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8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무묘호렌게쿄[南無地法蓮華經] 나무묘호렌게쿄, 나무모호렌게쿄!" 소위 일련종(日宗)의 삼대비법(三大法)의 하나를 외면서  왜중은  지나갔다. 그것 역시 기분 좋은 풍경은 아니었다. 환국이 자신은 불교 신자가 아니었지만 어릴 적부터 절과는 친숙해져 있었고 이번에는 더군따나 부친의 관음탱화를 보고 머릿속이 씻긴 듯 맑아 있었는데 진주거리에서, 그것도 재판소 앞에서, 죄수들이 지나간 자리에서 왜중을 만났다는 것이 기이했고 거부반응이 심하게 발동했다. 긴 작대기가 순식간에 나기나타로 변하며 벤케이에 의해 창시된 일련종 자체도 결코 조선인에게는 달가운 것이 아니 었다. 법화경에 의거한 것이지만 타종(他宗)에 대하여 가장 공격적이며 전투적인 일련은 이른바
국난내습을 외치면서 입정안국론을 주장했는데 후일 일련은 국수주의의 고리로서 정한론자 군국주의자들이 곧잘 치켜들고 나오는 역사적 존재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말의 '향연'에서 촛불의 문제 부재는 심각한 문제다. 촛불을 들었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어디 먼 곳으로 가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광장을 떠난 이후 다시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지속하고 있다... 제1야당의 대통령후보가 자신이 속한 정당과 관련해 어떤 경력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정당의 전신(前身)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파란만장한 한국 정당사에서도 초유의 일이다. 이는 지속 중인 촛불혁명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어떤 수단도 다 동원할 수 있다는 결의의 표출이기도 하다. _ <창작과 비평 195호>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것> 中


   현재 대선 정국이라는 현 상황때문인지 <창작과 비평> 봄호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무는 곳은 대선과 관련한 책머릿글이다. 정책보다 네거티브가 더 기억에 남은 이번 선거에서, 5년 전 박근혜 퇴진과 3년 전 검찰 개혁을 외쳤던 촛불혁명에 대한 논의가 여기에 자리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촛불을 들었던 마음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바뀌면서 점차 정권교체 여론이 고개를 들면서 '촛불'도 이제는 더이상 말해지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창작과 비평 194호>에서 언급된 바가 있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완전히 실패한 정부인가?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창작과 비평> 봄호에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지나친 비판을 경계한다. 


 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같은 시기 다른 나라의 정부와 비교해 지금 한국정부가 특별히 부정적 평가를 받을 이유는 없다. 한반도 군사 긴장과 북미 대립, 코로나 19팬더믹 등의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했을뿐더러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도 여러모로 높아졌다. 그럼에도 정치적 반대자들만 아니라 촛불항쟁에 참여한 사람들 내에서도 비판적 시선이 적지 않다... 그렇다해도 촛불혁명의 성과를 다 부정하거나 현재 진행되는 선거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일부의 태도는 큰 문제이다. 나라의 주인이라면 촛불의 한계까지도 자신이 감당할 몫으로 생각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태도를 취해야 마땅하다. _ <창작과 비평 195호>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것> 中


 일부에서는 이러한 <창작과 비평>의 논평에 대해 '대깨문' 식의 주장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퇴임하는 문재인 정부를 돌아보는 Economist지에서 지난 2월 26일자 기사로 다룬 내용의 일부를 원문과 번역본을 함께 옮겨본다. 


 Judged against his own high standards Moon Jae-in, South Korea's outgoing president, is a failure.... With just over two months left of Mr Moon's single five-year term, none of this has come to pass... Yet when it comes to how Mr Moon is likely to be remembered, all this may matter less than it first appears to. South Korea has weathered the covid-19 pandemic more successfully than any other rich country, at least partly thanks to his government. Mr Moon's tenure also coincided with a huge jump in South Korea's global cultural clout. And he has, in a quiet way, strengthened his country's still-young democracy and begun to make life a little less stressful for its people...The legislative supermajority his party won in the elections to the National Assembly in 2020 helped the government swiftly dole out generous pandemic relief, minimising economic disruption. That victory also allowed Mr Moon to advance another goal: to improve the work-life balance of overworked South Koreans. _ <Economist FEB26TH 2022> <K-popular Why South Korea's outgoing president is less unpopular than most>


