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그녀는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3
다구치 란디 지음, 김난주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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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번째 접하는 그녀의 소설이다. 콘센트 이후로 무척 오랜만인. 되짚어보니까, 콘센트 리뷰를 아직 올리지 않은 것이 기억났다. 나중에, 다시금 읽고 밑줄 긋기랑 리뷰 등록을 해야겠다.
일단, 단편집이라서 더욱 끌렸다. 표지의 디자인부터 내 타입이었고. (책 내용과 더불어 책의 디자인도 좀 따지는 경향이 있다) 어쨌거나, 구입은 해서 별다른 탈 없이(중도에 그치거나, 버럭버럭 성질을 낸다거나_ 허나, 약간은 짜증을 내긴 했었다.)읽기는 했지만, 아홉 가지 단편은 전체적 평으로 그다지 특이했다거나 환호하는 스타일의 글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표제작이랑 몇몇 단편에서 군데군데 담아두고픈 표현(개인적 판단으로)을 발견했다는 정도가 건진 거라고 할까.(건방진 거 알지만, 그렇다고 덮어놓을 수는 없는 법. 좋았다는 인상으로 쉬이 바꿀 수도 없는 법.)또한 간간이,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그 대화가, 소설의 전체(분위기라던가, 의도라던가)를 아우르는 열쇠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응, 서른이 되기 전에 좀 과감한 행동을 해보고 싶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냥 이대로 눌러앉을 것 같아서 말이지.”]
[“대단하지, 벚나무. 아무 불평 않고 기다렸어. 비가 그치고 꽃이 피기를, 그저 잠자코 기다린 거야. 슬퍼하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고,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다리다가, 지금 이렇게 활짝 핀 거겠지.”]

주인공 여자들의 성격에 관해 언급한다면, 그리 주관이 뚜렷한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서 달리 끌리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소 충동적이긴 해도, 결단력 있는 주인공에 이끌린다. 이건 밝음과 어둠의 확연한 구분이 아니다. 밝아서 돋보이는 주인공이 있고, 어두워서 공감하여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주인공이 분명 있다. (스스로는 어두운 주인공에 더욱 빠져들지만)비록 현 상황에 고립되어 있을지라도, 무언가 뒤집을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는 그런 주인공.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저지르고 보는, 그런 주인공을 소설 속에서 만들기도 하고.(-_-)
능동적 대응보다 수동적 대응이 더 많았다는 것이, 내 안의 빈 상자를 채워주지 못했다는, 내게서 섣부른 결론을 끌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차츰 대화에 매료되어 하나하나 몰두하여 다시금 곱씹었던 것은 그래도 아직 단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작가는, 돌을 찾아가는 과정을 사랑이라고 해석하여, 담아내려 노력했다고 전한다.

[각 작품의 주인공들은 불행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기분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휩싸여 있다. 그런 그들에게 '전화'는 갈등의 증폭제인 동시에 해소제이다.] - 책 소개 중에서.
[들리지 않는 소리, 그것을 듣는 작가가 다구치 란디다. 그녀는 잡다한 세상의 소음을 모두 샤우트아웃하고, 그 속에서 특별한 소리만을 뽑아내는 강력한 필터를, 그 펜 끝에 가지고 있다.] - 우스이 유지 (소설가)

 

