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9, 종합 리스트.] 

 

20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윤대녕 (소설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 수상작은 이 작가 특유의 소설 문법이 바야흐로 개화하는 광경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가족서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겠으나, 개개의 등장인물들이 보여 주는 삶에 대한 지시는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풍요롭다. 막내삼촌의 전기 형식으로 풀어나간 이 소설은 1980년대 구로공단을 서사적 시공간의 중심으로 끌어들여 사랑과 배신, 떠남과 돌아옴, 가족의 운명 등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보여 주고 있다. 화자인 ‘내’가 이제 완전히 멈춰 선 삼촌의 프라이드 자동차 조수석에 할머니를 태워 보닛을 밀며 동네를 한 바퀴 돌 때 목격한 ‘다시 가까워지는’ 삶의 실체 앞에서 우리는 육박해오는 그 어떤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한수산 (소설가, 세종대 국문과 교수)
: 수상작은 무엇보다도 ‘이야기하기’에 성실하다. 소설의 본령인 ‘이야기’가 소홀해지고 있는 추세에 이 작품을 만난 의미가 더욱 컸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절제되고 정제된 표현과 문장도 이 작품이 가지는 아름다움의 하나였다. 좀 더 웅대한 서사 구조 속에서 이 작가의 ‘이야기하기’가 빛을 발할 수도 있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작가의 앞날에 큰 기대를 거는 마음을 담아 축하를 드린다.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체가 구병진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건 자신이 형님으로 모시는, “세상을 뒤집어 버리는 혁명을 이룬 남자, 죽어서까지 예수처럼 떠받들어지는 남자” 체(CHE★)와 이름이 같다는 것이다(물론 그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체에게 “혁명”이란 “키 작은 놈은 커지고, 키 큰 놈은 작아지고, 못생긴 놈은 잘생겨지고, 잘생긴 놈은 못생겨질 수도”(46쪽) 있는, 그야말로 모두의 상식을 뒤집는 일이다. 그러니 계도사가 가르쳐 준 ‘합체 수련’이 솔깃할 수밖에 없다. 오체에게 처음 ‘체 게바라’ 이름을 알려준 중학교 사회 선생의 말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혁명”이라면 오체, 오합 같은 루저들이 세상을 뒤집을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물이 말라 버린 북쪽 약수터에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든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자에게 일어난 일처럼 말이다.

 

<자기 앞의 생>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작가 로맹 가리의 마지막 유작. 2편의 미완성 소설과 잡지에 게재되었던 5편의 단편을 모았다. 대중적으로 인정받기 전에 쓰인 초기 작품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초고들, 미완성인 채로 남겨진 텍스트들이 수록되어 있다.

 

 

 

 

 

시인, 작가, 탐정, 군인, 낙제한 학생, 러시아 여자 육상 선수, 미국의 전직 포르노 배우와 그 외의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14편의 이야기들은 작가의 삶(1부), 폭력(2부), 그리고 여성의 일생(3부)에 대한 볼라뇨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또한 이 단편들은 작품 『전화』의 틀을 넘어 볼라뇨의 또 다른 단편소설 및 장편소설들과 각기 짝을 지음으로써 로베르토 볼라뇨 작품 세계의 특징 중 하나인 상호텍스트성을 완성한다. 이렇듯 볼라뇨 세계를 구축하는 등장인물들은 대개 서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한쪽이 실종된 상태다. 이렇게 물리적인 거리가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상황들 가운데 심리적 거리가 생기고, 이러한 사람들의 상황과 관계가 만들어 내는 거리감과 그에서 비롯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전화나 편지 정도로만 간간이 소통하는 이들의 삶을 볼라뇨는 철저히 제3자의 입장에서 기술해 나간다. 상황 자체를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볼라뇨의 이러한 태도는 왜 그가 『칠레의 밤』, 『부적』, 『먼 별』 등 그간 자신의 작품 가운데 칠레와 멕시코 등의 정치적 현실을, 쿠데타 주위를 직접적으로 파고들기 보다는 맴도는 쪽을 택했는지 깨닫게 한다. 즉 당시 쿠데타의 실제 공포를 직접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독자인 우리로 하여금 간접적인 공포 정도를 감지하고 경험할 수 있게끔 한 작가적 선택인 것이다. 이렇듯 볼라뇨의 단편들은 볼라뇨의 또 다른 장편들을, 나아가 볼라뇨의 작품 세계 전체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놓여 있는 징검다리와도 같다.

유미코에게 어느 날 사촌 쇼이치가 찾아온다. 쇼이치는, 이모가 돌아가시면서 유미코를 찾아 돌봐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한다. 유미코의 엄마는 강령회를 진행하는 도중 이상한 것에 씌어 남편을 찔러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 그 후 유미코는 모두와 인연을 끊고 외로이 지내고 있었다.

