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평전 - ‘진리’라 불리던 사악한 사제가 예수였을까?
조철수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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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엣세네 공동체 사람들에게서 '진리'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을 사제가 교만하게 되어 공동체를 떠났다는 말이다. 마음이 교만한 것은 공동체의 가르침에 준하지 않고 자신의 성경해석을 주장한다는 뜻이다.(p127)... '진리'라는 그 사악한 사제는 엣세네 공동체의 재판이 아니라 그들의 사악한 재판에 넘겨져 사형 판결을 받았는데, 그가 선동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선동자는 죽어가면서 공포에 질려 있었으며 그의 살에 상처를 받아 시체가 되었다는 해석이다.(p128)  <예수평전> 中


 <예수 평전>의 저자 조철수의 관점은 새롭다. 일반적으로 인간 예수의 생애는 바리사이(Pharisees) 파와 많은 갈등을 일으킨 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는 사건 후 사두가이(Sadducees)파들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어, 결국 로마인들에게 넘겨진 후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예수 평전>에서는 예수와 갈등을 일으키는 주된 집단은 에세네 파(Essenoi)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메시아가 아닌, 에세네 파의 구원자(Messias)인 예수. <예수 평전>에서 그려지는 예수의 모습이다. 


 '진리'라고 불리는 사악한 사제가 속임으로 공동체를 설립한다고 해석하는 엣세네 해석자의 관점을 예수의 전기에서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다. 엣세네의 성경해석자들은 예수가 사악한 사제며 거짓 메시아임을 성경에서 입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하바국서에서 그 실마리를 잡아 예수가 유다의 입맞춤으로 붙잡히게 된 과정부터 십자가형에 처해져 죽을 때까지를 해석했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p136) <예수평전> 中


 <예수 평전>은 에세네 파와 '진리'라는 이름의 사제가 만든 에세네 공동체의 분열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예수가 '진리'를 강조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가 에세네 파 출신의 사제임을 주장하면서 신약성서의 복음서를 탈무드, 미드라쉬와 에세네 파의 전승 기록을 통해 해석한다.



[그림] 에세네 생명의 나무(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139682025918538049/)


 예수 당시의 이야기로 생각해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예수가 자신을 '에메트(진리)'라고 부르는 점이다. 복음서에 전해진 한 이야기에서 이런 사실을 읽을 수 있다. 

 여러분이 내 말에 서 있으면 여러분은 진리(에메트)안에 내 제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그 진리가 여러분을 (속박에서) 풀어줄 것입니다.(요한 8 : 31 ~ 32) <예수평전> 中


 예수는 '진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고 바리새와 사두개뿐 아니라 엣세네와 성경해석에 있어 서로 다른 견해로 자주 논쟁을 했다. 엣세네의 성경해석자는 하바국서를 해석하며 '진리'라고 불리는 사제를 주목하고 그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엣세네 공동체는 자신들을 유다 지파의 자손들이라고 불렀다. 엣세네 사람들은 토라를 공부하는 노고와 엣세네 창시자인 '의로운 교사'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으로 하느님의 심판의 날에 구원 받을 것이라는 해석이다.(p126) <예수평전> 中


 저자는 이러한 해석을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내용이 사실은 '토라에 대한 지식'의 은유적 표현임을 밝힌다. 본문에서 묘사된 예수의 모습은 율법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랍비의 모습이다. 다만, 폐쇄적인 에세네 파의 해석을 비판하고 개방성을 강조하는 차이만 있을뿐, 책속의 예수는 유명한 랍비 아키바(Akiva, AD 50 ~ AD135)의 수준으로 그려졌다.


 밀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지식을 뜻한다. 초기 유대교 현자들은 이러한 지식은 토라 공부를 함으로써 습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p633)...  밀 빵을 먹어보지도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은 학교에 다닐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은 학교에 다닐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은 토라에 무뢰한이 될 수밖에 없다.(p634) <예수평전> 中


 '생명의 물'은 토라의 가르침이다. 사해문헌에 나오는 '생명수의 우물'과 비슷한 표현이다. 초기 랍비 유대교의 문헌에도 생명의 물은 토라(하느님의 가르침)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낱말로 사용된다. 예수가 말하는 생명의 물도 토라를 뜻하지만 그 토라는 바리새나 엣세네처럼 모세오경뿐 아니라 모세오경에 대한 성경해석을 포함한다.(p267)... 초기 유대교 문헌에서 빵은 종종 토라를 은유하는 낱말로 사용된다. 사람들에게 빵을 먹였다는 이야기는 토라를 가르쳤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p281) <예수평전> 中


 나아가, 책은 예수가 강조한 많은 내용이 남을 위하는 사랑이 아닌, 고도로 계산된 내용임을 당대의 문헌을 통해 논증한다. 마치, 노자(老子)의 '무위(無爲)'가 목적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예수의 가르침이 사실은 당대 시대에서 볼 때 가장 현명한 처신이었음을 저자는 밝힌다. 


