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400. 역마 (김동리)
첫 두어 쪽을 읽고, 노인의 서른 여섯 해 전에 하룻밤, 이야기를 보는 순간, 메밀꽃 필 무렵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이후에 벌어지는 성기와 계연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가 설레지 않았다. 아무렴, 김동리 소설에서 근친상간을 발전시킬 리가 없지. 은근히 아쉽기도 했다. 젊은 느티나무, 를 읽다가 울어버린 나의 중2 시절을 떠올리면 못 이룰 사랑에 가슴 아파야 했는데, 이 소설은 그러기엔 참신하지도 않고 그저 그랬기 때문이다. 광복이 되고 난리가 났는데, 화개장터에는 조영남의 노래만 커다랗게 울려퍼지고 있다.
김동리 작가의 단편을 읽으며 불편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소설 소재의 친숙함이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 의미 때문이었다. 황석영 작가의 설명이 간결하게 나의 불편함을 이해시켜 주었다. 많은 작가들이 월북한 이후, 김동리는 '남한 정부의 이념적 동반자로서 말년까지 두 차례의 군사정권과 함께 했다.' (197)
누군가 `현실과 정치에 전혀 관심 없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또다른 `정치적 견해`를 말하는 함정에 빠진다. (황석영 해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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