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딱지를 달고 나서 여유를 부리며 지난 겨울을 떠올립니다. 간사하고 얄팍한 나. 혼자 얼마나 전쟁과 평화 노래를 부르며 북치고 장구 쳤는지;;;;; 트위터에서 전쟁과 평화 F4 얘기를 주절거린 게, 접니다. 일년은 이렇게 빨리도 흐르는군요. 십년도 또 백년도 그렇게 훌쩍 지나가 버리고 역사의 도도한 강물은 흐르겠지요.
전쟁과 평화, 4부와 에필로그의 (그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다 읽고 그래도 희망과 삶! 이라고 뿌듯해 했더만 역사는 단순하지 않았어요. 그후 백년, 러시아는 다시 뒤집어지고 흔들리고 부서지고...그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끈끈한 생명은 살아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태백산맥, 태극기 휘날리며, 가 있었다면 그들에겐 지바고의 삶이 있습니다. 귀족 사회에서 시작한 시선은 저 아래 노동자, 혁명가, 민중 속으로 손을 내미는 ‘빛‘의 존재를 따라가다 의심하고 절망하고 ... 그러다가.... (엉엉엉)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톨스토이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아, 어려워 이름)의 차이를 곱씹어 봤습니다. 쓸쓸한 지바고의 결말, 그래도 놓지않는 파스테르나크 (자꾸 써서 익숙해 집니다), 이어지는 지바고, 혹은 파스테르나크(이제 외웠습니다)의 시.
올 겨울, 전평 다 읽으시고, 아 아쉽다, 러시아의 그 길고 복잡한 이름을 놓아줄 수 없어, 라고 생각하시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닥터 지바고‘가 있으니까요. 두 권이라 좀 짧은(?) 감이 있지만 겨울날 이불 속에서 읽기 딱 좋은 소설입니다. 필수템 귤 한 바가지 챙기기.
창 밖에선 늑대 대신 바람이 울고 내 맘 속엔 시 대신 허기가 샘 솟을 때, 언덕 위 그 작은 집에서 더운 물로 빨래하고 더운 김 폴폴 그 가운데, 하얀 옷을 입은 라라와 조강지처 몰라, 사랑이 좋아, 하는 지바고의 겨울왕국을 상상해 봅니다. ( 1965년 영화 ‘닥터 지바고‘ OST 라라의 테마를 틀어 놓으면 상상은 현실이 되어 보일러 온도를 올리게 됩니다) 아, 그런데 요즘 좀 푹하군요. 이제 제 기온의 기준은 러씨아. 하지만 창문 좀 열라치니 미세먼지.
저는 성덕이라 (하하하, 여러분 톨스토이를 읽고 사랑하시면 복이 옵지요) 닥터 지바고 원고를 미리 읽었어요. 러시아어는 몰라서 영문판도 구해다 읽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실제 연인과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사다(만) 놓고 흠뻑, 미리, 겨울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멋진 표지로 나왔으니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지바고, 이 바람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