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7월 9일 (충동적인) 구매.
-7월 15일 밑줄 긋기 등록.

*독서 완료.(0709~0713)

반복, 복합 구조 소설이었다. 외부 연극, 내부 연극.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초반에는 영 헷갈려서 내가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무작정 끌려가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차차 나아지고 있었으나, 좀 가물가물한 상황도 있었다. 리뷰는 조금 두고 보고 쓸 계획, 밑줄 긋기는 모레쯤 올릴 계획.

_ 0713, 독서 일기.



*무대, 펼쳐지는 다양한 연기.


   여기저기, 특정한 세계에서 쏟아지는 경험은 무수하다. 개개인이 발을 담글 수 있는 어떤 영상도 어느 선에서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갖가지 초현실의 세계가, 우리가 존재하는 울타리 저 너머에 다양한 색깔의 막으로 둘러싸여 있고, 단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 색의 의미를 찾기에 앞서, 색의 경계조차 짚지 못할 수도 있다. 4차원적, 더 나아가 좀 더 고차원적 영역의 구분보다, 당장 하루하루 거듭하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지나치기 쉬운, 발견되지 않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로 저마다 가득할 것이다. 그래서 우선, 우리의 인생이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며, 타인의 ‘드라마’를 향해 ‘경솔한 방아쇠는 금물’이라고 살짝 외치고 싶다. 
   관찰자, 관찰대상, 우리는 두 개념에 다 속할 수 있다. 뒤집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타인을 내내 관찰하고, 저마다 입장을 취하고,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곧잘 무언가를 찾는다. 그런 일련의 행위를 오직 ‘나’라는 특별인물만 하고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조각조각 파편처럼 흩어져 있거나 스쳐 지나치는 사물, 창을 통해 비치는 하늘, 재기발랄한 입담, 흥미로운 책 속의 이야기 등등 여러 카테고리나 챕터를 끄집어낸다. 각각 정도나 생각의 차이(주관, 자의식)가 바탕에 깔려 있어서, 제각각의 제멋대로 판단(간혹 선입견, 편견일지도 모를)을 내릴 때가 있다. 또한 허용 범위를 초과했을 때, 가차 없이 함부로 취급하고, 행동하기도 한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짓을 서슴없이 벌인다. 더구나 자기가 처한 환경과 상처만 심각하다고 믿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꼭 필요로 하거나, 관심가지는 범위만 생각할 때도 있고.)
   한편, 앞의 문단과 같은 맥락이지만, 따로 언급하고 싶다. 우리는 작가, 독자 합집합에 낄 수 있지 않을까. 여기, 알라딘 서재에서 활동하는 여러분만 해도, 보조 설명이 될 수 있을 터.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작가, 댓글을 펼치며 소통을 하는 독자. 소소한 일상 단편을 풀어내는 작가, 미미한 or 격렬한 파동을 느끼며 자신과 공감 코드를 찾으며 해석하는 독자. 
   비슷한 상황을 겪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상황도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다. 어디까지나 접해본 사건에 대해서는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거듭 의견을 말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거치지 않은 경험에 관해서 의문부호를 늘어놓을 수는 있으나, 실상은 쥐꼬리만큼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마치 다 꿰뚫고 있다는 식의 흉기와도 같은 단정적인 떠벌리기, 왈가왈부는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감히 그럴 자격이 주어진 것도 아니니까.
   때로는 주인공이기도, 때로는 주변인물이기도 한 파란만장한 인생 여행. 윤곽만을 더듬거나 형태만 취하지 말고, 명암과 그 둘레 그림자까지 찬찬히 투영해 뜯어보는 습관을 가지기를 바라면서. 중간에 대한 기대치를 약간씩 줄이고, 구석까지 휘둘러보며 관찰하기도 곁들이며. 우리의 거리에 ‘지금 서 있다는 것’이 어쩌면, 감사해야 할 작은 보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몇 가지 잘못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p. 84 “그때 이후로 상사화를 보면 거기 얼굴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나도 모르게 찾곤 하지.”
오타. 조사 ‘은’ → ‘이’
p. 193 심뽀 → 심보

p. 242 그제서야 → 그제야 (종종 발견.)


