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 (실은 보리수차)에 마들렌느 주셨던 그 레오니 숙모님을 생각하면 이럴 순 없지, 마르셀.

레오니 숙모님께서는 몹시 거추장스러운 물건들 및 가구들과 함께 당신의 대부분 환금성 재산의 상속권자로 나를 지명하셨다. 그렇게, 작고하신 후에야, 당신 생전에는 내가 짐작조차 하지 못하던, 나에게로 향한 애정을 드러내셨다. - P42

특히 내가 그 집에 드나들기를 멈춘 것은, 그곳 포주에게 더 많은 가구들이 필요함을 알아차리고, 그녀에게 호의를 표하기 위하여, 내가 레오니 숙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가구들 중 특히 커다란 까나뻬 하나를 몇몇을 그녀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집에 자리가 없어 부모님께서그것들을 집 안에 들여놓으시지 못하고 창고에 쌓아 두셨던지라, 내가 전에는 그 가구들을 아예 보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여인들이 사용하고 있던 그것들을 다시 보는 순간, 꽁브레에 있던 나의 숙모님 침실에서 우리가 호흡하던 모든 미덕들이, 나로 인해 그 잔인한 접촉들에게무방비 상태로 넘겨진 채 고문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내 목전에 드러냈다! 내가 사람들을 시켜 죽은 여인 하나를 겁간토록 하였다 해도 그토록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 포주의 집에 발을 들여놓지않았다. - P214

나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돈을 확보하여 스완 부인에게 더 많은 꽃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가구들의 다른 일부 전체와, 특히 레오니 숙모님이 사용하시던 고풍스럽고 화려한 은제품들을 팔아치웠고, 스완 부인은 내가 보낸 거대한 난초 바구니들을 받으면서 이런 말을 하곤 하였다. "제가 당신의 부친이라면, 당신의 법적 후견인을 지명할 거에요." - P215

나는 오직 연인의 자격으로서만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날마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리라 작정하였다. [...]그 시절, 부모님께서 나에게 충분한 용돈을 주시지 않아, 내가 비싼 물건을 구입할 형편은 못되었다. 나는 레오니 숙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고대 중국의 커다란 도자기 꽃병을 뇌리에 떠올렸다.[...] 그 길모퉁이에 아버지께서 잘 아시는 중국산골동품 상점이 있었다. 상점 주인이 놀랍게도 꽃병 값으로 일천 프랑이 아니라 일만 프랑을 제안하였다. 나는 황홀감에 휩싸여 그 지폐들을 받아 들었다. - P277

나는 일만 프랑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 돈이 나에게는 더 이상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매일 질베르뜨에게 꽃을 보냈을 경우보다도더 신속히 그 돈을 탕진하였다. 저녁이 되면 나의 불행이 더욱 견딜 수 없을 만큼 혹독해져 집에 머물 수 없었고, 그리하여 내가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들을 찾아가 그 품에 안겨 눈물을 쏟곤 하였기 때문이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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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절/시간을 찾아서>의 청소년 화자는 드디어 질베르트의 집을 방문하고 스완 부부에게 환대를 받는다. 그들로 부터 들은 동물원 이야기에 그도 가보고 싶다고 (관심이 없었지만) 말한다. 


Jardin d'Acclimatation 

1860년 나폴레옹 3세가 만든 파리 동물원은 1871년 전쟁 이후 1877-1912 동안은 인류학 순화(?) 전시장 (이지만 이민족들의, 사람 동물원)으로 개조되었다. 누비아인, 부시멘, 줄루스 등이 전시되었고 큰 성공을 거두어서 이전 공원의 두 배에 이르는 10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1931년 이 전시장은 문을 닫았고 현재는 숲공원과 놀이 동산 등으로 바뀌었다. (위키피디아)



2019년 프랑스 애니메이션 <파리의 딜릴리>의 주인공 흑인 소녀 딜릴리 역시 이 '인간 동물원'에서 살고 있었다. 


벨 에포크의 초반부의 파리, 화자는 질베르트 보다는 그 아버지 '스완씨'에게서 자신의 롤모델을, 욕망의 대상을 발견하고 집착한다. 



