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지난 10년간 일을 돌이켜 보라고 해서. ... 목록을 만들어 봤더니, 내가 너무 불쌍해지더라고요?

 

이사 세 번에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친한 친구 하나는 하늘 나라로 갔고 ... 종종 북플에 몇 년 전에 읽었다고 뜨는 책은 기억에 없는 책이고 알바로 번역서를 스물 몇 권 교정은 봤는데 따지면 몇 달에 한 권 꼴이니 그리 큰 일도 아닌데다 품삯도 참 소박해서 돈을 더 보태서 책 사는데 다 썼고 그런데 그 책들이 내 기억에 ...

 

그나마 십 년 동안 아이들은 쑥쑥 자라서, 대학생이 되고 군인이 되고 병장도 달더니, 아아아, 드디어 국군의 날 이브에 큰 아이가 제대 (전문용어로 전.역.)를 하고 집에 왔습니다.

 

아들녀석 군 생활이 고달플까 내 맘이 짠해서 그래 너는 총을 들어라, 에미는 떡을 썰듯 프루스트를 읽으마 했었는데 .... 했었는데.... 생각보다 애가 빨리 오는데요? 난 아직 스완네 집에 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반칙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한 편 봤어요.

 

아니, 뭐, 이런 .... 황당한 전개에 기억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풀어서 사람을 놀래키는 영화라니. 프랑스어 식으로 욕을 날리자면 M.... 되겠습니다. 네, 마르셀....

 

소설의 인물들이 이리저리 차용되어 나온 건 재미있었는데 중국인을 향한 인종 차별적 내용이 많이 불편했어요. 무엇보다 마담 프루스트라는 인물의 행동거지가 영 이해가 안됩니다. 힘들었어요. 폴의 맹한 표정도요. 프루스트 책을 읽어야해요. 읽느다고 했으니까. 아니 ... 책을 다 샀단 말이에요.

 

저의 십 년 중, 작년, 그리고 지난 달 9월은 채식한지 일년을 채운 달입니다. 소프트한 의지력의 소유자인 내가?! 채식이, 특히 우유나 계란도 안 먹는 비건을 하는 중이라 엄청나게 어렵거나 까탈스러울 줄 알았는데 그럭저럭 할만합니다. 하지만 먹거리 이야기는 종교 정치 이야기 만큼이나 각자 개인의 선택 문제라 더 애기 하기가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저도 남 말 안들었고요, 먹는거로 뭐라 하는 얘기가 많이 고까웠어요. 전 그러니까, 채소 과일 옥수수랑 등등을 많이 두루두루 먹고 있습니다. 운동도 계속 (쉬엄 쉬엄) 하고요.

 

저의 10년은 아주 불쌍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데요.  제대한 저 아들 녀석 밥상을 차리기는 좀 시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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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9-10-01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이 벌써 제대를 했어요???
남의 집 아이들은 어쩜 그리 빨리 자라는지 모르겠다더니....제대도 엄청 빨리 한 듯 합니다.
조만간 고딩이 제 아들도 곧 제대가 이리 빠를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만...
암튼 아드님 무사 전역 축하드립니다^^
만두님의 프루스트 책을 읽기도 전에 아드님이 먼저 제대했다는 글에 갑자기 혼자 웃었어요ㅋㅋ
프루스트 책은 진도 빼기가 힘들겠죠?
저도 잃어버린 세계 책 권수는 책장에 꽉꽉 채워놓긴 했는데 언제 읽을진???
전 아들이 아예 고딩 졸업전부터 읽어둘까요?^^
채식도 벌써 일 년이라니??
뭔가 일 년이란 시간이 엄청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유부만두 2019-10-02 11:00   좋아요 0 | URL
네. 벌써 제대를 했습니다! 어쩜 시간이 이리 잘 가지요?
나무님 댁 고등학생 아이도 이제 곧 그날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겁 먹었던 것 보다는 잘 견뎌냈어요. 프루스트가 문제였지요. ^^;;;

채식 역시 겁 먹고 ‘금지항목‘에 신경 쓰기보다는 다양한 대체 음식을 찾아보니 할만 하고요. (식비가 많이 줄어드는 건 큰 이득) 하지만 제 발목은 프루스트가 잡고요. ㅎㅎㅎㅎ
일 년, 십 년, 세월은 휙휙 갑니다. 하루라도 더 읽어야해요. (프루.....

hnine 2019-10-0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은 이제부터 소프트한 의지력의 소유자가 아니십니다.