 자신의 높은 기준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실패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5년단임제 임기가 불과 두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문대통령이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가에 대해 이 모든 것이 처음보다 덜 중요할 수 있다. 한국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의 정부 덕분에 다른 어떤 부유한 국가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성공적으로 이겨냈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한국의 글로벌 문화 영향력이 크게 향상된 도약기와도 맞물렸다. 그리고 그는 조용하게 아직은 덜 성숙한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국민들의 삶에 대한 압박을 조금 덜기 시작했다... 또한 민주당은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수당이 되면서, 정부를 신속하게 도와 관대한 전염병 구호가 제공되어 경제적 혼란이 최소화되었다. 이러한  승리로 인해 문 대통령은 과로한 한국인의 일과 삶의 균형을 개선하는 또 다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_ <Economist FEB26TH 2022>


The parliamentary supermajority also helped Mr Moon fulfil his promise to strengthen South Korean democracy. He curbed the power of the public prosecutor's office by diverting some of its powers to other agencies.  Yoon Seok-youl, Mr Moon's former chief prosecutor and now the conservative candidate for president, has threatened to go after his former boss if he wins the election. If he does, the result will be a test not just of Mr Moon's probity, but also of the resilience of his reforms._ <Economist FEB26TH 2022> <K-popular Why South Korea's outgoing president is less unpopular than most>



 의회 다수당(민주당)은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는 검찰의 권한 중 일부를 다른 기관(공수처)로 이관하면서 검찰 권력을 억제했다. 윤석열 - 문 대통령의 전 검찰총장이자 보수 대통령 후보 - 은 대선에서 승리하면 전직 상사(문 대통령)를 추적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만약, 그가 그렇게 한다면 이는 문 대통령의 성실성뿐 아니라 그의 개혁의 회복력에 대한 시험이 될 것이다. _ <Economist FEB26TH 2022>


Bong Joon-ho, who was one of thousands of artists and intellectuals blacklisted by Ms Park for his left-wing views, won a Best Picture Oscar for "Parasite", a dark satire about inequality. "Squid Game", a gory television show directed by Hwang Dong-hyuk, also offering a crude critique of capitalism, topped the Netflix charts and produced countless memes now lodged in the global imagination. That both directors are now treated as national icons rather than enemies of the state suggests South Korea's democracy has indeed grown stronger under Mr Moon. That both shows depict a world hopelessly stacked against the little guy suggests that Mr Moon's promised egalitarian revolution still has a long way to go. _ <Economist FEB26TH 2022> <K-popular Why South Korea's outgoing president is less unpopular than most>


 봉준호 감독 - 그의 좌파적 관점으로 박근혜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수천 명의 예술가이자 지식인 중 한 명- 은 불평등에 대한 무거운 풍자 영화인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황동혁 감독의 잔인한  TV 쇼 "오징어 게임" 또한 자본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제공하며 넷플릭스 차트 1위에 올랐고 현재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밈을 만들어 냈다. 이들 감독이 이제 국가의 적이 아닌 국가의 아이콘으로 대접받는다는 것은 문 대통령 아래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욱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두 작품 모두 절망이 쌓인 세상에 맞선 약한 사람들을 그린다는 것은 아직 문 대통령이 약속한 평등주의 혁명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암시한다. _ <Economist FEB26TH 2022>


 국내에서는 부동산 문제가 문재인 정부 실패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지만, 외부에서 바라본 문재인 정부의 5년은 분명히 성과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점은 우리 또한 인정하기에 퇴임을 눈앞에 둔 정부의 지지율이 거의 50%에 육박하는 것이 아닐까. <창작과 비평> 봄호에서는 이러한 성과에 더해 촛불이 만든 정부에 대한 책임감을 유례없는 임기말 지지율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임기말 지지율도 대통령 한 사람에 대한 호감도 때문만은 아니다. 촛불혁명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든 안 하든, 현 정부에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생각할지라도 촛불항쟁을 거치며 시작된 이변화가 멈춰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간접적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의지는 촛불항쟁 때까지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던 의제들, 특히 성평등, 기후위기 대응, 불평등 극복 등을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 의제로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_ <창작과 비평 195호>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것> 中


 이제 사전투표가 막 끝난 시점. 아직 본선거는 시작도 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시대와 시대를 맞이하는 태도를 말하기에는 어렵다. Economist에서도 지적하듯 선거 결과에 따라 그나마 쌓아 올린 것도 무너지는 5년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기대와 현실의 차이를 줄일 수 있는 갈림길에서 아직 선택이 끝나지 않았기에 더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본선거를 기다리게 된다. 


