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전집 5 - 테아이테토스 / 필레보스 / 티마이오스 / 크리티아스 / 파르메니데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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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b "소크라테스" 하고 파르메니데스가 말했답니다. "논의에 대한 그대의 열성은 감탄받아 마땅하오. 말해보시오. 형상들 자체를 형상들에 관여하는 사물들과 구분하는 이런 구분법은 그대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인가요? 그대는 또한 우리가 갖고 있는 같음과는 별도로 같음 자체 같은 것이 있으며, 그 점에서는 하나와 여럿과 방금 그대가 제논한테서 들은 모든 것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나요?"... c "소크라테스, 다음과 같은 것들은 어떻소? 머리털이나 진흙이나 먼지나 그 밖에 더없이 무가치하고 하찮은 것처럼 가소로워 보이는 것들 말이오. 그대는 그런 것들 하나하나에도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과 다른 별도의 형상이 존재한다고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처한가요?" "아니요" 하고 소크라테스가 대답했답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가 보는 그대로이며, 그런 것들의 형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겠지요."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483


 플라톤(Platon, BCE 428 ? ~ BCE 348 ? )의 <파르메니데스 : 형상에 관하여 Parmenides>는 여러 면에서 인상적인 대화편이다. 다른 대화편에서는 자신만만하게 대화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특기인 산파술(Socratic method)을 통해 상대를 자신의 의도대로 몰아세우던 소크라테스(Socrates, BCE 470 ~ BCE 399)지만, 이번 대화편에서는 만만치 않은 상대인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E 546~ BCE 501)를 만나 시종일관 끌려다니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플라톤 철학의 사상적 기반인 이데아(Idea)론 자체가 흔들리는 충격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131b "아니지요" 하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답니다. "그것(형상)은 하나이자 같은 것이고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하지만 그 자체에서 분리되지 않는 날(日)과 같으니까요. 그처럼 각각의 형상은 하나이자 같은 것으로서 모든 것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어요."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484


 형상(形相)의 세계인 이데아들과 이들의 모방으로 이루어진 감각의 세계. 소크라테스는 구체적으로 파르메니데스에게 이데아론을 펼치지만, 오히려 관여의 딜레마, 가분성(可分性)의 역설, 구분과 불가지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무엇이 형상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懷疑)가 제기된다. 그렇다면, 이데아의 존재는 부정되어야 하는가? 파르메니데스는 이에 대해서도 긍정하지 않는다. 이데아를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패러독스(paradox). 


135a "그렇지만 소크라테스" 하고 파르메니데스가 말했답니다. "형상들에는 이런 문제점들과 그밖에도 수많은 문제점이 내포될 수밖에 없소. 만약 사물들의 그런 형상들이 존재하고 누가 각각의 형상을 '어떤 것 자체'로 구별한다면 말이오.... b "그러나 소크라테스" 하고 파르메니데스가 말했답니다. "만약 누가 방금 언급한 문제점들이나 그와 같은 다른 문제점들에 주목한 나머지 사물들에는 형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개개의 사물을 위해 형상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사유가 향할 곳이 어디에도 없을 것이오."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494


 이런 상황에 대해 이후 대화편에서 파르메니데스는 청년 아리스토텔레스(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른 인물)를 상대로 하나(一者)의 특성에 대해 보다 깊은 논의를 이어간다. 


141e "따라서 하나는 하나가 되는 방법으로 존재하지 않네. 그렇다면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에 관여할 테니까. 그러나 하나는 분명 존재하지도 않고 하나도 아닐세. 이런 논의가 믿을 만한 것이라면. 142a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자기에게 속하거나 딸린 것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하나는 이름도 없고 설명될 수도 없으며, 지식이나 감각적 지각이나 의견의 대상이 될 수도 없네."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513


 파르메니데스는 대화를 끌고 가면서 하나의 가설에 대해 여러가지의 연역(演繹)을 시도한다. 이러한 연역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가설의 참, 거짓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一者)안에 포함된 여러 모순이 드러나면서 더 혼란에 빠지게 된다.


162a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하나는 존재하는 것 같네. 만약 존재하지 않는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기 위해 어떻게든 자기 존재의 일부라도 포기한다면 그것은 곧바로 존재하는 것일테니까. 따라서 하나가 존재하지 않고 계속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려면, 자신이 존재하지 않도록 강제할 존재하지 않음의 존재를 가져야 하네. 이는 존재하는 것이 완전하게 존재하려면 존재하지 않음의 존재하지 않음을 가져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세. 그래야만 존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도 존재하지 않을 걸세. 존재하는 것이 완전하게 존재하려면, 존재하는 것의 존재에 관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의 존재에는 관여하지 않을테니까. 한편 존재하지 않는 것이 완전하게 존재하지 않으려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위해 존재하지 않음에 관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위해 존재함에 관여할 걸세.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에 관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함에 관여함으로,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만큼 존재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존재함에 관여할 걸세."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569


  대화편을 읽다보면 느껴지지만, 이데아론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개념의 형상화다. '없음'이라는 존재가 있음을 통해 비로소 '부재(不在)'가 될 수 있다는 설명 구조 속에서 모든 것은 언어로 표현될 수 있고, 언어로 표현되었다는 자체로 존재성을 얻으며, 이러한 존재성이 명사/주어로 나타나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심지어는 대립되는 술어(術語)마저 흡수하면서 이데아론의 취약함을 스스로 드러낸다. 


