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하나 이상 낳아만 준다면 김훈장은 날로 퇴락해가는 집만 남아 있는 김진사댁의 대도 이어줄 생각이었다. 생각이라기보다 간절한 희망이었다. 마음을 놓아서였던지 며느리를 본 후 김훈장은 며칠을 앓았고 앓고 난 뒤 그의 머리카락과 수염은 더욱더 희어졌다. _ 박경리, <토지 4> , p21/672


  <토지 4>의 처음은 러일전쟁(日露戰爭, Russo-Japanese War 1904 ~ 1905)이라는 상황을 바라보는 김훈장과 조준구의 입장 차이를 보여준다. 유학(儒學)을 따르며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위해 노력하는 김훈장과 어른 없는 최참판댁 자산을 노리는데 여념이 없는 조준구. 이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당대 지배층들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이들 중 김훈장을 살펴보자. <토지인물사전>에 '봉건제적 질서에 충실한 보수주의자'로 설명된 김훈장. 가문의 후사를 이어야한다는 그의 강박관념은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신유학(新儒學) - 성리학(性理學)'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해,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 1935 ~ ) 는 <한국의 유교화 과정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 A Study Of Society And Ideology>에서 '신유학' 이데올로기는 한국 사회가 부계 중심 사회로 개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지적한다. 장자(長子) 중심의 승계는 얼핏 유럽 중세의 봉건제도와 연계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유럽에서는 차남(次男) 이하 다른 자녀들은 성직자, 기사 등 다른 직업으로 진출한 데 반해 조선 시대의 엘리트 층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같은 듯 다르다. 이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資本主義'와 관련한 다른 페이퍼에서 다루도록 하고 일단 넘기자.  


 장자는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아버지와 아버지 쪽 조상과 연결되었다. 다시 말해서 장자만이 선조들의 유일한 후사로서 후손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권리와 의무를 받는 '정체 正體'를 가졌던 것이다. 장자는 형제자매 집단을 대표하면서 세대를 잇는 이상적인 고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으며, 이것은 장자가 법적, 의례적, 경제적으로 우위에 놓이도록 만들었다. 이 같은 장자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난 것은 17세기이다. 이것은 이상사회에 대한 주자의 개념을 기초로 한 부계친 사고의 절정을 나타낸 것이다. _ 마르티나 도이힐러, <한국의 유교화 과정> , p241


 <토지 4>에서 김훈장은 가문을 잇는다는 가문의 책무를 완수한 후 자신의 시선을 비로소 나라로 돌린다. 이러한 그의 행동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안에서 김훈장은 어느정도 가문의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그는 지배 엘리트 층으로서 문제를 자각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그의 모습이 오롯이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붉은 마음(丹心) 때문일까. 김훈장의 처지를 생각하면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라나 한 집안이 망하고 흥하는 것은 천운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러나 인화가 없고 신의가 없고 예절을 잃으면 그것으로써 마지막이야. 지금 나라 꼴이 어떠한가? 동가숙서가식하는 천기보다 못한 지조 잃은 인사들이 황공하게도 임금을 볼모로 삼아서 오늘은 아라사요 내일은 왜국이요, 해서 자신의 영달에만 급급하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느냐.(p22)... 가통을 이어야 한다는 골수에 박힌 사상은 이 나라의 꽃이요 정기요 하며 의병의 항쟁을 흐느끼듯 칭송해 마지않던 감정을 누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p25)... 가통을 잇는다는 집념과 정열의 성취를 본 지금, 이제 그 정열과 집념은 갈 곳이 없게 되었다. 아니 갈 곳이 없다기보다 차디찬 재로 변해버린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4> , p31/672


 마르티나 도이힐러는 다른 책  <조상의 눈 아래에서 Under the Ancestors' Eyes: Kinship, Status, and Locality in Premodern Korea>에서 향촌의 양반인 향반(鄕班)이 지방에서 영향력 유지를 위해 종법(種法)에 기초한 네트워크가 구성되었음을 말한다. 중앙의 정치권력에 대항하는 사회권력으로서 향약(鄕約)에 근거한 김훈장의 힘은 바로 지방민들의 지지와 존경으로부터 나왔기에 '평사리의 존경받는 어른'으로 남기 위해서 그는 움직여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고유의 친족 이데올로기는 신분의 위계와 신분의 배타성을 찬미하면서 운명의 붉은 실처럼 신라 초부터 19세기 말에 이르는 한국의 역사를 관통했다. 사회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보다 우선시함으로써, 이 이데올로기는 출생과 출계를 기반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엘리트를 창출했고, 엘리트에게 시공을 초월하는 엄청난 내구력을 부여했다._ 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p727

 

  한편으로는 중앙으로부터 갈수록 소외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능하지만 결코 간섭을 멈추지 않는 국가의 압력에 시달리면서 엘리트 신분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자, '향촌의 양반(향반 鄕班)'은 점차 '지역주의 전략'에 기대어 본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공고히 하고 향촌 지배권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그들이 구사한 가장 효과적인 장기 전략은 종족제도의 체계화와 강화였고, 이 제도는 17세기에 성숙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_ 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p473


  <토지>저자 박경리(朴景利, 1926 ~ 2008)는 당대 서민들의 생각이 동학(東學) 사상에 잘 드러난다고 본다. 동학농민혁명에 드러난 민의(民意)는 동학교도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으로,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로부터 대표성을, 표영삼(1925 ~ 2008)의 <동학>에 나타난 일본상려관에게 보낸 글을 통해 도덕성과 반외세 성격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전자는 무위하고 후자는 종양(腫瘍)으로써 왕실 붕괴, 국가 파탄의 촉진제가 될 것이지만 수구 사상에서는 정예한 근위병(近衛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이 두 줄기를 타고 뻗어난 들판, 그 들판을 메운 서민들은 어떠했을까. 한마디로 이들은 모두 수구파다. 수만 동학이 개혁을 부르짖고 일어섰으나 시초부터 그들은 인륜 도덕을 강렬하게 내포한 집단이었으며 그들의 기치는 위국진충(爲國盡忠)이며 소파왜양(掃破倭洋)이었던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4> , p75/522


 일본 상려관은 펴보아라... 천도란 지극히 공평하여 다만 착한 사람은 음덕이 있게 하고 악한 사람은 벌이 있게 했다. 너희들은 비록 변경에 살고 있으나 받은 성품은 하나의 이치임을 또한 알지 못하는가... 아직도 욕심 많은 마음으로 다른 나라에 자리잡고 앉아 공격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으며 살육을 근본으로 삼으니 진실로 어떤 마음이며 필경 어찌 하자는 것인가... 우리 스승님의 덕은 넓고도 가없어 너희들에게도 구제의 길을 베풀 수 있으니 너희들은 내 말을 듣을 것인가 안 들을 것인가. 우리를 해칠 것인가 아니 해칠 것인가... 스승님은 이미 훈계하였으니 평안하고 위태로움은 너희들이 자취하는 것인 바 죽도록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우리는 다시 말하지 않으리니 서둘러 너희 땅으로 돌아가라. 계사 3월 초2일 자시 조선국 삼사원우초 _ 표영삼, <동학 2>, p276 


