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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의심하라. 모든 것을 처음부터 의심하라.
데카르트 & 버클리 :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지식인마을 2
최훈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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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이 의심하라. 의심하라. 데카르트는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런데, 이 문구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이 문구가 어떻게 도출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철학자들의 언명만을 줄줄 욀 뿐 그들의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그 문구들이 왜 어떻게 뽑아져 나왔는지 과정엔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내 입에서 내뱉으려면 최소한 그들이 거쳐왔던 사유과정을 나 또한 거쳐야 할 것이다. 

  단순히 지난 철학자들의 말씀을 달달 외움으로써 철학을 했다고 하면 그건, 철학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철학사를 공부한 것에 불과하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철학사는 필요없다. 칸트가 이랬어요, 플라톤이 이랬어요, 레비스트로스가 이랬어요, 하고 그들이 했던 말을 외우고 반복해서 말 할  필요 없다. 물론 철학사를 공부하는 것이 철학을 하는데 있어 필요하다. 하지만 공부가 끝난 뒤에는 철학사는 잊어라.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해라. 결과는 필요없고, 과정이 중요할 뿐이다. 내가 지금 내뱉고 있는 말이 어떤 사유과정을 거쳐서 나왔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철학함'이다.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철학은 의심으로부터 시작한다. 의심은 철학만의 소유물은 아니지만 철학은 타분야와 의심의 차원이 다르다. 양초에 불을 붙이면 촛농이 뚝뚝 떨어지는데 왜 그럴까, 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를까, 머리를 안감으면 왜 떡이질까, 등등의 의심을 하면서, 의심을 풀어나가면서 과학은 발전해왔다. 하지만, 철학은 이러한 의심과는 다르다. 어떤 현상을 보고 저게 왜 저럴까, 의 차원이 아니라, 나는 왜 저걸 보고 저럴까 라고 의심을 할까, 의 차원이다. 내 남자친구가 어젯밤 외박을 했는데 어디에 있을까, 가 아니라 내 남자친구가 어젯밤 외박을 했는데 어디에 있을까 라는 질문은 어떻게 가능하지, 의 차원이랄까. 

  다시 한번 묻자.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물의 현상을 가리켜 저건 왜 저럴까 라고 묻지 않는다. 우리는 그걸 인식하고 있고, 그 인식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를 묻는다. 내가 오늘 아침 고기를 기름에 찍고 상추에 싸서 쌈장 듬뿍 발라 입안으로 넣었는데, 아 맛있더라. 그런데 이건 정말 지금 내가 느끼는 맛일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느낄까, 내가 지금 입으로 뭔가를 넣었다는건 확실한가. 의심하라. 그것이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의 의미다.

  철학에서는 이를 인식론이라고 한다. 서양의 근대에는 데카르트라는 철학자와 버클리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데카르트로부터 흔히 합리론이라고 불리우는 철학이 시작했고, 버클리로부터는 경험론이라는 철학이 시작했다. 둘의 공통점은 모든 것을 의심했다는 것이며, 둘의 차이점은 데카르트는 사고의 결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고, 버클리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사유과정을 마무리지었다. 결과는 엄연히 다르다. 

  두 사람의 차이는, 내가 보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먹는 것, 만지는 것, 냄새 등등 모든 것들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믿을 수 없다. 이런 악마녀석 나에게 마법을 걸다니. 그런데 아! 내가 지금 이렇게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난 존재하는구나. 와  경험한다고 다 존재하는건 아니야. 빨간사과를 봤다. 그런데 내가 본건 '빨간사과'가 아니라 '사과의 빨감'이다. 정말 확실한건 지금 내 눈에 빨강이라는 것을 경험했다는 사실 뿐이다. 사과를 봤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과를 본게 아니라 사과의 시각경험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표상을 보고 있는 것 뿐이다. 그것조차도 믿을 수 없다. 이렇게 정리해보자. 우리는 외부 세계의 대상을 지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관념만을 지각한다(실재는 확실하지 않으니까). 고로 외부 세계의 대상들은 관념이다. 사과의 색깔도 냄새도 크기도 모양도 죄다 관념이다. 로 정리해볼 수 있다.  

