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노예가 되는 것은 그저 자기이익을 계산해서가 아니다. 고리키가 개탄했듯 노예성은 영혼 안에 있다. 인간관계에서 설명해야 할 것은 바로 권력을 가졌거나 상징하는 인물에게 흘리는 현상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남들에게 기운을 내뿜고 그들을 자신의 기운 속으로 녹이는 무언가가 있다. 이것이 크리스틴 올든Christine Olden 이 말한 ‘자기애적 인격‘의 ‘매혹 효과‘다 - P214
인간은 자신이 전능하고 무적이라고 느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욕망을 따르는 타고난 파괴적 동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호와 뒷받침을 얻으려다세상을 어깨에 짊어지고 자신의 연약한 힘을 비겁하게 확인받으려는, 전율하는 동물이다. 그렇다면 지도자의 특징과 사람들의 문제는자연적 공생 관계로 맞아떨어진다. 내가 집단심리학의 몇 가지 세부사항을 길게 언급한 이유는 지도자의 힘이 그가 소유한 주술을 뛰어넘어 그가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서 비롯함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지도자에게 투사하며, 이는 그에게역할과 위상을 부여한다. 추종자에게 지도자가 필요하듯 지도자에게는 추종자가 필요하다. 지도자는 홀로 설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 고립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추종자들에게 투사한다. 카리스마의주술을 가진 타고난 지도자가 없다면 사람들은 그런 지도자를 만들(p. 231)어내야 할 것이다. - P230231
아무리 많은 교회가 폐쇄되고 지도자나 운동이 아무리 인본주의를 자처하더라도 인간적 두려움에는 전적으로 세속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의 공포는 언제나 ‘신성한 공포다. 이 표현은 절묘한 관용 표현이다(영어 holy terror‘는 ‘무척 무서운 것‘을 뜻한다_옮긴이). 공포는 언제나 삶과 죽음의 극치를 가리킨다. - P246
불멸충동은 죽음불안에 대한 단순한 반사작용이 어니라 자신의 전 존재로써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 P250
결국 삶은 피조물이 맞닥뜨리는 도전이자 매혹적인 확장 기회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 충동은 개별화 충동이다. 나의 독특한 재능을 어떻게 실현하고 나 자신의 자기확장을 통해 세상에 나름대로 기여할 것인가의 문제다. - P251
우리는 스스로를 창조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붙박여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이는 현실의 왜곡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 왜곡에 두 측면이 있음을 안다. 그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왜곡과 자기확장과 내적 자아와 주변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를 보장하려는 영웅적 시도로 인한 왜곡이다. 말하자면 전이는 인간 조건의 전체 모습을 반영하며 이 조건에 대해 가장 큰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인간이 왜곡해 축소하지 않고서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의 조각은 얼마큼일까? 랑크, 카뮈, 부버가 옳다면 인간은 홀로 설 수 없으며 자신을 지탱해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전이가 영웅주의의 자연적기능이고 삶과 죽음과 자신을 감당하기 위한 필수적 투사라면 앞의물음은 이렇게 바뀐다. 창조적 투사란 무엇인가? 삶을 향상시키는환각이란 무엇인가? - P258
한마디로 인간의 우주적 영웅주의는 그가 아무것도 아님에도 보장되었다. 세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천국이라는 또 다른 차원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노예와 절름발이, 얼간이, 무지렁이와 힘꾼을 모두 든든한 영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기독교 세계관의 가장 주목할만한 성취였다. 또는 기독교가 피조물 의식-인간이 가장 부정하고싶던 것을 우주적 영웅주의의 바로 그 조건으로 만들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P260
현대인은 여전히 자신이 영웅적이라고 느끼고 싶었으며 자신의 삶이 사물의 체계에서 중요하다고 여기고 싶어 했다. - P260
랑크가 간파했듯 현대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낭만적 해법‘이었다. 현대인은 우주적 영웅주의 충동을 사랑의 대상이라는 형태로 딴 사람에게 고착시켰다. 자신의 가장 깊숙한 본성에서 필요로 하던 자기찬미를 그는 이제 연애 상대에게서 찾았다. 연애 상대는 그에게 거룩한 이상이 되며, 그는 그 속에서 삶을 성취한다. 모든 영적·도덕적 욕구가 이제 한 개인에게 집중된다. 한때 또 다른 차원으로 일컬어지던 영성은 이제 이 땅으로 내려와 또 다른 개별적 인간이라는 형상을 얻었다. 구원 자체는 더는 신 같은 추상물로 지칭되지 않으며 "타인의 시복"에서 추구할 수 있다. - P261
연인은 우주적 영웅주의를 실천할 수 없다. 자신의 이름으로 죄를 사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그 또한 유한한 존재이기에 운명의 굴레에 갇혀 있으며 우리가 그 자신의 유류성에서, 그 자신의 쇠락에서 그 운명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로지 개인의 바깥에서, 너머에서, 사물의 궁극적 원천인 창조의 완벽함에 대한 우리의 개념화에서 온다. 랑크가 간파했듯 구원은 우리가 자신의 개별성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자신의 피조물성과 무력함을 받아들일 때 찾아온다. - P271