p. 400
어떤 아이디어를가 떠올렸습니다.
(조사 ‘가’ 빠져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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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회색빛, 뚜렷한 경계가 없는 내면에 주파수를 맞추다.
(0706)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집이란 요소 하나, 반듯하고 심플한 회색 표지에 무턱대고 호기심이 스멀스멀 생겼다는 요소 하나. 갈팡질팡 망설이지 않고, 선뜻 구입할 수 있었다. 1+1이벤트로 비닐 포장이 되어 있어서,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내용의 일부를 살짝 살피지는 못했지만, 어디까지나 기대를 잔뜩 품었던 것. 먼저, 그 결과는 상당 만족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10가지 단편이 실려 있다. 나는 웬만해서는 기발한 상상력이란 생각을 안 하는데, 이번 독서는 그런 생각이 마구 들었다. 아주 극찬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달리 말하면, 모험과도 같은 독서. 내가 좋아하는 독서 타입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현재, ‘양지의 시’란 단편을 읽는 중이다.] *7월 3일 독서 일기에 언급했던 바, [SEVEN ROOMS]에 몰입해서 읽을 때, 최초로 느꼈던 그 생각이 일관되게 흘러간 것에 대해서 환호 중이다. 소설 전반에 미미하게, 혹은 어떤 단편에서는 좀 더 선명하게 밑바닥에 깔린 자글자글한 파편의 긴장을 느끼고, 복선을 찾아내고, 이어질 스토리를 예측, 감지할 수 있었다. 풀어지지 않고 내내 독서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단편집일 경우, 한 번 붙잡으면, 단편 하나를 다 읽어내야 커버를 덮었던 평소 독서 습관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었다.

 

 

책 소개에서는 [크게 섬세함과 안타까움을 기조로 한 '퓨어 계열'과 잔혹함과 처참함을 기조로 하는 '다크 계열'로 나뉜다.]라고 설명했는데, 개인적인 의견으로 ‘양지의 시’란 단편을 제외하고는, 굳이 확연하게 나누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두 가지 타입 중에서 어느 하나 특정한 면이 더욱 부각되었거나, 아주 가라앉았다는 생각을 했다.(내 주관이 섞였긴 하지만;) 그래서 2배로 좋고, 특별했던 것 같다. 경계가 없다는 것, 여러 가지 해석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 독서의 가치 범주에 넣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이것저것 따지며 뜯어보고 파헤치지 않고, 그저 음미하고 휘감기는 영상의 효과를 고스란히 움켜쥘 수 있었다.

 

 

[SEVEN ROOMS]에서 작가가 따로 묘사하지 않은 범인을 나의 시야에 가두고, 상상력의 자유를 만끽하며 나름대로 그를 표현했다. 어쩌면 평범한 겉모습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고, 한계와 선을 생각하지 않고 서슴없이 살인을 즐기는 무시무시한 괴기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공개수배 사건 25시’의 용의자와 딱 맞아떨어질 수도 있었다. …….

 

출구 없는 단절, 고립과 고독의 절정에서 헤엄치고, 무의미함에서 길잡이든 화살표든 다 내던진 채 풀썩 주저앉고 마는, A세계와 B세계의 유일한 통로이자 구실이었던 다리가 처참하게 부서진 광경을 보고, 더욱이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습하고도 잔혹한 인간 내면의 실체와 맞닥뜨리고, 뒤틀린 자아, 소통의 부재에 허우적거리고, 복수의 칼날을 번뜩이다, 스르르 놓아버리고 천진한 아름다움에 현기증을 일으킨다. 어질어질해 있는 사이, 저 멀리 잰걸음을 놓는 자연과 생물, 그리고 태양에 관한 동경, 관심에 생기의 꼬리를 다시금 부여잡고 부지런히 따라붙는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희망을 발견,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만다.

 

*흉기는 녹슬어버린 도끼, 서랍에 숨겨두었지.
먼지투성이 권총, 두 번 세 번 돌리며-
방아쇠를 당기고, 연기가 나는 총구. 
눈이 하얗게 뒤집힌 얼빠진 얼굴.
도끼로 그 녀석의 손발을 큼직하게 잘라, 여기저기 튀는 피.
다음은 그 녀석, 그 다음은 저 녀석.
손, 발, 숨 안 쉬는 사람들을 모아서 클로버 산을 만들자.