 어쩌면, 지금 문재인 정부의 성과가 작아 보이는 것은 지난 5년동안 우리의 의식이 더 깊어지고 넓어졌기에 5년 전의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시대 정신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이전 사용하던 그릇이 불량품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당 후보도 촛불정신에 비추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현재의 선택이 우리나라가 앞으로 가야 할 길과 무관하다는 식의 시선, '모두까기'에 안주하는 태도다. 이러한 태도는 주인의 자세가 아니라 구미에 맞는 상품을 선택하는 '소비자'에 가깝다. 이러한 행태로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동력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의 선택이 나라의 주인이 온전하게 제 역할을 하는 쪽에 가까워질수록 기대와 현실의 차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촛불 항쟁을 거친 우리는 그 길에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와 있다. _ <창작과 비평 195호>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것>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장을 떠난 이후 다시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지속하고 있다. 나라의 일을 결정하는 데 매 순간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촛불항쟁을 거친 시민들이 이전과 다른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은 촛불혁명의 지속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러한 주체의 등장을 전제하지 않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촛불혁명의 성과를 다 부정하거나 현재 진행되는 선거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일부의 태도는 큰 문제이다. 나라의 주인이라면 촛불의 한계까지도 자신이 감당할 몫으로 생각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태도를 취해야 마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많은 역사, 사연이 똬리를 틀듯 둘러싸여 있는 평사리의 최참판댁, 고래 등 같은 기와집,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탈환의 최후 목표였던 평사리의 집을 거금 오천 원을 주고 조준구로부터 되찾았을 때, 그것으로 서희의 꿈은 이루어졌고 잃었던 모든 것을 완벽하게 회수했던 것이다. 그때 서희의 감정은 기쁨보다 슬픔이었고 허망했다. 그리고 뭔지 모르지만 두려움 낯섦, 과거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낯섦이었다. 서희는 회수한 평사리의 집에 꽤 오랫동안 접근하지 못했다. 그렇다. 서희는 과거를 두려워한 것이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일들은 모두 음산한 비극뿐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사리의 집은 의식 속에 방치된 채, 서희는 현실에 쫓겼는지 모른다. _ 박경리, <토지 16> , p512/594


  [토지문화재단 독서챌린지] 32주차. 개인적으로 <토지> 5부 1권의 마지막 16권을 정리하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개인의 복수를 마무리하는 서희의 심경이 담긴 부분이다. <토지>의 시작 아버지 최치수와 할머니 윤씨 부인의 잇달은 죽음으로 간도로 내몰렸던 서희는 수십 년의 시간동안 간도와 진주를 거치면서, 조준구를 옥죄고 결국 평사리의 집을 되사오는 것으로 복수를 마무리짓는다. 한 푼없이 조준구를 극한으로 내몰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재기의 발판을 남겨주고 말없이 보내준 서희의 모습은 통쾌한 복수와는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서희가 허락한 조준구의 여유는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닐까. 이를 평사리의 집을 바라보는 서희의 감정을 통해 헤아리게 된다. 


 졸음같이 달콤한 죽음의 유혹이 또다시 영광에게 스며들었다. 소년 시절에 겪었던 죽음에 대한 센티멘털, 그 미숙(未熟)한 동경에 삼십 장년이 휘청거린다. 아무 희망도 없었다. 정열과 그리움도 없었다. 세월에 바래어지고 마모된 것 같은 어머니와 누이 등의 초라한 모습에서 느낀 것은 슬픔이나 애달픔보다 세월의 찬바람이었고 움츠려지는 뭔가 형용하기 어려운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6> , p250/494