엄마가 아빠를 죽이고 자살하던 때부터의 기억이 모호하다는 유미코와, 자신의 엄마 역시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으며 오컬트적인 힘으로부터 전혀 유리되지 않은 삶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쇼이치는 함께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통해 차곡차곡 과거를 복원하던 중, 유미코는 아빠의 산소에서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에 대한 소름끼치는 진실을 깨닫는다.

 

강현덕의 시조는 현대적인 호흡과 리듬과 시조 본유의 깊은 함축성을 두루 갖추었다. 생태계는 물론이거니와, 생명의 존엄성 자체가 경시되는 현대사회에 이처럼 그윽한 시조들은 근본적인 가치를 환기시켜준다. 고적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관찰하며, 그로부터 생명에 대한 통찰과 그 안에 내재된 가치를 우회적으로 이야기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필연적인 운명인 소멸에 대해 성찰하면서, 역설적으로 그것마저 포용할 때 생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가능하다. 그것은 자신의 상처에 대한 직시와 타자성의 회복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것은 사랑이라는 행동으로 가능하게 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시각적인 이미지의 형상화를 이루어내는 웅숭깊은 시집이다.

 

 

 

단편적인 서정을 중시하는 시들과는 달리 한길수의 시는 서사적인 특성을 지닌다. 그 속에 배어 있는 따뜻한 시선과 진지한 성찰은 독자에게 보다 더 구체적이고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시인은 사회의 밝은 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면도 동시에 응시한다. 그래서 사회적 맥락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고, 그것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 성찰도 충실히 함으로써, 자칫 외부세계의 관찰에만 그칠 수 있는 시적 영역을 다분히 폭넓게 확장하고 있다.

 

 

 

 

제1회 구상문학상 신인상 수상 작품집
정진혁은 폭 넓은 소재를 채집하여 안정된 호흡으로 시를 형상하는 진술과 구성 능력을 가진 시인이다. 내가 그의 시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일상과 제재들이 민중서사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의 시에 나오는 인물과 화자는 “방 하나가 전부인 집”에 살며, 남편을 여읜 여인이 도시 산동네에 와서 가난한 생을 보내고, 공단에 기대어 사는 이주노동자들이 깃들어 살고 있다. 이들 돈과 경쟁이라는 자본주의 ‘사막’의 고투에서 낙오하여 고통을 겪는 인물들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조갯국물 같은 진한 슬픔”과 “생의 비릿함”이 몸을 휘감는 느낌을 받는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80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목소리는 강아지를 찔러보는 햇살, 다랑이를 찔러보는 비, 열매를 찔러보는 바람처럼 시적 화자인 ‘나’를 찔러보는 존재들, 그 소외된 소수자들이 갖고 있는 강렬한 응시의 힘과 에너지로 충만하다. 이 ‘찔러봄’을 통해 시인은 황폐한 삶의 굴레 속에서도 야성으로 빛나는 강인한 생명력과 건강한 삶의 천진성을 발견하고 자연의 진정성과도 만난다. 황폐한 삶의 굴레 속에서도 시인으로 하여금 자연에 눈을 돌리게 하고 자연과 화합하게 하는 동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자연과 인간의 비차별적 소통’(이숭원)이라고 명명한바, 이 지점에 시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가락과 장단으로 빚은 발랄한 시적 리듬을 더한다. 땀내 나는 노동의 현장, 메마른 초목, 길가의 돌무더기를 나직하게 ‘찔러보는’ 시인 특유의 언어유희와 발랄한 리듬 감각이 그것인데, 바야흐로 21세기 한국 시의 새로운 풍경, 다시 말해, 빈틈없는 묘사와 서술, 경탄스런 조어법으로 자연-인간-리듬이 어우러진 한판 시적 진경을 펼치고 있다.

그는 지금껏 곧고 날카로운 사물의 이미지들을 통해 견고하고 염결한 정신주의를 가다듬어왔으며, 죽음의 경험을 온몸으로 육화해낸 시들은 삶과 죽음을 감싸안는 폭 넓은 울림을 지녀왔다. 그리고 그런 시적 깨달음을 힘있고 유려한 리듬으로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그의 장기이자 매력이다. 이번 시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시인은 여러 시에서 삶과 죽음의 순환과 뒤엉킴에 대한 자각을 진솔하고 결연한 어조로 토로하고 있다.
시인은 제 상처를 들여다보듯 주변의 상처에서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그리고 멀리 회복과 치유의 시간이 도래할 것을 내다본다. 시인이 지닌 ‘통증의 세계관’은 손쉽게 희망을 말하지 않으면서 기어이 다시 살아낼 의지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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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1, 종합 리스트.] 