- 예전에, 책 소개 페이지에서 목차 부분 오타가 있다고 알라딘에 비밀로 건의했는데,

아직 수정이 안 된 듯합니다. 고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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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이명랑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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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에 읽었음에도,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리뷰와 함께, 살짝 미뤄두고 있었다. 내내 머릿속으로 흐릿한 영상을 그리면서, 어떤 식으로 풀어야할 지 고민을 거듭했다.
작가와의 만남은 이번이 (실질적으로)처음이다. 슈거 푸시란 책을 구입했던 기억이 있는데, 읽다가 말았던 과거가 있다. 그때는 공감 코드를 발견하지 못했던 걸지도. 알라딘에서 소개를 우연히(의식적 우연인가, 새로 나온 책 코너는 늘 기웃거리니까/) 발견하고 궁금하여 얼른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2007년 4월 26일 아침 매장 신간코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확인하고 찜해두었다가, 동행들이랑 헤어지고 나서 (누가 가져갈 세라) 냉큼 구입하고서 집을 향해 갔다. 그때, 동생이 선물로 주었던 문화상품권을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0426~0505)기간 동안 하루에 단편의 반쯤, 혹은 단편 하나까지 읽을 때도 있었다. 느릿느릿 읽을 수밖에 없었던 단편이 있고, 후딱 해치운(?)단편도 있다. 더러 공감하거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구를 정도의 솔깃한 표현을 찾고 환호하고, 나름 세심하게 밑줄 긋기 기록을 하면서 집중했다. 그리고 이미 밑줄 긋기 등록은 마쳤다. 리뷰는 여간 조심스럽지 않아서, 심적 부담이 컸다.
뒤의 해설 부분에서는 작가의 문학적 변화가 엿보인다는 이야기를 바탕에 깔아두었다. 사실, 작가의 이전 작품을 접하지 않아서 그것까지는 파악이 안 되었으나, 일단, 변화라는 영역 안에서는 내가 끌어갈 수 있는 단서를 하나 찾았다는 생각이다. 제자리에 머물기보다, 무언가 탈출구를 찾듯 뚫고 나갈 수 있는,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는 소설을 적극 선호하는 나로서는, 개인적으로 참 반가운 타입의 작가다.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단편집을 낼 터이고, 여러 번 파고들 수 있었으면 바라고 있다. 주목하는 작가 리스트에 포함되었음은 물론이고, 조만간 슈거 푸시를 통해 그녀의 세계를 재차 탐험해볼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인상에 남은 단편은 [미니 초코파이]. 또한 개인적 판단으로 구성이 돋보였던 소설은 [누군가 목덜미를 잡아챘다] 한 문장, 거푸 되짚으며 읽었던 단편은 [정직한 너에게]. … 다 풀어낼 수 없는, 정리할 수 없는. 각각 단편들은 각양각색의 이미지로 다가왔으며, 충분히 값진 시간이었다.

- 아직 포장의 리본을 풀지 않았을 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니야, 아니야, 부정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으로 시작되는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고, 어제 연필로 휘갈겨 쓴 영어 단어 위에 오늘치의 영어 단어를 붉은색 볼펜으로 휘갈겨 써 어제의 시간을 지워버리듯 선물상자 바닥에 몇 번이고 다시 새로운 밑그림을 그려 넣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누군가 내 앞으로 부친, 발신인이 분명하지 않은 그 선물상자를 앞에 놓고 나는 그 속에 들어있을 알맹이를 상상하며 상자 바닥에 밑그림을 그려 넣곤 했지.(199~200쪽)

미래는 구불구불 미로처럼 까마득하고 이렇다하게 정해진 것이 없기에, 몇 번이고 밑그림 수정이 가능하다. 나 또한 어릴 적 모험을 꿈꾸는 아이에서, 지금은 현실에 적응하고, 부당하다 생각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시기도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인생이 펼쳐질 지 장담하고 단정할 수 없다. 그리하여 스케치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겠지. 흥미진진하게 도전하고, 배움의 묘미를 깨달을 생각이다. 이 열정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고, 어디든 언제까지나.

- 흘러간 것들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떠나간 시간을 저토록 아파할 수 있다면 아직 싸우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36쪽)

나도 아직은, 싸우고 있는 중이다. 나뿐 아니라, 내 주위 친구들, 그리고 혹 이 글을 보고 있을 여러분들도. 그리고 나에게 비상구랄 수 있는, 대학 때부터 쓰기 시작했던 소설, 작가의 말처럼 왜 쓰는지 더는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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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바이 리틀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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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상 만들기 놀이.

 

 

(05.04)


  2004년 출간 당시, 서점에서 바로 발견해서 약간 기간이 지나 구입하고, 읽었던 기억. 최연소 수상작가라고 거창하게 소개한 띠지와, 너무나 얄팍한 분량에 처음엔 그저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 번 쓱 봤다가 도로 그 자리에 꼽아놓았다. 그러다 표지와(좋아하는 타입의 일러스트;)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다 보니, 소소한 일상이 펼쳐지고 있어 읽기에 별 무리가 없을 듯 판단해서, 그 후엔 이것저것 따지기를 접고 구입했다. 그 당시, 복잡하고 까다로운 교재와 거듭 파고들어도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고 건지지를 못해 잠시 미뤄두고픈 소설책이 여럿 있었기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간절히 원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두세 번 되풀이해서 읽을 수 있을 만큼, 책 두께는 한없이 얇다. 그리고 스타트를 접했을 때, 굉장히 싱거운 맛이 났다. 갓 20살이 된, 여자아이의 시선에 닿는 가족, 풍경, 그리고 기다림과 아기자기한 사랑 에피소드.
 