 인내천(人乃天)에 기반한 반외세(反外勢)를 주창한 동학농민혁명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삼대조(三代祖)가 미관밀직에 있었으며, 등과를 못한 향반으로 살아가야 했던 김훈장은 마을에 연고가 없는 경화사족(京華士族)인 조준구와는 달리 앞장서 움직여야할 이유가 있었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과 함께 자신의 지지 기반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이러한 이유가 김훈장을 의병장으로 떠밀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 ~ 1598) 당시의 양반 출산 의병장들의 동기도 이같은 요인이 부분적으로는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어느 덧 김훈장은 마을 사람들 이야기 속에서 의병장으로 등장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차츰 전설적인 인물로 변모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 자신의 자존심의 소이였다. 왕시, 김훈장을 두고 화심리에 사는 장암 선생 수제자로서 학식이 깊다고 믿었으며 자랑으로 생각했던 그 심리와 흡사했던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마을 사람의 공통 심리였다. 꼭히 믿는 것도 아니면서 즐거움을 위해 믿어보는 것이다. 희망이 적은 그들의 감정적 사치였을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4> , p245/522


  작가는 작품 안에서 지배층의 두 움직임 수구(守舊)와 개화(開化) 모두를 비판한다. 김훈장으로 대표되는 전자의 움직임은 물론, 조선 후기의 변혁 움직임 역시 제대로 된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무너지고 말았음을 작가의 목소리로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작품 안에서 작가의 목소리는 한 인물을 지적한다. 반계 유형원.


 중국의 정신문화, 그 속에서도 유교를, 유교 중에서도 철학과 인륜 도덕의 정주학(程朱學)을 숭상하였던 이조 오백 년 동안 그 이지적이며 귀족적인 사상을 골육으로 한 절도 높은 선비들과 왕실에 밀착된 명문 거족들은 기존의 정신적 가치를 옹호하며 또는 외향적 기득권을 주장하며 지금도 수구(守舊)를 고집하고 있거니와 그것은 참으로 부수기 어려운 거대하고 준엄한 조선의 산맥 그 자체는 아니었는지. _ 박경리, <토지 4> , p73/522


 하기는 햇볕 안 드는 뒷방에는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을 시조로 하는 경세학파(經世學派)의 불우한 사류(士類)들과 현실적인 중인 계급의 일부가 있어 진실한 개화에의 꿈을 기르고 있었으나 이네들은 일본을 업고 재주를 부리는 정치적 무대도 능력도 없었으며 민주주의라는 낯선 장단에 춤을 추며 백성들을 모아보는 주변도 없었고 청나라가 일본에 패한 후 수구파들이 열어놓은 혈로(血路) 아라사에게도 줄이 닿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이네들은 조선의 토종이었던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4> , p76/522


 작품 안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인물은 유형원(柳馨遠, 1622 ~ 1673)이다. 조선 후기 반계의 경세사상(經世思想)이 갖는 한계점을 작가는 지나가듯  말했지만, 제임스 버나드 팔레 (James Bernard Palais, 1934 ~ 2006)의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 - 유형원과 조선 후기 Confucian Statecraft and Korean Institutions: Yu Hyongwon and the Late Choson Dynasty>에 의하면 그 영향력은 스치듯 지나갈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국(中國)을 중심으로 한 중화(中華)사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청일전쟁 후 방향성을 잃었지만, 도덕성에 근거한 윤리사상은 조선 후기 변화되는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진지하게 모색했다는 점을 말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토지>에 드러난 박경리 작가의 비판은 다소 매섭게도 느껴진다.

 

 유교적 경세사상은 정책에 직접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도덕성을 강조한 그 논리는 국가가 인간의 약점, 부패, 부도덕으로 악화되었을 때도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유교의 기준에 따른 도덕적 질서를 창출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유지됐다. 농업의 우위와 상업 및 이익 동기의 비도덕적 결과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중요하게 간주됐지만, 유교적 관원과 학자들은 경제적 활동의 어떤 이점을 인식했다.... 경세사상의 중심은 중국 고전에 서술된 중국 고대의 제도에 머물러 있었는데, 현실적 경세론의 실천에서 주요한 지혜의 원천은 중국의 역사와 제도를 서술한 방대한 방대한 문헌이었으며 조선의 안전을 유지한 주요한 버팀목은 1894년 청일전쟁까지 청이 제공한 보호였다. _ 제임스 B. 팔레,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 - 유형원과 조선후기 2> , p589


 이와 함께 <토지 4>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배경은 러일전쟁이다. 청일전쟁 후 대만과 요동반도를 점령하려던 일본의 계획이 삼국간섭(三國干涉 Tripartite Intervention)이 무산되면서 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대화 속에서 설명된다. 1885년 영국이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 점거한 거문도 사건(巨文島事件)에서 드러나듯, 극동지역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영국-일본 동맹은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의 일부였으며, 삼국간섭이 전쟁의 한 동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다만, 당시 일본이 러시아보다 한 수 아래의 전력으로 여겨졌던 만큼 전쟁 이전 여러 타협안이 오고 갔음을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1938 ~ )의 <러일전쟁 : 기원과 개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내어주기로 한 청나라 얼빠진 위정자들은 차치하고 늑대같이 한반도도 먹고 싶고 만주 땅도 먹고 싶고, 그도 유유자적하게 노리고 있던 아라사가 어찌 되었겠소? 그러니까 아라사는 기고만장했던 일본에게 찬물을 끼얹었던 게요. 당사자인 청나라도 아닌 아라사가 독일과 불란서라는 나라에 충동이질하여 협박을 했단 말씀이오. 아무리 일본이 전승국이라고는 하나 대국 아라사와 불란서 독일의 삼국을 상대하여 이길 재간이 있었겠소? 문명이 앞서고 신식 무기로 무장한 그네들을 말이오. 게다가 영국하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부지리나 얻을까 싶어 관망하는 상태였으니 일본으로서는 눈물을 머금고 요동반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때부터 일본은 아라사에 대해서 보복의 칼을 갈았던 게지요. _ 박경리, <토지 4> , p60/672


