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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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독은 남용되었으나, 이 벽으로부터 탈출할 길은 없다

- 대성당 읽으며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집 대성당을 읽는다. 특히 마지막에 실린 단편 대성당 Cathedral을 읽을 때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다. 많지는 않지만 부부, 혹은 부부로 보이는 커플이 나오는 그림말이다. 호퍼의 그림이라하면 도시인의 고독을 그려낸 화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도시의 어딘가에 혼자 앉아 있는 여인들을 그린 작품들을 우선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버의 단편 대성당의 경우는, 대도시 보다는 중소도시 외곽의 전원 속에 살고 있을 법한 중년 부부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이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와 아내는 곧 아내의 지인인 맹인 남자를 며칠간 접대하기로 되어 있다. 맹인 남자는 최근 아내와 사별하고 친척을 방문하던 중이었고, 화자의 아내는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락해온 맹인의 마음을 다독거려 주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소설의 시작부터 화자는 외간 남자인 맹인을 집 안에 며칠만이라도 들이는 것이 탐탁지 않은 것이다. 아내의 전 애인의 일을 떠올리기도 하다가 심지어는 아내가 맹인과 불륜은 아닐까하는 의심까지도 해보는 것이다.


 

카버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못하여 단정할 수는 없으나, 그의 소설쓰기 방식은 작가의 내면에 떠오르는 생각들, 스쳐가는 의식들을 구구절절 기록해대는 스타일은 아닌 듯하다. 간결하게 상황만을 보여주는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소설에 묘사된 화자의 행동 양식이나 아내와의 대화로 미루어보면, 이 중년 남자는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중소도시의 옹졸하고 편견에 치우친 중년 아저씨인 것이다. 어쩌면 그의 문장들이 너무나 평이해 보여 행간의 떠도는 단서들, 이미지들을 내가 놓치고 있지나 않은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미국 최고의 단편 소설 작가라는 찬사와 언 듯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내가 읽고 있는 것이 맞나 의심이 드는 것이다. 그만큼 카버의 묘사는 군더더기 없이 최소한의 정황만으로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해석에 참여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것일까?

 


중년으로 보이는 화자는 평범한 아재들과도 다르게 친구도 많지 않은 듯하다. 그저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하루 종일 TV앞에 앉아 위스키를 홀짝거릴만한 스타일인 남자다. 그러니 맹인과의 대화에서도 상대를 주시하고 처지에 공감하기 보다는 철없는 질문도 하며 아내의 구박을 받기도 일쑤인 남자다. 이 철부지 중년 아재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아내는 며칠간 맹인 남자(로버트)를 집에서 접대하고 돌보면서도 내심 불안하고 신경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확실히 화자는 아내와의 소통도 최소한의 것만 간신히 유지하고, 함께 정기적으로 어울리는 남자 패거리도 없는, 말하자면 지역사회에서도 고립된 아웃사이더 스타일에 가까운 것 같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여러 그림들 중에서 그가 그린 도시의 건물들에는 창문 하나가 열려 있는 장면도 여럿 있지만, 카버의 단편 대성당을 읽으며 떠올리는 화자와 부인의 모습은 <Cape Cod Evening>(1939)에 가깝다고 느꼈다. 이 그림에는 우선 집의 문과 창문이 모두 굳게 닫혀 있다. 마치 입을 꼭 다물고, 팔짱을 끼고 있는 부인의 무표정한 표정처럼, 여기에 소통은 부재해 보이는 것이다.