 

‘작고 하찮은 것’들을 익숙한 언어로 다듬어내는 겸허한 시집

『작고 하찮은 것에 대하여』라는 제목부터 사뭇 확고하게 느껴진다. 시인은 시대의 폐기물들을 관찰하고 그에 대해 성찰하며, 그것으로부터 시대를 꿰뚫는 진정성을 읽어낸다. 그것은 비단 사물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작고 하찮은 것’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모든 의미들은 스쳐지나갈 뿐이다. 이러한 사유에서, 시인은 우리의 존재는 ‘작고 하찮은 것’이 되고자 했을 때, 오히려 분명해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흔히 ‘작고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들은 사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상당히 쓸모가 있다. 이렇듯 우리 또한 작음과 하찮음을 인정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할 때 비로소 풍요로운 가치를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관념적인 인식으로까지 사유를 심화시킨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바다는 결국은 순간이라는 조그만 물방울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작고 하찮은 순간’들이 모여, 장대한 역사가 된다. 그러나 제아무리 광대한 세계의 운행일지라도, 우리가 그 의미를 발견하기 전에는 무가치한 것이다. 우리가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거나, ‘포스트잇’으로 붙여 놓지 않으면, 대부분의 것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버릴 뿐이다. 결국, ‘작고 하찮은 것’들이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이다.
사소한 것들의 진정성으로부터 세상의 올바른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집이다.

■ ‘아니’라고 외치는 아이들이 사는 마을
과감한 부정과 기발한 규정으로 만들어 낸 새로운 세계

조민은 끝까지 부정하고 처음부터 시작한다. 사물을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시인은 자신만의 ‘스트리트 뷰(street view)’를 만들어 낸다. 그 풍경에는 섬뜩할 정도로 새롭고 창조적인 색채가 있다. 부정을 위한 부정이 ‘왜 안 되는지’를 묻는 천진하면서도 당돌한 시인의 음성은 마치 폭발적인 펑크록처럼 독자를 불온한 유쾌함에 젖게 한다.

 

 

 

‘지도에는 없는’ 낯익지만 새로운 세계의 풍광은 지워지지 않는 꽃물처럼 마음에 물든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 여로(旅路)의 목적을 슬쩍 눈치 챌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은 어쩌면, 자신의 처음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와 ‘나의 시’의 근원을 확인하고, ‘앞서 간 사람들’이 갔던 저 너머의 세계로, 이제는 정말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 위한 그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시집 『지도에 없는 집』은 곽효환 시의 시작에 놓일 처음이자 또 다른 처음인 시집이 될 것이다.

 

 

 

 

≪가곡원류≫는 가사집이면서 동시에 성악보집으로서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우선 ‘가사집’으로서의 특징적 모습은 종래의 가집들과 달리 저본을 놓고, 이를 그대로 가져와 새로운 가집으로 탈바꿈시킨 것에서부터 나타난다. 여기에다가 역사상 유명한 작자의 작품임에도 빠진 것들과 자기 시대의 작품들을 찾아 보완해 넣는 방식으로 작품집을 구성했다. 이런 방식에 따라 유명한 <하여가>와 <단심가>는 물론이요, 서경덕, 황희, 변계량 등 수많은 유명 인물들의 작품들이 실려 있어서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휘트먼은 사물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즐겼다. 시는 나무나 꽃처럼 자연스럽게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시의 흐름은 운율의 패턴에 지배를 받을 것이 아니라 시인의 생각이나 느낌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유시를 바다에 비유하면서, 시란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쳐 거칠기도 하고, 언제나 움직이기 때문에 그 크기나 율동이 결코 같을 수 없는, 끝없이 솟아올랐다가 부서지며 굽이치는 유동적인 파도와 같다고 했다. 그는 또한 완전한 시의 운율과 형태는 운율 방법의 자연스런 성장의 결과로서 라일락이나 장미가 숲에서 자유로이 싹트는 것과 같이 생겨나며, 밤이나 오렌지나 멜론이나 배처럼 알맞은 형체를 취하고, 그 형체에 미묘한 향기를 가미한다고 했다.
산문처럼 보이는 그의 시는 음악적인 속성을 드러냄으로써 산문과 시의 구별을 없애는 길을 터놓았다. 즉 이는 그가 평소 좋아했던 오페라처럼 시에 같은 소리의 반복, 같은 문장 구조의 반복, 같은 생각의 반복, 나열법을 사용함으로써 음악성을 강화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 고요한 서정성이 유달리 돋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과장된 수사나 애써 발견한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는 데 있다. 시력(詩歷)으로나 나이로나 어느덧 중견이 된 시인답게 그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에서 녹록지 않은 깨달음과 감각적인 시적 표현을 얻는다.

