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책이고, 인격은 시간을 따라 일정한 폭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두루마리 같은 겁니다. 아니면 자, 일반 책이라고해도 페이지는 순서대로 돼 있잖아요? 책 속에 글자가 아무리 많아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외줄로 쭉 읽어 나가죠? 쓸 때도 마찬가집니다. 그런 걸 선형성이라고 하거든요. 한 가닥 실이 좌우로 쭉 직조해 나가는 태피스트리에 비유해도 되겠습니다. 시간을따라 감상하는 음악이나요. 아무튼 인간이란 출생부터 죽음까지이어진 한 장의 빈 두루마리, 폭이 그리 넓지도 않은 두루마리 같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 __ 이지연 <역표절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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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16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듯 모를듯한 말이네요. ㅎㅎ 오늘은 화요일 아직 주말이 멀었지만 태피스트리를 짜는거든 뭐든 일단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부만두님도 이번 주 화이팅 힘 내시고 계속 좋은 책, 좋은 서평 주세요. ^^

유부만두 2021-03-16 17:06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알찬 화요일 태피스트리 직조 중이시군요. 전 망한 거 같아요. 그런데 역방향으로 올을 풀고 다시 짤 수도 없대서 그냥 저냥 계속 나아가야 하고요. ^^;;;;
 



격동과 변환의 중대한 기로에서, 우리는 변화의 물결이 우리 자신과 우리 인생의 친숙한 부분들을 휩쓸어갈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새로운 물결이 어떤 생소한 기쁨과 만족, 어떤 미지의 존재를 가져다주게 될지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의 상상력은 경험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지의 존재가 일깨우는 파충류적 공포심은 일단 눈을 뜨기만 하면 흉포하게 날뛴다. [...] 혁명가가 된다는 것은 곧 상상력을 펼친다는 뜻이다. 친숙한 것의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질서를 머릿속에 그리며, 새로운 질서 안에서 얻게 될 것이 잃어버릴 것이 주는 잘못된 위안을 뒤덮고도 남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일이다. - P314

<종의 기원>은 자연선택설을 주장하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을 전복한다. 바로 개체의 소멸을 통해 종이 생존하고 진화하게 된다는 가설이다. 다윈은 죽음이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며 생득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암시한다. 죽음은 공평한 우주 법칙의 일부이다. - P378

탤벗은 자신의 위업에 기뻐했지만 박식한 정신이 곧잘 빠지곤 하는 만성 질환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다른 일에 열중하게 된 것이다. - P387

사진관에서 가장 눈에 띄게 광고하던 은판 사진은 ‘갓난아기와 어린이의 사진‘과 ‘고인의 초상사진‘이었다. 빛과 그림자의 단명성을 둘러싼 과학적 고투에서 탄생한 사진은 존재 자체의 일시성과 겨루는 예술로 성장하게 되었다. - P393

이제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아주 오래된 시간을 배경 삼아 마치 깜박이는 찰나 같은 우리 일생을 생각하니 불현듯 우리 존재의 덧없음이 우리를 아프게 찌른다. 우리는 혼돈과 엔트로피가 혼재하는 우주의 강물 위에서 아주 잠깐 섬을 이루었다가 다시 비존재를 향해 영원히 떠내려가는 존재일 뿐이다. - P403

우리 안의 모든 창조적인 힘과 수학적 계산과 사납게 날뛰는 사랑의 감정은 수천 년에 걸쳐 진화해온 신경조직을 따라 1초에 24미터의 속도로 진동한다. 이 사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정신의 작용 또한 일련의 전기 자극일 뿐이다. - P483

그날이 오기 전까지 한번 창조된 것은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한번 심어진 씨앗은 몇 세대, 몇 세기, 몇 문명의 시간이 지난 후, 집단과 나라와 대륙을 가로지르고 이주하여 꽃을 피울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날뛰는 전쟁 중의 평화 속에서, 잠재적 재능이 숨어있는 빈곤과 무명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얻지 못한 많은 것을 가지고, 난파된 사랑의 잔해 속에서 살아가고 죽는다.
나도 죽으리라.
당신도 죽으리라.
우주적 관점에서 아주 잠깐 자아의 그림자 주위로 뭉쳤던 원자들은 우리를 만들어 낸 바다로 돌아가게 되리라.
우리 중에 살아남게 될 것은 기슭 없는 씨앗과 우주먼지 뿐이리라. - P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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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플러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잊곤 하는 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고 체계적인 노력을 통해 그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낼 때 우리가 지닌 가능성의 범위가 확장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있습니다. 낭만으로 시작해서 현실로 지어나가는 능력이죠." - P27

"삶에 별빛을 섞으십시오." 마리아 [미첼은] 훗날 여성 천문학자들을 위한 첫 수업이 열린 배서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말한다. "그러면 하찮은 일에 마음이 괴롭지 않을 겁니다." - P56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은 이런 시를 쓴다.

