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소설 시누헤 이야기 - 국내 최초 고대 이집트어 원전 완역본
유성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길가메시 서사시 같은 메소포타미아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이집트만의 매력이 있네요. 거기다 고대 이집트가 생소할 독자들의 이해롤 도와줄 풍부한 부록까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립백 과테말라 안티구아 파노라마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미가 조금 약한 대신 고소하네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업이론』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4년에 씌여진 책으로, 저자는 그 유명한 베블런이다.


이 책은 1904년 당시 미국 기업들의 행태를 분석한 책이다. 그럼에도 읽다보면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기업인들의 행태가 현재와 겹치는 지점이 여전히 많기 때문에. 


가끔 대의제에 입각한 입헌 민주주의 국가가 과연 정말 민의를 반영하고 있는게 맞나? 싶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제목은 『기업이론』인데 왜 민주주의 국가가 나올까? 아무튼 책에서 나온다. 기업가들이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를 좌우하는지를 해부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국심이다. 베블런은 애국심에 대해 아주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그에 따르면 애국심은 기업가들의 이익을 일반 시민들의 이익으로 둔갑시키는 수단이다. 애국심 덕분에 일반 시민들은 기업가의 이익이 늘어나면 자신들의 이익이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분명 이 책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100년전 미국인데 어째서 지금도 설득력이 있는거 같지 라고 느낀다면, 정상이다. 


이 책을 쓴 소스타인 베블런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미국의 경제학자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경제학'에 비춰보면 이 사람을 '경제학자'라는 범주에 묶어둘 수 있는가? 라는 의문에 절로 부딪치게 된다. 바로 위의 사례를 보자. 경제학자와 "애국심". 둘 사이에 교집합 따윈 없어보이는데?


그렇긴 하지만, 베블런은 아무튼 경제학자다. 그것도 유명한. 그도 그럴게, 이 사람의 첫 단행본 연구서가 바로 그 『유한계급론』이다.


『유한계급론』을 읽다보면 지금 우리가 접하는 경제학과 너무나 거리가 먼 경제학을 접하게 된다. "유한계급"만 놓고보면, "유한계급"이 선사 시대 어느 시점에서 생겨났다는 언급을 보면 왜 "경제학"에서 사회학이나 역사학에서 다룰법한 "계급"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 싶다. 거기다가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근거를 보여준답시고 저기 인도의 원시 부족을 사례로 끌고온다. 


베블런 본인은 "경제 이론"을 들먹이면서 "경제 이론에 의하면 ..."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이거 정말 경제학 책 맞나?" 


나중가면 아예 진화론에, 인종 논의까지 나오는데, 왜 경제학에서? 싶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 시대에 매일 같이 논쟁을 몰고다니는 리처드 도킨스나, 도킨스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생물학자로서 '사회생물학'이라는 화두를 던져 인문, 사회과학계에 파란을 일으킨 에드워드 윌슨 같은 생물학자들도 사실 100년 전 미국의 지식인들이 진화론을 바탕으로 전개한 파격적인 논의들 앞에서 한수 접어줘야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경제학자' 베블런의 논의가 천방지축인 이유를 꼽자면 우리가 아는 현재의 경제학은 20세기 후반을 거치며 형성된 결과물이어서다. 20세기 이전, 특히 19세기 말의 경제학은 지금과 너무나도 달랐다.(그렇다고 현 경제학의 뿌리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충 애덤 스미스-리카도와 맬서스-존 스튜어트 밀-앨프리드 마셜-케인즈 ... 같은 식으로 주류 경제학의 계보가 이어진다.)


어쨌든『유한계급론』은 고전의 반열에 든 책이다. "왜 고전인가요?"라고 물으면 속시원히 대답해줄 사람이 드물어서 그렇지. 그 증거가 국내 번역판본의 수다.


완역본만 5권에, 편역본이 2권 나왔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비교하자면 『자본론』은 3권이나 되는데 이 책은 1권뿐이고, 거기다가 원서가 영어니 독자나, 번역자나 진입장벽이 낮아보인다는 게 참 크다.(낮다는 말이 아니다!)



   



이상의 5권은 완역본이다. 





이상의 2권은 편역본이다.