  데카르트에게 문제는, 끝까지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사고를 더 밀고가면, 결론은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다. 5분전 나는 분명 이와 같은 의심을 했다, 그런데 5분 뒤의 나는 5분 전의 나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없다. 그 생각을 한 것이 나라고 확신할 수 없다. 지금 5분 전의 나를 의심하는 나는 나지만 그전의 나는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또 시간이 1,2초 흐르면 1,2초전의 나는 지금의 나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없다. 이걸 끝까지 밀고 간 이가 흄이다. 흄은 그건 우리가 확실하게 경험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가설일 뿐이라고 한다. 버클리는 데카르트의 한계를 지적했을 뿐이다. 같은 빨간 사과를 봐도, 데카르트는 '빨간사과를 봤다'고 하겠지만 버클리는 '사과의 빨감'을 봤다고 할 것이다.

  이쯤 되면 일반인의 눈에는 데카르트나 버클리나 흄이나 다 미친놈으로 밖에 안 보일 것이다. 이런 미친. 먹고 맛있으며 되고, 보이면 보이는대로 말하면 되지, 얼어죽을 의심은! 그래 우리 눈에는 저들이 미친놈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방에 가둬놓고 혼자서 천장 바라보면서 어 왜 천장은 위에 있고 평평하지 라고 생각하거나 평평하다는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지면 증명가능할까, 아니야 그걸 어떻게 알아,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게 놔둬야될 거 같다. 저자 최훈은 이에 대해 적절한 대답을 안겨준다.

  "철학의 임무가 상식을 보존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과학 이론이  상식과 어긋난다고 해서 잘못된 이론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철학 이론의 장점과 결점도 상식과 부합하느냐에 따라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다른 확립된 이론과 충돌하지 않는가, 충돌한다면 더 그럴듯하게 설명해낼수 있는가, 그 이론 내부에 모순은 없는가 등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철학이 아무리 의심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유이다. 끊임없이 의심하라. 그리하면 지금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 속을 하얗게 비우고 처음부터 단계를 쌓아나가자. 그럼 나름의 결론에 도달할테니. 철학을 한다는 것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과 같다. 삶에서 겪는 온갖 고민들은 처음부터 의심함으로써 해결된다. 고민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으면서 머리를 아프게 하는건,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가 복잡할 땐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의심하라. 그리하면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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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waits > 간편하고 안전한 기념
5.18민중항쟁 역사 다시 읽기 3
김진경 지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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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원래 인간이 좀 촌스러워서, 특정 날짜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다. 언제부턴가 일종의 습관이 되어버려서, 꼭 의식하고 있지 않더라도 즈음이 되면 절로 시선에 밟히는 것들이 있고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곧 때가 다가오는구나 자각하게 된다. 게다가 살짝 기념주의자이기도 해서, 혼자서라도 뻘짓거리를 하고 넘어가야 스스로 불편하지가 않다.

 문득 책장에 꽂힌 '윤상원'에 눈길이 멎은 게 보름쯤 전. 그렇구나, 다시 5월이구나. 5월은 참 바쁜 달이다. 이래저래 이름 붙은 날들이 많은, 자식 없는 무학의 고아가 아닌 다음에야 완전히 피해갈 수 없는 기념일 과잉의 달. 와중에 백화점이니 할인마트는 각종 선물세트 팔아먹기 바쁘고, 평소에 잊고 지내던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게 나쁠 리는 없건만 그래도 아주 마땅치는 않다.

