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쭈글 > 양심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해...
"지금도 스페인의 세비야에는 한 제노바인이 여백에 이것저것을 가득 적어놓은 <동방견문록> 한 권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제노바인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세계 최초의 노예 무역상으로 평가받는(?) 콜럼부스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정독한 뒤 과학이 아니라 중세 신학에 근거하여 서쪽으로도 신세계가 있을 것을 믿고 항해를 시작한다. 콜럼부스가 아니었더라도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학살당했을 것이고, 선물을 받으면 더 귀한 선물로 반드시 보답했다던 인디언들의 아름다운 풍습은 파괴되었을 것이지만 어쩃든 콜럼부스는 제국주의의 원죄를 지게 되었다.
교역은 왜 어떤 역사적 계기에 의해 발생했을까.. 하는 궁금증은 최초의 교역이 반드시 공급과잉된 생산물을 내다 팔기 위한 제국주의적 경제성때문에 생겨나지는 않았을꺼라는 호기심과 맞물려있다. 조공무역이라고 알려진 아시아에서의 특이한 교역형태처럼 세계 곳곳에서 오늘날 교역이라고 불리우는 원시적인 물물교환의 모습이 궁금해서 커피와 설탕이라는 달콤한 제목에 끌렸던 것일까.
초창기 대륙간 교역의 모습은 요즘과 비교해보면 대단히 평등한 관계와 평화를 유지한 듯 보인다. 책 제목에도 나와있는 폭력, 국가적 폭력이 개입하기 전 단계인 개별 상인집단의 교역이 그렇다는 말이다. 아시아나 아메리카에 착륙한 유럽인들은 나름대로 이 신세계에 정착하기 위해 일정한 관습을 익히거나 그 지역 종교를 갖거나 심지어 혼인을 하기도 한다. 전에 읽었던 뉴욕의 역사에서도 심지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뉴욕이란 땅을 갈취한 것은 아니었다. 24달러를 주고 산 것이지.
이런 흥미로운 풍경이 깨지고 유럽의 아시아-아메리카-아프리카 식민 착취가 들어선 배경은 다름아닌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다. 어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깨달음이 이런 부분인지 모르겠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지구를 하나로 통일해 준다는 신화는 거짓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토착민들의 풍습에 따르고 정착하려 노력했던 유럽의 상인들은 교통이 발달하면서 언제든 고향에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지리적 여건이나 기후 환경의 법칙을 따르던 교역이 원거리 수송, 집단 재배 시스템을 갖추면서 자연 법칙이 아니라 경제 법칙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 것이다. 중개무역상인들 보다는 제조업자나 금융업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줄여야 하는 것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문화적 거리이다 보니 광고도 등장한다. Supermarket, 초시장이라는 개념이 이 때 생겨났다고 한다.
광화문 커피빈에서 이책을 보다가 순간 경련이 일었던 커피무역의 역사도 좀 징그러운 구석이 있다. "콜럼부스의 항해에서 산업혁명에 이르는 300년이라는 시기까지" 노예무역, 광산 채굴과 함께 붐을 이루었던 교역품목이 바로 커피, 차, 초콜릿, 담배와 같은 마약상품들이라고 한다. 이것들은 초기에는 사치품으로 주로 상류층에서 향유하지만 곧 아시아-아메리카땅에서 원주민과 아프리카인들을 착취함으로써 유럽 사회 전 계층에게 대중화된다. 커피와 설탕이 세계 교역사에서 의미있는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닌가 싶다. 꼭 필요한 물품이 아니면서도 욕망을 조장하여 수요를 창출해낸 상품들이면서 비유럽세계를 순식간에 일개 공장으로 (플랜테이션) 전락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커피나 담배나 사탕수수나 모두 원산지와 오늘날 주로 알려진 경작지대가 다르다. 가령 예멘의 교역항구이던 모카에서 처음으로 작황되었던 커피는 유럽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브라질에서 집단 재배된다. 한편으로 이런 상품들이 대중화되면서 유럽이나 미국내 노동자들이 커피나 담배에 중독되어온 역사를 보자면, 막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대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시간에 고통을 덜 체감하도록 끊임없이 커피나 담배를 강요당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영국이 일으킨 아편전쟁은 제국주의 교역이 갖는 부도덕성을 함축한다. 중국의 차를 원하되 적절한 대가를 치를 의사가 없던 제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값싸게 대량생산한 아편을 수출하여 이윤을 얻고 이를 거부한 중국인들에게 사과 대신 총을 발사한다. 이 부분에 대해 이 책의 번역자인 박광식씨가 남긴 후기를 읽다보면 책을 읽기 시작할 때의 지적 호기심이 다시금 양심의 문제로 돌아와버린다.
"1839년, 영국이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 .... '영국에게는 정당한 명분이 있다. 다른 나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모욕적인 제후-봉신 관계위에서 나머지 인류와 통상관계를 맺겠다는 거만하면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중국 쪽 주장에 전쟁에 원인이 있다.' .... 고분고분 아편을 사서 피워줄 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건방지기 짝이 없는 불량국가가 아닌가 말이다. 한 떄 생화학 무기 원료를 지원해줄 만큼 친했던 후세인이 나중에는 대량살상무기로 평화를 위협하는 악한이 된 것 처럼 말이다. ..... 이 전쟁에서 영국군 사상자는 520명이었는데, 중국 쪽은 무려 2만명에 이르렀다. .... 악당을 응징한다는 이라크 전쟁에 사실은 석유가 꽤 중요한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또 전후 후세인이 없는 이라크를 서구 자본들이 나눠먹고 있다는 점에서 아편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무척 비슷하다. ....
진보가 반복을 막지 못한 것만은 분명한데, 그것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4.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