이 중에서 읽은 번역본은 사실 


3권 뿐이라 어느 책이 가장 번역이 낫니 하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뭣보다 베블런 본인이 글을 정말 어렵게 쓰기 때문이다. 글만 어렵게 쓰는 게 아니라 셰익스피어마냥 자기가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거기다가 일반 명사를 고유명사처럼 써댄다. 베블런의 책은 몇 권 더 번역되어 있는데, 번역자의 후기를 읽다보면 항상 번역하기 어려웠다는 말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다만 『유한계급론』만 놓고보자면 작년에 나온 휴머니스트 번역판이 다른 번역판본들에 비해 가격은 조금 나가도, 소스타인 베블런에 대한 최신 연구성과들을 적극 반영한 주석이나 해제가 수록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립백 스킵과 로퍼 x 카페테일 - 12g, 5개입 스킵과 로퍼 공식 굿즈 12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라딘 커피 답게 맛도 좋은데 일러스트가 예뻐서 포장 뜯을 때 좀 고민했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 『기생수』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지구상에 정체 불명의 생물체가 나타난다. 생물체는 인간의 몸에 침투하여 뇌를 차지하고 그 사람 행세를 한다. 생물체들은 인간 사회에 녹아들어 인간을 포식하기 시작한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외계인이나 지구상의 생물체이지만 미발견 상태인 생물체가 존재하지 않을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니까. 16세기까지 유럽, 특히 가톨릭교권에서 이런 생물체의 존재를 거론했다간 조르다노 브루노처럼 화형당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도 아니고, 그런 유아론적인 대책이 통하는 시대도 아니니까(가끔 그런 대책이 논의되긴 하지만).


하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만화 『기생수』에 범접할만한, 오히려 그 보다 더 한 현실이 지구상에 일어나는 중이기 때문이다. 『기생수』에서는 기생수들이 인간을 죽이지만 사실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인간측이 대응에 나서자 기생수들이 소탕당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현실에서 인간보다 신체능력이 뛰어난 생물체들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사자, 호랑이, 고래처럼 인간보다 신체적으로 뛰어난 동물은 지구상에 많다. 그러나 그 생물체들은 인간 앞에서 무기력했고 인간의 보호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속한 인간종의 현실은 『기생수』와 다르다. 우리의 현실은 20, 30년전 우리가 예측하거나 예언한 것들을 보란듯이 빗나가버렸다. 


20세기 후반 당시의 예측이나 예언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간과 인간 사회가 직면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장미빛 전망이었다. 이 같은 예측은 당연히 지금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 그러한 전망이 들어맞은 지점도 있다. 예컨대 스마트폰이라던가. 그러나 완전히 들어맞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사상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기술적 특이점이 올 것'이라는 주장과 같은 식으로 여전히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구원자가 강림할 것이라는 식의 옛 종교적 믿음에서 구원자를 '기술'로 치환한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당연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건 단지 공통점만 따진 셈이니까) 그렇긴 하나, ai의 발전 속도나, 신석기 시대를 거치며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기술 발전 속도를 보면 갈수록 가속도가 붙었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주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기술의 발달이 한편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거기서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이다. 자동차가 적절한 사례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자동차가 보급되기 전 길거리에는 마차가 가득했다. 사람들은 선택해야 했다. 말똥과 그 악취로 도시가 뒤덮이느냐, 새로운 대체 수단을 찾느냐. 선택은 자동차였다. 자동차는 말똥을 남기지 않으니, 도시가 더럽혀질 일도 없었다. 그 대신 자동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교통사고는 마차나 기차만 다니던 시대에도 있었을테니까)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것은 낙관론과 정반대되는 비관론적, 나아가 종말론에 가까운 예언이나 예측이었다. 어린 시절 환경 보호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지구상의 인구가 너무나 빠르게 증가하여, 지구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고 말 것이라는 암울한 예언이었다. 그런 무시무시한 예언 뒤에는 인구 증가에 따른 환경파괴에 대한 묘사가 그에 뒤따랐다. 어떻게 보면 맬서스의 재림이라 할만한 수준의 주장들이었다. 


