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이 책에서 도덕과 윤리라는 말을 구별하려고했습니다. 칸트는 일관되게 도덕적 실천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그가 도덕적이나 실천적이라는 말로 뜻하고자하는 것이 통상적인 의미와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것을 윤리라고 부르고 도덕이라는 말은 통상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즉 도덕이라는 말을 공동체적 규범이라는의미로 사용하고, 윤리라는 말을 ‘자유‘라는 의무와 관계하는의미로 사용합니다.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이것은 일반적으로 승인된 정의가 아닙니다.  - P14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도덕성 · 윤리성과 만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키르케고르라면 윤리A와 윤리B라고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는 세상(공동체)이 부과한 선악의 기준입니다. 다른 하나는 도덕성을 ‘자유‘에서 찾는 사고입니다. 칸트가 제기한 사고는 후자입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동일한 도덕성, 책임, 자유라는 말이 대립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 P38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찾으면 부모, 학교, 환경, 현대사회와 같은 것으로 소급하게 됩니다. 그결과 그런 행동을 한 이의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그렇게 되면 갑자기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원인이 어떻든간에 그 인간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요. 그 결과 여러 원인에 대한 해명은 잊히고 맙니다. 원인을 묻는 것과 책임을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원인은 철저하게 추궁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사자의 책임문제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 P44

아이를 아무리자유롭고 평화주의적으로 키워도 공격성은 남습니다. 중요한것은 그것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물론 인식한다고 해서 사태가 바뀔지 어떨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잘못된 대처나 환멸이나 좌절은 없어질 것입니다. 요컨대 책임이라는 것과 인식이라는 것을 구분하여 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 P54

칸트는 확실히 "자신의 격률이 보편적인 법칙에 합치하도록 행동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본래 그것은 행위지침이 아닙니다. 앞서 인용한 것처럼 우리는 행위에서 자유(자기원인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하려고 해도 잘못을 저지르고, 원하는 대로 실현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도 우리가 그 일에 책임감을 갖는 것은 실제로는 자유가 아니어도 자유인 것처럼 간주할 때입니다. 칸트의 "우리는 행위자스스로가 이런 행위 결과의 계열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한 것처럼 간주해도 좋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고 저지르곤 합니다. 그렇다면 몰랐을 경우에는 책임이 없을까요 그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책임이 있습니다. - P80

좋은 사원이 되라, 좋은 아버지가 되라는 것이 세상의 도덕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에 반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윤리적이라는 것은 그와 같은 도덕성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으로 오랜시간 괴로워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의무‘에 반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P102

예를 들어 나는 소를 죽이지 않지만 비프스테이크를 먹습니다. 나는 군사적·경제적 제국주의에 반대하지만, 그것을 통해 얻는 생활수준을 누리고있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으로 자기가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라는 차이는 괄호에 넣어야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인간이 죄가 많다는 이유로 모든 인간을 용서합니다. 실제로 간음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실제로 죽이는가 죽이지 않는가라는 차이는 절대성 앞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윤리도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 P113

 ‘도덕법칙‘을 알고있어도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행할지 어떨지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거기에 자유로운 의지 같은 것은 없습니다. 자유의지로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우리가 모르는 원인들에 의해 규정되고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자유로워지라"는 도덕법칙을 알고 있는 것처럼 간주할 때에만 존재합니다. 그것은 실제로 정말 몰랐는가‘와는 무관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여러 원인들을 인식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헤겔처럼 실제로 있었던 일을 합리화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 P118

그런데 그것은 정말로 ‘죽은 대중의 목소리‘ 일까요. 천황의 전쟁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입니다. 그것은 죽은 자의 의지를 대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자신의 의지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 P133

야스퍼스는 뉘른베르크재판을 ‘형사적 책임‘의 문제로 간주하고, 그 다음으로 정치적 책임, 도덕적 책임하는 식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그렇게 간단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형사적 책임‘을 충분히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후 일본의 ‘전쟁책임론이 항상 애매하고 불투명하게 된 것은 그 때문입니다. - P153

오늘날 사료적으로 명확한 사실은 전쟁 시기의 천황은 단순히 꼭두각시 인형도 평화를 애호하는 입헌군주도 아니었고 도리어 전쟁과정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천황 자신이 지위보전을 위해 그것을 획책했습니다. 전쟁 말기 그것은 ‘국체의 수호‘로 표현되었는데, 결국 천황제와 천황개인의 지위 수호가 당시 권력의 최대 목표였습니다.  - P157