- Murder, Joker. *

[차가운 숲의 하얀 집], 단편을 보면서, 위에 부분 옮긴 가사를 문득 생각했다. 소설은 섬뜩함 뒤에 가려진 씁쓸함이 녹아 있어서, 가사와 분명 다르지만 슬며시 스치고 지나갔었다.
특별히, [SEVEN ROOMS], [양지의 시], [차가운 숲의 하얀 집]을 깊게 각인시켰다.

 

***

56
안족 -> 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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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공항에서
무라카미 류 지음, 정윤아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공항에서.(0705)

신간코너에서 발견하자마자 환호하면서 구입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완료는 한참 늦었다. 6월 초에 소장했는데, 커버를 덮은 건 7월 초가 되었다. (소유욕이랄까, 이런 욕구가 은근 강해서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나 찜한 상품은 어떡해든 1주일 내로 손에 거머쥐어야 실실 웃으면서 흐뭇해하는 편이다. 판단을 보류할 때도 더러 있지만, 대개 그런 편이었다고 기억한다.) 즉각 리뷰 효과를 보려 했다.(스타트는 바로 끊었으나, 마무리는 조금 더뎠다.)
‘무라카미 류’, 일본 작가 중 철저한 내 관점(!)으로 1순위에 꼽을 수 있는 분이다. 이 작품이 나오기 전, ‘반도에서 나가라’와 그 외, 구하지 못한 두 가지 장편소설, 에세이를 제외하면 그의 작품을 거의 다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탐독을 하면서도, 빠른 시일에 곧잘 마지막 커버를 덮곤 했다. 다만, 리뷰로 옮긴 것은 그와 대비해서 얼마 되지 않지만. 기억을 약간 들추어내서 쓸까 싶기도 했다가, 앞으로 두 번째 읽어서 리뷰 쓰기를 시도할 계획이다. 대체 어느 세월에, 라는 불안이 슬금슬금 생겨나고 있다.
어쨌든. 일단 이 리뷰에 집중하자, 고 마음먹는다.
우선, 번역된 문장에서 드러나는 느낌을 살펴보자. 전문 일본문학 번역가 중 ‘양억관’ 씨 번역에 상당히 열광하는 편인데, 거기에 비교하면 어쩐지 밍밍한 느낌이라고 할까.(개인적으로 그렇다는 것) 돋보이는 주관과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함이 다소 사라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초반에 살짝 의기소침한 상태였다가, 에잇, 하면서 훌훌 털고, 문장을 곱씹으며 집중해나갔다. 와인과 음악, 쿠바가 함께 하는 소품과 이미지는 전작과 마찬가지여서, 다시금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우리들의 일상이랄 수 있는 공간적 배경에서, 짧은 시간 포착 기법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편의점, 술집, 공원, 공항, 노래방.) 고독에 휩쓸린 주인공이 빠짐없었던_ 이제껏 쓰던 작품에서 벗어난 배우려 집중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답답한 현실의 도피, 그리고 환상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물결을 이루고, 궤도에서 이탈하기도 한다. 단순히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닌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기도 한다. 그런 주인공들의 너머에서 작가의 필치는 어디까지나 담담하기만 하다. 그 밋밋하고 나른하다고도 할 수 있는 풍경에서, 결말에 이르러 허무함을 잔뜩 끌어안으면서도, 스스로의 해법으로 바탕에 깔아둔 격려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짜릿하고 기발한 표현은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155쪽의 이 부분. [어디론가 움직이는 사람들의 무리는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어 마치 원시적인 동물이나 바다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의 무리처럼 보인다.] 그 외에는 대개 인물의 대사에서 작가의 의도와 주제, 스토리의 방향을 나타내는 화살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 제작이란 그리 간단하지 않아. 거의 매일 내가 원하는 걸 표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지. 그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진다면 영화에 대한 의지도 함께 약해지고 말걸.”]
나름대로 이 부분을 주목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겠지만, 나는 소설을 쓰면서 매번 저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 스타트를 끊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몇 편을 진행하고서도, 한참 헤맨다. 그리고서 엉뚱한 라인으로 엇나갈 때도 종종 있다. 내 손을 타고 생겨난 주인공들이 내 마음대로 조종(;)이 되지 않아, 마구 짜증낼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아마 리뷰를 쓰기 전의 계획과 쓰고 난 후의 결과물을 보았을 때의 참담함을, 다른 분들도 느꼈으리라 싶다. 나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생활 속에서, 타인의 글, 취향의 음악에서 값진 무언가(다른 각도로 해석하기, 어떤 현상에 대한 고정된 것에서 벗어난 새로운 표현, 형상)를 찾아내는 과정을 거친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한다. 그것을 토대로 풍부한 의식을 불어넣어, 새로운 기본 뼈대를 세우고, 특유의 필체와 감각으로 새 이야기를 건져 올린다. 징검다리를 밟듯 서두르지 않고. 그런 작업을 머릿속에 영상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그렇게, 왕성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필사적으로 몰두해서, 한 편의 글을 탄생시키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때때로 무기력해질 때도 간혹 있지만. 어떡해든 이겨내려 발버둥, 기필코 해내겠다는 의지와 줄줄 흐르는 땀방울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을 때, 어떻게 설명이 안 될 만큼 무지무지 기쁘다. 이런 생각을 나열할 수 있는 독서는 의미가 있다. 쉬이 놓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희망을 가졌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 사회 전체의 희망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개인적인 희망을!"