 165d "따라서 만약 하나는 존재하지 않고 여럿이 존재한다면, 여럿은 반드시 같기도 하고 서로 다르기도 하며, 접촉하기도 하고 서로 떨어져 있기도 하며, 온갖 운동을 하기도 하고 온갖 방법으로 정지해 있기도 하며,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하며, 생성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텐데, 그런 것들을 빠짐없이 일일이 열거한다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는 쉬운 일일 것세."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579


 <파르메니데스>는 이처럼 플라톤 핵심 사상인 이데아론이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음을 스스로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이러한 약점이 젊은 시절 소크라테스가 파르메니데스와 대화를 통해 드러났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다른 대화편에서 늙은 소크라테스는 젊은 제자들과 대화를 통해 이들을 불멸의 형상, 이데아 세계로 이끈다. 과거 자신이 인정했던 이데아론의 약점을 감추고서.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강조한 플라톤 사상 자체가 서양철학사 전반의 거대한 지적 사기극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 역시 시간 안에 존재하면서도 시간 밖에서도 존재하는 이데아의 모순이 소크라테스에게도 투영된 작가의 의도적 노림수라고 읽어야 할까. 여러 면에서 <파르메니데스>는 생각할 거리와 함께 혼란을 주는 텍스트임이 분명하다.


 152e "따라서 하나는 자신과 같은 동안 생성되기도 하고 존재하기도 하므로 자신보다 더 젋지도 더 늙지도 않으며, 자신보다 더 젊어지지도 않고 더 늙어가지도 않네."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544


 155c "이 모든 것에 따르면 하나 자체는 자신이나 다른 것들보다 더 늙기도 하고 더 젊기도 하며 더 늙어가기도 하고 더 젊어지기도 하는가 하면, 자신이나 다른 것들보다 더 늙지도 더 젊지도 않으며 더 늙어가지도 더 젊어지지도 않네. 그러나 하나는 시간에 관여하여 더 늙어가기도 하고 더 젊어지기도 하므로 반드시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관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나는 존재하고 존재했고 존재할 것이며, 생성되었고 생성되고 있고 생성될 것이네."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550


 마지막으로, <파르메니데스>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 ~ 1976)의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의 연결 지점이라 생각될 수 있는 문장을 옮기는 것으로 글을 갈무리하려 한다. 존재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에 관여하는 하나(一者),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시간 안에 존재하지 않은 하나(一者). 이러한 모순된 성격이 시간 속에서 동시에 공존하는 지점이 '찰나'라면, 하이데거는 그 '찰나'를 바로 현재에 미래를 향해 기투하는 그 시점에서 포착한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존재와 시간>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로써 <테아이테토스> vs 러셀, <파르메니데스> vs 하이데거의 대진표가 짜여졌다.


 156d "그것이 변할 때 그 안에 있음직한 이 이상한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찰나 to exaiphnes 말일세. '찰나'는 거기서부터 두 상태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것 같으니까. 어떤 것이 정지해 있는 동안에는 정지해 있는 상태에서 변하지 않고, 움직이는 동안에는 움직이는 상태에서 변하지 않기 때문이지. 대신 찰나라는 이 이상한 성질은 운동과 정지 사이에 잠복해 있고 어떤 시간 안에도 없네. 그래서 그것 안으로,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움직이는 것은 정지해 있는 상태로 변하고, 정지해 있는 것은 움직이는 상태로 변한다네."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553

166c "그렇다면 한 마디로 ‘만약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옳은 말을 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하기로 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기로 하세. 하나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하나도 다른 것들도 자신들과 관련해서든 서로와 관련해서든 온갖 방법으로 모두 다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며,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같기도 하다고 말일세." - P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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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
이기숙 옮김, 나주리 해제 / 마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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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흐의 칸타타는 그의 여타 장르의 작품들, 특히 기악 작품들에 비해 더 강력하게 당대에 속해 있다. 300여 년 전 독일 루터파 교회의 예배와 전통, 바로크 궁정의 음악문화에 깊이 발을 딛고 있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양적, 질적으로 중요한 영역을 이루는 교회 칸타타는 수년 동안 중단되기를 반복하면서 세 시기에 중점적으로 작곡되었다. 성실한 직업음악가이자 교회음악가의 교회 칸타타는 그의 창작전체에서 어느 모로 보나 특별하고 월등한 위상을 점한다. 바흐 작품 번호(Bach-Werke-Verzeichnis : BWV)가 교회 칸타타로 시작하는 이유다. _ 이기숙, 나주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 , p55


 이기숙, 나주리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 J.S. Bach Die Kantaten>은 제목 그대로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의 교회 칸타타 작품 전반에 대한 설명과 곡들의 가사를 번역한 책이다. 기독교 전례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성탄절, 사순절 등 교회 전례력에 맞춰 정리된 목차를 통해 개별 작품들이 1년의 교회력 안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곡의 분위기와 흐름을 어느정도 짐작하게 도움을 준다. 