전후 첫 수상은 황족인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東久淵宮秘였는데, 그는 수상으로서의 첫 라디오 방송에서 ‘일억총참회‘를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전쟁의 책임을 일부 지도자 탓으로 돌리지 말고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짊어지고 반성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최고지도자의 책임을 전혀 묻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의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할까요. 전후 도쿄재판에서 전쟁범죄에 대해 책임추궁을 당한 군인, 정치가 다수는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명령이 천황의 이름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이 명확합니다. 그런데 그런 천황이 면책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됩니다. 그리고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맙니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그것을 ‘무책임의 체계‘라고 부르고 그 원인을 해명하려고 했었습니다.  - P158

덧붙여 일본은 조선이나 대만, 만주 등을 식민지로 만들고동아시아 일대를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날 영국이나 프랑스등이 행한 식민지지배는 문제 삼지 않으면서 일본과 같은 ‘후진‘ 제국주의국가의 그것만을 ‘침략‘으로서 비난하는 것은 기묘하지 않은가.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 서양의 식민지주의에 대한 책임이 문제시되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적으로 일본의 죄를 없애주는 것이 아닐뿐더러 서양 사람들의 원한이나 보복의 문제도 아닙니다. 세계사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국가‘에 근거하여 행동해온 지난 인류사를 반복해서는 안 되며, 그때 각 나라사람들은 각국의 행위를 주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P187

역사의 재검토revisionism라는 것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는 없었다, 남경대학살은 없었다와 같은 사고가 리비저니즘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책임‘을 소거하는 방향에서 이야기되는 재검토입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의미에서 역사의 재검토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배 하에 있었던 자의 눈에 비친 역사가 있고, 여성의 눈에비친 역사가 있고, 동성애자의 눈에 비친 역사가 있습니다. 아직 그것들은 소리가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서서히 침투하는 것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P188

하지만 선진국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후진국에게 경제성장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더구나 대재해는 환경오염에 책임이 없는 후진국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날 것이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합의‘를 필요로 합니다. 덧붙이자면 위기를 체험하는 것은 오히려 아직 태어나지 않은사람들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성인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그들사이에 이루어진 ‘합의‘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윤리성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타자와의 관계에도 존재합니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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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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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에서 서구 과학 기술은 오로지 군사기술 측면에서 습득되기 시작했다. 주된 학습 목적은 어디까지나 기술, 즉 군사기술에 있었고 과학은 기술 습득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학습됐다. 일본인들은 근대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사회사상과 정치사사이 아닌 과학을 통해 인식했다. 그 과학은 증기로 움직이며 강력한 대포를 갖춘 군함, 다시 말해 군사기술로 구체화됐던 것이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21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降, 1941 ~ )은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에서 일본 과학기술의 동기와 기원, 근대화와 군국화 과정에서의 역할, 전후 과학기술의 흐름을 개략적으로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의 서양 과학(科學) 수용은 오로지 군사력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 이외 다른 분야에서의 발전은 부작용(side effect)에 불과하며, 근대 150년 체제의 처음과 끝은 '군사력으로서의 과학'으로 정리된다.

일본 현대사 연구자 존 다우어는 "쇼와 시대의 마지막 몇 년간에 이르면, 민수 목적으로 개발된 일본의 고도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전용한 여러 사례에서 보듯 일본은 군산복합체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세계 유수의 군사적 액터로서의 잠재 역량을 비축할 만큼의 눈부신 기술적 성과를 달성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했다. (다우어 2001) 일본인 스스로가 깨닫지 못했거나, 깨닫지 못하는 척해도 외국 연구자는 냉정하게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314

대표적인 사례로 소재, 장비, 부품과 관련한 일본의 중소기업을 들 수 있다. 기술집약적인 일본 중소기업들은 세계화 시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Global Supply Chain)에서 하나의 축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지난 2019년 일본의 대한(對韓)수출 규제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일본 지방 자치 재정에 있어 관광과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일본 제조업의 탄생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일본 메이지 시대 기계공업 발전은 군의 근대화가 이끌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수입된 최신예 플랜트의 저변에 재래의 의욕적인 직인들이 수입된 기계를 모델로 인력이나 수력 구동, 목재 내지 일부 금속제의 비교적 저렴하고 재래 직인이 사용하기 좋은 양화 洋和 절충의 기계, 또는 비교적 단순하고 소형화된 모방품을 만들어낸 데 있다. 또 이런 국산 기계 제조 혹은 수입 기계 부품 제조에 종사하는 중소기업이 지방도시에 속속 생겨난 것에 의해 달성됐다. 이 점은 특별히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109

