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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휴(盧?, 재상)가 말하였다. "도적은 만족할 줄 모르니 비록 그에게 절월을 주어도 그가 사납게 약탈하는 것을 중지시킬 수 없을 것이며, 급히 여러 도의 군사를 발동하여 사주(泗州, 강소성 우태현 회하의 북안)에서 눌러주고, 변주(?州)절도사를 도통으로 삼으면 도적이 이미 앞으로 간다 해도 관중(關中)으로 들어올 수가 없을 것이니 반드시 돌아가서 회(淮, 회수)·절(浙, 浙江)에서 노략질 하다가 바닷가에서 구차하게 살 뿐이오." 이를 좇았다.

신이 지키지 못한 것은 정확(鼎?)이 되어도 달게 받겠지만 조정의 꾀를 냈던 신하들은 부끄러운 얼굴을 어디에 기댈 것입니까? 혹은 듣건대 폐하께서 이미 서쪽으로 순행하는 것은 논의하였다고 하는데 진실로 난여(?輿)가 한 번 움직이면 위아래가 흙덩이처럼 무너집니다. 신이 감히 아직도 살아 있는 몸뚱이를 가지고 분발하여 죽기를 무릅쓰고 말씀을 드리건대, 바라건대, 가까이 하고 친밀한 사람과 재신(宰臣)들과 더불어 깊이 논의하시어서 급히 군사를 징집하여 관문의 방어를 구해 주신다면 고조(高祖)와 태종(太宗)의 업적은 거의 오히려 부지할 수 있을 것이며, 황소는 안록산이 망한 것을 잇게 하고, 보잘것없는 신은 가서한의 죽음을 넘어서겠습니다."

경오일(24일)에 좌습유 맹소도(孟昭圖)가 소문(疏文)을 올렸다. "잘 다스려지고 안정된 시대에도 멀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시대에는 더욱 안팎이 마땅히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무릇 천하라는 것은 고조(高祖)와 태종(太宗)
의 천하이지 북사(北司)의 천하가 아니고, 천자라는 것은 사해(四海) 구주(九州)의 천자이지 북사의 천자가 아닙니다. 북사는 아직은 반드시 다 믿을 수 없으며 남사는 아직 반드시 다 소용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어찌 천자가 재상과 더불어 아무런 관계와 연관이 없어서 조신이 모두 길 가는 사람과 같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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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은 ‘1인 1표’라는 그리스 민주주의 이념이 우민통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며 비웃었다. 모든 성인 남성 시민은 1표를 행사할 수 있었지만 개인의 투표는 복잡한 그룹 투표 체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즉 개인은 자신이 속한 그룹이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할 수 있지만, 의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그룹이었다. 원래 투표 그룹은 군대 조직(백인대)이나 부족에 따라 나뉘었으나, 키케로 시대에 와서는 원래의 의미가 사라지고 부에 따른 계급 구분으로 바뀌었다. 투표 그룹별 재산 총량을 비슷하게 맞추었기 때문에 부유한 시민들이 수적으로 다수인 하층 계급보다 투표 그룹 수에서 불균형적인 우위를 점했다.

수도 로마에 살거나 투표를 위해 로마로 여행할 만큼 충분한 재산을 가진 시민들은 집정관 선출 과정이 질서 있고 (뇌물이 성행하고 선거운동원 간 폭력 사태가 빈번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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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3-03 0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키케로의 동생인가요? 그 형 못지 않은 달변가였을듯도 하네요. ^^

겨울호랑이 2022-03-03 08:51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다만, 문장가인 형과는 달리 우수한 장군이었던 동생은 여러 면에서 다른 인물로 읽혀집니다.^^:)
 

신당(辛?)은 이미 풍병(風病)에 들어 마비상태여서 섭순관(攝巡官) 서운건(徐雲虔)을 불러서 그 손을 잡고 말하였다. "나 신당은 이미 조정에 주문(奏文)을 올려서 사자를 출발시켜서 남조(南詔)에 들어가게 하였는데, 사자들이 이어서 죽어버리니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나의 그대는 이미 벼슬을 하여 나라를 위하여 죽을 생각을 하였으니 능히 이번 여행을 할 수 있겠는가? 나 신당은 풍병으로 마비가 되어 절을 할 수 없는 것을 한스러워 할 뿐이다." 이어서 오열하며 눈물을 흘렸다.

서운건이 말하였다. "선비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는 것이오. 밝으신 공에게 벽소(?召)를 받았는데, 은덕에 보답할 길이 없을까 한스러워하였으니, 감히 명령을 이어받지 않겠습니까?"

신당이 기뻐하며 물자와 장비를 후하게 갖추어주고 그를 파견하였다.