 개인적으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를 통해서 개신교 교회 음악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 많아 큰 도움이 되었다. 바흐의 교회 칸타타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 가톨릭의 미사곡이라 여겨지는데, 개신교 예배와 가톨릭 미사 전례 특성이 곡의 형식과 흐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칸타타 해설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가톨릭 미사의 특징은 재현((Mimesis)이라 생각다.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로 이어지는 예식의 큰 흐름은 과거 사실의 반복이며, 반복을 통한 확인, 성찰과 다짐의 방향으로 진행되며 그 과정에서 제의, 제기 등이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며 예식을 하나의 극(劇)으로 만든다. 마치 오페라(opera)와 같이 진행되는 시각, 청각적인 효과 속에서 미사곡들은 큰 흐름을 진행하기 위한 것으로 자비송(Kyrie), 대영광송(Gloria) 등의 곡들은 전례라는 전체에 대해 부분으로 기능한다. 반면, 바흐의 칸타타는 이와는 다른 곡이 표현하는 세계가 있다.


바흐의 칸타타들이 내재하는 세계는 우리의 세계와 다른 것, 이질적인 것이다. 바흐의 칸타타들이 울리며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할 때에도 여전히 그것들은 우리에게 낯선 세상에 속해 있다. 그 낯선 세상이란 300여 년 전 독일 루터파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예배이고 전통이다. _ 이기숙, 나주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 , p19

 

 가톨릭 전례에 익숙한 이들에게 바흐의 칸타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코로스를 떠올리게 하는 코랄(Choral), 아리아(Aria), 레치타티보(Recitativo)는 가톨릭 미사 전례의 주제를 하나의 곡(曲)안에 담아낸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미사는 사제에 의해 주도되는 현재 안에서 반복되는 과거 사실이라면, 칸타타의 세계는 관념적이고 텍스트적이면서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코로스의 역할처럼, 신도들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전례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해설 속에서 이런 느낌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오페라와 달리 칸타타는 흔히 관조적이거나 성찰적인 주제를 취하므로, 칸타타의 레치타티보는 특정 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문제, 감정에 대해 설명하는 가사로 확대되곤 한다. 그리고 그 상황이나 문제, 감정은 일반적으로 레치타티보의 뒤를 잇는 아리아에 의해 해석되거나 심화된다. 아리오소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중간 즈음에 놓인 것으로 아리아보다 레치타티보에 가까울 때가 더 많다. 바흐의 교회 칸타타는 (루터교 '찬송가'인) 코랄로 끝을 맺는 경우가 잦은데, 코랄은 흔히 신도들을 상징한다. 그렇게 신도들은 코랄을 통해 가사의 상황에 동참하게 된다. _ 이기숙, 나주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 , p18


 해설을 통해 신교 분리 이후 성경으로, 그리고 말씀으로 돌아가라는 루터(Martin Luther, 1483 ~ 1546)의 방침은 전례에도 반영되었고, 설교를 보완하기 위한 음악적 도구로서 칸타타는 그 형식이 발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흐는 이러한 교회의 방침에 맞는 곡을 만들면서도, 전례가 지나치게 엄숙해지거나 지루해지지 않도록 칸타타의 형식 내에서 보다 풍부한 음악적 효과를 담아내기 위해 종합예술인 오페라적인 요소를 가져왔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칸타타를 듣는다면 단순한 찬송가 이상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의 의의를 여기서 찾고 싶다.


 루터파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예배에서 중심이 되었던 것은 성경의 하나님 말씀을 공포하는 설교였다. 설교를 가장 위대한 예비(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여긴 루터(Martin Luther, 1483 - 1546)의 믿음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설교는 한 시간가량 행해졌고, 칸타타는 설교 전에, 그러니까 복음서 봉독과 신앙고백 사이에서 연주되며 설교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다. 칸타타는 다채로운 음악적 표현을 통해 봉독된 성경 구절을 풀이하거나 강조함으로써 신도들이 경건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또 무엇보다 설교를 듣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이다. 이렇게 일요일 예배와 축일 예배에서 칸타타는 확고한 자리와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다. _ 이기숙, 나주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 , p19


 이처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는 바흐의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보다 친숙하게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풍부한 설명을 통해 독자들, 청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본문에는 모든 칸타타 곡에 대한 설명이 있지만, 이를 감상하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돌리기로 하고, 이 중에서 한 곡의 영상과 해석을 소개하는 것으로 리뷰를 갈무리한다...



