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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2부, 이제 절반쯤 읽었다. 150여쪽 읽는 게 왜이리 어려운지. 1부 '콩브레'는 화자의 과거, 현재, 꿈과 현실을 우주와 작은 방을 오가며 긴 호흡의 복잡한 문장, 아름답고 지루한 문장으로 펼치는 오밀조밀 촌동네 산책길과 사람들 이야기였다. 2부 '스완의 어떤 사랑'은 문제의 스완 부인이 출연한다. 오데뜨. 어른 프루스트 화자는 독자 옆에 앉아서 오데뜨와 스완씨가 어떻게 만나고 사랑을 키워나가는지 얘기해준다. 문장은 1부 보다 덜 느슨하고 살짝 긴장감도 돌지만 사건이 생겨서라기보다는 (두 인연이 만났으니 우주가 진동하긴 했지) 두 사람이 베르뤼랭 내외라는 격 떨어지는 인물들의 사교모임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문학이나 예술에 조예가 깊은 스완씨, 최정예 사교 모임에도 선이 닿아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하곤 한다. 의외로 그는 엉뚱한 여성에게 추파를 던진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귀족네에 드나들다가도 이별의 편지는 달랑 그댁 하녀에게만 남기는 넘. 어느 한 여인과 오래 가질 못하고, 파티에 가는 개인 마차 안에서도 문지기의 딸을 불러내 짧은 연애 시간을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시키. 불같이 사랑하고 희생하는 것도 아니고 고급 사교계에 애인을 공식화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잠시 즐기곤 금세 잊는다. 여자 없이는 못사는 벨트 위와 아래가 따로 동작하는 자. 그런 그가 어느 여인에게 호감을 갖고 프루스트의 할아버지에게 소개를 부탁한 적도, 혹은 딸의 혼처를 고민하는 양갓집에서 스완씨를 만나고자 프루스트 할아버지에게 문의를 한 적도 많다. 하지만 스완 씨의 그 조용한 난봉꾼 기질에 할아버지는 지혜롭게 중매의 자리를 피하곤 한다.

 

그러다가! 베르뤼랭 저택에서 오데뜨와 스완이 (그 이전에 서로 안면은 튼 사이였다) 급속도로 친해진다. 뻔한 과거의 그녀가 (스완씨만 모름) 스완에게 문화적 무지와 경솔을 드러내며 천진무구하게 군다. 그녀가 보디첼리의 인물을 닮았다고 여기는 스완은 친근감을 느낀다. 이 남자의 사랑법. 다행히 그는 예술이며 학식을 뽐내지 않는다. 그저 웃거나 말거나 할뿐. 맨스플래인 하지 않는 게 그의 장점. 굽신거리며 맞장구를 치지 않는 냉담함에 안주인 베르뤼랭 부인은 빈정이 상하고 스완의 뻣뻣함 속에 있을 서열 계산이 영 신경에 거슬린다. 심미안과 대화의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 이들 사교회에서 펼쳐지는 말장난이 각종 인용구들과 그 시대의 농담을 끌어오기 때문에 주석을 계속해서 찾아봐야 한다. 저질 농담, 말꼬리 잡기들이 이어지고 인물들은 얼굴이 벌게지도록 기침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웃는다....는데 나는 재미가 없다. 여기는 이십일 세기. 자, 인물들이여, 연애의 진도 속도를 높여라, 쫌.

 

어느 날 시간이 엇갈려서 (스완씨가 그 문지기 딸이랑 좀 오래 놀다 왔거든) 오데뜨를 파티장에서 놓치고 아, 스완씨는 고통을 느낀다. 파리의 카페 거리를 헤매고 헤매다 기적 같이 만난 이후, 사랑이, 특별한 관계가 시작되어버린다. 불쌍한..... 이라고 쓰려니 스완이나 오데뜨나.... 둘은 함께 밤을 보내고 또 보낸다. 스완이 다른 여인들을 정리하고 오데뜨에게 정착할지 아직 확실치 않은데, 기부니가 안좋은 베르뤼랭 부인은 오데뜨에게 다른 남자를 소개시키면서 스완을 디스하려고 든다. 오데뜨의 과거는 어떻게 탄로가 나긴 할텐데... 요약을 해보니 흥미진진하네? 계속 읽어야겠다.