 물론 나 역시 '5월'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그 날이 다시 오면'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돌이켜보면 사실 대학시절 이미 '5월 광주'는 금기라기보다 무심히 잊혀진 사건이었다. 희생자들이 명예회복되고 생존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고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공식 역사로 등재'된 후에는 4.19만큼이나 박제화되어 멀어져버린 것도 같다. 국립묘지로 단장한 신묘역의 번드르르함 만큼이나 광주는 더 이상 아프고 통절한 무엇이 아니라, 때가 되면 되새기며 '지금의 민주화'를 지키기 위해 전범 삼아야 할 기념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광주는 너무 이르게 '해치워버린' 사건인 것 같다.

 강풀이 만화를 그리고 누군가는 영화도 만들고 책이야 무수히 쏟아져 나왔지만, 광주의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우방이라고 믿고 있었던 미국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것, 단지 폭도들이라고 매도 당한 광주 시민들이 열흘 간 만들어냈다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재현을 강조하는 것, 총칼로 무차별학살을 자행한 군부에 저항한 시민들의 민주 염원이 만들어낸 시대정신을 기억하는 것, ... 

 무어라고 해석한다고 해도, 어쩐지 우리 모두가 '5월 광주'를 너무 떨이로 해치워버린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역사의 무게에 가위 눌려 모두가 우울한 낯빛을 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뭐 그런 걸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갈 데까지 간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4.19세대 운운하며 민주를 향한 투쟁의 역사를 외투 삼아온 현실을 생각하면, 말 많은 '386'을 넘어 이제 너도 나도 '5월 광주'의  적자임을 내세우는 역겨운 꼴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소위 특수공공법인이라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부터 기념되는 혁명과 인물들에 대해, 아니 그들의 기념 관점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쓰잘데기 없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는데... 더 이상 파헤칠 묻혀진 진실의 가능성이 없다고 믿겨지는, 공공의 기념이 가리는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있지 않을까. 명예회복과 배상을 통한 공식화 속에서, 목격자들이 할 말을 잃고 희생자들이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이 만약 광주의 현재라면, 결국 그냥 그런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만이 남게 되는 건 아닐까 주제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음... 책은, 대학시절 마일드한 필독서 몇 권의 저자였던 김진경 선생이 '솔'이라는 고등학생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한참 지난 역사적 사건을 시시콜콜 전달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람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서두에 밝히고 있다. 그리고 아주 쉽고 친절하게, 물론 동세대로 '광주'를 겪은 저자의 심사야 간단치 않았겠지만 참으로 담담하게 서술된다.

 지난 주 이래저래 받는 뉴스레터들에서 같은 시를 몇 번이나 마주쳤다. 찬사 일색의, 심지어 어느 뉴스싸이트에서는 오월 광주가 소녀 천재시인을 낳았다며 호들갑을 떨어대는 기사를 마주치기도 했다. '그 날'이라는 제목의, 질펀하게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 짧은 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탁월한 시적 형상화에 성공한 작품인 듯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겪지 않고도 그리 선하게 그려내는 게 오히려 무섭고 이상했다. 그리고 나 역시 80년 5월의 광주에 대해 어떤 직접적 체험도 없으면서 선험적 고통의 근원이라도 되는 듯 무겁게 반응하는 게 오히려 의심스럽기도 하다.

 황석영의 책을 다시 집어드는 건 솔직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언제 사놓았는지 기억에도 없는 얇은 책이 하나 있었다. 하얀 바탕의 매끈한 표지, 한 시간 남짓이면 다 읽어버릴 수 있는 초박형 두께, 물론 중간중간 저릿한 느낌이 없지야 않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도 별 감흥(?)이 없다. 2007년 나의 광주, 어쩌면 2007년 우리 모두의 광주가 지금 이런 모습은 아닌가 싶다. 부담없고, 깔끔하고, 그리고 여운이 없는. 올해는 그렇게 지나버렸다. 안전한 기념으로 머물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조차 좀 부끄럽고 무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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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이라는 노래를 자동차에서 들은 것이 바로 그저께 같았는데.
    벌써 이번 주 수요일이 되었어요.

    또 비가 오네요.

    올해는 너무 자주 비가 오죠.
    마치 장마철 같아요.

