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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변환의 정치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권기붕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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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의 시대
이매뉴얼 월러스틴 외 지음, 김영아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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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 패권의 몰락- 혼돈의 세계와 미국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한기욱, 정범진 옮김 / 창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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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
이매뉴얼 월러스틴 외 지음, 성백용 옮김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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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6-04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학, 이 들어가는 책 제목을 보면 무조건 끌립니다. ㅋ

겨울호랑이 2021-06-04 14:42   좋아요 1 | URL
정치학 책 중에서도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는 범위와 깊이 면에서 대작이라 여겨집니다.^^:)
 

「독도 1947」에서는 독도의 영유권과 관련하여 역사적 영유권을 주장하는 한국과 국제법상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대립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 회담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회담을 통해 일본령임을 넌지시 암시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공개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인해 독도 문제는 한•미•일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 책의 주된 요지다.

이러한 1951년의 모호한 미 행정부의 입장은 2018년 평창 올림픽 당시 독도를 한반도 영토에서 빼도록 요구했지만,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독도의 일본 영토 표시에 대해 침묵하는 IOC의 행태와 묘하게 닮아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시감을 느낀 김에 미뤄두었던 「독도 1947」리뷰를 시작한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의 진행과정에서 일본의 영토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결정할 권리는 미국에 있었고, 미 행정부는 자신들이 독도문제와 관련해 내린 결정이 한일관계에 어떤 파급력을 지닐지 잘 알지 못했다(p951)... 외형적으로 독도를 둘러싼 한일갈등은 1952년 일본이 한국의 평화선 선포에 강력히 반발하며 독도가 일본령임을 주장하면서 폭발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미국의 가장 중요한 극동의 동맹국들이 적전 충돌을 불사하자 미국은 중재를 생각하기도 했다. 표면에서는 한일 간에 독도논쟁이 격렬하게 전개되었지만, 그 이면에서 미 국무부는 러스크 서한을 공개하겠다고 한국정부를 억제하는 한편, 일본정부가 러스크 서한에 명시된 독도의 일본 영유권 확인사실을 알까봐 전전긍긍해하며 국제사법재판소행을 권유했다.
- P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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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04 1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도 진짜 묵직하네요. 단순히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애매한 논쟁지점을 많이 만들었다고만 생각했는데 궁금하지만 너무 두꺼워서 엄두가 안나요. 앞으로 겨울호랑이님 리뷰를 열심히 보는걸로..... ^^;;

겨울호랑이 2021-06-04 11:53   좋아요 0 | URL
저자도 서문에 ‘단행본 3권‘ 분량이라고 하고, 책이 950페이지 분량이라 적지 않지만, 많은 부분이 외교 문서에 할당되어 막상 읽으면 나름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내용을 잘 정리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1-06-04 14: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도 표기에 대한 것, 뉴스에서 봤어요.
참 못말리는 일본이올시다. 틀린 걸 가지고 참 끈질겨요.

겨울호랑이 2021-06-04 14:41   좋아요 2 | URL
저도 뉴스에서 보면서 치졸한 행태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뇌이다보면 스스로는 정신승리를 할 수 있겠고, 운이 좋아 상대가 실수하는 요행을 바라는 듯 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중심성은 세계경제의 헤게모니에 대한 프랑스와 영국 간 투쟁의 중심성의 한 결과이다. 프랑스 혁명은 이 투쟁에서 프랑스의 임박한 패배감에 뒤이어 그리고 그것의 한 결과로 일어났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헤게모니 투쟁에서 패배했던 바로 그 나라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그것이 미쳤던 바와 같은 영향을 세계체제에 미쳤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승리의 물결을 뒤집어엎으리라고 기대했던 프랑스 혁명은 반대로 지속적인 영국의 승리를 확인시켜주는 데에 결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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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근대 세계체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라는 행태를 띠며 이 세계경제는 장기 16세기 유럽에 그 기원을 둔 것으로 여기에는 봉건 유럽의 특정한 재분배적 혹은 공납적 생산양식(브로델이 말하는 "경제적 앙시앵 레짐")으로부터 질적으로 다른 사회체제로의 전환이 있었다는 것이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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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리랑 2 (개정판) 아리랑 (개정판) 2
조정래 지음 / 해냄출판사 / 202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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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부는 9월 1일을 기해 헌병대를 앞세워 호남의병을 쓸어 없애기 위한 '남한 대토벌작전'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그 계획에 따라 이미 6개월 전에 경상북도와 강원도 접경 산악지대에 투입되었던 토벌대 병력들이 호남지방으로 집중되었다. 대토벌작전의 기본 전술은 '교반적 전술'이었다. 교반은 휘저어섞는다는 뜼으로, 의병과 연계된 어떤 일정 지역을 지목하게 되면 그 외곽에 경비 부대가 포위망을 둘러치고, 포위망 안에서는 여러 토벌대가 이 마을 저 마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빠르게 옮겨다니며 기습을 되풀이하는 초토화 작전이었다.(p96)... 19월이 끝나면서 '남한 대토벌'도 끝을 맺었다. 그 두 달 동안에 죽어간 대소 의병장들이 103명이었고, 의병들은 4,200여 명이었다. 결국 호남의병은 몸체가 잘리고 뿌리까지 뽑혀진 채 실뿌리만 남게 되었다.__ 조정래, <아리랑 2>, p102/239