저자는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을 통해 군사 목적의 과학에 매우 비판적이다. 1968년 도쿄대의 전학공투회의 대표로 투쟁을 이끈 저자의 이력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저자의 전작(前作)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을 떠올린다면 책의 결론이 군국화되는 일본에 비판으로 끝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본문을 통해 무조건적인 평화운동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정치, 경제적으로 평화로 가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패전 당시 미국 점령 정책의 기본방침은 일본의 완전한 비군사화였고 배상 청구도 그에 따라 엄중해 "만약 실행된다면 일본의 잠재적 군사 생산 능력은 뿌리째 뽑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48년(쇼와 23년) "미국의 대일정책은 배상보다 '경제 안정'으로 크게 변경"됐고, 그 결과 "잠재적 군사공업의 대부분은 파괴와 철거를 면하게 된" 것이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304

이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일본의 원자력 발전을 단순한 에너지 산업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유사시 즉각적인 핵무장을 위한 예비 핵무장을 추진하는 현재 일본의 분위기 안에서 그는 1940년대의 총력전 체제의 연장을 읽어낸다. 그리고 이를 비판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무장이 가능한 상태로 일본을 만들어둬야 한다는 '잠재적 핵무장' 노선은 "모든 산업 능력은 잠재적 군사력이다"라는 예전 총력전 사상을 답습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기술적으로도 극히 곤란하고 초거액의 경비를 요하는 핵연료 재처리와 중식로 건설에 일본이 계속 집착해온 이면의 이유이자 정체 세계에서 원자력발전이 추진돼온 배경이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347

향후 전쟁이 총력전이 되면 평시의 산업 생산 능력과 연구개발 능력은 잠재적 군사력을 뜻하고, 평시부터 능력을 높여 전시에 국력을 얼마나 유효하게 사용하는지가 전쟁승리의 조건이 된다. 바꿔 말하면 평시란 다가올 전쟁의 준비기간이고, 평시 생산 능력의 향상과 자원 비축, 과학연구와 기술 개발은 전쟁 준비의 의미를 띠게 된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188

역사학자 고바야시 히데오가 지적한 것처럼 "만주 땅에서 시작된 총력전 체제는 전후에도 모습만 바꾼 채 살아남아 고도성장을 준비했던 것이다. (고바야시, 2004)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281

독자들은 본문을 통해 근대화 과정의 도식 중 일부 '자본-과학-군사력'의 결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빚어진 비극을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삼전도에서와 같은 치욕을 자초하고 모든 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잔인한 2023년 3월의 현실에서, 일본의 근대화 역사를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읽게 된다...

그 후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국내 노동자의 다수가 전쟁에 동원돼 노동력이 한층 부족해지자 강제연행으로 끌어모은 조선인과 중국인, 그리고 연합군 포로가 열악한 노동조건하에서 일을 강요당했다. 조선인이 가장 많아 1939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72만5,000명이 연행됐다. (다케우치 2014년) 끌려온 조선인들이 배치된 산업은 주로 석탄광업, 금속광업, 토목건축업, 제강업이며 이 중 석탄광업이 전체의 절반에 가깝다. 그리고 "광업기업에 송출된 조선인은 탄광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위험한 노동에 종사해야 한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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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성공‘과 ‘기적‘은 개국과 근대 과학기술 습득 개시의 적시성, 국가의 강력한 지도와 진취적 경영자의 출현, 에도 시대 이래민중의 높은 문자해독률, 능력도 의욕도 있던 사족의 자제가 능력을 발휘토록 한 효과적인 교육제도의 형성, 재래직인층 내부 ‘풀뿌리 발명가‘의 탄생 등을 원인으로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농촌 노동력의 가혹한 수탈과 농촌 공동체의 무참한 파괴도 불가결의 요인이 됐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P131

철도 건설은 조선의 쌀과 목재, 광석 등을 수입하고 면포 등 제품을 한국에 수출하는 경제적 목적과, 대륙을 향해 군대를 신속히 수송하는 군사 목적으로 추진됐다. - P142

조선반도 철도 건설에서 경제와 군사 중 어느 쪽에 더비중을 두었는지, 재계와 군·관료 중 어느 쪽이 이니셔티브를 쥐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일본 연구자들 간에 이론이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당시 한국에 대한 최대 투자였던 경부철도에 일본 자본가가 서구 자본가와 공동 대응하는것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 특히 육군은 이런 구상을 거부했다. 한국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려는 군사적·정치적 관점이 경제적 관점을 압도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타당할 것이다. (이시이 2012) - P143