 일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라사는 숙적이요 영국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세계 각처에 저희들 식민지가 있는 만큼 아라사가 한반도로 만주로 하여 바다 쪽으로 진출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소?... 그러나 미련한 곰 같은 아라사가 그런다고 밀려나겠소? 한술 더 떴지요. 그러니까 지난 오월 우리 땅 용암포(龍岩浦)를 점거하는 사태까지 몰고 왔으니 일본이 콩 튀듯 할 수 밖에요. 이러니 일본과 아라사는 전쟁으로 판가름을 할 수." _ 박경리, <토지 4> , p66/672


 러시아의 만주 지배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상호 인정하자는 타협안이 대한제국의 중립화 정책과 부딪히면서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 직전의 치열한 외교전의 상황 속에서 개항 이후 여러 외교 문서에 등장했던 '조선은 자주국'이라는 조항이 얼마나 무의미한 조항이었는가를 우리는 <러일전쟁>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또한, '청일전쟁', '러일전쟁' 두 전쟁 직전에 맺은 조선과의 협약을 통해 조선의 물자, 식량 등을 마음껏 징발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그네들의 모습 속에서 '근대화 近代化'라는 껍질가 실상은 과거 무사도(武士道)가 군국주의(軍國主義)로 변신한 '제국주의 帝國主義'에 다름 아님을 실감한다.


 

 청일전쟁은 열강을 자극했다. 야심가인 신 외무장관 무라비요프도 황제의 뜻을 존중해, 러시아 해군이 원하지도 않는 부동항 뤼순, 다롄의 획득이라는 모험을 적극 시도했다.(p1195)... 일본은 러시아의 랴오둥(遼東)반도 조차(租借)에 대해서도 당초에는 신중한 태도였다... 그러나 일본도 러시아의 만주 전면점령에 이르러서는 일본에게 조선을 전면적으로 양도하라는 만한교환론을 정면으로 제기하게 되었다. 러시아가 만주를 장악한다면 한국은 일본의 것이라고 명확하게 주장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한국 황제는 한국이 중립국이 되기를 희망하는 노선을 처음으로 내세우며, 일본 정부에 교섭하자고 요청했다. 1901년 1월 일본정부의 가토 외상은 주청 공사 고무라의 의견을 듣고, 이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고무라의 의견은 이미 단순한 만한교환론이 아니었고, 한국의 확보가 러시아의 만주 지배를 견제하는 거점이 될 것이라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조선을 둘러싼 러일의 주장은 완전히 어긋나게 되었다. 이때부터 러일의 대립은 결정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_ 와다 하루키, <러일전쟁 2>, p1196 


 <토지 3>에서는 초반부의 주요 인물들이 한번에 퇴장하면서 작품의 전개가 빨라졌다면, 이번 주부터 들어간 <토지 4>에서는 러일전쟁 이후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으로 급격하게 국운(國運)이 기운다. 급류처럼 빨라진 쇠망의 역사 속에서 이와 함께 읽을 좋은 책들이 많지만, '독서 챌린지 페이퍼'라는 글의 성격 상 짧게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페이퍼에서 잠시 언급한 <한국의 유교화 과정>, <조상의 눈 아래에서>,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 <러일전쟁>은 별도의 리뷰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번 주 <토지 4>는 개인적으로 유교 사상에 투철한 김훈장을 통해 조선 후기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와 충효(忠孝), 반계 유형원을 통해 후기 개화 사상의 한계와 러일 전쟁의 배경 등을 정리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조준구를 통해 친일(親日)이라는 부분도 다뤄볼 수 있겠지만, 이는 후반부의 인물인 배설자와 함께 종합적으로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어져 다음으로 넘긴다.  어쨌든 독서 챌린지의 끝은 지금 당장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으니까...


 Ps. 개인적으로 <토지>  후반부의 인물인 친일파 배설자의 모습에서 실존인물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 ~ 1909)의 양녀 배정자(裵貞子, 1870 ~ 1952) 그림자가 어른거림을 느낀다. 이름의 유사성, 친일 행적 등이 이러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듯한데, 배정자와 다른 배설자의 비참한 최후에서 친일파에 대한 작가의 감정을 읽는다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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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텔게우스 2021-08-21 14: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두 책에서 언급된 도이힐러의 주장에 다소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한국의 유교화 과정>에서 그의 주장은 장자 중심 상속과 부계 사회 구현이 성리학 이념 안에 본래 포함되어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저는 언급된 <조상의 눈 아래에서> 인용문과 같이, 당시 조선 사회가 직면한 현실적 조건 하에서, 기득권층이 권력 유지를 목적으로 신분 질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성리학에서 그러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08-22 08:16   좋아요 3 | URL
그렇습니다. 저 역시 베텔게우스님 말씀처럼 도이힐러의 논조에 다소간 차이를 느꼈습니다. 조금은 다르긴 합니다만... 저는 <한국의 유교화 과정>에서는 여말선초에 새로운 정치이념인 성리학 도입이 부계 중심의 구조로 개편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는 반면, <조상의 눈 아래에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관계와의 역사적 대립에서 결국 사회적 관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저자의 결론에서 논조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제 생각에 이러한 차이는 전자가 여말선초, 후자는 신라~조선을 분석 대상으로 하는 ‘단기‘와 ‘장기‘라는 분석 시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베텔게우스님께서 말씀하신 부분과 관련해서는 두 측면에서 생각해봐야 할 듯 합니다. ‘이기론(理氣論)‘에 따라 중국을 모든 사물의 근원인 ‘이‘로 보고 전통문화의 측면이 강한 조선을 ‘기‘로 해석하여 부계 전통에 강한 중국을 단순히 따라가려 했는지, 아니면 이러한 목적이 아닌 기존 ‘불교‘라는 정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기 위한 ‘성리학‘ 도입에서 오는 여파 때문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직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지 못해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베텔게우스님 덕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용아, 나는 죽어도 무당은 안 될 기다. 용이가 다른 각시 얻어서 살아도 나는 무당 안 될 기다.'  계집애는 해죽이 웃었다. 아니 고달프게 웃었다. 신이 오르면 넉살 좋게 목을 뽑고 초혼가에 자지러지며, 천대에 대항하여 사내같이 굵게 놀던 월선네하고는 달리 말이 없고 또 말재주라고는 없던 월선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러서는 힘껏 제 마음을 표시한 셈이다.(p494)... 물방앗간 옆에 쌓아올려 놓은 보릿대에 기대서서 월선이는 남의 얘기처럼 말했다. '아무 데 가믄 우떻노.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어매는 한탄하지마는.' 남의 말같이 하는데 월선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용이하고 살 수 없다면 애꾸눈이건 절름발이건 월선에게는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누구를 따라가든지 그는 제 집 없는 뜨내기의 신세인 것이다._박경리, <토지 1>, p496/530


 이번 주 <토지 1>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월선과 용이의 사랑 이야기다. 깊이 사랑하는 두 사람이지만, 상민과 천민의 신분 차이는 이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숨기고 각자 자신들의 가정을 꾸렸다. 스무 살 연상의 봇짐장수와 결혼한 월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하동으로 돌아왔지만, 용이의 본처인 강청댁의 핍박에 간도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떠난 월선을 찾던 용이의 기억에 담긴 지난 시간의 기억은 월선의 아픈 마음을 짐작케 한다.