 예수가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을 주라고 말하는 배경을 '솔로몬의 재판'과 비교해서 읽어볼 수 있다. 속옷을 훔쳐갔다고 고소했지만 그것을 입증할 증거나 증인을 찾지 못한 경우에 재판관은 그 속옷을 반으로 잘라 나누어 가지라고 판결을 낸다면 그 속옷은 속옷의 가치가 없어진다...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자기 겉옷을 준다고 한다면 재판관은 누가 양심적이며 그 속옷의 주인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p363) <예수평전> 中


 본문을 읽다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평전(評傳)'이라는 말처럼 여기에 묘사된 예수의 모습은 인간 예수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신약성서 내용만을 근거로 예수의 삶을 복원해 나간다. 당대 다른 역사적 기록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전승된 복음서(gospel)를 탈무드와 미드라쉬 해석을 통해 재조명한다는 것이 인간 에수의 삶을 바라보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책에서 밝힌 것은 인간 예수의 모습이 아닌  복음서 사가들의 관점과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영지주의(gnosis)로 향하게 된다. 출발이 '예수가 에세네 파 출신의 사제였다'는 가정에서 출발되기 때문에, 결국 예수와 에세네 파의 대립은 '빛'과 '어둠'의 대립으로 치환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저자의 해석은 예수 사후 로마 제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던 예수 운동(또는 초기 기독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순히 교리 해석상의 차이가 아닌, 예수 가르침 안에 무엇이 당대인들에게 다가왔던 것일까?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아쉽게도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


 엣세네 문헌에서 '빛과 어둠'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단락에서 빛의 자식들이 어둠을 물리치는 힘은 '하느님의 진리'에 있다... 요한복음서나 고린도후서, 요한계시록 등에서 읽어볼 수 있듯이 '빛과 어둠'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엣세네의 언어에 익숙한 것을 알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를 '진리'라고 부르는 점은 '진리'의 핵심이 어둠을 물리치는 힘/권능에 있다는 엣세네의 규례와 비교해 볼 수 있다.(p739) <예수평전> 中


 이와 같이 이 책은 인간 예수의 삶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는 책이지만, 인간 예수와 예수 공동체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 한계가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또, <신약성서> 중 복음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이에 대한 해석을 하는 모습에서는 '신앙고백'이라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영지주의 복음서와 같은 결론에 이른 느낌을 받게되어 조금은 혼란스럽다. 위와 같은 부분은 아쉽지만, 독창적인 저자의 시도와 당대 사회의 모습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나름의 소득이라 생각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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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9-04-21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수는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잘못알고 있는 예알못들이 문제라 봅니다. 퀴어축제때 우리에게 무차별 폭력을 예수의 이름으로 휘두르는 그들 말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4-21 10:57   좋아요 1 | URL
Nam Gi Kim님의 말씀을 들으니, ‘예수는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사랑하고 존경할 수 없다‘던 마하트마 간디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저 역시 기독교(가톨릭) 신자인만큼 다른 이들에 대한 배타적인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부분에서 정말 초기 교회가 지향했던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고민해야겠지요. 마침 오늘은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한 ‘부활절‘입니다. 성탄절보다 더 의미가 있는 오늘, 부활의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9-04-21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1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9-04-21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 님의 이 글을 읽어보니 제가 요즘 읽고 있는 『로마제국 쇠망사』 생각이 납니다.

여느 역사책과는 다르게, 『로마제국 쇠망사』에는 ‘초기 기독교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오랜 역사를 지닌 유대인 민족종교와 신흥 그리스도교 사이에 있었던 ‘교리 갈등‘ 때문에 파생된 다양한 분파들에 대해서도 깊이있게 다루고 있더군요. 나사렛파, 에비온파, 그노시스파, 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 몬타누스파, 노바티아누스파, 에세네파 등등 문외한인 저로서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종파들도 참 많더군요.