    아까 낮에 점심을 먹으며 창밖을 봤어요.
    빗살이 부딪히는 넓은 창밖을 보았어요.
    저 멀리 너무 예쁜 초록색의 나무들이 있는 산을 보았어요.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색들은 날이 밝아야만 더욱 이쁜데.
    자연이 만들어낸 색들은 흐리거나 비오는 날에 더욱 선명해져 -
    그 원색들에 눈이 멀 것만 같이 아름답죠.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슬프죠.
    나무들과 이름 모를 들꽃들과 풀들과 
    시멘트 바닥에 앉아 움직일 생각이 없는 곤충들을 볼 때마다 왜 자꾸 서글프죠.

    비가 자꾸 오는 것은
    정말로 밀림화 되어가는 것 같아 '지구 열대기 돌입'이 먼 일 같지 않아요.
    그렇잖아요.
    밀림은 거의 매일 비가 오잖아요.
    그리고 갠 날엔 작열하는 태양빛.
    지나치는 비와 지나치는 빛은 식물들을 더욱 무성하게 더욱 빠르게 자라게 하죠.


    그러면 날은 더욱 더워지죠.
    그러면 비는 더욱 자주 오죠.
    그러면 식물들은 더욱 자라죠.
    그러면 날은 더욱 더워지죠.

    그러다 그러다 어느 날 긴긴 겨울이 오죠.
    그러다 그러다 '빙하기'가 오죠.
    그러다 그러다 세상이 또 변하죠.

    인간이 느끼는 4계절이 아닌, '지구의 3계절'에서 우리는 '2계절'로 들어가고 있어요.
    이건 어쩔 수 없죠.
    인간은 살기 위해 우주로 떠날지 몰라요.
    과거 아주아주 오래전, 지구에서 문명을 이루며 살았던 지구인들이 떠나 다른 행성에서
    잘 살고 있다가 지구가 보고 싶어서 찾아 온 적도 있을 거에요.

    그들을 우리는 '외계인'이라고 불렀는지 몰라요.

    그런데 우리도 다음 세상에서는 '외계인'이라고 불리는 때가 올 것만 같아요.

    그렇죠?

    누구나 고향은 그리운 거잖아요.

 

   


       

    나는 우주로 떠나지 않을래요.
    아름다운 지구의 시간속에 함께 묻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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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미야쟈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OST를 피아노곡으로 아름답게 살린
    Carl  Orrje  Piano  Ensemble 의 [Studio Ghibli Works] 앨범을 듣고 있다.

    쳐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흔들거리지 않는 -
    적당한 발람함과 통통 튀는 경쾌함과 고귀하게 아름다운 주옥같은 곡들이
    한번에 여러 책들을 폭식하여 소화불량으로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나의 뇌와...
    내 영혼을 부드럽게 치료해주고 있다.

    음악은 - 어떤 장르 상관없이 -
    내 영혼의 영원한 치료약이다.

    피아노, 플룻, 섹스폰, 대금 등의 경음악을 들을 때는 달콤한 쉐이크를 마시는 기분 -
    걸걸한 목소리의 재즈 가수의 목소리와 그 즉흥적인 악주의 조화로움은 담배 맛이 나며 -
    발라드나 R&B는 부드러운 믹스커피 맛 -
    세상을 쩍쩍 갈라놓을 것 같은 강렬한 하드코어, 메탈, 락 등은 시원한 탄산수를 마신 듯
    통쾌하고 신이 나지.

    러시아 음악은 눈 내린 추운 겨울 날, 따뜻한 난로 주위에 앉아 마시는 쓴 보드카 -
    팝송의 그 맛깔나는 가사들을 들으면 내가 마치 그 주인공 같고 -
    남미의 노래들을 들으면 금방이라도 마른 땅 위에서 맨발로 춤을 추고 싶어지지.