저는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기괴하면서도 좋았어요. 단번에 이해가 안되는 여지를 남겨서 더 기억에 남는것인지.
아드님이 전역했군요. 와아아...이제 정말 성인 남자 대접해야겠어요.

유부만두 2019-10-02 11:03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저 시월부터 강한 의지 만두인가요?

네, 저 영화는 정말 기괴했어요. 사전 정보가 없이 그저 밝은 포스터에 ‘아멜리‘ 분위기라고 해서 봤는데 (하긴 아멜리도 황당한 줄거리 였지요) 강한 인물들이 폴을 사방에서 조여들고 있으니 (그들이 거의 여자들이라는 게 우습죠) 갑갑하다가 인종차별에선 화도 좀 나고 그랬어요.

아들녀석은, 이제 성인 남자라지만 핸드폰 새로 바꾸고 당분간은 통신비도 내 달라고 뻔뻔하게 굴고 있습니다. 군필이 벼슬으냐, 고 말해주고 싶지만 일주일은 그냥 두려고요.

2019-12-06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1 0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초의 결심을 이제와 돌이켜 보면 웃음이 나지만, 늘 새해엔 결심과 계획, 그리고 밝은 상상이 가득한 법이니까 머...

 

스완의 집착과 집착과 못난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일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스완 부인의 '출신' 때문에 오랜 친분과 명예를 잃은 스완이 안쓰러웠던 것은 1부에서 끝났다. 오데뜨는 창부였다. 한 명의 '스폰서'와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고객'을 상대하고 생활비와 유흥비를 받는, 이것 역시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풍습이었겠으나, 그런 여자였고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안목도 없고 예의도 없고 외모도 그저 그런 여자. 그런데 .... 어느 저녁, 엇갈리는 만남이 빚어낸 긴장과 갈망이 스완의 눈을 멀게 해 버렸다. 질투와 소유욕에 떨고 고민하며 그녀를 생각하는 스완. 그래도 스토커라 부르기엔 소심하고 최소한의 상식을 붙드는 스완. 오데뜨에게 생활비(!)를 주면서 '사랑'을 갈망하는 남자. 액수는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한달에 천사백 만원 정도라는데 ... 아 싫어.

 

일도 안하는 유한계급의 놀음, 놀이, 유흥, 축제에 성채 빌리기, 여행, 파티, .. 와 '사랑' 타령을 읽자니 짜증이 난다. 감정의 미묘한 변화와 안타까움의 묘사는 섬세하지만, 상대가 .... 이런 쯧, 하는 시선은 프루스트에게서도 나오지만 그라고 그닥 다른 부류의 인간일 리가.

 

'길모어 걸스' 시즌 1부터 정주행을 시작했다. 부자아아앗 집 외동딸이 열여섯에 임신하고 가출해서 혼자 아이를 키워내고 떳떳한 생활인, 그것도 작은 부티끄 호텔의 지배인이 되었는데 ... 어린 딸 로리는 아주 명석해요. 마치 예전의 엄마 로렐라이처럼. 그런데 이 엄마는 책을 안 읽는데? 이것 저것 무식한 티와 싼 티가 나는데? 아무 남자에게나 막 들이대거나 몸을 꼬면서 콧소리를 내는데? 어쩌면 저런 모습이 가장 이상적인 (하지만 존재하지는 않는) 친구같은 엄마인 거야? 남자가 계속 바뀌고 엄마는 저지르고 내빼는 패턴을 계속하며 아이를 부끄럽게 만드는데 주위에선 다 이 길모어 모녀를 넘나 아끼는 .... 아, 옛날 드라마여. 엄마 로렐라이가 딸 학교 선생과 연애하면서 빌리는 책이 '스완네 집 쪽으로' . 엄마 로렐라이는 이 책을 완독하지 않는다. 문장이 넘나 길다며.