 

 

 

 

 

『캉디드』는 가장 유명한 볼테르의 철학소설로 작가의 명성이 정점에 달한 64세에 집필하여 175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재기발랄한 문체로 실제 사건과 허구를 교묘히 결합하고 당시의 시대상을 재치 있게 풍자해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순진하게 낙관론을 믿던 캉디드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겪는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낙관론을 풍자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열거하며 보편적인 인간 조건을 성찰하게 한다. “모든 것은 최선을 위해 존재한다”는 라이프니츠의 낙관론과 모든 일은 반드시 그에 대한 ‘충족 이유’가 있고 신의 예정된 조화에 의해 ‘원인과 결과’를 따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예정조화설을 풍자하려는 의도가 작품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이 세상의 우연한 사건과 우연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따져보고, 원인과 결과에 대해, 정신적인 악과 육체적인 악에 대해, 자유와 필요에 대해” 토론하고 “가능한 최선의 세상에 대해, 악의 근원에 대해, 영혼의 본성과 예정 조화에 대해” 추론하길 제안하며 독자들에게 논쟁과 성찰을 유도한다.

역사의 유구한 흐름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다. 그러나 보편적이고 영원한 것을 인간이 노력을 통해 후대에 남기고 전달하려 할 때, 아무리 비정한 역사라 해도 이를 외면하지 않는 법이다. 격동의 시대상황 속에서 누구도 거역할 수 역사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 나갈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제시라는 점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토마스 만은 폰타네의 소설『에피 브리스트』를 엄선한 가장 훌륭한 소설 6권 안에 반드시 넣어야 하는 작품으로 꼽는다. 60세가 다 되어 첫 소설을 발표하고 80세를 앞두고 작가로서 최고의 기량을 드러낸 폰타네는 소설에서 모든 일을 공정하게 바라보고 너그럽게 이해하는 온화함과 함께, 앞을 내다보는 현명하고 넓은 시야를 보여준다. 그의 객관적인 서술 형식은 잘못을 저지른 인물을 결과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사건의 맥락 속에서 보면서 스스로 판단하게 해준다. 작가가 77세가 되는 1895년 단행본으로 출간된『에피 브리스트』는 그의 소설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예기치 않았던 유산을 상속받은 주인공은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과 주변여건, 더 나아가 인간이 처한 근원적 조건을 둘러볼 여유를 갖게 된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동료들과 작별한 뒤, 그때까지 살아오던 누추한 호텔을 떠나 도시 변두리에 아파트를 얻어 생활한다. 새로운 거처에서의 생활이 자리 잡히자 주인공은 이 우주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근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을 쉽사리 찾지 못해 좌절하면서 일상의 삶에 매몰되어간다. 여인과의 사랑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전화로 예전에 알던 철학과 대학생과 상담도 해보지만, 그는 자신을 둘러싼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에 성공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그 동안 바깥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사람들은 서로 비방하고, 죽이고,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건설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어느 쪽이 옳다는 확신을 갖지도 못하고 한쪽에도 가담하지도 못한다. 그의 내면 역시 변한 것이 없고, 그의 형이상학적 질문 역시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강인함, 용맹함, 충성스러움 등을 주제로 하여 19세기 제국주의 아래 성황을 누린 대부분의 아동문학 작품들이 머잖아 스러진 것과는 달리 오늘날까지 빛나는 『정글북』의 가장 큰 매력은 단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언뜻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론 남의 명예와 노동력을 착취하고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인간들의 탐욕과 이기심도 보여준다. 수직적 질서와 절대복종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힘과 영광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 위계의 어딘가에 위치한 개개의 생명에 대한 애착과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정글북』이 21세기까지도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임과 동시에 키플링에 대한 비평가들의 견해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살벌한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내에 남아 있던 작가들은 목숨을 유지하면서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는데, 기존의 문학 형식과 언어를 해체하고, 과학소설·탐정소설·메타픽션 등 여러 장르를 차용하는 등 다양한 서술전략을 통해 작품 활동을 벌여나갔다. 이 시기에 발표된 『인공호흡』의 복잡하고 파편화된 구조 역시 군부의 혹독한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는 것이 당시 아르헨티나 비평계의 주류적 견해였다. 이 소설은 아르헨티나 작가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훌륭한 10대 소설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간 본성을 파고드는 미증유의 문학적 실험

당시의 문학적 전통에 반기를 든 『더블린 사람들』은 출판사와 마찰을 빚으며 번번이 출간에 실패하다가 탈고한 지 10년 만인 1914년에 출간되었다. 조이스 문학의 특성은 그의 남다른 작가관에서 출발한다. 그는 독자를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소비자가 아니라 작가와 함께 텍스트의 의미를 끊임없이 재창조해야 하는 생산자로 정의한다. 그는 이러한 새로운 문학을 실현하기 위해‘의식의 흐름’‘열린 결말’과 같은 획기적인 기법을 개발했다. 오늘날의 비평가들이『더블린 사람들』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나 『율리시스』 같은 그의 후기작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이 소설에 이미 새로운 문학의 서사 전략이 구사되어 있어서이다. 조이스는 전통적인 작가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문학 기법으로 같은 시대 작가들에게는 물론 나중 세대의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소설에서 보여준 미증유의 대담한 실험으로 문학사에 길이 이름을 떨쳤다.

