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프루스트가 <되찾은 시간>에서 말하는 문학에 대한 인식을 찾아볼 수 있다고 앙쿠안 콩파뇽은 단언한다. 그것은 '내적인 책의 번역'으로서의 문학이란 개념으로 우리 마음속에 간직한 책을 각자 자기 고유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곧 문학이라는 견해다. (410)




[프루스트는] 병으로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명문 콩도르세 중고등학교를 거쳐 파리 대학에서 법학사와 문학사를 공부했고 아버지의 성화에 도서관 사서로 취직했지만 한 번도 근무하지 않은 채 대부분의 시간을 포부르생제르맹 귀족들의 살롱에서 보냈다. (411)



모든 것이 시간에 의해 변화하고 해체되는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로 현란하게 교차되는 세계에서, 고정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매일매일 사멸하던 자아는 이제 뜻하지 않은 기억의 힘으로 비로소 저 끔찍한 존재의 해체와 죽음이라는 시간의 궤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412)




생시몽이 루이 14세 시대 사회상을, 발자크가 왕정복고시대 사회상을 보여 주려 했다면 프루스트는 19세기 말 '벨 에포크' 시대 사회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그러나 19세기 문학이 보여주는 단순한 사회 재현이 아닌 외적 현실이 의식에 투영하는 '반사성'을 통해 재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발자크와 플로베르를 결합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413)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서구 문학사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하나는 프랑스적 전통인 라신과 프루스트로 이어지는 일종의 편집증 환자이자 질투하는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독일 낭만주으이 전통인 슈베르트와 슈만의 사랑하는 사람이다. 연인들의 행복한 결합이나 상호 이해와 믿음을 바탕으로하는 독일 낭만주의자들과 달리 프랑스적인 사랑은 질투와 부재의 동의어다. (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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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완네 집쪽으로” 3부는 이름, 장소, 기억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장소의 이름에서 그 곳들의 인상과 날씨, 색깔과 (상상과 기억의) 추억들, 더해서 이름의 철자와 발음에서 피어나는 풍성한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우리에게 여수나 부산이 어떤 특정한 시간의 날씨를 연상시키고 코로나 시기에도 제주도가 특별함을 갖고있는 것처럼.


부활절 방학 때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다가 그 찬란한 연상작용에 그만 흥분에 겨운 어린이 혹은 청소년 화자는 병이 나 버린다. (1부 침실에서 징징대던 아이보다 조금 자란 화자는 파리 집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민음사에선 열네 살 즈음으로 추정하지만 학교가 파하는 오후 3시에 하녀겸 보호자로 프랑수와즈가 데리러 가고 눈싸움과 술래잡기도 하는 걸 봐서는 더 어린 나이 같다.)햇볕 찬란한 이탈리아 여행은 취소되고 상심이 큰 화자는 보호자겸 감시원 프랑수와즈와 함께 샹젤리제 공원으로 운동 겸 산책에 나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다른 '이름'으로 흥분하게 되는데 바로 질베르트. 1부 콩브레에서 언뜻 보았던 그 드세보이던 아이다. 질베르트는 스스럼 없이 또래인 화자를 대하고, 실은 아주 친하게 군다. (눈을 뭉쳐서 목덜미에 넣고 막)


질베르트가 자길 좋아한다고 상상하고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노트에 수십번 수백번 적어보는 아이. 아마 이름 글자 획으로 사랑점을 쳤을지도 모르지. 맞아 질베르트는 날 좋아해! 나한테 마노 구슬도 사줬고! 내가 부탁한 책 (바로 그 베르고트 작가가 쓴 절.판.도.서.)도 구해줬어! 내 앞에선 날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고 했지만, 내일 아니면 모레엔 나한테 고백할거야! 라고 생각해보았자, 맘 속의 조용한 '여자 직조공'은 차분하게 관계의 실을 고르며 이야기 해준다. '응, 아니야. 걘 너한테 관심없음. 그냥 그 앤 용돈이 많고, 네가 그 구슬 앞에서 불쌍해 보였을 뿐임' 