 서희는 흐느껴 울었다. 소매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았으나 흐르는 눈물은 멎지 않았다. 그가 앉은 별당, 어머니 별당아씨가 거처하던 곳, 비로소 서희는 어머니와 구천이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어머니는 불행한 여인이었던가, 나는 행복한 여인인가 서희는 자문한다. 어쨌거나 별당아씨는 사랑을 성취했다. 불행했지만 사랑을 성취했다. 구천이도, 자신에게는 배다른 숙부였지만 벼랑 끝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살다가 간 사람, 서희는 또다시 흐느껴 운다. 일생 동안 거의 흘리지 않았던 눈물의 둑이 터진 것처럼. _ 박경리, <토지 16> , p516/594


 영광이 느꼈던 죽음에 대한 센티멘털, 별당아씨와 구천에 대한 사랑 등 복합적인 감정 등이 복수 후 남겨진 서희의 마음 한 켠에 몰아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토록 원했지만 감히 돌아갈 수 없었던 기억의 공간. 다시 그 공간의 대문으로 서희가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복수 후 남겨진 여유 속에서 자신을 정리할 수 있었던 여백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서희는 평사리 고택의 문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서희의 아들 환국 또한 법당문을 열고 아버지의 관음상을 바라본다.


 법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낡은 것들 속에 새로움이 한결 선명한 관음탱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관음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미동도 없이 관음상을 응시한다.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왼손에는 보병(寶甁)을 든 수월관음(水月觀音), 또는 양류관음(楊柳觀音)이라고도 하는데 아름다웠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청초한 선(線)에 현란한 색채, 가슴까지 늘어진 영락(瓔珞)이며 화만(華鬘)은 찬란하고 투명한 베일 속의 청정한 육신이 숨 쉬고 있는 것만 같다. 어찌 현란한 색채가 이다지도 청초하며 어찌 풍만한 육신이 이다지도 투명한가. _ 박경리, <토지 16> , p564/594


 나는 그가 문을 여는 순간부터 미묘한 충격에 사로잡힌 채 그가 합장을 올릴 때도 그냥 멍하니 불상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우선 내가 예상한 대로 좀 두텁게 도금을 입힌 불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내가 미리 예상했던 그러한 어떤 불상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 향로를 이고 두 손을 합장한, 고개와 등이 앞으로 좀 수그러진, 입도 조금 헤벌어진, 그것은 불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형편없이 초라한, 그러면서도 무언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사무치게 애절한 느낌을 주는 등신대(等身大)의 결가부좌상이었다. 그렇게 정연하고 단아하게 석대를 쌓고 추녀와 현판에 금물을 입힌 금불각 속에 안치되어 있음직한 아름답고 거룩하고 존엄성 있는 그러한 불상과는 하늘과 땅 사이라고나 할까, 너무도 거리가 먼, 어이가 없는, 허리도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머리 위에 조그만 향로를 얹은 채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悲願)이 서린 듯한, 그러면서도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콱 움켜잡는 듯한, 일찍이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그러한 어떤 가부좌상이었다.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나는 미묘한 충격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 미묘한 충격을 나는 어떠한 말로써도 설명할 길이 없다. _ 김동리, <등신불> 


 <토지>에서 법당 문을 열고 환국이 바라본 관음상은 아름다움(美) 자체다. 반면, <등신불>에서 '나'가 금불각의 문을 열고 바라본 불상(佛像)의 모습은 인간이 모든 감정을 다 담고 있는 섬뜩하고 끔찍한 추(醜)의 모습이다. 등신불의 '나'는 혼란에 빠져 질문을 던진다. 저렇게 인간의 고통을 잔뜩 짋어진 불상의 모습이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을까. 


 소신 공양으로 성불을 했다면 부처님이 되었어야 하지 않는가. 부처님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모든 불상에서 보아 온 바와 같은 거룩하고 원만하고 평화스러운 상호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에 가까운 부처님다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거룩하고 부드럽고 평화스러운 맛은 지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금불각의 가부좌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벗어나지 못한 고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얼굴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어떠한 대각(大覺)보다도 그렇게 영검이 많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_ 김동리, <등신불>