 


그림에서 콜리 종으로 보이는 강아지는 집 앞의 누렇게 변한 풀밭 속에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반면 뒤의 두 사람의 시선은 강아지가 아니라 커플 앞의 허공 어딘가에서 정해진 곳 없이 부유하는 듯하다.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며 말없이 생각에 잠긴 듯 보이기도 한다. 청록색 드레스를 입고 팔짱을 낀 여인은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말하기 적당한 순간을 기다리며 첫 마디를 벼리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편안한(?) 복장으로 앉아 있는 남자는 부인의 시선을 외면한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소통이 부재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빛바랜 보석처럼 옅은 광택을 띠는 부인의 청록색 드레스는, 부인의 은폐되고 억눌린 희망을, 이루어지지 못한 소망을 말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따뜻함의 감정보다는 서늘한 단절의 기운을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커플 사이에는, 어쩌면 늘 그래왔듯,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것 같이 보인다. 대성당에 등장하는 부부처럼 말이다. 물론 화자의 부인은 공감력이란 제로에 가까운 철부지 남편을 한심하게 생각할지언정, 타인에 대한 친절함과 공감력은 갖춘 사람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소설에서는 부인보다는 화자의 말과 행동에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호퍼의 그림에서도 무표정해보이는 부인의 모습보다는 시선을 외면하고 있는 듯 아래를 향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더 관심이 간다. 카버의 단편에 나오는 화자의 모습과 상당히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견고한 일상이라는 벽에 유폐되어 살아가는 남자(화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화자는 자신의 제한적인 경험치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전무해보이는 남자인 것이다. 공감력이란 애초에 가능성의 영역에 있지도 않을 법한 남자. 어쩌면 학창시절의 내 모습 같기도 하다.


 

여기에 더하여 호퍼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두 사람의 단절을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듯한 결정적인 시각적 단서가 있다. 어쩌면 집 앞에 전혀 길이 나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이상한 것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반복적으로 지나다니는 공간에 길이 만들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집 주변으로 아무런 길이 나 있지 않다는 점이야말로 내게는 언캐니한 상황이다. 이 그림에서 내게 가장 궁금증을 일으키는 지점이다. 두 사람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뿐만 아니라, 주변 세계로부터도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더해준다. 이를 거창하게 고독이라는 벽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이라고까지는 해석하지는 않으려 한다. 하지만 호퍼의 그림에서 감상자에게 주는 어떤 정서는 인간이란 존재가 본래 지니고 있던 어떤 인간다움의 특질로부터 소외된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일 테다.


 

우연히 영국의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 The Lonely City를 펼쳐보았다가, 처음부터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랭의 글을 더 따라가 보았다. 이 책은 저자가 미국인 연인과 약속하고 뉴욕에서 살기로 충동적으로 합의(?)한 후, 10년 동안 살던 영국의 거주지를 정리하고 뉴욕 맨해튼에 왔다가 바람맞은 상황에 처했던 경험에서 시작된 글쓰기다. 의도하지 않은 외로움을 낯선 장소, 이국의 대도시에서 절실하게 느끼며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노력한 글쓰기라고 보이기도 한다. 이 책에서 저자 올리비아 랭은 수많은 매체와 비평가가 호퍼에 대한 그림을, ‘현대인의 고독을 담았다고 소개하지만, 정작 호퍼 자신은 고독이라는 건 남용되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고 말한다. 장가의 창작 순간은 작가의 고독 속에서 태어나는 만큼, 호퍼의 정서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도시인 혹은 현대인의 고독을 표현하고자 작업을 했다는, 다분히 목적지향주의적인 해석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또 한 가지 혼란스러운 점은,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단어 ‘lone, 혹은 lonely'라는 단어를 번역자가 외로운의 의미로 번역하며 시작했는데, 정작 본문에서는 고독이라는 단어와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은 외로움고독의 감정은 조금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저자 올리비아 랭이 이 두 가지 다른 뉘앙스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면 번역자가 이 두 다른 뉘앙스를 가진 표현을 혼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올리비아 랭이 마주하며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감싸고 다독거리던 이 감정은 우울의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섞여 있기에, ‘외로움이란 표현을 일관되게 유지했으면 어떨까 싶었다.

