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마니에르 드 부아르 13호 Maniere de voir 2023 - 언어는 권력이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 14
필리프 데캉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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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정 언어로 읽고, 듣고, 말하고, 쓰고, 생각한다. 한국인 화자라면 그 언어가 한국어일 것이다. 영어권 화자라면 그 언어는 영어일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이나 문화처럼,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도 여러 층의 구성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에서 한국어 화자가 구사하는 한국어는 표준어와 사투리라 불리는 방언이 포개져 있다. 다른 한편 한국어는 역사적으로 주변 언어들과 뒤섞여 왔다. 어휘도 섞여 들어오고, 어미도 섞여 들어오고, 문법도 섞여 들어왔다. 대표적으로 한자, 일본어, 영어, 그리고 알게 모르게 사용되는 불어, 독어 등의 언어들. 


최근의 사례를 하나 들자면, 게임 스타크래프트로 유입된 어휘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게임을 하던 이들은 게임에 등장하는 고유명사들, '히드라리스크,' '울트라리스크,' '뮤탈리스크'를 음차한 후 '히드라,' '울트라,' '뮤탈'로 축약해 불렀다. 최근에는 '울라리,' '울리' 같은 식으로 압축한 새로운 축약어가 등장했다.


사실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와 관련해 더 주목할 점이 있다면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고유 명사들을 두고 벌어진 번역 갈등일 것이다. 제작사에서 후속작 '스타크래프트2'를 발매하면서 게임에 등장하는 명사들을 번역했다. 예컨대 '마린'을 '해병.' '시즈탱크'를 '공성전차' 같은 식으로.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던 이들 중 일부는 이런 번역 지침에 반발했다. 이때 고유명사를 음차할 것을 내세운 측의 주장은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에 더 유용해서,' '이미 음차에 익숙해져서,' '번역이 불가능한 고유명사들도 번역할 것인가?,' '제작사의 번역 지침에 따른 번역이 원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제작사가 다른 게임에서 이미 보여준 번역 지침이 불완전해서' 등이었고, 번역을 지지한 측에서는 '게임 상에 출력되는 간단한 영어도 못 알아들으면서 무슨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인가?,' '번역의 위화감은 금방 적응할 수 있다,' 같은 논지를 내세우며 반박했다. 


사실 어느 쪽 주장을 수용하든 번역의 한계는 명확하다. 움베르토 에코가 '번역은 타협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는 'Ultrarisk'의 의미가 잘 와닿겠지만, 한국어 화자에게는 음차든 번역이든 의미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이처럼 번역이냐 음차냐를 두고 벌어진 갈등은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의 사례는 한국어에 영어가 자연스럽게 침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비슷한 사례들은 많다. 아르바이트, 마카롱, 탕후루, 모찌떡, 워딩, 패스트트랙 등등.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 한국어의 확장? 외국어의 침투?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 '언어는 권력이다'에 기고한 집필자들의 관점은 후자에 가깝다. 바꿔 말해 (영어라는) 언어의 제국주의에 대한 우려, 당혹감이 진하게 묻어 나온다. 물론 이 계간지는 복잡한 인간 사회의 여러 관계들과 그 관계들을 지배하는 권력이 어떻게 언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지 폭로하기도 하는 점에서, 이런식의 단순 요약은 이 계간지의 많은 내용을 간과할 위험이 있긴 하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의 투고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영역은 대체로 지배적인 언어(일반적인 경우 영어)가 그렇지 못한 언어(나머지 언어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는 프랑스어권이 강세인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의 사례도 포함된다)를 밀어내다 못해 멸절시키는 현상에 대한 우려다. 이 같은 언어의 지배력, 혹은 영향력이 증대되거나 축소되는 현상은 내적으로는 언어 그 자체의 변화와, 외적으로는 해당 언어 사용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서로 맞물린 결과물이다. 그렇긴 하나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는 주로 후자에 초점을 맞춘다. 대표적 사례들을 들자면 러시아와의 갈등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우크라이나어를 강조하거나("우크라이나어로 말하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으로 인해 치명타를 입은 프랑스의 러시아 교육("러시아어에 애정 거두는 프랑스") 등이 그 사례다.