 

프루스트를 읽으면서 자꾸만 드는 생각은....이 인간들은 일을 안한다. 직업이 귀족이고 브루주와, 투자로 먹고 살고 노는 부류들이다. 부럽지도 감탄할만 하지도 않다. 프루스트가 그 점에 비판의식을 가진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깐죽거리며 인물들을 우아하게 깔보고 독자는 따라가며 구경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무지한 독자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핀잔을 들을까 긴장돼 주석을 열심히 펼쳐 읽는다. 박자를 맞춰서 오호호홍 하고 웃어야 한다. 위, 마담. 매농, 므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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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겨우, 1권의 1부를 다 읽었다. 전 7권 중 1권 '스완 댁 쪽으로' 에서 1부 콩브레는 300쪽이었다. 하루면 다 읽을줄 알았지. 하지만 문장이 지지리도 긴데다 넘치는 비유가 원 대상 주어를 집어 삼켜서 몇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지금 내가 읽은 것은 뭐여? 콩브레 마을 풍경과 사람들 일상이 아니라 그 너머, 그 이전, 그리고 그 이후에까지 펼쳐져 있다. 그게 프루스트의 맴이었을거야. 욕심도 많지.

 

1부의 시작, 한밤중에 잠이 깨서 자신이 있는 방이 어디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잠시 헤맨다. 시대와 장소가 겹치고 흩어지다가 그 옛날 어린시절 (이라고 해도 초등 고학년 나이일듯)의 콩브레의 방, 엄마가 굿나잇 뽀뽀를 안해줘서 서글펐던 기억이 아련히 피어오른다. 아, 무서운 아버지, 애닲은 엄마의 포옹. 그리고 엄마가 읽어주시던 조르주 상드의 책. 할머니의 약간 튀는 행동과 말. 할머니의 시누이인 대고모님과 할머니의 자매들의 (자신들은 계산에 계산을 거듭해서 예의로 포장을 했건만) 눈에 보이는 오만도 기억난다. 침대에서만 생활하시던 숙모님, 그리고 마들렌느. 아닌척 그런척 손짓과 눈빛으로 사람들 사이의 거리와 서열이 드러났다. 귀족과 부르주아, 그리고 서민들. 그들의 휴가 기간의 나른한 행태, 하지만 덮여있던 과거와 파리 혹은 다른 도시의 인연들이 그리는 오묘한 빛깔의 인간관계. 무엇보다 이웃 므슈 스완. 그의 '격에 맞지 않는' 결혼 덕에 그의 고급 사교 생활은 의도적으로 만만해 보이지만 소년 프루스트는 애써 그의 문화력을 닮고만 싶다.

 

밥먹고 하는 일은 독서와 휴식, 하녀 놀리기, 그리고 산책. 길가와 울타리에 피고 지는 꽃, 그 사이에 숨어있다 튀어오르는 아이, 그리고 작은 새. 소년의 맘 속에서 꿈틀대는 갈망. 갈증. 그리움. ...'그녀'를 향한 이 마음은 뜨겁기만 한데 차마 내놓질 못했다네. 넓적다리에서 나온다는 그녀는 어디, 누구인가? 대작가와 친하다는 스완씨 딸인줄 알았는데 정말 그 게르망뜨 부인인겁니까. 콩브레의 주인, 성의 주인, 이 마을의 역사를 깔고 앉은 높으신 부인. 그 부인의 '현실적' 외모에도 상상의 메이크업을 얹어놓아 자신의 꿈과 이상을, 그리고 (그녀도 나를 사랑할거야) 망상을 키우는 프루스트. 그녀 만큼 나도 높아지고 싶은거야? 응 그런거야. 그런데 그 고매한 사랑은 어떤걸까.