소설은 제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펼쳐지는 기이한 사건들이 끝과 끝이 맞닿아 연속된 시간의 결로 이어진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회화적인 문체로 독자를 빨려들게 하는 이 작품은, 그래서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읽다 보면 몹시 짧게 느껴진다. 경찰을 농락하는 범인과 그런 범인의 뒤를 쫓는 여형사 유키히라 사이의 두뇌 게임은 마지막 충격적인 결말에 이를 때까지 한순간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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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2, 종합 리스트.] 

 

송기원의 네 번째 시집. 전작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의 전편에 걸쳐 짙게 드리운 '죽음'의 상상력.
 

 

 

 

 

 

2006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김언수 작가의 2010년작. 돈을 받고 누군가의 죽음을 의뢰받아 이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게끔 전체적인 구성을 짜는 '설계자'. 이 설계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이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사람이 '암살자'다. 소설은 설계자와 암살자,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하나씩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김경욱의 어른들을 위한 매혹적인 '연애 성장 테라피'. 문학평론가 강유정은 "한국판 [첨밀밀]이라고도 볼 수 있는 연애담"인 <동화처럼>에 대해 평범한 남녀가 두 번 이혼하고 세 번 결혼하는 우여곡절을 통해 어른들을 위한 "현대판 동화로 아름답게 완성"되었다고 평한다.
 

 

 

 

 

도시적 일상과 개인의 내면화 등이 주를 이루고 있는 한국소설에 '생태소설'이라는 장르를 일궈가고 있는 소설가 김영래. 김영래 작가는 등단 이후 줄곧 멸종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멸종의 연대기'를 온몸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소설 <오아후오오>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생태소설이다.
 

 

 

 

<악취미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의 작가 김도언의 첫 산문집. 어떤 외부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 한 작가의 내성적인 목소리로 씌어진 일기를 묶었다. 김도언은 6년 전부터 꾸준하게 일기를 써오고 있는데, 그 분량이 3,600매에 달한다고 한다. 그 중 작가가 직접 추려낸 1,000매 분량의 일기가 시간의 역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흠 잡을 데 없는 문장력을 지닌 스타일리스트', '가장 정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평가받아온 고종석의 장편소설. <독고준>은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미처 끝내지 못한 '독고준 3부작'의 완결판이다. 또한 '독고준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이면서 또한 독고준과 그의 딸 독고원의 관념과 생활을 그린 독립적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16권은 "한음파"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는 네 명의 젊은이들 박종근, 이정훈, 백승엽, 장혁조 각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1년 잠정적인 휴식에 들어가 2007년 다시 부활하기까지 6년 동안의 공백을 겪었던 한음파의 멤버들은 결국 음악이라는 끈을 놓지 못했던 과거의 시간들을 털어놓는다. 

 

 

 

 

이종호의 본격 공포테인먼트 소설. 귀사리(鬼思里)라는 마을을 통해 세상으로 뛰어나온 귀신들을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다. 귀신만의 이야기라기보다 인간이었을 때의 그들, 즉 악의 유혹 앞에 약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39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아웃>, <아임 소리 마마>의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데뷔작이다. '여성 작가가 창조한 여성 탐정이 활약하는 하드보일드'라는 문학사적 의의에 빛나는 작품으로, 인간 내면의 비열한 본성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남성 작가의 전유물로 여겨진 하드보일드 장르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격찬을 받았다.

 

 

 

 

시골 청년 산시로가 대학에 들어와 겪게 되는 청춘의 사랑, 비애, 방황 등을 그린 작품이다. 교편을 잡던 나쓰메 소세키가 마흔 살이 되던 1907년 아사히 신문사의 전속 작가로 입사하여 본격적인 작가 활동에 들어선 지 1년 만에 쓴 소설로, 그에게는 세 번째 소설에 해당한다.

 

 

 

 

루쉰, 라오서와 함께 중국 3대 문호로 꼽히는 바진의 마지막 장편소설. 태평양 전쟁의 여파로 아시아 전역이 포화 속에 잠긴 1940년대의 중국. 대외적으로는 전쟁, 대내적으로는 구습과 신문화의 대립으로 격동하던 당시 중국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냈다. 시시각각 변하는 중국의 모습을 한 지식인 가정에 빗대어 그려낸 작품.

 

 

 

 

작가 자신의 아편 체험을 자서전풍으로 쓴 작품으로, 학생 시절의 일화, 아편을 시작하게 된 경위, 아편의 쾌락과 고통, 아편의 남용에 따르는 무서운 환상, 아편을 줄이려는 노력 등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에드거 앨런 포 상 수상작.
 

 

 

 

 

 

 

철학과 대중문화의 만남을 꾀한 책. 부제에 나오는 필로소페인은 ‘철학하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표현이다. 학습으로 철학하기가 아닌 ‘춤추듯 철학하기’를 드러내고자 함이다. 광고, 문자,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의 7분야에서 펼쳐지는 총 64개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말한 ‘필로소페인’이 어떤 것인지 체감하게 될 것이다.
 