 BWV 111 Was mein Gott will, das g'scheh allzeit 

 내 하나님의 뜻대로 늘 이루어지기 원하네


1. Coro 합창(코랄)


Was mein Gott will, das g'scheh allzeit,

Sein Will, der ist der beste;

Zu helfen den'n er ist bereit,

Die an ihn glauben feste.

Er hilft aus Not, der fromme Gott,

Und zuchtiget mit Maßen:

Wer Gott vertraut, fest auf ihn baut,

Den will er nicht verlassen.


내 하나님의 뜻대로 늘 이루어지기 원하네

그의 뜻이 최선이라네.

굳게 하나님을 믿는 이들을

그는 늘 도우시려 하네.

거룩한 하나님, 그는 고통에 처한 우리를 도우시고

온화하게 우리를 꾸짖으시네.

하나님을 믿고 굳게 의지하는 사람을

그는 버리지 않으시네.


 2. Aria B 아리아 : 베이스


Entsetze dich, mein Herze, nicht,

Gott ist dein Trost und Zuversicht

Und deiner Seele Leben.

    Ja, was sein weiser Rat bedacht,

    Dem kann die Welt und Menschenmacht

    Unmoglich widerstreben.


놀라지 마라, 내 마음이여

하나님은 너의 위로요 확신이고

네 영혼의 생명이로다.

   그의 지혜로운 충고가 결정하는 것에

   세상과 인간의 힘은

   맞서지 못하리라.


3. Recitativo A 레치타티보 : 알토


O Torichter! der sich von Gott entzieht

Und wie ein Jonas dort

Vor Gottes Angesichte flieht;

Auch unser Denken ist ihm offenbar,

Und unsers Hauptes Haar

Hat er gezahlet.

Wohl dem, der diesen Schutz erwahlet

Im glaubigen Vertrauen,

Auf dessen Schluss und Wort

Mit Hoffnung und Geduld zu schauen.


오, 어리석은 자여!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

그 옛날 요나처럼

하나님의 면전에서 달아나는 자.

그분은 우리의 생각도 훤히 아시고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셨도다.

행복하여라, 그의 보호하심을 택한 자

희망과 인내로 

그의 뜻과 말씀을 우러러보려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자.


4. Aria (Duetto) A T 아리아(이중창) : 알토, 테너


So geh ich mit beherzten Schritten,

Auch wenn mich Gott zum Grabe fuhrt.

    Gott hat die Tage aufgeschrieben,

    So wird, wenn seine Hand mich ruhrt,

    Des Todes Bitterkeit vertrieben.


나는 담대한 발걸음으로 걷네

비록 하나님이 나를 무덤으로 이끌어도,

   그가 나의 모든 날을 세셨으니

   그의 손이 내게 닿을 때

   죽음의 고통은 내쫓기리라.


5. Recitativo S 레치타티보 : 소프라노


Drum wenn der Tod zuletzt den Geist

Noch mit Gewalt aus seinem Korper reißt,

So nimm ihn, Gott, in treue Vaterhande!

Wenn Teufel, Tod und Sunde mich bekriegt

Und meine Sterbekissen

Ein Kampfplatz werden mussen,

So hilf, damit in dir mein Glaube siegt!

O seliges, gewunschtes Ende!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이

내 몸에서 억지로 영혼을 꺼낼 때

하나님, 그것을 아버지 당신의 신실한 손으로 받아주소서!

악마와 죽음과 죄악이 나를 공격하고

내 임종의 베개가

전쟁터가 될 때

나를 도와 내 믿음이 당신 안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오 내가 소망하는 복된 종말이여!


6. Choral 코랄


Noch eins, Herr, will ich bitten dich,

Du wirst mir's nicht versagen:

Wenn mich der bose Geist anficht,

Lass mich doch nicht verzagen.

Hilf, steur und wehr, ach Gott, mein Herr,

Zu Ehren deinem Namen.

Wer das begehrt, dem wird's gewahrt;

Drauf sprech ich frohlich: Amen.


주님, 또 하나 간청하오니

나를 모른다 하지 않으시겠지요?

악한 영이 나를 시험할 때

내가 절망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주님, 나를 돕고 이끌고 막아주소서.

