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인주(人主)란 그 나라에 있어서는 비유하자면 한 몸과 같아서, 먼 곳을 보면서도 가까운 곳을 보는 것처럼 하고, 변방에 있으면서도 왕정에 있는 것과 같도록 해야 합니다. 어진 인재를 천거하여 백관을 맡기고 정사를 닦아서 백성을 이롭게 한다면 강역 안에서는 꼭 있어야 할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서 선왕(先王)들은 황색의 귀막이 솜으로 귀를 막았고 앞에다 면류관끈으로 빛을 가리게 하여서 눈과 귀가 가까운 곳에서만 사용되는 것을 가리게 하여 귀 밝고 눈 밝음을 사방의 먼 곳까지 미루어 보이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p32/68) - P32

세조(世祖)가 병든 것을 모시는데 말할 때 눈물을 내어 떨어뜨렸었다. 세조는 반드시 대업을 짊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말하였다. "5년 동안은 모든 것을 재상에게 맡기고 너는 의견을 섞지 말 것이며, 5년이 지나서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마라. 만약 스스로 이룬 것이 없더라도 많이 한스러워 하지 마라." 임종하면서 그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만약 할아버지를 기억하면 당연히 잘 해야겠지!" 마침내 죽었다.(p30/68)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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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을 주조하는 데서 오는 폐단은 경중(輕重)이 자주 변하는데 있습니다. 무거운 동전은 사용하기 어려워서 걱정이고 사용하기가 어려우면 자꾸 가벼운 동전을 만드는데, 가벼운 동전의 폐단은 도주(盜鑄)이며, 도주하면 재앙이 깊어집니다. (p43/152) - P43

무릇 백성이 이익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물이 아래로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그 이익의 실마리를 열어놓고, 무거운 형벌로써 쫓으면 이는 그에게 비행을 저지르도록 이끌어놓고서 그 사람을 죽음에 빠뜨리는 격이니 어찌 정치한다고 말하겠습니까? (p45/152)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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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은 여러 공익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범중엄(范仲淹, 989~1052년)이 천명했던바 "천하가 근심하기에 앞서 근심하고 천하가 기뻐한 후에야 기뻐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사대부의 이념적 전통을 계승하기보다는, ‘선행’을 관리나 토착 사회와 연계를 맺어 이윤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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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황런위 지음, 이재정 옮김 / 이산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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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시대 사회경제사
오금성 외 지음 / 이산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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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와 중국 상인- 희.양 지역 휘주 상인 성장사, 1415~1784
조영헌 지음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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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시대 1415~1784- 중국은 왜 해양 진출을‘주저’했는가?
조영헌 지음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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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제시하는 논의의 출발점이자 결론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앞서 언급했던 이 시기의 중국과 그 주변은 정적이고 단절되고 폐쇄된 곳이 결코 아니라, 물자와 인력, 정보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류는 결국 대운하 및 이와 연결된 북경으로 수렴되고 이와 관련된 이해관계 속에서 통제되거나 풀렸다는 사실이다. _  조영현, <대운하 시대 1415 ~ 1784>, p24/436


 조영헌의 <대운하 시대 1415~1784 - 중국은 왜 해양 진출을 '주저'했는가?>는 여러 면에서 저자의 전작 <대운하와 중국상인>과 뗄 수 없는 관련을 갖는다. 전작에서 대운하 시대를 배경으로 휘주(徽州) 지역 상인의 면모를 통해 이윤의 추구와 자본의 축적이 이미 이 시기에 이루어졌음을 살펴봤다면(비록 유럽과는 차이가 있지만), 이번 책에서는 중국의 자본주의가 해양 자본주의로 나아가지 못한 원인을 찾는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와 연관하여 피터 C. 퍼듀(Peter C. Perdue, 1949 ~ )의 <중국의 서진 China Marches West>에서 통해 일대(一帶)를 통한 중앙아시아로의 진출이 활발히 전개된 반면, 일로(一路)를 통한 해양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함께 살핀다면 좋을 것이다. 그 전에, 오금성(吳金成, 1941 ~ )의 <명청시대 사회경제사>를 통해 이 시기 중국 경제사의 전반을 이해한다면 좋을 것이다. 


 대운하는 광대한 중국의 남북을 연결했다.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황하와 장강과 같은 자연 하천이 대부분 서쪽에서 발원하여 동쪽 바다로 흘러나갈 때, 대운하는 황하, 장강, 회수 등의 주요 수계를 남북으로 연결했다. 수양제가 막대한 비용과 인민의 노동력을 희생 제물로 삼아 대운하를 개통하면서 수나라는 일찍 망했지만, 남부의 경제 교류를 활성화하고 정치적 통합을 유지하는 데 공헌한 '대운하 효과'는 수를 이은 당대(唐代)부터 체감되었다. _ 조영현, <대운하 시대 1415 ~ 1784>, p319/436


 이렇게 청(淸)나라 시기 중국의 진출이 동남(東南)쪽이 아닌 서북(西北)쪽으로 이루어진 배경이 이해된 이후 우리는 시선을 신장/위구르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돌릴 수 있다. 중앙아시아의 동편에 자리한 이 지역은 지정학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문제와도 깊은 연관을 맺는다. 이와 함께 중앙아시아의 제국으로서 고구려를 생각한다면, 중앙아시아의 정세가 오늘날의 우리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님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바라본다면 과거 페르시아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문제도 연관지어 볼 수 있으리라. 이러한 시선의 이동은 이후 독서의 계획이기도 하다. 상세 내용은 리뷰에서 깊이 살펴보고, 페이퍼로 연관짓도록 하자...


 마무리 전에... 글을 읽으시는 모든 이웃분들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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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9-21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 즐겁고 행복한 추석 명절되십시요!ㅎ

겨울호랑이 2021-09-21 11:24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휴 되세요! ^^:)

cyrus 2021-09-21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겨울호랑이님. ^^

겨울호랑이 2021-09-21 18:32   좋아요 0 | URL
cyrus 님께서도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세요!^^:)

그렇게혜윰 2021-09-21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해서 쓴 책일텐데 평점이 안타깝네요 ㅠㅠㅠㅠㅠㅠㅠ 겨울호랑이님이 잘 주셨는데도 ㅠㅠㅠㅠ

겨울호랑이 2021-09-21 18:38   좋아요 0 | URL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취향이 항상 같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전작과 연계해서 읽었을 때 근대 시기 중국을 비롯한 동양세계가 결코 정체되고 폐쇄된 사회가 아님을 논리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렇게혜윰님 풍요로운 추석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혜윰 2021-09-21 18:46   좋아요 1 | URL
수양제가 큰 일을 하긴 했어요 ㅋ 남은 연휴도 책과 함께^^

겨울호랑이 2021-09-21 19:09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수양제의 대운하 건설은 19세기 초의 미국의 루이지애나 매입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여겨집니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제국의 파탄으로, 후자는 제국으로의 도약으로 이어졌지만요... 치수의 어려움으로 우임금처럼 고생하고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에게 결정타를 맞긴 했습니다만, 뒤를 이은 당나라가 세계제국이 되었다는 점에서 수양제는 재조명될 여지가 있는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