향후 전쟁이 총력전이 되면 평시의 산업 생산 능력과 연구개발 능력은 잠재적 군사력을 뜻하고, 평시부터 능력을 높여 전시에 국력을 얼마나 유효하게 사용하는지가 전쟁승리의 조건이 된다. 바꿔 말하면 평시란 다가올 전쟁의 준비기간이고, 평시 생산 능력의 향상과 자원 비축, 과학연구와 기술 개발은 전쟁 준비의 의미를 띠게 된다.  - P188

현지에서 일했던 일본인 기술자는 "저렇게 전력이 풍부하지만 전기가 들어오는 곳은 일본인 주택지역뿐이었다. 흥남만 반짝하고 전기가 들어오지만 산 하나만 넘어가면전기는 없었다"고 했다. (사와이 2015) 거대 발전소의 전력은 콤비나트와 일본인 주택지에만 사용됐던 것이고, 토지를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하거나 가혹한 노동에 내몰린 현지 조선인과 중국인에게는 어떤 혜택도 없었다. 에너지혁명에 의한 최신 화학공업의 발전은 한편으로 식민지의 자원과 노동력 수탈에 의해 지탱되었던 것이다. - P202

그 후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국내 노동자의 다수가 전쟁에 동원돼 노동력이 한층 부족해지자 강제연행으로 끌어모은 조선인과 중국인, 그리고 연합군 포로가 열악한 노동조건하에서 일을 강요당했다. 조선인이 가장 많아 1939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72만5,000명이 연행됐다. (다케우치 2014년) - P275

역사학자 고바야시 히데오가 지적한 것처럼 "만주 땅에서 시작된 총력전 체제는 전후에도 모습만 바꾼 채 살아남아 고도성장을 준비했던 것이다. (고바야시, 2004) - P281

일본 현대사 연구자 존 다우어는 "쇼와 시대의 마지막몇 년간에 이르면, 민수 목적으로 개발된 일본의 고도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전용한 여러 사례에서 보듯 일본은 군산복합체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세계 유수의 군사적 액터로서의 잠재 역량을 비축할 만큼의 눈부신 기술적 성과를달성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했다. (다우어 2001) 일본인 스스로가 깨닫지 못했거나, 깨닫지 못하는 척해도 외국 연구자는 냉정하게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 P314

 경제성장의 지속을 전망하기 어려워진 이 시점에서 재계는 이미 군수 생산의 확대를 전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 아베 정권하에서 공공연한 현실이 되면서 재계와 정부가 군수 부문을 ‘일본경제의 견인차‘로 기대하기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도 예를 들면 일본의 대표적 기업인 도시바는 이미 가전 부문을 중국 기업에 넘겼고, 원전 부문은 파탄한 데다 그 때문에 반도체 부문도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남은 것은 군수 생산 부문뿐이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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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강제동원 판결을 ‘반일(反日)‘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정부안에 대한 비판을 쉽게 반일 선동‘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조성렬 전 주오사카 총영사는 이러한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만든 상황은 마치 우리가 국제법을 위반했고 일본이 정당한 것처럼 주객을 전도시켰다." - P12

"강제동원 피해의 배상 문제는 단순히 금전적인 채권·채무 문제가 아니다. 인권침해 사실의 인정과 사과를 통한 피해자의 인간 존엄성 회복과 관련한 문제다. 일본 기업과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등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사과하는 것은피해 회복과 화해,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 설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 P13

자유와 인권 등 양국의 공동 이익을위한다는 윤석열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안이 낳은 모순이다. 가장 자유와 인권이 필요했던 강제동원피해자들의 자유와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자유는 국가라는 대표적 공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차원에서 발전해온 개념이다.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법치‘에도 의문을품게 만든다.  - P13

외교는 51대 49 의 결과를 놓고, 서로 자기가 51 이라고 말하는 게 교섭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안을 보면 과연 우리가 무엇을 얻었나? 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외교교섭에서 이런 식의 자세와 역량을 가지고 대일 문제를 처리해 나간다면 앞날은 정말 어두울 수밖에 없다. - P14

챗지피티에 대한 산업계 기대와 우려만큼이나 AI 제작부터 활용까지의 윤리 기준과 그 적합성에 대한논의를 테이블 위로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챗지피티 등 과학기술 발달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한 사회에 살고 있으나 그만큼 무엇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4차 산업혁명과 AI, 빅데이터라는 단어에 가려 우리가 지켜야할 많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지 언론의 감시가 필요한데, 아직까지는 활발하지 못하다. - P23