 사실, 이러한 질문은 <등신불>의 '나'만 제기한 문제가 아니었다. 부활 후 심판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그리스도왕' 또는 양 떼를 인도하는 '착한 목자'가 아닌 '수난의 예수'를 인정하는 것은 중세 유럽인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중세 이후 극적으로 묘사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부활이라는 극적인 상승을 위한 예정된 하강의 이미지로서 자리매김되었을 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 정점을 보여준 극단적인 참혹함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부활'이라는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일반이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성불(成佛)'이나 '부활(復活)'의 과정일 때 비로소 가능할테지만, <등신불>에서 '고통'은 하나의 완성이기에 '나'는 혼란에 빠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수치스러운 증거를 자신의 범미주의적 시각으로 다시 흡수하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의 예수는 분명 흉한 모습이지만, 그런 피상적인 흉함을 통해서 그 희생의 내면적인 미와 우리에게 약속한 영광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비로소 현실적인 남자로, 매 맞고 피 흘리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 말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런 한편 십자가 책형과 수난의 여러 단계에 대한 묘사는 그 자체가 수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찬양하는 것이므로 극적으로 사실주의적이 되었다... 수난 받는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문화에 전해지면서 수난의 에로티시즘은 점점 더 강결해졌다. 결과적으로 고통에 시달린 성스런 얼굴과 신체에 대한 묘사는 자기만족과 성적 모호함에 가까운 하나의 유희가 되며, ... _ 움베르트 에코, <추의 역사> , p49


 반면, 환국은 '관음상'을 받아들이기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아버지가 그려낸 관음탱화는 완벽한 진선미(眞善美)의 재현으로서 관음상의 모습은 주위를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쩌면 환국은 관음상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을 지도 모른다. 인생의 황혼에 선 서희의 모습. 한 송이 국화와도 같은 모습이었을까, 빛 속에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었을까.


 마흔여덟의 최서희는 아직도 아름다웠다. 서산에 해가 지는, 그 노을빛같이 아름다웠다. 물살을 가르며 가는 배, 뱃전에 서 있는 여인, 하얀 숙소(熱素)겹저고리 치마를 입고, 옷고름이 나부끼고 치맛자락이 강바람에 나부낀다. 그는 진정 아름다웠다. 고귀하고 위엄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외로운 모습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6> , p474/594


 미학의 기원 중 하나는 수많은 문명에서 신은 빛과 동일시된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셈 족의 바알, 이집트의 라, 페르시아의 아후라 마즈다는 모두 태양이나 빛의 은혜로운 행위를 상징하는 신이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플라톤의 이데아의 태양으로서의 선의 개념과 맞닿게 된다. 그리고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이런 이미지들은 그리스도교의 전통 속에 자리잡는다... 플로티노스는 <엔네아데스>에서 단순한 형태로 인해 각 부분의 균형미를 끌어낼 수 없는 태양의 색과 빛, 혹은 한밤에 눈부시게 빛나는 별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자문한다. 그는 이데아와 유사한 방식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불의 미를 찾을 수 있다. _ 움베르트 에코, <미의 역사> , p102


 '등신불'은 그 외양의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기적을 행하는 권위있는 존재로 인식되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토지 16>에서 찾아본다. 노동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 후 혀 끝에 전해지는 밥 한 톨로 전달되는 배고픔으로부터의 해방감. 이에 대한 서술이 답이 될 수 있을까.


 한 개인의 삶은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행이나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모호한가. 가령 땀 흘리고 일을 하다가 시장해진 사람이 우거짓국에 밥 한술 말아 먹는 순간 혀끝에 느껴지는 것은 바로 황홀한 행복감이다. 한편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는 사람은 혀끝에 느껴지는 황홀감을 체험할 수 없다. 결국 객관적 척도는 대부분 하잘것없는 우거짓국과 맛 좋은 고기반찬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며 남에게 보여지는 것, 보일 수 있는 것이 대부분 객관의 기준이 된다. 사실 보여주고 보여지는 것은 엄격히 따져보면 삶의 낭비이며 진실과 별반 관계가 없다. 삶의 진실은 전시되고 정체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것이요 움직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유형무형의 질량(質量)으로 충족되며 남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6> , p536/594


 궁극적으로 해탈(解脫)과 같은 궁극의 상태를 현세에서 체현하기 직전 <등신불>의 만적(萬寂)과 <토지>의 길상의 상황이 달랐던 것에 주목하게 된다. 만적이 이복동생 사신(謝信)을 보고 느꼈던 고통, <욥기>에서 욥이 하느님께 부르짖는 외침 속에서 절대경지와 만났다면, 길상은 그와는 달리 아름다운 부인과 사랑하는 아들들과 양딸 양현과 함께 하는 상황에서 되찾은 자신의 길이었기에 더 평안하게 궁극의 경지를 만났던 것은 아닐런는지.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결국 미술작품에 재현된 미(美)는 내용이 절대경지를 표현했다 할지라도 그 바탕과 끊을 수 없는 인연(因緣)과 연결되어 있는 접점에 불과함을 생각하게 된다.