이뿐만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의 교부, 호교가, 사제들이었던 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락탄티우스, 유스티누스 등등에 대해서도 여러 곳에서 굉장히 자주 언급하는데, 제가 ‘로마의 역사‘를 읽고 있는지 ‘교회사‘를 읽고 있는지 착각이 들 정도로 상세히 다루고 있어서 놀랍더군요. 관심이 있으시면 그 부분(제1권 15장 및 16장, 541쪽 ∼691쪽)을 한번 참고하셔도 유익하리라 믿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4-21 20: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oren님. <로마제국 쇠망사>를 축약본으로만 접했는데, oren님 말씀을 듣고 보니 완역본 정주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초기 기독교 교회를 탄압하는 주체에서 제국의 종교로 바뀐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쇠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여겨집니다. 로마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복수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전체를 포용하는 세계 종교로서 기독교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 역사학자인 기번의 답변이 기대됩니다.^^:)
 
돌베개 - 장준하의 항일대장정
장준하 지음 / 돌베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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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28장 10 ~ 15절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 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 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 日軍 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마침내 나는 그 암호를 사용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 "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그 후 나는 "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 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 땅 2년은 바로 나의 "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 받는 "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p7)' 


 <돌베개>는 독립운동가,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사회운동가였던 장준하(張俊河, 1918~ 1975) 선생의 삶 중에서 1944 ~1945년간의 일을 다룬 기록이다. 이 시기를 통해 일본군의 징용을 피해 광복군에 합류한 후 시안(西安)에서 OSS 훈련을 받으며 국내 진공 작전을 기다리다 광복(光復)을 맞이할 때까지 삶의 여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꿈을 꾸었다.(창세 28 : 10 ~ 12)'


 <창세기>에서 야곱은 그의 형 에사우의 축복을 가로채고 어머니 라헬의 고향 하란으로 자신의 외삼촌을 찾아 떠나게 된다. 하란으로 가는 도중 베텔이라는 곳에서 지친 야곱은 잠시 잠을 청하고 꿈을 꾼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던 저자는 그러한 야곱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느끼지 않았을까.


 '내가 이 광야에서 벨 베개는 돌베개임을, 벌써 일군을 탈출하기 전 마지막 편지로 아내에게 말하였고 또 각오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부터 내가 베어야 할 나의 돌베개는 어느 지점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가. 나의 고행은 어디서부터 정작 시작되어 어디까지 가야할 것인가.(p91)'



[지도] <돌베개>에서 저자의 주요 경로


 항일 대장정(抗日 大長征)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쉬저우(徐州)에서 충칭(重慶)으로, 다시 시안(西安)으로 2년 동안 이어지는 그의 여정 속에서 '못난 조상이 또다시 되지 말아야 한다', '돌베개'라는 말이 주문(呪文)처럼 이어지고 있다. 지쳐 쓰러질 듯한 상황속에서 저자를 버티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우리는 글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나의 희생으로 우리의 다음 대는 또다시 이런 고생에 시달리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대를 남기는 것보다 훨씬 보람된 나의 일생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으리라.(p226)'


  '내가 자원한 것은 국내 공작이었다. 국내 공작의 목표는 결국 나의 죽음이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이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다... 한반도에 대한 연합군의 공략은 일본의 본토 사수의 결의를 꺾자는 데 있는 것이다. 이 공략을 돕기 위해 경무기로 무장된 우리가 잠수함이나 낙하산으로 투입되어 우선은 첩보활동, 다음 단계로 정보 송신, 그리고 최종으로 유격대 조직 및 군사시설 파괴공작을 수행하도록 미리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p289)'


 그렇지만, <돌베개> 속에 저자의 애국심(愛國心)만 표현된 것은 아니다. 저자는 힘든 중에도 자신의 주변을 살피며 당시 주변 정세를 예리하게 판단해간다. 또한 힘든 장정의 상황에서도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의 주인공 제갈량(諸葛亮, 181 ~ 234)의 사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애국가(愛國歌)를 부르면서 통곡하는 저자의 모습이 표현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속에서 저자의 사람됨과 당대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후방도 아닌 전방지대에 사단장이라는 지휘관은 수십 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다니고, 박격포를 메고 가야 할 그 어깨엔 그 대신 지휘관의 처첩들의 가마가 올라앉는가 하면, 정규군의 모습이 아닌 이 미련한 중국국. 일군에게 밀리면서 또 홍군과 맞붙어 싸우며 떠다니는 유랑의 군대. 그런가 하면 일군은 점과 선만을 차지하고 타협도 해가면서 대륙을 들쑤셔놓는 그 약삭빠른 허세의 군대다. 이들의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공산군만이 진실로 공간과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p176)'