프루스트는 2부의 스완이 꿈을 통해 둘로 나뉜 자아를 만들어 현실 파악을 하도록 도운 것처럼 3부에서는 어린 화자 속에 '여자 직조공'을 초대해 관계의 팩트폭격을 담당하게 한다. 그 덕에 어린 화자는 너무 심하게 질베르트에게 집착하지는 ....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 애가 참 남달라요. 하지만 그 시절을 (어른의 시간에 서서 어른인 화자가) 돌아볼 땐 안타깝고 불안하기만 했지 순간순간의 찬란함을 즐기지는 못했다. 불안과 기대를 번갈아 겪어내느라 그 어린 눈에는 즐거움의 티끌도 보이지 않았다. 질베르트의 고백과 편지를 상상할 시간에 그냥 뛰어놀지 그랬니. 그 아이가 어느 길로 올지 모르고 시간도 어림할 뿐이어서 그 구역 전체가, 그 오후 전체가 설렘으로 가득찬 어린왕자-여우 스러운 그 황금빛 설렘이 아깝기까지 하다. 


그래도 이번 이야기는 '이름'이 포인트. 인물들은 지명 뿐 아니라 이름을 아주 능숙하고 감각적으로 다룬다. 질베르트가 화자의 이름을 그 입 속에 넣어 발음해 줬을 때! 자신의 껍질이 벗겨지고 확실히 둘 사이의 뭔가를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 (변태 맞음) 그리고 질베르트의 이름이 그 애 앞으로 날아가 실체를 만나서 긍정해 줬듯이 화자가 그 애 이름을 종이 위에 적으면 어떤 약속을 만드는 것만 같았지. (직조공 언니 다시 왈, 응 아니야) 화자는 질베르트의 이름과 그애가 사는 동네 길 이름을 자꾸만 입에 올린다. 아버지가 (그 눈치 둔하신 양반이) 알아차리실 정도로.  
 

그런데 화자의 진짜 찬양은 실은 질베르트의 '사생활' 즉 그 부모를 향한다. 2부 '스완의 사랑'에서 채 다 펼치지 못한 변태의 모습이려나. 이 어린 화자는 스완씨를 그리고 스완 부인을 길이나 공원에서 기다리느라 불쌍한 프랑수와즈를 끌고 파리를 쏘다닌다. 스완씨를 자꾸 좋아하면서 그의 이름에 집착하고 그가 눈을 비비는 습관을 따라하고 질베르트를 향하는 고심은 스완을 본뜬 면이 완연하다. 아, 심지어 스완의 대머리까지 닮고싶다고 고백하는 화자라니. (너, 잘 생각해봐라)

"그 스완이라는 이름이 [...] 이제 나에게는 전혀 새로운 단어였다." 
"내가 그 단어를 분해하여 하나 하나를 읽었고, 나에게는 그 철자가 하나의 놀라운 현상이었다." (펭귄1, 634-5)

스완은 이미 1부에서 화자에게 저녁시간의 고통을 안겨준 인물이지만 이제는 그 별나고 신비로운 사랑이야기와 우아한 차림새와 질베르트까지 더해서 '역사적 위인' 같이 보인다. 스완 부인은 아예 여왕 같다. 화자의 묘사는 어느새 어른의 시선 비중이 커져서 스완 부인 오데트의 과한 복장과 한물간 미모와 추문을 언급하고 있지만 소년이 어색하고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를 하자 (아직 소년을 알지 못했던 - 하지만 그 예전 알베르트 할아버지 댁에서 스친 적이 있었는데) 스완 부인은 공원의 거위에게 빵 조각을 던지듯 관심과 미소 한 조각을 적선했다. 

그리고 불현듯, 컷, 하는 감독의 소리와 함께, '지금'으로 돌아온 작가의 시간. 책을 읽으면서 단락은 넓은 공백으로 바뀌고 조명마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그 이름들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다음 볼로뉴 숲을 찾은 화자. 11월 오전, 아직 다가오지 않은 가을을 즐기고 싶었는데 실은 어떤 그리움, 그 장소,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우아한 여인들과 신사들의 마차 대신 자동차가, 심플한 모자 대신 과장된 과일 바구니 같은 머리쓰개, 더해서 남자들의 상스러운 민머리가 참담할 따름이다. 이런 변화라니. 내가 너무 늙은건가. 한탄하는 화자의 문장에 겹치는 내 심정, 내 맘 속의 직조공은 꼼꼼하게 알려주겠지, 프루스트가 독자 너님이랑 동갑이었음. 세월은 가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부질없는 시도라도, 집요하게 기억해내서 하나하나 적어내려가 먼 훗날 독자들이 한줄 한줄 읽어 가는 것이 하나의 답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지.
  

