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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원론적 문화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어떤 생각이나 사람들을 스펙트럼의 정반대 양쪽 끝에 나누어 놓고 식별하는 이분법적이고 계층화된 사고방식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다. - P325

우리는 타자를 적으로 보고 오만하게 우리만 ‘옳다‘거나 신은 우리 편이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만들어낸 대립과 비판과 판단을 합리화한다.
양극화(polarization)라는 이 방식은, 지금껏 어떤 사람은 부유하고 강한 존재가 될 수 있게 보호하는 반면에 다른 쪽 사람들은 가난하고 무지하고 약한 상태로 두었다. 자기가 경멸하는 세계관이나 종교적 신념을 따르는 사람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국수주의를 허용해 왔다. - P326

인간의 오만은 우리 모두가 생명의 연속체 속에서 공존하며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 P325

가부장적 관계에서는 종교적 차원이건, 정치적 차원이건, 개인적 차원이건 오직 한 사람만이 최고의 지위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다. 지배적인 인물이 권력을 유지하려면 자신의 파트너를 한 단계 낮은 위치에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 사람은 지배자의 위치에 있기를 기대하고 다른 사람은 지배받기를 기대하는 특정한 사고방식을 창출한다. 이런 배합의 유형을 구체적 사물로 비유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일 때는 시소와 같고 셋 이상의 관계일 때는 피라미드와 같다. - P330

인류 역사에 협력 관계가 중심인 사회들이 존재한 시기가 많았다. 그런 사회에서는 생명을 잉태하고 보살피는 신성성의 양상이 일상적 삶의 한 부분으로 숭배되었고, 종교적이거나 일상적인 일들을 수행하는 데에 성차별이 없었다. 서유럽의 구석기 시대 동굴과 차탈회위크와 하실라르의 무덤뿐만 아니라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 영지주의 기독교, 초기 켈트족, 아메리카 원주민들, 발리섬의 원주민들, 그밖에 많은 곳에서 이런 사회가 존재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 P336

우리는 지금 함께 여행하는 순례자들이다. 모든 생명의 존엄성—보이는 것이건 보이지 않는 것이건—을 존중하고 보존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여행 중이다. 그 안에 우리의 영웅적 힘이 있다. - P346

낡은 이야기는 끝났다. 영웅적 탐색의 신화는 진화의 나선 위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일시적인 명예에 불과한 직함이나 성취, 갈채, 부의 추구 같은 ‘본질이 아닌 것‘에 대한 탐색은 더는 타당하지 않다. 그 엉뚱한 탐색은 여성의 육체와 정신, 그리고 어머니 대지에 너무 비싼 통행세를 치르게 했다.
오늘날 여성 영웅은 자신을 과거에 묶어놓았던 자아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신의 영혼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찾기 위한 분별의 칼을 들어야 한다. 어머니를 향한 분노를 놓아버리고 아버지를 비난하거나 우상화하는 것을 그만 두어야한다. 자신의 어둠을 대면할 용기를 찾아야 한다. 그녀의 그림자는 이름 지어주고 껴안아줘야 할 바로 자신의 것이다. 여성은 자신 안의 이 어둡고 그림자 진 공간에 명상, 미술, 시, 연극, 의식, 관계 맺기, 흙을 만지는 일을 함으로써 빛을 비춘다. - P347

오늘날의 여성 영웅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녀 자신의 내면에서 은과 금을 캐내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 내면의 ‘가슴을 가진 남성‘과 긍정적인 관계를 발달시키고 신성한 여성성과 소원해진 자신을 치유하도록 내면의 지혜로운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녀가 정신뿐만 아니라 몸과 영혼도 존중할 때 비로소 자신과 문화의 분리, 그리고 자신 안의 내적 분리가 치유된다.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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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창조적인 여성성과 분리되었다. 우리가 직관과 감정과 우리 몸의 심오한 앎을 거부하면 우리의 이성은 그것들을 무시하고 평가 절하한다. "에로스보다 로고스의 영역으로, 우뇌보다 좌뇌의 영역으로 더 가까이 갈수록 여성성, 여신, 성배라 부를 수 있는,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어떤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소외감이 더 커졌다." 우리는 소외되었다는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지만 이 감정이 우리 본성 내부의 불균형에서 생겨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 P298