 '장제스군에게 막대한 양의 미제 신식무기가 공급되었어도 이 신무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정도의 한심한 병정들이었다. 그들의 무식은 신무기 활용을 해득하지 못했고, 분해, 결합과 같은 손질에서 병기 파괴 손실이 더 컸으며, 이들의 정신 상태에서는 중공군으로 넘겨주고 돈을 받는 일이 항다반사였다.(p211)'


  힘든 여정을 거쳐 충칭의 임정에 도착하지만, 분열된 임시정부의 모습 속에서 그는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저자의 좌절감 역시 <돌베개> 속에서 가감없이 표현되고 있다.


  '6천 리의 대륙횡단 끝에 찾아온 충칭도 채 석 달이 못되어 다시 떠나버리게 되었다. 충칭에 더 머무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학과 모욕같이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순수했던 기대와 불같던 정열과 끓던 정의감은 안개처럼 차차 꺼져버리고 오히려 실망과 허탈감으로 우리가 괴로워해야 했던, 그 짧지 않은 석달을 묻어두고 새로운 결심을 했다.... 슬픔이란 아주 간단한 철학이요, 순진한 감정이었다. 심해의 풍랑 속에서 찾아온 등대불이 꺼져버린 그 순간의 실망이라고나 할까. 일군을 탈출해 찾아와 몸 바칠 곳을 찾아 헤매다가 시안에서 시작되는 한미 합동작전을 위한 훈련을 받기 위해 떠나는 우리 일행 30여 명은... 감정 없는 슬픔을 가숨에 담고 새로운 투쟁을 찾아가는 혁명의 철학을 새겨야 했다.(p276)'


  광복을 위해 투쟁했지만, 청년 장준하가 준비했던 광복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투쟁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돌베개>는 존경받는 정치인, 사회운동가로서 장준하 선생의 사상(思想)적 기반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돌베개>를 이웃분에게 선물받았기에 더욱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돌베개>를 선물해 주신 이웃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청년 '장준하의 꿈'을 함께 짐작해보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나는 네가 누워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고, 너는 서쪽과 동쪽 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세 28 : 12 ~ 16)'


PS. 원래 이번 리뷰는 두 명의 군인을 비교해서 작성하려고 했습니다. '일본군->광복군'으로 자신의 이력을 만든 장준하 선생과 '만주군->일본군'으로 변신해 간 다른 인물인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를 비교해 보려 했습니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먼저 리뷰를 올립니다. 나중에 여건이 되면 '두 군인(軍人)의 길'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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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1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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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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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1 00: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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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1 0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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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1 0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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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평전 2 (양장)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신서 32
유홍준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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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완당평전2>에서는 제주도 유배시절 중반기부터 1856년 김정희가 사망할 때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완당평전2>의 주제는 '추사체(秋史體)'다. 우리가 '추사체'라고 부르는 그의 독특한 서체(書體)와 그 성립 시기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하여 '추사'가 죽기 3일전 작성했다고 하는 '봉은사 판전'에 이르기까지 책 전반에서 다룬다.



[그림1] 김정희, <학위유종> (출처 : http://blog.daum.net/naondal/10867040)


'완당의 글씨가 괴(怪)하다는 말을 듣는 이유를 이 글씨에서 남김없이 알아볼 수 있다... "학문은 유학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뜻의 <학위유종>은 고급 냉금지에 고급 먹으로 쓴 회심의 일필이다. 그 괴이함은 가히 극치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씨는 획법(劃法)과 자법(字法)에서 나무랄 것이 아무것도 없다.'(p571)


인생 초반기에 중국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직접 원본(原本)을 봤던 김정희였다. 그런 그였기에 자부심이 매우 컸고, 다른 이들과 함께 작품에 대해 논쟁이 벌어질 때면 매번  '내가 직접 원본을 보니까 말이지~'하는 말로 다른 의견을 눌렀다고 한다. (<완당평전1>참조) 오늘날 해외 유학파 학자들이 자신의 의견에 권위를 부여할 때 사용하는 말과 같이 그의 말은 그에게 승리와 함께 많은 적(適)을 안겨다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유배'는 그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성립시기에 대한 논의와는 별도로 '추사체'는 이러한 자기 성찰의 결과물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이후 잠시 여유로운 시절을 갖지만(강상(江上)시절),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1년 남짓의 시기 동안이지만, 이 시기에 추사는 진흥왕 순수비 중 '황초령비'를 원위치 시키는 등의 여러 활동을 이어간다. 저자는 이 시기의 김정희를 서술하면서 그가 원래 강한 민족의식과 북방의식이 있었다고 서술한다.