틀린 부분을 몇 군데 찾았다.
52. 무렵 까지는 -> 무렵까지는
99 토해 내는 -> 토해내는
84. 힘들어 진다 -> 힘들어진다.
(그 외, 여러 띄어쓰기 틀림.)
61. 띄어쓰기 할 때, 스페이스 바 키가 두 번 눌러진 곳, 한 번 눌러진 곳.
일관적이지 않다. 어지럽게 보인다.
85. 매니큐어 -> 에나멜

(매니큐어는 '손 관리', 전반적인 행위를 뜻합니다.
색색의 용액은 '에나멜' 혹은 '폴리쉬', '네일락카'라고 합니다.)


94 연신, 108 연신 -> 연방
(이건 몇 차례 나오더라.)
106. 생일날-> 날 일, 그리고 날 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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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고 싶은 일본소설 베스트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코드 형성, 배움의 기회, 새로운 발판.

*_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0622).

이번 리뷰, 또한 계획보다 약간 늦었다. 즉각 리뷰가 효과가 더 큰데,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가물가물, 조마조마한 상태로 리뷰 시작.
처음에, 신간 코너에 피쉬 스토리랑 나란히 깔렸을 때, 이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쪽을 살짝 외면했다. 피쉬 스토리, 단편집이란 것에 무진장 끌려서, 먼저 구입했던 것이다. 쭉쭉 외면하려 했는데, 그 결심이 무너졌다. 확 엎어버린 것이다. 친구를 기다리면서, 무심코 집어 들었는데, 후딱 멈춰지지 않고 막무가내로 끌려들어간 것이다. 아뿔싸,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좋았다. 2005년 1월 <칠드런>을 곧장 구입해서 읽고, 급속도로 빠져들어 다음 작품을 기다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작 아저씨의 소설이 여기저기 널리게 되었을 때는, 잔뜩 찌푸리고 본체만체했지만. 브레이크가 풀리고, 다시금 빠져든 순간. 찌릿찌릿한 감각을 불어넣으며, 리뷰에 집중을 한다.