남성성은 원형적 힘이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성처럼 모든 여성과 남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창조적인 힘이다. 남성성은 균형을 잃거나 삶과 유리될 때 전투적이거나 비판적이거나 파괴적으로 변한다. 이렇게 삶에서 유리된 원형적 남성은 차갑고 비인간적일 수 있으며, 인간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 남자다움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저 전진하라고 말한다. 완벽과 통제와 지배를 요구한다. 어떤 것도 충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우리의 남성적 본성은 어부 왕처럼 상처를 입었다. - P298

성배는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신성하고 창조적인 여성적 원리의 상징이다. - P298

파르시팔과 어부 왕처럼 우리도 우리 안의 성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눈을 뜨고 의식을 확장해야 한다. 상처 입고, 메마르고, 부서지기 쉽고, 지나치게 힘이 세진 남성성을 치유하려면 촉촉하고, 싱싱하고, 자상한 여성성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황무지에서 살게 된다. 파르시팔은 성배의 성에서 성배를 경험했고 상처 입은 어부 왕을 만났다. 하지만 "무엇이 그대를 아프게 합니까?"라고 묻지 않았다. 우리 자신을 치유하고 싶다면 우리는 의식적으로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각자 안에서 통제 불가능한, 단절된 남성적 요소는 우리 안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균형을 잃게끔 몰아댄다. - P299

여성이 자기 내면의 이러한 불균형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식 세계의 빛을 암흑 세계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 안의 실체 없는 폭군을 대면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최면에 걸린 듯한 수동적인 삶과 경제적 이득과 자아 권력을 향한 분별없는 애착을 의식적으로 버려야 한다. 용기와 연민과 겸손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 P303

여성 영웅의 도전은 정복을 위한 도전이 아니라, 스스로 제어 - P303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군이 되어버린 자신의 이름 없고 사랑받지 못한 부분을 수용하기 위한 도전이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우리 내면에서 서로 충돌하는 부분들을 모두 세심하게 점검해야 한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용이 있다. - P304

여성 영웅은 자신의 본성을 인식하는 대로 숨쉬면서 우리 모두에게 지 - P320

식을 불어넣어 우리를 치유한다. 여성 영웅은 양쪽 세계의 여왕이 된다. 그녀는 일상이라는 삶의 바다를 항해하며 심오한 가르침에 귀 기울일 수 있다. 하늘과 땅의 여왕이면서 동시에 지하 세계의 여왕이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에서 지혜를 얻었다. 더는 다른 쪽을 비난할 필요가 없다. 그녀가 바로 그 다른 쪽이다. 여성 영웅은 세상과 지혜를 나누려고 자신이 얻은 지혜를 되가져 온다. 그녀의 경험이 세상의 여성들, 남성들, 아이들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시킨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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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우리 영혼의 본성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우리는 돈독하게 결속되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소속감과 공동체를 갈망한다. 우리 문화가 잃어버린 여성성의 긍정적인 특질, 즉 강인하고 잘 보살피는 특질을 열망한다. "개인 또는 사회가 너무 한쪽에 치우쳐 있거나 인간 경험의 깊이와 진실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질 때, 진실을 회복하기 위한 어떤 움직임이 내면에서 꿈틀거린다. 기존의 틀을 깨뜨리면 순식간에 일상의 현실이 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삶이 자유로워지고, 자기 치유와 더불어 내적 통과의례라는 심오한 영적 작용이 활성화된다." 우리는 강하고 힘 있는 어머니를 갈망한다. - P256

현실의 어머니가 자상하게 보살펴주는 어머니이건 냉정한 어머니이건, 아이에게 자율을 주건 조종하건, 곁에 있어주건 방치하건 간에 어머니와 내적으로 맺은 관계는 어머니 콤플렉스(mother complex)로 남아 우리의 정신에 흡수된다. - P260