'완당은 청나라 학자들과의 깊은 교유 때문에 국제적 감각의 지식인, 심지어는 사대주의적 분위기에 젖어 있던 지식인으로 흔히 인식되고 있다. 나 또한 한동안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실제로 그는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히 강하고 우리 민족의 대륙적 기상과 북방적 기질을 사뭇 동경해온 분이었다.'(p638)


이 글을 읽으면 저자는 김정희가 처음부터 강한 민족을 가지고 잇었던 것처럼 인식함을 알 수 있다. 내가 추사 김정희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지는 않았기에 직접적으로 반론하기는 어렵지만,  김정희의 글씨가 '제주도 유배' 이후 기름기를 뺀 독창적인 '추사체'로 발전한 것처럼, 김정희가 원래 강한 민족의식을 가졌다기보다 그의 민족의식 역시 당시 외지(外地)였던 함경도 북청에서 강하게 발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홍준 교수가 김정희의 민족 의식과 관련하여 제시한 시(詩)가 북청 유배 시절에 지어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유배'와 '북청 유배'는 글씨로는 청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완당(阮堂)'에서 독창적인 세체를 가진'추사(秋史)'로 나가는 계기가, 사상적으로는 '소중화(小中華)사상'에서 벗어나 '조선(朝鮮)'을 강하게 인식하게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림2] 봉은사 판전 (출처 :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 봉은사 경판전을 위해 쓴 완당의 이 현판은 결국 그의 절필이 되었다. 이 판전을 쓴 지 완당은 3일 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p761)


<완당 평전>1,2를 읽고 난 뒤 김정희의 일생을 통해 마치 '연어의 회귀'를 생각하게 된다.


더 큰 세상을 동경하고 큰 세상에서 함께 하기를 꿈꿨던 김정희. 그가 후세에 이름을 남긴 것은 완원, 옹방강 등 당대 국제적인 학자들과의 교류보다 그에게는 쓰라렸던 유배 생활을 통해 얻은 '추사체' 였다. 고난을 이겨내고 얻어낸 추사체와 김정희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민물고기로 태어나 대양(大洋)에서 일생을 지낸 후 자신의 산란지로 찾아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연어의 인생'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죽음의 여행을 통해서 얻어낸 것이 연어에게는 '새 생명'이라면, 김정희에게는 '추사체'가 아니었을까.




[그림2] 연어의 회귀( 출처 : SBS뉴스) 


<완당평전>을 통해 우리는 조선 말을 살아갔던 국제적인 석학(碩學)의 모습과 함께 우리 삶에 고난(苦難)이 반드시 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 뼈마디가 부러질 듯한 고통을 주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를 궁핍보다 더한 공핍의 상태로 만들며,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도록 어지럽히시니,이것은 그의 마음을 움직여 타고난 작고 못난 성정을 인내로 담금질하게 함으로써 그가 수행할 수 없던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도록 그 역량을 키워주려 함이다.


孟子曰,

天將降大任於是人也인댄

必先苦其心志하며 勞其筋骨하며

餓其體膚하며 空乏其身하야

行拂亂其所爲하나니

所以動心忍性하야

曾益其所不能이니라。



ps. <완당평전3>은 에서는 김정희의 편지와 전시회 출품작 등을 수록하여 앞서 평전 1,2와는 또 다른 성격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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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08: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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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완당평전 1 (양장)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신서 31
유홍준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완당(阮堂)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 1786 ~ 1856)의 또 다른 호(號)다. 이 중에서 '완(阮)'은 청(淸)나라 완원(阮元 ; 1764 ~ 1849)으로부터 받은 호이며, 중년기까지 '완당'이라는 호를 '추사'보다 더 즐겨 사용할 정도로 그들과 많은 교류를 쌓았다. 그는 당대 청나라 문인들과 많은 교류를 통해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지식인이었고, <완당평전1>에서는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해외 유학파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갑작스럽게 몰락한 완당(阮堂)의 모습이 그려진다.