 


아무튼 카버의 단편을 읽다가 또 이야기가 본론에서 많이 벗어나버린 것 같다. 내가 단편 소설을 빨리 읽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짧고 강렬한 메시지를 주기도 하는 장르이지만, 빨리 읽고 소설이 끝나도 내게 해결되지 않은 감정, 혹은 나의 말로 형용되지 못한 감정이 갈 곳을 잃고 부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세계로부터 단절되어버린 화자의 세계를, 그 행간으로부터 다시 발견해내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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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퀘그의 진짜 서명은 뭘까?


- 모비 딕》  9종 판본 비교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소설의 화자인 이슈메일은 동료인 작살잡이 퀴퀘그와 함께 탈 포경선을 알아보다가 피쿼드호에 승선하기로 합니다. 이때 포경선이 만선하여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 받게 되는 배당금을 포함한 계약을 하게 됩니다. 배당금은 선원의 경험치와 실력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는데요, 문맹이었던 퀴퀘그가 자신의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문제는 출판사 판본마다 퀴퀘그의 서명(사인)이 다르게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제가 소장하고 있는 9종의 모비 딕판본을 비교해보았더니, 퀴퀘그의 서명을 크게 3종류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 영문 X자 모양

(2) 한자의 열십자() 모양

(3) 수학 기호 무한대() 모양, 으로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이번에 정리한 9종의 판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비 딕 판본들 - 18장에 나오는 퀴퀘그의 서명

 

[1] 작가정신(개정판) 모비 딕영문 X자 모양

[2] 작가정신(아셰트 클래식) 모비 딕영문 X자 모양

[3] Penguin classics Moby-Dick (Ch.18 His Mark) 열십자() 모양

[4] 문학동네 일러스트 모비 딕무한대() 모양

[5] 문학동네 그래픽노블 모비 딕 무한대() 모양

[6] 현대지성 모비 딕무한대() 모양

[7] 열린책들 모비 딕 () 열십자() 모양

[8] 미메시스 그래픽 모비 딕무한대() 모양

[9] 쿠텐베르크 프로젝트 영문판 모비 딕(무료 전자책) 영문 X자 모양

 


이렇게 판본마다 작살잡이 퀴퀘그의 서명이 다른 이유는 뭘까를 생각해보았는데요, 어쩌면 출판사마다 번역 또는 출간을 위해 기반으로 한 오리지널 판본 자체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건 각 출판사가 번역본이든 영문판이든 기본 텍스트를 어떤 판본을 썼을까의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모비 딕 초판의 판매가 부실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초판을 보관해두었던 창고에 화재가 나서 모비 딕 (초판본) 재고가 모두 소실되었다고 하지요. 이후에 멜빌의 탄생 100주년인 1919년에야 비로소 평론가들에 의해 모비 딕이 재조명 받게 됩니다. 이때 모비 딕이 다시 출간되었을 것이고, 그의 원고를 편집자가 다시 검토하고 제작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원래 멜빌이 의도했던 퀴퀘그의 서명이, 어떠한 이유로 변형되었던 것은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마치 유전자가 여러 번 분열을 거듭하고 복제되는 과정에서 유전자 배열에 발생하는 돌연변이처럼 말이지요. 마치 귀를 막고 특정 단어를 입모양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정리하면, 출판사마다 퀴퀘그의 서명이 다르게 나타나는 까닭은 초판을 기반으로 하는 판본과 달리, 1919년에 다시 주목을 받게 되면서 복간되는 판본 작업에서 나타난 작은 실수가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것입니다. 물론 저의 상상놀이에 기반 한 가설입니다. (이걸 뭐라고 부를까요? 텍스트 돌연변이 가설? ㅎㅎ)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다보면 성경을 비롯한 그리스 고전 등을 필사하는 필경사 사제들이 나옵니다. 한 권의 책을 필사하는 데 8명이 한 팀을 이루어 필사한다는 설명을 본 것 같습니다. 반드시 8명 일리는 없겠으나, 중요한 것은 혼자 모든 과정을 도맡아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지요. 그러니까 한 사제가 구술하며 읽어나가면, 다른 사제는 이를 면밀히 듣고 필사를 해나가는 방식이었던 거지요. 또 다른 사제는 이를 검토하는 역할을 하며 검증을 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필경사들의 미묘한 실수가 발생하곤 한다는 점입니다. 때로는 작은 실수로 글자는 비슷하지만 다른 뜻을 갖는 단어로 변경되어 남게 되는 일도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의 일이라 종종 실수가 발생할 수밖에요.