이렇게 갑작스런 장면과 시간 변화는 그 다음 이야기를 예고하고 있다. 
책은 준비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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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2-21 15: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이뽀요! 😍😍😍
전 읽지 않고 감탄만 하는 걸로 할께요!

유부만두 2021-02-21 16:30   좋아요 1 | URL
예쁘지요? 애초에 저도 저 표지에 홀려서 이 대장정을 시작했어요.

psyche 2021-02-26 04:04   좋아요 1 | URL
저도 단발머리님께 동의 ㅎㅎ

유부만두 2021-02-27 21:07   좋아요 0 | URL
격한 감탄이 독서로 이어질지도 몰라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데트의 얼굴에서 보티첼리를 보는 순간, 스완의 사랑이 시작되었을까, 카틀레야 난초로 둘 만의 비밀 암호를 정하고 피아노 소나타에 전율하는 순간일까. 그걸 사랑이라고 그 말고 누가 부를까. 친구 amie도 연인amie도 바로 그녀 '상스럽고 저속하며 무식한' 오데트만을 가리킨다면. 하지만 세력 관계는 뒤집어져서 '무조건' 달려오겠다던 오데트는 이런 저런 사유로 공공 장소에서 동행을 피하고 베르뒤랭 부부의 연회에서 스완이 미움을 받아 더이상 초대되지 않는다. 돈과 보석을 그녀에게 보내면서도 주인은 오데트라고 여기는 스완은 바로 그녀의 물주. 그의 돈으로 가지는 '쾌락'과 이 속물성이 그는 편안하다.


스완이 없는 장소, 모르는 시간에 오데트가 누구와 무얼 하는지 스완은 불안하도록 궁금하고 계속 자신의 부재를 지우려 애쓰지만 성공하지는 못한다. 갑자기 애인 집에 찾아가거나,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쓴 편지를 훔쳐 읽거나, 그녀의 과거사를 주변 사람들에게 묻거나, 아, 차라리 그녀가 사고라도 당해서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란다. 침략 전쟁에서 소피아 성당을 지켰던 마호메트 2세가 자신의 총애는 사랑에 겨워 죽여버렸다지요? 그의 비틀린 심장이 스완 가까이에 있었다. 그렇다. 변태의 사랑과 집착은 범죄가 된다. 우리는 이미 많은 소설과 현실에서 그 공식을 확인했다. 바로 다음 줄에 프루스트는, 아니 스완은 반성하고 취소하지만 그가 겪는 사랑은 시작 만큼이나 그 전개도 유별나다. 그런데 읽으면서 뭔가 알 것만 같은데, 이 느낌, 뭘까. 여느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 


그가 불안한 마음에 꾸는 꿈마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거나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인데 그 곳에서 그녀는 멀어져간다. 그런데 그 꿈 안에는 울고 있는 자기 자신, 젊은 스완이 비틀거리고 있어서 꿈꾸는 주체 스완은 위로의 손을 내밀기도 한다. 스완은 오데트에게 밀당을 시도해 보지만 그 역시 통하지 않는데, 계산을 특별히 하지 않는 오데트에게 남자들이란 한결 같이 욕망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라서. 몇번이나 이별을 하겠노라, 사랑의 끝은 내가 맺겠노라, 스완은 결심하지만 쉽지 않다. 그는 사랑에서 칼 자루 대신 칼날을 쥐고 있었다.


오데트의 추문, 과거, 그중의 최고는 졸라의 '나나'에서도 있었던 다른 여인들과의 관계다.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매달리고 윽박지르고 따지다가 들은 답에 심장은 칼로 서억 베인 것만 같다. 하지만 사랑은 불치의 병이라 완치를 바라고 사랑을 떼어내려다가는 스완이 죽고말지. 계속 징징 울다 희망에 차다, 조울의 시소를 탄다. 독자는 흩뿌려진 참깨알 같은 단어들을 줍다보면 눈이 아프다. 스완은 병자 비유와 외과의 수술 비교를 반복한다. 나도 이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이 망가져도 아주 조그만 부분, 상류층 사교계의 자신의 아이덴티티는 수의처럼 마지막 자존심으로 그의 시체를 (그는 이제 툭하면 죽는 상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 낭만적 비통함을 하는 인물이 사십대, 이마가 좀 벗겨지고 아주 잘생기지는 않은 돈많은 아저씨다) 감쌀 것이다. 이전의 자신을 알고 아껴주는 사람들, 콩브레의 이웃 - 1부의 그 변태 소년의 나름 이상하지만 따뜻한 가족 - 이 그래서 더욱 소중할 수 밖에 없다. 콩브레가 소설의 화자에게 기억의 향기와 그 두근거리는 '첫 글쓰기'의 감동을 함께 했다면 스완에겐 사랑이라는 병에 걸리기 이전, 그 정상이었던 건강체임을 증명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의 병에 걸리지 않았어도 난봉꾼이었다) 그래, 가자! 그곳 콩브레로! 