 이후 월선은 간도에서 돌아오지만, 이번에는 용이의 아이를 가진 임이네의 등쌀에 힘든 나날들을 보내다 서희를 따라 떠나게 된다. 자신의 아이가 아닌 용이의 아들 홍이를 아들처럼 돌보다 결국 암(癌)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월선. 의도치 않은 선행학습(?)으로 이들 사랑의 결말을 알아 버리고 나니 월선의 죽음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선(禪)문답 같은 이들의 대화에는 끊어질 듯 이어온 이들의 사랑이 짙게 배여 있다. 사랑의 붉은 실이 있다면, 용이와 월선의 손을 이어주지 않았을까. 홍연(紅緣). 




 마루에 올라선 용이는 털모자를 벗어던졌다. 솜을 두어 누덕누덕 기운 반두루마기도 벗어 던진다. 그러는 동안 말 한마디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 한 사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방으로 들어간 용이는 월선을 내려다본다. 그 모습을 월선은 눈이 부신 듯 올려다본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월선이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산판 일 끝내고 왔다." 용이는 가만히 속삭이듯 말했다.  "야. 그럴 줄 알았습니다." "임자."...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내려다보고 올려다본다. 눈만 살아 있다. 월선의 사지는 마치 새털같이 가볍게, 용이의 옷깃조차 잡을 힘이 없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용이 돌아와서 이틀 밤을 지탱한 월선은 정월 초이튿날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_박경리, <토지 8>, p292/504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es, 1914 ~ 1984)는 <죽음 앞의 인간 L'homme Devant la Mort>에서 '타인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 아리에스는 자신의 죽음이 '두려움'이었다면, 다른 사람과의 이별은 육체적인 이별이었기에 사람들은 그 죽음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 안에서 죽음은 죄(악)과의 이별이었기에, 새로운 구원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타인의 죽음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용이와 월선의 헤어짐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아리에스가 말한 아름다움과는 결이 다르다. 용이와 월선은 그들의 고된 삶을 긍정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었다면, 아리에스의 '타인의 죽음'은 현실 부정을 통한 아름다움의 승화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차이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차차 정리하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토지1> 속의 용이와 월선의 가슴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언젠가 다가올 아내와의 헤어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나에게 다가올 저 순간에 나는 과연 망설임없이 한(恨)없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기에 용이와 월선의 마지막이 더 아름다운 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죽음은 오히려, 그때까지 억압되어 있던 비장감(파토스)을 불러일으켰다. 예전에는 과도한 감정 표출(혹은 지나친 무관심)에 대응하기 위한 방패막이로써 간주되던 침실에서의 의례 혹은 애도의 의식들이 본연의 의례성을 상실하게 되고, 유족들의 고통이 자발적으로 표출되는 장으로 개조된다. 그런데 이들이 비통해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현실이 아니라, 고인과의 육체적인 이별이었다. 이제부터 죽음은 슬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고인과의 육체적인 이별이었다. 이제부터 죽음은 슬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순간으로서의 찬양의 대상이 된다. 죽음은 아름다움이었다._필립 아리에스, <죽음 앞의 인간>, p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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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7-17 1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아~ 용이와 월선이의 사랑은 끝까지 구구절절 마음 아리게 해용~ 겨울호랑이님의 독서챌린지를 격하게 응원합니당!!😊

겨울호랑이 2021-07-17 12:32   좋아요 2 | URL
둘의 이야기는 정말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인 것 같아요....ㅜㅜ 붕붕툐툐님 감사합니다. 무더운 날이지만 건강하게 보내세요!

samadhi(眞我) 2021-07-17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 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겨울호랑이님이 발췌해 놓으니 시처럼 읽히네요.

겨울호랑이 2021-07-17 23: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amadhi님. 작품 속에서 애잔하게 진행된 이들의 사랑은 독자들의 시간 속에서는 얼음 조각처럼 페이지 페이지를 장식하며 끊임없이 감정을 불러 오는 것 같습니다. ^^:)

samadhi(眞我) 2021-07-17 23:55   좋아요 1 | URL
다시 읽어보면 그 전엔 찾을 수 없었던 재미와 맛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21권을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나네요. 안 그래도 읽을 책 많은데 욕심 내지 않을랍니다. 겨울호랑이님이 올려주시는 것으로 대리만족 하렵니다.

겨울호랑이 2021-07-17 23:57   좋아요 1 | URL
^^:) 읽어야할 책이 많은데 시간은 정말 부족한 것 같아요. 좋은 작품도 선뜻 다시 읽기가 어렵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럼 어머니는 언제 와?" "......." "몇 밤 자면 와?" "......" "몇 밤 자면 오느냐고 내가 물었단 말이야?" 무릎을 꼬집다가 서희는 주먹을 쥐고 봉순네 가슴을 쥐어박는다._박경리, <토지 1>, p72/410 


 알라딘 이웃님 소개로 알게된 토지 독서챌린지. 운좋게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이번 주부터 매주 리뷰를 올리는 과제가 주어졌다. <토지>를 읽어야할 책으로 생각했지만, 분량이 만만치 않아 독서 일정에서 계속 밀리다보니 마음 한 켠에 부담이 되던 중 좋은 기회가 내게 다가왔다.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첫 과제를 시작한다...


  <토지 1>에서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서희의 어머니 별당아씨가 김 환(구천)과 함께 멀리 떠나면서 어머니를 잃게 된 서희의 모습이다. 졸지에 엄마를 잃게 된 딸아이의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주변인들의 모습은 절로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레프 비고츠키(Lev Semenovich Vygotsky, 1896 ~ 1934)가 말하듯 갑작스러운 엄마의 빈 자리는 서희에게 메울수 없는 공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성인은 유아기에서 모든 상황의 중심이다. 따라서 성인의 단순한 접근이나 멀어짐이 바로 어린이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의 급격하고 급진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인이 없으면 유아는 무력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외부 세상에 대한 유아의 능동성은 마비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매우 제한되고 억제되는 듯이 보인다. 성인이 있으면 어린이의 능동성에게는 타인을 통한 가장 일반적이고 자연적인 길이 열린다. 바로 이것이 유아에게 다른 사람이 언제나 모든 상황의 심리적 중심이 되는 이유다._ L. S. 비고츠키, <연령과 위기> , p218 

 물론, 서희에게 아빠 최치수가 있었고, 할머니 윤씨 부인도 있어 고아는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치수는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아빠는 못되었다. 냉정하고 싸늘한 아빠 최치수의 모습은 어린 서희에게 곁을 내주기 어려운 존재였다. 아빠인 치수의 마음은 아마도 달랐겠지만.