  커다란 충격을 몰고 올 사건은 터지지 않고, 이렇다 할 외적갈등은 없으며, 여자 아이의 내면에서 생긴 불안이다. 그렇다고 그런 불안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매일 겹쳐지는, 어쩌면 무지 사소한 일상에서 자그마한 구석에 웅크린 심리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후미는 그 ‘무서움’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거의 결말이 다가올 즈음, 남자친구 슈에게 조그마한 단서를 넌지시 비출 뿐이다.

 

“가끔은, 무서워.”
“무슨 말이야?”
“모든 것이, 하나같이 전부. 오늘 자고 나면 내일 아침 아르바이트, 인파, 따분한 평일, 잠들기 전, 전부.”
“그런 때는 어떻게 하는데?”
“죽은 것처럼 눈 꼭 감고 참아. 그러면 언젠가는 지나가니까.”
“왜 무섭다고 말 안 하는데?”
“말로 하면 분명해지니까. 한 번 말이 된 것은 절대 지워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말을 해야지 안 그러면 다른 사람은 모르잖아.”
“무섭다고 느낄 때마다, 그렇다고 말하면 되잖아.”

- 160~161.

 

  전체적으로, 이 소설의 분위기와 전개되는 양상은 마치 투명 유리병 캡슐 편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안에 캡슐이 들어있다는 건 뻔히 보인다. 편지(소설의 분위기랄 수 있는)라는 건 대강 짐작이 가지만, 곳곳에 숨겨놓은 주인공의 심리 변화(캡슐 안, 편지 내용)를 보여줄 하나하나 에피소드는 알아차릴 수 없는 것처럼. 살짝살짝 궁금하여, 잠깐 휴식에 책을 덮어놓고도 이내 슬그머니 들추게 만든다.

  *어릴 적 좋아했던, 비가 시원하게 바닥을 간질이듯 톡톡 떨어지는 풍경이 비친다. 내내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충동적으로 마루에서 내려와 마당을 거닌다. 손바닥을 내밀어 조그마한 물방울이 그 위에 퐁퐁 연주를 하면, 히죽 웃으며 바라보았던, 한 장면. 어렸을 적에는 때때로 학교 현관에서 한참 지켜보다가, 마지못한 듯 우산을 켜고 집으로 갔다. 여전히 비 내리는 그 회색빛 풍경은 마구 좋아한다.(오직, 풍경만 좋아할 뿐. 통행에 불편해서, 다닐 적에는 구시렁구시렁;)취향의 음악을 틀어놓고, 멜로디를 짚어나간다. 현재도, 띄엄띄엄 지나가는 비는 좋아하지 않지만, 한 타이밍에 과감하게 쏟아지는 비에 열광.
더불어 자랑하듯 마루에 책을 늘어놓으며(구연동화를 펼치고, 빗줄기랑 속닥거리기)뿌듯해하던, 한 장면.
구불구불 골목길을 더듬어가다, 미로처럼 숨겨진 길을 발견했을 때의 신기하고 흥미로운 호기심, 한 장면.……*
소설을 읽으며, 나름 유쾌한 조각이 등장할 때, 내 어릴 적 겹쳐지는 기억 파노라마를 풀어놓고 동동 띄우며 함께 하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모드, 답답하고 불안할 때, 꽁꽁 숨기다가, 그나마 조심조심 비밀리에 소설을 건드리곤(썼다, 는 다른 의미를 부가한 내가 좋아하는 단어)했던, 한 장면.
소설이란 도화지에 여러 바탕을 칠하고, 갖가지 물감을 짜놓고 추상미술을 펼치듯, 내가 만들어낸 주인공에 각각의 색을 입혔던, 그 장면.……*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나름 숨이 턱 막히듯 후미의 심리가(내가 겪기도 했던)떠오를 때, 또한 겹쳐지는 과거랑 현재의 이야기 퍼레이드를 펼치며, 따라간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밑바닥에 보이는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꼭 old fish의 음악이 겹쳐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몽롱한 기운에 영상 만들기 놀이를 할 수 있었던 것까지는 일단, 색다른 경험으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허나, 어디까지나 그냥 괜찮다는 거지, 소설이 대단하다고 평할 단계는 아니라는 거다. 신인상과 아쿠다가와 후보작이라기엔 어딘가 엉성한 데도 많았고, 좀 더 깊이 담기지 못한 심리 표현도 몇 가지 내 눈에 띄었다.(주관이 섞였을 거라는 것도 인정한다.)
언젠가 다시 또 책을 끄집어내 파락파락 넘길 때, 다시금 끌어당기는 요소를 쥐고 굴릴 수 있도록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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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뷔똥
김윤영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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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리뷰.