 

<완당평전1>에서는 김정희의 생애 중 출생(1786)에서 제주도 유배 초기인 1844년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김정희는 경주 김씨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가 12촌 대고모이며, 증조할아버지 김한신(金漢藎 ; 1720 ~ 1758)이 영조의 둘째딸인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결혼할 정도로 명문가였기에 남부럽지 않게 공부할 여건을 갖출 수 있었다. 이러한 집안 배경으로 그는 1809년 마침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임명된 아버지 김노경(金魯敬)를 따라 연경으로 가게 된다. 약 2개월동안 연경(燕京)에서 머물면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완원, 옹방강(翁方綱 ; 1733 ~ 1818)과 같은 당대 문인들을 알게 되면서 쌓은 네트워크(network)는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지만, 지나친 자부심은 동시에 많은 적(敵)도 함께 만들게 되었다.

 

<완당평전1> 중반부에서는 이처럼 기고만장한 김정희의 모습이 그려진다. 저자인 유홍준 교수는 김정희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며, 김정희의 자부심은 실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변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중국을 동경하는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에 물든 김정희의 모습이 불편함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특히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 1705 ~ 1777)의 글을 비판하였는데, 그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북비남첩론에 입각하여 북파를 지향하는 완당으로서는 남파에 뿌리를 둔 원교를 비판할 수밖에 없었으며, 원교의 시각이 조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해, 국제적 시각에서 글씨를 논하고 예술을 펼치고 있던 완당이 보기에 못마땅했던 것이다.(p324)'

 

당대 강대국이었던 청(淸)나라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안목을 높였기에, 우리나라에서 발전한 문화를 얕보는 그의 사대(事大)사상은 지금도 우리사회에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아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저자는 <완당평전1>에서는 대둔사 '대웅보전' 현판을 쓴 원교 이광사의 글과 '무량수각' 현판을 쓴 완당 김정희 글을 비교하면서 독자들에게 김정희를 평가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림] 대둔사 <대웅보전> 현판 (출처 : http://blog.daum.net/seokkim21/84)

 

대둔사 <대웅보전> 현판 : 원교 이광사가 신지도에 유배되어 있을 때 써준 그의 대표적인 현판 글씨로 유려한 필획의 멋과 힘있는 운필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러나 완당은 글씨에 속기가 있다고 생각하여 초의에게 떼어내게 했다. (p338)

 

 

[그림] 대둔사 <무량수각> 현판 (출처 : http://blog.daum.net/seokkim21/84)

 

대둔사 <무량수각> 현판 : 대둔사 대웅보전 오른쪽에 있는 선방 건물로, 이 현판은 완당이 제주도로 유배가면서 써 준것이다. 예서체에 멋을 한껏 넣었는데 획이 대단히 기름지고 윤기가 난다. (p339)

 

글을 잘 볼 줄 모르지만, 이 두 글은 서로 다른 멋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서로 다른 미(美)를 갖춘 두 글에 대해 쉽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김정희는 자신은 당대 선진국인 청나라에서도 인정받았기에 당대 최고라는 자부심을 스스로 가지고 있었고 이는 극단적인 '원교' 비판으로 이어졌다. <완당평전1>에서는 이러한 김정희의 모습을 글과 그림을 통해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통해 지금도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문화사대주의(文化事大主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김정희의 모습이 바뀌게 되는 계기가 바로 '제주도 유배'시기였다.

<완당평전1>에서는 제주도 유배 초기 김정희가 겪은 어려움을 마지막으로 그리고 있다. 그가 이 어려움을 통해서 무엇을 느꼈는지가 잘 나타난 그림이 유명한 <세한도(歲寒圖) ; 1844)>다.

