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사란 무엇인가? - 역사가가 텍스트를 읽는 방법
리처드 왓모어 지음, 이우창 옮김 / 오월의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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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여러 하위 분과로 나뉜다. 그 중 하나가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 혹은 사상사(History of ideas)다. 그외의 영역들에 대해서는 『OO(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볼 것을 권장한다. 너무나 분야가 다양해서 여기에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중에는 정치사 같은 전통적으로 강세를 부이는 하위 분과도 있고, 여성사처럼 20세기 후반에 부상한 분과가 있는가 하면, 공공 역사, 환경사, 디지털 역사처럼 21세기 들어 주목받는 분과들도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다양한 역사학 분야들 중 하나로서 지성사가 거쳐온 궤적과 그 실천성, 존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지성사 입문서다. 


지성사, 혹은 지성사의 또 다른 명칭이라 할 사상사에 가해진 전통적인 공격이자 선입견을 들자면, 일부 남성 엘리트들이 남긴 텍스트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일부 남성 사대부들이 남긴 저명한 텍스트만 연구대상으로 삼는 경우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이미지를 서양사에 반전시켜 본다면, 이미 죽은 일부 엘리트 백인 남성들의 텍스트에만 매달리는 것으로 다분히 비춰보이기 쉽다. 당연하지만 지성사는 하나의 연구방법론이기 때문에 어떤 텍스트든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오류다(문제는 현재와 거리가 멀수록 연구를 위한 역사적 자료 자체가 빈약해진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러한 오해를 바로 잡고, 나아가 하나의 역사적 실천으로서 지성사란 무엇인가를 조망한다. 이 책의 본문 첫부분인 서론에서 제일 먼저 제시되는 것은 19세기 초 잉글랜드의 한 채석장에서 발견된 석공의 메시지다. 저자는 해당 석공의 메시지를 두고 사회사가일 경우 채석장 노동자들의 삶과 사회적 위치, 노동자가 속한 사회를 재구성하고자 할 것이며, 경제사가는 노동자들의 임금 및 경제적 조건을, 문화사가는 개인과 사회집단의 독특한 담론이나, 역사적 인물과 보다 큰 사회 집단 간의 권력관계를 분석할 것이나, 지성사가라면 석공이 남긴 언어, 즉 말에서 출발할 것이라 가정한다. 이어서 저자의 시선은 석공의 짧은 메시지로부터 19세기 초 영국의 상황과 그에 대한 데이비드 흄의 당대 인식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책은 서론, 본문 6장, 결론, 옮긴이 해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왓모어는 먼저 지성사에 대해 개관한 후, 현재의 지성사(정확히는 저자가 속한 캠브리지 학파)에 이르기까지의 지성사의 역사를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아서 러브조이처럼 낯선 이도 있는 반면, 콜링우드, 쿤, 푸코처럼 반가운 이들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주인공은 결국 저자가 속한 캠브리지 학파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지성사의 방법론, 실천적 의의 모두 캠브리지 학파의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해당 학파의 창시자라 할 퀜틴 스키너와 J. G. A. 포칵은 1960년대 기존의 사상사의 방법론에 반기를 들고 기존 사상사의 오류를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 언어맥락주의를 내세웠다. 