 

 

 

  

예술의 꿈을 얻게 한 시인 김수영, 우리 디자인의 정체성을 일깨워 준 단재 신채호 선생을 비롯하여 정병규, 김상락, 안상수 등 여러 디자이너와 교육자, 시인, 사상가들의 생각이 들어 있는 담론, 비평, 전시, 논문, 기록들과 함께 사유하는 사람, 생각의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권혁수의 생각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인디자인 사용자들에게 꼭 필요한 인디자인 입문서. 초보뿐 아니라 이미 Quark을 사용하던 디자이너들이 이미지를 통해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설명한 책이다. 실무에서 직접 인디자인을 쓰며 갈고 닦은 필자의 노하우를 담아서 누구나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인디자인의 기초과정을 담았으며 실전예제는 출판사 홈페이지에 연재될 예정이다.

사용자와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맺는 물건을 디자인하여 곁에 오래 머무르게 하면 소비와 쓰레기는 줄어든다. 이것이 바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디자이너들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굿디자인의 조건이다. 이 책에서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소비자와 제품이 이루는 공감대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디자인 전략을 제시한다.
 

 

 

 

 

1979년 TV에서 방영되며 많은 인기를 누린 [기동전사 건담]. [기동전사 건담]의 인기에 힘입어 1985년부터 1986년까지 후속작으로 [기동전사 Z 건담]이 TV판으로 방영, 우주세기 건담 스토리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 극장판이 1988년 방영되었다. 이 책은 '역습의 샤아'의 12년 후 스토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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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6, 종합 리스트.]
: 엄청 오랜만에 작성하는 리스트. 몇 가지 더 추가할 예정이고, 간간이 덧붙임을 삽입할 예정입니다. :) 

 

『구운몽 다시 읽기』는 『구운몽』에 국한된 작품 해설·연구서처럼 보이지만, 실상 고전소설 전반에 접근하는 입체적인 관점들을 제시하는 안내서이다. ‘구운몽’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고전장편소설의 형성 과정, 그리고 소설을 둘러싼 17세기 조선 사회와 동아시아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로부터 도출된 키워드들은 우리 시대의 문제로 확장된다. 10여 년간 『구운몽』을 구심점으로 한국 고전소설을 연구해온 저자의 내공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 학교 다닐 적에 오히려 지금보다 더 고전을 즐겨 읽고, 나름대로 해석을 가하며 함께 했던 것 같다. 요사이는 다른 할 일이 많다거나 밖에 나가 있을 때가 많아서, 예전보다 집중을 많이 못하는 것 같다. 반성하면서, 이 계기로 다시금 리뷰에 몰두해보자 싶다. :)

 

시인 '정지용'에 대한 박태상 교수의 학술연구서. 저자는 그동안 충북 옥천의 지역축제인 '지용제'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지용제'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지용문학포럼'에서 줄기차게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여 소개했다. 이 책은 지용문학포럼에서 그동안 발표했던 논문들과 새롭게 집필한 논문 등으로 구성되었다.

1부 '정지용은 왜 불안했는가'에는 '정지용과 청록파 시인들'과 '문장에 발표한 정지용 한적시의 특성'을, 2부 '정지용은 무엇을 지향했는가'에는 '정지용과 문장파 근대미술가들'과 '한국문화사의 관점에서 본 정지용'을 실었다. 3부 '정지용은 왜 항상 새로운 것에 집착했는가'에는 '문장과 정지용'을, 4부 '북한에서 정지용은 부활했는가'에는 '북한문학사에서의 정지용'을 수록하였다.
: 조만간 구입해서, [정지용 전집]과 나란히 진열(;)할 것에 궁리 중이다. 교과서에 실린 시를 거듭 풀어내면서, 아련한 향수에 젖거나 그리운 영상을 만들어 푸근함을 불러왔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10년이 지나도, 더 많은 세월이 흘러도 ‘시의 위안’은 현재진행형이다. 

 

시의 참맛은 비유와 함께 불가시적인 세계를 참신한 가시적 세계로 드러내는 데 있다. 감 춤과 드러냄의 미학, 그런 점에서 김수지 시에 드러난 정신의 깊이와 감성의 촉수는 남다르다. `봉숭아 꽃물′에 견줄 만큼 숨결은 찐하고 뜨거우며, 나아가 현실을 보는 감각도 치밀하다. 허지만, 희로애락에 반응하는 마음의 촉수만은 드라이플라워처럼 매우 여리다. 그런 가운데 남다른 동양적 정신의 깊이로, 미적 감동을 생명적 상상력으로 형상화시킨 점에 주목한다. 이런 점에서 김수지 시의 아우라(aura)가 남다르고, 그의 시의 존재 이유가 충분하다.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때조차 그들은 문제적이다. 현재에 속하지만 존재감을 부정당한 것들, 그들의 언어는 발화되는 동시에 ‘소리’가 된다. 그들은 ‘안’에 있지만 항상 ‘바깥’이라고 간주된다. 아니, 유령은 ‘안’에 있는 ‘바깥’의 다른 이름이다. 유령은 결코 무기력하지 않다. 그들은 쉼 없이 떠들어댐으로써 권력의 주파수를 교란하고 새로운 언어를 생산한다. 문학이란 이 언어가 특정한 스타일로 배열된 것이고, 비평이란 이 언어와 더불어 우리 시대의 관념적인 것을 구성하는 행위가 아닐까. 우리는 문학이 유령이 된 시대를 살고 있다.
 