경제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의 프랑스어 교육이 그렇다("그럼에도 프랑스어는 필요하지 않을까"). 21세기 들어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중요해지면서 입시 및 고등교육에서 중국어 교육 및 중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늘어난 반면 프랑스어는 갈수록 그 입지가 좁아졌다. 국내 대학 중 불어교육과가 존속한 대학은 현재 4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국립대 한 곳은 불어교육과를 폐과하고 학과 인원을 다른 과로 전용할 계획이다. 다른 국립대는 이미 불어교육과를 불어불문학과와 통합시켰다. 표면상 프랑스어 교육은 여타 언어에도 치이고, 언어 외부의 다른 분과학문에도 치인 셈이다. 그런데 앞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대학의 통폐합도 가속도가 붙을 예정이기에 이런 현상은 심하면 심해졌지, 덜해지지 않을 것이다. 해당 기사의 저자가 말하듯이 취업 잘되는 학과는 대학의 자원을 앞으로도 더 차지하겠지만, 불문학과를 비롯해 취업안되는 인문 계열 학과는 있던 파이도 취업 잘되는 학과에 내주고 말 것이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의 많은 기사들은 이외에도 세계 각지의 다양한 언어들이 어떻게 인간 사회에서 주도권을 쥐거나, 그 반대로 주도권을 상실하는지에 관해 다루고 있다. 아프리카의 상당 부분을 식민 지배한 과거의 프랑스 제국 덕분에 아프리카의 상당 지역에서는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반면, 정작 그 본국이라할 프랑스에서는 에펠탑에 영어 슬로건이 걸리고 어설픈 영어와 프랑스어가 뒤섞인 표어들이 남발되고 있다("프랑코포니는 식민주의의 아바타?," "에펠탑에 내건 영어 슬로건, 'Made for sharing,'). 영국이 브렉시트를 통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였음에도 유럽연합에서는 영어가 독일어나 프랑스어 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학회나 회담에서 비영어권 화자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상황이 연출된다("영어의 습격을 받는 유럽의 언어들"). 네덜란드의 대학들은 상품으로서 대학 교육의 판매 활로를 넓히고 더 많은 외국인 유학생을 수용하기 위해 영어 수업을 확대하는 반면("영어에 지배당한 네덜란드 대학"), 오랫동안 노르드어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온 아이슬란드는 영어를 사용하는 폴란드 이민자들이 늘어나자 아이슬란드어를 법제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아이슬란드, 언어 순수주의의 원형")


이 외에도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는 언어와 관련해 학술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수준의 언론이 다루지 않는 수준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 깊이는 전문적인 논문과 신문 기사나 사설 사이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표기법으로서 라틴 알파벳 문제("모든 알파벳은 로마로 향한다"), 한자라는 동일한 표기를 사용하나 지역별로 다양한 중국의 여러 언어들("중국어 : 하나의 문자, 여러 개의 말),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하여 프랑스어와 독일어의 사용 용도가 분리되어 있고, 그 틈새에 효과적으로 자리잡아 새롭게 영향력을 획득하기 시작한 룩셈부르크어("다중언어, 룩셈부르크 교육의 골칫거리), 언어와 조금은 거리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프랑스어에 대한 관심이 퇴보하는 반면 한국어와 한국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늘어나고 있는지 보여주는 점에서 양가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지점("프랑스 '코리안학'의 현주소," "권력자의 자발적 복종") 등. 여기에 아랍어, 타밀어, 아프리카의 흡착어까지. 