당신의 이름에 영광이 되도록

이를 간절히 바라는 자에게 그대로 주어지리니

내가 기쁘게 말하나이다. 아멘. _ 이기숙, 나주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 , p251

음악의 측면에서 보자면, 바흐의 바이마르 칸타타들은 당대 이탈리아 오페라에 가까이 다가서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 풍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교회 칸타타가 이렇게 세속음악을 좇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루터는 예배 형식의 유연성과 시대성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는 칸타타에도 유효했으니, 당대의 음악을 주도한 오페라, 그리고 그 오페라의 유행을 따르는 것은 루터교 예배에서 금지될 일이 아니었다. - P27

바흐가 살았던 18세기 전반기, 오페라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는 이미 한 세기의 발전 과정을 거친 뒤였다. 레치타티보는 이제 사건의 전개를 진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 아리아는 사건 진행 중에 야기되는 분노, 증오, 슬픔, 사랑 등의 감정을 섬세하게 음악으로 옮겨 청자의 공감을 얻어내며 오페라에서 견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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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부모에게 녹봉으로 봉양하는 영화[祿養之榮]를 누리게 해드리는 것을 아주 중요한 효도의 법으로 여겼다. 그래서 이왕이면 큰 고을의 수령으로 나갔을 때를 기다려 성대하게 수연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 출세하여 지위가 고귀하게 된 뒤에 연로한 부모를 연석宴席에 모시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맹자는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에 왕이 되는 것은 그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개 왕이 되어 천하를 소유하는 것은 사람의 큰 소망인데 저것을 가지고 이것과 바꾸지 않으니 세 가지 즐거움이 천하보다 큰 점이 어떠하겠는가.

근경의 중층 누각 건물은 서대문을 표시한 것으로 보이고, 원산에는 도성의 성가퀴 일부가 보인다. 실제로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장소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구름이나 안개를 이용해 임의적으로 거리를 축소한 뒤 멀리 있는 경물을 화면 안에 끌어다 놓는 것은 기록화에서 흔히 쓰인 표현 기법이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매화나무, 푸르른 소나무와 대나무, 화분의 큼직한 괴석, 시동이 들고 오는 거문고 등 사대부를 표상하는 여러 장치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제1폭과 반대로 화면 왼편에 무게를 두어 두 그림을 나란히 배치했을 때 대칭의 구도를 형성하게끔 고려하였다.

경수연에 앞서 수친계의 결성이 선행되었다는 사실은 경수연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자 그림 제작의 직접적인 동기로 작용했다. 아울러 수친계를 기반으로 열린 행사의 기념화였으므로 그림의 내용, 제작 및 분배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1603년의 수연은 이거의 노모를 위한 개인 집안 차원의 사적인 설행이었지만, 1605년의 경수연은 수친계 계원이 주축이 된 수연이었으므로 상대적으로 공적인 성격이 강했다. 아울러 그림도 참석 집안 수대로 여러 건을 제작하여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특히 모란 병풍, 복식의 장식, 화병과 그릇의 문양 등이 모두 강렬한데, 바닥 전체에 무늬를 넣는 것은 배경 전체를 꽃무늬로 처리한 〈하연 부부 초상〉과 상통하는 19세기 후반적인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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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제20차 전대에서 공산당과중국의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세웠다.
덩샤오핑이 만든 집단지도체계는 마오쩌둥의 1인 장기 독재가 초래한 참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 기반했다. 시진핑은 이전통을 산산조각 내면서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또한 이번 상무위에서 밀려난리커창 국무원 총리와 왕양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은 비교적 시장 지향적이고 서방국가들에 덜 적대적인 인사들로 분류되어왔다. 이로써 시진핑의 슬로건인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 P12

시진핑의 주의주의는 코로나19 방역에도 구현되었다. 지난해 중반 이후 전세계가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반면 중국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방역 조치가 시행 중이다. 올해 들어서도 수많은 도시들에서 봉쇄 조치가 단행되었다. 이는시진핑의 대표 정책 중 하나인 ‘제로 코로나‘ 조치 때문이다. 수천만 인민이 피해를입고 기업들이 연쇄 도산하는데도 공산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번 전대에서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크게 완화한다는방침은 나오지 않았다. 중국공산당과 최고지도자의 의지는 인민들이나 다른 나라뿐 아니라 코로나19 바이러스 같은 미물에게도 관철되어야 한다.  - P14

시진핑 이전의 중국 지도자들은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강조해왔다. ‘중국의능력을 숨기고(韜光), 때를 기다리자晦)‘는 것이었다. 시진핑은 ‘기다리던 때가 왔다‘고 생각하며 이번 전대를 준비한듯하다. 지금까지의 중국과 앞으로의 중국은 아주 크게 다를 것이다. - P15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당들은각자 ‘우리가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나그 ‘옳음‘은 오로지 선거를 통해 승인된다. 시민들은 투표로 대통령이나 집권당을 선출하고 그들에게 일정 기간 통치를위임할 뿐이다. 반면 중국에서 공산당은선거와 상관없이 ‘옳은 것으로 전제된다.
문자 그대로, 선험적으로 ‘옳다‘. 중국공산당의 사상적 기반은 마르크스-레닌주의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공산당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꿰뚫어 아는일종의 ‘현자‘ 집단으로 설정된다. 그들은
‘인민들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당사자들보다 훨씬 더 잘 안다.  - P18