 갈기갈기 갈라진 여러 개의 쇠가 서로 부딪칠 때 나는 것 같은 목소리는 여전히 음산했다. 그는 서희의 공포심을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풀어주려는 노력이 없는 싸늘하고 비정한 눈이 서희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서희는 아버지의 눈을 피하기만 하면 당장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질 것처럼 애처롭게 그를 마주 본 채 고개를 저었다. 치수는 웃었다. 그 웃음은 도리어 서희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_박경리, <토지 1>, p44/410


 아빠와 엄마의 역할은 다르다. 물론, 아빠가 엄마처럼 또는 엄마가 아빠처럼 자식을 양육하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혼자서 엄마, 아빠 두 몫을 하는 것은 분명 버거운 일이다. 특히 유교 질서가 뿌리 깊은 전통사회에서 '엄한 아버지' 상을 유지해야 했던 아버지 치수는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딸 서희에게 거리를 두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전통적인 아버지의 모습에서 크게 나가지 못했던 치수의 한계로 서희의 마음 한 켠에는 채울 수 없는 빈 자리가 남아있었다. 물론, 치수 나름대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에릭 에릭슨(Erik H. Erikson, 1902 ~ 1994)가 말하듯 치수는 아버지는 딸을 훈련시키는 아버지로서 역할에 충실했을 테지만, 아마도 서희에게는 '아버지가 준 상처' 또한 자리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장차 자신의 아이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갈등을 피하기 위해 욕구와 자극을 제거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모든 개인(부모)들은 스스로 유년기의 갈등들을 잘 이겨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자녀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p378)... "아동이 부모의 초자아를 동일시하는" 이른바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이 초자아가 시대적 이상이라는 말로 집단적 의미를 갖게 되는 현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초자아가 하나의 제도가 된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데, 이는 크고 성난 성인과 작고 버릇없는 아이라는 상대적을 내면적으로 영속시키기 때문이다. _에릭 H.에릭슨, <유년기와 사회> , p379


 <토지> 작품에서 치수는 딸 서희에게 차가운 아버지로 나오지만, 다행히(?) 늙었을 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는다. 너무도 이른 시기에 세상을 떠나 버리기에, 치수 - 서희의 관계는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 1938 ~ 2018)의 걱정과는 달리 회복불가능할만큼 손상받지 않는 것이 그나마 이른 죽음에 대한 보상이라고 봐야할까. 


 부모도 자녀를 괴롭힐 수 있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의 이런 성향을 금새 파악하고 학습한다. 그렇다고 아이가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모와의 관계는 나빠질 것이다. 부모의 억압적 행동이 오랫동안 계속된다면 부모 - 자녀의 관계는 영원히 회복불가능할 만큼 훼손될 수 있다.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에 다정하게 대하라. 그러면 아이도 당신이 늙었을 때에 당신에게 잘 할 것이다._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가설>, p486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졸지에 집안 마님이 하인과 눈이 맞아 도망가버렸다는 상황에서, 남겨진 서희 할머니 윤씨 부인과 아버지 최치수, 그리고 간난할매와 봉순네 등 집안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머니 별당아씨와 구천의 빈자리를 메우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서희는 그들의 바람처럼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차츰 성장해 가는 모습이 작품에서 표현된다.


 집단성이 취약하거나 부재한 상황에서는 분화가 동화를 압도한다.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다양한 방면에서 찾고 가족 내에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확보한다... 가족의 빈틈 채우기가 구성원 각자의 재능과 관심에 잘 맞고 이를 북돋울 만하다면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가족 내 빈틈 채우기와 역할 배정이 성격에 영속적인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_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가설>, p472


 요즘 서희는 엄마 데려오라 하면서 패악을 부리지는 않았다. 차츰 엄마의 일은 뭔지 모르나 불가한 것이며 입 밖에 내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고 싶은 마음이 솟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꼬투리 잡아 울부짖었고 누구든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으면 싶을 때 그는 겉돌려 가며 방금 길상에게 한 것처럼 더듬어보지만 아무도 그에게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서희의 마음이 자란 것이다. 슬픔은, 다른 아이들에게보다 그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었던 것이다. _박경리, <토지 1>, p214/410


 훗날 조준구에게 평산리 재산을 다 빼앗기고, 간도로 건너갈 수 밖에 없었던 서희. 2부에서 그려지는 서희의 모습은 냉정하고 자존심 높은 치수의 모습 그대로다. 그토록 공포스러워 했던 아버지를 어느새 닮고 있던 서희.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폭력에 노출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자라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서희 또한 무서워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간것은 아닌지. <토지 1> 초반에서 서희의 아픔과 함께 서희에게 물려준 치수의 유산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게 된다...


 조언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존감이란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만일 부모가 자기 이미지 형성을 잘 돕는다면 자녀는 적절한 자존감을 지닌 인간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녀는 결국 실패로 향하는 편도행 티켓을 쥐게 될 것이다._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가설>, p481


ps. 다른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드라마 <토지>의 최서희는 역시 최수지라는 생각을 한다...


[사진] 드라마 '토지' 의 서희(최수지) [출처 : https://www.newspim.com/news/view/2015021500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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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10 21: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토지 독서 챌린지 시작 하셨네요 전 N년째 9권에서 멈춰서 올해 완독을 목표로 했는데 다른 책들이 눈이 ㅎㅎㅎ

겨울호랑이 2021-07-11 07:16   좋아요 3 | URL
저도 독서계획을 세워도 도중에 빠지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많아서요... ㅜㅜ 끌려가게 될 지 끌고 나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완주를 했으면 더할 나위 없을 듯 합니다.^^:)

그레이스 2021-07-10 2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언제적 화면일까요?
저도 이 드라마 생각나요!
저는 토지 읽다가 박경리 작가님이 서문에 썼던 작가의 고통이 뭔지 알것 같아서 숨이 막혔었어요.
그 질기고 처절한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시대의 아픔을 당신 스스로가 겪었으니 끄집어 낼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했어요!
김약국의 딸들은 토지의 전초전 같은 느낌이 들었구요.^^

겨울호랑이 2021-07-11 07:17   좋아요 3 | URL
정말 오래된 드라마지요 ^^:) <토지>를 읽을수록 인물 하나하나에 성격에 성격을 드러내는 언행을 적절하게 배분한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게 됩니다. <김약국의 딸들>은 <토지>를 읽을 후로 미뤄야 할 것 같아요^^:)

samadhi(眞我) 2021-07-10 2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1권을 다 읽은 제가 참 놀라웠지만(?) 저는 재미없었습니다. 15년 전에 읽었기에 가능했고 지금이라면 읽다가 접었을 거예요. 조정래 대하소설이 제게는 더 잘 맞았거든요. 그 오랜 세월 암투병 해가면서 투지로 글을 써낸 작가가 존경스럽지만.