 

2002년 11월에 구입했다. 2번째 읽은 셈이다. 책장을 훑어보다가 밑줄 긋기나 리뷰로 옮기지 않은 책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그게 상당하다;), 새로이 읽기 시작했다, 25일 취침 전 잠깐부터. 단편 하나하나 차례로 거듭 읽을수록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는 소설집이 있는데, 딱 이 책이었다. 다소 거슬렸거나 가벼운 흠이 있다면, 편집과정에서 착각을 한 건지 띄어쓰기 틀린 부분이 더러 발견되었고, 문법에 어긋난 부분도 간혹 보였다는 점이다. 책 표지의 띠지에는 작가 소개가 조금 과장이다 싶게 언급되어 있다. ‘제1회 창.비 신인 소설상 수상 작가’ 그 밑에 (경쾌한 호흡, 세련된 감성이 뿜어내는 싱싱한 재미)라고. 딱 눈에 띄었을 때, 너무나도 거창하고 비행기 태워주기 식 평이 아닐까 싶어 구깃구깃 종이를 접은 듯한 표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싱싱한 재미라고 하기에, -몇 가지 단편소설은 빼고-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경쾌한 호흡이라 하기엔 대체 어디가?, 구시렁거리며 읽었던 것이다.(뭐, 내 주관적 입장이 포함되었겠지만)어쩌다 문장의 연결이 뚝뚝 끊기듯 갈기갈기 찢긴 느낌이 나고, 텅텅 빈 연상이다 싶은 문장이 종종 보이기도 했다.
 
우선, 전체적인 소설집의 단면을 한 마디로 풀이하자면, 독특한 자의식의 주인공을 선별하듯 그리면서 실험적 형상화 방법을 활용하여 구성을 짰다. 구성적 요소에서 표제작과 [철가방 추적 작전]이란 단편 두 가지가 꽤 구미당기는 편이었다.
[유리동물원]이란 단편은, 주인공의 실종에 주변인물의 진술이 중심 뼈대였고, 차례차례 진술을 토대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관계 맺기 방식을 선택한 소설이었다. 나름대로 성실하고 똑 부러지는 직장인에다 겉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 (등장인물들이)판단했던 주인공이, 신경쇠약과 만성우울을 앓는 복잡한 내면의 소유자이고 여러 가지 혼란을 겪는 동안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흘린 바가 있고, 그야말로 사라졌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암시를 바탕에 깔아두고 있다.

 

[음치 클리닉에 가다]와 [풍납토성의 고무 인간], 두 단편은 생생하게 영상이 그려지는 소설이었다.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것 같다. 뉴스에 사건 보고하듯 리포터처럼 내게 장면 전달을 해주는 듯 느껴졌다. 부르짖는 소리가 귓가에 착 달라붙고, 끔찍하다 싶은 광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주인공들의 의지 문제를 떠나서, 다시 되돌리고 싶지 않은 과거일 수밖에 없다.
[거머리]는 다단계 판매를 소재로 인물들의 대화를 통한 그 화제와 소설 주인공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구성을 취하고 있었다. 특별히 이끌리거나, 그렇게 좋았던 표현도 여럿 발견 할 수 없었던, 아주 담담하게 읽었다. 자본주의의 집요함이 느껴지고, 곳곳에 돈을 향한 광기의 흔적이 역력하고, 더 나아가 선함과 악함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두 개의 평행선과 같이) 주제 의식이 드러나지만, 딱히 기억하고픈 소설은 아니었다. 이렇다 할 주인공의 성격 변화가 없었고, 대개 자신이 처한 환경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발상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도 그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일에든 수동적 대응을 하는 것도 꽤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행위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격동적인 흐름에 맞추기 어렵고, 그렇다면 환경 탓만을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거머리]와 [그때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 두 소설은 시점이 분산되었기에 혼란을 안겨주었다. 방향을 잃고 떠도는 난파선 같은 영상. 역효과가 나서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 공간에 갇혀서 구출되기만을 기다리는 의지가 약한 자아가 가득했지만, 당돌한 화자가 인상적이었던 [비밀의 화원]이나 능동적이었다고 기억하는 주인공과 호흡이 짧아 스피디하게 읽을 수 있었던 개인적 취향의 소설이었던 [철가방 추적 작전]은 오래도록 씁쓸하기도 한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이 작가는 재능보다는 노력이 엿보인다. 자료 수집도 많이 했고, 이미 자리를 잡은 요소들을 바탕으로 그 위에 덧씌우듯 소설을 탄생시켰다는 생각을 한다. 군더더기를 넘어 개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느슨한 문장이 아쉬웠다.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듯, 차츰차츰 단계를 밟아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4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소설집 [타잔]을 구입할 계획을 세우면서, 부족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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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김서령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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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4.25)