공수처 정원은 85명이다. 검사 25명, 수사관 40명, 행정직원 20명으로 구성됐다. 2023년 3월9일 기준 공수처 검사는23명이다. 정원보다 두 명 적다. 수사관도 38명으로 정원에 못미친다. 행정직원 역시 19명이 일하고 있다. 지금의 직원수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서야 본격적으로 채워졌다. 첫 채용부터 미달이었다. 공수처는 출범 이후 한 번도 정원을 채운적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숫자가 아니다. 기관 ‘전체 인력‘ 자체가 적고, 이로 인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부작용이다. 공수처 검사들은 업무 집중이 어려운 수준이라고 토로한다. 시간과 인력이 필요한 인지수사는 시도부터 쉽지 않다고 말한다. - P25

공수처법 문제는 인력에 그치지 않는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제한적이고 불규칙하다. 이를 두고 공수처 출범 당시에도 법조계에서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해괴한 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과도한권한 부여를 경계해 수사 범위를 축소하고 제한한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들도 "실무적으로 들여다보면 사실상 할 수 있는 수사가 거의 없다"라고 말한다. - P28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발전량 예측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원자력이나석탄화력발전은 몇 개의 대규모 발전소를 중앙집중식으로 운영할 수 있지만,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는 발코니·주차장·유휴지 등에 소규모로 수십만 개씩 분산운영될 뿐 아니라 날씨 등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간헐성 자원이기 때문이다. - P46

흔히 치매는 기억을 잃는 병이라고들하지만 이 책에서는 희미해지는 기억못지않게 감각의 왜곡이 환자를괴롭힌다는 점을 강조한다. 흰 접시 위에놓인 흰살 생선을 먹기 힘든 것도, 반들거리는 대리석 바닥에 발을 들이기힘든 것도, 사이렌 소리에 공포를 느끼는것도 모두 치매로 인한 감각기관의 문제때문이다. - P66

‘꼬마산타‘의 슬로건은 왠지 위안이 된다. "느려도 좋아, 낮아도 좋아, 정상이 아니어도 좋아, 우리는 꼬마산타." 다치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오래오래 산을 타는 게 이들의 목표다. "봄에는 어느 산이든 다 예뻐요. 연둣빛 새순이 나잖아요. 어느 산이든, 가까운 산에 가세요. 그 산이 제일 좋은 산이에요."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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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물리 - 생활 속에서 재미있게 배우는 물리 백과사전 누구나 과학 시리즈
게르트 브라우네 지음, 정인회 옮김, 곽영직 감수 / Gbrain(지브레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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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은 시간의 본질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물리학적 의미만을 다룬다. 즉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 ~ 1955의 말에 따르면, "시간은 시계가 측정하는 것이다." 이 말은 유치하게 들릴지 몰라도 바로 이러한 시각을 철저히 적용함으로써 20세기 초에 이르러 우리의 전통적인 시간관념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새로운 시간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p15)... 앞에서 인용한 아인슈타인의 말을 이용하면 "길이는 자가 측정하는 것이다." _ 게리트 브라우네, <누구나 물리> , p17

고전 물리학부터 양자 물리학, 천체 물리학까지 물리학 이론을 실생활 사례와 접목시킨 알기 쉬운 물리학 입문서. 책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요약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알기 쉬운'과 '입문서'는 호완 가능한 단어는 아니라는 생각을 갖기에 사용에 조심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어느 분야에 처음 접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입문서'는 초급자들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깊이와 분량을 많이 가져갈 수 없는데 반해, 내용적으로는 얇게나마 폭넓게 정리되는 것이 공통이다. 입문서의 이런 특성을 생각해본다면, 많은 내용들이 분명 제시되지만, 그 내용들의 인과관계나 내용의 의미를 독자들이 충분히 생각할 여유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입문서는 결코 알기 쉬운 책이 아니라 여겨진다.

내용적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 '하고 기존 책과 다른 점을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그러한 입문서를 발견하는 것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이 동시에 적용될 수 있는 사건을 찾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라 여겨진다. <누구나 물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서두에 제시한 <누구나 물리>의 한 문장은 물리학의 많은 부분을 보여준다 생각되어 옮겨본다.

시간과 공간을 대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학문인 물리학. 시계와 자로 시간과 공간을 측정하듯, 물리적 의미를 기준점을 가지고 측정한다는 문장 안에서 기준 단위(m, kg, J 등)를 통해 사건들이 빛에서 열로, 에너지가 운동으로 변환되는 것을 정량(定量)적으로 측정하는 구조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환구조 속에서 추상적인 수학과는 다른 물리학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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