니체는 유대교.기독교의 체념적 도덕을 맹비난했지만랑크는 니체가 "인간 존재의 내면에 있는 그런 종류의 도덕에 대한깊은 욕구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랑크는 "진정으로 종교적인 이인간의 본성에 고유한 것이며, 그 욕구데올로기에 대한 욕구는의 성취는 어떠한 종류의 사회생활에나 기본적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프로이트를 비롯한 사람들은 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피학적이며 자신을 비우는 것이 모욕적이라고 상상할까? 랑크는 오히려 이것이 자아의 가장 큰 확장이며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이상이라고 답한다. 아가페적 사랑 확장의 완성이자 진정으로 창조적인 유형의 성취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랑크는 이런 방식으로만 가장 높고 가장 덜 절편화된 차원에서 자연의 거대함에 굴복함으로써만 인간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삶을 진정 영웅적으로 승인하는 것은 성 너머에, 타인 너머에, 사적 종교 너머에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은 임시방편으로, 인간을 끌어내리거나둘러싸 모호함으로 갈기갈기 찢을 뿐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인격 안에 참된 내적 가치가 없을 때, 자신이 옆에 있는 무언가의 반사에 불과하며 영구적인 내적 자이로스코프가 없어 중심을 잡지 못할 때다. 중심을 잡으려면 인간은 ‘당신‘ 너머, 타인과 이 세상 사물이 주는 위안 너머를 바라보아야 한다. - P281
‘정상적‘인 인간은 삶에서 자신이 씹어 삼킬 수 있는만큼만 베어 물지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다. 말하자면 인간은 신이 되도록, 온 세상에 관여하도록 생겨먹지 않았다. - P285
이제 우리는 신경증 문제가 두 가지 존재론적 동기와 어떻게어우러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인간은 주변 세상과 합쳐지며 한낱 일부가 되어 삶에 대한 자격을 잃는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완벽한 자격을 얻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며 그로 인해 세상에서 제 식대로 살고 행동할 능력을 잃는다. - P291
전통사회에서는 단지 자식을 키우고 일하고 예배를 드리는 일상적 의무를 다함으로써 영웅주의를 추구할 수 있었으나, 현대인은더는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영웅주의를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인은 혁명과 전쟁, 그리고 혁명과 전쟁이 끝나더라도 계속될 ‘영구‘ 혁명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성스러운 차원의 퇴색에 대해 현대인이 치르는 대가다. 그가 영혼과 신의 관념을 권좌에서 끌어내렸을 때 그는 자신의 방편에 자신과 자기 주위의 소수에게로 가망 없이 내던져졌다. 연인과 가족마저도 우리를 함정과 환멸에 빠뜨리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절대적 초월을 대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우리가 논의한 의미에서의) 어설픈 환각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 P304
나는 수많은 개종자들이 전도에 열성을 보이는 현상을 이로써 설명할 수있다고 생각한다. 언뜻 생각하면 그들이 길거리에서 우리에게 자기처럼행복해지는 법을 끊임없이 떠벌이는 이유가 의아할 것이다. 그들이그렇게 행복하다면 우리를 들볶을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내가 앞에서말한 것에 따르면 그 이유는 그들이 매우 사적이고 개인적인 무언가를강화하고 외부화하려면 숫자의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지않으면 공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 자신을 믿을 수있으려면 남들도 자신과 같음을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 P318
현대적 정신의 특징은 신비와 어수룩한 믿음, 고지식한 희망을 버렸다는것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 뚜렷한 것, 인과관계, 논리적인 것을 강조한다. 언제나 논리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 사실과 허구의 차이, 상징과 몸의 차이를 안다. 하지만 현대적 정신의 이런 특징은 바로 신경증의 특징임을 우리는 한눈에 알 수 있다. 신경증 환자를 특징짓는 것은 그가 현실을 마주해 자신의 상황을 ‘안다‘는 것이다. 그는 의심이 전혀 없다. 뭐라고 말해도 동요하지 않는다. 희망이나 신뢰를 품게 할 수도 없다. 그는 비참한 동물이다. 그의몸은 쇠락하고 그는 죽을 운명이며 먼지와 망각으로 돌아가 이 세상뿐 아니라 모든 가능한 차원의 우주에서 영영 사라질 것이다. 그의 삶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목적에도 이바지하지 않으며 그는 태어나지 않았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진실과 현실을 안다. 그것이 온 우주의 동기임을.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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