 


유전자 복제 과정도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포가 분열할 때, 각 세포에 들어 있던 유전 정보도 둘로 나뉘어 각 세포에 정확히 복제된 유전 정보가 전달되어야 합니다. 물론 복제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는데요, 잘못 복제된 유전자는 자체적으로 수정·복구되는 기능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복제되는 횟수가 워낙 많다보니 확률적으로 어느 정도의 복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거지요. 그렇다면 텍스트라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필사 과정에서 실수가 더 많이 일어났던 모양입니다.

 


어찌되었든, 출판사마다 퀴퀘그의 서명이 왜 다르게 되었을까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조사 작업이고, 저의 상상에 기반한 추정이긴 합니다만, 각 출판사에서 어떤 판본을 기반으로 하여 작업했을까 궁금해지긴 합니다. 문학동네와 현대지성은 퀴퀘그의 서명이 무한대 형태인 것으로 보아 같은 판본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을 해보게 되고, 열린책들 판본은 펭귄 출판사가 사용한 판본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겁니다. 아무튼 여기까지가 오늘 조사해볼 수 있는 한계인 것 같습니다. ^^;

 


각 출판사 편집자님들(작가정신/문학동네/현대지성/열린책들/미메시스)께서 이렇게 출판사의 판본마다 퀴퀘그의 서명이 달라진 이유를 알려주신다면 책 읽는 기쁨이 배가될 듯합니다. ^^

 









































#모비딕 #퀴퀘그의진짜서명을찾아라 #MobyDick #퀴퀘그의서명 #HisMark #작가정신 #문학동네 #현대지성 #열린책들 #미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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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6 0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계절 Seasons
블렉스볼렉스 지음, 명혜권 옮김 / 파라텍스트(paratext)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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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종이에 인쇄된 산뜻한 색감의 실크스크린 작업. 간결하고 때론 섬세한 표현이 텍스트와 함께 배치되어 있는 방식도 흥미롭네요. 번역 그림책의 한글 폰트는 마음에 안드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 차라리 원서를 사곤 합니다. 이 번역본의 한글폰트는 마음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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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아코디언 클럽 위픽
김목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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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복에 이르는 비결 한 가지

- 마르셀 아코디언 클럽

 

김목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

 




마르셀 아코디언 클럽은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가 마음에 들어, 어느 독립서점에서 새로 구입한 책이다. 저자 김목인을 이야기할 때 따라 나오는 표현들은 대략 싱어송라이터, 작가, 번역가 등이다. 하지만 너무나 다양한 활동과 관심사를 음악으로, 책으로 꾸준히 작업해온 저자를 이 몇 가지 단어로 한정하기에는 참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을 지닌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80페이지가 되지 않는 이 짧은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이렇다. 이제는 빠르게 사라져가는 아코디언들, 한때 이 악기를 사용했던 인물, 그리고 이 악기와 새롭게 만나는 인연이 얽히는 과정, 작은 역사에 저자가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더 나의 주목을 끌었던 지점은, 이 이야기에 삶이라는 여정에서 각자가 지복에 이르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의 발길이 향하는 곳을 조심스레, 때론 과감하게 따르는 일.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한,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이 아니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내게 삶의 지복에 이르는 비결 한 가지를 이렇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치기도 한다. 이는 실패 확률이 너무나 큰 도박이기도 하다. 이 목표에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할 텐데, 삶의 마지막에 이르도록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런 목표에 이르지 못한 인생은 실패했다는 말일까? 나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소설은 내게 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매일 한 발 한 발 내딛기를 시도 하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면 어떤가. 누구든, 언제든 그럴 수 있다.