간단히 말해「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는 세계의 다양한 언어들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그 미래는 비관적이다.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하나의 언어(영어)가 세계의 언어들에 침투하고 있는 반면, 다양한 많은 언어들은 그 사용자 수가 갈수록 줄어들어 소멸 위기에 처해있다. 어떤 언어는 이미 사용자 수가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언어를 동영상 같은 매체로 보존한다 치더라도 해당 기록물을 열람할 사람이 없다면 의미가 있을까? 유튜브에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의 언어를 기록해서 업로드하면 조회수가 얼마나 나올까?「마니에르 드 부아르」의 한 저자는 이를 생물학에 빗댄다. 생물의 다양성이 위기에 처했듯, 언어의 다양성도 위기에 처했다고.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단일 언어가 지배적이게 될 수록 사유의 깊이도 얄팍해질 것이라고. 


다만 앞서 말했지만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의 학술적 깊이는 논문과 신문 기사/사설 사이의 그 중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들의 성향이 꽤 투명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한편에서는 영어의 침략에 노출된 것에 대한 당혹스러움이 진하게 묻어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특정 언어(나아가 특정 문화권)에 대한 관심이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퇴색되어감에 대해 한탄하는 어조도 보인다. 유럽 각국들이 제국주의 열강이던 시절 식민지의 현지 문화와 언어를 파괴하려 시도했는데 정작 지금 그 유럽의 언어들이 전 세계 언어의 위계에서 영어에게 한 단계 아래로 밀려나고 있다.


이상의 측면에서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는 세계 각지의 언어 사용자들 사이에 전개되는 언어 주도권 쟁탈을 다루고 있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의 제목으로 표현하자면 '언어의 권력 다툼'이라 할 수 있다. 다툼에서 이미 패배한 언어들은 사라지는 중이다. 한편 점차 패배에 몰리고 있는 언어들 역시 앞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앞으로 사멸하게 될 언어들을 두고 무어라 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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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서나 교양서는 전공서적에 비해 '인간적'이다. 전공서적은 무자비한 전문용어로 가득하며, 등장인물들도 인간미라고는 없어 보이는 선행 연구자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그들이 남긴 셀 수 없이 많은 연구들은 전공서적을 읽는 독자를 기겁하게 만든다. 


어떤 분야의 전공서적은 비전공자 더러 책을 덮으라는 듯이 강요한다. 분명 일상 생활에서 쓰는 용어임에도 그 책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독자의 시선을 단어 하나에 묶어버린다. 어떤 분야에서는 그래프, 수식, 도표를 잔뜩 늘어 놓아 독자의 기를 잔뜩 죽여 놓는다. 분명 첫 문장에서 "본 서는 이러이러한 목적 하에 작성되었으며"는 또렷이 기억하나, 그 다음부터 언급되는 내용들이 논리적으로 무슨 관계가 있는거지 라면서 뒷 문장을 계속 읽게 만든다.


반면 입문서나 교양서는 그 반대다. 전문용어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써주고, 그래프, 수식, 도표는 지양하며, 독자를 끌어들이는 스토리텔링에 대단히 능숙하다. 다시 말해, '재미있다.'


이 같은 입문서나 교양서의 장점이자 특징을 하나 꼽자면, 전공서적에서는 비인간적으로 나타나는 유명인들이 입문서나 교양서에서는 아주 친절하고 인자한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바꿔말해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된다. 잔악무도하여 많은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한 독재자조차 전기나 평전에서 해당 인물의 성장 내력, 일화, 인간적 면모만 따져보면 우리 주변에서 볼법한 평범한 인간이거나, 평범이라는 기준에도 미달인 인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저 인간이 이래서 이랬구나...'라고 옹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는 가게 만드는 사례를 더러 찾을 수 있다.  