막상 부닥친 현실은 종말론과는 거리가 가까우면서도 멀었다. 미세먼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황사와 미세먼지는 겨울, 봄마다 한반도에 찾아오는 불청객이자 당연한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미세먼지를 보고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려니 하면서 마스크를 끼고 일상샐활을 하거나, 그냥 평소대로 생활할 뿐이다. 20세기 말 환경운동가가 봤으면 이 무슨 디스토피아인가하고 절규했을지도 모른다.


자, 이제 진짜 현실은? 물론 여기서 기후변화(혹은 위기)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단지 만화 『기생수』보다 더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할뿐이다. 


분명한 것은 기생수보다 더한 것이 현실의 우리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효과는 『기생수』의 기생수들이 인간을 포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출산율(혹은 출생률) 이야기다. 한국의 90년대 생이 학교를 다닐 때는 한 반에 30, 40명이 있었던 반면, 00년대 생이 다닐 때는 20명으로 줄어들더니,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입학생 숫자가 두자리수를 못 채우고 한 자리 수에 머물다가 폐교되는 초등학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대학교들은 몇년 전부터 입학생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지방거점국립대학들 조차도 학과별로 정원 미달이 발생하여 대학 간의 통폐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여파는 군대에 이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취업시장에도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다. 


『기생수』에 등장하는 히로카와 시장은 포식자로서 기생수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나 히로카와 시장의 말처럼 기생수들이 아무리 기를 쓰고 인간의 개체수를 조절하려 들더라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려면 기생수의 개체수가 인간 전체의 개체수와 비교가 가능한 수준이 되거나, 기생수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인구를 통제하는 상황이 연출되어야할 것이다).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한국이 대단히 극적인 변화를 보이긴 하고 있지만). 전세계 선진국들이 나날이 줄어가는 출산율 혹은 출생율로 인해  여러 대책을 세우고 있긴 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등 전세계의 산업 중심지, 금융 중심지, 문화 중심지라 할만한 지역들에서 출산율이 감소함에도, 뚜렷한 대책이 없어서 이민(을 빙자한 타 국가로부터 인구 빼오기)에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이는 선진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 대국으로 알려진 중국, 인도, 나아가 종교적 영향력이 지대한 이슬람권 국가들도 출산율이 수십년 사이에 급락했다. 동남아 국가들은 아직 선진국도 되지 못했는데 벌써 출산율이 급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온다. 선진국으로 이민 간 이민자들도 세대가 지날수록 현지 문화에 동화되어 2세대부터는 출산율이 현지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하락한다. 


앞으로의 전망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륙의 국가들은 출산율과 인구 감소로 인해 인구 성장이 정체되거나 심하면 감소할 것이라 한다. 그에 비례하여 타국의 이민자를 차지하려는 국가 간의 경쟁도 심화될 것이다. 


즉, 인구가 너무 늘어나서 지구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도 빗나가기 직전인 셈이다. 오히려 지구상의 국가들은 너도나도 확정된 미래, 그러니까 줄어드는 인구를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발악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여기서 환경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점은 인구라는 통계 수치보다는 개개인의 소비 패턴이 더 중요할 것이다. 전 세계인이 선진국 최상류층처럼 소비하고 다닌다고 가정해보자.)


이렇게 지난하게 인구 이야기를 한 이유는, 『기생수』의 기생수는 '따위'라고 만들만한 가공할만한 무언가가 이미 전 세계에 확산된 게 아닐까 하는, 간단한 의문에서 시작한 것이다.


'전염병 주식회사'라는 게임이 있다. 스마트폰으로도 가능한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각종 다양한 유형의 전염병을 발생시키고 변이시켜 지구상의 인간을 말살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게임 상의 인간들도 가만있지 않는다. 어느 정도 전염이 확산되면 전염병을 인식하고(현실의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인식하였듯이) 대응에 나선다(현실의 백신 접종, 사회적 거리두기처럼). 이때 인간 사이에 전염병을 퍼뜨리는 매개체는 다음과 같다. 바이러스, 세균, 박테리아, 프리온, 기생충, 나노머신.