윤석열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와 소송 중이다. 2020년 12월 검찰총장이던 때 받은정직 2개월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의 원고가 윤석열 대통령, 피고가 법무부 장관이다. 2021년 10월 1심에서 패소(원고 청구기각했을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즉각 항소했다. 1년이지났지만 2022년 10월 현재 2심은 변론준비기일을 거듭하며 본격 재판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 그사이 ‘원고 윤석열은 제20대 대통령이 됐다. - P24

서버 시설에 불이 나 사고가 생겼는데 왜 독과점 해체를 논할까? 정부의 문제의식은 단순히 ‘카카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너무 많은 영역에 피해를 입혔다‘는 데 있지 않다. 10월2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독과점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경쟁촉진 방안 추진‘이라는 보도자료를냈다. 카카오 사태의 원인을 "시장 내 경쟁 압력이 없는 독점 플랫폼이 혁신 노력과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한 것에 기인"
한다고 적었다. 공정위가 보기에, 데이터이중화가 원활하게 되지 않은 것은 관련법안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필요를느끼지 못한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혁신노력‘을 한다. 서비스 안정성 역시 혁신에속한다. 이렇게 보면 이번 사고는 12년간의 독과점에 취해 서비스 안정성마저 무너진 결과다. - P31

지난 9월26일부터 닷새 동안 이곳(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37-1번지)에서는 선감학원사건 희생자 유해 매장 추정지 시굴조사가 이뤄졌다. 시굴에 앞서 김훈 작가가 추도사를 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미안해‘
를 거듭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의악과 화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능하다면 오직 사실의 바탕 위에서만화해가 가능하다. (오늘 유해 발굴로) 많은 시신들이 확인돼 그 힘에 의해 화해의단초가 잡히기를 기원한다." - P32

이번 예방법 제19조 위헌제청은 중요한 기회다.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따져보는 과정은 이 법을 통해 축적된 낙인의역사를 되짚고, 낙인찍힌 사람의 명예를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질병 자체와질병 낙인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줄여야예방과 치료를 가로막는 장벽을 부술 수있다. 감염 이후의 삶 역시 가치 있는 삶이라는 점을, 걱정 없이 편안한 삶을 누릴자격이 모두에게 있음을 공적으로 확인할 때, 낙인은 마침내 힘을 잃는다.  - P37

전술핵 재배치 문제가 마치 한국이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인 것처럼들리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이 크나큰 발언권을 갖게 될 것이다. 1960년대후반 당시 주한 미군에 배치된 전술핵무기와 그에 따른 지휘 및 통제 문제로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주한 미군이 보유하던 전술핵은 1991년 가을 조지 H. W. 대통령의결정에 따라 모두 철수됐다. 또 그해 12월31일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만일 전술핵이 다시 도입된다면 북한의 강력한 반응을 촉발할 것이다. 북한이 선제공격으로 맞받아칠 수있다.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에 ‘북한에 핵무기를 배치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 P40

김 위원장의 관점에서 보면, 그가 한말은 맞다.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다시 끌어내려면 미국이 어느 정도 신축성을 보여야 한다. 협상에서 강자는 약자에게 그런 신축성을 보일 책임이 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핵 무력을 법제화한것은 기존 사실, 즉 북한이 핵 국가라는사실을 천명한 것이다. 북한은 지금껏 핵개발을 위해 엄청난 자원을 투입했고, 그런 노력의 결과 지금 완전한 핵무기 국가라는 것을 공표했다. 나는 2010년 북한영변 핵단지를 직접 목격했고, 이후 국무부 소속으로 두 번 더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북한의 핵 능력은 실존한다. - P41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현 단계에서북한의 핵 위협을 봉쇄할 수 있는 유일한방법은 미국이 현실을 직시하고 북한의핵 프로그램을 제한해 한반도를 더욱 안정시키기 위한 군축회담을 개최하도록노력하는 것이다. 미국도 어느 시점에선북한이 핵무기 국가라는 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아가 미국은북핵 문제를 상시적으로 전담하는 특사를 둬서 군축 방안을 강구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 및 일본 등과 긴밀히 협력해야한다. - P42

영국에서 백린 성냥 생산이 완전히금지된 것은 1908년이었다. 매치 걸들의파업 이후로도 20년이 흐른 뒤였지.
하지만 애니 베트가 없었다면, 캐서린부스 등 구세군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다윗 같은 노동자와 그들을 응원한시민들의 박수가 없었다면 백린이라는골리앗은 더욱 오랫동안 영국인들의곁에 남아 수많은 사람들의 턱뼈를분쇄하지 않았을까. 아빠는 27년 차 방송노동자이고, 너 역시 앞으로 노동자가 될거야. 우리 같은 노동자들의 희생을줄이고 나아가 없애기 위해 어떤 행동을해야 할까 함께 고민해보자꾸나.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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洋)The Economist 2022年 10月 28日號
日販IPS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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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conomist 지의 10.29 참사 관련 기사 내용을 옮겨본다.