 

이 책의 커버를 덮고, 되새기는 과정에서 영상을 그렸다. 처음 칠드런을 접했을 때의 조각 영상, 지난번 피쉬 스토리와 사신 치바를 거쳤을 때의 각인되었던 영상, 새로운 이미지로 교체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매듭지었다. 그리하여 애써 딴청피우며 안 읽으려 들었던 남은 작품들을 다 질러버렸다. 계열, 타입을 무시할 수 없는 건데, 내내 우기고 있었던 것이다. 피식. 이젠 절대 안 그럴 거다. 좋아하는 아저씨들의 작품을 줄곧 기다리고, 꾸준히 읽고, 꼼꼼하게 리뷰를 쓸 거다.(그 드러남은 엉성하고 많이 부족한 리뷰일지라도, 과정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일단, 화자가 ‘시나’일 경우, 1인칭 관찰자 시점. 좀 더 파고들수록 심리 묘사가 얕게 둥둥 떠 있고, 스토리 위주로 들려주기를 하려는 것이구나 싶었다. 완결을 되짚었을 때, 장치를 만들고, 교묘하게 트릭을 설정할 수 있는 시점 선택은 좋았다고 생각했다. 특정한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한 꺼풀 벗겨보면, 어쩌면 '주변인물‘ 그러니까 ’관찰자‘가 될 수도 있다는 바탕이 깔렸다. 아저씨가 말하길,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어떤 소설의 ’주인공‘이 다른 소설에서 ’부수적 인물‘로 나오게 만들고 있다고. 나는 그런 면에서 와글와글 반응을 했다. 어딘가 이어지고 있다는, 숨겨진 골목 같기도 한 머릿속 풍경이 쉬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다만, 이번 소설에서는 지난번과 달리, 아저씨의 강렬함이 미묘하게 풀썩 가라앉았다는 개인적 판단이 있었다. 번역 쪽으로 약간 문제도 포함되었고. 208쪽의 증발되어 갔다, 라는 부분. 원서에 명시된 그대로 번역한 거 같은데, “가다”라는 단어가 진행형으로 쓰이니까, “가다”라고 곧바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증발되었다. 라고 하는 쪽이 더 낫고 정확함에 가까울 거라는 개인적 의견이 있다. 210쪽의 연신 -> 연방, 으로 고쳐주어야 한다.
(전체적 문장이, 조금(미묘한 부분에서)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 초반에는 그나마 무난했다. 중간에 접어들었을 때, 간혹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실력 향상의 가능성이 보여서 좋았다. ^^) 번역에 관한 부분에서 좀 더 짚고 갈 게 있다면, 상상플러스에 더러 나왔던 우리말을 넣었다는 데에 흐뭇했다는 것이다. 55쪽의 허투루, 270쪽의 헛물켠. 뭐, 상상플러스에 방송되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어휘지만, 다시금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는 것! 쓰임새도 살짝 헷갈렸던 게 있다면, 즉각 확인할 수 있고.

 

69쪽, 꽝꽝나무. 인터넷 검색으로, 백과사전에 나오는 부분을 붙인다. 감탕나무과(―科 Aquifoliaceae)의 감탕나무속(―屬 Ilex)에 속하는 상록관목.

남쪽 지방에서 잘 자라나 전라북도의 바닷가에서도 볼 수 있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는 1.5~3㎝, 너비 0.6~2.0㎝로 작은 타원형을 이루며 광택이 나는 짙은 녹색이다. 꽃은 5~6월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따로 피는데 수꽃은 총상(總狀)꽃차례로 3~7송이씩, 암꽃은 잎겨드랑이에 1송이씩 핀다. 열매는 10월에 익는다. 목재를 널판이나 기구를 만드는 데 쓰고 있으며,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전라북도 부안군 중계리의 꽝꽝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1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Daum 백과사전.)

이렇듯, 무언가 찾아볼 단서를 제공하는, 새로운 지식을 집어넣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뜻 깊은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어리벙벙한 주인공을 내세워, 갸웃거리면서 따라가게 의도했고, 거의 절정 부분에 이르러서 팍팍 연거푸 강속구를 무지막지 날려주는 것이었다. 당황, 그리고 번쩍임.
왠지 미심쩍은 기운이 쫙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 미묘함이 있더라니, 그렇게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에잇, 속았잖아(;) 막 툴툴거리면서도, 은근히 미소를 드리울 수 있었다. 사신 치바와 마찬가지로, 이틀 붙잡고 있었고, 작업할 때를 제외하고 오로지 이 책만 들여다보게 되었다. 밖에 있을 때가 더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두 번째 속독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자신의 세계로 환상의 진공청소기처럼 쭉쭉 빨아들인 코타로 씨에게 감격했던 것이다.