입문/교양서와 전공서 간의 차이점은 학부생이 만나는 교수님, 대학원생이 만나는 교수님에 빗댈 수 있겠다. 학부생이 만나는 교수님은 (가끔 '감히 내 수업에 A+을 받으려 하다니!'라면서 의도적으로 A+을 안주거나, '이 정도는 해야죠?' 라면서 과제 폭탄을 내는 교수도 더러 있지만) 친절하고 인자하며 인간미가 넘치시지만, 대학원생이 만나는 교수님은? 괜히 네이버 웹툰에서 '대학원 탈출일지'라는 웹툰이 순위권이겠는가. ("그들은 그저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이야")


학부생 입장에서는 수업 시간에 마주하는 평범하고 사람 좋아보이는 교수님이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교수님인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수업 시간에 그렇게 졸리는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 사실은 그 분야에서 유명한 책 저자라거나, 그 분야에서 알아주는 상을 탄 수상자라거나, 해당 분야를 일신시킬 만큼의 새로운 발견을 했다거나, 교수님의 지도 교수님이 그 분야에서 알아주는 대가이거나, 교수님이 국내외 유수의 명문대학들 중 한 곳에서 학위를 취득했다거나(뉴스에서 지나가듯이 2-3초 등장하여 한 두마디 발언하는 국내외의 전문가들도 같은 사례에 포함된다).


같은 사람이 경우에 따라 천의 얼굴, 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걸 모두 포착하기는 힘들다. 많은 전기들이 벽돌책으로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하나의 단순한 사건도 실은 무한한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사건을 두고 끊임없이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이 반복되는데, 그 사건을 일으키고 다니는 인간의 한 평생을 책 하나로 모두 서술한다? 사람이 평생 보내는 시간 중 단 하루를 콕 집어서 24시간 중 수면 시간 8시간을 뺀 나머지 깨어 있는 시간 16시간 동안 일어난 모든 일과 그 사건들이 지니는 의미로 글을 하나 쓰라 하면 몇 십권짜리 전집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 등장하는 경제학자들은 딱 위에서 든 학부생이 보는 교수님과 대학원생이 보는 동일한 교수님의 이중적인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경제학이나 인접분야 전문가가 아닌 이상 책등의 두께와 책등에 써진 제목을 보기만 해도 읽고 싶다는 의욕을 감퇴시키게 만드는 이 무자비한 경제학자들이, 평범한 인간과는 종이 달라보이는 그들이, 이 책에 나온 일화만 보면 '이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로 독자의 기를 죽이는 인물도 더러 있다. 유아기에 라틴어, 그리스어 작문까지 했다는 존 스튜어트 밀이라던가(다만 저자 토드 부크홀츠는 밀의 불행한 인생에 대해 연민을 보내긴 한다).


이 책을 비롯해 다른 분야의 입문/교양서들도 해당되는 사항을 하나 더 꼽자면, 대개 입문서나 교양서에서 언급되는 인물들은 그 분야의 아주 이름난 사람들이다. 그들의 업적은 대단하지만, 독자를 더 놀랍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업적을 이룬 시기다. 20대에 희대의 발견을 하거나, 20대에 학계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대작을 쓴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뭘 하고 있(었)지?'라는 자기 반성(?)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일찍부터 주변인들과 '종류의 차이'를 드러내면서 예나 지금이나 독자들을 압도하는 천재들의 숫자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뒤늦게 빛을 본 유명 인사들도 많다. 그들을 보면서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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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2-18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ㅎㅎ 이런저런 얼굴들을 떠올리며 읽게 된 글입니다. 좋은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드려요

Heath 2024-02-18 19: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잉크냄새 2024-02-18 17: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문 용어까지 들어가지 않더라도 경제학이라는 보통 명사 앞에서도 기겁하게 됩니다.