이 세계에서 남자 기사도는 소멸되었지만
여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사로서 편력을 이어나간다
세르반테스가 좀더 위대했더라면
돈키호테의 Don을 Dona로 썼을텐데 - P72

바이런은 수학에 뛰어난 남작 부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 짧고 격렬한 결혼 생활이 끝내 무너져버리고 만 후 처음 자신을 매혹했던 바로 그 특징들을 못 견딜 정도로 불쾌하게 여기게 되었다. 한때 자신이 "평행사변형 공주"라고 숭배했던 여성을 이제 냉정하고 계산적인 "수학계의 메데이아"라고 비꼬았다. - P130

"파랗다"라는 것은 "파란 양말 bluestocking"이서 따온 표현으로 당시 지적인 여성, 정신의 삶을 누리기 위해 여성성과 가정을 희생했다고 여겨지는 여성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말이었다. [...] 얄궂게도 "파란 양말"이라는 용어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벌인 괴짜 행각 때문에 처음 만들어졌다. [...] 한 세기 전 멋쟁이 식물학자 밴저민 스틸링풀릿이 지나치게 눈에 띄는 파란 털양말을 신고 나타났[고] 그의 옷차림에서 배움에 대한 진정한 열정이 아니라 허영에 빠져 지적인 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 P136

괴테는 화학에 기반을 두고 자신의 소설 <친화력>을 집필했다. 이 소설에서 괴테는 성적인 화학 물질이 개념을 개척하면서 억누를 수 없는 화학적 ‘친화력‘이 연애감정을 명령한다고 제안했다. - P182

우리는 자신의 본성에 내재한 사소한 약점, 자아상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때 가장 냉혹해진다. 남을 탓하는 일은 나를 탓하는 일보다 언제나 쉽기 때문이다. - P253

몇 년 전 다윈이 진화론의 여명에 불을 지핀 후로 female이라는 단어는 성 생식과 관련된 동물적인 어감을 품게 되었다. 이 언외적 의미를 일부 여성은 비인간적이라고 받아들였고, 일부 남성은 일부러 비인간적인 뜻을 담아 사용했다. 특히 여성 노예를 가리켜 female이라고 부르는 식이었다. - P275

삶의 항로에서 키를 잡고 있을 때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인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동시에 기회라는 변수 안에서 개인적인 선택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 P280

모든 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우리의 환상을 가장 크게 배신하는 것은, 상실의 가장 날카로운 비수를 곶아 넣는 것은 마지막 순간을 돌이켜 생각하는 일이다. [...] 그 순간에는 절대 알지 못했던,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순간들. 훗날 돌이켜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질 듯한 충격을 받게 될 마지막 순간들이다. - P287

에밀리 디킨슨은 ‘마음에는 문이 여러 개 있지‘라고 노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의 문 대부분을 편견으로 걸어 잠근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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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3-07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첫 수업에서 “삶에 별빛을 섞으십시오.” 이런 말 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유부만두 2021-03-07 20:02   좋아요 1 | URL
그렇죠! 천문학을 공부하는 첫 수업에 멋지게 어울리는 말이에요.

난티나무 2021-03-07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사야 할까 봐요...

유부만두 2021-03-07 20:03   좋아요 0 | URL
정말 추천합니다. 프랑스 얘기도 나와요!

바람돌이 2021-03-07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두께가...
헉헉거리면서 읽고 있습니다
들고 읽었더니 손목 관절 아파요. ㅠㅠ

유부만두 2021-03-07 20:03   좋아요 0 | URL
전 탁자에, 때론 배 위에 올려 두고 묵직함을 느끼면서 읽었어요. ^^;;;
 

"풀러는 석탄 광산의 입구에서 화차를 타고 안으로 내려가는 경험을 해본 뒤에 광부들과 그 '가엾은 말들'이 처한 비인간적인 작업 환경에 분노했다. 말들은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한 채 비좁고 갑갑한 지하 마구간, '어두컴컴하고 깊은 곳'에 억류되어 있었다." (255) 










"과연 죽은 말은 트롱페트가 분명했다. 녀석은 갱으로 내려간 뒤로 그곳 삶에 결코 길들지 못했다. 마치 다시는 볼 수 없는 햇빛을 향한 그리움에 시달리듯 일할 의욕을 잃고 언제나 우울해했다. 탄광에서 일하는 말들 중 최고참인 바타유는 제 옆구리로 녀석의 몸을 다정하게 비벼대거나 목덜미를 자근자근 깨물어주기도 했다. 십 년을 땅 속에서 보내며 체득한 체념의 기운을 동료에게 불어넣어 주려는 것처럼"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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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청소년>

비밀의 화원, 프랜시스 호즈슨/공경희 역, 시공주니어, 2019


<만화 그래픽노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정재곤 역, 열화당, 2007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정재곤 역, 열화당, 200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정재곤 역, 열화당, 2014

빙과 1-10, 요네자와 호네부 원작, 니시야 후토시, 대원씨아이, 2012-2020 


<비문학>

책의 말들, 김겨울, 유유, 2021

진리의 발견, 마리아 포포바/지여울 역, 다른, 2020


<문학>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김선형 역, 살림, 2019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권상미 역, 문학동네, 2010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 (양장), 마르셀 프루스트/이형식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201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마르셀 프루스트/김희영 역, 민음사, 2012

화재 감시원, 코니 윌리스/최용준 외 역, 아작, 2019 


<영화>

제인 오스틴 클럽 

오스틴랜드

빙과 

아무도 모른다 

비블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 (일드)

비블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 

말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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