신을 가둔다는 의식을 담은 영상, 책을 덮어도 퍼뜩 떠오르고 있다. 절묘한 대사에 솔깃한 반응을 보이고 말았고, 마지막에 시바 견이 등장하는 장면은 제자리(시나와 도르지의 관계가 지속되는 게 아닐까 싶은)를 찾을 거라는 걸 암시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력 우승의 가능성이 없어진 야구팀의 팬이 ‘그래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야구다.’라며 딴전피우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포기하지 못했다.] - 427쪽.
야구 표현이 이따금 등장하는 것에, 또한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2003년 당시, 내 번외소설에 테마로 지정했던 야구 표현을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2편 남겨놓고 중단해서 아쉽기도 했고, 내 친구가 많이 응원해주었던 소설이라 어떻게든 완결은 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게는 자극이 되기도.

그리고 시점 교차. 이 사항도 개인적 소설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란 제목의 소설을 썼다. 두 주인공의 시점을 번갈아 시도했다. 약간 머뭇거리고, 어설픈 장면도 보였고, 묘사가 충실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쭉 콩트식의 글만 썼다가, 처음 도전했던 중편이라고 할까. 그랬다. 고슴도치를 포함한 몇몇 아이템. 내 경험이 최초로 실렸던 거라, 의미가 컸던 소설이기도 했던. 새로이 차곡차곡 자료를 모아, 징검다리 단계를 밟고, 다시금 의도를 찾아볼까?
그런 생각과 더불어, 이번에도 결과는 더없이 부족한 리뷰가 하나 더 늘었군, 중얼거리면서 리뷰를 마무리 짓는다.


+ 빠트릴 뻔했는데, 뒷날개의 소개. [사막]의 책 소개가 잘못됐다. 언급된 부분은 바로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한 가지 거슬린 게 있었다면, 표지 띠지. ‘더 이상의 이사카 월드는 없다.’ 라는 문장. 이렇듯 극단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의 소개는 지양해주었으면 한다. 좋은 작품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망치는 결과일 수도 있다. 앞으로도 다양하고 특이하게 펼쳐질 텐데, 섣부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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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사신 치바 리뷰
(0617)
이런 사람이 가까이에 있습니까?
。 음반 매장에 비정상적으로 자주 드나든다.
。 이름으로 동네나 시의 이름을 쓰고 있다.
。 대화의 포커스가 미묘하게 빗나간다.
。 맨손으로 사람과 접촉하려 하지 않는다.
。 항상 비를 몰고 다닌다.
그렇다면 그는 사신(死神)일지도 모릅니다.


우선, 계획보다 늦어진 리뷰다. 금요일, 밑줄 긋기랑 나란히 올리려고 했으나 준비를 못했다. 그리고 어제, 컴퓨터에 아예 손도 못 댔다.
커버를 들추자 곧장 모습을 드러낸 사항들을 짚으면서 바로 갸웃갸웃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친구가 “자네 같은데.”라고 한 적이 있었다. 리뷰를 쓸 자세를 갖추며, 문득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서 내가, “난 비를 몰고 다니지는 않아. 소나기를 좋아하긴 해도.”라고 우스개로 대답했더니, “그렇지만. 4개나 해당된다고.”라고 또 엉뚱하게도 심각한 진지 모드로 대꾸하던 에피소드가 있다. 소설에 관련된 일상, 진기하고 기발한 요소, 스릴 만점의 사건들을 안겨다 준다면, 내게 있어서 특별한 코드로 기억될 소설. 당연 [사신 치바]다. 코타로 씨를 알게 된 2004년을 생각하면, 사신 치바가 등장한 시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지만. 그 이유는 피쉬 스토리 리뷰에 언급했으니, 여기는 생략.   
글을 읽든, 음악을 듣든, 체계적으로 이론과 개념이 잡히지 않았어도 어떻게든 하나하나 곱씹고 되풀이 듣고 되새기며 나만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음반 매장을 자주 들르는 사신. 그 위에 겹쳐 귀퉁이를 맞추고 펼쳐놓듯 나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과거의 경험을 파노라마 작동시켜 함께 했다.
사신다운 말투와 행동, 그리고 사신답지 않은 관심과 애정. 무엇답다, 답지 않다. 이런 관련은 내가 정의 내릴 문제 선을 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풀이하여 쓰고 싶을 정도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면을 두루 가진, 주인공에게 매력을 담뿍 느꼈기 때문. 어떤 과제를 하는 도중에도, 내내 음악을 틀어놓는 나의 일상과 공통적 요소가 있었기 때문. 그 이전에 읽었던 피쉬 스토리의 구로사와랑 거의 같은 등급일지도. (웃음)