 

 

부잣집 부모 대신 조부모, 고1 가을에 뚱딴지 같이 특목고로 전학, 하버드가 꿈이라고 노래를 부르는 딸 로리. 사회 문제보다는 책읽기와 먹물 판타지를 펼치고 부잣집 '귀족' 관례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열여섯 살 로리. 손녀에게 베푸는 돈과 사랑과 연줄로 딸과의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조부모들. 우리나라 재벌 드라마 같고요. 그래서 내가 '길모어 걸스'를 그만 볼거냐면....아, 또 그건 아닌게. 이 모녀들의 따따따 하는 대사들이 유치하긴 한데.... 틀어놓고 철푸덕 앉아서 올 한 해 쌓인 영수증이랑 오래된 약상자랑 냉장고 냉동칸 청소하기엔 좋거등요. 안어울리는 조합인데 뭔가 인공 감미료와 콜라 같이 기운을 부른다.

 

왜 이리 길게 쓰는지 모르겠으나,

 

스완의 이 머저리 같은 사랑, 인지 아닌지를 나는 읽고 있고! 짜증이 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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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8-12-2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배경음악 필요할때 애용하는 드라만데요. 예전에 재밌게 보고 추억소환하며 다시봤을때 경악스러운 기분이었지요. ㅋㅋㅋ 작년인가 길모어걸스 리턴즈 스페셜 보고 정말 오래전 드라마구나 새삼 놀랐어요 :)

유부만두 2018-12-31 07:08   좋아요 0 | URL
동감이에요! 몰아서 한 번에 보니 캐릭터들이 천방지축이고 정신 없어요. 부잣집 외동딸 설정은 정말 싫고요. 그런데 틀어놓고 집안일 하긴 좋으니 이게 무슨 조화일까요. ^^
 

7월 10일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생일.

그의 생일을 맞이하야 (147세) 잃어버린 독자 되찾으시고 내 책장과 많은 이들의 책장에서 장수하시길.

 

1880년대, 대작가로 자리를 굳히기 훨씬 전, 십대 소년 프루스트는 친구인 앙뜨와네트가 준 영어로 된 설문지에 (그녀의 추억 만들기의 일완으로) 답을 적었다. 오늘날 유행하는 심리테스트의 빅토리아 시대 버전인 셈인데, 프루스트의 사망 2년 후, 1924년에서야 발견되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프랑스 티비 쇼 사회자 베르나르 피보가 1970, 80년대에 이 질문들을 인터뷰에 썼고, 1993년엔 미국에서 베니티 페어가 유명인들에게 이 설문지를 다시 쓰면서 '전통'은 다시 살아났다.

 

이렇게 책도 나와 있다. 프루스트 님의 생일을 축하하며, 영어로 해피 버스데이 투유, 그리고 불어로 봉 아니베르세르. 

 

https://en.wikipedia.org/wiki/Proust_Questionn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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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뒤랭 부부의 모임에서 미운털이 박힌 스완은 이제 그들을 '천박한 것들'이라고 입밖으로 욕설을 내뱉기에 이른다. 아니, 저것들이! 내가 그동안 무지하고 아랫것들이건만 오데뜨 때문에 참고 상대해 줬는데! 이제 오데뜨를 다른 남자에게 붙여주느라 뚜쟁이짓을 하면서 나를 몰아내?! 음악도 예술도 건축도 다 모르는 것들! 이런 고약한 것들! ... 이라지만 그 그룹에 속해있는, 그리고 나올 생각이 딱히 없는 오데뜨 때문에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남들은 아는' 스완만 애써 외면하는 오데뜨는 다른 시간들과 다른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슬슬 드러난다.