하지만 만약, 사랑이 치유된다면? 사랑이 끝나는 걸 스완은 용기있게 맞서서 쳐다볼 준비가 아직은 (몇백 쪽에 걸쳐서) 되지 않았다. 아직. 아직도. 


어쩌면 허무가 진실이며, 우리 모든 꿈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 꿈에 비해 존재하는 이런 악절이나 개념 들도 아무것도 아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죽어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우리 운명을 뒤따를 이 성스러운 포로들이 볼모로 있다. 그래서 이포로들과 함께라면 죽음도 덜 비참하고, 덜 치욕스럽고, 어쩌면 덜 가능해지리라. (민음2, 277)


가슴은 썩어 문드러져서 오데트는 친구 샤를뤼스 ('약간 정신 나간 사람'같고 '신경증 환자' 같고 '최악의 인간' 이라고 묘사한 프루스트의 친구 몽테스큐 백작의 소설 속 인물, 그래서 그 시대의 '댄디' 몽테스큐 백작이 소설화 사실을 알고 프루스트와 절교 했다고)와 그녀의 재단사가 산다는 허름한 동네 서민 주거층 6층의 냄새나는 복도를 걸을 동안 스완은 공작부인의 파아뤼에 간다. 그곳에서 만나는 정복 입은 하인들, 외알 안경 쓴 상류층 남자들과 음악에 맞추어 자신의 감동 혹은 속물 근성을 시스루로 드러내는 여인들을 돌아본다. 생생한 묘사에 한 번 가보지 못한 그 파아뤼에 독자 나도 서 있는 것만 같은 건 역시, 나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아 지금 다시 들리는 자신의 러브테마곡 소나타. 과거 사랑의 기억과 아픔에 전율하는 스완. 그녀가 주었던 하얀 국화꽃 (이 꽃이 한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완은 몰랐지)과 편지들을 넣어둔 마음 속 서랍을 괴롭게 다시 열어버리는 그 음악. 그래, 나쁜건 오데트야! 더 나쁜건 나의 "기억력"이야. 이 망할 생명력으로 생생하게 과거를 불러오다니! 


“Il admirait la terrible puissance recréatrice de sa mémoire.” 

 기억의 무서운 재창조력(민음) 자기 기억의 무시무시한 재생능력(펭귄)


아, 그러니까 오데트, 당신은 나와 사귀면서 다른 남자, 특히 다른 여자랑 쾌락을 맛보았소? 솔직하게 말해주시오. 그래야 내가 살겠...다지만 그가 원하는 진실은 포주의 진실이라고 프루스트는 잔인하게 적어두었다. 그리고 쓸쓸하게 찾아가는 사창가에서 스완이 아주 어린 창녀에게 듣는 말은 "이렇게 당신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아요" 어쩐지 오데트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알겠나요, 신사 양반? 그래, 당신의 사랑은? 


퉤, 하고 침 뱉는듯 내던지는 스완의 마지막 대사는 프루스트의 펜 아래 농락 당하는 인물이 19세기 벨에포크의 변태 부르주아 중년남 스완 뿐 아니라 '속물'이 쓴 속물 이야기라서 진지한 소설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원고를 거절하려 했던 담당자 앙드레지드, 더해서 21세기 침침한 노안의 중년 아줌마도 포함된다. 두 번역본을 불어 GF판 1권과 번갈아 읽으면서 그 소소하고 잔잔하게 깔려있는 많은 오역을 만났고, 19세기에 이미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이 우월했는데 무슨 깡으로 없는 살림에 부르주아 이야기나 읽으면서 사는지 나 자신이 한심했다가, 이 백인 변태남의 성매수 이야기를 공들여 읽게 하는 프루스트의 원령이 불현듯 무서워졌다. 여느 소설 처럼 인물들의 이야기로 건너가는 대신, 단어들과 문장들이 펼쳐지는 세세하고 촘촘한 조직의 얼개를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를 알아버렸다. (뽁뽁이를 터뜨리는 것처럼 멈출 수가 없다)


그의 묘사는, 그러니까, 독자를 넘어뜨린다. 