어제, 집에 돌아올 적. 종점에서 내려 집을 향해 가는 중 떠들썩한 편의점 앞을 지나치고 불 꺼진 주유소를 통과. 단지 몇 발짝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갑자기 다른 세상에 홀로 던져진 것처럼 눈앞의 현실과 단절된 감각이 내리눌렀다. 신비한 차원으로의 소용돌이 문을 본 기분이었다. 문득 ‘사신 치바’를 떠올렸다. 내게 사신이 온다면, 이런 통감일까 싶은. 아니지, 소설 속에서 사신과 동행하고 있다는, 자각한다면 까무러칠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했으니까, 나 역시 알아차리지 못하겠지.(어쩌면 마지막 파트의 그 사람처럼 알아차릴지도? 무심코 기대 버전;) 애써 이런 식의 예측만 건드릴 뿐이겠지.
어쨌거나, 기묘한 사신. 그에게 단숨에 빠져든 시간, 이틀. 여러 가지 해결할 작업이 있었기에,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은 지극히 짧았음에도, 엄청난 속독을 했다. 나는 대개 탐독을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뒤에 진행될 얘기가 극도로 궁금해서 과감히 버렸다.
앞의 단편에 부수적 인물이, 뒤의 단편에서 중심인물로 등장해서 그 또한 쏠쏠한 재미를 선사했다. 특히, 맨 처음 보류된 인물이 마지막 단편에서 미미한 바람을 충족시켜주었기에.
다양한 장르, 종횡무진 질주하는 바이크의 쾌감을 던져주었던 갖가지 단편들. 그 중에서도 내가 좀 더 선호했던 단편을 꼽자면,
*2. 사신의 하드보일드 - 치바와 후지타 형님, 5. 사신의 로드무비 - 살인 용의자와 동행하다*를 짠, 즉각 펼칠 수 있다. 반듯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후지타 형님. 

[“여긴 말이야 강의 상류, 출발 지점이잖아. 그게 이 폭포야. 여기는 화려하고 사람도 많잖아. 그건 말이야 우리가 태어날 때와 닮지 않았어? 우리도 태어날 때는 이랬겠지? 야단법석에다 사람들의 주목도 받지. 다들 축하해주고. 하지만 그게 차츰 지나면 지금 보았던 것처럼 넘실넘실 소박하게 흘러가게 될 뿐이야. 뭔가 닮지 않았어?”
“하류도 나쁘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해.”]
꼭 어느 인생의 단면을 그리는 모습으로만 표현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 획을 그을 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인기를 얻는 부류가 있으면, 그들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영향을 준 사람들이 분명 있다. 묵묵히 일하고, 소박한 일상을 살지만, 그래도 그들의 위치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각각의 포지션은 저마다 다르지만, 꼭 그들만이 이뤄낼 수 있는, 그들만이 유지시킬 수 있는 포지션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필요 없는 존재”라는 섣부른 생각을 접고, 이제 나도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과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런 포지션으로 매순간 집중해서 나의 아이템들을 바탕으로 나만의 장점을 발휘하고 싶다.