Heath 2024-02-18 19:41   좋아요 0 | URL
그렇죠. 무서운 명사들이 많습니다 ㅎㅎ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30주년 기념 개정증보판) - 현대 경제사상의 이해를 위한 입문서
토드 부크홀츠 지음, 류현 옮김, 한순구 감수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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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언급해야 할 점. 책 표지에 박혀있듯이, 이 책의 제목에는 죽은 경제학자들(Dead Economists)이 들어가지만 막상 책을 펼쳐 목차를 보면 (생물학적 측면에서) 생존한 경제학자들도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생각에 관한 생각』으로 잘 알려진, 심리학자임에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이 대표적일 것이다. 교과서나 개론서, 입문서 등에 언급되는 인물, 혹은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인물은 으레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묘한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두 번째로 언급해야할 점. 저자의 이력이다. 저자 토드 부크홀츠는 하버드와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고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가르친 경제학자이자, 조지 허버트 부시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경제정책 자문위원을 맡았으며 헤지펀드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저자의 경력에서 대체로 저자의 성향을 유추할 수 있다. 특별히 이 책에서 저자가 주류 경제학에 대한 여러 비판 중 일부를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간다는 주관적인 느낌이 든 지점은 있긴 했지만, 한 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어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거의. 이건 개인의 성향에 달린 문제이니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세 번째로 언급해야할 점. 이 책은 '경제사상사 입문서'이다. 700페이지 가까운 두꺼운 벽돌책이긴 하지만. 사실 얇고 가벼운 입문서를 찾자면 옥스퍼드에서 나오는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국내에서는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로 번역, 출간되고 있다) 같은 시리즈를 찾는 것이 더 좋은 선택지일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 책은 두꺼운 벽돌책이란느 점에서 들고 다니기는 힘들지 몰라도 얇은 입문서에 비교 했을 때 두꺼운 입문서 답게 폭 넓은 서술, 깊이 있는 서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이 책을 통해 일부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사상을 전개하였고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그 윤곽과 개요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으로 현재 대학 학부 및 대학원에서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경제학을 습득하려 한다면 그것은 너무 나간 것일 수 있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같은 개념을 이 책에서 쉽게 설명해주는 만큼, 이 책에 소개된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이해한 다음 경제학 전공서적을 읽을 때 해당 개념을 마주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긴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더 파생되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경제학자들은 셀 수 없이 많은 과거와 현재의 경제학자들 중 열댓명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해당 경제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압축하여 요약한 후 핵심적인 사상만 이해하기 쉽게, 흥미롭게 풀어서 설명하는 데 그친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입문서'의 미덕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입문서라는 측면에서 이 부분을 좀 더 풀어보자. 이 책이 지닌 뛰어난 장점이자 한계라 볼 수 있는 단점은 저자가 선정한 몇몇 인물들을 중심으로 여러 경제사상의 흐름을 전개해나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맬서스와 리카도는 친구 사이로 엮여 있으며,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도 이들과 친했다. 앨프리드 마셜은 케인즈의 스승이며, 케인즈는 밀턴 프리드먼과 다투기도 했다. 다만 애덤 스미스의 고전파 경제학에서 시작해 케인즈로 이어지는 이런 주류 경제학(고전파와 신고전파)의 흐름 속에서 마르크스, 베블런 같은 인물들은 조금 겉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저자는 해당 인물들의 주된 일화들을 소개하고, 직간접적으로 인물들이 살던 시대 상황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그러다가 경제학자들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이론을 전개하는 시점이 될 때, 저자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대인에게 익숙한 비유나 사례를 들어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설명한다. 이 지점이 바로 이 책의 제목에 포함된 '살아 있는 아이디어(New Ideas)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저자가 애덤 스미스를 설명할 때 스미스가 손수 든 사례인 핀 공장이 아니라 레이건 행정부에서의 사례를 곁들이고, 데이비드 리카도의 이론이 현재 시점에도 완전히 실현에 이르지 못했다고 설명하는 점이 그 사례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저자는 경제학 교과서에서 딱딱한 주장, 복잡한 이론과 그래프, 수식을 내세운 낯선 인물들을 친근한 인물들로 손쉽게 변모 시킨다. 너무 효과적이어서 시간이 남아서 경제학 서적을 쓰기 시작했다는 애덤 스미스, 어릴 때부터 극한의 영재교육을 받은 존 스튜어트 밀, '나는 경제학에 소질이 없는거 같다'면서 경제학자가 된 케인즈의 일화적 측면들은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막상 그들의 복잡한 이론을 이 자리에서 쓰라 하면 그러기 힘들 것 같긴 하지만.