 

한편, 나의 직업은 나의 행복에 이르는 하나의 방편일 수 있다는 결론도 얻는다. 현재 나의 직업이야말로 나의 행복에 이르는 길에 함께하며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 고마운 수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작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이나 나의 직업에 괴로워하더라도, 이를테면 직장에서 불가피한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단지 타인의 규칙에 따라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타인이 나의 지옥일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나의 지옥이 되는 상황일 수 있다. 사회의 규범, 타인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 인간의 조건이건만, 우리의 삶이 이런 조건들에 묶여 주저하기에는 너무나 짧다고 느낀다.


 

아코디언에 얽힌 짧은 이야기를 읽다 옆길로 새었다. 하지만 방황하는 인간을 이야기하느라 60년 간 파우스트를 고쳐 썼던 괴테도 있지 않았던가. 기왕 길을 잃은 김에 조금 더 나아가보자. 역사상 모든 위인들의 공통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그들은 모두 죽었다가 아닐까. 위대한 사상가라고 해도, 죽은 위인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마르셀 아코디언 클럽의 어느 아코디언에 얽힌 이야기는 지금 당신 자신의 삶을 잘 가꾸라는 메시지로도 다가온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방황하는 일을 보편적인 인간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라는 점이다. 도전받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은 어쩌면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지향하는 바를 잃지 않고 지켜내는 일은 내 삶의 의무이자 의미가 될 것이다. 특정한 삶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 아니라...


삶이란 애초에 이런 게 아닐까?


 

이야기 속에서 어느 아코디언이 이베이를 통해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 가 닿는 과정을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았다. 내가 오래된 클래식 카메라를 손에 얻게 된 지난 날의 추억이 떠올라서다. 누군가의 가족을 평생 찍어주었던 카메라는 이제 고장난 채 창고에서 잠을 자다 내 손에 들어왔다. 카메라는 다시 수리되어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나와 가족을 찍어주는, 100년이 되어가는 카메라는 훗날 또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 새 생명을 얻고 이야기며 추억을 만들어낼 것이다.라 생각해본다.


 

머나먼 곳으로부터 아코디언을 손에 넣기까지, 아코디언 덕후들은 조바심과 함께 기대감과 일말의 행복을 느낀다. 이 아코디언을 카메라로 치환해도 마찬가지일 테다. 누군가는 물성을 탐하며 행복에 이를 수도, 또 누군가는 이 도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나는 감히 타인의 행복감을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그 기쁨과 행복은 오로지 그들의 몫이니까. 여기에는 타인의 시선이 틈입할 겨를이 없다. 나는 이 아코디언을 손에 넣는 또 다른 덕후들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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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4-06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고야, 저는 저 큰 글씨가 제목인 줄 알았더니 작은 글씨가 제목이었네요. 뭐 이런 비대칭이...
그래도 쓰신 리뷰가 좋아서 읽어보고 싶긴한데 80쪽에 저런 고급 장정이면 가성비가 좀 그렇찮나 싶기도 하네요. 그냥 디자인만 좋아도 샀을지도 모를텐데 고민하게 만드네요.ㅠ

초란공 2024-04-06 10:4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고점이 고민되긴 했어요. 근데 요책은 특별히, 언젠가 사인받으려고 산 책이지요 ....ㅋㅋㅋ 특별한 목적이 있는 책입니다요! ㅋㅋ 언젠간 만나면 사인받으려고요...주제가 마음에 들기도하고, 들고다니기 좋은 친구를 모셨습니다! ㅋㅋ

stella.K 2024-04-06 11:28   좋아요 1 | URL
헉, 어디서 사인회하는가 봅니다. 사인 받으시면 인증컷 부탁드립니다. ㅎㅎ 근데 초란공님은 김목인을 너무 좋아 하시는가 봅니다. 전 첨 듣는 이름인데 언제고 함 들어봐야겠습니다.