   22일에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사정이 생겨 다소 오랜만에 들렀던 교보문고 매장에서 신간코너를 휘휘 둘러보고 있었다. 머릿속 번쩍번쩍 노란전구처럼 인상적인 표지가 단번에 파고들었다. 구입하고 읽은 계기랄 수 있었다. 그리고 신간소설집으로서 읽고 싶다, 끌렸던 까닭도 한 몫. 2002 ~ 2004 기간에는 꽤 다양한 단편소설집을 섭렵(까지는 아니겠지만, 강조용-_-)했던 시절이었다. 여러 작가들을 새로이 알았고, 다시금 좋아하게 되었고, 나름 부지런히 리뷰에 집중했던, 의미를 두고 되새길 수 있었던 기억이 있었다.

   2005 ~ 2006 기간에는 실기시험과 연구반 수업, 오락가락 정신이 없었던 탓으로(구차하고 어설픈 변명, 들추어내기 스스로도 어이가 없지만)돌파구를 많이 찾지 못했다는 것에 씁쓸해하고 있다. 이제 간간이 몰두하자 다잡고 있다.
   일단, 주목할 작가를 만났다는 것에서 뜻 깊은 기회와 시간이었다. 익숙한 분위기와 문체(내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단다;)라는 친구의 이야기도 포함되었다. 틈틈이 읽었고, 밑줄 긋기 기록을 해두었고(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상황, 내면 심리 표현), 영상을 그려가면서 함께 했다.
   우연의 파도에 휩쓸리고, 혼란의 바다에서 내내 허우적거리는 주인공들. 연결되지 않은 곳은 없다, 구분이 없는 곳의 설정. 찌릿찌릿한 자극과, 여기저기 떠돌고 쥐었다 놓았다_ 그렇지만 무정하지만은 않는 방랑자의 시선이 쏙쏙 숨겨져 있었다. 더불어 신비하고 진기한 소재에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굴리기도 하는, 보물찾기에 목마른 탐험가의 기질이 녹아 있기도 했다.
   불안을 암시하는 신체, 메커니즘의 주인공이 있고_ 압축과 생략이 뛰어난 작가의 손길에서 가장자리에 웅크린 보듬어 주고픈 주인공들이 각자의 활동을 하며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독자는 나침반을 움켜쥐고, 지도를 펄럭이며, 바삐 쫓아다닐 수밖에 없는.
   어느 테마를 정하고, 그 주제에 적합한 고유의 체험과 스토리를 끌어 조곤조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풀어놓는다. 때로는 방관자이기도 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정경, 때때로 그들의 자취에 아릿해서, 꺽꺽거리며 금방이라도 (내가 파악한 열쇠를) 흘려주거나 건네주고 싶은데, 꾹꾹 눌러 참고 그 다음 행적을 찾고 되풀이된다.
   특히, 사로잡아 반했던 점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극 활용해서 글의 묘미를 살려준다는 점이었다. 나는 개인적 판단이라고 웃어넘겼는데,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생각에 그친 줄 알았는데, 뒤의 해석에서 평론가 분도 언급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에 깜짝했다. 슬쩍 접근했을지라도 그 부분을 짚었다는 데에 약간 어깨를 으쓱거리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단편의 압축 기법과, 모험가다운 습관과, 풍부한 현지체험_ 부럽고, 본받아야지 다짐하고, (시험과 새 방향의 소설에 도움이 될)어휘력을 높여야지 주먹을 불끈!
   (스스로의 코드 짚음으로)1인칭주인공시점의 장점을 부각시킨 단편은, 표제작이라 생각을 하고, 하나하나 양상이 흥미로웠던, 소품 활용도를 높인 소설은 [사과와 적포도주가 있는 테이블], 소설적 장치 면에서 [무화과 잼 한 숟갈]을 특별하게 담아두고 끝을 맺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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