 

훌륭한 작가가 되겠다던 소년은 청년기에도 콩브레의 음악선생 집 창문 밖에서 '의도치 않고' 다시 한 번, 그 집안을 훔쳐본다. 불쌍한 음악선생의 사후, 그 딸의 동성연인과의 '패륜적 언사'를 청년 프루스트가, 그리고 장년 프루스트가 이래저래 묘사하고 평하고 있다. 진정한 쾌락을 모르니 저러는 것이다. 나는 다 알고 있지. 하지만 훔쳐보고 따라다니는 행위는 별별 묘사와 비유, 변명을 갖다 대도 부끄러운 짓이다. 프루스트도 민망해서 서둘러 '쾌락'과 '패륜'에대해 평하는 문단을 줄인다. 어쩌면 그가 들여다 본 것은 자신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근근히 살던 음악선생, 잊혀질 만만한 작곡 소품들, 예쁘지 않은 딸, 그녀에게 아버지 험담을 거리낌 없이 해대며 웃는 연인. 다부지게 펜을 쥐고 적어내려갔겠지. 나는 달라, 이 모든 추억과 마음과 '아름다움'은 남아야해. 게르망뜨 부인은 전설로 남을거야. 나른한 서술들 중에 그의 아름다움과 역사에 대한 집착은 단단하게 뭉쳐서 자꾸 눈과 목에 걸린다. 그래봤자 이젠 누가 프루스트를 읽겠어.

 

프루스트는 한밤중의 침실에서 사랑과 꽃, 콩브레와 마들렌느와 종탑의 아름다움까지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갔으나, 결국 동네길로 접어들고 어린시절의 침실로 돌아와 엄마의 포옹을 바라며 불안에 떠는 소년이 된다. 콩브레를 휘젓고 다닌 그 밤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지나 침실 벽에 흰 줄을 그어대면... 맑은 정신의 '어른' 프루스트가 모든 것을 툴툴 털고 일어나 저 멀리 여명과 함께 도망가는 콩브레의 인상들을 쳐다본다. 이제 하룻밤의 이야기가 끝났을 뿐이다. 계속 읽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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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5-24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계속 읽어야 합니다!!!
고작 하룻밤 이야기만 읽고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ㅋㅋㅋ

유부만두 2018-05-25 08:46   좋아요 0 | URL
계속 읽겠습니다! 그런데 1권의 1부가 의외로 오래 기운을 뺐고요. ㅎㅎㅎ
 

아들 입대와 함께 호기롭게 시작한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그새 큰아이는 일병으로 진급했다. 국방부 시계는 거침없이 가고 있다. 1권의 1부 콩브레도 다 못 읽었는데. 그 유명한 홍차, 아니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느 부분에 감격하고 따라 먹기만 하고 덮었었지.

 

별난 숙모님의 별난 습관들, 그리고 꽁브레의 별난 손님들과 더 별난 식구들 이야기가 이어진다. 숙모님은 병세가 짙어서 (호기심은 왕성한 채) 창문으로 동네 사람들의 행색이나 움직임을 파악하고 규칙적인 정보원(이랄까....동네 소문을 전해주는 과부)을 매주 불러들여 수다도 나누며 훈수와 약간의 용돈을 건넨다. 하지만 이 용돈을 적당한 놀람과 황송함으로 받아야만 한다는 그녀 나름의, 그리고 부르주와 계층의 자만심이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있으며 이에 거들어 하녀 프랑수와즈는 혹여 그 아첨꾼이, 절대 자신보다 나을리 없고 자신보다 아랫것인 그녀가, 자신보다 더한 (그리고 절대 그럴만한 일도 하지않은채) 돈을 뺏는게 아닐까 염려한다.