그렇지만 입문서로서 이 책의 한계도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먼저 인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는 것의 한계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이 저자의 기준에 따라 선정된 인물들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이는 저자가 각 장에 배분하는 분량에서도 대충 눈치챌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경제학은 여타 사회과학들처럼 19세기 대학이 전문화되고 경제학이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자리잡으면서 엄청난 수의 경제학자들이 등장했다. 저 장구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목록은 그 많은 경제학자 중 극히 일부만을 나타낼 뿐이다. 이 책에서 지나가듯이 언급조차 되지 못한 경제학자들의 수는 대단히 많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경제학자들에 대한 서술이 완전할 수 없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애덤 스미스부터 케인즈와 프리드먼까지의 경제학자들은 책의 분량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정치학, 역사학, 사회학 같은 인접 분야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들이다(마르크스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마르크스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 지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인문사회과학 분과학문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없는 분야를 찾아보는 것이다.). 해당 인물들은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과거의 문헌들이 재발굴되거나 잘 알려진 기존 문헌이 재해석되면서 기존의 해석과 관점에 도전하는 이른바 '수정주의'가 나타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기서 이 책의 또 다른 한계가 드러나게 된다. 책이라는 매체 상의 한계이긴 하지만, 책에서 다루는 여러 경제학자들에 관한 학문적 논의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의 원서가 2021년에 나왔고 2023년 한국어판이 나왔음에도 말이다. 


이 책의 몇 가지 한계들을 늘어놓긴 했지만, 사실 이런 한계들은 그 한계를 체감한 독자가 스스로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읽기 쉬운 서술로 독자들을 경제사상과 경제학의 세계로 인도하여 더 많은 경제학자와 경제사상을 접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 책과 저자는 제 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것이 저자가 이 두꺼운 책을 쓰고 몇 번이나 개정판을 출간한 의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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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예외주의 -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
세이무어 마틴 립셋 지음, 문지영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보통 책을 읽을 때는 목차를 따라 순서대로 읽는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의 배경을 먼저 이해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즉 옮긴이 후기를 먼저 읽고 그 다음 머리말부터 읽어야 이해하기 쉽다. 이유는 간단하다. 옮긴이 후기에 저자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지적 배경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앞표지에 소개되는 저자 약력만으로는 저자의 지적 배경을 파악하기 힘들다. 옮긴이 후기에 따르면 립셋은 다니엘 벨 등과 함께 1세대 네오콘(신보수주의) 지식인이다. 이 같은 립셋의 성향은 2부 6장 '미국 지식인들: 대부분 좌파 성향이며 일부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자들'에서 잘 드러난다. 이 장에서 립셋은 미국의 지식인들이 좌파적 성향을 띠고 있으며 이 때문에 역으로 대학 내 좌파들에 비해 소수에 속하는 우파는 발언을 주저하게 되는 경향을 띠게 된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로 염두에 두어야할 사항은 이 책의 원서가 1996년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 번역된 것은 2006년이라는 점이다. 약 10년의 격차가 있는 셈이다. 2024년 시점에서 보면 이 책은 출간된 지 거의 30년, 국내에 소개된 시기로 치면 20년이 다되 가는 낡은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90년대 미국을 90년대 캐나다, 일본, 그외 여러 유럽국가들과 대비시켜 미국만의 예외적인 혹은 독특한 특징을 포착한다. 2024년 시점에서 립셋이 미국의 특징으로 열거하고 그 근거로 제시하는 통계들을 보고 있으면, 현재 미국에서 나타나는 정치, 사회, 문화적 현상들이 2020년대 들어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며, 90년대 미국에서도 그런 측면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로 고려해야할 점은 이 책이 대체로 현대 미국(90년대 미국)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면모를 제시하고 이를 통계자료 등으로 뒷받침하는 데 치중한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미국 예외주의라 부를 만한 사상적 특징이나 현상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변화해왔는지 검토하는 '동태적' 분석이라기 보다는, 90년대 미국이 보여주는 예외적 현상들이 여러 통계나 여론 조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캐나다나 일본 같은 나라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여주고자 하는 '정태적' 분석에 가깝다. 물론 대공황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언급되기는 하나, 저자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이나, 그외 미국과 비교되는 여타 사회들이나, 200여년 동안 변화를 겪긴 했으되 그런 변화가 국가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가치관이나 행동 양태를 변화시키진 않았다고 보는 듯 하다.