겨울호랑이님이 이제 막 읽기 시작하시는데 이런 얘기하는게 무례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취향이 다른 거겠지요. 우리 시누이도, 대학 후배도 이 책을 정말 재밌게 읽었다고 하니까요.

겨울호랑이 2021-07-11 09:51   좋아요 3 | URL
아니에요. 저도 조정래 작가의 작품을 좋아합니다만, 박경리 작가의 세계와는 또다른 맛이 있음을 느낍니다. <토지> 전반부와 시대적 배경을 같이 하는 <아리랑>의 경우 특히 인물들의 전형성이 강한 것이 조정래 작가의 매력이라 느껴집니다. 덕분에 작품을 역사적으로 바라볼 수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가령, 송수익으로 대표되는 인물은 의병-독립군으로 이어지는 ‘선(善)‘에 해당하는 반면, 양치성 같은 경우에는 ‘악(惡)‘역으로 볼 수 밖에 없는 듯해요. 반면, <토지>의 서희는 주인공이면서도 집안 원수를 갚기 위해 친일(親日)마저도 거리낌없니 하는 인물로, 악역인 조준구는 그 악행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감각, 현실인식은 최치수보다 앞서 있는 모습 등을 보면 분명 읽는 맛이 다른 작품들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에 대한 선호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samadhi님께서 조정래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시는 이유를 알 듯 합니다.^^:)

samadhi(眞我) 2021-07-11 09:22   좋아요 2 | URL
저는 겨울호랑이님과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박경리가 그려내는 인물이 전형성이 강해서 재미가 없고 조정래가 그려내는 인물이 역동성이 강해 독자를 쥐락펴락했다고요.(하마터면 딱 이렇게 댓글 달 뻔했는데)

조정래 작품은 훨씬 전에 읽었고 토지는 그 뒤에 읽었는데요. 워낙 오래되기도 하고 제가 어려서 인식이 낮기도 했을 겁니다- 지금이라고 더 나을 것도 없지만 ㅋㅋ

지금 읽고 있는 겨울호랑이님 말씀 듣고 보니 ˝되차!(과연)˝ 하게 됩니다. 겨울호랑이님 균형감각이 남다르다고 보거든요.

겨울호랑이 2021-07-11 09:38   좋아요 2 | URL
samadhi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는 또 새롭게 생각하게 되네요. 말씀하신 부분에 유념해서 읽다보면 작품을 그만큼 풍성하게 즐길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필력 좋은 대가들의 실력으로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을 생각하고,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큰 축복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에 작품을 보는 여러 의견도 함께 배워간다면 더풍성해질 듯 합니다. samadhi님 작품에 대해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딸기홀릭 2021-07-11 0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작년 10월에 시작했는데 이제 4권 들어가요
겨울호랑이님의 주간리뷰 보면 저도 자극이 될것 같네요

겨울호랑이 2021-07-11 07:24   좋아요 3 | URL
딸기홀릭님 감사합니다. 매주 과제가 부여되었으니, 학기를 마치는 심정으로 잘 해보겠습니다^^:)

thkang1001 2021-07-11 05: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토지 독서 챌린지를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7-11 14:14   좋아요 3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끝까지 잘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mini74 2021-07-11 1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초딩들이 토지를 읽는 걸 보고 너무 놀라서!!! 만화 토지 청소년 토지 ㅠㅠ. 굳이 그렇게 읽어야 하나 싶고.ㅠㅠ저 드라마 아빠랑 매번 봤는데 ㅎㅎ 서희 연기가 안습이라 슬펐던. 그래서 조연들 연기가 더 빛났지요. 겨울호랑이님 파이팅 !!

겨울호랑이 2021-07-11 11:28   좋아요 2 | URL
저도 막상 읽으려하니 방대한 양에 눌려 시작을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진도를 체크해 주시는 선생님께서 하드캐리(?)해 주시리라 기대해 봅니다. mini74님 감사합니다!^^:)
 

 

일본은 뽕나무를 심고, 그것으로 누에를 치고, 누에고치에서 생사를 뽑는 일까지만 조선에서 했다. 질 좋은 원료를 값싸게 확보한 그들은 일본에서 비단을 짜가지고 서양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있었다. 군산항에서 주로 쌀을 실어내는 것처럼 목포항에 집결시켜 실어가는 목화도 이익 많이 남기는 장사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총독부에서는 뽕나무 심기와 목화씨 뿌리기를 해가 갈수록 더 다그치고 있었다._조정래, <아리랑 5>, p203/247


 조정래(趙廷來, 1943 ~ )의 <아리랑 5>에서는 본격적인 일제의 식민수탈이 그려진다. 군산이 쌀 수출항이었다면, 목포는 목화(면화) 수출항이었다. 쌀은 노동자들의 식량으로, 목화는 제조원재료로서 식민본국의 산업화를 뒷받침했다. 스벤 베커트 (Sven Beckert)이 <면화의 제국 The empire of cotton>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면화는 제국시대에 글로벌 상품으로 기능하고 있었으며, 이로부터 일본은 착실히 서구제국의 길을 따라갔음을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규모도 작고 기술적으로도 뒤처진 유럽 면산업의 기반을 잡아준 것은 바로 제국의 팽창, 노예제, 토지 약탈로 요약되는 전쟁자본주의였다. 전쟁자본주의 덕분에 유럽의 면산업은 역동적인 시장을 얻었고, 기술력과 필수 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 또한 전쟁자본주의는 자본 형성에도 중요한 추진 장치가 되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04