 

아, 이것봐. 프루스트 쫌 읽었다고 금세 문장은 꼬이고 늘어나고 무슨 말을 적어도 비꼬는 게 되어버리네. 하긴 비꼬고 꽤뚫어본다며 으스대는 문장과 내용은 이어진다.

 

예의를 지키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만, 그 속내는 감추어야겠는 사람들의 전전긍긍. 사회계층을 단호하게 가르고 유태인 집안 사람을 앞에 두고 놀리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할아버지. 귀족에게 비굴하지 않으려 애쓴다며 손님들 집안을 따지는 대고모. 아들 친구의 경망스러운, 혹은 너무 솔직한 답변에 '걔랑 놀지마'라고 곧바로 말하는 부모. 예쁘지 않은 소녀의 '순수함'을 넓은 어깨와 '남자 같은' 얼굴로 묘사하는 화자. 그 소녀의 아버지는 딸의 넓은 어깨를 감추려 쇼올을 들고 다니고 손님 오기 직전에 음악가 집안 인테리어 설정에 분주한 '나혼자 작곡가' 어르신. 잠결에 공포 어린 얼굴을 무방비로 드러내는 숙모님. 바쁜 부활절 주간에 임시로 고용된 어린 부엌데기. 그녀를 츳, 하는 태도로, 아니 지오토의 그림에 비유하는 화자. 임신하고 막달이 다 되도록 일하느라 퉁퉁 붓고 꺼칠한 얼굴의 부엌데기 그녀를 우아하게 그림을 떠올려 묘사하는 팔자편한 문필가님.

 

 

그가 몰래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상황 설명이 너절하게 이어지며) 목격하는 사람들의 예의 아래 감춰진 분주한 손짓들. 하지만 프루스트는 그 위선 (아니, 무해해 보이는 이 행동들을 위선이라고 부르지도 자각하지도 않는다)을 꼬집고 비난하기보다는 미소 지으며, 아, 우린 이렇게 여러겹의 옷을 입었다오, 그 시절엔 말이지, 라며 하는데, 아, 이걸 읽고 있는 나는 뭐랄까, 그래 내 아들 전역만 해봐라... 하는 심정이었으나.... 저녁 미사후 일부러 경사진 비탈 쪽으로 밤산책을 고집하는 아버지, 길눈 어두운 어머니에게 으쓱대는 것도 잠시, 저쪽으로 보이는 집 대문. 프루스트는 저절로, 오래된 정원을 향해 '땅바닥이 나를 위해 걸었다' 라고 적는다. '습관이 나를 자기의 품에 안고 내가 아기인 양 나의 침대로 옮겨 놓았다.' 그래, 이러니 내가 책읽기를 끊을 수가 없구나. 프루스트와 나를 이어주는 가늘고 긴 끈, 하지만 질긴 이 끈, 문장에 빠져들어 읽는 독서 습관의 끈. 문장은 왜이리 아름답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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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5-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펭귄 것으로 읽고 있어요? 2권으로 절판된 특별판 ㅜㅜ
아~~ 내게 이 소설을 읽고싶다는 의지를 꺾어놓은 그 특별판. . ㅋㅋ
언니의 완독을 응원합니다!!! ^^/

유부만두 2018-05-16 15:11   좋아요 0 | URL
펭귄으로 모으기 시작해서 ... 나도 분하지만 어쩔 수 없지. ㅜ ㅜ

약속을 (누구랑?) 했으니 이번 기회에 나도 완독을 하려고.
어쩐지 프루스트는 강제성이 있어야 읽게되는 거 같아.
그런데 문장이 꽤 아름답고....이 변태스러운 화자의 독서 사랑에는 나도 공감이 되고 그래. ㅎㅎ
 

 1부의 1장을 겨우 읽고 기쁨에 겨워 마들렌느를 한 개 (아니고 다섯 개)를 홍차에 적셔 먹기 까지 했으면서 오래 덮어 두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큰아이 군복무 기간 21개월 동안 7권을 완독 하려면 1권을 석달 동안, 즉 1부는 2월말에 완독해야 시간표에 맞다. 하지만 계산에 맞게만 읽었다면 내게 왜 '오딧세이아'가 세 권이나 안 읽힌 채로 있겠으며 수 많은 전집들은 왜 먼지를 쓰고 있을까.