기사는 지난 10.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를 보도하면서, 왜 아시아에서 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사고가 일어나는가, 지난 4.16 참사를 통해 많은 희생자를 낸 한국에서 또다시 참사가 일어났지만, 여전히 제기되는 의문에 제대로 답하고 있지 못한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익명의 관계자 전언만 옮기고, 오탈자까지 복사해서 붙이며, 자극적인 사진과 기사를 통해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외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부와 한국 언론은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무한 경쟁의 틀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높아진 생존 능력으로 수준 미달의 저널리즘을 보여주는 한국 언론 대신 외국 언론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있음을 제대로 인지하기 바란다... 아래는 기사 번역문이다. 전문 번역가가 아닌 관계로 일부 오역이 있을 수 있는 점은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바라며, 부족한 부분은 첨부한 원문으로 대신하시길...

[출처] https://www.economist.com/asia/2022/11/03/when-a-disaster-shakes-a-country-political-leaders-face-peril

When a disaster shakes a country, political leaders face peril
The tragedies in Itaewon, Malang and Morbi will test governments

재난이 나라를 뒤흔들 때, 정치 지도자들은 위험에 직면한다.
이태원, 말랑, 모르비의 비극은 정부를 시험할 것이다.

Two days after the tragedy, the streets of Itaewon were silent, save only for the whirring clicks of news cameras. In their frame was the alleyway in which a crush of bodies left more than 150 people dead. At the subway-station entrance white chrysanthemums had been left in memory of the victims.

참사 이틀 후, 이태원의 거리는 뉴스 카메라의 윙윙거리는 클릭 소리 외에는 조용했다. 프레임 안에는 15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골목이 있었다. 지하철역 입구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하얀 국화들이 놓여 있었다.

South Korea remains in shock over the events of October 29th, when some 130,000 people flocked to a nightlife district of Seoul, the capital. Many more came than the authorities expected. As the night progressed and the numbers swelled, those crammed into steep, narrow streets were trapped. A weight of humanity caused some in the crowd to fall, triggering a domino effect. Others, unaware of what was happening, continued to pack in. No stewards were around to prevent the tragedy.

한국은 수도 서울의 유흥가에 13만여 명이 모여든 10월 29일의 사건으로 충격에 빠진 상태다. 당국의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왔다. 밤이 깊어지면서 사람들의 숫자는 불어났고, 가파르고 좁은 거리에 들어찬 사람들은 갇혔다. 사람들의 무게로 일부 군중이 쓰러지면서 도미노 현상이 촉발되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지 못한 다른 이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비극을 막을 관리자는 주변에 없었다.

Few countries have not suffered similar - avoidable - tragedies. Yet Asia appears to have more than its fair share. One explanation is self-evident: the region has more than its fair share of the world‘s people, so human disasters are more frequent. The day after the Itaewon calamity, a river bridge in Morbi in Gujarat, the home state of India‘s prime minister, Narendra Modi, collapsed, killing at least 135, most of them women, children and the elderly. In early October a human crush at a stadium in Malang in Indonesia led to 131 deaths.

비슷한 - 피할 수 없는 - 비극을 겪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시아는 공정한 몫 이상을 가지고 있는 둣하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시아는 세계 사람들의 공정한 몫 이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명 참사가 더 빈번하다. 이태원 참사 다음 날,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의 고향인 구자라트의 모르비에 있는 강 다리가 붕괴되어 적어도 135명이 사망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여성, 어린이, 노인들이었다. 10월 초 인도네시아 말랑의 한 경기장에서는 사람들의 충돌로 131명이 사망했다.

In Morbi the colonial bridge had just been reopened with a view to attracting tourist crowds. In Malang police precipitated panic when they fired tear gas at fans invading the pitch - a response long banned by football‘s global governing body. So another part of the explanation for so many Asian disasters flows from the pace of the region‘s march to modernity. Poor infrastructure, safety protocols or policing practices fail to keep up with fast-growing economies and populations which are both more mobile and ready for more varied experiences.

(인도네시아의) 모르비에서는 식민지시대의 다리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최근 재개장했다. 말랑에서 경찰은 경기장에 침범하는 팬들에게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공황상태를 촉발시켰다 - 이러한 대응은 오랜 기간 국제축구협회에서 금지되어왔다
. 많은 아시아 재난에 대한 또다른 설명은 이들 지역의 근대화 속도다. 열악한 인프라, 안전 규칙 또는 치안 관행은 보다 유동적이고 다양한 경험이 준비된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와 인구를 따라잡는데 실패했다.