 

어쩐지 그날은 저녁 시간에 스완이 오데뜨 집에 갔을 때, 그녀가 서둘러 안녕을 말하고 배웅하려는 듯 하더라. 집으로 향하던 스완은 의심이 들자, 발길을 돌려 다시 오데뜨네로 향한다. 피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거라 말했던 그녀, 하지만, 그녀 창문에 불빛이 어리고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그림자가 창에 보인다. 현장을 덮칠까 그대로 돌아설까 고민하는 (몇 단락에 걸쳐) 스완씨. 창문을 두드린다. 잠시 소란. 낯선 남자 목소리 "누구요?!" 그리고 ... 아, 잠깐만, 착각이었나보오. 저 창문은 그 창문이 아니오. 옆집이었소. 다행이오만, 손이 떨리는 스완씨는 '그럼 그렇지, 이쁜 나의 오데뜨가...' 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베르뒤랭 모임에서 내쳐지고 소풍이고 야회고 오페라 관람에서 다 따를 당하니 혼자서 불안하기 이를데 없다. 어느 오후, 그녀의 일상적인 휴식 시간일 때 스완은 다시 오데뜨네로 향한다. 수위 말로는 '댁에 계신듯하다' 지만 벨을 눌러도 오랫동안 열어주지 않는다. 쎄한 기분이 드는데 뒷뜰 쪽, 그녀의 창가 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서둘러 건물 밖으로 돌아 나가는데, 자신을 향하는 건 이웃들의 눈총뿐. '아, 저 남자 또 왔네'

 

오데뜨와 사귀기 시작한지 이삼 년이 흘러, 이젠 오데뜨도 살이 붙고 (흑), 미모도 예전만 덜하건만 (흑) 스완의 집착은 커져만 간다. 그녀가 빠리를 벗어나 며칠간 여행을 갈라치면 그녀가 간 곳으로 '우연을 가장해' 부딪힐 요령으로 기차표 검색을 하고, 십수 년 간 가 보지 않았던 친구의 영지로 놀러가는 시나리오, 그리고 그녀의 '아닛, 당신은 나를 스토킹 하시는 거에요? 나를 향한 사랑은 고작 그뿐이었나요? 왜요? 절 부정한 여인으로 의심하시는 거는 아니겠지요?' 비난을 상상하며 고민을 억누르고 그럴수록 그녀를, 그 청초한, 하지만 다분히 의심스러운 이중 삼중 생활의 오데뜨를 묶어두는 베르뒤랭네가 밉다. 이제 스완은 다른 여인들은 다 정리한 상태이고 자신이 사랑을 주는 존재인 오데뜨에 집중하고 있다.

 

여인의 부정, 뒷생활을 가정하고 괴로워하는 자학의 남자. 19세기 프랑스에는 이런 인물들이 많았던걸까 아니면 여자는 요물, 이라는 법칙으로 소설 쓰기를 좋아했던 걸까. 발자크의 여혐 대잔치 소설도, 뮈쎄의 답정너, 너 바람폈지,의 백만 번 질문으로 고문하기에 더해 스완 씨도 슬슬 오데뜨에게 부정한 여인, 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자신이 재판관이자 구원자가 되려고 꿈틀대고 있다. 그래도 아직 염치와 부끄러움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이리 저리 흔들고 햇볕에 비추어 내용을 읽으려 애쓰다니. 이런 게 사.랑. 이라고요? 아, 스완의 사랑은 아직 백오십 쪽이 남아 있고, 난 그들이 결혼할 거라는 것도 알지만. 뭔 사랑 이야기가 이리 재미가 없지? 찌질한 스완씨 속 마음 계산기만 계속 읽자니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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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뒤랭 씨 부부는 스완 씨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자신들의 의견에 덮어놓고 찬성하지도 않고 은근 귀족과 고관대작들과 친한데다 그걸 떠벌리지도 않는다. 그의 속내를 알 수  없다고, 무화과도 포도도 아닌 사람이라고 흉본다. 주석을 따르면 '말린 무화과 열매와 건포도를 지칭하는 표현인데 정체가 의심스러운 사람을 가르킨다'고 한다. 말린 두 과일을 빵에 넣어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정체가 의심스러운 게 아니라 달콤한 사람입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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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6-19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에 있는 음식의 정체가 궁금하군요

유부만두 2018-06-19 10:02   좋아요 0 | URL
건포도와 말린 무화과, 호두 등이 들어있는 통밀빵이에요. 다이어트 하려고 패스츄리 대신 샀는데....너무 맛있어서 마구 먹어버렸어요. 스완씨 달콤한 사람, 이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