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een_포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
이시다 이라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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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교보 제 북로그에 올렸던 것입니다.
쭉 올리고 나서, 새로운 리뷰 쓸 예정입니다.

 

 

3일 동안 오직 이 책만 붙잡고 교묘하게 빠져들었다. 짧은 문장 안에 담긴 의미를 몇 번이고 곱씹으며. 아직 책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북글로 옮기기, 약간의 흥분과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이제껏 몇 권인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꽤 많은 성장소설을 읽어 왔지만,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심취해 있었던 소설은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중에 이 책도 포함되어 있다.

깔끔하고 부드러운 표현과 20년 넘게 나이차이가 나는 십대를 이토록 자연스럽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놀랐다(나오키 상 수상, 이런 것을 떠나서 다음엔 이보다 더 굉장한 것을 손에 쥐고 우리에게 보일 것만 같다, 나 말고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서 잠시 쉬는 동안에도 책을 들춰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으며, 마치 보물상자를 열면 그 안에 더욱 작고 호기심 유발 보물상자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4명의 소년(몸집이 작고, 얼굴의 반을 가리는 검은 테 안경을 쓴 냉정한 성격의 수재 준, 부촌 맨션에 살지만, 반백 머리의 환자 나오토, 가난한 술꾼 아버지와 함께 사는 또래에 비해 월등한 키와 몸무게의 다이, 이들과 유쾌하게 어울리는 스스로를 평범하다 생각하는 중학생 데츠로)이 벌이는 우정에 넘친 유쾌한 사건들. 8편의 연작 단편에서 톡톡 튀는 기발함으로 모험 가득한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곳곳에서 발견되며, 이들은 열린 마음으로 어른의 세계로 비집고 들어가 그 안에서 대결하고, 때로는 어른들을 능가한다.

“그렇지만 밤이 문제야. 너희들은 저 소리가 들리지 않니? 지구가 맹렬한 기세로 자전하면서 하루를 새기는 구릉구릉하는 소리 말이야. 나 저 소리가 정말 무서워.”(조로증에 걸려 벌써부터 머리가 반백이 되고, 섹스 능력마저 잃어버린 "나오토"의 고백)

“내 비밀은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는 거야. 이대로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쳐 일류기업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 칭찬을 듣는 그런 인생, 그 어디에 내가 있는 걸까? 주변사람들 모두를 속이며 사는 게 아닐까?”(냉철한 이성의 공부 잘하는 수재 "준"의 고백)

“난 내가 두려워. 미래의 내가 두렵단 말이야. 내가 정말 사랑하는 존재, 그 작은 존재, 내 자식을, 이 손으로 부숴 버릴지도 모를 내가 두려워.”(술주정뱅이 아버지를 죽인 사실과 훗날의 유전적 문제로 괴로워하는 덩치 큰 소년 "다이"의 고백) 

“난 변한다는 게 무서워. 다들 조금씩 변하다가, 어느 순간 오늘 여기서 우리가 느꼈던 이 기분을 깡그리 잊어버리는 거. 우리 모두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될 거야.”(음악과 책을 좋아하는 데쓰로의 고백)

작가는 이 소설 안에서 4명의 소년 중 소설을 이끌어 갈 1인칭 시점의 주인공을 "데츠로"로 정했는데, 나의 개인적인 판단에 스스로를 평범하다, 아무리 둘러봐도 특이한 구석이라곤 없다_라고 생각하는 데츠로지만, 남은 3명의 소년이 왠지 믿고 의지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어떤 일을 겪건,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안 될 거야_라는 생각을 접고, 한번 해보자는 도전 정신을 가지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14살은 어쩔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기엔 좀 이른 시기, 누가 하라고 시키는 일만 하기엔 뭔가 억울하고, 넘쳐나는 힘을 공부 외에 다른 곳으로 돌려 한껏 즐거울 수 있는 시기, 하지만 어느 정도의 선은 그을 줄 알아야 하는 시기라고 감히 말한다.

