 해독제다. 놀라움을 많이 경험하며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은 당신이 피해망상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준다.”(89)


 

원문의 놀라움이란 용어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는 이 용어를 삶에서 느끼는 경이와 같은 것으로 대체해보았다. 삶의 경이로움은 정확히 예상된 대로 일어나는 삶과 공고한 신념 체계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질이다. 오히려 우연성 속에서, 예기치 못한 발견의 순간 따라오는 경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놀라움을 느낄 줄 아는 존재야 말로 작가가 줄곧 질문으로 던지던,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필립 K. 딕이 끊임없이 글을 쓰며 44권의 장편과 120편에 달하는 중단편을 발표하며 이루어낸 작업은 결국 인간의 조건에 대한 탐구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1] "나는 글 쓰는 게 좋네. 정말로 좋아하지. (...) 책을 탈고하면 상실감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정도라네. (...) 소설을 탈고한다는 건 친구들을 영영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야."(38)

[2]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현실 세계에서 내게 위안을 주는 친구들의 수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겠군. 나는 소설에서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이 엄청난 용기를 발휘하는 순간을 묘사하면서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네. (...) 내가 쓰는 소설은 그의 용기에 대한 찬가라고 할 수 있겠지."(39)

[3] "(자신의 강연 <The Human and the Android>를 통해) 진정한 인간을 정의하고 싶었네. 왜냐하면 우리 중에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실제로는 안드로이드인 사람들이 있으니까. (..) 컴퓨터는 날이 갈수록 예민한 사고력을 가진 존재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도 점점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잖나."(53)

[4] "(진정한 인간이란) 예를 들자면, 그릇된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걸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 ‘아니, 나는 죽이지 않을 거야.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존재. 권위에 대한 일종의 망설임인데, 나는 이런 태도를 십대들, 이른바 ‘양아치 punk’라고 폄하되는 세대에서 봤다네."(54)

[5] "글쓰기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목표야.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 이를테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아내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글쓰기의 기능은 글쓰기라고나 할까."(66)
: 글쓰기의 기능에 대해.

[6] "개인의 삶은 이제 존재하지 않아. (...)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삶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사생활 범위의 축소야. (...) 모든 것이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간 거야."(75)

[7] "우리는 언제나 감시를 받고 있으므로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었어. 따라서 우리는 위선적으로 행동하거나, 거짓말을 할 여유 따위는 없다고 해야겠지. (...) 감시받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완전히 정직하게, 일관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해."(77)

"감시의 역기능은 어떤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겠지. 이건 인구가 밀집한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고. 무슨 얘긴지 알겠나? 고립이나, 은둔 따위는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야."(77)

[8] "놀라움은 피해망상의 해독제다. 놀라움을 많이 경험하며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은 당신이 피해망상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준다."(89)
: 딕에 관한 <악튀엘 Actuel> 기사 인용 내용.

[9] "전체주의는 국가뿐만이 아니라 좌파 파시즘, 심리학적 운동, 종교운동, 마약 중독 재활 단체, 권력자들, 책략가들 따위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어. (...) 내가 옹호하는 대의는 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의야. (...) 하지만 난 강자가 아니기 때문에 약자에게 공감한다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이 본질적으로 반(反)영웅들인 건 바로 그 때문이야. 거의 루저에 가까운 친구들이지만, 나는 혹독한 세상에서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특질을 부여하려고 노력한다네."(114)

[10] "첫 번째 주제는 본질적인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이고, 진정한 인간을 단지 인간인 척하는 존재와 어떻게 구별하는지에 관한 질문이라네."(152)
: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의 주제를 이야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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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5-04 1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10여년 사이 몰라보게 늙었네요.
작가가 된다는 건 이런 외모의 변화도 감수해야하는 건가 봅니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으니...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탓도 있을 것 같고.ㅠ

얄라알라 2023-05-07 15:09   좋아요 1 | URL
사진 밑 캡션을 유심히 보았는데, 최대 19년 차이일 텐데 참 많은 변화가 느껴지네요.
장편 44권
120편의 중단편...후덜덜한 수준으로 창작을 하신 분이라, 산고로 치면 몇 년 내내 산고 겪으신 것과 같겠어요

얄라알라 2023-05-07 15: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한 책 함께 읽기, 올리버 색스 책을 마지막으로 요샌 겹치는 책이 많지 않았지만
저도 드디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읽으려 합니다
초란공님 올려주신 이 책은 안타깝게도 제가 사는 지역 전체 도서관에 한 권도 없어서 구매각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데, 리뷰를 너무도 이해 잘 가게 매끈하게 써주셔서 소설 읽기 전에 큰 도움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6-08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초란공님^^

이 페이퍼, 당선이네요. 넘 축하드립니다.
저는 이 책은 못 읽고, 다른 걸로 필립 K 딕 접했어요.
다시금 축하드립니다
 
도도가 있었다 - 사라지고 살아남고 살아가는 생명 이야기 푸릇푸릇 지식 1
이자벨 핀 지음, 전진만 옮김 / 시금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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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시각과 인간에 의한 과잉살육의 폐해를 모든 세대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 눈에 잘 보이는 큰 동물들뿐만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에게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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