 

[그림] 세한도( 출처 : http://blog.daum.net/yjm88/17954437)

 

<세한도>는 제주도 유배중에도 지속적으로 책을 보내주었던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과 자신의 뜻을 담아 보낸 그림이다. 이 그림과 함께 '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松柏)가 여전히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자신의 뜻을 담아 이상적에게 보냈다.'(p395)

 

<세한도>에 담긴 글을 통해서 '제주도 유배'는 김정희에게 '서리가 내리는' 충격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서리는 김정희가 청(淸)의 깊은 영향을 받은 인간 '완당(阮堂)'에서 독자적인 '추사(秋史)'로 변모하게 한 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다산과 완당의 귀양살이를 비교하면서 다산은 귀양살이를 통해 현실을 발견했는데 완당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하고 한다. 그러나 완당은 귀양살이에서 자아를 재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p332)'

 


[그림] 추사체 (출처 : http://blog.daum.net/yjm88/17954437)

 

'추사체는 대단히 개성적인 글씨다. 일반적인 아름다움, 평범하고 교과서적인 미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추사의 글씨에서 차라리 괴이함과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다.' (p12)

 

<완당평전1>에서는 인간 김정희의 삶과 함께 시기별 글과 그림등을 폭넓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 삶의 평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시기별로 변모하는 작품 해설은 예술가로서 김정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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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14 1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완당 평전》을 읽어보지 않지만, 별점 세 개를 주고 싶습니다. 김정희 평전을 유 교수가 최초로 썼다는 점, 그리고 방대한 분량을 정리한 노력을 높히 평가받아야 하지만, 문제점은 책의 오류가 많습니다. 김정희가 그린 것인지 확실치 않은 그림을 김정희 작품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평전의 오류를 지적한 분이 박철상 씨입니다.

유 교수가 세 권짜리 평전을 절판시켰고, 한 권으로 정리한 개정판을 펴냈습니다.

유 교수가 개정판을 사모님께 보여드렸답니다. 사모님의 한줄평(?)이 압권입니다.

˝이렇게 줄일 거면 왜 세 권짜리로 펴냈수?˝

*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432611

정보의 양이 많다고 해서 그 책이 잘 썼다거나 내용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1-14 20:1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주말을 맞아 본가에 머물면서「완당평전」1,2권이 있어 읽고있습니다. ㅋ 어쩐지 절판서적이 되었더군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cyrus님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yureka01 2017-01-15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700년대와 1800년대 초기에 많은 학자들이 유럽을 갔었더라면 또 어땠을까요..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1-15 07:26   좋아요 0 | URL
^^: 어려운 가정입니다만 만일 그럴 수 있었다면, 일본보다 앞서 서구화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묘심화 지음 / 찬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한때 탤런트 김수미씨의빙의 치료로 유명했던 묘심화 스님.

우리나라 여성지도자로 박근혜를 지지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별내용은 없지만 책을 읽고 스님께 여쭙고 싶은 질문이 떠오른다.

박근혜라는 인물을 만났을 때 별다른 느낌은 못 받으셨는지에 대한 질문을.

만일 별다른 느낌 못 받으셨으면 빙의에 대한 스님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답을, 만일 아셨지만 그럼에도 이런 책을 내셨다고 하신다면 존경받는 종교인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답을 드리고 싶다.

시절이 어수선하니 요즘 내 눈에는 영양가없는 책만 들어오는 것 같다. (그나저나 이렇게 박근혜 관련 서적을 읽다보니 북플에서 ‘박근혜 1번째 마니아‘가 될 것 같아 다소 걱정이 된다...)

ps. 이 글은 묘심화 스님 개인 저서에 대한 평가이며, 결코 신심있는 불자분에 대한 글이 아니라는 사실을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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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4 2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998년도인가요..대구 달성군에서 출마할때부터..상당히 않좋더니만,,결국 오늘날까지 왔더군요...네 낚인겁니다..

겨울호랑이 2016-11-14 21:28   좋아요 2 | URL
유레카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진정한 위기는 1997년 IMF가 아니라, 같은 해 이루어진 박근혜의 정계진출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五車書 2016-11-14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있었군요. 거의 충성 맹세나 다름 없는 책이 아닐까 싶어요. ^^;

겨울호랑이 2016-11-15 04:04   좋아요 2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만 듣다보면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착각할 거 같아요..

NamGiKim 2018-04-11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스님은 ㅂㅅㅁ 아닌가요? 때극기 집회 나가서 ˝박근혜 석방˝과 같은 소리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죠. 촛불혁명시기 매주 촛불집회 나가며 이런 땡중들과 개독들 볼때마다 진심으로 패주고 싶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4-11 22:49   좋아요 1 | URL
묘심화 스님의 최근 행보를 보면 다소 극우 성향이 보여집니다. 저 역시 극우 성향이 잘 이해되지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여러 생각을 가진 이들이 사는 곳이니 받아들여야하는 현실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