깜빡 빠트릴 뻔 했는데, 한편으로 줄곧 내 지인을 괴롭히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던 문제가 소설 속에 녹아 있었다.
[“예를 들면 말이에요, 태양이 하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태양은 중요하잖아요. 죽는 것도 똑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특별하지는 않지만 주위 사람들로서는 슬프고 중요한 일이라고.”]
또한, 주위 지인에게서 근래 자주 ‘죽음’에 관한 한 마디씩 새어나온다. 나는 그때마다 발끈해서 막 악악 지르기 일쑤. 그런 단어는 꺼내지도 말라고. 그렇지만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란 걸 안다. 잘 알고 있기에, 아찔해지는 것이다. 매번 꺼트릴 수도, 잠재울 수도 없는 영역. 알아차리고 있고, 피해갈 수 없는 그 선상에 놓여 있지만, 조금 더 시기를 늦추고 싶어 발버둥을 친다. 어느 시기 접어들어, 딱히 산다는 것에 그리 매이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 그런 기간이 있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지도 않았고,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저 휩쓸려도, 아무렇지 않다고 중얼거리곤 했다. 지금에서 생각하면, 폭발적으로 분출하던 영상이 그려지는데, 이렇다하게 열정을 쏟았던 것은 없었다 싶다. 그 좋아하던 책도 팽개치고(;), 글& 그림도 멀리하고, 그저 음악은 흘리지 않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장르만 고집했다. 이제는 아니다. 무언가 집중할 게 있고, 도전해보고 싶은, 배우고 싶은 카테고리가 수두룩하니까, 더 이상 죽음은 상기하고 싶지 않았다. 평정인 채로 있을 수 없었다. 멀리멀리 던져버려야 했다. 그 무엇보다 지인들의 죽음이 더 바짝 조여들고, 간당간당 그 입구를 서성이는 극적인 연출까지 하게 된다. 저 대사를 접하는 순간, 아득해졌다. 회오리에 빨려드는 느낌이랄까.
가만, 잔뜩 침울해졌다.
화제를 바꿔서(;) _ 잠깐 음악에 관해 다시 돌아가서-

[재즈든 록이든 클래식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음악은 최고다. 듣고 있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해진다. 아마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신이라고 해서 재킷에 해골 그림이 그려진 헤비메탈만 듣는 것은 결코 아니다.]

흔히 사람들이 가지기 쉬운 편견에 관해 일침을 가한다. 사실, 사람의 인상으로 ‘아, 이 사람은 발라드풍의 음악을 좋아할 것 같아. 그것만 들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하고, 자기 위주의 고정관념을 박아놓는 무리들이 있다. 당연 성급한 판단을 자제하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나는 후자가 더 좋다.;) 나 또한 저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첫 만남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게 저런 대사를 끄집어냈다. 나는 딱히 반론을 펼쳐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넘겼지만. 아직까지 심심찮게 들려온다.
어쨌거나, 쓸데없는 잡소리를 잔뜩 늘어놓았지만, 나도 한편으로 편견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헤비메탈’만 추구하는 사신이 아니라서 더욱 좋았고 솔깃했다는 거다, 결론은. 나조차도 ‘록’, 그 중에서도 ‘헤비메탈’, ‘하드코어’적인 타입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음악을 확연하게 가리지는 않는다. 저마다 그 장르의 영향을 안식으로 얻기 때문이다. 그게 날씨의 원인, 환경의 원인, 나 자신의 심리 원인이 각각 달라 특정 음악을 선택한다. 아마 사신도 그러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무감각하고 어떤 사태에도 감정이 실리지 않은 대처를 하지만, 그런 행동의 이면에 가려진 음악에 쏟는 열정과 습관을 엿볼 수 있어 색다른 체험이라고, 슬쩍슬쩍 미소를 짓는다.    

그저께부터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아이템 설정 중이고, 그 후 ‘마왕’을 읽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마왕은, 친구가 책을 사면서, 미니 북을 준 것이다. 면장 선거보다 약간 큰 사이즈.)
당분간 어설픈 리뷰는 쭉쭉 올라오겠지, 아무래도.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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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18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가지나 적용된다니. 호감도가 상승하는걸요.(웃음)
천둥번개를 몰고 다니는 사신이라면 내가 콱- 안아주었을텐데 말입니다.킥킥.

302moon 2007-06-1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둥, 번개를 몰고 다니지 않아서 아쉬운데요. 두 가지 요소, 그 영상을 광적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웃음)

비로그인 2007-06-1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둥 번개가 치는 비 오는 밤에 우산 들고 춤을 춘다면 -
바로 저일 것입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