문득 나 자신의 14살이 떠올랐고, 좀더 활기가 넘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쉽다. 또한, 모든 일을 할 때 다소 짜증나는 요소는 멀리멀리 던져버리고, 유쾌함으로 똘똘 뭉친 공이라도 굴리면서 지루한 일상을 견뎌볼까, 다짐을 하며 글을 마친다(=_=;;) 

<<"우리 모두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될 거야. 세상에 나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이런 시절을 무시해버릴지도 몰라. 아무 것도 모르는 꼬마였다고. 지금부터 몇 년이 지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으면 오늘을 생각하자. 그때 정말 괜찮은 네 놈이 모여 있었다고, 인생의 최고 좋은 시절에는 자신도 그 그룹에 속했을 정도로 좋았다고.">>

"열 네 살은 하늘이라도 날 수 있어"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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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쓴 글
김현영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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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편의 소설 중, 단연 주목할 만한 소설은 "까마귀가 쓴 글"이다. 까마귀의 시선으로 현실을 벗어난 세계를 꼼꼼히 그려내고 있다. 예전 고등학교 다닐 적에 문학교과서에 실렸던 "오감도"를 떠올리며 소설을 읽어 나갔고, 표제작 "까마귀가 쓴 글"은 독특한 구성으로 인간 세계를 예리하게 비판한 풍자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정해놓은 잣대가 모두 옳다고 믿고 무조건 그것에 맞추어 세상을 바라보는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어떤 의미에서 살펴보면, "비슷한 수준, 비슷한 취향, 비슷한 마인드"를 원하는 "진정 평등한 세상"에 개인화의 욕망은 녹아들 수 없음에서 현대인들은 모두가 까마귀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아무리 반항해도 운명이 써놓은 소설의 끝을 바꿀 순 없는 것이다.” 체제 밖으로 튕겨져 나가도, 체제 안으로 들어와도 내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작가의 말-

'신개념 워드 프로세서’에는 예술작품에서조차 측량 가능한 감동만을 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문학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젊은 작가의 고민이 녹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자란 ‘나’는 직장생활에서 첫 실패를 겪는다. 모욕감으로 사표를 내는 그는 정체 불명의 메일, ‘신개념 워드 프로세스 프로그램’을 받는다. 머릿속의 구상을 자동적으로 완벽하게 소설로 써내는 이 프로그램으로 그는 “적당히 신선하고, 적당히 충격적인” 소설을 완성해 한순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실패자에 가까웠지만 뛰어난 소설가-자신의 육필로 글을 쓰는-가 된 강중연의 그림자는 그를 괴롭힌다. 작가는 이를 통해 표준화한 삶과 그에 투항하는 규범적 글쓰기에 대해 반성적인 성찰을 시도한다.
(줄거리)

이 소설은 메타포, 모티브 면에서는 각각 다른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의 균열이 가져다주는 반항 심리, 일그러진 욕망을 곳곳에 새기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우리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인생이라 당당히 말하며 설 수 있는 자리는 그 어느 곳에도 없다는 건가?? 라는 생각이 소설 읽는 내내 들어 나를 괴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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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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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뭇머뭇했다. 평(그 외 비슷한 거)을 쓰려고 하면, 반드시 동반되는 묘한 감정. 꽤 어렵다. 책을 읽을 때는 유난히 쉬운 문장이라 급속도로 빨리 읽혀짐에도 불구하고 느낀 점을 낱낱이 파헤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고 들면, 으레 부닥치는 난감함. 여느 때처럼 한동안 주저하다가, 무작정 덤벼보는 것이다(;;)

이전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책을 읽을 때 이것저것 따지며 읽는 편이다. 보통 이런 책은 감성을 자극하는 쪽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문장이 꼼꼼한지, 단어 선정이 잘 되었는지, 문장과 문장의 호응이 되는지, 문단을 잘 나누었는지, 전개가 느슨하지 않는지, 등등을 먼저 파악하려 들기 때문에 충분한 여유를 가지지 않는 탓이겠지.

주위에 다른 분들이 자신들의 지나온 사랑을 바나나의 소설과 결부시킨 것을 종종 봤는데, 나는 그런 경험 또한 없어 더욱 휘둘리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뭐, 어느 쪽이라도 그다지 상관은 없는 듯하다(;;)

내가 바나나의 소설을 이제껏 좋아해 온 이유를 꼽자면, 그녀가 눈에 띌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도, 소설의 기본을 꾸준히 지켜온 것도,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영향은 끼친 것이, 책을 읽으면서 신비한 체험을 많이 했음이 제일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언제나 꿈을 꾸고 있지만, 지루한 일상을 견뎌 내기에는 평소 내가 이름만 나와도 열광하는 대단한 작가, "사르트르", "이청준",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등등의 유명한 작가의 작품만을 읽어서는 따분함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일명 "시간 때우기 용"으로 무턱대고 선정한 책이었다.(어째 건방져 보임;;;)

처음 스타트를 끊었을 때는 여태껏 읽어 온 여느 작가들과는 다른 일본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던 거 같다(일본소설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바나나는 자신만의 소설 분위기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그 점을 엄청나게 부러워했었다(;;)
아무튼, 달구어진(;;)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독서를 했지만, 초등학교 때(원대한 꿈을 가지고 동화 세계에서 살았던 무렵)의 기억이 떠올라 새삼 그 시절이 그리워져 한층 책에 매달리다시피 했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목록에 올라와 있어 어느 정도 질책(문장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라고 해둘까;;;)은 하지만,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쓰다 보니, 다른 길로 많이 빠져 있는데, 뭐 그렇다는 거다. 결론은, 앞으로도 바나나를 많이 응원할 거라는 거(??)라고 하면 딱_이겠다.