스키너의 언어맥락주의에서 철학적 기반은 영국의 철학자 오스틴의 화용론에 바탕을 둔다(오스틴의 저작 『말과 행위』는 현재에도 번역서가 절찬 판매 중이다). 예를 들어보자. 경찰이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을 보고 "거기 얼음이 얕으니 주의하세요"라고 말한다면 무슨 의도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단순히 얼음이 얕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함일까? 여기서 텍스트의 이중적 면모를 끌어낼 수 있다. 어떤 텍스트가 말해질 때나 쓰여질 때, 즉 발화될 때와 해당 발화가 지니는 발화수반적 힘(illocutionary force)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다. 스키너는 저자가 텍스트를 쓰는 행위와 저자가 쓴 텍스트를 별개로 구분하고, 텍스트를 저술하는 시점, 즉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텍스트의 저자가 의도한 바, 그리고 행위로서 텍스트의 효과를 따져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우리가 플라톤의 텍스트를 읽을 때, 플라톤이 역사적 맥락에서 어느 시점에 위치하는지, 그리고 플라톤이 텍스트를 작성한 의도가 무엇인지, 해당 텍스트가 지니는 발화수반적 힘이 무엇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플라톤이 당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논하는 텍스트를 현대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대한 텍스트라고 착각해버리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언어맥락주의는 지성사가들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도 유익한 실천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논증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는 언제나 주장을 하고, 그에 대한 논거를 대고, 논거의 근거를 댄다. 한 마디로 '논증'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수행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주장, 논거, 근거를 늘 수반한다. 지성사의 방법론으로서 언어맥락주의는 누군가가 어떠한 주장을 할 때, 그의 주장을 탐색하게 해주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 그런 주장을 펼치는가, 주장을 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주장이 담고 있는 발화수반적 힘은 무엇인가. 이 같은 지점들을 곰곰이 따져 우리는 세상에 범람하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거나 반대로 오해하는 경우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쯤에서 이 책의 한계점도 지적해두는 것이 온당하겠다. 사실 언어맥락주의는 1960년대 퀜틴 스키너의 글에서 등장한 연구방법론인 만큼 국내 학계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 옮긴이 해제에서 이러한 부분을 딱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짚고 가야 할 점이다. 이 책 본문의 한계를 꼽자면 이 책의 서술에서 주인공이 캠브리지 학파라는 점이다. 사상사 혹은 지성사는 각 국가마다 그 관심 분야가 달라지고 연구방법론도 조금씩 달라진다. 이 책에서 소개되듯이 독일에서는 개념사가 강세를 보인다면, 이 책에서는 일언 반구의 언급도 없지만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고유한 사상사 혹은 지성사가 전개되었다. 『지성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 책만으로는 지역별로 다른 지성사/사상사의 흐름을 포착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유럽, 그 중에서도 영국, 영국에서도 캠브리지 학파의 일원들만의 사상사를 개론서로 소개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읽고난 후, 우연히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해당 유튜버의 비판점을 요약하자면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쓰인 한 베스트셀러 서적이 사실은 저자가 아들러의 텍스트들을 원래의 맥락과 다르게 왜곡한 책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베스트셀러의 저자는 아들러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발언을 교묘하게 비틀어 마치 성인까지 포괄하는 발언으로 고쳐쓰는 식으로 아들러의 원래 의도를 곡해한 지점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사안에 대해 판단할 의도는 전혀 없다. 문제는,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여러 텍스트들이 오류가 없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저자가 의도했거나, 의도하지 않았거나 간에 말이다. 그래서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성사, 특히 언어맥락주의의 방법론은 저자와 저자의 발화로서 텍스트 간의 관계를 포착하여 텍스트를 면밀히 읽도록 도와줄 수 있다. 역사적 텍스트를 넘어, 현실에서 누군가의 주장을 마주할 때 이 책의 독자는 상대의 주장을 해부할 수 있는 메스를 쥐고 마주선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지성사를 소개하는 개론서를 넘어서는 실천적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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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맛을 즐길 수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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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를 넣어서 라떼로 마시기 좋습니다. 다만 콜드브루 데미안처럼 병을 기울일 때 흘러내리는 게 문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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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3권 모두 읽게 되었다. 


우선 다음 두 가지 사례가 떠오른다.


1. 단체 패키지 여행을 갔디. 현지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한다. 그런데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다.


2. 뷔페에 가서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메뉴를 접시 하나에 담아온 후 깨끗이 비웠다. 식후 다른 사람들과 담소를 나눌 때 뷔페에서 몇 조각 집어먹은 음식만 가지고 한식이 이래서 어떻고 중식이 저래서 어떻고 품평한다.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책이다. 제목이 말하는 것에 충실하기에 그 이상을 바래서는 안 된다. 저자가 독특한 관점을 내세워 지식의 위계를 제시하고, 그를 바탕으로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진리를 포괄하는 폭넓은 지식을 전개하긴 하나, 그 깊이는 너무나도 얕다. 얼핏 보기에는 그 방대함에 압도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은 방대한 지식을 압축시켜놨기 때문에 결국 그 수준은 고등학교 탐구영역과 대학 학부 전공 사이에 수렴하게 된다. 쉽게 말해 대학 학부 수준 교양 과목들 몇개를 합쳐서 한꺼번에 듣는 것이라고 할까. 