하지만 이런 매개체를 통해 퍼져나가는 질병은 그 실체가 있다. 감염된 사람들의 신체에 실제로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체온이 높아지거나, 미각과 후각을 상실하거나 등등. 그러면 사람들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기생수』의 기생수들도 실체가 있다. 만화 상에서 그 식별법이 나온다. 사람으로 위장하지만 위장한 기생수의 머리카락을 뽑아보면 바로 판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마주해야하는 것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대부분의 기준이 이 것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정신병과는 다르다. 정신병 역시 구체적인 증상을 수반하는데, 이것은 그런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감염된 사람이 감염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 바로 옆 사람, 지나가다 마주친 사람, 버스에서 옆 자리에 앉은 사람, 지하철에서 부대껴 가는 사람, 아니면 우리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이나 기업가들, 그 한명 한명이 감염자일지, 정상인일지(비감염자가 더 적절할지도) 알 수 없다.


그럼 바이러스보다, 인간이 상상한 기생수보다 더 독한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영화 「인셉션」에서, 정보를 빼내려 사이토에게 접근한 주인공 돔 코브는 이런 말을 한다.


"가장 생명력이 강한 기생충은 무엇일까요? 박테리아? 바이러스? 장내 기생충? '생각'입니다. 일단 생각이 뇌에 자리잡으면 제거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 


'생각'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를 떠올려보자. 그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말은 트럼프가 내세우는 가치관, 세계관, 일련의 사상체계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전략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그로부터 발생하는 심리적 문제다. 즉, 한 번 투표를 했을 뿐인데, 그 결과를 보고나니 이웃집에 사는 스미스 씨는 트럼프의 생각을 받아들인 지지자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된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스미스씨 입장에서는 이웃에 사는 존스 씨가 트럼프의 생각을 받아들인 지지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 머리 속에 의심이라는 감정과 그로부터 나오는 생각이 자리잡은 것이다. 그 어떤 전염병의 매개체보다도 빠른 속도로.


저기서 트럼프를 다른 나라나 미국 내의 다른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으로 바꿔도 적용가능할 것이다. 


미국은 1950년대에 매카시즘이 유행했다. 누구나 소련의 스파이일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매카시즘을 보고 어떻게 저런게 유행했나 생각하겠지만, 그 당시 사람들 입장에 서보면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저 사람이 나와 생각이 다를 지도 모르는데(=다른 생각에 전염되었을 수 있는데=공산주의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사실을 뭘로, 어떻게 판별한단 말인가? 


'나'와, '나'가 속한 집단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같은 사람' ,'같은 부류', '같은 집단'으로 취급하지 않은 경우는 사실 인간 역사에서 늘상 있었던 일이니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사례를 일일이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의 차이가 현실에서 일으키는 변화는 인간의 상상력을 한참 뛰어넘는다. 다시 인구 문제로 돌아가보자. 위에서 말했지만, 한때 인구가 무한히 불어나 지구가 급증하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맬서스적인 종말론이 유행했다.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통계를 보고 인구 감소를 우려하며 여러 대책을 내놓는 중이다. 그러한 변화의 기저에,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만 해도 한때는 나이가 들면 무조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했지만, 지금 그런 생각은 당연하지 않다. 구시대의 사고방식은 신시대의 사고방식에 밀려났거나, 밀려날 예정이다. 게다가 지금은 구시대의 사고방식을 강요할 수단도 모조리 사라졌다(정책 결정권자들이 시대착오적인 결정이 가끔 내리긴 하지만). 게다가 인구 문제는 '올바른 생각'과 '그릇된 생각'을 구분해서 '그릇된 사고'를 가진 다른 사람을 탄압해서 통제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보통 '올바른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사실 사슴보고 말이라 우기는 지록위마를 실천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그 같은 생각의 변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은밀히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대다수 사람들이 변화를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변화가 상당 부분 진행된 이후다. 물론 그런 변화를 일찍이 눈치 채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수는 많지 않다.


어쨌거나, 현실은 늘 상상 이상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24-05-17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을 유기체로 볼 수도 있군요.
지구를 유기체로 가정하면 인구 감소도 맬서스의 종말론에 대비하는 지구 자정작용의 하나일 수도 있겠네요. 현실은 늘 상상 이상이니까요.

Heath 2024-05-17 14:14   좋아요 0 | URL
현실만큼 알기 어려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