It is in that gap that political peril lies. Nowhere was this clearer than with South Korea‘s last big catastrophe. In 2014 a ferry, the Sewol, capsized on its way to the holiday island of Jeju. Some 300 people died, most of them schoolchildren. The vessel was overloaded. Corrupt regulators had turned a blind eye to unseaworthy modifications. The crew abandoned ship before the passengers. The then president, Park Geun-hye, failed to appear in public for hours. It turned out she even urged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to track critics of the official response. Public outrage led to protests and opened the door to ever greater anger against her. She never recovered politically.

바로 그 사이에 정치적 위험이 자리한다. 한국의 마지막 큰 참사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다. 2014년 휴양지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됐다. 약 300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초등학생이었다. 그 배는 과적되었다. 부패한 규제 기관들은 항해에 적합하지 않은 수정안을 외면했다. 선원들은 승객들에 앞서 배를 버렸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몇 시간 동안 대중들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국가정보원에 공식 대응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추적하라고 촉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중의 분노는 시위로 이어졌고 그녀를 반대하는 더 큰 분노의 문을 열었다. 이후 그녀는 정치적으로 회복할 수 없었다.

Few leaders are as detached from their electorate as was Ms Park. Others responding to a calamity acknowledge its scale but seek to find fault elsewhere. Mr Modi visited a local hospital in Morbi and chaired a meeting there to review the disaster. At the same time, the state government, also run by his party, was quick to shift the blame onto the town government and private contractors. Gujaratis will have the chance to express their views in an election next month.

박대통령만큼 유권자들과 유리된 지도자는 거의 없다. 재난에 대처하는 다른 지도자들은 재난의 규모를 인정하는 대신 다른 지점에서 결점을 찾으려 한다. 모디 총리는 모르비 지방 병원을 방문했고 재난 검토 회의를 주재했다. 이와 함께, 집권당이 주도하는 주 정부는 빠르게 시 정부와 민간 건설업자들에게 참사 책임을 전가했다. 구자라티 주민들은 (이러한 처리에 대해) 다음 달 자신들의 견해를 투표로 보여줄 것이다.

Pressure for accountability mounts in ways that can pose risks for leaders. Many questions surround the Malang disaster in Indonesia: what were the police thinking by using tear-gas? Why were only four paramedics on duty? The Indonesian president, Joko Widodo, has forged close ties with the national police, who have helped him politically. At first he seemed to favour an internal police inquiry. That led many Indonesians to think that, absent such ties, he would have acted differently to ensure accountability, says Aaron Connelly of the London-based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The president did then change course, approving a more independent inquiry. But it was not enough to prevent a sharp slide in his ratings.

책임에 대한 압력은 지도자들에게 위험을 초래할 정도로 가중된다. 인도네시아의 말랑 참사를 둘러싸고 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 경찰이 최루탄을 사용한 의도는 무엇인가? 단지 4명의 구급대원만 근무중인 이유는 무엇인가? 인도네시아 대통령 조코 위는 자신을 정치적으로 돕고있는 국가 경찰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왔다. 처음에 그는 경찰 내부 조사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였다.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애런 코넬리는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책임을 보장하기 위해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 후 대통령은 보다 독립적인 조사를 승인하면서 노선을 변경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는 그의 지지률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것을 막기에 충분치 못했다.

Back in Seoul, and reflecting the national mood, the South Korean president, Yoon Suk-yeol, said that ˝my heart is heavy and I struggle to cope with my grief.˝ He has promised a memorial to Itaewon‘s victims, as well as an inquiry. Yet more questions are raised about the tragedy than are yet being answered. Above all, how could a police force that dispatches dozens of officers to even the smallest protests be so unprepared?

다시 서울 이야기로 돌아오면, 한국 대통령 윤석열은 국민 정서를 반영하여 ˝마음이 무겁고 슬픔에 대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태원 희생자들을 위한 조사 뿐만 아니라 추모를 약속했다. 그러나 참사에 대해 아직 대답되지 않은 것보다 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최소규모의 시위에도 수십 명의 인원을 파견하는 경찰력이 그처럼 준비가 안 될 수 있을까?

As for Mr Yoon himself, he has needlessly squandered political capital and goodwill during the few months he has been in office. That makes his job harder now. Still, a leader who applies balm to a country‘s wounds, and who provides reassurance that lessons will be learned, can unite a country. How Mr Yoon acts now will shape the rest of his presidency.

윤 대통령 본인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재임한 몇 달의 허니문 기간 동안 불필요하게 정치적 자산과 그에 대한 호의를 낭비했다. 이같은 사실이 지금 그의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리더가 국가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교훈을 얻으리라는 확신을 준다면, 국론을 통합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의 행보가 그의 남은 임기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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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06 1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현상유지만 해주
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뭘 더 하려고 하다가, 김O태
사태 꼴이 나는 건 더 이상
못봐주겠네요.

겨울호랑이 2022-11-06 21:15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 말씀에 매우 동감합니다. 문제는 가야할 방향과 정확하게 반대방향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전력질주를 하니 참 답답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