  전쟁자본주의는 세계를 '내부'와 '외부'로 가를 수 있는 부유하고 강력한 유럽인들의 역량에 의지했다. '내부'는 모국의 법과 제도와 관습을 포괄했고, 국가가 부과한 질서의 지배를 받았다. 반대로 '외부'를 특징지은 것은 제국의 지배, 방대한 지역의 수탈, 원주민 학살, 자원 약탈, 노예화, 그리고 멀리 떨어진 국가의 효율적인 감시를 벗어난 민간 자본가들의 방대한 토지 지배였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85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으로 막대한 양의 토지를 강탈한 것은 제국주의 일본에게 막대한 농경지의 확보와 함께 저임금 노동자들을 동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자본주의는 1910년대 착실히 성장하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경제 호황을 맞이했음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금을 주어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그들의 작업을 감시하며 그들이 기술과 열정을 쏟게 하는 동안 새로운 딜레마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공장을 벗어난 노동자들의 가정과 거주 지역에서 고용주의 권한은 훨씬 더 멀어졌다. 노동자들을 모집하고 규율을 시행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노동조건이 끔찍했기 때문이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07


 군산과 목포에 지어진 근대식 항만, 신의주에 부설된 철도 등 SOC 설비가 제국의 '내부-외부'를 연결하는 통로였고, 이를 통해 수탈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리랑 5>를 통해 다시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는 이로부터 '근대화'의 징후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일본-조선'의 관계가 제국주의 '본국-식민지' 관계의 전형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식민 지배 기간 이루어진 조선의 발전이 '의도치 않은 낙수 효과'인지 아닌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단순 증가율로 분석할 것이 아니라, 같은 기간의 일본과 조선 경제를 비교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양국간에 이루어진 수출입 품목, 조건, 경제 성장률 비교 등 다방면에 걸친 분석을 통해 '경제성장'이라는 과실을 누가 가져갔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여겨진다. 이는 전문적인 내용이 죌 것이니만큼 깊은 내용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살펴 보도록 하자. 


 신의주야말로 이름 그대로 일본사람들이 제멋대로 만들어낸 '새로운 의주'였다. 경의선 종착역을 땅 넓은 압록강변에 만들면서 그들이 지어 붙인 이름이 '신의주'였다. 그러니 역 뿐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왜색인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p88/247)...  별로 볼품이 없었던 군산은 일본세상이 되면서 개명도시로 바뀌더니 느닷없이 부로 승격했고, 어느새 부윤자리가 12개의 부 중에서 세 번째로 좋은 벼슬자리로 꼽히고 있었다. 그건 순전히 일본으로 실려나가는 쌀이 만들어낸 힘이었다._조정래, <아리랑 5>, p90/247 


 한편, <아리랑 5>에서는 오랜 기간 중심도시였던 전주, 의주 등을 대신하여 군산, 신의주, 목포 등 이른바 신도시들이 일제 시대에 새롭게 떠오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러한 변화로 새롭게 떠오르는 이들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고, 이들이 자신들에게 부와 권력을 안겨주는 새로운 조국 일본을 따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친일'이 옳은 길이라고 말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국가'나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변 사람들의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의 발로 때문일까. 쉽게 단정짓기 어려운 문제라 여겨진다...


 양치성이 그 가위눌리는 충격 속에서 느낀 것은 조선사람이라는 창피스러움과 부끄러움이었다. 그건 곧 일본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흠모로 이어졌다. 일본사람들이 왜 조선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고 얕잡아보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그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_조정래, <아리랑 5>, p8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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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씨부인은 끊임없이 매질을 하던 형리를 잃었다. 생전의 최치수는 아들이 아니었으며 가혹한 형리였던 것이다. 그것을 윤씨부인은 원했다. 원했으며 또 그렇게 되게 만든 사람이 윤씨부인이다. 그 사실을 지금 윤씨부인은 공포 없이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가엾은 형리, 세월을 물어뜯으며 물어뜯으며 지겨워서 못 견디어 하다가 그 세월에 눌리어 가버린 사람, 최치수는 윤씨부인을 치죄(治罪)하기 위해 쌓아올린 제단에 바쳐진 한 마리의 여윈 암소는 아니었는지._박경리, <토지 2>, p368/408


 박경리(朴景利, 1926 ~ 2008)의 <토지 2>에서는 최참판 가문의 당주 최치수가 귀녀와 김평산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이런 상황에 처한 어머니 윤씨부인의 복잡한 심경이 묘사된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 그렇지만, <토지>에서 윤씨부인이 아들 최치수의 죽음에서 느끼는 감정은 여느 어머니의 슬픔과는 다르다. 불공을 드리던 중 김개주에게 겁탈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온 사건 이후 윤씨부인에게 아들 최치수는 예전의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산에서 돌아오던 날 어머님 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달려온 치수를 뿌리친 그때부터 윤씨부인은 죽은 남편의 아내가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남편의 아들인 치수의 어미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의식의 심층에는 부정(不淨)의 여인이며 아내와 어미의 자격을 잃은 육체적인 낙인이 빚은 절망 이외의 것이 또 있었다. 핏덩어리를 낳아서 팽개치고 온 뼈저린 모성의 절망이었다._박경리, <토지 2>, p368/408


 자신이 낳은 아들이라는 사실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윤씨부인의 두 절망이 자신의 정신 층위를 갈라지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후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를 라캉(Jacques Lacan, 1901 ~ 1981)의 상징계-상상계-실재계와 연관시켜 설명해보면 어떨까.


 라캉은 정신의 세 층위로서 'Imaginaire', 'Symbolique', 'Reel'을 말한다. 우선, 'Imaginaire'는 이미지적인 것, 영상적인 것(Image!), 영상계라 볼 수도 있고, 이미지를 통해 상상하니 상상적인 것, 상상계라고 볼 수도 있다.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 7장에서 심적 장치를 설명하면서 제1차 과정은 지각된 것을 영상으로 바꾸는 것이고, 제2차 과정은 이 영상을 언어(단어)로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제1, 2차 과정의 경계는 연상 작용이 일어나는 곳으로서 '영상-단어'의 짝이 문제시되는 곳이다. 두 번째로 'Symbolique'는 상징적인 것(Symbol~)으로 구성되는 상징 체계이다. 마지막 'Reel'은 뭐라고 딱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징 체계에 가두어지지 않는 어떤 것인데, 실재적인 것, 실재계로 불린다. 라캉은 실재적인 것 안에서 상징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의 접합과 교차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셋의 어울림이 바로 정신 작용인데, 이 삼위체는 정신분석 기술을 세우는 체계이자, 정신분석 기술 개념을 생산해 대는 장치이다._ 강응섭, <자크 라캉의 세미나 읽기>, p26/240


 소설에는 나오지 않은 사실이니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원치 않은 일을 당하기 전 윤씨 부인의 현실은 자신이 가고자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리고 사회규범과도 어그러지지 않은 삶이 아니었을까. 윤씨 부인의 삶에서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는 크게 충돌하지 않고 '대지주 가문의 안방 마님'으로서 자신을 지탱해 주었을 것이다. 삼위일체가 되어 분열되지 않은 자아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상태. 이것이 사건 전의 윤씨 부인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 '상징계'와 '실재계'와 건널 수 없는 틈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그의 모든 것이 바뀌었던 것은 아닐까.