우리의 집단 심리는 ‘어머니‘의 힘을 두려워하고 폄하한다. 또 그 힘을 파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어머니의 양육을 당연하게 여긴다. 기회가 되는 대로 어머니를 이용하고 학대하고 지배한다. - P262

교회는 신의 여성적 이미지를 파괴하고 남성 신들을 위해 여신의 힘을 찬탈하면서 오랜 세월 신의 여성적 얼굴을 지하로 밀어 넣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가 여성성을 잊어버리도록 온갖 짓을 다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여성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겠는가? 우리는 탐욕, 지배, 무지의 신들을 숭배하고 돌봄, 균형, 관용의 여성적 이미지를 조롱한다. 우리는 훼손하고 약탈하고 파괴하면서도 대지가 우리에게 끝없이 베풀어주기를 기대한다. 이 모녀 분리의 상처는 깊다. 이를 치유하려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 P262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깊은 상처를 경험한 여성들은 종종 평범한 경험 속에서 치유를 얻는다. 많은 이들이 신성한 일상에서 치유를 받는다. 설거지이든 화장실 청소든 정원에서 잡초 뽑기든 모든 일상의 행위에서 신성함을 보는 것이다. 여성은 자신을 평범한 일상에 내려놓으면서 보살핌을 받고 치유된다. 내면의 여성성을 회복하는 이 기간에 여성이 헤스티아 여신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내면의 현명한 여성‘을 발견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 P269

헤스티아 여신은 따뜻한 마음, 안전, 인간관계 같은 가치들과 관련이 있다. 가족이나 조직에서 헤스티아는 세세한 부분까지 보살피고 모든 사람이 각자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아는 사람, 촘촘하게 관계의 그물망을 엮는 ‘거미‘ 같은 사람이다. - P269

신화 만들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신화는 삶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데 필요하다. 마크 쇼러(Mark Schorer)는 시의 맥락에서 신화의 개념을 논하면서 이렇게 썼다. "신화는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할 때 쓰는 도구이다. 신화는 평범한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실들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거대하고 지배적인 이미지이다. 다시 말해 신화는 경험을 체계화한다는 데 가치가 있다. (집합적 의미의) 신화란 그러한 이미지들이 어느 정도 분명하게 구체화된 것, 판테온이다. 그런 이미지들이 없다면 경험은 그저 혼란스럽고 파편적이며 일회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 P274

여성들이 꾸는 꿈은 어둠에 관한 것이고 삶과 죽음의 가혹한 현실을 대면할 필요에 관한 것이며, 격변과 고통과 정신 이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꿈속에서 자신을 보살펴주고 새로이 창조해주는 거대하고 강한, 피부가 검은 여성을 만난다. - P280

동화는 대개 어린 소녀(또는 소년)의 관점에서 그녀가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부모, 형제자매, 마법적인 존재들과 그녀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동화 속 소녀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거나 못되게 굴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여정에서 겪는 시련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리하여 마침내 어떻게 성공이나 화해의 열매를 얻는지 듣게 된다.
동화 속에서 계모, 마녀, 미친 여자는 성장하는 아이들 앞에 장애물을 놓는 인물이면서 비열하고 몰인정한 데다가 아이를 굶기고 조종하고 시기하는 탐욕스러운 인물로 묘사된다. 그들의 사악한 행위는 대개 죽음으로써 벌을 받는다. - P283

동화는 계모나 사악한 마녀가 잔인해진 원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우리는 그저 그들은 원래부터 그랬을 거라고 추정할 뿐이다.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아이, 징징거리고 말 안 듣고 영악한 아이에 관해 그녀들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사악한 계모는 ‘완벽한 엄마‘를 갖지 못해 실망한 아이들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이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완벽한 엄마‘란 항상 집에 있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이해해주고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이웃집 엄마‘의 환상에 불과하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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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하강을 하고 가부장제의 정신적인 딸이라는 정체성을 끊어버릴 때, 그 대상이 여신이든 어머니는 내면의 어린아이든지 간에 다시 여성성과 연결되고 싶은 강한 열망이 생긴다. 영웅적 탐색을 하는 동안 지하 세계로 내려가버린 자신의 육체, 정서, 영혼, 창조적 지혜 같은 측면을 발달시키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아버지의 미성숙한 부분들과 맺은 관계에서 자신의 진정한 여성적 본능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220