 

1부 마무리에서 레오나 숙모를 할머니의 자매님들이라고 (돌려 말하고 돌려 까기의 선수님들) 오해 했었는데, 어린 마르셀에게 일요일 오전, 미사 시간 전에 마들렌을 주신 분은 레오나 숙모님이셨다. 숙모님은 외할아버지의 사촌누이의 딸인데 남편과 사별후 친정인 콩브레에 내려와 두문불출하고 침대에만 머무르는 상태. 하지만 길 쪽으로 난 창을 통해 작은 동네에 자신이 모든 사건 사고(라고 해봤자, 아무개가 장봐서 가는데 아스파라거스가 팔뚝만하다, 아무개가 케익을 사서 어디로 가더라, 손님 맞이인 게다) 를 알아야 만족하는 분. 정보원으로 하녀를 심부름 보내서 가십을 들고 오게함. 입에는 늘 아, 난 글렀어, 곧 하늘로 가겠지, 라는 말을 달고 살고 이런 저런 약을 먹고, 절대 난 잠 들지 않았어, 를 자부심으로 내세우며 (우리 할머니 예전에 티비 켜놓고 누워계시기에 티비를 껐더니 '나 안잔다, 켜라' 라고 하시고 곧 코를 고셨지) 마을일과 집안일을 침대에서 지휘하시는 분. 그런데 묘하게 밉지는 않네. 마르셀의 가족은 콩브레에 오면 이 레오나 숙모님 댁에 머물렀는데 숙모님댁 하녀는 (1장에도 나오는) 프랑수와즈는 사실 기 세고 뻔뻔한 소녀가 아니라 은퇴할 나이가 된 할머니였다. 그 하녀에게 어린아이를 시켜 보너스로 돈을 건네는 장면은 서글프기도 하다.

 

나도 마들렌을 먹어서인지 (그것도 많이) 이제 슬슬 인물들의 관계와 나이, 모습들이 조금 더 자세히 보인다. 레오나 숙모님의 말투와 참견, 다른이들의 의견은 사양하는 모습이 다소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찻잔에 넣은 마른 잎 (보리수)이 바짝 말라있다가 서서히 물에 풀리는 모습, 햇살이 방 안의 공기를 덥히는 묘사는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정말. 레오나 숙모님이 마들렌을 주로 적셔 드시던 차는 홍차가 아니라 보리수차였다. 프루스트의 단어와 문장은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햇살이 방 안 공기를 빵을 굽듯한다는데 부풀리고 덥히고 구워서 표면이 바삭한 주름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 향기가 아아 내 코에도 와 닿는 것만 같다. 이런 너무 몰입하셨군요. 2장은 향기와 그림이다. (실은 아직 2장의 절반;;;) 콩브레의 교회 종탑의 묘사도 너무나 절묘한데 하늘을 콕 찌르는 창, 혹은 살짝 위로 올라가 구워진 브리오슈 같다고 하는데. 더는 참을 수가 없어! 빵집으로 달려 갔지만, 매일빵집 (뚜*쥬*)이나 막대빵집(빠**게*)에는 브리오슈가 없었다. 대신 그림으로 브리오슈를 찾아본다.

 

la Brioche (Chardin, 1763)

 

어제의 그 갈망을 누르고 (잃어버린 식욕을 찾아서, 같지만, 내 식욕은 늘 나와 함께 하지. 절대 떠나지 않아) 오늘 아침은 씨리얼. 이미 절판된 책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을 중고 가격과 같은 원서 새책으로 주문했다. 진즉에 사둘껄. 글로 읽은 그림을 눈으로 보게 되겠지만, 그래도 프루스트의 글이 더 아름다울 게 (맛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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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3-1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는 마들렌이 아니라 브리오슈까지!! 브리오슈 사러 어디로 달려가야하지?