 

 

 

쉬즈모의 시 세계는 종종 1925년을 기준으로 두 가지 특징으로 나뉘어 언급되곤 한다. 그의 초기 작품들에 이상 추구에 대한 열정과 낙관적인 희망이 넘치고 있다면, 1925년 이후의 작품에서는 삶에 대한 비관과 회의, 사랑에 대한 절망이 주조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단순 신앙’, 즉 ‘사랑’, ‘자유’,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았다. 그의 이상은 순수했지만 현실 세계는 너무 참혹했기에 그의 이상주의는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문학이 삶과 유리될 수 없다고 여기며, ‘삶’과 ‘예술’ 사이의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스스로 “아마도 나는 천성적으로 감성적인 사람일 것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쉬즈모는 풍부한 상상력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자연의 소중함과 도시 문명의 폐해를 표현한 시인이었다.

 

 

포의 시는 외면적으로 보이는 현실보다는 외면을 떠난 내면, 현실을 떠난 환상과 이상, 보이지 않는 신성한 세계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암시성을 띠는 상징적인 시를 씀으로써 초현실적인 미의 분위기를 형성시켜 주었는데, 이는 우울하면서도 창의적인 포만의 독창적인 시 세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는 바로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연결되어 낭만적 성향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이처럼 환상과 이상과 아름다움에 몰두했던 포는 실용적이고 물질적인 것보다는 심미적인 것을 더 좋아했다. 그가 진정으로 다룬 것은 인간 내면의 병든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화려하게 발전하는 미국의 물질적인 삶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 영혼의 악몽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에는, 합리적인 것 같아 보이는 인간 삶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인간의 광기 어린 암담한 내면과, 죽음의 무덤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인간의 의식이 암시되어 있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한 개인의 비뚤어진 욕망이 어떻게 사회악을 낳고, 비극적인 역사로 이어지는지를 절묘하게 다룬다. 부와 권력에 집착했던 콘셉시온 부인, 어머니의 욕심 때문에 일생이 일그러졌음에도 역시 같은 전철을 밟는 막스 몬로이, 서로를 한 몸처럼 아끼는 두 형제 여호수아와 예리고, 그리고 부친살해라는 위험한 욕망을 품은 채 살아가는 또 다른 형제 미겔 아파레시도….

이들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역사를 지배하는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숙명적인 비극은 대물림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작가는 그 배경에 멕시코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치밀하게 배치해 사회적 부패와 인간 본성 사이의 단단한 고리를 풀어낸다. 멕시코 현대사를 아우르며 근대화의 그림자를 신랄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1926년 출간된 『위폐범들』은 앙드레 지드가 자신의 유일무이한 '소설'이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담고자 한 작품이다.
자신이 사생아임을 우연히 알고 집을 나온 혈기왕성한 청년 베르나르, 온화하지만 세상과 마주보는 것이 서툴렀던 문학소년 올리비에, '글쓰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식인 에두아르,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일화가 얽히고설킨 이 '소설'은 마치 위조화폐처럼 거짓된 모습으로 거짓 세계 속을 표류하는 이들이 진정한 자아와 삶의 의미를 발견해 가는 여정을 그린다.
『위폐범들』에서 앙드레 지드는 제도와 인습에 대한 반항, 동성애, 성실성, 선과 악 문제, 삶의 양식 등, 너무나 “지드적인” 주제를 통해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과 자신에게 주어진 불합리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함 ‘삶’이며 눈부신 ‘내적 성장’임을 보여 준다.

 

정미경이 오 년 만에 새롭게 써낸 장편소설. "너를 사로잡고 있는 새는 무엇인가." 이 존재론적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작가의 손목을 낚아채 사막의 어느 뒷골목으로 끌고 갔고, 작가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다시 우리에게 저물녘 햇빛과도 같은 그 긴 손을 내민다.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화들, 얼핏 보면 어린아이들의 유치한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는 무의미해 보이는 대화들에 있다. 예를 들면, 슬럼이 무슨 뜻이냐? 가마라고 계속 발음해 보면 그 가마가 그 가마가 아닌 것 같고 뭔가 이상하다, 라고 의심하는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을 함으로써 진짜 의미, 곧 진실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각자 쓸쓸한 존재들이다. 등단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인간이라는 존재의 ‘쓸쓸함’을 작품 속에서 표현해 왔다. 작가는 이 작품의 집필 기간 동안 “안에서 바깥을 응시하고 있다가, 이제 손잡는 법을 배워 가는 중인 것 같다. 짧은 순간이라도 사람 사이에 연대가 발생할 수 있고, 그것이 아주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라고 밝혔다.