    제 3세계의 음악들은 또 얼마나 이색적이고 원시적이며 순수한지 -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들 중 버릴 게 하나라도 있을까 싶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 중 -
    아름다움을 탐미하는 것과
    소리들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과
    삶, 생각, 감정 등을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것과

    세상의 모든 멋진 것 - 심지어 어둡고 아주 쓴 이야기까지
    글로 표현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얼마나 멋진 본능인가.

    책을 읽는 행위가 '밥을 먹는 것 '이라면
    음악을 듣는 행위는 '식후 마시는 차 한잔의 여유' 랄까.

 

      

   
   Hedel house_Piano

 

 

     학아.
    음악이 있어 이 칠흑같은 세상이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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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ephistopheles > 27년전 역사 그리고 지금..

1980년

5월 17일 (토요일, 맑음)

24시 00분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광주 시내의 각 대학에 계엄군이 진주하며 학생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5월 18일 (일요일, 맑음)

9시 40분
계엄군이 전남대생 50여명의 등교를 저지했다.
10시 15분
전남대생들이 "계엄해제", "휴교령 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를 벌이자 공수부대원들이 곤봉으로 진압. 이에 학생들이 금난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5시 40분
유동 삼거리에 공수부대가 충돌하면서 진압작전을 개시했다.
19시 02분
계엄사령부는 광주의 통행금지시간을 저녁 9시로 앞당겼다.

5월 19일 (월요일, 오후부터 비)

3시 00분
증파된 11여단 병력이 광주역에 도착했다.
9시 30분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시위진압에 맞서 누문동 파출소를 불태웠다.
10시 00분
금남로에서 시민들의 수가 점점 불어나면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이 전개되었다.
14시 40분
조선대로 철수했던 공수부대가 다시 투입되어 진압작전을 전개했다.
15시 00분
광주 시내의 기관장과 유지들이 대책회의를 갖고, 시위진압을 완화해달라며 계엄당국에 건의했다.
16시 30분
계림파출소 근처에서 조대부고생 김영찬이 계엄군의 총에 부상을 입었다.

5월 20일 (화요일, 오전에 약간의 비)

8시 00분
광주시내 고등학교에 휴교조치가 내려졌다.
10시 20분
가톨릭센터 앞에서 시위중이던 남녀 30여명이 속옷차림으로 공수부대원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했다.
18시 40분
금남로에서 200여대의 택시가 일제히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시위를 벌였다.
20시 10분
도청을 향하는 시위대들은 금남로, 충정로, 노동청 방면에서 공수부대 및 경찰과 대치했다.
21시 05분
노동청 쪽에서 시위대의 버스가 경찰저지선을 돌진하여 경찰 4명이 사망했다.
21시 50분
광주의 실상을 왜곡보도하는 데 분노한 시위대가 광주 MBC건물에 방화했다.
23시 00분
광주역 광장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 2명이 사망했다.

5월 21일 (수요일, 맑음)

0시 35분
노동청 방면에서 시위대 2만여명이 계엄군과 공방전을 전개했다.
2시 18분
광주 전역의 시외전화가 단절되었다.
4시 00분
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남로로 향했다.
4시 30분
시위대가 광주 KBS건물에 방화했다.
8시 00분
광주공업단지 입구에서 시위대가 20사단 병력과 충돌했다.
10시 15분
실탄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드링 전면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10시 19분
광주세무서 건물이 전소됐다.
11시 10분
대형헬기 1대가 도청광장에 도착했다.
12시 59분
시위대가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몰고 온 장갑차 1대가 도청광장으로 기습 진출했다.
13시 00분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 울려퍼지면서 공수부대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13시 20분
금남로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에 쓰러졌다.
14시 15분
도지사는 경찰헬기를 타고 시위해산을 종용했다.
14시 35분
시위대가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트럭과 장갑차 수십대를 탈취했다.
14시 40분
시위대가 지원동 탄약고에서 TNT를 탈취했다.
15시 48분
공수부대원들이 시내 빌딩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을 시작했다.
16시 00분
화순, 나주 지역에서 무기를 획득한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와 시가전을 전개했다.
16시 43분
대학생들이 전남대병원 옥상에 기관총(LMG)2대를 설치했다.
17시 30분
공수부대가 도청에서 조선대학교로 다시 철수했다.