변태는 변태를 알아보는가. 아니면 변태를 연성하는가. 남편이 나보고 '너 많이 이상해' 라고 말했다. 스완의 사랑, 1984년 영화 dvd를 주문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주연은 그말고는 없지, 제레미 아이언스, 불사출의 변태 험버트 험버트, 그가 돌아왔다. (친구 샤를뤼스는 불사출의 불란서 미남자 알랭 들롱) 예고편이 바로 그 마차 장면, 바로 그 카틀레야 음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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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2-13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파아뤼에 독자 나도 서 있는 것만 같은 건 역시, 나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ㅋㅋㅋㅋㅋㅋ 생생한 묘사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오늘도 중간중간 섞인 만두님 유우머에 깔깔대다 갑니다 ㅋㅋㅋㅋㅋ 만두님 남편님 큰일나셨네요. 많이 이상한데, 아는데, 근데도 좋으면 끝인데... 😇

유부만두 2021-02-14 07:33   좋아요 1 | URL
하하하 이 동네 변태 아줌마는 저입니다. 무서우시지요? 하지만 이미 친구라지요? ^^

scott 2021-02-1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구석 몽상1人~마르셀 프루스트 ㅋㅋㅋ

유부만두 2021-02-14 22:14   좋아요 0 | URL
꼼꼼한 몽상가죠! ^^
 

이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펭귄판과 민음판은 2부의 제목은 물론 전체 시리즈 제목을 다르게 번역해 두었다. 


이미 1부 콩브레에서 '잘못 얻은 부인' 때문에 평판과 옛친구 모두를 잃은 스완씨를, 자신의 출타 중에 부인이 다른 남자를 저택에 초대하는 불쌍한 스완씨를 보았기에 과거로 조금 돌아간 2부에서 (소설의 배경은 1871-1887 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하게 그 시기의 사건들을 대입하기는 어렵다 - 민음2, 317, 주석) 스완이 하는 사랑의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순전히 그의 입장에서 - 아주 몇 번 성인 화자(1부에서 엄마에게 매달리던 그 소년 아니고 아저씨)가 참견하는 이야기를 읽는다. 



의식의 흐름이라지만 의식은 그 흐름의 강물 바닥에 가만히 누워있고 시퍼렇게 눈을 뜬 채 떠내려오는 사랑을, 시간을, 향기와 색깔을, 말과 음악을, 촉감을, 이 모든 것들의 기억을 바라본다. 강렬한 그 시선은 기억을 멈추게 해서 흐름은 얼어붙기도 다시 녹아 흐르기도 한다. 이 진행이 스완의 사랑과 함께 이루어진다. 사랑의 발단부터 ... 아, 안다고요, 결혼하는 거 알지 않냐고요? 하지만 이건 K드라마가 아니다. 결혼 말고 그 전에 2부가 끝난다. 사랑이. 확실하게. 피니. 


2부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스완은 생각한다. 스완의 의식이 눈 부릅뜬다. 오데트와의 첫 만남은 별로 였는데, 그 첫 만남이 사랑의 시작과 같은 순간도 아니었고, 사랑이 끝나도 그 만남은 이어질 수도 있었노라고. 자기 스타일도 아니고 별것도 아닌 여자에게 몇 년을 허비했다고 쓰게 내뱉는다. 읽는 내 눈에도 차가운 그 현타의 확인. 아씨, 죽을 각오 까지 했쟈나! 이 몇백 쪽에 이르는 죽어버린 스완의 사랑기를, 굳이 펭귄판의 역자는 '어떤'이라는 형용사를 넣어서 그 하찮음을 강조한 그 사랑의 순서를 따져 볼까, 말까, 그러면 나도 되는 걸까.

변.태. 

스완의 그 집요한 묘사와 확인 후에 UHD 8k 로 되살려주는 그 장면 하나 하나를 따라가다 옮아 버린 그 변태스러움을. 