 

도시의 한 구석에서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한 외로운 인물들이 필사적으로 피난처를 찾는 모습을 그린 작품.
복수의 인물들을 옴니버스 영화처럼 교차시키면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놓아서는 안 되는 것들인 사랑과 욕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 책에서 야구로 만들어진 주인공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야구 때문에 맺어지고 헤어진 친구를 이야기하고, 야구로 인해 갈등을 겪은 가족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야구가 가르쳐준 인생을 이야기한다.
 

 

 

 

 

 

전쟁 당시 발매된 신보 음반 자료들에는 포화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가요인들의 창작열과 노래로 희망을 전하고자 했던 가요인들의 의지가 엿보인다. 맨땅에 천막을 치고 이뤄졌던 공연 사진에서는 위기 속에서 더욱 신명을 냈던 한국인들의 기질을 보여주며, 후방에서 최전선까지 노래 하나로 전국을 누빈 군번없는 용사, 군예대의 미소 속에는 극한 상황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더욱 치열하게 노래했던 당시 연예인들의 패기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60년 전에 이 땅에서 일어난 전쟁의 이면에 존재했던 대중문화의 의미와 역할이 재조명해볼 수 있다. 역사는 사건을 기록하지만 문화는 그 사건을 극복해나간 대중의 정신을 기억한다. 이 책은 한국전쟁이라는 위기를 겪어낸 우리의 문화적 저력을 증언하고 있다.
 

그는 하나의 주제를 잡아 짧게는 2~3년에서 길게는 2~30년씩 붙잡고 씨름한다.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물의 모습을 조용히 묵묵히 관찰하는 것이다. 또한 대상물을 포착할 때에도 한 면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찍고 뒤에서 찍고 누워서 올려다보며 찍고 멀찍이 내려다보며 찍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주제를 바라보는 해석이 풍부해지고, 그 속에 ‘배병우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사진 세계를 구현한다. 이러한 배병우의 집념은 그의 작품 속 소나무, 바다, 오름에 그대로 투영되어, 단단하지만 속 깊은 따뜻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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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 종합 리스트.] 

: 5월 마지막 주부터 이사 준비를 했던 터라 서재 관리에 소홀했네요.
잠깐 짬을 내어 슬쩍 들러서 리스트만 살짝 올리고 사라져야 합니다. (;)
14일 이후부터 본격 활동 시작합니다.
6월, 힘차게 달리자고요! (제 생일이 있어, 제가 좋아하는 달입니다. 속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교육사업국에서 정보지 <시민교육> 2호를 발간했다. 이번 호에서는 ‘지역과 시민교육’이라는 주제로 지역 공동체 형성을 위한 다양한 교육활동들을 소개했고, 특집으로는 자기계발적인 교육 중 치유와 관련된 시민교육 사례를 다루고 있다.

 

 

 

 

 

2010년은 가히 '역사의 해'라 불릴 만할 정도로 한국근현대사에서 획을 긋는 사건들의 주년이 계속되고 있다. 일제강점 100년, 한국전쟁 60주년, 4·19 50주년, 5·18광주민중항쟁 30주년이 겹쳤다. 「역사비평」은 지난 90호의 일제강점 100년 특집에 이어, 이번 91호 (2010년 여름)에서 한국전쟁 60주년 대특집을 기획했다.
 

 

 

 

 

 

<문화과학 62호>의 특집은 ‘세대의 문화정치학’이다. 세대 변동을 포함한 한국 현대사회의 역동성을 제대로 고찰하려면 지난 50년 가까이 진행된 “압축적 근대화”가 야기한 격렬한 사회적 갈등을 다양한 형태로 급변해온 세대교체 문제와 연결하여 고찰해야만 한다고 본다. 62호에서 제기한 가설과 의제를 통해 새로운 문화정치적 논쟁이 활성화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진보의 이념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면서, 체계의 카오스적 요동을 돌파할 능동적 행위주체들의 새로운 실험적 네트워킹이 촉진되기를 기대해본다.

 

 

 

 

2010년 여름호의 특집 주제는 팔레스타인 문학 특집을 준비했다. 권두에세이「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를 시작으로 좌담「팔레스타인 문학을 빛낸 별들」에서는 문인 4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과 생애를 짚어보면서 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과 팔레스타인 문학에 끼친 영향과 함께 팔레스타인 현대문학사를 쉽게 그려볼 수 있도록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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