"근자에 나의 아내가 불론뉴 숲 동물원에 갔었는데, 그곳에 흑인들이 있었고, 민족지학(民族誌學)에 있어서는 나보다 훨씬 해박한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싱할라족 사람들이었다고 해요."
"제발, 샤를르, 놀리지 말아요."
"천만에, 놀리는 것 아니오. 여하튼 블라땡 부인이 그 흑인들 중 한 사람에게 이런 인사를 건넸다는군요. ‘안녕하세요,검둥이!"
"그 말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하튼 ‘검둥이‘ 라는 말이그 흑인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그가 화를 내면서 블라땡 부인의 인사에 이렇게 대꾸하였다 하오. ‘나는 검둥이이지만 너는 낙타야!"
"저는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를 무척 좋아해요. ‘멋지지 않아요? ‘나는 검둥이, 그러나 너는 낙타!‘ 그 말을 들은 블라땡 할멈의 얼굴을 생각해 보세요."
나는 블라땡 부인을 가리켜 낙타라고하였다는 할라족 사람들을 꼭 보고 싶다는 뜻을 표하였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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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데 한눈을 파느라 '프루스트' 읽기를 소홀히 했더니 그새 프랑스에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줄 알았던) 유고가 발견되어 시리즈의 첫 부분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는 설명과 함께 "75쪽" 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프리퀼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다행히 이 원고는 75쪽이다. 그정도는 더 읽을 수 있다. 



이 열다섯 살의 마르셀 프루스트가 3권 (원서로는 2권 '꽃피는 소녀들의 그림자')의 1부 '스완 부인의 주변' (스테판 외에 시리즈로는 7권... 아 복잡허다) 의 화자 '나'와 또래다. 질베르트의 변덕에 맞추어 같이 샹젤리제 공원에서 뛰어 노느라 툭하면 앓아눕는 소심한 중3. 엄청 멋지고 엄청 훌륭해 지고 싶은데 엄청 다른 사람 눈치 보느라 툭하면 앓아눕는 중3. 천식이 심해지자 '어떤 의사'의 처방대로 꼬냑을 마시면서 은근 즐기는 중3. 엄마를 아주 좋아하고 외할머니의 걱정과 사랑을 담뿍 먹고 자랐던 만 십오세 소년. 조금 징그럽고 변태로 자랄 가능성이 농후한 소년, 마르셀.


사진: @Gallimard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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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4-01 23: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75쪽이라는데 좀 두꺼워보이긴 하네요^^ 4월에 이런 사진 보니 또 색다른 맛이에요. 어딜가나 벚꽃 나부끼는데 차분한 가을의 황금빛과 선명한 빨간 띠지.

15살 주인공과 15살 때 작가^^

요렇게 나란히 등장시켜주시니 안 읽은 책이어도 애정이 확 생겨버리네요^^ 덕분에

유부만두 2021-04-02 16:02   좋아요 4 | URL
프루스트 전문가들의 해설과 논평도 함께 실렸을 것 같아요. 1887년 15세의 작가의 생생한 열정의 원고가 1919년 첫 작품과 얼마나 다르고 또 닮았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

모나리자 2021-04-02 09: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마르셀 정말 미소년이었네요! 그 나이에 꼬냑을 마셨다니 놀랍네요.ㅋㅋㅋ

유부만두 2021-04-02 16:02   좋아요 4 | URL
천식으로 고생하는 청소년에게 꼬냑을 처방한 의사가 더 놀라워요.
역시 불란서 사람, 이란 생각도 들고요. ^^

blanca 2021-04-02 1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헉, 처음에 만우절 농담이신줄... 아, 빨리 번역되기를...

유부만두 2021-04-02 16:04   좋아요 3 | URL
만우절 농담 같은 진짜 뉴스였어요. 올해나 내년엔 번역되서 나오겠지요? ^^

바람돌이 2021-04-02 14: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 안 그래도 어려운데 뭘 또 새 글씩이나.... 아이 부담스럽사와요. ㅎㅎ
15세 마르셀 음 뭔가 심상찮은 표정. 눈빛이 딱 사고치기 직전인듯 보이는데요. ㅎㅎ 전 왜 이런거만 보일까요? 인간불신증 아니 저는 소년 불신증입니다. ㅠ.ㅠ

유부만두 2021-04-02 16:06   좋아요 1 | URL
1권 1부 정말 어려워요. 문장의 주어 (우리말 번역도) 찾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헤매애 하고요. 그런데 2부 부터는 어느정도 줄거리랄까, 인물들이 더 생생하게 나오고요, 비유와 묘사가 대단해요.