그녀의 데뷔작이라 은근히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문장을 만드는 중에도 갈팡질팡한다. 또한, 처음 읽었던 때와 지금 새로 들고 읽을 때 사뭇 다르다는 걸 안다. 다른 소설도 그랬지만, 흥분마저 이는 것이 진기한 경험인 듯 아주 색다르다. 상처 치유라는 작가의 의식이 담겨 극심한 피로감으로 똘똘 뭉쳐 있거나, 혹은 지극히 싫어하는 주위의 아니꼬운 시선으로 스트레스에 휩쓸려 있을 때 읽으면 제대로 씻길 거라는 생각을 한다.(<-이런 것도 자잘한 상처니까;;;)

뭔가 엄청난 것을 해낸 듯 여유가 생겨 해방감마저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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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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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속의 파워를 어딘가에 밀봉해두고 싶다. 납 상자 같은 데 가두어놓고, 그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걸 보면서 문장을 쓰고 싶다."

자유분방한 글쓰기의 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칭해놓았다. 과연 눈에 띄는 구절이다. 나 스스로가 그런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라고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닌, 즐거움이란 요소가 덧붙여 시간을 채워나가면 아무래도 진정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건 쉬운 게 아니지만, 그만큼 굉장한 것이다. 왠지 폭발력(;;)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한 하루키의 파워를 사랑한다.
하루키는 나의 스타일과 약간 닮았다. 한편의 단편소설은 문득 떠오른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고 어디선가(인터뷰, 혹은 책 뒤의 저자의 말에서 봤을 수도)밝혀놓았다. 무턱대고 덤비는 거라고, 나 또한 막무가내로 소설 쓰기를 시작했을 무렵, 그랬던 기억이 있다. 쿡-하고 웃어 버렸지만, 왠지 끌리는 무엇이 있었다. 그때부터였을 게다. 하루키에게 애정을 쏟기 시작한 것은.
이 단편집은 하루키의 납 상자와도 같다. 무수한 것을 담으려고 덤볐다. 잘하고 못하고 결과를 떠나서, 몸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서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만큼, 대단한 열정이다.
갖가지 과일을 잔뜩 담아놓은 예쁜 바구니처럼 이 단편집은 그러한 면모를 띄고 있다. 특이하고 다양한 색깔의 소재와 모티브,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빠르게 달려나가는 전개 방식, 머뭇거리며 바탕을 드러내기를 꺼려하지 않는 투명한 문체, 호흡이 상당히 짧은 간결한 문장, 특별하고 진기한 주제의식…….

하루키의 소설은 내게 한 잔의 커피 같다. 하루도 빼놓을 수 없고, 한 잔으로는 뭔가 부족한 듯한(잠깐의 목마름은 식혀주지만, 그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아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은), 그렇지만 사소한 것이라 치부할 수는 없는 그런 것. 시간 나는 대로 손에 잡고 싶은 그런 것.

덧붙여, 중독성이 강해 읽기를 중단할 수도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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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 - 무라카미 류 걸작선
무라카미 류 지음, 서영 옮김 / 동방미디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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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더드 재즈를 넘버를 매겨 소제목으로 하는 구성을 취하는 소설.

누구도 정확한 위치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런 장소, 재즈바에서 그때, 그때 적절히 흘러나오는 노래에 얽힌 추억, 떠나간 사랑, 가슴 깊이 스며든 고통 등에 관한 짧은 기록. 이제껏 그의 소설을 읽어오면서 받았던 극단적 충격, 남다른 취향에 근접한 소설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나쁜 건 아니었고, 먹먹한 가슴을 확 풀어주는 작은 감동이 존재하기에 다소 즐거웠던 감정을 되새길 수 있다.
환상 속의 재즈바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소제목이 된 노래들. 주목할 만한 특정 가사를 적어 둔 부분에서 왠지 노래를 직접 찾아서 들으며 소설을 읽는다면, 몸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특별한 감각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매번 들었다. 나중에 행동으로 옮겨 봐야지(;;)
풍성한 추억의 잔상이 표지를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아 훈훈하게 해준다. 각각 사연의 아쉬움은 후에 빛나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새록새록 솟아나 훌훌 털어 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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