조정래(趙廷來, 1943 ~ )의 <아리랑 1>에서 독자들은 항일(抗日)투쟁의 뿌리를 발견한다면, <아리랑 2>에서는 이를 뿌리뽑으려는 일본의 반(反)의병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남한 대토벌 작전(南韓大討伐作戰, 1909.9 ~10)을 통해 호남지역의 의병운동을 처절하게 진압한 일본군의 만행 속에서 일종의 기시감(旣視感)을 느끼게 된다. 이후 1920년 간도참변(間島慘變), 1938년부터 만주지역에서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間島特設隊) 활동이 식민지배하에서 직접연관을 맺는다면,이의 기원은 정유재란(丁酉再亂, 1597 ~ 1598)까지 닿을 수 있으며, 아래로는 4.3 사건, 여순사건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 ~ )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참조하도록 하고 넘기되, 이러한 연관성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태백산맥>과 <아리랑>의 접점이 된다는 점을 챙기자.

임진왜란 때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때는 상감과 더불어 조정과 백성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싸웠다는 점이고, 이번에는 상감과 조정은 왜놈들 편에 서서 의병을 역적시하며 해산령을 내리거나 매도하는 가운데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싸운 것이 크게 다른 점입니다. 의병들이 무수한 희생만 내고 결국 오늘과 같은 비통한 궁지로 몰라게 된 데는 이러저러한 원인들이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제일 큰 원인이 바로 상감과 조정의 망발입니다._ 조정래, <아리랑 2>, p145/239

<아리랑 2> 에서는 송수익이 구한 말의 의병활동과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 ~ 1598)의 의병활동의 차이에 대해 말한다. 송수익은 작품에서 임진왜란의 승리요인이 선조(宣祖, 1552 ~ 1608)와 신하, 백성이 하나가 되어 왜침을 극복했다고 말했지만 선뜼 동의하기 힘들다. 실제로 선조는 별로 싸울 의지 없이 빠르게 의주까지 피난한 후 여차하면 요동(遼東)으로 넘어가려 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송수익이 선조에게 상당히 후한 평가를 내렸다고 본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동북아 최강의 함대와 이순신(李舜臣, 1545 ~ 1598)이라는 중심점이 있었기에, 이를 중심으로 결국은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당연한 분석이겠지만, 송수익이 굳이 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청의 북양함대,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물리친 일본의 해군력 때문이었을까. 이미 우리에겐 육군, 해군도 모두 열세인 상황에서 굳이 열악한 현실을 말하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 싸웠다면 허망하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으리라는 그의 생각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보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그때 실기를 했으면 그 다음 강제 양위를 당했을 때 상감은 만백성을 향해서 외쳤어야 하네. 백성들이여, 나와 더불어 왜적들과 싸우자 하고 말이네. 그러고 군대를 이끌고 앞장섰어야 했네. 그러면 왜놈들이 곧 죽이고 말았을 거라고? 죽이면 죽어야지. 그게 나라 뺏긴 상감이 책무를 다하는 길이네. 상감이 해산령을 내려도 나라를 구하겠다고 의병으로 나서서 수만 명씩 죽어가는 백성들인데 만약 상감이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가 왜놈들의 총칼에 죽었다면 백성들은 어찌했겠나. 이 땅에 합방이란 없었네._ 조정래, <아리랑 2>, p14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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