아, 그리고 저도 15세 소년....은 좀 조심스레 살피게 됩니다. 집에 하나 키우고 있기도 하고요. 15세 소년은 아직 인간이라기엔 뭔가 성분이 넘치고 또 모자라고 그렇다고 봅니다. (어쩌면 제가 키우는 생명체의 특징인지도 모르지만요;;;;)

붕붕툐툐 2021-04-02 23:01   좋아요 2 | URL
아~ 람돌님, 빵터짐요~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4-02 23: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뷰만두님 프루스트 따끈한 소식, 그리고 소년 때 사진 넘 감사해요~👏👏👏👏

유부만두 2021-04-03 08:23   좋아요 1 | URL
인터넷 뉴스에서 본 것 물어왔어요. 짹짹. ^^
 


스완에게는, 부모님의 옛 친구인 ‘아들 스완‘이자 조키 클럽 회원으로서의 스완과는 전혀 다른 인격,(이것이 마지막일 리는 없겠지만) 즉 오데트의 남편이라는 인격이 더해졌다. [...] 그는 아주 딴사람같아 보였다.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아내와 함께 두 번째 삶을 선택한 그 - P14

이런 변신의 가장 주된 이유는 [...] 우리의 미덕 자체가 자유롭고 유동적이어서 영구히 우리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 P15

내가 박수를 치면 칠수록 라 베르마의 연기가 더 훌륭해지는 것만 같았다. - P49

이런 민중의 열광이라는 싸구려 포도주를 그들과 나누어 마시면서 취했다. - P50

인과관계란 가능한 거의 모든 결과를 만들어 내며, 따라서 우리가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도 만들어 낸다. 이 작업은 우리 욕망이나 - 빨리 진행하려고 하면 도리어 방해가 되는 - 삶 자체로 인해 더욱 느리게 진행되어 우리 욕망이나 삶이 멈추었을 때 비로소 실현된다. [...] 스완의 마음 속에서, 그의 모든 삶을 함께 보내고 싶어 그토록 열망하고 절망했던 존재가 죽고 나서야 한 결혼이 바로 이런 사후의 행복 아니었던가? - P86

대개는 천재의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서는, 자기 작품에 이 천재의 생각을 덧붙이고 그래서 자기 작품을 다시 생각할 때면 처음 나타났던 대로 보지 못하고, [...] 자신에 대한 최종적인 만족감을 표현하는 전체 속에 [천재의] 뛰어난 글 몇 쪽의 기억을 끌어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며 그리하여 자기가 그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작가들 - P102

우리 정신 속에서 공동으로 기거하는 관념들 가운데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관념이 처음에는 진짜 기생충처럼 자신에게 부족한 중요한 힘을 낯선 사람이나 이웃에게서 얻었던 것은 아닌지 말해보라. - P103

내가 ‘시간‘ 밖에 있지 않고 소설 속 인물 처럼 시간의 법칙 속에 종속된다는 점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콩브레에서 덮개 달린 버드나무 의자 깊숙이에서 그 인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 인물들이 그토록 날 슬픔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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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들 간의 섬세한 차이를 사문서(死文書)처럼 무의미하게 여기는 몇몇 무지한 일반인들 및 사교계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을 친밀하게 만드는 것은 견해의 공동체가 아니라 정신적 혈족관계이다. - P17

사랑이라는 순전히 주관적인 현상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 현상이라는 것이, 하나의 보충적인 인물을, 즉 사회 속에서 같은 이름으로 통하는 이름으로 통하는 인물과는 구별되며 그 대부분의 구성인자들이 우리자신에서 추출된 하나의 새로운 인물을 만드는 일종의 창조 행위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세인의 눈에 보이는 것과는 같지 않은 어떤 사람이 결국 우리의 내면에서 차지하게 되는 엄청난 비중을 자연스럽게 여길 수 있을 사람들도 거의 없다. - P62

나는 새해 첫날이, 자기를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나에게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모습으로 황혼 속에서 끝나고 있음을 느꼈다. [...]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에는, 이제 더 이상 아무도 그들에게 새해선물을 주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더 이상 새 해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젊은이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노인들의 일 월 초하루를 이제 막 겪고 난 후였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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