저자가 말하는, 다른 유럽, 캐나다, 일본의 구성원들과 비교했을 때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예외적인 현상은 미국의 탄생으로 거슬러간다. "미국은 ... 독립에 성공한 최초의 식민지, '최초의 신생 국가'라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미국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했다.'(p. 14) 미국과 달리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는 구성원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국가가 이미 존재했고 공동체가 지니는 공통의 역사를 통해 스스로를 규정하였다. 반면 미국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된 나라라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이 보여주는 미국적 신조로 저자는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자유, 평등주의, 개인주의, 포퓰리즘, 자유방임주의, 다섯 가지가 그것이다. 여기에 가장 기독교적인 국가로서 미국의 성격이 부각된다. 저자는 유럽 국가들이 여러 교회(가톨릭, 성공회, 루터교, 그리스 정교)가 지배적인 반면 미국의 종교는 여러 기독교 종파들이 지배적이다. 이 사실로부터 저자는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종파주의가 신자들에게 도덕률을 준수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높은 수준의 도덕주의적 성격을 지닌다는 논지로 이어나간다. 그 결과 미국인들은 '국가'보다는 '양심'이 더 중요하게 된다. 이 같은 도덕적 성향이 미국이 전쟁에 나설 때 어떤 전쟁의 경우에는 미국인들이 해당 전쟁을 두고 선(미국) 대 악(적국)의 싸움으로 인식한 반면, 어떤 전쟁의 경우에는 반대로 국가가 부당한 전쟁을 치른다고 인식하여 미국인들이 반전을 외치는, 미국사에서 모순된 면모를 드러내는 요인이 되었다. 전자는 제2차 세계대전, 후자는 베트남전이 주요 사례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30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고 90년대 미국의 예외적인 사회상을 정태적으로 그려내는 데 치중하는 책이다. 하지만 2024년 현재 미국의 여러 면모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점에서 그 값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통계들은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꾸준히 거론된 논쟁거리들, 예컨대 낙태 문제나 정치적 올바름, 적극적 우대 정책과 관련된 90년대 미국인 대중들의 의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독자로서 현재의 한국과 90년대 미국(나아가 현재의 미국)을 비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동시에 시작된 냉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제1세계의 최전방이었기에 미국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근래 한국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많은 갈등들,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는 여러 집단들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을 보면 이 책에서 90년대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가치관의 충돌과 묘하게 겹치는 지점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능력주의에 대한 강조나 기회의 균등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런 가치관이 과연 어디서 왔는가, 어떤 과정을 거쳐 특정 세대에 안착했는가, 어떻게 이론적 무기로서 사용될 수 있었는가 등은 따져볼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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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 우리 시각으로 읽는 세계의 역사 2
한국서양사학회 엮음 / 푸른역사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그동안 개인 연구자 차원에서 시도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및 그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해석 한국서양사학회라는 학회 차원에서 제시하려 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서양사학사를 시작으로 고대 그리스, 중세 유럽, 근대 자본주의, 나아가 남북아메리카의 근현대사까지 여러 주제를 포괄하려 한다는 점이다.


여타 서양사학계에서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려 시도한 저작들처럼, 이 저작 역시 서양사의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지 않고 서양의 사학사에서 20세기 후반 미국과 유럽의 외교사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포괄하고 있다. 국내의 서양사 연구자들이 유럽중심주의에 대해 비판한 사례로는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외에 『서양사학과 유럽중심주의』, 『역사와 이데올로기1』를 들 수 있다. 이 두 저작과 비교했을 때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는 몇 가지 측면에서 장점과 단점을 지닌다.