좌습유(左拾遺) 후창업(侯昌業)은 도적들이 관동(關東)에 꽉 찼으나 황상은 친히 정사를 돌보지 않으면서 오로지 노는 것에만 힘쓰고, 상으로 내려 주는 것이 한도가 없었으며, 전령자(田令孜)는 권력을 오로지하여 그 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으며, 천문(天文)이 이상하게 변화하니 사직이 장차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소문(疏文)을 올려서 극단적으로 간언하였다. 황상은 크게 화를 내고 후창업을 소환하여 내시성(內侍省)에 오게 하고서 죽음을 내렸다.

최안잠이 군사를 내어 앞뒤로 승리한 것이 한 번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강한 군사를 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훌륭한 장수는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니, 만약에 강한 적군이 홀연히 이르게 되면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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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같은 직접정치와 광장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사이버 네트워킹을 통해서 획득한 정보와 소통 방법이 축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촛불혁명’이라고 이야기할 때는 혁명으로 이미 전환이 완료되어서 새로운 사회가 시작되었다기보다는 한국사회가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해결이 필요한 근본적 문제나 제약들을 실질적으로 건드리고 변화시키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시민사회의 역량이 거의 파편화되면서 현실 권력과 대등한 역량과 동력이 없으니 엘리트 구조와 네트워크가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봅니다.

촛불이 진짜 대전환의 계기가 되려면 이번 대선에서는 쟁점에 대한 대안 경쟁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대선의 어젠다는 이미 선명해요. 자산 불평등과 부동산 문제, 기후위기, 신(新)산업과 일자리 문제, 그에 수반하는 노동권 문제, 기본소득 논의까지 해봄직한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촛불항쟁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거나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던 문제들이 최근 5년 동안 드러났습니다. 기후변화 문제가 대표적이고, 글로벌 경제의 변화 등이 그렇죠.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도 촛불혁명의 진행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촛불혁명이 수행적 과정이라면 문제의식이 5년 전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권력이 한국의 분단 상황을 시민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으로 쓰는 데 대한 저항감, 그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한반도 위기에 대한 분노. 이게 우리 사회만이 갖고 있는 분단체제적 특성인데, 박근혜정부 말기에 ‘이러다가 정말 전쟁이 날 수도 있겠다’ 하는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촛불로 분출된 측면이 있고요.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함께 부지불식간에 진행되었고,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는 일본과 미국 중심 밸류체인에만 머물지 않고 동시에 중국과의 네트워크를 심화하고 있었어요. 이러한 변화도 촛불정신의 한 축이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공정은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완벽한 공정이란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는 거예요. 소위 MZ세대가 갖는 좌절감을 극복하는 담론으로서 공정을 제시하는 건 이해하지만, 분배의 파이가 커지지 않는 상태에서 공정 자체를 국정운영의 방법론으로 구체화시키면 분명히 벽에 부딪히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좌절감은 더 큰 분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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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정월 정해일(27일)에 한림학사 노휴(盧?)가 말씀을 올렸다. "폐하께서 처음으로 대보(大寶)에 나아가셨는데, 의당 깊이 여원(黎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국가에 백성이 있는 것은 마치 초목에 뿌리가 있는 것과 같아서 마치 겨울과 가을에 북돋우고 물을 대주면 봄과 여름에 잘 자라서 번영하는 것과 같습니다.."

혹 어떤 경우에는 조세(租稅) 외에 또 다른 요역이 있는데, 조정에서 만약에 위무하여 살도록 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실제로 살 방도가 없습니다. 빌건대 주현(州縣)에 칙령을 내리시어서 응당 내지 못하여 남은 세금을 징수하는 것을 모두 중지하고 잠사와 보리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이어서 있는 곳에 의창(義倉)을 열어서 빨리 진휼(賑恤)하여 공급하십시오.

봄이 깊어진 다음에 채소 잎과 나무의 싹이 있게 될 것이고 뽕나무의 오디가 이어주니 점차 먹을 만한 것이 있게 될 것이지만, 지금 몇 달 동안이 더욱 군색하고 급하니, 이를 시행하는 것을 늦출 수 없습니다."

지금 그 명호(名號)를 비록 강등시킨다 하더라도 병사들의 숫자는 아직 그대로이니, 지군(支郡)으로 만들게 되면 양향(糧餉)이 공급하지 못하게 되고, 나누어 다른 번부(藩部)에 예속시키게 되면 사람들이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으니 혹은 옛날부터 내려온 악도(惡徒)들이 서로 도와주게 된다면 다시 창광(猖狂)한 짓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늙거나 어린 사람 300여 명을 형구(刑具)를 채워서 가두니 물의가 비등하여 도로에서는 탄식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치에 통달하고 천명을 아시는 군주가 포학하고 밝지 못하다는 비방을 받으시겠습니까? 대개 편안하면서 위험한 일이 있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분노하면서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았던 연고로 말미암았습니다. 엎드려서 바라건대, 성스러운 염려를 조금 돌이키시어서 갇혀 있는 사람들을 관대하게 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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