유부만두 2018-03-15 17:35   좋아요 0 | URL
김0모 제과점에도 없네요;;;

라로 2018-03-18 16:08   좋아요 0 | URL
85도씨요. 사진과는 많이 달라보이는 약식 브리오슈.ㅎㅎㅎㅎ

psyche 2018-03-19 00:14   좋아요 0 | URL
저도 85도씨에서 브리오슈 종종 먹는데요. 이게 모양마다 이름이 다르더라구요. 브리오슈 어쩌구. 근데 저 동그란 모양이 제일 유명한건가봐요.

단발머리 2018-03-16 0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을꺼예요~~
그래야 마들렌느에 홍차를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8-03-16 08:44   좋아요 0 | URL
보리수차 대신 보리차에 마들렌 곁들이고요~ ^^
 

잠자리에서 어린 시절 느꼈던 고독과 애달픔의 묘사는 비몽사몽 간에 시간과 공간을 더듬는 작가의 아름답지만 길고 어딘지 꼬이고 엉킨 문장 만큼 흐릿했다. 여러 방들 중 하나, 어린시절 여름 휴가를 보낸 콩브레의 그 방. 옆집 사는 스완씨는 그 아버지가 프루스트의 외할아버지의 친구셨다. 스완씨네는 증권중개인 집안이니 귀족이나 사회 셀럽은 아니라고 여긴 프루스트네 집안 사람들은 편하게 대하고 있었는데, 사실 파리에서 꽤 유명한 모임에 드나드는 사람이고 부유하다. 19세기 후반이지만 신분제(책에는 카스트라고 나옴)는 공고해서 브르주와 계층인 프루스트네 고모할머니는 귀족과 친분을 맺는게 억지스러운 굴욕이라고 여겨 일부러 스완씨를 허물없이, 혹은 무시하는지도 모른다. 윗계급을 대하며 이리저리 자기변명을 만드는 외할머니와 고모할머니. 특히 외할머니의 자매인 이모할머니 두분의 이리저리 돌려 말하기는 칭찬인지 흉인지의 경계를 타며 계산된 예의, 혹은 자만심의 눈짓 몸짓이 눈에 보이는듯 재미있다. (네, 사람 은근 돌려깎는 묘사는 재미있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여름밤을 즐기고, 손님 (대개의 경우 스완씨)이 오는 경우에는 더더욱 외롭게 혼자서 저녁 8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아이 (학교에 다닌다니 열살 즈음일 것 같은데)가 이리 엄마에게 집착하다니 걱정스러웠다. 잠자기 싫고 자기도 어른들 옆에서 놀고 싶었겠지만, 규범이 무섭고, 아버지도 무섭다. 그저 엄마의 부드러운 뺨과 키스와 포옹 만을 바라는데, 그 당시는 아이이었겠지만 애타게 엄마, 엄마, 부르는 화자는 어른이 분위기를 풍긴다. 막무가내로 찾아와 애인 집 앞에서 서성대는 남자의 모습과 남편 없는 틈에 귀부인을 겁탈하는 악당의 전설을 늘어 놓질않나, 스완씨의 애정사와 빗대어서 엄마,를 부르니 이건 애가 아니라 ....젊은 엄마 옆에 엉성한 젊은이가 서 있다. 징그럽습니다. 꽤나.