초란공 2024-04-06 18:47   좋아요 0 | URL
앗 어제? 오늘 어디선가 식목일 콘서트 하나 했는데 제가 놓쳤네요^;;

stella.K 2024-04-06 19:57   좋아요 0 | URL
헉, 차마 좋아요는 누를 수 없고 날아간 기회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ㅎㅎㅎ
 




<모비 딕>

– 허먼 멜빌 지음
–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024)




퇴근 후, 저의 네 번째 <모비 딕> 번역 판본이 ‘전면 개역판’이라는 글자가 찍힌 띠지를 두른 채 도착해 있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소장하고 있는 각 출판사 판본을 모두 꺼내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자칭 ’모비덕‘(모비 딕 덕후)라서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네요. 


















오랜만에 팝업북 <모비 딕>을 들쳐보았구요, 
<그래픽노블 모비 딕>과 <그래픽 모비 딕> 3권을 더 찾았습니다.


































그리고나서 작가정신 출판사의 아셰트 클래식 버전을 펼치고 비교해보았습니다. 아직 텍스트를 비교해보진 못했고 주석을 중심으로 비교해봤습니다. 
흔히 주석도 다시 검토하고 새로 추가 했다는 광고만 요란한 경우가 많아서 이번엔 제가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엉터리로 작업하고 요란하기만 했다면 불매운동을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작가정신의 ‘전면개역판’은 주석을 꼼꼼하게 ’제대로‘ 검토하고 ‘연구’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각 출판사의 모든 <모비 딕> 번역본을 다 읽어보았는데요(열린책들 빼고), 이번 작가정신의 주석정리 작업은 ‘출간 13주년 기념, 새롭게 만나는 전면 개역판’이라는 문구에 걸맞게 정성이 들어간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역자와 편집자의 수고가 드러나는 판본이라는 말입니다.

또 이번 개역판의 마음에 드는 점 두 가지!!!

한 가지는 주석이 책의 뒤로 모여 정리되어 있던 기존 형식을 해당 페이지에 각주로 다시 작업했다는 점입니다. 이건 출판사의 편집자의 편집 철학이나 취향의 영향을 받기도 할 것 같은데, 사실 이건 아주 큰 변화입니다. 


700-8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주석을 보려고 매번 두꺼운 종이를 엎치락 뒤치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니까요!! 물론 주석이 각주로 처리되어 있으면 거슬린다는 독자도 있지요. 압니다. 그런데 이번 변화는 딱 제 취향이란 말입니다!!! 책의 특성과 읽는 독자의 상황을 한 번 더 고려해준 편집자의 배려가 느껴지는 변화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편집자분들 수고많으셨을듯!! 

저는 당연이 주석이 뒤로 가있는 후주가 아니라, 각주로 처리되기를... 오래전부터 바래왔는데, 소원 한 가지가 이루어졌네요.

다만 양장본이면 좋으련만.... ㅋㅋㅋ
(네.. 저.. 사실 양장본 페티시가 있는 듯합니다. 

기... 책이 두꺼우니 보다보면 책등이 접히지 않습니까? 다들??? 그렇지 않나요?)


또 하나!!
기존 판본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부분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이 새로 추가된 주석에서 상당히 제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건!!! 정말 텍스트를 처음부터 마음잡고 다시 꼼꼼이/샅샅이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궁금해하기 힘든 지점들이기 때문입니다. 새로 추가된 주석들은 여러 번 읽어보고서야 보이는 지점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출판사에서 이런 부분들에 주목하고 고민을 많이 하여 독자에게 실마리를 제시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46면에서 멜빌이 ‘테네시주의 어느 가난한 시인’을 언급한 대목이 나오는데요, 이 시인이 도대체 누굴까 오랫동안 궁금했더랬습니다. 사실 소설 읽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일테니, 몰라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역자분이 각주로 답을 주셨네요. ‘나도 이 시인이 누굴까 궁금했는데 모르겠어요’라고요! ㅋㅋ 

이건 마치 역자분하고 원격으로 책을 함께 읽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번 ‘전면개역판’ 작업은 출판사의 홍보 문구가 말만 번지르르한지 검증해보려는 마음으로 훑어보았는데요, 첫 인상은 대만족입니다.