잠깐만요, 숨 좀 고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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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2021-02-13 22: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백조의 호수 떠오르네요. 스완에 오데뜨에 ㅎㅎㅎ 여튼 완독 축하드립니다!^^

유부만두 2021-02-13 23:08   좋아요 3 | URL
swann 스완입니다. ^^ 아직 완독은 멀고 멀었어요. 이제 원서 기준 7권에서 첫권 에서도 2/3를 읽었습니다.

Persona 2021-02-13 23:09   좋아요 3 | URL
아하!! 계속 응원합니다! ㅎㅎㅎ

붕붕툐툐 2021-02-14 0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앞으로의 전개 살짝 보고 갑니다~ 알아요, 이래도 소용없다는거~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님, 파이팅입니다~👏👏

유부만두 2021-02-14 07:26   좋아요 2 | URL
응원 감사합니다! 붕붕툐툐님 연휴 잘 쉬셨어요?
개학이 다가옵니다. (공포 사운드 틀어드릴까요?)

scott 2021-02-14 00: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 끝까지 홧팅!바라며 마들렌과 커피 요기 ㅋㅋ☕️O🥐

유부만두 2021-02-14 07:27   좋아요 3 | URL
홧팅! 감사합니다. 향긋한 커피도요. ^^
 

알라딘 달력을 받아서 이렇게 쓰고 있다. 



처음엔 소박하게 옛 하드커버 2권을 갖고 있는 펭귄판으로 시작해서 이미 완간되었으니 연말까지 느긋하게 읽기로 했다. 매일 15쪽 씩 하면 한달에 펭귄 (페이퍼백) 한 권 분량으로 읽을 수 있다. 펭귄은 책 후반에 주석을 모아 놓아서 한 권을 끝내면 며칠 여유가 생기는 일정이 된다. 하루 15쪽이 너무 적다고 느껴질 땐 몰아서도 읽었더니 내친김에 민음사도 읽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1권의 1부 콩브레를 펭귄으로 먼저 읽은 다음 민음사 판으로 읽는데 (민음사는 2022년 프루스트 사후 100주년 기념으로 완간 예정이란다. 현재 10권까지 나와있음),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이야기의 흐름이랄까, 화자가 처해진 시공간이 조금 더 상상가능 하달까. 


지금은 2부 스완의 사랑을 읽고 있다. 1부의 연상 묘사 지옥을 지나오니 연애 이야기는 만만하다? 외모도 별로이고, 딱히 공통 관심사가 없던 오데트를 스완이 어떻게 천천히 사랑하고 집착하게 되는지 그려진다. 별로였다가 뜨거워지는 사이. 오데트의 교태, 그러다 어느 날 '가슴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상대의 부재를 느끼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만의 러브 테마곡 뿐 아니라 둘만의 러브 암호를 갖게 된다. (19세기 마차는 19금)


두 가지 번역본을 연달아 읽다보니 번역문의 차이가 종종 보인다. 겸사 겸사 낡은 책 상자에서 원서도 꺼내서 찾아보고 있다. 매일 여기 서재에 기록을 하기엔 번거로워서 트위터에 짧게 짧게 뭐라고 쓰고있다. 불어 공부를 겸해서 프루스트를 읽는다면 펭귄 판을, 아니라면 민음사 판을 추천한다. 펭귄은 직역도 많고 표현들의 유래를 (아, 여배우 가르보 이야기는 빼고요) 상세히 주석 달아 놓았다. 


지난번 ㄷ 님께서 자랑하신 색연필이 탐나서 한 자루 샀고, 파스텔 사인펜도 마련해서 나도 자랑삼아 사진을 찍었다. 달력 표시는 프루스트 진도 상황. 크리스마스 즈음에 완독 (일단 펭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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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2-01 1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 님의 완독을 응원합니다. 빠샤!!

유부만두 2021-02-02 07:01   좋아요 1 | URL
응원 감사합니다! 완독! 빠샤!

vita 2021-02-01 10: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게으름뱅이는 진도 따라 가기는 힘들 거 같고 막 몰아 읽고 이렇게 가야하나 잔꾀를 부리다가 그러다가는 완독이고 뭐고 또 포기하겠구나 싶어서 저도 오늘 스누피 달력에 체크합니다.