 

하녀를 통해 쪽지를 보내보는 아이 (탈을 쓴 젊은이)는 기다리다 못해 어두운 복도로 나서고 엄마는 꾸중하는듯한 표정으로 (그러나 군대보내는 아들은 참고 부드럽게 대하듯! 내 눈엔 군대만 보임 ㅜ ㅜ) 아이를 달래보는데, 짜짠, 아버지가 나타난다. 오이디푸스! 밑줄 쫙, 시험문제 내기 딱 좋은 부분이네. 이 클라이막스랄까 절정 부분도 싱겁게 끝나는데, 왠걸, 아이는 엄마랑 함께 있게 되었지만 지 감정에 겨워 운다. 그리고 엄마가 읽어주는 (생일 선물을 미리 풀러서 읽어주는) 책. 상드의 책 Francois le Champi. 실은 외할머니는 상드의 Indiana를 골랐다가 프루스트 아버지가 대노해서 (당연히 그 책은 넘나 야하다는) 바꾼 책. 하지만 이 책도 엄마는 자체 검열을 통해 애정신은 건너뛰고 읽는다. 엄마가 하녀에게 하는 말투 (번역서)는 완전히 사극에서 상궁을 대하는 대비마마라 소리내 읽어보고 웃는다, 나란 독자.

 

세월은 흘러 콩브레의 기억은 그 침실과 힘들게 혼자 올라가던 어두운 복도만 남아있었는데, 어느 추운 날, 홍차와 마들렌을 마시자, 저 아래에서 그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그 방, 그 복도, 그리고 마들렌을 주시던 이모할머니의 방이 있던 건물과 정원, 광장, 콩브레 시 전체가 환하게 형체를 갖고 기억 속에 안개를 벗고 어둠을 밝히면서.

 

아아, 나는 프루스트 첫 챕터를 읽어냈단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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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2-0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예뻐요.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유부만두 2018-02-09 08:55   좋아요 0 | URL
맛도 좋았지요. 마들렌을 저 한 개만 먹은게 아니란게 함정. ^^

단발머리 2018-02-09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있는 민음사판 재쳐두고 펭귄으로 갈아타고 싶은 이 안타까운 마음은...
마들렌과 홍차 때문일까요?

라로 2018-02-09 17:06   좋아요 0 | URL
갈아타세요~~~!! 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2-10 08:39   좋아요 0 | URL
마들렌과 홍차 마시고 싶어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ㅎㅎ
주객전도라지만 뭐 서울만 가면 되죠, 그쵸?

psyche 2018-02-0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 시도는 몇번이나 했지만 결국 1권도 다 못읽었던 기억이...홍차랑 마들렌이랑 같이 먹었으면 읽을수있었을까? ㅎㅎ

유부만두 2018-02-10 07:4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언니야, 제가요,
마들렌만 몇백 통 머겄을거에요.
이게 몇번째 시도인지 세다 지침요.

불소설의 넘사벽처럼 있는 프루스트! 큰애가 군대에 가서 그 힘든 걸 한다니 아, 엄마가 뭣좀 해야지 하다가 ... 다이어트 보단 그래도 쉽겠지 싶어서 ....
느긋하게 천천히 읽으니 여러가지가 보이네요. 나이 먹어서 읽으니 그런걸까요.

라로 2018-02-09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약본으로 읽었나? 암튼 그래서 엑기스만 읽어 그런가 문장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징그러운 거 뺀 거 같아요. ㅎㅎㅎㅎ 암튼 홍차담은 컵도 이쁘고 마들렌도 먹음직합니다!! 유부만두 님 사진 솜씨도 일취월장 하시는 듯!! 👍
저는 내일 딸에게 갑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알라딘을 지켜주세요. 저는 이래서 또 이월에 글을 못쓰고 빈 날이 생겼네요. 유부만두 님 따라잡기 포기해야지. 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2-10 08:01   좋아요 0 | URL
번역문장 탓도 있을거에요. 불어도 아름답지만...읽다가 ...엉? 이거 주어가 뭐드라? ...그러고 다시 읽다 지치고 그랬어요. 그래도 우리말 번역은 진도는 나가고 있고요. 그런데 말투가 막 사극 같고 웃겨요.

딸 잘 만나고 재밌게 지내다 오세요.
전 매일매일 책 읽은거랑 먹은거랑 그런거 끄적이고 있을거에요.

사진 멋지게 나오는건 테크놀로지, 애플의 힘이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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