본문에는 제가 갖고 있는 다른 3종류의 번역판본처럼 그림이 있지는 않지만, ‘모비덕’에게는 각주만 보아도 아주 만족스러운 판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다른 판본에 비해 주석이 독보적이라는 느낌입니다! 단, <모비 딕>을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상세한 각주가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각주 압박 주의!)

하지만 이번 개역판에서 각주 작업이 꼼꼼하게 이루어진 점 만큼은 대만족입니다.


추가로 눈에 들어오는 변화는 피쿼드호의 항해지도와 포경선/포경보트 구조/등장인물 소개가 제공되어 있다는 점도 반가운 변화입니다.


아, 그리고 이번 <모비 딕> 개역판 구매로, 작가정신 아셰트 클래식 판본의 표지 글림이 들어간 책갈피가 함께 와서 완전체가 되었네요!
























#모비딕 #작가정신 #허먼멜빌 #모비딕전면개역판 #김석희번역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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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3-27 0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초란공 님 진정한 고래사냥꾼~! 이렇게 모아두니까 참 예쁩니다! . 설마…. 판본마다 저 두꺼운 걸 다 읽으셨니요?!

초란공 2024-03-27 0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개는 사놓고 읽을리가 없을텐데요... ㅋㅋ <모비 딕>만 예외입니다^^ 요새는 긋즈 사냥에 더 열심이긴 하지요~ 그래도 잠자냥님처럼 어려운 벽돌 인문서들을 거뜬헤 읽어내진 아직 못하지요^^

그레이스 2024-03-27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가족사진!
멋져요~♡

stella.K 2024-03-27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가족사진이라고 해서 진짜 초란공님 가족인 줄 알있더니...
가족은 가족이네요. ㅋ
모비딕 마니아시군요! 저도 이번에 세로나온 책이 어떤가 궁금했는데
그런 장점이 있군요.

초란공 2024-03-27 20:39   좋아요 1 | URL
^^네 식구가 늘어나면 기념으로 가족사진 하나씩 남겨야할 것 같아서 다 불러냈습니다^^

크런키 2024-03-28 1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비 딕>은 아니지만, <사악한 책, 모비 딕>은 아름다운 해설서 정도 될 텐데 그 책도 참 좋아요. 아실 텐데 오지랖^^

그레이스 2024-03-28 17:24   좋아요 1 | URL
저는 그 책 있죠!ㅋㅋ
언젠가는 필요할듯해서...^^
앞부분 읽어봤는데 좋더라구요

초란공 2024-03-28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저도 <사악한 책, 모비딕> 좋았습니다~! <모비 딕> 가족이 또 있었네요^^

나무그늘 2024-03-31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각주 말고 작품의 문장에도 손을 상당히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전 이전판을 가지고 있어서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번역가가 확실히 손을 되어서 가독성도 좋아졌고, 번역이 명료하고 깔끔해졌더라고요.

초란공 2024-03-31 15:45   좋아요 0 | URL
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도 궁금하긴 했는데 꼼꼼하게 검토가 되었나보네요. <모비 딕> 본문은 아직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 판본이 나온지 시간이 되어서 그동안 검토가 많이 이루어졌을 것 같아요. 고칠 것이 좀 있다고 하더라도 본문을 많이 수정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대조하며 확인하진 않았습니다. 저는 각주의 변화가 먼저 눈에 띄어 확인해보았고요~ 읽으면서 차차 확인해볼 기회가 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