유부만두 2021-02-02 07:02   좋아요 1 | URL
미뤄서 한번에 많이 읽기 보다는 조금씩 나눠 읽기가 더 쉬운 듯 해요. 지금부터 매일 17쪽씩 하면 연말에 저와 함께 완독하실 수 있어요!

비연 2021-02-01 1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걸 또 사야하나 생각중..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2-02 07:02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쵸. 일단 책과 필기도구가 ㅋㅋㅋ

Persona 2021-02-01 1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렇게 다양한 판본이 있으시다니! 게다가 책탑이 무척 멋지고 예쁘네요. ㅎㅎㅎ 진짜 민음사랑 같이 읽으면 좋을 거 같아요. _ 저는 아직도 엄두가 안 나지만 일단 적어둬야겠어요. ‘민음사랑 펭귄이랑 같이 읽자’ ㅋㅋㅋ

유부만두 2021-02-02 07:03   좋아요 2 | URL
민음 판본은 겉 표지를 벗겼더니 더 진하고 예쁜 양장 표지가 나와서 읽을 땐 저런 차림?으로 읽어요. 민음사랑 펭귄 번역이 꽤 달라요. 문장도 (때론 오역 같...) 어휘도요. 함께 천천히 읽으니 별 부담도 없고요.

얄라알라북사랑 2021-02-01 1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알라딘 다이어리 더 사려했는데 일찌감치 품절이라 아쉽더라고요. 달력 넘 알뜰하게 잘 활용하시네요

유부만두 2021-02-02 07:05   좋아요 1 | URL
책상 달력이 여유분이 있어서 알라딘 달력은 책읽기 계획표로 쓰기로 했는데, 괜찮죠? ^^

파이버 2021-02-01 14: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일 꾸준히가 정말 어려운데 이렇게 실천하시다니 존경스럽습니다. 파스텔사인펜도 너무나 색이 곱네요…

유부만두 2021-02-02 07:05   좋아요 2 | URL
파스텔 사인펜 맘에 듭니다! 색이 진하지 않아서 표시한 문장이 잘 보이면서 강조가 되요. 그런데 ‘검정색‘이 셋트에 들어있는 건 좀 ;;;

blanca 2021-02-01 16: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와중에 색연필이 궁금한...전 분명 다 읽었는데 왜 내용이 생소한 거죠? 흑흑.

유부만두 2021-02-02 07:07   좋아요 1 | URL
색연필! 스테들러 약간 두꺼운 것, 초록색으로 마련했어요.
블랑카님께선 10권까지 다 읽으셨으니 내년에 나올 마지막 두 권만 느긋하게 기다리시겠네요. 내용 생소하시다면.... 다시 읽으...??? (차마 말 못함요)

바람돌이 2021-02-01 2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의 구도자의 경지에 오르셨습니다. 존경합니다.

유부만두 2021-02-02 07:08   좋아요 1 | URL
구도자, 아니에요! 1부만 잘 버티면 2부는 좀 낫더라고요.
매일 나눠서 읽으니 할만해요. ^^

psyche 2021-02-02 08: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완독을 목표로 읽고 있는 것도 대단한데 두가지 번역본을 읽다니!!

유부만두 2021-02-02 09:05   좋아요 2 | URL
하하하 언니, 제가 늘 계획은 거창합니다! 프루스트 읽기 도전이 몇번째인지 몰라요. 하지만, 이번엔! 기필코! 랍니다. 두 번역본을 읽는 건 이해를 하기 위해서에요. 백년전 유럽사람 글이 확 와닿진 않잖아요.;;;; 그런데 그걸 왜 굳이 읽으려 하냐고 물으신다면,.... 음......

붕붕툐툐 2021-02-04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멋지당~ 두 개 판본도, 달려도, 달력X 표시도!! 완전 응원합니다!!!
(잃어버린 시절과 시간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네요~)

유부만두 2021-02-05 06:58   좋아요 1 | URL
네, 펭귄 판 역자는 ‘시절‘에 더 큰 의미를 두고는 있는데 잘 와닿지는 않아요.
하지만 종종 본문에서 다른 부분을 발견하면서 두 번역서는 어쩌면 두 다른 소설 세계를 펼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붕붕툐툐님의 프루스트 독서 응원합니다! 어서 그 연상 묘사 지옥에서 빠져 나오세요. 더 크고 넓은 지옥이 (도돌이표 포함) 기다리고 있습니다. (혼자 죽지는 않아요, 물귀신 만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