 착하고 어질던 사신이 어쩌면 하늘의 형벌을 받았단 말인고, 사신은 문둥병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_ 김동리, <등신불>


  개인적으로 <토지 16>은 일종의 완성(完成)의 의미로 읽힌다. 서희의 복수는 그가 남겨둔 작은 여지와 여백을 통해 회복과 재생으로 완결되며, 길상은 금어(金魚)로 관음탱화를 완성하며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완성이 완결(完結)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토지>가 5부 1권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는 구도 속에서도, 여지를 남겨둔 조준구에 대한 관용이 그와 가족들에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소설의 내용과도 연결지어 생각하게 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는 없는 인과율(因果律)에 의한 복수가 더 큰 것임을 서희는 알았던 것일까.


 조준구의 감각에도 산내음이 풍겨오는 사내,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형형히 빛나는 눈동자, 조준구는 믿는다. 해도사가 시적을 이루어 자기 병을 낫게 할 것이라는 예감을 믿는 것이다. 자기와 무관한 일이거나 불리할 경우에는 귀신이건 영신(惡)이건 미신으로 간단하게 단정해 버리지만 자기 자신에게 유리할 경우에는 미신이 아닌 것이다. 악(惡)과 탐욕의 속성인 것이다. 하여 치매현상으로 나타나지만 완전하다고 믿는 것이 또한 그들의 속성인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6> , p428/594


 해도사는 휘한테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똥벼락을 맞은 조병수가 대성통곡을 했다는 얘기, 가엾고 측은하며 사람이 어찌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떠날 길을 왜 생각지 않는가 하며 통곡을 했다는 얘기, 해도사는 병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심정이 바로 지금 그와 같았다. 측은하고 가엾고, 미워할 수가 없었다. 정말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구제받지 못하는 자에 대한 슬픔이었다. 하늘 아래 홀로 서 있는 자에 대한 슬픔이었다. 삭을 대로 삭아버린 육체를 안고 버둥거리는 한 생명에 대한 슬픔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6> , p432/594


 글의 마지막은 인간의 고통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인 <욥 기>에 대한 교부들의 해석을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짓는다. 만적이 스스로 해탈의 길을 선택했다면, 자신의 고통을 절대자에 대한 참회로 극복하는 욥의 모습은 같은 듯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교부들에 따르면, 욥은 하느님의 전지(全知)와 하느님께서 인간 삶의 모든 사건을 통제하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때 하느님에게 의로움을 인정받는다(올림피오도루스). 욥은 진실한 겸손(대 그레고리우스)과 온전한 참회를(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보여 준다.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배우기 위해 질문한다, 사람이 하느님께 붇는 그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하느님 앞에서 시인하는 것이다(대 그레고리우스). 교부들이 욥 안에 그리스도교적 삶의 기본 덕들이 예시되어 있다고 본 것은 분명하다. 욥이 참회했을 때는 그가 아직 시련에서 구원받기 전이며 여전히 환난 중에 있었다. 이제 욥은 사제가 되며 방문객들이 예물을 가지고 온다. 그는 자녀들을 위해 희생제품을 바친 바 있는데 이제 친구들을 위해 희생 제물을 바친다. 의인을 비난하는 사람은 중대한 잘못에 대해 속죄한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_만리오 시모네티/마르코 콘티, <교부들의 성경 주해 : 욥기> , p3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백낙청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22년 03월 05일에 저장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 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
백낙청 외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2년 03월 05일에 저장

87년체제론-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인식과 새 전망
김종엽 엮음 / 창비 / 2009년 4월
10,000원 → 9,500원(5%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22년 03월 05일에 저장

2013년 체제 만들기
백낙청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12,000원 → 11,400원(5%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22년 03월 05일에 저장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8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