5월 22일 (목요일, 맑음)

9시 00분
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이 집결했다.
10시 30분
군용헬기가 공중을 선회하며 경고전단을 살포했다.
11시 25분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을 호소하고, 도청 옥상에는 검은 리본과 함꼐 반기가 계양되었다.
13시 30분
시민수습위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를 방문하여 7개항의 수습안을 전달했다.
15시 08분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 5백여명이 광주에 도착했다.
15시 58분
시체 18구를 도청광장에 안치한 채 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17시 40분
도청광장에 시체 23구가 더 도착했다.
21시 30분
박충훈 신임 국무총리가 "광주는 치안부재상태" 라고 방송했다.

5월 23일 (금요일, 맑고 한떄 흐림)

10시 00분
시민 5만여명이 도청광장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10시 15분
학생수습위가 특공대를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을 시작했다.
11시 45분
도청과 광장 주변에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가 계시되었다.
13시 00분
지원동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을 가해 시민 17명이 사망했다.
15시 00분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고, 계엄사의 경고문 전단이 시내전역에 살포되었다.
19시 40분
최초 석방자 33명이 도청광장에 도착했다.

5월 24일 (토요일, 오후에 비)

13시 20분
공수부대가 운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을 가했다.
14시 20분
송암동에서 공수부대와 전교사부대 간의 오인 총격전이 발생했다.
14시 50분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5월 25일 (일요일, 비)

11시 00분
김수환 추기경이 광주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메시지와 함께 구호대책비 1천만원을 광주시에 전달했다.
15시 00분
제 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17시 00분
재야인사들이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1시 10분
학생수습대책위원들이 광주지역 범죄발생 예방, 식량공급, 청소문제등을 논의했다.

5월 26일 (월요일, 아침 한때 비)

5시 20분
계엄군이 화정동 쪽에서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했다.
8시 00분
시민수습대책위원들이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일명 "죽음의 행진"을 감행했다.
10시 00분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14시 00분
학생수습위원회가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금 등 8개항을 요구했다.
15시 00분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17시 00분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이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을 브리핑했다.
19시 10분
계엄군의 공격 가능성이 대두됨에 따라 시민군은 어린 학생과 여성들을 귀가조치시켰다.
24시 00분
광주지역의 시내전화가 일제히 두절되었다.

5월 27일 (화요일 맑음)

3시 00분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4시 00분
도청 주변이 완전포위되었고, 금남로에서는 시가전이 전개되었다.
4시 10분
계엄군 특공대가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에게 사격을 계시했다.
5시 10분
계엄군이 도총을 비롯한 시내전역을 장악하고 진압잔전을 종료했다.
6시 00분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선무방송했다.
7시 00분
공수부대가 20사단 병력에게 도총을 인계했다.
8시 50분
광주지역의 시내전화가 다시 개통되었다.

 

5.18 항쟁당시 165명 사망.
5.18 항쟁 이후 약 376명 사망.
사망자들 평균연령 27.5세.
고등학생 11명
중학생 6명
초등학생 2명


외면하지 마세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27년 전 그날의 역사입니다.


2007년 1월 28일, 경상남도 합천군의 군민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황강변 "새천년 생명의 숲"의 새로운 명칭을 "일해공원"으로 확정했다.
日海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아호이다.

믿으세요....
바로 지금 우리의 역사입니다.

 

뱀꼬리 : 일해공원에 관련된 사항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봤습니다. 군민들의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벌인 적도 없다더군요. 군수의 단독행동으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하는군요.  과연 합천군수의 뇌구조는 어떤 몰골을 하고 있을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궁금증에 합청군청의 군수 프로필을 봤습니다. 존경하는 인물항목에서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박여사는 든든한 원군이 있으셔서 좋으시겠어요..

출처를 빼먹었어요..^^ 지식체널 e 라는 책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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