역사적으로 육체와 영혼의 연결은 지모신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파괴되었다. ‘어머니 대지‘가 대대적인 파괴의 위협을 느끼는 지금에 와서야 관계가 회복되고 있다. 인류가 대지의 신성함을 잊고 숲이나 언덕이 아닌 교회나 성당에서 신에게 예배하기 시작했을 때 자연과 맺은 신성한 ‘나와 너(I-Thou)‘의 관계는 잊혀졌다. 우리는 어머니 대지의 모든 종(種)과 서로 연결된 대지의 자손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모든 생명체, 나무, 바위, 대양, 짐승, 조류, 아이들, 남자, 여자로 구현된 신성함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이렇게 자연의 성스러움을 무시하는 것이 육체의 신성함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 P221

하강을 끝내고 돌아올 때 여성은 자신의 몸을 되찾는다. 그 결과로 그녀는 자신의 건강한 몸 상태를 되찾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여성성의 신성함을 구체적인 행위로 표현한다. 그녀는 이 표현의 필요성을 분명히 의식하기 시작한다. 의식적인 영양 섭취, 운동, 목욕, 휴식, 치유, 섹스, 출산, 죽음을 거치며 그녀는 우리에게 여성성의 신성함을 일깨워준다. - P230

여성 영웅의 여정에서 가장 큰 도전은 자신이 여성성과 분리되어 있다는 데서 깊은 슬픔을 느끼는 것과 어떤 식이든 자신에게 적당한 방식으로 이 상실에 이름을 붙이고 애도하는 것, 그런 다음에 그 슬픔을 발산하고 나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 P236

다. 여성 영웅이 슬픔과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그러한 감정을 표출하는 동안 그녀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어머니나 자매 같은 인물—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이 보여주는 긍정적인 여성성의 지지가 필요하다. 슬픔의 강도는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제대로 볼 수 없고 알 수 없다고 느끼는지 그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녀가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는 데 얼마나 많은 시도를 해야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 P237

하강을 한 여성은 여성성의 탐욕스러운 파괴자 양상을 경험한다. ‘지상의‘ 삶에서 분리된 이 기간 중에 자신이 쓸모없다거나 자기 삶이 메말라버린 느낌을 경험하고 나서 여성은 창조적인 여성성의 촉촉하고 푸르고 물기 많은 측면을 갈망한다. 자신의 여성성과 단절되었다고 느끼는 여성은 창조성이 솟아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낄 때 천천히 자기 정체성을 되찾기 시작할 것이다. 정원에서, 주방에서, 집을 꾸미면서, 인간관계 속에서, 뜨개질을 하면서, 글을 쓰면서, 춤을 추면서 재생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여성의 심미적이고 관능적인 감각은 색깔, 냄새, 맛, 촉각, 소리로 새로운 활력을 얻으면서 되살아날 것이다. - P245

여성성은 어떤 일이든 만물의 자연스런 순환 속에서 일어나고 흘러가도록 둔다는 특징이 있다. 깊은 무의식 차원에서 치유나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고요함과 재생의 단계가 있다는 것과 이 단계들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 누구도 탄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발현의 신비를 믿는 것이 여성성의 여 - P248

정이 주는 심오한 가르침 중 하나이다. - P249

존재함은 자신을 증명하려고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머무르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P249

여성들은 자신의 자궁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허락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있는 그대 - P250