장점부터 꼽자면 첫째는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가 서양사와 관련해 비교적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는 점이다. 『서양사학과 유럽중심주의』는 서양 근현대사와 관련된 주제들 위주로 다루고, 『역사와 이데올로기1』는 서양의 고, 중세사와 관련된 주제들을 다룬다면, 이 책은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사학사/서양 고,중세사/서양 근현대사/아메리카(북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측면에서 바라본 유럽을 다루고 있다. 같은 '유럽중심주의'라는 대주제를 다루면서도 앞의 두 저작이 다루지 않은 지점들, 예컨대 비잔티움 세계, 십자군, 아메리카들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는 점이 앞의 두 저작과는 차별화를 이루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 다른 장점은 유럽중심주의적인 해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 해당 비판이 '비판'으로서 적합한지 검토하는 작업을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사례가 고대 그리스이다. 예를 들어 『역사와 이데올로기1』의 저자는 마틴 버낼의 『블랙 아테나』의 주장을 적극 수용하여 고대 그리스에 관한 기존의 역사학적 해석을 통렬히 비판한다. 이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19세기 근대 유럽인들이 고대 그리스를 발명하였고 이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와 활발히 교류한 중근동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유럽 세계와 고대 그리스를 하나의 계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적인' 문명인가' 장은 마틴 버낼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버낼의 주장이 지닌 한계점들을 지적하면서 비판을 보다 더 예리하게 전개한다. 


이외에도 서양사학에서 상대적으로 잘 다루어지지 않는 라틴 아메리카에 하나의 장을 할애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이 유럽과 미국이라는 서구를 어떻게 바라보았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알 수 있다. 한편 20세기 말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전개된 외교를 추적하는 '탈냉전과 대서양 공동체의 분열'은 냉전 이후 미국과 유럽이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와 간극을 규명한다. 유럽중심주의라는 주제와는 별개로 이 장은 21세기 초 현재 미국의 대외 정책들이 어디서 이어지는가에 관한 지식을 전해주는 장이기도 하다. 아메리카에 관한 논의들이 말해주듯이, 유럽에 한정된 서양사를 넘어 아메리카와 그외의 지역들을 포괄하는 폭넓은 서양사에 관해 알려준다는 점이 이 책이 지닌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단점은 『서양사학과 유럽중심주의』 집필에 참가한 저자들 일부가 이 책과 겹친다는 점이다. 그래서 『서양사학과 유럽중심주의』와 이 책에 같은 내용이 중복되는 지점이 있다. 품절된 책인 만큼 도서관의 힘을 빌릴 경우 이 부분은 큰 문제가 아닐테지만, 책을 소장하려 할 경우에는 염두에 둬야 할 지점이다. 『서양사학과 유럽중심주의』나,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나, 둘 다 논문들을 엮은 논문집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자 한계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서양사학과 유럽중심주의』, 『역사와 이데올로기1』처럼 서양사에 관한 지식을 보완하고 서양사에 관해 보다 균형잡힌 관점을 잡고자 할 때 유용한 지침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양사에 관해 어떤 지식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이긴 하지만, 서양사 전반에 관한 지식을 보충하고 싶을 때, 유럽이나 미국의 연구자들과 다른 한국의 서양사 연구자들의 관점이 궁금할 때 이 책은 앞 서의 두 권과 더불어 참고할 가치가 있다.


그렇긴 하나 이 책이 오래되었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서양사학과 유럽중심주의』, 『역사와 이데올로기1』처럼 이 책도 2009년에 나왔고, 실질적으로 이 책에 수록된 논의들은 2006년 4월 〈우리에게 서양이란 무엇인가--유럽중심주의 서양사를 넘어〉라는 학술대회의 성과를 발전, 보완한 것(p. 17)이기 때문에 2024년 시점에서는 거의 20년 전의 논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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