 

 라캉에게 인간존재의 현실을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 등 얽혀 있는 세 차원으로 구성된다. 이 세 영역은 체스 게임에서 간명하게 예증된다. 체스를 하기 위해 따라야 하는 규칙은 체스의 상징적 차원이다. 상징적 차원은 상상적 차원과 명확히 대비된다. 상상적 차원에서 각각의 말들은 특유의 형태를 가지며 서로 다른 이름(왕, 왕비, 기사)으로 개별화된다. 마지막으로 실재계는 게임의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속적인 환경의 전체집합이다. 경기자의 지능이나 경기자를 당황하게 하고 갑자기 게임을 중단시키는 예기치 못한 침범 같은 것이다. 대타자는 상징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그렇다면 이 상징적 질서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우리의 발화 행위는 복잡한 규칙의 네트워크와 서로 다른 전제들의 수락과 의존으로 이루어진다._슬라보예 지젝, <HOW TO READ 라캉>, p20/160


 라캉의 타자가 상징적 차원에서 작동하며 자기 너머에 있는 절대적 타자라면,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태어나고, 해석하거나 이해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윤씨 부인의 타자는 '정결(貞潔)'이라는 사회적 규범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윤씨부인의 감정과 태도는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는 라캉의 유명한 말을 설명해 준다고 볼 수 있을까. 적어도 윤씨부인이 느꼈던 두 절망 중 하나는 사회적 규범 문제로 무리없이 잡을 수 있지만, '모성(母性)' 문제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여겨진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책들을 통해 내용을 정리하는 것으로 넘기고, 다시 <토지 2>로 돌아가자.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1999)에서, 허디는 가능한 모성적 본능들을 탐사했다. 그는 모든 포유류 암컷에 타고난 모성적 반응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미가 자신이 낳는 모든 자식을 자동으로 양육하지도, 모든 자식에게 똑같은 정도로 헌신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간에게 초기의 모성적 헌신은 다양한 요인, 특히 사회의 뒷받침에 대한 인식에 달렸다._ 버니지아 헤이슨 외, <포유류의 번식 - 암컷 관점> , p14/286


이처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실재계의 '아들' 최치수를 잃은 슬픔보다 '치죄자' 최치수를 잃은 감정을 더 크게 느꼈을 윤씨부인의 내면에서 타자와 자신을 분리시킬 여지는 없어보인다. 이의 연속선상에서 최치수 죽음 후 더 냉혹해지는 윤씨부인의 태도는 '상징계의 타자'를 잃은 분노때문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토지>를 읽던 중 유독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한 대목에서 들었던 여러 생각들을 나열한 페이퍼는 이만 줄이도록 하자...


 그것은 회환 때문이었다. 공포 없이 생각할 수 없는 치죄자(治罪者)로서의 최치수, 그는 아들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도현의 고초를 겪는 망모의 구원을 위해 석가에게 법을 물었던 목련존자(目連尊者)일 수 없는, 심판장의 형리로 그 어미 스스로가 만들었던 것이다. 목련존자의 악모 이상의 악모임을 윤씨부인은 깨달은 것이다._박경리, <토지 2>, p368/409 


 날이 갈수록 윤씨부인에게서 뿜어나오는 독기는 치열해졌으며 삼엄하고 공포에 찬 공기는 충만하여 하인들은 주술에 걸린 것처럼 빠져나갈 구멍조차 찾을 수 없이 마치 제가끔 자신이 치수를 죽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_박경리, <토지 2>, p37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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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11 14: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윤씨부인의 심정을 저렇게 라캉의 이론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네요. 저는 철학은 철학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읽고는 연결을 못시켜서 항상 따로 놉니다. ㅎㅎ 토지의 인물 성격 묘사는 정말 압권이었어요. 아 사람이 정말 단순한 존재가 아니구나, 얼마나 다양한 인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는지, 한 인물이 얼마나 다양한 면들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 깊고깊은 곳이 토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언제든 제가 읽은 최고의 소설은 변하지 않고 <토지>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1-06-11 14:58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토지>는 잔잔하게 그려낸 인물들의 심리와 갈등이 적절하게 잘 드러난 작품이라 여겨지네요.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아리랑>의 배경이 넓다면, <토지>의 인물은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붕붕툐툐 2021-06-11 17:52   좋아요 2 | URL
저도요!! 최고의 소설은 <토지>!!

붕붕툐툐 2021-06-11 1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시금 토지를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라캉과 연결해 읽기 인상적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6-11 19:1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붕붕툐툐님. 뒤늦게 <토지>를 읽는데, 참 대단한 작품이라 여겨집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21-06-11 2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이 대목에서 분노가 일어요. 피해자였을 뿐이었던 윤씨부인은 왜 자신을 죄인이라는 굴레에 얽매었어야 했을까. 당대 윤리가 지금과 다름을 감안한다 해도 여전히 이해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지요. 자신에 대한 분노와 절망은 치죄자를 두어 자신을 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에, <토지> 세계관에서 가장 사패에 가까운 최치수가 세상을 떠난 이후 오히려 힘들었다는 점에서 자기 구원이란, 해방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한편 이런 냉정함을 서희가 물려받았기에 서희는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 아 토지 다시 읽고 싶네요 ㅠㅠ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6-11 23:27   좋아요 2 | URL
조그만메모수첩님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윤씨부인의 치죄자는 아들 최치수가 아닌 오히려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완벽한 아내, 어머니로서 존재해왔던 윤씨부인이 변을 당한 뒤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최치수를 볼 때마다 느꼈기에 아들을 멀리했고, 그 결과 한창 성장기에 엄마의 사랑을 못 받은 최치수는 점차 차갑게 변해가고,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윤씨부인은 더 죄책감을 느끼는... 그런 악순환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봤을 때 최치수 역시 피해자이며, 마치 불효자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후회하듯, 윤씨부인은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풀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가도 생각해 봅니다.(이 경우에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바뀐 듯 합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만, 저는 윤씨부인도 피해자이지만, 이로 인해 이유도 모르고 어머니의 벽을 느낀 최치수가 어쩌면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와 함께 우리 모두가 사회와 관계를 맺고 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산다고 했을 때, 우리의 상상계는 주변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만은 없을 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 우리의 상상계와 윤씨부인의 상산계는 아마도 다르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상상계-상징계-실재계의 관계는 오늘날의 관점과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이 그에게는 최선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한 인물의 작은 사건 하나로 여러 관점에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조그만메모수첩님 좋은 의견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