로 존재하는 것을 지지하고 존중한다면 여성들은 지혜를 낳을 것이다. 우리의 행성인 가이아 여신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과 긍정적이고 원만한 관계를 맺도록 정신을 집중해서 존재함의 지혜를 발휘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해 온 행위가 엄청난 환경 파괴를 불러 왔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삶에서 영웅과 여성 영웅을 재정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영웅적 탐색은 권력, 정복, 지배에 관한 탐색이 아니다. 영웅적 탐색은 우리 본성의 여성성과 남성성 두 측면의 결합을 통해 우리 삶에 균형을 가져오는 일이다. 현대의 여성 영웅은 자신의 개인적 힘, 즉 느끼고 치유하고 창조하고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인 여성적 본성을 회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대면해야 한다. 여성 영웅은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지혜를 가져다준다. 그녀는 이 지구라는 그릇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우리의 삶에서 여성성을 회복하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여성 영웅을 그리워한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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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강은 영혼의 어두운 밤, 고래의 뱃속, 암흑의 여신과의 만남, 지하 세계로 가는 여정으로 여겨지거나 또는 그저 우울증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강은 대개 삶을 통째로 바꿔놓는 상실에서 비롯된다. - P177

지하 세계로 가는 이 여정은 혼돈과 비탄, 소외와 환멸,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 P177

지하 세계에는 시간 감각이 없다. 시간은 무한하고 그곳을 서둘러 떠날 수도 없다. 아침도 없고 낮도 없으며, 또는 밤도 없다. 칠흑같이 어둡고 혹독하다. 온통 암흑뿐인 지하 세계는 축축하고 차갑고 뼈가 시리다. 지하 세계에는 쉬운 해결책이 없다. 빠져나가는 지름길도 없다. 울부짖음이 그친 그곳엔 침묵뿐이다. 여성은 벌거벗은 채 죽은 자들의 뼈 위를 걷는다. - P178

위로 올라가고 빛을 향해 밖으로 나아가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그들 존재의 근원 아래로 깊이 내려가 자신에게 돌아가는 길을 찾는다. 자신에게 돌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 땅을 판다는 비유는 여성의 입문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여성에게 영적인 경험은 자아의 바깥이 아닌 자아의 내부로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 P180

어머니를 거부하면서 여성성의 거울이 산산조각 난 여성은 분리된 자신의 부분들을 되찾기 위해 땅속 깊이 내려간다. 이 여행중에 여성은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몸, 자신의 감정, 자신의 성적 취향, 자신의 직관, 자신의 이미지, 자신의 가치,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될 수 있다. 이것들이 그녀가 그 깊은 곳에서 찾는 것들이다. - P181

하강은 강박 행동이다. 우리는 모두 하강을 피하려고 애쓰지만 삶의 어떤 순간에는 내면 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강은 매력적인 여정은 아니지만 반드시 여성을 강하게 하고 여성이 자아감을 분명히 하게끔 한다. 오늘날 몇몇 여성들은 하강 과정을 꿈속에서 암흑의 여신을 만나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 P183

칼리 여신과 다른 여신들의 창조 원리(creatrix principle)는 아버지 신들(father gods)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 P183

"모든 어머니는 자기 안에 딸을 품고 있고 모든 딸은 자기 안에 어머니를 품고 있다. 모든 여성은 뒤쪽으로는 어머니와 이어지고 앞쪽으로는 자신의 딸과 이어진다." - P197

헬렌 루크(Helen Luke)는 모자와 모녀 경험의 엄청난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원형적 차원에서 아들은 어머니 자신의 내적 탐색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반면에 딸은 바로 어머니 자신의 확장이다. 딸은 어머니를 어머니 자신의 과거와 젊음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자기 인식과 새로운 존재로의 재탄생을 약속하며 미래로 이끈다." - P198

자신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딸‘로서 살아왔음을 깨달을 때, 우리에겐 몇 가지 캐내야 할 것이 있다. 문화라는 의복으로 덮어 감추기 전에 우리들 것이었던 우리의 일부를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 P203

자연이나 몸과 관계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한 것처럼 에레슈키갈은 남성 신들에게 강간당하고 지하 세계로 추방당했다. 그녀는 지하로 가버린 여성성의 일부이다. 격노, 탐욕, 상실의 공포를 상징한다. 원초적이고 거친 성적 에너지이다. 의식의 세계와 분리된 여성적 힘이다. 무시당하고 조롱받는 여성의 본능과 직관이다. "그녀는 태어나기 전의 잠재적 생명이 출산의 진통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장소이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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