그래서 앞서 1번의 감상처럼 왠만큼 책 꽤나 읽은 사람, 교양 꽤나 쌓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 피상적인 얕음이 눈에 보일 것이다. 반대로 교양이라는 측면에서 그동안 쌓은게 별로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2번의 사례처럼 흘러가기 좋다. 


이건 사실 당연한 현상이다. 방대한 지식을 우겨넣는 과정에서 저자가 책에 넣을 지식을 선별하는 과정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수백, 수천, 심하면 수만 페이지 짜리 책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런 책을 누가 읽겠는가? 위키백과로 책을 만들어 팔면 누가 그걸 읽겠는가? 이건 그 어떤 천재가 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지식의 중요도를 판별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안그러면 지식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책의 가치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어느 책이든 편향될 수밖에 없다. 역사가가 사실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역사가의 관점이 개입할 수밖에 없듯이, 저자가 어떤 지식을 엮는다고 할 때 저자가 자신의 관점에 의거해 중요한 지식과 그렇지 않은 지식들로 나뉘어 엮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측면에서 이 시리즈물을 더 살펴보자면, 2권에서 나름의 지식 체계를 제시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철학자 모티머 애들러가 『평생공부 가이드』에서 알파벳식으로 지식을 나열하는 백과사전 구성을 비판한 점에 비춰볼 때, 지식의 위계를 구성한다는 시도는 그 깊이가 깊고 얕음을 떠나 의미있는 일이다.



다만 그러한 지식의 위계가 모두가 납득할만한 것인가? 라고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에 대한 답은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어쨌든 이 시리즈의 장점과 단점 모두 얕은 지식을 추구하는 점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너무 많은 내용을 축약해서 담아놓았기 때문에 독자들의 의문을 자아내는 지점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책 말미에 가서 이 책의 독서를 여행에 비유하며, 앞으로의 여정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특정 분야의 지식에 흥미가 생긴 독자라면 당연히 그보다 더 깊은 지식을 추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디로 나아가야할 것인가? 어느 책을 읽어야할 것인가? 예를 들어 역사 분야에 흥미가 생겨 책을 더 읽고 싶은데 어느 책을 읽으면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가이드가 단체여행객을 인솔하여 산 정상에 올랐는데, 그 너머 보이는 산은 알아서 가라는 격이다.


물론 여행 목적지가 이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었다면 가이드가 굳이 이 산 너머 저 산까지 어떻게 갈지 알려줄 필요도, 의무도 없고, 굳이 돈을 더 받지도 않으면서 인솔까지 할 필요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시작할 때 두 가지 감상에서 시작했다. 2번 같은 케이스는 책 한 두권 읽고 그걸 바탕으로 타인이나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성급히 재단하는 경우로 이어지기 쉽다. 예를 들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만 읽고 타인과 소위 '지적 대화'를 나눌 때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로마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단, 비판적 관점을 취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시리즈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문헌이나 더 읽을 책 목록을 제시해줬으면 지식에 흥미가 생긴 독자들이 그 분야를 더 파고들수 있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이 시리즈물이 깊고 방대한 지식을 넓고 얕은 지식으로 압축한 이상,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나 편향된 정보를 전달하였을 수도 있으니, 독자를 위해서라도 이런 후속 조치 정도는 취했어야 하지 않을까?


참고문헌이 제시되는 것은 제로편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단촐하다. 1편과 2편은 참고문헌이 없다. 물론 책 여기저기서 누구의 연구 결과라거나 누구의 말을 인용하긴 하지만 책을 읽으며 집중하는 도중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새로운 인물의 주장을 그 자리에서 따로 찾는 것은 한참 몰입해서 읽는 행위를 방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시리즈는 교양이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교양을 쌓기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정도라면 적절하다. 물론 이 역시 책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장착했을 때 그렇다. 그런 비판적 관점 없이, 저자가 제시하는 압축된 내용에 대해 아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책의 내용을 무작정 수용하는 식으로 이 시리즈를 읽는다면 제일 처음 말한 2번의 사례를 실천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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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이나 디자인을 보면 선물용으로 좋다고 하고 싶은데 부을 때 흘러내리는 경우가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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